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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안내] 심산 김창숙 서거 62주기 추모음악회 (5.10)

2024년 5월 7일 535

< 심산 김창숙 서거 62주기 추모음악회 바로가기>

[해피빈모금] 일제가 ‘제일 맹렬히 잡고자’ 했던 김단야

2024년 2월 15일 651

※ 해피빈 모금 참여 순종 승하를 계기로 ‘제2의 만세운동’ 계획 1926년 4월 25일 조선의 마지막 왕인 순종이 승하했습니다. 조선 500년 마지막 왕의 죽음을 맞아 애도 분위기가 확산됨은 물론 정의부·신민부 등 만주 독립군 부대가 국내로 진입할 것이라는 기사가 잇따르는 등 항일 분위기 역시 더욱 고조되었습니다. 1919년 3.1운동과 마찬가지로 독립운동가들은 순종의 장례에 맞춰 전국적인 만세운동을 기획합니다. 3.1운동이 민족대표 33인으로 상징되는 천도교, 기독교 세력이 앞장섰다면 이번에는 조선공산당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총독부는 3.1운동의 전례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1개 사단의 군대와 4천 명의 경찰을 동원하며 삼엄한 경계를 펼쳤습니다. 순종 승하 후 1주일 동안 경찰에 검속, 설유, 주의 등의 제재 조치를 받은 사람이 종로경찰서 관내에서만 29,497명에 달할 정도였습니다. 조선공산당, ‘민족운동의 선봉’에 나서 엄혹한 상황 속에서도 조선공산당은 ‘한국의 사회주의 운동은 민족운동의 선봉에 서야 한다’는 취지 아래 만세시위운동을 추진했습니다. 1926년 6월 10일 순종의 장례 당일 “장례 행렬이 지나가는 연도를 따라 요소요소에 시위대를 배치해두고, 선전 삐라를 살포하며 대한독립 만세를 고창”하는 것은 물론 만세운동 이후 비타협적 민족주의 세력과 연합해 민족통일전선 단체인 대한독립당을 조직한다는 복안이었습니다. 비록 일제의 극심한 탄압으로 당초 계획한 뜻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6.10만세운동 직후 도산 안창호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6.10만세운동 보고회’에서 6.10만세운동을 계승하여 “전민중의 중심이 될 통일기관”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6.10만세운동에서 드러난 민족통일전선의 이념과 노선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일제강점기 3대

[다큐] 《백년전쟁》과 백년전쟁 외전 《과거청산의 빌런들》 다시보기

2024년 3월 6일 4605

윤석열 정부와 수구 언론, 반공 기독교회가 영화 <건국전쟁> 흥행에 열을 올리는 가운데 민족문제연구소의 다큐 <백년전쟁>(2012년 11월 공개)이 다시금 시민들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백년전쟁>이 공개되자 대표적 유림계 친일파인 이명세(1893~1972)의 손녀 이인호는 2013년 3월 13일 청와대에서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근혜에게 “<백년전쟁>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때 일을 많이 왜곡해서 다루고 있다”며 “이런 역사 왜곡도 국가 안보 차원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고 이에 대해 박근혜는 “그런 일이 있었나요?”라고 일일이 메모하며 “잘 살펴보겠다”고 답했습니다. 이후에도 이인호는 <백년전쟁>과 민족문제연구소에 대해 “이건 완전히 국가에 대한 도전행위”라고 말했습니다. 2013년 5월 이승만의 양자인 이인수 등 유족이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과 <백년전쟁> 제작자 2인을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검찰은 기소조차 하지 않은 채 담당 검사가 바뀔 때마다 똑같은 조사를 반복하더니 4년 6개월 지난 후에야 이승만 유족들이 문제를 제기한 대부분을 혐의없음 처분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백년전쟁> 후속편 제작은 어렵게 되고 말았습니다. 다만 검찰은 이승만이 1920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맨법(Mann Act·성매매나 음란행위 등 부도덕한 목적으로 여성과 함께 주 경계를 넘는 행위를 처벌하던 법)’을 위반해 체포·기소됐다는 부분만 허위 사실이라며 제작자 2인을 재판에 넘겼습니다. 하지만 2018년 8월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 무죄에 이어 2019년 6월 2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고 검찰은 대법원 상고를 포기했습니다. 이로써 <백년전쟁>을 빌미로 연구소를 공격했던 수구반공세력과 벌인 6년 간의 소송을 승리로 마감하였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창립

[카드뉴스] 영화 ‘건국전쟁’ 팩트체크⑤ 여성 투표권은 이승만이 준 선물이다?

2024년 4월 3일 3319

※관련 카드뉴스 ☞카드뉴스: 영화 ‘건국전쟁’ 팩트체크④ 한강 인도교 폭파, 민간인 희생자는 없었다? ☞카드뉴스: 영화 ‘건국전쟁’ 팩트체크③ 김구는 북한이 남침할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이승만을 도와주지 않았다? ☞카드뉴스: 영화 ‘건국전쟁’ 팩트체크② 제주4.3은 ‘북한과 소련의 지령받은 남로당의 기획’이었다? ☞카드뉴스: 영화 ‘건국전쟁’ 팩트체크① 이승만 정부는 독립운동가 중심이었다?!

[알림] 제64주년 4·19혁명 이승만기념관 반대 기자회견 (4.19)

2024년 4월 18일 726

[성명]  윤석열 정부는 혁명열사들의 피로 헌법에 새긴 ‘4.19민주이념’을 욕보이지 마라 1960년 2월 28일 대구를 시작으로 3월 8일 대전, 3월 15일 마산 그리고 드디어 4월 19일 민주혁명을 통해 우리 국민은 이승만 독재를 몰아냈다. 역대 정부는 4·19혁명에 이르는 일련의 민주화운동 모두를 각각 2.28민주운동, 3.8민주의거, 3.15의거로 격상시켜 국가기념일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와 여당은 헌법에도 명시된 ‘4.19민주이념’ 대신 이승만 띄우기에만 골몰하고 있다. 이같은 행태의 시작은 작년 3.1절 기념식 행사장 배경에 장식된 독립운동가들 중에 이승만이 빠졌다는 이유를 들어 윤석열 대통령이 관련자를 크게 질책한 직후부터였다. 대통령의 질책 이후 박민식 당시 국가보훈부 장관은 “이승만 대통령의 한평생은 누구도 쉽게 걸을 수 없고 아무도 감히 폄훼할 수 없는 고난과 역경, 그리고 참된 지도자의 시간”이라고 말했고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도 “이승만 정부의 농지개혁이야말로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오게 된 가장 결정적인 장면”이라고 거들었다. 급기야 윤석열 대통령이 이승만기념관 건립에 500만원을 기부하자 오세훈 서울시장은 당초 약속을 어기고 난데없이 “송현녹지광장 부지에 이승만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100년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와 북악산과 인왕산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송현공원을 또 다시 서울시민들이 빼앗길 처지에 놓인 것이다. 그동안 이승만 정권에 의한 국가폭력 희생자 단체 등 시민사회와 불교계 등 종교계 그리고 역사학계와 독립운동 유관단체 심지어 미주 동포들까지 1년 넘게 이승만기념관을 비롯한 역사왜곡과 헌법부정행위 중단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목소리는

[작품] 김주열 열사 그래피티 – 피다(제공 : 레오다브)

2024년 3월 20일 324

<작품 설명> 피다 김주열 열사의 아름다운 꽃이 오늘도 피었다. 작가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한 거룩한 희생과 열기, 그리고 그 희생과 열정으로 피어난 아름다운 민주주의가 더럽히지 않고 영원하길 소망한다. 제공 : 레오다브(leodav.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