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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YTN라디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1~18편

2021년 4월 15일 724

민족문제연구소는 2017년 『항일음악 330곡집』을 발간한 이후 <항일음악회> 개최 등 항일음악 보급을 통한 독립정신 선양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YTN 라디오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자문을 받아 2020년 11월 ‘국치추념가’를 시작으로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를 방송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 18편 : 대한혼가 _ 김재홍 함경북도지사(규암 김약연 선생 증손자) ☞ 17편 : 희망가 _ 김수옥(우사 김규식 선생 손녀) ☞ 16편 : 목동가 _ 김정륙(독립운동가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아들) ☞ 15편 : 고려인 홀로아리랑 _ 안톤 강(독립운동가 유상돈 선생 증손자) ☞ 14편 : 여옥사_8호감방의노래 _ 김정애(유관순 열사 조카 며느리) ☞ 3·1절특집: 끝나지않은 노래’독립운동歌’ ☞ 13편 : 기전사가 _ 정철승(독립운동가 규운 윤기섭 장손) ☞ 12편 : 최후의결전 _ 우원식 국회의원(임시정부 법무국 비서국장 김한 외손자) ☞ 11편 : 올드랭사인애국가 _ 김주(심산 김창숙 손녀) ☞ 10편 : 광복군아리랑 _ 장병화(광복군 장이호 지사 장남) ☞ 9편 : 앞으로행진곡 _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김의한, 정정화 외아들) ☞ 8편 : 독립군가(임청각이 복원되던 날) ☞ 7편 : 신흥학우단가 _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의장(우당 이회영 손자) ☞ 6편 : 새야새야파랑새야 _ 정남기(동학농민군 비서 정백현 손자) ☞ 5편 : 격검가 _ 차영조(동암 차리석 아들) ☞ 4편 : 압록강행진곡 _ 광복군 김영관 지사 ☞ 3편 : 신흥무관학교교가 _ 이항증(석주 이상룡 증손자)

[경향신문] [손호철의 응시]‘4·19탑’ 광화문에 새로 만들자

2021년 4월 14일 609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부단한 대화이다.” 세계적인 역사학자 E H 카의 유명한 역사론이다. 역사를 과거 ‘사실’의 누적으로만 보는 실증주의와 ‘사실’을 무시하고 현재의 시각만 강조하는 사관주의를 모두 비판하는 말로 유명하다. 코로나19 때문에 외국을 가지 못하는 김에 한국현대사 답사를 하면서 이 말에 대해, 특히 ‘역사 기억하기’, 아니 ‘역사 만들기’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난’으로 취급받던 동학을 ‘혁명’으로 복권시킨 것은 역설적이게도 박정희다. 아버지가 동학접주였던 그는 집권초기 동학혁명기념탑을 건립했고 5·16이 “동학혁명과 일맥상통한다”고 말했다. 유신 다음해에는 동학군이 일본군에게 몰살당한 우금치에 위령탑을 세워주고 친필로 글씨까지 써줬다. 하지만 설립문에 유신이 ‘동학혁명의 순국정신’을 되살리는 것이라고 써, 민주화 이후 민주인사들이 그 글씨를 파버렸다. 전두환도 광주학살로 집권한 뒤 농민군의 첫 승리지인 정읍 황토현에 전봉준 동상 등 동학혁명기념시설을 만들었다. 쿠데타를 정당화하기 위해 동학을 이용한 것이다. 여권의 오만과 위선이 가져온 사필귀정의 참사 등 여러 현안에도 불구하고 ‘한가롭게’ ‘역사 만들기’를 이야기하는 것은 다음주가 4·19혁명 61주기이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4·19를 짓밟은 5·16쿠데타세력이 만든 ‘거짓 4·19 기념사업’을 이제는 바로잡아야 한다. “여기는 1960년 4월 불의와 독재에 항쟁하다가 희생된 185명의 젊은 혼들을 모신 곳이다. 이들의 정신을 길이 받들고자 1962년 3월23일 재건국민운동본부 안에 각계각층을 망라한 기념탑 건립 위원회를 구성하고(아래 생략).” 나 자신 대학시절 감옥도 가고 제적도 당한 학생운동 출신인 만큼 수유리 4·19민주묘지는 가끔 찾아가는 ‘마음의

[인천일보]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 역사 탐방 프로그램 ‘4.19 혁명 운동 현장 답사’ 개최

2021년 4월 19일 1574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는 19일 오후 인천 숭의동과 중구청 일원에서 ‘인천지역 4.19 혁명 운동’ 역사 현장 답사 행사를 개최했다. 인천광역시의 지원을 받아 ‘2021년 인천지역 역사현장 시민답사 프로그램’으로 진행된 이 행사에는 일반 시민과 지부 회원 등 40여 명이 참석했다. 옛 시외버스터미널 주변인 숭의역에서 집결한 답사단은 오후 2시부터 숭의동 공구상가, 싸리재, 경동파출소 자리를 거쳐 옛 인천시청 청사인 중구청 앞까지 2시간여의 탐방을 이어갔다. 해설을 맡은 김현석 인천민속학회 이사는 4.19 혁명의 흔적이 남아있는 현장을 지나면서 당시의 전개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 1960년 3.15 부정선거 하루 전 시작된 인천지역 학생 시위 인천지역의 4.19 혁명은 이승만 정부에 의해 자행된 부정선거가 도화선이 됐다. 제4대 대통령과 제5대 부통령을 동시에 선출하는 1960년 3.15 선거일을 앞두고 상황이 불리해진 이승만 정권은 공무원과 경찰은 물론 정치깡패까지 동원한 부정선거를 획책했다. 이에 항의하는 대구학생들이 2월 28일 의거를 일으키자 이 불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인천으로 번져왔다. 선거 하루 전인 3월 14일 인천고와 제물포고, 송도고, 동산고 학생 30여 명이 ‘공명선거 실시’와 ‘학원자유화’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다음날인 3월 16일에는 민주당 인천시당 당원들이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를 준비했으나 경찰의 원천봉쇄로 좌절되고 말았다. – 학생, 노동자, 시민들, 이승만 정권 퇴진 시위에 가세 4월 19일에 이르자 인천지역 학생들과 인천항 부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일제히 거리로 뛰쳐나와 이승만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를 벌였다. 이날

[KBS][日역사부정 실체]① “위안부는 계약 매춘부” 램지어 주장, 어디서 왔나?

2021년 4월 12일 1588

위안부를 ‘자발적 계약 매춘부’라 규정한 마크 램지어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의 국제학술지 논문이 국내외에서 파문을 일으킨 지 두 달여가 지났다. 많은 연구자들이 램지어 교수의 심각한 연구윤리 위반과 왜곡된 역사인식을 비판하며 논문 철회를 요구했지만, 출판사 측은 논문 출간 방침을 아직 거둬들이지 않고 있다. 램지어 교수의 논문은 학문적 진실성 측면에서뿐 아니라 위안부 강제동원 부정 등 기존 역사부정주의자들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KBS는 국내외 일본군 위안부 전문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일본과 한국의 역사부정주의자들의 논법과 주장이 어떻게 하버드대와 국제학술지의 형식으로 출현할 수 있었는지 집중 추적하는 기사를 4월 12일부터사흘에 걸쳐 연재한다. 이를 통해 램지어 교수 뒤에 숨어 있는 한미일 역사부정·혐오 네트워크의 실체를 드러내고자 한다. ■ 램지어의 역사부정주의적 시각, 어디서 왔나? ‘태평양 전쟁에서 성을 위한 계약’. 지난해 12월 1일 ‘국제 법경제학 리뷰’ 온라인판에 실린 램지어 교수의 논문 제목이다. 논문의 2개 키워드인 ‘매춘’ ‘노역 계약’이 분명히 가리키듯 램지어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가 노역 계약을 맺은 매춘부였다는 주장에 논의를 집중한다. 자발적 계약에 따라 성매매 여성이 되었기 때문에 일본군의 강제 동원은 없었고 성노예도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KBS는 이 같은 주장이 어디서 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램지어 교수 논문을 일본과 한국의 대표적 우파 학자의 저서와 비교해 보았다. 비교 대상은 일본 역사부정주의 대부라 불리는 하타 이쿠히코 전 니혼대학 교수의 1999년 학술서 ‘위안부와 전장의

[오마이뉴스] 김구의 평생 동지였지만 여관방을 떠돌던 독립운동가의 80대 손녀

2021년 4월 11일 2040

“불쌍한 우리 할아버지” 나는 심산의 손녀딸, 김주입니다 ① 봄기운이 벼락처럼 내달려 북한산 일대를 에워싸더니 만경대에서 멈칫하며 숨을 고른다. 이도 잠시 기운을 되찾은 봄장군은 사방에 꽃사태를 일으키며 수유리 벌판을 향해 진군했다. 그렇게 봄이 무르익은 날 김주는 우이동 솔밭공원에 있는 집에서 할아버지 심산 김창숙(아래 심산)의 묘소를 찾아 나섰다. 한번 다녀오면 만보나 되는 거리를 일주일에 두 번씩 거르지 않는다. 심산은 조선의 마지막 선비다. 그는 3·1 운동에 천도교, 불교, 기독교가 민족대표로 모두 참여했건만 유림이 빠진 것을 뼈저리게 반성한다. 그리고 기개를 잃지 않고 있는 선비들을 모아 파리강화회의에 보낼 유림(儒林)의 독립청원서를 만든다. 이를 지니고 상해로 건너가 영문으로 번역한 후 강화회의에는 물론 중국 내 각국 대사관에 발송하고 해외동포들에게도 보냈다. 그 후 임시정부수립에 참여했던 심산은 1927년 치질 치료차 입원했던 병원에서 밀정의 신고로 일본경찰에 체포된다. 나가사키를 거쳐 대구경찰서로 끌려와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오랜 징역 생활을 겪으며 ‘앉은뱅이’가 되고 말았다. 1941년생인 김주는 심산의 무릎 밑에서 컸다. 1934년 일제는 심산의 건강이 악화되자 그를 병보석으로 풀어줬다. 고향인 경북 성주로 돌아왔지만 감시망은 여전히 촘촘했고 그런 심산에게 손녀딸은 말벗이고 위로였다. 곰방대를 가져오고 고물대는 손가락으로 할아버지의 뼈만 남은 다리를 주무르며 김주는 “아파? 아파?” 하고 눈물 그렁한 눈으로 할아버지를 쳐다봤다. 심산은 그런 김주를 품에 끌어안고 지긋한 수염으로 볼을 비비곤 했다. 김주가 중학교 때는 성균관대 담벼락에 늘어섰던

[KBS] 익숙한 금지곡?…시립합창단 ‘친일 음악가’ 곡 논란

2021년 4월 10일 849

■ 공주시립합창단…’친일 음악가’ 곡 연주 논란 “봄과 어울리는 노래를 골랐을 뿐”이라고 합창단 관계자는 해명했습니다. 오는 20일 열릴 예정인 공주시립합창단 정기연주회 ‘꽃이 핀다’ 이야기입니다. 기획 공연을 제외하면 1년여 만에 열리는 정기 공연입니다. 많은 문화 행사들이 코로나19 때문에 취소되어온 가운데 계획된 공연이라 시민 관심도 높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공연을 앞둔 합창단이 왜 ‘해명’을 해야 했을까요? 공연이 때아닌 친일 논란에 휩싸였기 때문입니다. 공연에서 부를 노래 상당수가 ‘친일 음악가’들이 만든 곡이었습니다. 15곡을 부를 예정인데 6곡이 그랬습니다. 시가 주최하는 공연의 절반 가까이 ‘친일 음악가’가 만든 노래가 연주되는 셈이었습니다. ■ ‘친일 음악가’…징병제 축하하고 군가 지도하고 공연에 포함된 친일 음악가는 현제명, 김동진, 이흥렬입니다. 현제명의 ‘희망의 나라로’, 김동진의 ‘진달래꽃’, ‘수선화’, ‘신아리랑’ 그리고 이흥렬의 ‘코스모스를 노래함’, ‘부끄러움’이 공연에서 연주될 예정이었습니다. 행적에는 논란이 있지만, 친일인명사전 등은 이들을 친일 예술인으로 분류합니다. 특히 현제명은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이 대표적인 친일 음악가로 꼽습니다. 일제의 징병제를 축하하는 연주회에 나서고 일제를 찬양하는 음악을 만들거나 연주했기 때문입니다. 라디오 방송에서 일본 군가를 지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현제명의 대표곡 중 하나가 공주시립합창단이 선택한 ‘희망의 나라로’입니다. 아래는 ‘희망의 나라로’ 노랫말 중 일부입니다. 배를 저어가자 / 험한 바다물결 건너 저편 언덕에 / 산천 경계 좋고 / 바람 시원한 곳 희망의 나라로 돛을 달아라 부는 바람맞아 / 물결 넘어 앞에 나가자 / 자유 평등 평화

[오마이뉴스] 노량해전 자리에 일본 기술과 자본으로 만든 다리

2021년 4월 7일 1474

[세상을 잇는 다리] 남해대교 앞에서 묻는다, 우리는 꼭 그리 했어야만 했을까? 이 다리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어느 문구 하나가 떠오른다.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I would prefer not to)”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Bartleby, the Scrivener)>에 나오는 말이다. 붉은 옷을 입은 이 다리는 ‘당시 우리는 꼭 그리 했어야만 했을까?’ 하고 자문하게 만든다. 우리 주체성과 자유의지를 무엇으로 담보해 낼지 충분히 고민하지 않고 저지른 어리석은 행위다. 노량해협을 건너는 남해대교 이야기다. 우리나라 최초 현수교는 1973년 5월 춘천에 만들어진 등선교(登仙橋)로, 철거되어 사라지고 없다. 두 번째 현수교가 남해대교다. 1968년 5월 10일 착공하여 1973년 6월 20일 완공된다. 총길이 660m(128 + 404 + 128)다. 남해군과 하동군에 각각 위치하는 ‘노량리’를 서로 연결하는 다리다. 준공 당시 아시아 최대 현수교였다. 남해안을 대표하는 랜드 마크(Land mark)로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모두 이 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모양과 색깔도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와 유사하다. 이웃한 광양만엔 우리나라 최대길이 이순신대교가 있다. 주 경간 1,545m로, 이는 이순신 장군 탄신년도를 상징한다. 두 다리가 위치한 곳은 정유재란 최후 격전지다. 바로 ‘순천 예교성(曳橋城) 전투와 노량(관음포)해전’이다. 정유재란 최후의 전투 정유년 9월, 명량에서 왜군은 참패를 당한다. 이들은 전술을 바꿔 순천에서부터 울산까지 왜성을 쌓아 둔취한다. 고니시 유키나가가 쌓은 순천 왜성은 철옹성이다. 5층 천수각과 각진 내·외성을 몇 겹으로 둘렀다. 성안 왜군은 1만 3천이다.

[오마이뉴스] 일제시대에도 없던 건물… 연해주에 세운 독립운동가

2021년 4월 6일 1677

[세상과 도서관이 잊은 사람들] 상하이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 이동휘 ② – 이 기사는 1편 조선인 최초로 ‘사회주의 정당’을 만든 사람에서 이어집니다. “한인사회당은 그 뒤 상해파 고려공산당으로 개명되나 이동휘가 이 당을 만든 것은 단순히 한국 독립 후원자를 얻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그럴 것이 이동휘란 사람은 원래 구한국군의 정령(正領) 출신으로 열렬한 반일민족운동자이지, 사회주의 이념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만큼 초기 독립운동가 가운데는 나라의 독립운동을 위해 짐짓 공산당 조직에 몸담은 사람이 많았는데 볼셰비키 집단이 이들을 항일운동에 이용했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이동휘는 도량이 넓고 활동력이 큰 독립운동가였다.”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 ‘한인사회당’ 한인사회당은 조선인 최초 사회주의 정당일 뿐 아니라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조직된 사회주의 정당이다. 1918년 출범한 한인사회당은 1921년과 1922년 각각 창설된 중국공산당과 일본공산당보다 더 빨리 탄생했다. 성재 이동휘는 한인사회당을 기반으로 연해주에서 공산주의 운동을 벌였다. 한인사회당은 기관지를 만들고, 군사학교를 세웠다. 100여 명으로 구성된 한인적위대(韓人赤衛隊)도 구성했다. 한인적위대가 참여한 우수리 전투는 러시아 한인이 참여한 첫 무장투쟁이었다. 한때 개신교도였던 이동휘는 왜 사회주의자가 되었을까? “참된 그리스도인은 사회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참된 사회주의자는 그리스도인이 틀림없다.”(A true Christian must be a socialist and a real socialist must be a Christian) 칼 바르트(Karl Barth)의 말처럼, ‘개신교도’였던 그는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그의 종교이자 이념이었던 ‘독립’ ‘무인’이었던 이동휘가 ‘혁명가’의 길을 걸은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인지 모른다. 여운형은

[박물관은 뭐하니] 인턴편 Ep.3 어서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처음이지? ② 미션 찾기

2021년 4월 2일 584

  [박물관은 뭐하니] Ep.3 어서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처음이지? ② 미션찾기 ※관련영상  ☞유튜브: [박물관은 뭐하니] 인턴편 Ep.1 인턴은 뭐하니 VLOG  ☞유튜브: [박물관은 뭐하니] 인턴편 Ep.2 어서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처음이지? ① 미션찾기 

[YTN라디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1~17편

2021년 4월 1일 1109

민족문제연구소는 2017년 『항일음악 330곡집』을 발간한 이후 <항일음악회> 개최 등 항일음악 보급을 통한 독립정신 선양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YTN 라디오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자문을 받아 2020년 11월 ‘국치추념가’를 시작으로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를 방송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 17편 : 희망가 _ 김수옥(우사 김규식 선생 손녀) ☞ 16편 : 목동가 _ 김정륙(독립운동가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아들) ☞ 15편 : 고려인 홀로아리랑 _ 안톤 강(독립운동가 유상돈 선생 증손자) ☞ 14편 : 여옥사_8호감방의노래 _ 김정애(유관순 열사 조카 며느리) ☞ 3·1절특집: 끝나지않은 노래’독립운동歌’ ☞ 13편 : 기전사가 _ 정철승(독립운동가 규운 윤기섭 장손) ☞ 12편 : 최후의결전 _ 우원식 국회의원(임시정부 법무국 비서국장 김한 외손자) ☞ 11편 : 올드랭사인애국가 _ 김주(심산 김창숙 손녀) ☞ 10편 : 광복군아리랑 _ 장병화(광복군 장이호 지사 장남) ☞ 9편 : 앞으로행진곡 _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김의한, 정정화 외아들) ☞ 8편 : 독립군가(임청각이 복원되던 날) ☞ 7편 : 신흥학우단가 _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의장(우당 이회영 손자) ☞ 6편 : 새야새야파랑새야 _ 정남기(동학농민군 비서 정백현 손자) ☞ 5편 : 격검가 _ 차영조(동암 차리석 아들) ☞ 4편 : 압록강행진곡 _ 광복군 김영관 지사 ☞ 3편 : 신흥무관학교교가 _ 이항증(석주 이상룡 증손자) ☞ 2편 : 안중근옥중가 _ 함세웅 신부 ☞ 1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