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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교과서 수정, 3번째 소송 돌입(09.02.24)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 3번째 소송 돌입(헤럴드경제)
“박정희 간도특설대 복무” 기술한 책 ‘무죄’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0902/h2009020902590722000.htm|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37617.html|http://www.segye.com/Articles/NEWS/SOCIETY/Article.asp?aid=20090208002088&subctg1=&subctg2=|http://imnews.imbc.com/replay/nw1200/article/2281452_2769.html|http://www.heraldbiz.com/SITE/data/html_dir/2009/02/07/200902070074.asp|http://www.newsis.com/article/view.htm?cID=article&ar_id=NISX20090207_0001311486|http://www.kukinews.com/news/article/view.asp?page=1&gCode=soc&arcid=0921184196&cp=nv|
금성 역사교과서 저자, “교과서 수정지시 위법” 행소 제기(09.02.24)
금성 역사교과서 저자, “교과서 수정지시 위법” 행소 제기(뉴시스)
친일조각가 작품 광화문에 설 수 없다
서울시 ‘세종대왕 동상’ 새로 만들기로 민족문제연구소 ▲ 친일조각가 김경승 서울시는 오는 6월 완공되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 기존 이순신 장군 동상과 나란히 세종대왕 동상을 세울 예정이라고 1월 11일 발표했다. 서울시는 처음에 덕수궁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을 그대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반대 의견이 많아 새로 세종대왕 동상을 제작해 설치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1월 28일 추가로 발표했다.서울시가 세종대왕 동상을 새로 제작하는 방안을 검토하게 된 배경으로 현재 덕수궁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이 이순신 장군 동상보다 크기가 작고 형태도 서 있는 모습의 이순신 장군 동상과 다른 앉아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현재 세종대왕 동상을 제작한 조각가가 대표적인 친일조각가인 김경승이라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작년 말 이 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서울시 고위 공무원이 연구소에 직접 전화를 걸어 김경승의 친일행적에 대해 문의한 적이 있다.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이기도 한 김경승(1915~1992)은 친일미술인 단체인 <조선미술가협회>에 가입한 것은 물론 ‘목동’ ‘제4반’ 등 친일성 짙은 작품을 만들었다. 이러한 친일 경력 때문에 해방 직후 만들어졌던 <조선미술건설본부>는 일제 잔재 청산을 내걸고 이상범 김은호 김기창 심형구 윤효중 배운성 송정훈 윤희순 등과 함께 김인승·경승 형제를 친일작가로 분류하여 이들의 단체 가입을 불허하기도 했다.김경승은 해방 후 오히려 승승장구를 거듭한다. 김경승의 대표적인 작품을 나열해 보면 우선 서울 남산공원에 김유신 장군상, 안중근 의사상, 김구 선생상 등이 있다. 그리고 도산공원에 ‘하일 히틀러!’를
룽징 3·13만세운동(09.02.24)
룽징 3·13만세운동(동아일보)
최근 확인된 독도 관련 일본법령이 갖는 의미
올 초 독도가 일본 영토가 아님을 나타내는 일본 현행 법령 2건이 공개돼 화제가 되었다. 일본 정부가 1951년 6월6일 공포한 ‘총리부령 24호’와 같은 해 2월13일 공포된 ‘대장성령 4호’ 등 2건의 법령으로, 울릉도와 독도, 제주도를 일본의 부속도서에서 제외시켜 ‘독도가 일본의 고유 영토가 아님’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이번에 공개된 법령이 갖는 의미와 전망을 담은 글을 독도문제 전문가인 김점구 회원이 보내왔다. <편집자 주> 김점구 회원(독도수호대 대표) 독도를 일본영토에서 제외한다는 일본 현행법령이 발견되었다. 1951년 2월 13일 공포된 대장성령 제4호「구령에 따라 공제조합 등으로부터 연금을 받는 자를 위한 특별조치법 제4조 제3항의 규칙에 근거하는 부속 섬을 정하는 성령」과 1951년 6월 6일에 공포된 총리부령 제24호「조선총독부 교통국 공제조합의 본방(일본) 내에 있는 재산정리에 관한 정령의 시행에 관한 총리부령」이다. 대장성령 제4호「구령에 따라 공제조합 등으로부터 연금을 받는 자를 위한 특별조치법 제4조 제3항의 규칙에 근거하는 부속 섬을 정하는 성령」 (1951년 2월 13일 대장성령 제4호)최종개정년월일:1968년 6월26일 대장성령 제37호 구령에 따른 공제조합 등으로부터의 연금수급자를 위한 특별조치법 제4조 제3항의 규칙에 근거하는 부속 섬을 정하는 성령을 다음과 같이 정한다.구령에 따른 공제조합 등으로부터의 연금수급자를 위하는 특별조치법 제4조 제3항에 규정하는 부속 섬은 다음에 열거하는 섬 이외의 섬을 말한다.1. 지시마열도, 하보마이군도, 시코단섬2. 울릉도, 죽도 및 제주도 대장성령 제4호 총리부령 제24호 위 그림을 클릭하면 큰 그림을 보실 수 있습니다. 대장성령 제4호는「구령에
3·1 운동 90돌 다시 찾은 현장(09.02.13)
3·1 운동 90돌 다시 찾은 현장(동아일보)
故조문기 선생 1주기 추모식 엄수
2008년 2월 5일 정오 대전 국립묘지에서 민족문제연구소 제2대 이사장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고 조문기 선생의 1주기 추모식이 2월 5일 낮 12시 정각 대전국립묘지 애국지사 제3묘역(묘지번호 705)에서 유족과 전국에서 모인 회원 등 1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엄숙히 거행됐다.이규봉 대전지부장의 사회로 진행된 추모식은 이봉원 운영위원장이 연구소 대표 인사를 했고 유종하 <광복회> 수원지회장이 고인의 약력을 소개했다. 이어서 박중기 <민족민주열사, 희생자 추모단체 연대회의> 의장, 독립운동가 김근수 선생의 후손인 김원웅 전 국회의원, 연구소 상근자를 대표해 조세열 사무총장이 각각 추모사를 낭독했다.고인의 육성을 듣는 순서에서는 고인과의 추억을 간직한 많은 분들이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참배객들의 헌화에 이어 조문기 선생의 부인인 장영심 여사가 가족을 대표해 감사 인사를 하는 것으로 추모식행사를 모두 마쳤다.회원들은 추모식 후에 1945년 7월 24일 ‘부민관 폭탄의거’의 동지였던 유만수 선생 묘소를 찾아 참배했는데, 유만수 선생의 비문은 조문기 선생이 쓰기도 했다. 이어서 백범 김구 선생의 어머니인 곽낙원 여사와 백범의 큰아들 김인 선생의 참배를 마친 회원들은 곧이어 대전지부의 안내를 받아 장군 제1묘역으로 이동해 친일파 김창룡 묘를 규탄 방문한 것을 끝으로 이 날의 모든 순서를 마쳤다.추모식 참가자들은 올해 ‘친일인명사전’을 성공적으로 발간하여 고인의 영전에 바칠 것을 굳게 다짐하며 아쉬운 작별을 하고 모두 헤어졌다. ▲ 조문기 애국지사 묘소 ▲ 이규봉 대전지부장의 사회로 추모식이 시작됐다 ▲ 고인 약력보고- 유종하 광복회 수원지회장 ▲ 추도사- 박중기
이토 히로부미에 바쳐졌던 비운의 문(09.02.24)
이토 히로부미에 바쳐졌던 비운의 문(연합뉴스)
언론, 고객을 두려워하라
신명식기획이사 피터 드러커는 ‘경제적 업적이야말로 기업의 으뜸가는 책임’이라고 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적어도 자기비용에 상응할 정도의 이익을 올리지 못하는 기업은 사회적으로 무책임하며, 사회적 자원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해마다 신년 초 며칠 동안 대부분 일간신문의 1면 하단은 대기업 광고로 채워졌다. 그러나 올해는 삼성조차 1면 광고를 싣지 않았다. 신문의 가구 정기구독률은 1996년 69.3%에서 2008년 36.8%로 추락했다. 피터 드러커의 주장을 따르면 신문기업의 존립 근거가 거의 바닥을 드러낸 셈이다. 신문의 위기는 공급과잉과 공공성 상실에서 시작됐다. 중장기적으로는 변화하는 미디어환경에 적응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당면한 위기를 넘어설 비상구는 있다. 민주화 과정에서 신문의 역할이 컸던 한국 사회는 신문기업에 ‘공공성’이라는 면책조항을 폭넓게 인정해주고 있다. 신문의 공공성은 무엇인가? 이 대목에서 다시 피터 드러커의 말을 인용하자. 그는 기업의 사명과 목적을 ‘고객을 만족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2월 국회에서 미디어업계의 최대 관심사는 미디어법안 개정이다. 업계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정치적 이해관계도 민감하다. 그럴지라도 정상적인 언론이라면 고객이 판단을 내릴 근거, 즉 ‘상식’에 기초한 ‘사실’을 제공해야 할 책무가 있다. 만약 언론이 사실보도를 외면하고 정치구호성 보도, 왜곡·허위보도를 일삼는다면 언론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신문의 존립 기반 바닥 드러나따라서 미디어법안을 둘러싼 2차 대결은 ‘사실’에 대한 규명에서 시작해야 한다. 1차 충돌과정에서 대부분 언론은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을 선택해서 강조하는 보도행태를 보였다. 일부 언론이 온전한 정보를 제공하려 했지만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