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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친일인명사전 구매약정하기

2008년 7월 23일 461

오른쪽상단의x표왼쪽의네모표시를한번더클릭하신후”구매약정하기”를      오른쪽 상단의 x표 왼쪽의 네모표시를 한번 더 클릭하신 후 "구매약정하기"를클릭하시면 전용 보안조치가 적용된 사전구매약정 전용 웹페이지로 바로 연결됩니다.

[흥사단 금요강좌] 역사를 잃은 시대, 투사적 생애를 읽다 – 투사와 신사 안창호

2013년 5월 23일 1137

[흥사단 창립100주년 기념 금요강좌] 2013.05.31(금) 저녁 7시. 무료 역사를 잃은 시대, 도산의 투사적 생애를 읽는다 – 『투사와 신사 안창호 평전』 저자 김삼웅 선생 특별 강좌 –     도산 안창호 선생은 독립운동가 중에서 가장 폭넓고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그래서 그 진면목을 제대로 살피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직도 일부분의 모습으로만 인식되어 지거나 왜곡된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합니다.    이에 도산 서거 75주기, 흥사단 창립 100주년을 맞아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독립운동의 정통이고 독립운동사의 정맥’으로서의 도산 안창호 선생을 그린 『투사와 신사 안창호 평전』을 펴냈습니다. 기존에 접했던 모습과는 다른 새로운 모습의 도산 선생을 만나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자 김삼웅 선생이 전하는 도산 선생의 위대한 얼과 혁명적 생애를 함께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 강좌명 : 역사를 잃은 시대, 도산의 투사적 생애를 읽는다 ● 강 사  : 김삼웅 (『투사와 신사 안창호 평전』 저자)             * 강사 소개 : 《대한매일신보》 주필을 거쳐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                문화론을 가르쳤고, 독립기념관 관장을 역임했다.‘인간 냄새나는                우리 현대사 인물들의 삶’을 전하고자 『백범 김구 평전』,               『단재 신채호 평전』,『장준하 평전』, 『김대중 평전』 등 20여                편의 평전을 집필했다.● 일 시  :

2008년도 몽양 서거61주기 추모제, 몽양 학술회의

2008년 7월 7일 742

2008년 몽양 선생 서거 61주기를 맞이하여 사단법인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에서는 추모제 및 학술대회를 아래와 같이 개최하고자 하오니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부탁드립니다.   — 아 래 —  < 행 사 개 요>     ■ 행사명: 서거61주기 추모제 및 “몽양 여운형과 평화통일”학술대회     ■ 일  시 : 2008년 7월 19일(토)   <추 모 제> 오전 10:00∼11:30(중식제공/대절버스이동)   <학술대회> 오후 14:00∼17:00     ■ 장  소 : <추 모 제> 우이동 묘소(서라벌중학교 입구)   <학술대회> 독립관 강당(서대문)         (사)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안내] ‘100페스티벌 2013’ 근현대사100년을 만나다

2013년 5월 22일 1051

▲ 보도자료 body,table,td,input,select,textarea{font-family : verdana,굴림;font-size :9pt;line-height : 140%;}img{border : 0;}A:link {text-decoration:none; color:black;}A:visited {text-decoration:none; color:black;}A:hover { text-decoration:none; color:#3E8FFC;}P{margin-top:2px;margin-bottom:2px;}

줄잇는 구독신청에 감사드립니다

2008년 7월 7일 1009

민족문제연구소가 경향신문과 함께 ‘일제강점기 민중생활역사관 건립 희망릴레이’를 시작한 이래 약 20여 분의 회원, 시민 여러분께서 경향신문 구독을 신청해주셨습니다.   경향신문과 함께 하는 ‘희망릴레이’는 말그대로 우리 모두의 미래에 대한 희망, 올곧은 언론 북돋우기를 위한 우리의 희망이 한데 어우러져 바람직한 미래상과 사회상을 이끌어내자는 데 그 참 뜻이 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경향신문의 이러한 뜻에 기꺼이 동참해주시고 전화, 이메일, 게시판 등을 통해 신문 구독을 신청해주신 모든 분들께 엎드려 감사드립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경향신문은 ‘희망릴레이’를 통해 좀더 많은 분들의 뜻을 모으고 민중생활역사관 건립에 보탬이 될 보다 튼튼한 토대를 만들기 위해 더욱더 혼신의 힘을 다해 뛰고 또 뛰겠습니다.   신문 구독을 신청해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백년전쟁”관련 기자회견 자료집 : 쟁점1 미국 박사학위 취득과 관련해

2013년 5월 9일 2908

 쟁점1 미국 박사학위 취득과 관련해 ▲ 생명의 길, 이승만포럼 등의 주장 → <백년전쟁>은 이승만의 박사학위 취득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악의적으로 묘사했다. 이승만의 박사학위가 엉터리인 것처럼 묘사하는데 이승만박사의 논문은 프린스턴대학에서 출판되었고, 저명한 학자가 여러 번 인용할 만큼 가치 있다. ▲ 민족문제연구소 반론 → 불법적이지는 않지만 불과 5년 5개월 단기간에 미국 유수의 대학 석·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서는 누구든지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누구나 의아해 한 부분으로, <백년전쟁>은 이 대목을 이승만에 대한 미국 개신교계의 전폭적 지원과 자신의 집요한 노력이 결합한 것으로 설명했다. 목적을 향한 놀라운 집념이 학위 취득과정에서도 확인된다는 의미였다. 논문 내용은 다루지 않았으므로 논문의 수준은 다큐와 무관한 지적이다.   <백년전쟁>은 이승만이라는 인물이 일약 독립운동의 지도자로 부각되고 미주 한인 또는 미국인들에게 강력한 인물로 인식될 수 있었던 가장 주요한 요인이 최초로 미국(프린스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실에 있다고 보고 이를 주목했다. 지금까지도 기성세대 다수가 이승만을 ‘이박사’라 지칭할 정도로 미국박사라는 이미지는 그의 신화를 떠받드는 한 축이었다. 이 때문에 백년전쟁은 이승만 신화의 출발점이 된 박사학위 취득 과정을 분석하게 되었다. 이승만 측은 1) 미국은 박사학위를 따려는 사람에게 석사과정에 대한 강제가 거의 없음에도 <백년전쟁>이 석사학위도 없이 박사학위에 도전한 이승만을 마치 불법적으로 취득한 것처럼 악의적으로 해석하고, 2)이승만의 박사학위 논문은 프린스턴에서 상업 출판되었으며, 60년이 지나서도 세계적 석학이 인용했던 훌륭한

후원 계좌 안내

2008년 7월 3일 757

홈페이지가 정상화되기 전까지 연구소를 후원해주시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계좌를 이용하는 방법이 유일합니다.   연구소를 성원해주시는 많은 분들의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 후원해주실 계좌   국민은행: 010901-04-036092(예금주: (사)민족문제연구소) 농협: 031-01-436086(예금주: (사)민족문제연구소)

“백년전쟁”관련 기자회견 자료집 : 쟁점2 이승만이 일제의 고문 후유증을 겪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는 문제

2013년 5월 9일 1980

 쟁점2 이승만이 일제의 고문 후유증을 겪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는 문제 ▲ 생명의 길, 이승만포럼 등의 주장 → 이승만은 미국 명문대학 박사학위 취득자이자 젊은 혁명가로서 이미 존경받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자신을 미화하기 위해 일제의 고문을 받았다고 거짓말을 할 이유가 전혀 없으며, 그런 적도 없다. ▲ 민족문제연구소 반론 → 이승만이 불굴의 독립운동가로서 미주 한인에게 강한 인상을 준 요인 가운데 하나가 당시 한인사회에 떠돌았던 ‘일제에 의한 감옥 후유증’이었으며, 이승만 또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는 것이 당시 이승만을 만났던 다수 미주 한인들의 증언을 통해서 확인된다.   이승만 측은 이승만이 대한제국 시기 감옥에 갇혀 손가락 살점이 뜯기고 뼈가 드러나는 고문을 당하고 7개월 동안 목에 칼을 쓴 채 지내기도 했기 때문에, 손을 불거나 안면 근육을 떠는 후유증을 앓았다고 한다. 또 이승만은 미국 명문대학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의 개혁을 위해 투쟁한 젊은 혁명가로서 하와이 한인들의 존경을 받았기 때문에 구태여 자신을 미화하기 위해 일본감옥에 있었다고 거짓말로 포장할 이유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백년전쟁>은 ‘미국박사’와 함께 이승만 신화를 떠받드는 또 하나의 근거가 그가 일제에 의해 고문 투옥 당한 불굴의 독립투사라는 이미지에 있다고 보았다. 지금도 1) 이승만의 감옥 생활을 일제에 의한 투옥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으며, 2) 실제 이승만 스스로 ‘일본 감옥에서 고문을 받아 손이 시리다’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기 때문이다. ‘미필적 고의’든 아니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