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요기사
민족사랑 2025년 3월호
[바로보기]
[오마이뉴스] 함세웅 신부의 ‘멍에와 십자가’
[광복80주년명문80선 77] 함세웅은 2000년대 이후에도 민주와 정의의 한길을 걷고 있다. 우리나라 70~80년대 민주화운동에 천주교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특히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사제단)이 그 중심에 있었다. 함세웅 신부도 그 중의 한 분이다. 1942년 서울에 태어나 가톨릭대학에 입학했으며 로마에 유학, 사제 서품을 받았다. 용암동성당 주임사제를 거쳐 가톨릭대학에서 교부학을 가르쳤다. 1974년 ‘사제단’의 결성을 주도하고, 재야연대조직인 민주회복국민회의 대변인으로 맹활약했다. 두 차례의 투옥에도 굴하지 않고 유신독재에 맞섰다. 그의 투쟁은 5공 독재 시절에도 의연히 이어졌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은폐된 진실을 폭로함으로써 6월 항쟁을 이끌어냈고, 1980년대 말에는 <평화신문>과 <평화방송> 대표로서 시대정신을 담은 새로운 화두를 한국사회에 제시했다. 함세웅은 2000년대 이후에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민족문제연구소 등을 이끌면서 민주와 정의의 한길을 걷고 있다. 그는 <고난의 땅 거룩한 땅>, <약자의 벗, 약자의 하느님>, <칼을 주러 오신 예수> 등 강론집과 사회비판적 기능을 담은 <멍에와 십자가>, 신앙인의 자기성찰을 담은 <심장에 남는 사람들> 등 책을 지었다. ‘천주교의 민족사적 반성과 신학적 성찰’ <멍에와 십자가>에는 통절한 내용이 담긴다. 그 중에서 ‘한국 천주교회에 대한 민족사적 반성과 신학적 성찰’이란 논설이다. 천주교 신부의 위치에서 이런 글을 쓴다는 게 보통 용기와 식견이 없이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집단에서 자체의 비판이 당장은 아픔이지만 길게는 그만큼 건강성을 유지하게 된다. 이 논설은 1. 역사적 성찰. 2. 현실적 반성 – 철저한 회개, 철저한 믿음. 3. 미청산의
[오마이뉴스] ‘몸뻬’ 입어야 미인이라는 친일파의 참회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채만식 <탁류>와 <레디메이드 인생>의 작가인 채만식(1902~1950)은 한국인들에게 꽤 익숙한 문인으로 전북 군산에서는 훨씬 친숙한 인물이다. 이곳에는 채만식문학관이 있고 채만식문학상도 존재한다. 지역사회에 든든한 기반을 가진 이 문인을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2005~2009)는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했다. 위원회는 그의 친일을 소설 창작을 통한 징병제·지원병제·내선일체·황민화·대동아공영권·침략전쟁 및 후방지원 필요성의 선전, 보도특별정신대·국민총력조선연맹 등에 대한 가담, 산문 형식의 글을 통한 국책문학론 선전 등으로 분류했다. 위원회가 발간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 제4-17권 채만식 편은 “1942년의 만주국 간도성 조선인 개척촌 시찰과 그 결과로 <매일신보> <반도지광> 등에 발표한 ‘간도행’, ‘농산물 출하(공출) 기타’ 등의 산문을 통해 만주 개척지 선전 및 그에 따른 대동아공영권 건설을 획책”했다고 보고했다. 한반도 안의 한국인을 일본과 연결시키는 일뿐 아니라, 문필 활동의 영역을 만주로도 넓혀 두 그룹과 만주 진출 한국인들을 한 데 묶는 작업도 했다. 죽기 2년 전에 그는 참회의 글을 발표했다. 국회에서 반민족행위처벌법이 통과된 직후에 발간된 <백민> 1948년 10월호부터 이듬해 1월호까지에 <민족의 죄인>을 발표했다. 전직 국어교사인 장호철의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은 “그는 이 소설을 통해서 자신이 친일을 하게 된 것은 ‘비겁하거나 경제적인 이유’였다는 뉘앙스를 드러낸다”라며 <민족의 죄인>의 해당 부분을 소개한다. “복종이 싫고 용기가 있는 사람은 외국으로 달리어 민족해방의 투쟁을 하였다. 더 용맹한 사람들은 외국으로 망명도 않고 지하로 숨어 다니면서 꾸준히 투쟁을 하였다. 용맹하지도 못한 동시에 영리하지도 못한 나는 결국
[오마이뉴스] ‘부천항일운동기념비’ 시민모금으로 제작해 안중근공원에 세우다
광복80주년을 맞이하여 부천의 3.1운동이 일어난 3월 24일 제막식 거행 3월 24일 월요일 오전10시 안중근공원에서 ‘부천항일운동기념비’ 건립 제막식이 진행되었다. 지난 2024년 6월부터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아래 부천지부)와 부천시민연합은 추진위를 구성하여 시민모금으로 기념비를 제작했으며, 부천의 3.1운동이 일어난 3월 24일에 맞춰 기념비 제막식을 진행한 것이다. 두 단체는 대일항쟁기 부천에 3대 항일운동이 있었음에도 이를 기념하고 알려주는 기념비가 없음을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고 시민들이 자랑스러운 항일운동의 역사를 알 수 있도록 기념비를 제작했다. 제막식에는 두 단체 회원 뿐만 아니라 조용익 부천시장, 김병전 부천시의회의장, 정인조 전 부천희망재단 이사장, 이재영 경기도의원, 황진희 경기도의원, 이종문 시의원, 김선화 시의원, 김명원 전 경기도의원, 백창환 민족문제연구소 고양파주지부장 등 많은 내외빈들이 참석했다. 제막식에 이어 기념식은 민중의례를 시작으로 내빈소개, 부천항일운동사 보고, 추진경과보고, 기념사, 축사, 기념비 설명, 비문낭독, 축하공연 등으로 진행되었다. 양경직 계남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은 우리 부천의 항일운동은 총 3건으로 1919년 3월 24일 일어난 ‘소사독립만세운동’, 1927년 9월 24일 일어난 ‘소사역하역노동자동맹파업’, 1927년 10월 28일 일어난 ‘부평수리조합반대운동’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부천 관내에는 이러한 역사가 시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부천항일운동기념비’를 통해 많은 시민들이 알 수 있도록 하는 계기를 만든 것이 큰 의의라고 말했다. 김병구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 운영위원장은 추진경과보고를 했다. 작년 6월 김병구 운영위원장이 시민모금으로 ‘부천 3.1만세운동 기념비’를 건립할 것을 제안했으며, 이를 계기로 부천지부와 부천시민연합이 추진위를 구성하여 사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사업 추진 중에 김명원
[역발상 시즌4] 광복 80주년 기념, 해방·분단·통일의 노래 1부 – 해방의 노래 1
☞ (25.03.18) ‘역발상’ 시즌 4: 광복 80주년 기념, 해방·분단·통일의 노래 1부 “해방의 노래 1(비대중가요)” 출연:이준희,이영미 오늘 이야기 : 해방의 노래 1.구 애국가 스코틀랜드 노래 ‘Auld Lang Syne’ 곡조에 ‘애국가’ 가사를 붙인 곡. 대한제국 시기부터 널리 불렸고, 안익태 작곡 신 애국가가 보급되기 전까지 사실상 국가 역할을 했던 노래. 1945년 해방 당시에도 가장 많이 불린 곡이었으며, 1945년 10월 ‘조선애국가요집’에 첫 곡으로 수록된 것은 물론, 1947년 8월 첫 번째 ‘국산’ 음반에도 신’애국가’와 함께 수록. 송진혁·예술대학음악부합창단 노래. 2.해방의 노래 임화 작사(?), 김순남 작곡. 1945년 12월 ‘예술운동’ 수록. ‘해방가요’를 가장 많이 작곡한 김순남의 대표작. 1946년 8월 재일본조선인연맹 유관 음반회사 리베라레코드에서 장비의 노래로 음반 발매. 김순남의 작품이 당대에 녹음된 것은 리베라레코드 발매 네 곡뿐. 녹음 과정에서 편곡 등에 김순남의 관여가 있었는지는 불분명. ‘예술운동’과 음반에는 작사자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는데, 임화의 창작 가사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인 듯. 1922년 오오바 이사무(大場勇)가 지은 ‘メーデー歌’ 가사의 번안(표절?)이라 보는 것이 중론. 가사는 번안이지만 곡은 김순남의 창작. 김순남은 1948년 월북. 가사 첫 대목을 따서 ‘聞け万国の労働者’로도 불리는 ‘メーデー歌’의 곡조는 1899년에 발표된 일본 군가 ‘小楠公’. 민족음악연구회 노래(1990년 ‘백두산’ 수록). 3.독립 행진곡 박태원 작사, 김성태 작곡. 1945년 10월 3일 ‘예술통신’ 수록. 박태원은 1950년 월북. 일본 군국가요 ‘滿洲行進曲’과 유사하다는 얘기가 있는데, 왜 그러는지 알
[오마이뉴스] 습관성 탄핵이라고? 100년 전 이승만 탄핵을 위해 분투한 독립투사들이 있다
아주 긴 일주일을 보내고 있다. 많은 이들의 전망처럼 만약 이번 주 대통령 윤석열이 파면된다면 ‘역사는 반복된다’는 격언을 실로 믿지 않을 수 없겠다. 100년 전인 1925년 3월 23일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은 이승만 대통령 면직안을 통과시켰으니 말이다. 박정희조차 ‘눈이 어두운 독재자’라며 손절했던 이승만에 대해 윤석열은 이승만기념관에 성금을 내는가 하면, 3.1절 기념식장에 이승만 사진이 없다고 질책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제 윤석열은 자신이 그토록 존경한 이승만과 같은 처지가 될 것이라 .다 국힘은 야당에 대해 ‘습관성 탄핵’, ‘줄탄핵’, ‘탄핵 남발’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1919년 9월 임시대통령 이승만 선출 당시부터 1925년 3월까지 5년 6개월 동안 줄기차게 이승만 탄핵을 위해 노력한 독립운동가들에게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100년 전 이승만 탄핵을 위한 분투를 되새겨 봄으로써 100년 후 지금 윤석열 파면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헌신에 조금이나마 위로를 드리고자 한다. 신채호 “이승만은 생기지도 않은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사람” 이승만 탄핵을 가장 먼저 제기한 이는 단재 신채호였다. 신채호는 3.1운동 직전 이승만이 위임통치를 주장한 사실을 듣고 “이승만은 이완용보다 더 큰 역적이다.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이승만은 생기지도 않은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사람”이라면서 1919년 4월 10일~11일 열린 임시의정원 회의에서도 ‘이승만은 위임통치 및 자치문제를 제창하던 자’이니 믿을 수 없다고 하였다. ‘절대 독립’을 주장했던 이동휘 역시 이승만을 ‘썩은 대가리’라고 부르며 위임통치 청원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결국 1919년 9월 11일 이승만이 임시대통령으로
[강좌_경향신문] 12·3 이후, 쟁점으로 보는 ‘2025 현재사’
1945~2025. 해방 80주년 기획 <12·3 이후, 쟁점으로 보는 ‘2025 현재사’> 강좌 3월 27일(1강) 신청 모집중 1강 3월 27일(목) 12·3과 ‘지금 여기’ 민주주의 (강성현, 김정인, 신진욱) 2강 4월 24일(목) 민주공화제의 탄생, 1919년? 1948년?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 3강 5월 22일(목) 5·18, ‘탈진실’을 넘어 ‘보편 기억’으로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 4강 6월 26일(목) 한·일협정 60년, 미완의 과거청산과 한·일 관계 (김민철 경희대 교수) 5강 7월 24일(목) 박정희에 던지는 질문, 경제개발과 민주주의 (박태균 서울대 교수) 6강 8월 28일(목) ‘친일’, ‘반공’의 계보와 상호연관성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 7강 10월 23일(목) 남북관계의 어제와 오늘, 한반도의 미래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 8강 11월 27일(목) 복합위기 속 한국 민주주의의 전망과 과제(신진욱 중앙대 교수) * 일정 및 강사는 변동 가능성이 있습니다. ■ 매월 강의 전 1강좌씩 신청 받습니다. < 1회 강의 > 일시: 3월 27일 오후 7시-9시 / 수강료: 1강당 1만5000원 현장· 줌 라이브 동시 진행. 현장강의 장소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강의실) 문의, 신청: 후마니타스연구소 (02)3701-1046/1047, https://humanitas.khan.co.kr
[보도자료] 역사정의 짓밟은 윤석열을 파면한다!
☞ 다운로드: [보도자료] o 평화의 인사를 전합니다. o 윤석열 정부는 2018년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 판결을 받은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배상금’을 대신하여 ‘판결금’을 지급하는 이른바 ‘제3자 변제안’을 발표하여 피해자의 인권을 짓밟았습니다. 또한, 항일 독립운동의 가치를 훼손하고 대일 굴욕외교를 지속하였으며, 역사 관련 주요 기관장에 뉴라이트 인사를 다수 임명하여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되돌리는 폭거를 저질렀습니다. o 역사정의를 거스르는 정부, 헌법을 위반한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은 당장 파면되어야 합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역사 정의에 반하고, 헌법을 위반한 폭거를 저지른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의 신속한 파면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합니다. o 일시: 2025년 3월 13일(목) 11:30 o 장소: 광화문 서십자각 농성장 앞(경복궁역 4번 출구) o 주최: 민족문제연구소 o 문의: 김영환 대외협력실장(010-8402-1718) * 시국선언문은 당일 현장에서 배포합니다. [민족문제연구소 시국선언] 역사정의 짓밟은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의 파면을 선언한다! 친일청산과 역사정의 실현, 분단의 극복을 위해 노력해온 우리는 오늘 역사의 이름으로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의 파면을 선언한다! 우리는 내란 우두머리가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망상을 버리지 못하는 참담한 현실을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역사의 이름으로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조속한 법의 심판을 촉구한다. 지난 12월 3일 윤석열이 주도한 친위쿠데타는 실패했지만, 윤석열은 집권 기간 내내 ‘역사쿠데타’를 자행했다. 홍범도 장군의 흉상 이전 문제,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을 비롯한 친일뉴라이트 역사기관장 임명, 국방부/육사의 친일역사교재 논란, 이승만/박정희의 우상화 시도, 뉴라이트 교과서 채택문제, 박선영
[오마이뉴스] “역사정의 바로 세우는 일, 내란세력청산 출발점 돼야”
[현장] 윤석열 정권의 ‘친일 역사 쿠데타’ 진단과 극복 방안, 국회 토론회 열려 6일 오후 1시 30분, 국회의원회관 제7간담회실에서 ‘윤석열 정권의 친일 역사 쿠데타 진단과 극복 방안’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시민단체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과 여러 야당 국회의원들의 주관으로 열린 이날 토론회엔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도 참석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약속하고 이행치 않은 윤석열 정부를 비판했다. 윤석열 정권은 일본 정부와 일본 극우의 입장만 반영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극우의 진앙지, 일본군’위안부’ 문제 : 현황과 대응 과제’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일본군’위안부’ 문제 관련 윤석열 정권은 피해자 무시 전략과 비의제화 전략 하에 전적으로 일본 정부와 일본 극우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면서 “일본 정부의 역사부정과 지속적 공격, 극우 역사부정 세력의 확장과 한미일 연대가 진행됐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에대한 대응방안으로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ㆍ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 개정 ▲’2015 한일합의’의 무효 천명, ▲’위안부’ 피해자 승소판결 확인 ▲역사부정론 금지하는 포괄적 법안 마련 ▲국제사회에 인식된 반인도적 범죄행위 강조 ▲국회 차원의 소녀상 설치 추진 등을 제안했다. 길윤형 <한겨레> 논설위원은 ‘한-일 양국판 아베 담화’ 꿈꾼 윤 정부’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19세기와 같은 다극화된 제국주의 질서가 도래하고 있는 상황에서 변화된 국제관계의 현실을 인식한 합리적 접근이 필요하다”라며 “한·일 파트너십 선언과 아베 담화를 넘어 ‘새 균형’을 추구하면서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의 협력을 끌어내야 한다”라고 말했다. 호사카
[오마이뉴스] 조문기의 ‘슬픈 조국의 노래’
[광복80주년명문80선 61] 사회적으로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해방 후 독립운동가들이 대부분 간난신고를 겪은 것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해방 직전인 1945년 7월 24일 서울 부민관에서 대의당 주최로 조선총독, 정부총감, 군사령관 등 일제 침략의 원흉들과 박춘금을 비롯한 친일 수괴들의 비밀회합이 준비되었다. 이들을 한방에 날려버리고자 은밀히 준비했던 애국지사들의 거사가 ‘부민관 폭파사건’이다. 이 사건의 주역 조문기는 1926년 경기 화성 출신으로 1942년 일본강관 주식회사의 파업을 주도하여 지명수배를 받고, 1945년 대한애국당을 결성하고, 부민관 폭파 의거를 주도했다. 해방 후 1948년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여 옥고를 치뤘다. 그는 1951년 <황금자>, <수도>등에서 극단활동을 하고, 1959년 이승만 암살, 정부전복음모라는 조작사건으로 투옥되었으나 무고로 밝혀지고, 1982년 건국포상을 받았다. 1985년 광복회 경기도 지부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1999년 민족문제연구소 2대 이사장, 2001년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 이사장 등을 지냈다. 2005년 3월 유지호·권남경이 정리한 <슬픈 조국의 노래>라는 회고록을 펴내었다. 독립운동 진영을 비롯 사회적으로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책의 ‘서문’이다. 서문 해마다 되풀이 되는 일이지만 광복절은 광복회원들이 기다리는 잔칫날이다. 대접받는 날, 민족해방을 경축하는 날, 얼마나 가슴 벅차고 설레는 날인가? 하지만 알고 보면 거짓 환상이고 위선으로 가득 찬 날이다. 그래서 나는 안 간다. 그날이 되면 나는 산으로 바다로 경축의 냄새가 안 나는 곳으로, 펄럭이는 태극기가 안 보이는 곳으로, 경축 현수막이 안 보이는 곳을 찾아 피신을 간다. 내가 생각해도 유별난 게 분명하지만 거기에는 분명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