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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한겨레] 청년 김대중의 정신을 잇는 청년들

2022년 4월 12일 781

[함세웅의 붓으로 쓰는 역사 기도] (28) 청년 김대중 이대선 황희두 박영훈 등 청년들 김대중의 민주·인권·평화 철학을 2030 청년들에게 알리기 위해 ‘청년 김대중’ 만들어 활발히 활동 “저는 하느님의 제단으로 제 기쁨과 즐거움이신 하느님께 나아가오리다. 하느님, 저의 하느님, 비파 타며 주님을 찬양하오리다.” (시편 43,4) “젊은이야, 네 젊은 시절에 즐기고 젊음의 날에 네 마음이 너를 기뻐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네 마음이 원하는 길을 걷고 네 눈이 이끄는 대로 가거라. 다만 이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너를 심판으로 부르심을 알아라. 네 마음에서 근심을 떨쳐버리고 네 몸에서 고통을 흘려버려라. 젊음도 청춘도 허무일 뿐이다.” (코헬렛 11,9-10) 성경도 이토록 청춘을 예찬합니다. 또한 청춘을 노래하고, 청춘을 만끽하라고 가르칩니다. 젊음은 그 자체로 은총과 축복, 충만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창작과 발명, 운동 등 모든 영역의 신기록은 청년 시기의 결실입니다. 청년은 만발한 꽃의 시기, 그 이후는 열매 맺고 익어 가는 시기입니다. 이는 모든 것을 오직 하느님께 봉헌하고 의탁하라는 성경의 교훈입니다. 1977년 1월, 미국의 39대 대통령 지미 카터는 대통령 취임사 말미에서 자신의 청소년 시절 조지아주 작은 예배당에서의 체험을 얘기합니다. 그날 전도사가 가르쳐 준 성서 말씀을 인용하며 전 세계인에게 호소한 것입니다.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이고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분께서 너에게 이미 말씀하셨다. 공정을 실천하고 신의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느님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냐?”

[YTN] 당신은 몰랐을 ‘임시정부’ 비하인드, 베토벤 가곡이 임시정부에서 불렸다?

2022년 4월 12일 694

YTN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일시 : 2022년 4월 11일 (월요일) □ 진행 : 이현웅 아나운서 □ 출연 :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현웅 아나운서(이하 이현웅):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2부, 시작했습니다. 4월 11일, 103년 전 오늘, 중국 상하이에 모인 독립운동가들은 헌법을 제정, 발표하고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해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했습니다. 4월 11일, 바로 오늘은 <임시정부 수립일>입니다. 오늘은 <당신은 몰랐을 임시정부 비하인드 히스토리 5가지>란 주제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기획실장 함께 합니다. 어서 오세요?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이하 방학진): 안녕하세요. ◇ 이현웅: 임시정부 수립일 이거 모르고 지나가시는 분들도 상당히 많으실 것 같아요. ◆ 방학진: 네, 공무원들도 잘 모르더라고요. ◇ 이현웅: 이게 날짜가 좀 바뀌었잖아요. ◆ 방학진: 원래는 4월 11일로 알고 있었는데 학계에서 연구가 지속되면서 4월 11일로 확정이 됐죠. ◇ 이현웅: 13일로 원래 기념을 해 오다가 2019년부터 4월 11일로 기념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당신은 몰랐을 임시 정부 비하인드 히스토리 5가지라는 주제인데 저도 한번 쭉 살펴봤거든요. 정말 다 몰랐더라고요. ◆ 방학진: 학교에서는 잘 안 가르치죠. ◇ 이현웅: 일단은 지금 노래가 하나 나오고 있어요. 먼저 들어보시죠. 아마 목소리는 익숙하신 분들이 많으실 것 같아요. 파바로티 목소리인데 이게 왜 임시 정부랑

[오마이뉴스] 일본군 군영 터로 들어가는 대통령 집무실

2022년 4월 12일 1055

[김종성의 히,스토리] 용산이라는 땅의 역사적 의미 서울 용산 국방부 자리가 대통령 관저로 적절하지 않다는 이의 제기들이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용산 이전을 공식화한 직후인 3월 22일에는 용산구 향토사학자인 김천수씨의 연구 결과가 언론에 소개됐다. 그날 발행된 <한겨레> 기사 ‘윤석열이 찜한 용산 언덕, 원래 공동묘지였다’는 “국방부 부지 자락 언덕은 사방이 무덤 자리”였다고 보도했다. 일본이 군사기지를 조성하면서 공동묘지를 없애버린 지역에 대통령 관저가 들어가게 됐다는 것이다. 국방부 자리는 총독관저 터와 500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이에 대한 황평우 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과 이순우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의 이의제기도 있었다. 4월 8일 자 <한겨레 21> ‘일제 총독관저만 찾아다니는 한국 대통령실’은 윤 당선자의 집무실 이전은 나중에 지어진 총독관저 터(지금의 청와대)에서 먼저 지어진 총독관저 터의 인근(지금의 국방부)으로 옮겨가는 식이라면서 “한마디로 몰역사적인 결정이다”(황평우), “용산이 일제의 강점과 관계가 깊다는 점에 대해 고려가 없었다”(이순우)는 등의 지적을 소개했다. 두 개의 총독관저 총독관저는 이원화돼 있었다. 1910년 한국 강점 당시의 관저는 서울지하철 4호선 명동역과 회현역 사이의 왜성대(倭城臺)에 있었다. 지금 이곳은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일대다.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도 조성돼 있다. 왜성대는 임진왜란 때 일본군 주둔지였다고 해서 생긴 명칭이다. 송호열 서원대 교수의 <한국의 지명 변천>에 따르면, 이곳은 조선군 무예 훈련장이 있었다고 해서 예장(藝場)이나 예장골로 불렸던 곳이다. 일본 기업의 조선 진출이 활발할 때인 1885년 이후로 왜성대·왜장터로도 불리다가 1914년부터 일본식 지명인 왜성대정(町)으로 불리게 됐다.

[오마이뉴스] 정의를 향한 겸손한 구도자

2022년 4월 8일 939

[김삼웅의 인물열전 / 정의의 구도자 함세웅 신부 평전 1] ‘정의’라는 불쏘시개를 들고 광야를 쉼 없이 순례하는 성직자 지금 대한민국은 대전환기, 하나의 평면에 그려질 만큼 단순하지 않은 나라가 되었다. 가치 혁명과 사회시스템의 기조를 비롯 많은 것이 변하고 바뀌어야 하는 시점이다. 정치권력도 교체된다. 국제사회가 먼저 공식적으로 인정해준 선진국이 되었다. 2021년 7월, 195개국이 가입한 유엔무역개발회의(UNCATD)가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격상시켰다. 후진국→개발도상국→중진국→선진국의 대열에 이르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나라 140개 국가 중 유일한 케이스다. 더욱이 해방과 동시에 분단ㆍ전쟁ㆍ백색독재ㆍ군부독재ㆍ산업화ㆍ민주화의 힘겨운 도정을 거치고, 좀더 소급하면 긴 세월의 조공과 35년 식민지배의 굴욕을 겪었다. 아직도 분단 상태이고, 전시작전지휘권도 회수하지 못한 채이며, 친일잔재ㆍ군부독재의 적폐와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게 된 것은 국가적인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우리가 근대화에 실패하고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었지만, 선진화에는 성공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국제사회가 존중하는 리더 국가가 되느냐의 여부는 새로 선출된 지도자(정부)의 역량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1,000년 동안에 겪을까 말까하는 역경과 도전을 우리는 80여 년에 모두 겪고, 선진국의 대열에 접어드는 기간 정치ㆍ경제ㆍ문화ㆍ사회ㆍ종교ㆍ학계ㆍ언론ㆍ스포츠 등 각 분야에서 출중한 인물이 적지 않았다. 나름의 역할과 기여가 있었고 평가가 따른다. 우리가 만만치 않은 역경과 도전 속에서도 선진화를 이룰 수 있었던 키워드는 단연 민주화라 할 것이다. 민주화가 있었기에 사회가 유연해지면서 문화예술 분야에 창의력이 나타나고 경제발전에도

[YTN라디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30편 – 소년남자가

2022년 4월 8일 922

민족문제연구소는 2017년 『항일음악 330곡집』을 발간한 이후 <항일음악회> 개최 등 항일음악 보급을 통한 독립정신 선양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YTN 라디오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자문을 받아 2020년 11월 ‘국치추념가’를 시작으로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를 방송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 30편 : 소년남자가_최재황(권준 후손) ☞ 29편 : 한국행진곡_한종수(한형석 후손) ☞ 28편 : 해방행진곡_손명원(손정도, 손원일 후손) ☞ 27편 : 거국행_박만규(흥사단 이사장) ☞ 26편 : 애국가_김흥태(오희옥 지사 아들) ☞ 신흥무관학교 제8편 : 끝나도 끝나지 않았다 ☞ 신흥무관학교 제7편 : 자랑스런 신흥인 ☞ 신흥무관학교 제6편 : 독립전쟁의 주역, 독립군의 총 ☞ 신흥무관학교 제5편 : 서간도 국치일의 풍경 ☞ 신흥무관학교 제4편 : 신흥무관학교 24시 ☞ 신흥무관학교 제3편 : 서간도는 어떤 곳일까 ☞ 신흥무관학교 제2편 : 망명로드 ☞ 신흥무관학교 제1편 : 신민회 ☞ 25편 :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라 ☞ 24편 : 광복군 제3지대가 _ 김일진(광복군 제3지대장 김학규 장군, 광복군 오광심 지사 아들) ☞ 23편 : 추도가 _ 원형재(원심창 선생 아들) ☞ 22편 : 한반도가 _ 나중화(나창헌 선생 아들) ☞ 21편 : 독립군행진곡 _ 김완태(전 육군사관학교장) ☞ 20편 : 영웅추도가 _ 김성태(오석 김혁 장군 증손자) ☞ 19편 : 선봉대가 _ 권현(권기옥 선생 후손) ☞ 18편 : 대한혼가 _ 김재홍 함경북도지사(규암 김약연 선생 증손자)

[한겨레21] 일제 총독 관저만 찾아다니는 한국 대통령실

2022년 4월 8일 2363

윤 당선자, 1939년 지어진 경무대 총독 관저에서 1910년 지어진 용산 총독 관저로 옮기는 꼴 1905년 말 을사늑약을 맺은 일제는 1906년 2월 조선에 통감부(뒤의 총독부)를 설치했다. 1대 통감은 이토 히로부미였다. 통감부는 임시로 현재의 서울 광화문 앞 ‘외부’(외교부) 건물(대한민국역사박물관 자리)을 쓰다가 1907년 서울 중구 예장동 ‘왜성대’(서울애니메이션센터 일대)에 새 건물을 지어 옮겼다. 통감 관저는 처음부터 왜성대 일대에 마련됐다. 1885년부터 있던 일본 공사관 건물을 통감 관저로 바꿨다. 현재는 그 자리에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가 조성돼 있다. 이 통감 관저는 한-일 병합의 현장이었다. 당시 총리대신 이완용은 1910년 8월22일 오후 1시 창덕궁 대조전에서 순종 이척을 모시고 내각 회의를 열었다. 여기서 일본과의 병합 조약을 보고했다. 보고를 받은 순종은 이완용을 전권위원으로 임명해 조약을 체결하도록 했다. 오후 4시 이완용은 왜성대의 조선 통감 관저로 가서 데라우치 마사타케 통감과 만나 한-일 병합 조약에 서명했다. 이렇게 문서로 나라와 백성을 일제에 넘겼다. 이완용의 전기 <일당기사>엔 당시 상황이 이렇게 적혀 있다. “황제(순종) 폐하의 소명을 받들기 위해 흥복헌에서 만나뵈었다. 말씀(칙어)을 받들고 전권위임장을 받아 곧장 통감부(통감 관저)로 가서 데라우치 통감과 만나 일-한 합병 조약을 상호 조인하고 그 위임장을 궁내부에 다시 제출했다.” 김영삼 대통령 때 경무대 총독 관저 철거 이 통감 관저는 병합 조약과 함께 ‘총독 관저’로 이름이 바뀌었다. 통감부도 총독부로 바뀌었다. 이 ‘왜성대’ 총독 관저에서 1906년

[연합뉴스] “나는 일본군 조병창서 무기만든 소년” 94세 노인의 증언

2022년 4월 6일 802

강제동원 피해자 문주현옹…日항공기 제작소로 재차 끌려가 (인천=연합뉴스) 홍현기 기자 = “공업학교와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했어. 학비도 안 들고 공부할 수 있다고 했지.” 일제강점기인 1943년 14살 나이에 인천에 있던 일본군의 무기공장 ‘일본 육군 조병창’에 강제 동원됐던 문주현(94)옹은 최근 대전시 자택에서 동원 과정을 담담하게 전했다. 문옹은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구술 채록’ 사업을 추진하는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와 이상의 인천대 초빙교수를 만나 79년 전 강제 동원의 기억을 회상했다. 전북 완주군에서 태어난 그는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공업학교 시험을 봤으나 합격하지 못했고, 국민학교 교장의 추천으로 1943년 4월 조병창에 동원됐다. 일본 육군 조병창은 일제가 강제 동원한 조선인들의 노동력을 착취해 전국 각지에서 수탈한 금속품으로 무기를 만들던 공장이다. 문옹은 처음에는 조병창 기능자 양성소에서 이따금 공부하면서 무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조병창 2공장에 배치된 문씨는 매일 소총의 몸통을 만드는 일을 했다. 당시 공장은 소총의 각 부속품을 만드는 장소를 분리하는 등 철저한 분업체계로 운영됐다. 문옹은 “시간이 지나면서 공부는 안 시키고 공장에서 소총만 만들게 했다”며 “공장이 넓고 사람도 많았는데 소총 부속을 만드는 장소가 여러 개 있었다”고 했다. 조병창에는 문씨와 같이 전국 각지에서 온 학생들이 많았다. 조병창 기능자 양성소의 기숙사 앞에서 찍은 문씨의 사진을 보면 조병창에 동원된 학생들의 면면을 짐작할 수

[cpbc 뉴스] [깊은 내공] 제주4·3 추념식 참석한 윤석열, 의미는? -함세웅 신부

2022년 4월 5일 959

○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이기상의 뉴스공감> ○ 진행 : 이기상 앵커 ○ 출연 : 함세웅 신부 /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 (주요발언) – “제주4·3 어린시절 폭동이라고 배워” – “노무현, 제주4·3에 대해 사과…공론화 계기” – “제주4·3 희생자 덕분에 역사 진전되고 여기까지” – “제주 아픔 치유될 때 한반도 아픔 치유되는 의미” – “동적인 의미 살아있는 표현인 ‘항쟁’, 이젠 제주4·3 항쟁” – “국가보안법 폐지, 인권위 가장 가치 있는 제안” – “윤석열 불안하지만, 제주4·3 추념식 참석은 희망” – “尹, 제주 방문·삼성 조사했던 기백…희망 보여” – “가톨릭교회, 여성 사제직 예수님이 안하셨다? 비겁한 논리” 말이나 글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죠. 뿌리 깊은 나무처럼 웬만한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보고 내공이 있다고 표현하는데요. 오늘 선보이게 될 새로운 초대석 코너 깊은 내공에서는 우리 사회와 정치, 종교계의 거목과도 같은 원로 분들 모시고 다양한 현안들에 대한 깊은 생각과 거침없는 쓴 소리 들어보는 시간 준비했습니다. 오늘 첫 시간으로 안중근 의사 기념사업회 이사장이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고문을 맡고 계신 함세웅 신부님 모시고 어제로 74주년을 맞이한 제주4.3사건에 대해 우리 사회의 진실과 화해라는 주제로 함께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신부님, 어서 오십시오. ▶안녕하세요? ▷한 달에 한 번씩 사회 각계각층의 내공 깊으신 좋은 말씀해 주실 분들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게 됐습니다. 어떻습니까?

[한겨레] “문익환·정경모·유원호 선생 묘역 ‘모란통일동산’ 만들어요”

2022년 4월 4일 915

‘4·2남북공동성명’ 33돌 맞아 고 정경모 선생 묘비 제막식 한·일 시민 260여명 성금 모아 ‘4·2남북공동성명’ 33돌을 맞아 통일운동가이자 재일 언론인 고 정경모(1924~2021) 선생의 묘비 제막식이 지난 2일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묘역에서 열렸다. 자유언론실천재단(이사장 이부영)이 주관한 이날 행사에서는 지난해 2월 일본에서 별세한 뒤 반세기만에 유골로 귀국한 고인의 유해봉안 1주기를 기려 시민 성금으로 마련한 묘비를 세웠다. 묘비명에는 ‘시대와 불화한 마지막 망명객/ 하지만 신념을 지켜낸 역사의 불침번/ 여기 동지들과 잠들다’라고 새겼다. 유족을 비롯해 40여명이 참석한 이날 제막식에서는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인 함세웅 신부와 임재경 <한겨레> 초대 부사장, 여순항쟁 서울유족회 이자훈 회장의 추모사에 이어 민중가수 손병휘씨가 추모곡을 올렸다. 고인의 조카인 정진영씨와 고 문익환 목사의 아들 문성근씨가 유족을 대표해 인사를 했다. 이부영 이사장은 “지난해 9월 문익환 목사·박용길 장로 부부, 유원호·안순심 부부의 묘를 이장한 데 이어 뒤늦게나마 정경모 선생의 묘비까지 세울 수 있어서 감회가 새롭다”면서 “이로써 1989년 3월 방북한 ‘통일의 씨앗 3인’의 공적을 함께 기리며 ‘4·2 남북공동성명’의 의의를 되새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게 됐다”고 묘비 조성 과정과 의미를 설명했다. 자유언론실천재단은 몽양여운형기념사업회(이사장 장영달)와 늦봄문익환목사기념사업회(이사장 송경용)와 공동으로 지난해 10월부터 진행한 묘비건립 1만원 모금운동을 통해 국내 240여명과 일본 20여명 등 시민과 단체에서 참여해 1500만원 가까운 성금을 모았다고 밝혔다. 더불어 이날 참석자들은 문익환·정경모·유원호 선생의 묘역을 ‘모란통일동산’으로 조성하기로 뜻을 모으고 성금을 계속 모으기로 했다.

[오마이뉴스] 민성기 가옥 이상한 안내문… 여흥 민씨 가문 이래선 안된다

2022년 4월 5일 1579

[김종성의 히,스토리] 민영휘 묘 관리하는 민성기 가옥에 ‘친일 행위’ 표기해야 친일파 민영휘(1852~1935)의 무덤을 관리하는 ‘춘천 민성기 가옥’에 그의 친일행위를 표기하는 문제가 난관에 부딪혀 있다. 1920년대 건축된 이 가옥이 1985년에 강원도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뒤 수억 원의 세금이 투입됐지만 후손들의 반발에 막혀 친일행위 표시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 춘천시 동면 장학리 70번지에 소재한 이 가옥은 건축 목적 자체가 민영휘와 관련돼 있다. 문화재청이 운영하는 국가문화유산포털은 ‘춘천 민성기 가옥’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민영휘의 묘소를 관리하기 위해 묘 가까이에 세운 묘막이다”라고 설명한다. 친일파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 주택임을 알 수 있다. 이 가옥에 대한 문화재 지정을 취소할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2017년부터 있었다. 그 뒤에는 가옥 안내판에라도 친일행위를 표기하자는 타협적인 목소리가 나왔다. 그 결과 지난해 12월 안내판이 변경됐다. 3월 31일 자 YTN 보도 ‘친일파라 부르지도 못하고… 슬그머니 교체한 안내판’에 따르면 변경된 안내판은 민영휘에 관해 이렇게 서술했다. 춘천 민성기 가옥은 조선 후기 관료이자 정치인인 민영휘의 묘를 관리하기 위해 세워진 묘막이다. 이 가옥은 화천에 있던 민가를 1925년 옮겨 지은 것으로 전해지며, 강원 지역의 전통 가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건축물로 평가된다. YTN 보도에 등장하는 춘천시 관계자는 “저희가 문안은 만들어서 전문가 자문 받아서 이제 감수 중이에요”라고 말했다. 전문가의 자문을 받은 결과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엉뚱한 안내문이다. 친일파 민영휘와 관련된 가옥에 ‘강원도 전통 가옥을 이해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