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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한겨레] 항일음악을 아시나요?

2021년 8월 10일 686

14일 대전MBC ‘항일음악 6천곡 대발굴’ 다큐 방송 대전문화방송(MBC)은 오는 14일 묻혔던 항일음악을 집중 조명한 다큐멘터리 ‘노래하라! 저항하라! 항일음악 6000곡 대발굴’을 방송한다고 9일 밝혔다. 항일음악은 일제강점기 일제의 침략을 반대하며 독립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노래로, 군가·혁명가·투쟁가·애국가·계몽가·망향가·추도가 등 여러 형태로 불렸다. 항일음악 발굴은 민족문제연구소가 기획하고 고 노동은 중앙대 명예교수가 집필한 자료집 <항일 음악 330곡집>에서 시작됐다. 2017년 발간된 유일한 항일음악 자료집으로, 1910년 항일투쟁 현장에서 가장 많이 불렸던 노래들이 시대별로 정리돼 있다. 현재 단국대 동양학연구원은 <항일 음악 330곡집>를 뒤잇는 항일음악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연구팀은 항일운동 발자취를 따라 베이징과 톈진, 옌볜, 선양, 다롄 등 중국 동북 지역의 조선족들과 알마티, 크즐오르다, 타슈켄트 등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을 만났다. 4년에 걸쳐 항일음악과 관련된 악보 , 서지 , 기사 , 잡지 등을 조사·연구한 끝에 6000곡을 발굴해 정리했다. 대전엠비시는 이번 다큐멘터리에 단국대 연구팀의 ‘항일음악의 보급과 연구를 위한 국내·외 자료 수집·해제 및 디비(DB) 구축’ 프로젝트의 발자취와 의미를 담았다. 발굴된 항일음악을 대전시립교향악단과 대전시민천문대어린이합창단, 뮤지컬배우 고은성, 아카펠라 그룹 ‘나린’, 밴드 ‘오빠딸’ 등이 연주하고 노래하는 모습도 다큐멘터리를 통해 방송된다. 이 다큐멘터리를 기획한 김지훈 대전엠비시 기자는 “단국대 동양학연구원이 발굴한 항일음악 중 1000곡은 악보로 표준화했고, 그 중 의미 있는 곡을 골라 음원으로 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에 앞서 대전엠비시는 7 ∼8곡을 골라 지역의 예술가들을 참여시켜 편곡하고 연주 ·녹음했다 ”

[연합뉴스] “경기 12개 공립학교에 친일인사 공덕비 남아 있어”

2021년 8월 10일 583

경기교육청 전수조사…21개교 교표엔 친일 잔재 확인 (수원=연합뉴스) 이영주 기자 = 경기도교육청은 학교 내 유·무형으로 남아있는 일제 잔재 현황을 파악하고, 이를 청산하는 방법을 제안한 연구보고서를 발간했다고 10일 밝혔다. 도교육청은 일제 잔재 기초자료 확보를 위해 도내 2천500여개 학교를 대상으로 동상, 비석, 교표, 교화 및 교목 등 유형요소와 교훈 및 교가 등 무형 요소를 조사했다. 도교육청 차원의 일제 잔재 전수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조사 결과 도내 12개 공립학교에 친일 인사의 비석이 설치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민족문제연구소가 진행한 ‘경기도 친일문화잔재 조사·연구 용역 결과보고서’에서 확인된 6개 비석 외에 남양주 한 초등학교의 이상옥(친일인명사전 등재) 기념비 등 6개가 추가로 확인됐다. 이들 비석은 대부분 학교 운영과 발전에 관한 공덕비 형태로, 해당 인물의 친일 행적은 안내되지 않았다. 도내 21개 학교 교표에서도 욱일문, 일장기, 일본 군경이나 기업의 심벌마크와 유사한 표식 등 일제 잔재가 확인됐다. 특히 한 초등학교의 교표는 전범 기업으로 분류된 ‘미쓰이 그룹’의 로고와 색깔만 빼고 거의 유사하다. 보고서는 일제 잔재로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고민해볼 필요가 있는 몇 가지 사례도 제시했다. 교표에 자주 쓰이는 월계수 도안이 대표적이다. 보고서는 “월계수는 흔히 서양에서 승리, 평화, 정화 등을 상징하며 전투와 경기의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영예의 관으로 동양 전통에선 발견되지 않던 도상”이라며 “월계수를 일제 잔재로 보는 것이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을 수 있지만,

[인천일보] 친일의 이름으로 말살된 ‘교육철학’

2021년 8월 10일 1140

1910년 국권침탈 이후부터 학교 고유 교육이념 없애고 제국주의 주입하며 지배화 민족성 담긴 ‘교표’ 사라지고 친일파 만든 ‘교가’ 아직 불려 배화학원 태극문양→ 난초로 중동학원 무궁화 도상 사라져 대부분 사립학교 교표 바뀌어 민족정체성 없애기 교묘히 시도 친일잔재 은연 중 한국사회 잠식 일제 강점기 동안 일제가 자행한 민족말살 정책은 전통 문화를 훼손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런 민족말살 정책은 유·무형의 잔재로 해방이후에도 존속되고 있다. 그 대표적 사례가 학교 상징물이다. 초창기 민족성을 담은 학교 교표는 일제 상징물을 형상화하는 문양으로 교체됐다. 이런 일제 잔재를 그대로 담고 있는 교표는 해방 이후에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친일 작사·작곡가들이 제작한 교가는 지금도 어김 없이 학교내에서 불리어지고 있다. 8·15 광복 76주년을 맞아 경기도내 학교에 남은 일제 잔재의 흔적을 찾아보았다. 또한 친일잔재를 청산하고 있는 학교도 소개한다. 지난 9일 평택시 한 고등학교 교문은 돌로 된 기둥 둘 사이에 있었다. 기둥에는 날개 형상 위에 둥근 원이 그려진 모양이 있었다. 색깔을 더한 모양을 보자 눈에 확연히 들어왔다. 문양은 청색 바탕에 황금색의 날개가 새빨간 반원을 떠받치고 있었다. 한국식이라기 보다는 일본식에 가깝다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이 문양은 학교를 상징하는 교표다. 교표에 대한 설명을 봐도 한국식과는 달라 보였다. 붉은색 반원은 아침을 여는 태양의 의미, 날개는 비상하는 독수리의 날개라고 했다. 이미지를 검색하다 보니 비슷한 모양이 검색됐다. 바로 독수리 날개를 단

[한겨레] [시론] 광복 이후 사과한 사람은 없었다

2021년 8월 5일 667

친일 행적을 남긴 문화예술계 인사들 중 광복 이후에 사과한 사람이 없었다. 일본은 지금 모든 고등학생에게 독도를 되찾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부끄러운 과거사를 들춰보면서 바짝 긴장해야 한다. 이런 마음으로 8·15 광복절을 맞도록 하자. 이승하 | 시인·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일본은 방위백서에 죽도(독도)가 자기네 영토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통과한 고등학교 사회과 과목에 독도 영유권을 반드시 명시하도록 했다. 자국 영토를 한국이 강제로 점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반드시 되찾아야 할 독도라는 말이다. 교과서에 그렇게 적혀 있는데 아이들이 그 말을 믿지 않고 독도가 한국 영토라고 생각할까? 우리 세대에 되찾자는 왜곡된 애국심을 심어줄지도 모른다. 1950년대에 “미국을 믿지 말자. 일본은 일어선다. 소련에 속지 말고, 중국에 죽지 말자. 조선은 조심해라”라는 말이 유행을 탔던 적이 있다. 일본이 올림픽을 악착같이 개최한 이유가 다시 일어서려는 몸부림임을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36년 동안 식민지 지배를 받았다. 하지만 경술국치 한참 전인 1882년 제물포조약 때부터 일본의 반식민지가 되었다. 갑신정변, 을미사변, 을사늑약이 다 침략의 마수를 뻗은 일들이었다. 이름만 대한제국이었지 광산채굴권, 철도부설권, 외교권 등을 빼앗긴 상태였으니 반세기 동안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자라나는 2세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징병에 동원된 청장년들, 일본군 병영에 끌려간 여성들, 공장과 탄광에 끌려가서 죽도록 일하고 돈 한푼 못 받은 징용 인력들의 한을 잊지 말자고? 그것도 중요하지만

[KTV] 일본 역사 왜곡 속 ‘강제노역 증언’ 관심 쏠려

2021년 8월 3일 1219

김태림 앵커> ‘8.15 광복절’이 다가오고 있지만 일본의 역사 왜곡이 여전합니다. 세계유산에 조선인 강제노동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아 유네스코의 비판을 받았는데요. 일제강점기 당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증언을 담은 전시가 열려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김유진 국민기자가 다녀왔습니다. 김유진 국민기자> (영상제공: 민족문제연구소, 식민지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 / 서울시 용산구)) 일제강점기 당시 강제노역으로 일본에 끌려간 조선인은 3만 3천여 명. 많은 조선인이 탄광과 조선소, 제철소로 동원됐는데요. 고된 노동에 시달렸지만 부실한 음식으로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습니다. 악몽 같은 그 시절을 피해자들이 생생하게 증언한 영상을 담은 전시가 열렸는데요. 나라 잃은 슬픔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인터뷰> 최장섭 / 하시마 탄광 강제 동원 피해자 “땀방울로 목욕을 하고 심지어는 수건이 아니면 땀을 막아낼 수 없어요. 더러 맞기도 많이 맞았죠. 강제성을 띠어서 새까만 콩밥 한 덩이로 연명하고…” 일제의 만행에 시달렸다는 영상 증언을 지켜본 관람객들. 일본에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한미정 / 모로코 거주 교포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았고 여러 가지를 보면 이제는 조용히 일본이 우리에게 사과할 때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강하게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서울에 있는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마련한 이번 전시.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산업시설에 강제 동원된 피해자 19명의 영상 증언을 볼 수 있습니다. <인터뷰> 손용암 / 다카시마 탄광 강제 동원 피해자 “들어가서 보니까 6, 7명인가 와 있더라고요. 거기서 문 잠그고 내려놓질 않는 거예요.

[오마이뉴스] 생존자의 절규 “한국, 베트남전 피해자 고통은 외면”

2021년 8월 8일 798

김남주 민변 베트남전TF 팀장 인터뷰① “문재인 정부, 사안 해결의지가 없어 보인다” “저는 8살 한국군에 의해 (가족이) 학살당했고, 그 학살로 많은 가족을 잃고 혼자 오랜시간 고통속에 살아왔다. 오늘 이자리에 있기까지는 광장히 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이겨내며 오게 됐다. 한국에 이 사건의 진실을 알리기위해 한국 방문을 세차례나 했지만, 한국 정부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이 사실에 대해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한국 국회가 특별법 제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소식 듣고 너무 반가웠다.”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피해자인 응우옌 티 탄(Nguyễn Thị Thanh, 61세)씨는 한국 국회의 특별법 제정 노력에 대해 반가운 자신의 심경을 전했다. 그는 지난 두달간에 걸쳐(6.30~7.22) 세차례 열렸던 ‘베트남 전쟁 시기 대한민국 군대에 의한 민간인 피해사건 조사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위한 연속간담회’에서 베트남 현지에서 화상으로 참가해 아픈 과거와 현재 심정을 토로했다. 이어 응우옌 티 탄씨는 한국정부가 민간인학살에 대해 진상을 규명하고 사과하기를 바라냐는 질문에는 “(1968년) 퐁니퐁넛 학살, 우리 마을에서 죽은 사람들은 대다수가 저와 같은 어린 아이였거나 여성들이었다. 수많은 목숨들이 굉장히 억울한 죽음을 당했던 것이 이 퐁니퐁넛 학살이다. 저 뿐만이 아니라 이 학살의 생존자들, 가족들,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이 학살을 기억하고 있고, 이 아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한번도 우리를 찾아온 적 없고, 이 사건에 대해 단 한번도 관심을 갖거나 이 사건의 실제에 대해 저희에게 물어보거나

[오마이뉴스]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 진상 조사하고 공식 사과하라”

2021년 8월 3일 969

일본대사관 앞서 한달 간 1인시위… 첫날 한국YMCA전국연맹사무총장·천도교청년회장 참여 1923년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의 진상공개와 공식사과를 요구하는 일본대사관 앞 1인시위가 2일부터 진행됐다. 시민모임 독립(이사장 이만열 상지대이사장·전 국사편찬위원장)은 앞으로 한 달간 1인 시위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한 달간 진행되는 1인 시위는 코로나19 방역 수칙에 따라 1인씩 피켓을 들고 이어 나간다. 학생, 직장인, 자영업자 등 일반 시민들이 자원 참가하는 이번 1인 시위는 1923년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이 일본 정부가 촉발하고, 조선인에 대한 혐오가 투영된 명백한 제노사이드 범죄임에도 일본정부가 진상공개와 공식사과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역사 부정의 현실에서 출발했다. 특히 첫날인 2일 1인 시위에 김경민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과 이재선 천도교청년회장이 나선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이라는 참상을 목격하고 이재동포위문반(罹災同胞慰問班)을 조직해 실태 파악에 나선 것이 천도교 동경지부와 YMCA동경지부였기 때문이다. YMCA동경지부는 매해 추모제를 진행해왔으며 국내에서는 일제의 삼엄한 감시와 탄압 속에서 1924년 1주기 추모식을 거행한 바 있는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지난 2020년 추모식과 추모문화제를 거행한 바 있다. 시민모임 독립은 일본대사관에 공문을 보내 일본 정부의 진상 공개와 공식 사과를 요구하고 1인시위 진행을 통지했다. 이날 격려차 현장을 찾은 이만열 이사장은 사건 발생 이후 98년이 되었는데도 사건의 희생자, 특히 조선인 희생자 숫자나 참혹한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음을 지적하며,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 국민들과 일본인, 세계가 간토대지진 사건에 대해 희생자들에 대해서도 이해할

[성명] 나눔의집, 불법비리, 인권침해 사태는 여전히 해결과정에 있다. 정치인들은 경거망동 자제하라!

2021년 8월 2일 1248

[다운로드][성명] 나눔의집, 불법비리, 인권침해 사태는 여전히 해결과정에 있다. 정치인들은 경거망동 자제하라! 나눔의 집 문제를 왜곡하는 정치인들의 언행을 규탄한다. 월주스님 입적 후 나눔의 집에 대한 정치인들의 발언이 심각한 수준이다. 사실관계도 제대로 알지 못한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정치인들은 여야를 막론한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시민단체나 언론에서 인격학살적인 공격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고 하고 ‘공익단체를 만들어 거기 참여해서 기부도 하고 열과 성을 다해 온 사람들을 이런 식으로 인격을 말살하고 정치적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건 국가라고 보기 어렵다’고 발언한 것으로 보도 되었다. 문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발언이다. 2020년 경기도는 시민단체들과 함께 사회복지법인 대한불교조계종 나눔의 집에 대해 민관합동조사를 실시했고, 심각한 법령 위반 사실을 밝혀냈다. 나눔의 집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생활과 활동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명목으로 기부금을 모집했는데, 기부금품법과 사회복지사업법 및 사회복지법인 재무회계규칙 등을 위반하여 기부금품을 모집했고, 2015년부터 2019년까지 5년간 모집한 기부금품 88억원 중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이 실제 생활하고 계신 나눔의 집으로 보낸 시설 전출금은 고작 2억원뿐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할머니들은 노인복지시설에 입소한 거주인이 되어 정부 지원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이 시설에 거주한 할머니들은 기부금의 혜택을 거의 보지 못하고 모금을 위해 동원된 것에 불과했다. 법인 이사들은 할머니들이 돌아가시면 호텔식 요양원을 지을 계획까지 세웠다. 할머니들을 내세워 모금을 했을 뿐만 아니라 이분들과 무관한 일을 위해 돈을 적립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눔의 집이 국민을

[역사만화] “친일파 열전” 박시백 글·그림 / 민족문제연구소 기획

2021년 8월 2일 4296

■ 책 소개 박시백, 청산하지 못한 역사를 말하다 올해 초, 한 인사가 친일파 후손과 독립운동가 후손의 주거 격차를 드러낸 사진을 가져와 “친일파 후손들이 저렇게 열심히 살 동안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도대체 뭘 한 걸까? 100년 전에도 친일파들은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이고 독립운동가들은 대충 살았던 사람들 아니었을까”라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되었다. 또한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 등 한일간의 역사에서 비롯된 갈등을 바라보는 주류의 시각 중에는 일본의 입장에 동조하여 우리의 잘못을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 박시백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광복 76주년, 친일파는 여전히 건재하다.” 일본에 강제 병합된 1910년부터 1945년 해방까지, 35년에 이르는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만화로 풀어낸 작품 《35년》의 저자 박시백이 《친일파 열전》으로 다시 돌아왔다. 일제강점기 35년이라는 방대한 역사에서 친일파의 역사로 초점을 좁혀 촘촘하게 훑어내어 고리타분하게 들리는 ‘친일 청산’이라는 단어에 다시 한번 현재성을 불어넣는다. ‘작가의 말’에서 저자는 왜 친일 청산이 여전히 현재의 문제인지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해방이 된 후에도 친일파는 청산이 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도리어 우리 사회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이런 역사를 빼놓고서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렇다. 친일파는 여전히 건재하다. 일제강점기 시절 침략자에 붙어 민족을 배반했고 해방 후에도 주류가 되어 떵떵거렸던 당사자들은 이제 생물학적 수명을 다해 사라지고 없지만 그들의 혈연적, 사상적 후예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우리는

[새책소개] 뭉우리돌의 바다 / 김동우 글·사진

2021년 8월 4일 1190

■ 책 소개 이 책의 표지 사진은 새벽 다섯 시경 애니깽 농장의 모습이다. 1905년 멕시코로 떠난 1,033명의 한인들이 매일 마주했을 풍경…. 을사조약이 체결되기 불과 5개월 전 ‘묵서가국’이라 불리던 멕시코로 떠난 조선인들이 있었다. 망조에 기운 나라를 떠나 살길을 도모했던 사람들은 애니깽 농장으로 가축처럼 팔려가 노예보다 못한 삶을 산다. 작렬하는 유카탄 반도의 햇볕을 피하기 위해 농부들은 새벽 네다섯 시 검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노동을 시작했다. 하루 일해 겨우 하루 먹고살던 지독히도 고된 삶. 그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이들이 이역만리 타국에서 대한독립을 위해 사력을 다했을 줄은. 인도에 간 한국광복군, 애니깽 농부들, 체 게바라의 동지, 한인 최초 백만장자, 우리 공군이 시작된 땅… 당신이 들어보지 못한 바다 건너 독립운동 이야기 《뭉우리돌의 바다》는 전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독립운동의 흔적을 발굴하고 기록한 최초의 다큐멘터리다. 작가는 세계일주를 하던 중 인도 델리 레드 포트에서 우연히 그 장소가 한국광복군의 훈련지였음을 알게 된다. “인도라니, 그것도 우리 독립운동사라니!” 임시정부에서 파견한 아홉 명의 한국광복군이 인도에서 영국군과 함께 일본에 맞서 싸웠던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접한 이야기에 작가는 번개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는다. 신내림 같았다는 그날 이후 홀린 듯 독립운동가들의 삶에 사로잡혀 그들의 흔적을 좇기 시작한다. 독립기념관 자료를 샅샅이 뒤져 주소 한 줄, 사진 한 장으로만 남은 국외독립운동사적지를 찾아다녔다. 2017년부터 카메라와 배낭을 메고 수차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