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기사
[한겨레] 주임신부가 담 넘어 성당에 들어갔던 까닭
[함세웅의 붓으로 쓰는 역사 기도] (27) 3·1민주구국선언 “모세는 죽어 모압 땅에 있는 뱃브올 맞은편 골짜기에 묻혔는데 그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는 오늘까지 아무도 모른다. 모세는 죽을 때 나이 120세였다. 그러나 그의 눈은 아직 정기를 잃지 않았고 그의 정력은 떨어지지 않았다.” (신명기 34,6-7) “사람이 앞길을 계획하여도 그의 발걸음을 이끄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잠언 16,9) 모세는 히브리 백성을 이집트 노예살이에서 해방시킨 위대한 첫 예언자입니다. 울부짖는 백성과 함께 아파하시는 공감의 하느님을 체험하고, 그들 속에 들어가 함께 살며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신의 인간적 한계를 깨닫고,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느보산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모세의 눈동자는 죽는 순간에도 맑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역사의 주재자임을 확신하고 고백하며 오직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산 하느님의 충실한 종이었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이 이러한 모세의 정신을 본받도록 호소하고 기도했습니다. 1975년 4월 30일 월남이 패망하자, 위기감을 느낀 박정희 정권은 베트남의 상황을 빌미로 5월 13일 긴급조치 9호를 선포합니다. 일체의 비판이나 반대를 허용치 않겠다는 살벌한 경고였습니다. 긴급조치 선포 며칠 전인 5월 5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상임위원회는 두 번째 담화문을 통해 “그동안 사제들이 중심이 되어 자발적으로 전개해온 현실비판과 인권옹호 운동을 주교단이 책임지고 차원을 높여 정부와 직접 대화로써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빈말이었습니다. 국회의장을 앞에 두고 박정희 비판 교회 안팎의 암울한
[오마이뉴스] 친일청산 응원한 조선일보 사주… 기묘한 행각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3 – 방응모 조선일보사가 모기업인 조선미디어그룹은 조선방송·디지틀조선일보·조선비즈·스포츠조선·조선뉴스프레스·조선교육문화미디어·헬스조선·조선아이에스·방일영문화재단·조선일보미디어연구소를 관계사로 두고 있다. 총수 일가의 재산 규모도 상당하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0 한국언론연감>에 따르면, 방상훈 조선일보 대표이사의 자사 지분은 2018년에도 30.03%, 2019년에도 30.03%다. 실제로는 이보다 많다는 것이 2017년 4월 4일 자 <미디어오늘> 기사 ‘조선일보 후계자 방준오의 경쟁자가 사라지다’ 등에 보도되기도 했다. 김의겸 의원이 2021년 9월 16일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조선일보 총수 일가가 보유한 부동산 규모는 40만여 평이다. 서울 여의도 면적 45%에 해당하고 당시 기준으로 공시지가 4800억 원, 시가 2조 5천억 원에 달한다. 방씨 일가의 재산이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부터 축적된 게 아니라는 점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다. 이 재산은 해방 이전과 연속성을 갖고 있다. 그것도 해방 이전의 친일 반민족 행위와 관련돼 있다. 방씨 일가의 재산은 이들의 조상인 친일파 방응모의 재산에 기초를 두고 있다. 김성수와 닮은 듯 다른 방응모 조선일보 방응모의 친일은 동아일보 김성수의 친일에 비해 덜 부각돼 있지만, 방응모 역시 만만치 않은 친일파였다. 김성수는 군국주의 침략 전쟁을 홍보하는 방송 활동과 순회강연을 하고, 국민정신총동원연맹·국민총력조선연맹·흥아보국단·조선임전보국단에 참여하고, 일제의 전쟁 수행을 위한 국방헌금을 기부하고, 징병제와 학도지원병 참여를 독려하는 등의 친일행위를 했다. 방응모의 친일에서도 김성수의 친일 방식이 나타난다. 방응모도 국민총력조선연맹에 가담했다. 또 친일 조직인 조선신궁봉찬회·조선대(大)아세아협회·조선문예회·경성군사후원연맹·조선춘추회·배영동지회에도 가담했다. 일본군을 위한 기관총 구입비도 헌납했다. 또 시국 강연에서 자신과
[국민일보] “日, 한국과 관계 고려 않겠다는 것… 우리 정부도 단호하게 대처해야”
교과서 왜곡에 전문가들 격앙 ‘강제 연행’ ‘종군 위안부’ 표현이 사라진 역사 교과서가 일본 정부 검정 심사를 통과하자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일본이 과거사 문제에 있어서 한국을 배려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표한 것과 다름없어 한국 정부도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29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일본이 역사 문제에 있어서 한국과의 관계를 배려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표시한 일”이라며 “일본 정부의 역사 인식이 ‘부정론’에 가까워졌다”고 평가했다. 이신철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장도 “역사 문제에 일본 정부가 노골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의사를 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일본 고교 교과서에서 과거 식민지배 등의 행위들이 합법적이었다고 왜곡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 소장은 “교과서에서 ‘강제성’이라는 용어가 빠진 것은 일본 학생들에게 식민지배 행위가 합법적인 틀에서 이뤄졌다는 점을 교육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검정 심사를 통과한 일부 교과서에는 조선인 노동자 강제 동원 사실을 설명하며 사용한 ‘강제 연행’이라는 단어를 ‘동원’이나 ‘징용’으로 변경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노 담화’에 포함됐던 ‘종군 위안부’도 ‘위안부’로 대체됐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양학부 교수는 “위안소를 실질적으로 운영한 주체는 일본군이지만 이를 나타내주는 공문서 등의 내용이 빠진 점도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한국 정부가 단호하면서도 풍부한 근거로 일본 정부의 왜곡에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 실장은 “일본은 침략 전쟁을 벌였고 식민지배를 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반성하지 않는 국가라는 점이 명확해진 만큼 한국 정부가 왜곡된
[뉴시스] ‘친일인명사전’ 등에 등재된 충남 출신 202명…고등경찰 등
기사내용 요약 송덕비·기념비 등 친일 기념물 53건 존재 충남도, 일제강점기 흔적 지우기 나서 [홍성=뉴시스] 유효상 기자 = ‘친일반민족행위 명단’ 및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충남 출신은 202명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도내 출생자는 114명, 출신자(본적자 포함) 88명 등이며, 대부분 군수, 고등경찰 등 관리·경찰직으로 나타났다. 충남도는 29일 도청 소회의실에서 ‘충청남도 친일잔재연구위원회 제2차 회의’를 열고 친일 잔재 기초조사 연구용역 결과를 공유했다. 친일 잔재 기초조사 연구용역은 체계적인 친일 잔재 조사·관리를 위한 것으로, 도내 친일 인물과 기념물, 건축물 등을 조사 대상으로 했다. 기초조사 대상 시기는 1904년 러일전쟁부터 1945년 8월 해방 전후까지이며, 대상 지역은 현재의 도내 전 지역이다. 용역사인 민족문제연구소는 도 출신 친일 인물과 이들의 친일 재산 등을 파악하고 친일 인물과 관련 있는 기념물과 건축물 등을 조사했다. 친일 재산은 도내 출신 친일 인물의 도 소재 국가귀속결정 토지를 조사했다. 구체적으로는 ▲논산·공주·부여 등 김갑순의 국가귀속결정 토지 116필지 ▲김서규·김종흡·박철희·이기승·이기원·이종덕·정두화·정주영·지희열·한창동의 도내 산재한 국가귀속결정 토지 등이다. 도내 친일 기념물 및 건축물 조사는 옛 신문자료에 수록된 각종 비석의 제막 관련 기사를 추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각 시군이 편찬 간행한 여러 향토지와 지역 조사 보고서 등을 취합해 간추렸으며, 현장 조사를 통해 발견한 사례도 포함했다. 송덕비, 기념비 등 친일 기념물은 총 62건으로 이 중 9건은 멸실 또는 망실돼 현재는 53건만 존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용역사는 53건의 친일 기념물
[팟캐스트] 역발상 시즌1_식민지시대 사람들 2편 _한국의 고가 마사오 ‘박시춘’ 탁월한 대중성으로 군국가요도 탑
☞ (03.29) ‘역발상’ 시즌 1: 식민지시대 사람들 2편 _한국의 고가 마사오 ‘박시춘’ 탁월한 대중성으로 군국가요도 탑 ☞ (03.22) ‘역발상’ 시즌 1: 식민지시대 사람들 1편 _대중가요 최초의 슈퍼스타 남인수 “군국가요에서부터 국가보안법 피해까지” ☞ (03.15) ‘역발상’ 시즌 1: 새로운 시작 그리고 재일조선인단체사전 발간
[한겨레] “이게 무슨 재판이냐” 판사 책상 걷어찬 청년 이명준
[함세웅의 붓으로 쓰는 역사 기도] (26) 천주교정의구현 청년전국연합 시온 때문에 나는 잠잠히 있을 수가 없고 예루살렘 때문에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그의 의로움이 빛처럼 드러나고 그의 구원이 횃불처럼 타오를 때까지.” (이사야 62,1) “우리 어찌 주님의 노래를 남의 나라 땅에서 부를 수 있으랴? …… 예루살렘아, 내가 만일 너를 잊는다면 내가 만일 너를 생각 않는다면, 내가 만일 예루살렘을 내 가장 큰 기쁨 위에 두지 않는다면 내 혀가 입천장에 붙어버리리라.” (시편 137,1.4-6) 사람은 늘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죽음은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는 과정’이라고 그리스도교는 신앙으로 고백합니다. 한 차원 높은 삶, 무한한 영생의 삶을 전제한 가치관 설정입니다. 생명의 범주에는 자신과 가족 그리고 신의와 우정, 정의와 공정, 동족과 공동체라는 사회의 연대적 가치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신앙과 신의, 조국애와 동포애가 바로 그 예범입니다. 교회와 조국, 모교와 고향을 사랑하고 그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언자들은 하느님 때문에 시온과 예루살렘을 기리고 칭송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성전이 자리 잡은 예루살렘이 곧 하느님의 현존과 모국의 상징입니다. 고향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단순한 장소를 넘어선 그 어떤 초월적 의미를 지닌 이상향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물리적이고 정신적인 두 가지 유형의 고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정의구현 청년전국연합의 이명준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이 소중하듯 1970~80년대 수많은 이들에게 명동성당은 아주 귀중한 영적 보루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겐
민족사랑 2022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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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일 연구자 40여명 10년 걸려 ‘재일조선인단체 사전’ 냈죠”
[짬] 민문연 이용창 연구실장 “사전 색인 작업만 두 달가량 걸렸어요. 인명이 5400여명, 단체가 2800여개인데요. 앞으로 <친일인명사전> 증보개정판을 내거나, 새로 독립운동가 서훈 신청을 할 때 활용할 수 있을 겁니다.”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이하 민문연)는 최근 1895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에서 발족한 조선인단체 551곳의 연혁과 활동을 담은 <재일조선인단체사전 1895~1945>(공동편찬위원장 히구치 유이치, 미즈노 나오키, 김광열)를 냈다. 2012년에 한국과 일본 연구자들이 함께 편찬 작업에 착수했으니 꼬박 10년이 걸렸다. “국내의 재일조선인 연구자 9분과 일본 연구자 29분이 참여했어요. 일본은 재일조선인 전문 연구자와 함께 지역을 연구하는 분들도 여럿 참여했죠. 사전 내용의 65%는 한·일 연구자들이, 나머지는 민문연 편찬팀 연구원들이 나눠 썼죠.” 민문연 동료 연구원 다섯과 함께 이번 사전 편찬 실무를 이끈 이용창 연구실장의 설명이다. 중앙대 사학과에서 ‘동학천도교단의 민회 설립운동’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이 실장은 2004년부터 민문연 상근연구원으로 활동해왔다. 지난 21일 서울 용산구 청파로 민문연 사무실에서 이 실장을 만났다. 1200쪽이 넘는 이 사전은 민문연이 창립 이후 네 번째로 펴낸 일제 시기 전문 사전이다. 가장 먼저 <일제협력단체사전-국내 중앙편>(2004년)을 냈고 이어 <친일인명사전>(2009), <일제식민통치기구사전-통감부·조선총독부편>(2017)을 발간했다. “<친일인명사전>을 낼 때 일본과 중국 쪽 조선인 사회 동향이 궁금했어요. <친일인명사전>은 지금도 객관성이나 치밀함에서 인정을 받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해외와 국내 지역 쪽 조사가 미흡했거든요. 1945년 기준으로 일본에만 조선인 2백만 이상이 살았어요. 그 시절 일본에 조선인 조직이 뭐가 있었고 활동은 어땠고,
[한겨레] 윤 당선자 ‘친일·독재 미화 국정교과서 주역’ 이배용 ‘특별고문’에
박근혜 정부 때 한국학중앙연구원장 역임 임시정부 정통성 부정·친일 독재 미화한 역사 국정교과서 편찬심의위원 등으로 활동 2015년 ‘국정화’ 발표에 직접 나서기도 역사학자들 “역사적 퇴행” 시도할까 우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24일 박근혜 정부 역사 국정교과서 추진의 주역이었던 이배용 전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원) 원장을 특별고문으로 임명했다. 윤 당선자가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친일·독재를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고 폐기된 국정교과서를 주도한 인물을 특별고문이라는 상직적 자리에 앉히면서,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시도된 ‘역사적 퇴행’이 새 정부에서 재연될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윤 당선자는 이날 이화여대 전 총장 출신이기도 한 이배용 전 원장을 특별고문으로 임명한 이유에 대해 “평소 국민을 사랑하고 두려운 줄 아는 애민 정신이, 진정한 국가지도자상임을 강조해온 그의 가치관이 윤석열 정부와 지향점이 일치한다”고 밝혔다. 이 고문은 보수 성향의 역사학자로, 이명박 정부에서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자문기구인 역사교육과정개발추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2013년 9월부터 2016년 9월까지 한중원 원장을 맡았다. 한중원은 국사편찬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과 함께 3대 역사 연구 국가기관으로 꼽힌다. 2018년 교육부가 발간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 백서’를 보면, 이 전 총장은 청와대의 추천으로 역사 국정교과서 편찬심의위원으로 활동했다. 당시 국정화 추진 과정에서는 청와대가 역사교과서의 구체적 내용과 관련된 지시를 내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전 총장도 청와대 수석이나 그 이상급 인사들과 접촉하고 있었다고 백서는 기록하고 있다. 이 전 총장은 2015년 10월 교육부가 중학교 역사 교과서와 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오마이뉴스] ‘식민지 조선 최고의 슈퍼스타’ 남인수 이야기
[리뷰] 팟캐스트 <역사를 발견하고 상상하라 미래를> 보통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나 현상을 찾아내는 것에 ‘발견’이라는 단어를 붙인다. 그렇다면 역사를 발견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약간의 생경한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역사라는 거대한 개념을 ‘발견의 대상’으로 두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아 보이기도 한다. 차라리 “역사 속에서 ‘○○’을 발견하라”고 썼다면 이견이 없었을 텐데 말이다. 지난 3월 15일 새로운 닻을 띄운 팟캐스트, <역사를 발견하고 상상하라>(이하 역발상)는 바로 이런 물음들에 착안했다. 역사: 하나로 규정될 수 없는 총체(總體) ‘역발상’은 첫 에피소드로 식민지 조선의 대중예술인 남인수(南仁樹, 1918〜1962)의 생애를 다룬다. 남인수는 1936년 19세의 나이로 데뷔, 타고난 미성(美聲)과 물 흐르는 듯한 창법, 뛰어난 외모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어 모은 식민지 조선 최고의 슈퍼스타였다. 그가 남긴 히트곡은 <애수의 소야곡>, <울며 헤어진 부산항>, <낙화유수> 등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로 많으며 1962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발표한 곡들은 1000곡을 넘어간다. 가왕(歌王)을 넘어 ‘가황(歌皇)’이라는 칭호가 따라붙는 인물인 것이다. 이에 ‘역발상’ 또한 이 지점을 먼저 주목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식민지 조선에서도 “길거리를 걸어 다니기 힘들만큼”의 인기를 구가하는 스타, 남인수라는 인물이 존재했었다는 것. ‘역발상’은 남인수에 대한 민중들의 사랑, 뛰어난 실력, 문화예술인으로서의 존재사적 의의 등에 대한 설명들이 충실하게 이어간다.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전시총동원체제의 억압 속에서도 민중의 문화적 욕구와 감성이 생동하고 있었음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역발상’이 청취자에게 제안하는 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