성명논평
[성명] 역사 정의 실현과 피해자의 인권을 무시한 한일관계의 미래는 없다
[성명] [다운로드] 역사 정의 실현과 피해자의 인권을 무시한 한일관계의 미래는 없다 – 윤석열 대통령 취임 2년 기자회견 대일 굴욕외교를 규탄한다 –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9일 취임 2년 기자회견에서 한일관계 현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한일관계는 과거사와 현안에 대해서 양국의, 또 양국 국민들의 입장 차이가 확실하게 있고, 존재한다. 그러나 한일관계는 우리 양국의 미래와 또 미래세대를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내가 어려움이 많았지만,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구체적으로는 북핵 대응을 위해서, 양국의 경제 협력을 위해서, 인태지역과 글로벌사회에서 양국의 공동 어젠다에 대해 리더십 확보를 위해서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러 가지 현안이라든지 과거사가 걸림돌이 될 수 있겠지만, 우리가 어떤 확고한 목표 지향성을 가지고 인내할 것은 인내해 가면서 가야 할 방향을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와 기시다 총리는 서로에 대해서 이제 충분히 신뢰하고 양국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마음의 자세와 그런 것이 충분히 있다는 것을 서로가 잘 알고 있는 그런 상황이라고 말씀드리겠다.” 취임 직후부터 강제동원 대법원판결을 한일관계의 걸림돌이라 생각한 윤석열 대통령은 반헌법적이고 반역사적인 제3자 변제를 무리하게 밀어붙였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의 제3자 변제는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들의 거부와 법원의 공탁 기각 판결로 이미 파탄 났으며, 일본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굴욕외교에 분노한 시민들은 역사정의시민모금으로 피해자들의 투쟁에 적극적으로 화답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이에 대해 자신이 어려움을
[입장문] ‘미래’ 구실로 ‘역사’ 포기한 대일 굴종외교 민낯 2년!
[입장문] [다운로드] [입장문] ‘미래’ 구실로 ‘역사’ 포기한 대일 굴종외교 민낯 2년! – 한일 과거사 ‘걸림돌’ 취급 … 화답 없는 일본 구애만 주술처럼 반복 – 윤석열 대통령이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해 ‘걸림돌’이라는 인식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취임 2주년을 하루 앞둔 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에서 “여러 현안이나 과거사가 걸림돌이 될수 있습니다만, 확고한 목표 지향성 가지고 인내할 것은 인내하고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한일 관계는 과거사와 또 일부 현안에 대해 양국의, 또 양국 국민 입장 차이가 확실하게 있고 존재한다”면서 “그러나 한일 관계는 우리 양국의 미래와 또 미래 세대 위해서 어떻게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또 “그래서 제가 어려움이 많았지만 우리 미래를 위해서 또 구체적으로는 북핵 대응 위해서 또 양국의 경제협력 위해서 또 글로벌 사회에서 양국 공동 아젠다 리더십 확보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저와 기시다 총리 서로에 대해 충분히 신뢰하고 양국 관계 발전시키기 위해 마음의 자세 그런 것 충분히 있다는 것을 서로가 잘 알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허망하기 짝이 없다. 국민의 생각과도 동떨어져도 이렇게 동떨어질 수 있는 것인가, 참으로 어이가 없다. 우선 한일 과거사 문제를 ‘걸림돌’이라고 언급하다니, 도대체 이 나라 대통령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수 없다.
[알림] 제64주년 4·19혁명 이승만기념관 반대 기자회견 (4.19)
[성명] 윤석열 정부는 혁명열사들의 피로 헌법에 새긴 ‘4.19민주이념’을 욕보이지 마라 1960년 2월 28일 대구를 시작으로 3월 8일 대전, 3월 15일 마산 그리고 드디어 4월 19일 민주혁명을 통해 우리 국민은 이승만 독재를 몰아냈다. 역대 정부는 4·19혁명에 이르는 일련의 민주화운동 모두를 각각 2.28민주운동, 3.8민주의거, 3.15의거로 격상시켜 국가기념일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와 여당은 헌법에도 명시된 ‘4.19민주이념’ 대신 이승만 띄우기에만 골몰하고 있다. 이같은 행태의 시작은 작년 3.1절 기념식 행사장 배경에 장식된 독립운동가들 중에 이승만이 빠졌다는 이유를 들어 윤석열 대통령이 관련자를 크게 질책한 직후부터였다. 대통령의 질책 이후 박민식 당시 국가보훈부 장관은 “이승만 대통령의 한평생은 누구도 쉽게 걸을 수 없고 아무도 감히 폄훼할 수 없는 고난과 역경, 그리고 참된 지도자의 시간”이라고 말했고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도 “이승만 정부의 농지개혁이야말로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오게 된 가장 결정적인 장면”이라고 거들었다. 급기야 윤석열 대통령이 이승만기념관 건립에 500만원을 기부하자 오세훈 서울시장은 당초 약속을 어기고 난데없이 “송현녹지광장 부지에 이승만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100년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와 북악산과 인왕산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송현공원을 또 다시 서울시민들이 빼앗길 처지에 놓인 것이다. 그동안 이승만 정권에 의한 국가폭력 희생자 단체 등 시민사회와 불교계 등 종교계 그리고 역사학계와 독립운동 유관단체 심지어 미주 동포들까지 1년 넘게 이승만기념관을 비롯한 역사왜곡과 헌법부정행위 중단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목소리는
[알림] 『일제 상징물 제한 조례』 폐지 시도한 국민의힘 서울시의원 규탄 기자회견(4.9)
[성명] <일제 상징물 제한 조례 폐지를 시도한 서울시의원 규탄한다> 지난 4월 3일 서울시의회 국민의힘 김길영 의원이 발의하고 같은 당 김경훈, 김동욱, 김영철, 김재진, 김춘곤, 김형재, 김혜영, 박상혁, 서상열, 송경택, 신동원, 옥재은, 이민석, 이병윤, 이봉준, 이상욱, 이희원, 최민규, 최유희 의원 등이 찬성하여 「서울특별시 일본 제국주의 상징물의 사용 제한에 관한 조례」 폐지를 시도했다. 2021년 1월 공포된 「서울특별시 일본 제국주의 상징물의 사용 제한에 관한 조례」는 ‘일본이 강제징용, 위안부 등 반인륜적 범죄행위에 대한 사과와 배상은커녕 역사를 왜곡하는 등 침탈행위를 계속하고 있는 것에 대해 올바른 역사인식 확립에 이바지’하고자 제정된 최소한의 상징적 견제장치이다. 서울뿐만 아니라 충남, 인천, 울산, 서울교육청, 경기교육청, 하남시, 중랑구 등에서 같은 조례가 제정되어 있다. 김길영 시의원 등이 내세운 일제 상징물 제한 조례 폐지의 이유는 ‘이미 시민들에게 반제국주의 의식이 충분히 함양되어 있고, 제국주의 상징물의 사용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가지고 있으므로 일본 제국주의 상징물에 대한 공공사용 제한을 조례로 규정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것이다. 여론의 강한 질타가 쏟아지자 김길영 시의원은 발의 하루만인 4월 4일 자진 철회했다. 하지만 퇴행적 역사인식으로 시민들과 독립운동 선양단체 그리고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고도 사과 한마디 없는 시의원들의 행태를 강력히 규탄하며 묻는다.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에서 열리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를 방해하면서 일본군 성노예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심지어 일장기를 흔들어대는 무리들을 본 적이 있는가.
[알림] 3.15민주의거, 이승만기념관 반대 각계 기자회견 (3.15)
[성명문] [다운로드] 〈헌법 부정 · 국격 훼손, 이승만기념관 반대한다〉 1960년 3월 정·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과 자유당 독재정권은 4할 사전투표, 3인조 5인조 공개투표 등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전국적인 부정선거를 획책했다. 선거 당일인 3월 15일부터 마산의 시민과 학생들은 ‘부정선거 중지’, ‘협잡선거 배척’, ‘공명선거 재실시’ 등의 구호를 외치며 격렬히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8명이 사망하고 72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러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당시 대통령이던 이승만은 마산 시위가 공산당이 사주해서 벌어진 일인 양 주장했고, 부통령 후보였던 이기붕은 “총은 쏘라고 준 것이지 가지고 놀라고 준 것은 아니다”라는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와 같은 탄압에도 3·15의거는 사월혁명의 기폭제가 되었으며, 국민 위에 군림하던 독재자 이승만은 4월 26일 결국 하야하고 하와이로 쫓겨나는 비참한 말로를 맞이했다. 그렇게 이승만은 1925년 3월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의 탄핵을 받은 데 이어 또다시 국민에 의해 끌어내려진 불명예를 역사에 남기게 되었다. 오늘은 ‘3·15의거’ 64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동안 이승만 독재에 저항한 시민들의 행위는 ‘의거’(義擧)로 자리매김해 왔으며, 대한민국 정부도 2010년부터 오늘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해 기리고 있다. 그런데 뉴라이트를 비롯한 극우세력은 ‘국부론’ 따위를 들먹이며 독재자 이승만을 미화하려는 기도를 멈추지 않아왔다. 이들이 광화문광장에 이승만 동상을 건립하자는 둥 황당무계한 주장을 늘어놓기도 했지만 세간의 비웃음을 사고 조롱거리가 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자, 상황은 일변해 상식이 부정되고 역사정의가 무너지는 사태가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다. 대일 구걸외교, 과거사 청산
[입장문] ‘<기억과 전망> 편집위원회’는 일괄 사퇴를 결의합니다.
[입장문] ‘<기억과 전망> 편집위원회’는 일괄 사퇴를 결의합니다. <기억과 전망> 편집위원회 구성원 전원은 2024년 2월 26일자로 편집위원직 사퇴를 결의합니다. <기억과 전망> 편집위원들은 ‘민주화운동의 계승 발전’에 학문연구로 기여한다는 소명의식을 갖고 한국민주주의연구소의 학술지 <기억과 전망> 편집에 참여했습 니다. 2002년 12월 창간하여 22년여 동안 학술지로서 권위를 쌓아온 <기억과 전망>이 위기에 처했습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지난 2024년 1월 1일 ‘민주화 운동기념사업회 내 한국민주주의연구소’를 해산했습니다. 한국연구재단 등재 학술지이자, ‘민주화운동과 민주주의 연구’에 특화된 전문학술지로서 <기억과 전망>의 위상도 한국민주주의연구소의 해산과 함께 크게 손상되었습니다. <기억과 전망> 편집위원회는 다음 세가지 사항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사퇴의사를 표명합니다. 첫째, 학문공동체와 공공기관 간의 신뢰 관계가 크게 훼손되었습니다. <기억과 전망>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내 한국민주주의연구소가 학문연구자들로 편집위원회를 구성, 위임하여 간행하는 학술지입니다. <기억과 전망>은 ‘편집위원회 규칙’, ‘연구윤리 규칙’, ‘원고투고 및 게재’ 등 명문화된 규정에 따라 간행되었습니다. 편 집위원들은 학문공동체의 일원으로 한국민주주의연구소의 가치에 공감하며, 상호간 신뢰를 바탕으로 운영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민주화운동기념사업 회는 <기억과 전망>의 존재 기반인 ‘한국민주주의연구소’ 해산 논의가 진행되는 과 정에서 <기억과 전망> 편집위원회에 그 어떤 의견수렴 과정도 거치지 않았습니다. <기억과 전망> 편집위원회로서는 2024년 1월 1에 ‘한국민주주의연구소’ 해산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억과 전망> 편집위원회는 1월 26일자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재오 신임 이사장 앞으로 경위 설명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발송했습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 회는 2월 5일자 답변서를 통해 “한국민주주의연구소가 해산이 필요한 이유에
[알림] 국민의힘 성일종의 친일 망언 규탄 기자회견(3.10)
[성명] 성일종 의원은 안중근 의사 묘소 앞에서 석고대죄하라!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은 지난 3일 서산장학재단 장학금 전달식에서 수많은 학생들 앞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영국에서 공부하고 일본으로 돌아온 분” 우리보다 먼저 “일본이 키운 인재”라는 망언을 했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해 성 의원은 “열등의식”이라고 무시하더니 논란이 커지자 “비유가 적절치 못했던 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한 문장을 SNS에 올렸다. 이는 총선을 의식한 억지 사과에 불과하다. 지난 2022년 당시 정진석 비대위원장이 “조선은 왜 망했을까? 일본군의 침략으로 망한 걸까?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졌고, 그래서 망했다”면서 강제병합의 책임은 일본이 아닌 조선에 있다는 식의 발언이 논란이 되자 성일종 의원은 그 발언을 옹호하면서 “구한말에 조선을 이끌었던 지도층들에 문제가 있었던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그의 발언은 제국주의·식민주의·인종주의 등 강자에 의한 약자 지배를 정당화하는 사회진화론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문제는 적절치 못한 비유가 아니라 그의 친제국주의적 의식이다. 윤석열 정부 이후 집권여당의 친일 언동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뉴라이트 인사들을 대통령실과 정무직에 대거 임명, 정한론자인 요시다 쇼인을 존경한다는 전직 검사 한희원의 경북독립운동기념관장 취임, 친일군인 백선엽 동상 건립, 홍범도·김좌진 독립영웅 흉상 철거 시도, 일본에게 책임을 묻지도 않는 엉터리 강제동원해법, 백범 김구를 ‘폭탄 던지던 분’이라며 비꼬던 박은식 비대위원 임명, 식민지근대화론을 설파하는 낙성대경제연구소장 박이택 독립기념관 이사 선임 등 이루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3월 26일이면 안중근 의사 순국일이다.
[중남미지부 성명] 이승만 동상 건립을 반대한다!
[성명] [다운로드] 이승만 동상 건립을 반대한다! 윤석열 정권은 만주벌판에서 풍찬노숙하며 투쟁했던 독립전쟁 영웅 홍범도 장군 흉상은 육사교정에서 쫓아내고 주미 한국대사관 앞에 국민의 혈세를 쏟아 부어 이승만 동상을 세운다고 한다. 이승만이 독립운동을 했다고는 하나 3·1운동 뒤 미국의 윌슨 대통령에게 한국의 신탁통치를 청원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대통령직을 탄핵 당했다. 그의 대미외교활동은 한국의 독립운동에 아무런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으며 오히려 격렬한 분열과 비판만 불러일으켰다. 단재 신채호는 그의 이러한 행위에 대해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은 있지도 않는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매국노’라고 일갈했다. 이승만의 일관된 주장인 외교독립론은 구체적인 방략이라기보다 강대국의 자비에 기대는 구걸외교에 다름 아니다. 한 나라의 독립이 어떻게 남의 나라에 호소하는 것만으로 가능할 것인가? 해방 후에 저지른 그의 죄상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이다. 남한만의 단독정부수립을 주도하여 통일민족국가의 수립을 저지하고 분단을 고착화하는 단서를 제공했다. 집권하자 친일 경찰·군인·관료 등을 재등용하여 권력의 기반으로 삼았다. 나아가 반민특위를 와해시켜 친일파 청산을 좌절시키는 한편 독립운동세력을 탄압하여 민족정기를 말살하였다. 6·25전쟁 때에는 혼자만 몰래 도망간 뒤 “서울시민은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라”고 거짓방송으로 국민을 기만하였으며, 한강다리를 폭파해 무고한 인명을 살상하고서도 수복 후에는 미처 피난하지 못한 잔류 서울 시민들을 향해서 “북괴에 부역하였다”고 죄를 묻는 적반하장의 만행을 자행하였다. 또 6·25전쟁을 전후해 제주4·3양민학살, 거창양민학살, 보도연맹양민학살 등 셀 수도 없이 제 민족을 학살하는 악행을 서슴지 않았다. 장기집권을 위해 불법으로 발췌개헌과
[성명] 강제동원 역사부정, 군마현 ‘강제동원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 철거 규탄한다!
[규탄성명] [바로가기] 강제동원 역사부정, 군마현 ‘강제동원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 철거 규탄한다! 2024년 1월 29일 일본 군마현이 ‘군마의 숲’에 설치되어 있는 ‘강제동원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를 강제철거하고 비석을 산산조각냈다. 군마현은 2012년 추도비 앞에서 열린 추도 행사에서 한 참가자가 ‘강제연행’을 언급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군마현은 “정치적인 행사를 실시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시민단체 측이 어겼다고 주장하며 추도비 철거를 요구해 왔다. 최근 일본 최고재판소가 군마현의 주장과 처분이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리자, 군마현 당국이 추도비를 강제철거한 것이다. 군마현의 추도비 강제철거는 일제 강제동원 역사부정이다. 추도비에는 일본의 식민지배와 강제동원 역사를 깊이 반성하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의가 담겨있었다. 전쟁범죄 역사를 부정하고 미화하는 극우세력들은 이런 내용이 담긴 추도비의 철거를 줄곧 주장해왔다. 이번 군마현의 추도비 강행철거는 행정당국이 극우세력의 역사부정을 실현시켜준 반역사적 행위이다. 한일 평화시민의 염원을 산산조각 낸 군마현 규탄한다. ‘강제동원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는 2004년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와 기업,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기금을 모아 건립한 ‘한일 우호의 상징’이었다. 군마현은 추도비를 보호해 역사에 기록하고, 평화와 우호, 한일시민들의 염원을 실현시켜야 했다. 한일 시민사회의 염원이 담긴 추도비를 보호하지는 못할망정 강제철거로 극우세력에 힘을 실어주었다. 군마현은 역사 앞에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일본은 추도비 철거로 역사정의 실현을 막으려 하지 말라. 2018년 일본기업에 대한 강제동원 피해자 승소 판결, 2023년 일본국을 상대로 한 일본군‘위안부’ 승소 판결 등 우리는 지금, 역사정의의 실현을 목도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