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논평
[논평] “방송통신위원회의 시민방송(RTV) ‘백년전쟁’ 방영에 대한 제재는 위법” ‘표현의 자유’ 보장 재확인한 대법원 판결을 환영한다
[논평] [다운로드] “방송통신위원회의 시민방송(RTV) ‘백년전쟁’ 방영에 대한 제재는 위법” ‘표현의 자유’ 보장 재확인한 대법원 판결을 환영한다 11월 21일 대법원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역사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을 방영한 시민방송(RTV)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가 내린 제재가 위법하다고 판결했습니다. 〈백년전쟁〉이 방송의 객관성, 공정성, 균형성 유지의무와 사자명예존중 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RTV가 제재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한지 무려 6년 만에,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제재가 정당하다고 본 원심이 잘못되었다는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대법원의 전향적인 판결을 환영합니다. 먼저 방송심의에 있어 매체별, 채널별, 프로그램별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판단을 주목합니다. 퍼블릭액세스 채널은 매스미디어가 점차 독점화하고 상업화하는 환경에서 소수의 미디어 자본가나 정치권력이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퍼블릭액세스 채널이 방송의 공공성, 공정성 심사의 대상이지만, 방송사업자가 제작한 프로그램과는 심사기준을 달리해야 한다는 해석입니다. 변해가는 미디어 환경을 이해하고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를 더욱 보장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대법원은 〈백년전쟁〉의 제작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역사 다큐의 경우 다양한 의견이나 관점에 대해 각각 동등한 정도의 기회를 기계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른바 ‘기계적 균형’이란 심의 관행에 태클을 건 겁니다. 〈백년전쟁〉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충분히 알려져 주류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과 해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다양한 여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한 것’이라 평가했습니다. 또한 〈백년전쟁〉은
[기자회견문] 대법원 판결 1년,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을 위한 싸움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다운로드: [기자회견문] 대법원 판결 1년,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을 위한 싸움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18년 10월 30일 역사적인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뒤 1년이 지났다. 1997년부터 일본과 한국의 법정에서 자신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싸워 온 피해자들이 20여년의 기나긴 투쟁 끝에 마침내 승리한 것이다. 대법원 판결은 국제인권법의 성과를 반영하여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에 대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명확히 하고, 식민지배와 직결된 강제동원·강제노동이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식민주의의 극복을 향한 첫 걸음을 내디딘 세계사적인 판결이라 할 것이다. 아울러 냉전과 분단체제 아래에서 피해자의 인권을 무시하고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강요한 ‘65년 체제’를 피해자들과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이 연대하여 극복한 역사적인 성과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1년, 해방 70여년이 지나도록 실현되지 못한 자신들의 인권회복과 정의의 실현을 고대해 온 피해자들의 기대는 처참히 짓밟히고 있다. 아베 정권은 한국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하고 사죄, 반성하기는커녕 ‘국제법 위반’을 운운하며 사법주권을 침해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피고 기업들에게 노골적으로 압력을 가하여 판결의 이행을 방해하고 있다. 아울러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한 경제규제와 노골적인 배외주의를 선동하여 일본 사회 전체를 ‘혐한의 광풍’으로 몰아넣는데 앞장서고 있다. 이러한 ‘혐한의 광풍’ 속에서 재일조선인들은 일상적으로 심각한 위협에 직면하고 있으며, 아이치 트리엔날레의 평화의 소녀상 전시 문제에서 드러나듯 역사왜곡과 혐한발언으로 채워지는 언론 보도를 통해 일본사회 전체가 ‘재특회’처럼 되었다는 우려의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강제동원의 근본적 책임이 있는
[성명] 국방부는 국정교과서 집필자 나종남 교수의 대령 진급 결정을 즉각 취소하라
[성명] [다운로드] 국방부는 국정교과서 집필자 나종남 교수의 대령 진급 결정을 즉각 취소하라 1. 언론보도에 따르면 한국사 국정교과서 현대사 집필진이었던 나종남 육군사관학교 군사사학과 교수가 무려 15대 1의 경쟁력을 뚫고 대령 진급 심사를 통과하였다고 한다. 나종남 교수는 반 헌법적인 역사관인 이른바 ‘건국절 사관’을 주장하는 뉴라이트계열의 한국현대사학회 회원이며,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뉴라이트 계열의 인사들이 편찬한 『대한민국 건국의 재인식』의 공동 필자이기도 하다. 뉴라이트들이 주장하는 건국절 사관은, 항일독립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격하시키고, 친일파를 건국공로자로 역사 세탁하는 한편,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5·16군사쿠데타를 ‘근대화 혁명’으로, 박정희를 ‘경제발전과 산업화의 아버지’로 미화하는 ‘역사쿠데타’이다. 2. 나종남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 북에 “박정희의 모든 것을 파헤친다!”는 제목과 함께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에 대해 학자들이 언급한 글을 공유 했다. 게시물에는 “박정희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한국도 없다.” “박 전 대통령이야말로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했다” “자유라는 것은 그 나라의 수준에 맞게 제한돼야 하는데 이를 갖고 독재라고 매도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3. 나종남 교수의 독재자 박정희 찬양론은 국정교과서 집필에도 이어져, 국정교과서가 ‘경제발전 앞세운 군 정신교재 판박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국정 역사교과서 현대사 기술이 국방부의 『정신교육 기본교재』와 유사하다는 지적이었다. 국방부 교재 저자 중 한 명인 나 교수가 국정교과서 현대사 집필진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었다. 이에 민주당 노웅래 의원은 “박정희를 미화한 국방부 정훈교재처럼 (국정) 교과서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성명] 통감부·조선총독부 유지遺址의 현상 보존을 촉구한다.
[성명] 통감부·조선총독부 유지遺址의 현상 보존을 촉구한다 재건축 과정에서 통감부(조선총독부 구청사)의 유구가 드러나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인 서울애니메이션센터(예장동 8번지 일대) 신축 부지는, 조선시대 이래 유래가 깊을 뿐만 아니라 특히 제국주의 일본의 한국 침탈과 식민지배의 총본산이 자리했던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원형을 보전해야 할 역사의 현장이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주둔한 뒤로 이 일대는 왜성대倭城臺 왜장대倭將臺 등으로 불렸으며, 일제침략기 일본인들이 거주하게 되면서 왜성대정倭城臺町이란 행정 지명을 갖게 됐다. 해방이 되어서야 조선 순조 때 유본예가 지은 『한경지략漢京識略』에 근거해 예장禮場이라는 본래의 명칭을 되찾게 되었다. 본래 영문 군졸의 훈련장이었던 예장은 일제침략기 일본군의 전승식장이나 포병들의 사격 연습장으로 쓰였으며, 헤이그 특사 사건으로 고종의 퇴위를 강박할 때는 대포를 배치해 무력시위를 했던 곳이기도 하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뒤인 1907년 2월 통감부 건물이 들어섰으며, 경술국치 이후부터 1926년 일제가 경복궁을 가로막아 신청사를 세울 때까지 조선총독부 청사로 사용됐다. 악랄한 식민통치의 뇌수가 똬리 틀고 있었던, 우리 민족으로서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치욕의 현장인 것이다. 동시에 1921년 9월 12일 김익상 의사의 조선총독부 폭탄투척 사건이 일어났던 항쟁의 공간으로도 반드시 기억해야만 한다. 민족문제연구소는 2010년 8월 29일 국치 100년을 맞아 한일 시민사회의 뜻을 모아 ‘통감관저 터’라는 표석을 설치함으로써, 이곳이 역사의 현장임을 내외에 알린 바가 있다. 다행히 서울시도 미래세대가 오욕의 역사를 망각하지 않도록 남산 일대에 ‘국치의 길’을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성명] 역사교육을 정치화하려는 움직임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
[성명] [다운로드] 역사교육을 정치화하려는 움직임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 1. 박근혜 정부 시절에 진주교대 박용조 교수가 집필·연구 책임자 자격으로 개발한 《사회 6-1》 국정 교과서는 2016년 3월부터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박 교수는 언론을 통해, 문재인 정부의 교육부가 자신이 책임 개발한 국정 교과서의 내용을 ‘무단 수정’하였다고 비판하고, 자유한국당이 주관한 긴급 간담회까지 참석하여 대단한 피해자인 듯 돌출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박 교수의 주장에 맞서 교육부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수정했다”는 입장을 내 놓았다. 교육부가 교과서 무단 수정 의혹을 제기한 박용조 교수에 대해 법적 조치를 검토할 뜻을 밝혔으므로 진위여부는 향후 사법기관의 조사를 통해 밝혀지리라 본다. 2. 우리는 박용조 교수가 자신이 책임 개발한 사회 교과서 내용이 과연 헌법가치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박 교수가 책임 집필한 《사회 6-1》 교과서는 현장 적합도 검사를 위해 ‘실험본’ 형태로 2014년 2학기에 한 학기 동안 실제로 수업에 사용되었다. 당시 개발된 실험본 교과서는 2009교육과정과 헌법정신에 맞게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바르게 서술 되었다. 그러나 2016년 3월 발행한 최종본 교과서에서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뉴라이트가 주장하는 ‘대한민국 수립’으로 수정되었다. 3. 박근혜 정부는 중등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위해 2015년 9월 공고한 2015교육과정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강제하였다. 당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던 박근혜정부의 부당한 압력이 없었다면 과연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수정하였을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제2차 ‘야스쿠니무단합사 철폐소송’ 판결에 대한 성명] 도쿄지방재판소의 부당판결을 규탄한다.
[제2차 ‘야스쿠니무단합사 철폐소송’ 판결에 대한 성명] -도쿄지방재판소의 부당판결을 규탄한다. – 오늘 도쿄지방재판소는 일본 제국주의에 동원되어 태평양전쟁에서 사망한 한국인 군인, 군속의 유족들이 야스쿠니신사와 일본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무단합사철폐 소송에서 원고청구 기각판결을 했다. 우리는 일본 사법부의 부당한 판결을 강력히 규탄하며 분노를 금할 수 없다. 또한 해방 74년이 지난 오늘까지 일본 제국주의가 일으킨 전쟁에서 억울하게 죽어 간 희생자들이 침략신사 야스쿠니에 전쟁범죄자들과 함께 합사되어 있다는 사실을 용납할 수 없다. 1945년 8월 식민지 조선은 해방되었지만 일제에 의해 군인, 군속으로 끌려간 수 많은 조선인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끌려간 사람이 돌아오기 만을 기다리던 한국의 많은 유족들이 오늘날 까지도 가족의 생사에 대한 소식조차 듣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1959년 부터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신사는 한국의 유족들에게는 알리지도 않고 ‘식민지 조선인’들을 야스쿠니신사의 군신으로 합사해 왔다. 2006년 11월에 일본의 후생노동성은 1959년 부터 1976년까지 6차례에 걸쳐 무단으로 합사한 한국인 사망자가 2만1000여명이 넘는다고 밝혔다. 1990년대 말에 들어서야 야스쿠니신사의 무단합사 사실을 알게 된 한국의 유족들은 침략신사 야스쿠니에서 아버지, 남편, 오빠의 이름을 뺄 것을 요구하며 줄기차게 싸워왔다. 이번 판결은 2001년 6월의 재한군인군속 소송, 2007년 2월의 제1차 합사철회 소송에 이어 2013년 10월에 한국인 유족 27명이 합사철폐를 요구하며 제기한 제2차 소송에 대한 1심 판결이다. 일본의 침략전쟁에 아버지를 빼앗겨 아버지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한 번도 ‘아버지!’라고 불러보지 못한 원고들은 일본의 법정에서
[성명] EBS 김명중 사장은 적폐 인물의 부사장 임명을 철회하고 반민특위 다큐멘터리를 방영하라
EBS 김명중 사장은 적폐 인물의 부사장 임명을 철회하고 반민특위 다큐멘터리를 방영하라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민족사 정립과 친일 청산의 열기가 드높은 지금,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보편적 가치를 확산시켜야 할 책무를 지닌 교육방송에서 오히려 이에 역행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지난 촛불항쟁에서 시민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구호는, 3·1운동에서 주창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발현된 ‘민주공화’의 정신이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음을 웅변하였다.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공화정을 표방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20년 기관지인 〈독립신문〉에 ‘칠가살(七可殺)’을 공표한 데 이어, 1941년 〈건국강령〉에 ‘적에 부화한 자와 독립운동을 방해한 자는 선거와 피선거권이 없음’을 명기해 부역자들이 척결의 대상임을 분명히 했다. 이런 정신을 이어 받아 해방 후 제헌헌법 101조에서 악질적인 반민족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특별법 제정의 근거가 마련되었고, 그 결과 법률 제3호로 반민족행위처벌특별법이 제정되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출범했다. 이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천명한 친일파 청산의 대의를 실천에 옮긴 첫걸음이었다. 친일파에 대한 단죄는 독립한 나라가 거쳐야 할 선택의 여지없는 최소한의 과정이었으며, 전 민족적 지지를 받은 시대적 과제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은 친일경찰을 동원 반민특위를 와해시킴으로써, 민중의 열망을 배신하고 민족의 죄인이 되는 것은 물론 오랜 기간 우리 사회에 해독을 끼치는 단초를 제공하였다. 올해로 ‘반민특위 습격 사건’ 70년이 된다. 우리 현대사가 크게 어긋나는 변곡점이 된 역사적 사건이었지만, 정작 반민특위에 대한 일반의 관심은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우리 민족문제연구소는
[공동성명서] 미쓰비시중공업은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즉각 배상하라!
[공동성명서] 미쓰비시중공업은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즉각 배상하라! 오늘 대법원은 미쓰비시중공업에 강제동원되어 피폭 당한 피해자들이 2000.5.1. 부산지방법원에 제소한 손해배상소송과 10대의 어린 나이에 근로정신대로 동원돼 강제노동을 강요당한 피해자들이 2012.10.24. 광주지방법원에 제소한 소송에 대해 최종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당연한 결과다. 사람을 강제동원해 일을 시키고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힌 것에 대해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하는 것은 문명국의 상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식이 제소된 지 18년 6개월 만에 확인되었다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일본기업을 상대로 국내에서 최초로 제소한 피폭 원고 다섯 분 모두 이미 고인이 되었다. 특히, “일본에 가면 공부도 할 수 있고 학교에도 보내 준다.”는 말로 현혹해 10대 미성년 소녀들을 사지로 내 몬 근로정신대의 건은 중대한 전시 여성유린 사건이자, 반인도적 범죄다.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은 한국사회에서도 오랫동안 사회적 편견과 소외 속에 이중의 고통을 받아왔다는 점에서 그 고통을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부끄럽지만 이러한 원인 중 하나에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와 대법원의 ‘재판 거래’가 있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인권의 마지막 보루여야 할 사법부가 오히려 정권에 부화뇌동하여 3권 분립과 재판독립이라는 엄중한 헌법의 명령을 내던지고, 스스로 청와대를 위한 로비스트 역할을 자임하고 말았다. 해외에 파견하는 법관의 자리를 늘리는 것이 긴 세월 눈물로 기다려온 피해자들의 권리 구제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 강조하지만 재판 거래는 법치국가의 기본질서를 흔드는 국기문란 행위이자, 사법부 스스로 정권의 시녀노릇을 자처한
[성명] 대법원의 신일철주금주식회사에 대한 배상판결에 대한 성명
[대법원의 신일철주금주식회사에 대한 배상판결에 대한 성명] 1. 판결의 경과와 ‘사법농단’ 이번 판결은 1997년 12월 24일 이번 사건의 원고 가운데 고 신천수씨와 고 여운택씨가 일본의 오사카지방재판소에 제소한 다음, 일본의 대법원에 해당하는 최고재판소에서 2003년 10월 9일 패소한 후, 2005년 2월 28일 서울지방법에 제기한 소송에 대한 최종 판결이다. 일본 소송이 있은 지 21년, 한국 소송이 있은 지 13년 만에 최종 판결이 나온 것이다. 또한 해방이 되어 강제노동에서 풀려난 지 74년 만에 법적 판단을 받아보게 된 것이기도 하다. 그 동안 원고 가운데 많은 분들이 오늘을 기다리지 못하시고 돌아가셨다. 이 판결은 2012년 5월 24일 대법원이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하고, 이에 따라 2013년 7월 10일 서울고등법원이 원고들에게 일부 승소 판결한 것에 대하여 피고 회사인 신일철주금주식회사(新日鐵住金주식회사, 이하 ‘신일철주금’으로 약칭한다)가 상고한 것에 대하여 5년 여 만에 선고를 한 것이다. 이 판결은 이렇게 수년 간 재상고사건이 대법원에 계류된 동안 최근 전 박근혜대통령, 청와대 비서실, 외교부를 한편으로 하고 대법원장과 대법원 행정처를 다른 편으로 하여 재판에 불법으로 개입한, 이른바 ‘사법농단’, ‘불법 재판거래’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는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기도 하다. 2. 이번 판결의 의미와 미해결된 강제동원 문제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부는 2012년 대법원 판결을 그대로 수용하여 인정하였다. 이에 따라 2013년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이 확정되게 되어 최종적으로 원고 승소 판결이 나온 것이다, 다만 청구권협정에 의해
[성명] 남겨진 시간이 없습니다. 신일철주금은 즉시 피해자에게 보상하라!
[성명] 남겨진 시간이 없습니다. 신일철주금은 즉시 피해자에게 보상하라! 오늘 한국 대법원은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 중에 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에 강제연행, 강제노동을 당한 전 징용공 피해자가 제소한 사건에서 2012년 대법원 판결에 따라 피해자의 손해배상을 인정한 파기환송심 판결에 대해 신일철주금이 상고한 재판의 최종판단을 내렸습니다. 이번 재판은 식민지 지배 아래 일본 기업이 행한 강제노동(노예노동)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인정할 것인가, 또한 전 징용공 피해자의 인권회복을 법적 구제로 도모할 것인가, 즉 식민지지배로 침해된 개인의 존엄성을 회복할 것인가를 묻는 재판이었습니다. 이것은 1965년 체결된 한일조약 등의 양자협약에 의해 피해자의 인권이 침해되어도 되는가 하는 국제인권법에 따른 개인의 권리 문제를 묻는 중요한 재판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번 판결을 전면적으로 환영합니다. 신일철주금은 즉각 판결에 따라 원고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고, 제소하지 않은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구제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동시에 그 동안 한일협정으로 모두 해결되었다고 주장해온 일본 정부에 대해서는 판결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강제노동 문제의 전면적 해결을 위한 대책을 실시할 것을 강력히 촉구합니다. 그러나 너무 뒤늦은 판결입니다. 재판의 원고 가운데 여운택, 신천수 두 사람은 1997년에 일본 오사카지방재판소에 제소한 뒤 사법에 의한 정의가 실현되기를 기다렸지만 오늘의 판결을 받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원고인 여운택 씨는 “일본제철에서 일한 경험은 그것이 힘든 것이든 즐거운 것이든 내 삶의 일부이며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그 시기에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한 대가를 꼭 인정해 주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