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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다시 서는 60년을 위해… 친일후손의 고백

2008년 8월 27일 679

    노컷뉴스 강인영 기자   친일 인명사전이 만들어진다면 ‘당연히’ 할아버지의 이름이 기재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는 이 씨는 할아버지의 친일 사실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단호한 입장을 나타냈다. 당시 고등관인 군수는 식량공출과 노무자 징용 등을 맡아 하는 일선 행정기관의 실질적 책임자로, 농민들이 부당한 억압을 받고 독립 운동가들이 시베리아 벌판에서 생목숨을 잃을 때 관료로 인정받고 그 자리에 섰다는 사실만..<기사 발췌>     다시 서는 60년을 위해… 친일후손의 고백 (노컷뉴스, 08.08.16)

시민단체 활동가를 놀게 하자

2009년 4월 23일 794

신명식기획이사 진보진영에게 지난 해 촛불시위는 희망이자 재앙이었다. 대선 이후 갈 길을 못 찾던 진보진영에게 ‘롱테일’의 법칙이 관철되는 대중운동은 분명한 희망이었다. 그러나 좌편향된 일부 진보세력들은 이 희망을 재앙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들은 ‘우매한’ 중고등학생들이 열어놓은  놀이판을 ‘지도’해야 한다는 조급함과 강박감에 빠졌던 것 같다.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 주변사람들을 둘러싼 추문은 진보진영에게는 대재앙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도 얼굴이 뜨겁고, 뒤통수가 간지럽다. 그들은 역사는 쉼 없이 전진해야 한다는 소박한 믿음을 갖고 살아온 사람들을 배신했다. 그 후유증은 크고 깊을 것 같다.진보 또는 좌파들의 도덕성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온다. 그렇지만 자칭 ‘잃어버린 10년’ 동안 할 건 다 하고 살아 온 정치인,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게 능사인 일부 언론의 놀림감이 되는 것은 정말 참기 어렵다. 어찌하겠는가. 국민에게 외면당한 진보진영의 처지는 이렇게 비참하다. 채우려면 먼저 비워야 한다 진보진영이 국민의 마음을 다시 얻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물론 뼈저린 반성과 혁신, 그리고 도덕성 회복이 필요하다. 언제나 권력이라는 괴물은 범죄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금권과 권력의 비리를 감시하는 시민단체의 역할은 그 어느 정권에서도 필요하다.요즘 시민단체가 휘청거리고 있다. 검찰이 환경활동가 최 열씨를 감옥에 넣고 싶어 조바심을 내고, 일부 환경단체 실무자들이 횡령이라는 범죄를 저지르자 기업들은 시민단체에 후원금 내기를 꺼려하고 있다. 행정자치부가 폭력시위 전력이 있는 시민단체에 지원금을 지급하지 않겠다면서 블랙리스트를

日 의원들,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09.04.22)

2009년 4월 23일 818

<1보>日 의원들,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뉴시스)

친일인명사전 가처분소송 첫 심리

2008년 8월 21일 777

    민족문제연구소   지난 7월 11일 화가 장우성의 유족이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에 제기한 친일인명사전 ‘발행 및 게시금지가처분’ 소송에 대한 첫 번째 심리가 8월 19일 열렸다.이날 재판부는 유족 측의 가처분 신청서와 연구소 측의 변론 준비서면에 대한진술을 청취하는 등 심문 절차를 진행하였으며, 유족 측의 자료보완 요청을 받아들여 9월 9일 2차 심리를 갖겠다고 결정했다.     관련기사 33년째 ‘방치된 열사’(서울신문, 07.02.28)유관순 열사 ‘민족소녀’ 모습으로(서울신문, 07.02.28)친일작가 논란 유관순영정 천안박물관 보관(연합뉴스, 06.12.06) 친일논란 두 인물 기념관, 홍난파 ‘보류’ – 장우성 ‘강행’(한겨레신문, 05.08.30)

일본 중참의원 87명, 야스쿠니 신사 집단 참배(09.04.22)

2009년 4월 23일 593

일본 중참의원 87명, 야스쿠니 신사 집단 참배(뉴시스)

[내일신문 신문로칼럼]역사의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려면

2008년 8월 21일 708

    신명식(연구소 기획이사)   9박10일 동안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일행과 함께 극동시베리아를 다녀왔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 4000여km를 열차를 타고 이동하며 일제하 항일투쟁의 현장을 둘러보았다. 시베리아는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였다. 조선백성들은 1860년부터 연해주로 이주 했다. 이들은 왕조의 폭정과 대기근을 피해서 국경을 넘었다. 1910년 무렵 15만 명 이상이 연해주를 비롯해 극동시베리아 일대에 살고 있었다. 큰 농장을 개척해 많은 돈을 번 사람도 나왔다. 1905년 조선왕조가 멸망했다. 애국지사들이 연해주로 건너와 국권회복운동을 벌였다. 의병장 홍범도 유인석, 헤이그 밀사 이상설, 사학자 박은식 신채호,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이동녕, 임정 국무총리 이동휘 등이 1910년을 전후해서 연해주에 머물렀다. 이들에게 잠자리와 먹을 것을 제공하고, 학교를 짓고, 신식무기를 살 돈을 대고, 직접 전장에 나간 사람들이 바로 조선왕조가 버렸던 고려인이다. 안중근 의사를 후원하고 그가 죽은 후 유족을 돌 본 사람도 함경도 빈농 출신의 고려인 최재형 선생이었다. 이들은 1937년 가을 스탈린의 지시로 화물열차에 실려 40일을 이동한 끝에 중앙아시아 황무지에 버려졌다. 17만여 고려인은 그곳에서 다시 삶의 터전을 일으켰다. 해외동포를 돕는 선한 사람들 1991년 소연방 해체 이후 이슬람 문화권인 중앙아시아에 민족주의 열풍이 불었다. 극동러시아 일대로 귀환한 고려인이 벌써 5만명을 넘었다. 지금도 이주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이 통한의 땅에서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 장민석씨는 1987년 경원세기 노동조합의 민주화투쟁 이후 노동계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람이다. 그는 3년 전 막내아들을 데리고

외교부 “아소 日총리 야스쿠니 봉납, 역사인식 유감”(09.04.21)

2009년 4월 23일 603

외교부 “아소 日총리 야스쿠니 봉납, 역사인식 유감”(뉴시스)

“‘친일파’와의 싸움은 계속된다”

2008년 8월 18일 830

  홍성태 상지대 교수   이번의 광복절은 더욱 더 그렇다. 친일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의 상식이지만, 여기서 나아가 그들이 아예 광복절을 폐기하려고 획책할 줄은 차마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과거가 없이는 현재가 없으며 미래도 없다는 사실을 여기서 명확히 확인하게 된다. 광복과 함께 친미파로 둔갑한 친일파는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면에서 지배력을 확보하고, 식민과 친일의 역사를 지워 없애기 위해 최.. <기사 발췌>     “‘친일파’와의 싸움은 계속된다”(프레시안, 08.08.15)

日아소 총리,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 바쳐…파문 예상(09.04.21)

2009년 4월 23일 810

日아소 총리,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 바쳐…파문 예상(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