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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특강] ‘지금, 언론 개혁을 말한다’ – 5강.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2020년 8월 25일 832

[조선·동아 100년 기획전시 연계특강] ‘지금, 언론 개혁을 말한다’ 5강.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왜 언론은 갈등과 불신을 만드는가? – “기레기”의 탄생과 “가짜뉴스”’ 총 6강으로 훌륭한 강사님들이 많이 나오십니다. 전체 강의 보러가기 ↓↓↓↓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 민족문제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시청자 여러분들께 앞으로도 좋은 강의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많은 후원과 관심 부탁드려요~!! 구독과 좋아요~댓글도 많이 남겨주시면 큰 힘이 됩니다^^!

민족사랑 2020년 08월호

2020년 8월 25일 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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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지금, 언론 개혁을 말한다’ – 4강. 정준희 교수 편

2020년 8월 24일 1062

[조선·동아 100년 기획전 ‘일제 부역언론의 민낯’ 전시연계특강] ‘지금, 언론 개혁을 말한다’ 4강 – 정준희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겸임교수 ‘민주화 이후 한국언론, 다시 개혁을 말한다’ 총 6강으로 훌륭한 강사님들이 많이 나오십니다. 전체 강의 보러가기 ↓↓↓↓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 민족문제연구소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시청자 여러분들께 앞으로도 좋은 강의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많은 후원과 관심 부탁드려요~!! 구독과 좋아요~댓글도 많이 남겨주시면 큰 힘이 됩니다^^!

[한겨레] [세상읽기] 레지스탕스를 추모하는 법 / 조형근

2020년 8월 25일 866

조형근 ㅣ 사회학자 1941년 10월22일, 나치에 점령된 프랑스 루아르아틀랑티크의 샤토브리앙 수용소에서 17세 소년 기 모케가 편지를 쓴다. 처형이 눈앞이었다. “사랑하는 엄마, 아끼는 동생, 사랑하는 아빠, 전 곧 죽어요. … 살고 싶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제 죽음이 쓸모가 됐으면 하고 바라요. 17년 반, 제 삶은 너무 짧았네요. … 엄마, 용기를 내서 슬픔을 이겨내겠다고 약속해줘요. … 더 이상 쓸 수가 없어요. 엄마, 세르주, 아빠, 모두를 떠나요. 제 모든 어린 마음을 담아 키스해요. 용기를 내세요!” 도대체 무슨 사연일까? 이틀 전 낭트에서 독일군 책임자가 암살당했고, 보복으로 레지스탕스 48명이 처형대에 섰다. 파리에서 유인물을 배포하다 체포된 모케도 포함됐다. 오후 4시에 처형됐다. 편지는 용케 부모의 손에 닿았다. 해방 후 거룩한 영웅이 되었다. 2007년 5월16일, 프랑스 대통령이 된 사르코지가 모케의 기억을 되살렸다. 취임식 후 35명의 레지스탕스가 처형된 불로뉴 숲을 찾아 모케의 편지를 낭송했다. 조국을 위해 나치에 맞선 모케는 현대 프랑스 청년의 귀감이라며 추모했다. 그의 기일에 고등학교에서 편지를 읽히겠다고 선언했다. 프랑스가 들끓었다. 애국심으로? 아니, 반발로! 숭고한 목적에 봉사하는 삶이라는 관념이 지금 젊은이들의 현실과 맞지 않는다거나, 세속주의 교육은 이런 종류의 가르침을 금지해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데올로기 왜곡이라는 비판이 가장 뜨거웠다. 모케는 열혈 공산주의자였다. 낭트의 암살자들도, 함께 처형당한 이들도 모두 공산주의자였다. 나치만큼이나 자본주의도 증오했다. 사르코지는 그 맥락을 제거하고, 그저 ‘순수한 애국자’로만 추모했다.

[오마이뉴스] “일왕 머리를 베었어야” 법정서 일갈한 선비의 사연

2020년 8월 24일 1291

8월26일, 순국 102주기 맞는 만송 유병헌(1842~1918)을 기리며 8월 26일은 경북 칠곡의 선비 유병헌(劉秉憲, 1842~1918)의 순국 102주기다. 1918년 이날, 그는 보안법과 주세령 위반으로 복역하던 대구 감옥에서 8일간의 단식 끝에 자신의 목숨을 거두었다. 향년 77세. 을사늑약이 체결되었을 때 오적(五賊)을 성토하면서 시작된 그의 항일 투쟁은 일제 치하의 납세뿐 아니라, 토지조사 사업까지 거부하기에 이르렀고 세 차례의 투옥 끝에 마침내 옥중 순국한 것이다. 유병헌은 1842년 경상도 인동도호부(현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읍 숭오리 강진마을)에서 유익원의 맏이로 태어났다. 본관은 강릉, 호는 만송(晩松). 그는 진주 민란(1862)과 제너럴셔먼호 사건·신미양요(1871), 운요호사건(1875)과 강화도 조약(1876) 등을 겪으면서 청년기를 보냈다.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벼슬길로 나아가지 않고 향리에 칩거해 학문에 전념할 수밖에 없던 어지러운 시대였다. 1905년 일제가 을사늑약을 체결하면서 국권을 침탈하였을 때 그는 예순셋 노인이었지만, 이 강골의 선비는 서책을 덮고 조약의 무효화와 왜적 격퇴를 주장하는 상소로 여론을 환기하였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지 않아 결국, 경술국치(1910)에 이르자, 죽기를 각오하고 대궐을 바라보며 통곡한 뒤 곡기를 끊기도 했지만, 그는 일제에 맞서 싸우는 길을 택했다. 유병헌은 ‘오적 성토문(聲討文)’을 큰길 가에 게시하여 박제순·이지용·이근택·이완용·권중현 등 이른바 을사오적(五賊)과 송병준·조중응 등 정미칠적(七賊), 이용구 등 일진회의 매국 행위를 매섭게 꾸짖었다. 또, 경상·전라·충청 등 삼남의 시골 선비들에게 서찰을 보내 일제에 항거하기를 촉구했다. “한 나라에 해가 둘일 수 없다. 조선의 해는 고종황제뿐이다. 일왕(日王)은 인정할 수 없으니, 첫째, 망국의

[한겨레] 100년을 이어온 친일DNA…‘적반하장 조선일보’

2020년 8월 23일 1058

‘친일 청산’ 김원웅 광복회장 기념사… 조중동 등 비판 사설·칼럼 잇달아 실어 조선, 동아…일제 때 뚜렷한 ‘친일’ 행적 김이택 “부끄런 과거 이제라도 사죄해야” 해방 후 75년이 흘러도 친일 청산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친일에 앞장선 과거를 사죄하기는커녕 감추고 미화해온 이들이 많은데요. 대표적으로 올해 창사 100주년을 맞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있습니다. 이들이 광복절 75주년 행사에서 ‘친일 잔재 청산’을 요구한 김원웅 광복회장을 집중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김 회장의 광복절 기념사 이후 미래통합당과 <조선일보> 등은 “국민 편가르기”라고 비난하고, ‘친일 장사’로 깎아내리는 칼럼을 싣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김이택 <한겨레> 대기자는 ‘김이택의 저널어택’ 네 번째 시간에 “친일 행적이 지면에 뚜렷하게 남아 있는데도 국민과 독자 앞에 한번도 제대로 사과하지 않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광복회장을 비난할 자격이 있느냐”며 “적반하장”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어 “국민 편가르기라는 주장은 친일파들이 오랫동안 써먹어온 프레임”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조선일보>는 일본 강점기인 1937년부터, <동아일보>는 이듬해부터 폐간(1940년) 때까지 매해 1월1일 일왕 부부의 대형 사진을 1면에 실었고 <조선일보>는 제호 위에 칼라로 일장기를 새겨넣기도 했습니다. <조선일보> 사주 방응모와 <동아일보> 사주 김성수는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의 발기인이 돼 젊은이들에게 일제의 총알받이가 돼라며 징병과 학병을 독려하고 다녔고, 대법원은 이들의 행위를 ‘친일반민족행위’라고 판결문에 분명하게 못박았습니다. 지난 2018년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 정부가 수출규제에 나서자 <조선일보> 등은 무역보복을 먼저 시작한 아베 정부보다 우리 정부를 더 비난하고

[아주경제] 안익태·에하라·기시·박정희 등 애국가에 얽힌 기묘한 8각관계

2020년 8월 23일 1655

에하라 고이치등 일본인이 실제 애국가 작사자 8대 혐의기시와 에하라, 상상 그 이상 긴밀한 관계 20일 김원웅 광복회장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독일 연방 문서보관소’를 통해 확보한 안익태 작곡가의 ‘만주국 건국 10주년 음악회 지휘 동영상’을 공개했다. 김 회장은 “(애국가는) 저와 부모님도 불렀던 노래지만 저희들이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야 한다”면서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국가를 시대에 맞게 교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은 이미 두 번 교체했고 독일은 세 번 교체했다. 오스트리아는 다섯 번, 프랑스는 일곱 번 국가(國歌)를 교체했다”며 “108개 이상 나라가 국가를 지금 시대에 맞게 교체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국가를 교체하지 않은 극소수 나라 중엔 일본이 있다”면서 “(국가를 시대에 맞게) 고치지 않은 것도 일본을 따라가야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회장은 안익태 작곡가의 친일·친나치 행각과 애국가 표절의혹에 대해 “이미 음악계에는 역사적 상식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이어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고 친일 반민족 권력이 장악해온 시대를 조문하는 게 우리가 해야할 역사적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애국가 작곡자 안익태의 친일 및 친나치 행적은 기존에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노동은, 송병욱, 이경분, 이해영 선행 연구자가 지속적으로 제기해왔으며 많은 연구 성과도 있었다. 필자는 선행 연구 업적을 보완하는 의미에서 안익태의 보스이자 일제 고위 간첩인 에하라 고이치(江原耕一, 1897~1969년, 이하 ‘에하라’로 약칭)를 중심으로,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1897~1987년, 아베 신조 총리의 외조부, 이하 ‘기시’로 약칭), 박정희(1917~1979년, 창씨개명:

[동영상] 조선·동아 100년 기획전 ‘일제 부역언론의 민낯’

2020년 8월 22일 5622

□ 일시: 2020.8.11.(화)~10.25.(일) □ 장소: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 대표적인 족벌언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창간 100년을 맞았습니다. 이들은 일제 식민지배와 독재정권 하의 부역에 대한 단 한마디의 반성도 없이 민족·민주언론으로 자신들을 포장하는 데 여념이 없습니다. 해방 후 마땅히 청산되어야 했을 부역언론이 미군정기와 독재정권을 거치면서 주류 언론으로 자리잡고 무소불위의 성역이 되고 말았습니다. 제때 역사정의를 실현하지 못한 후과가 두고두고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들의 죄과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습니다. 일제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을 미화 찬양한 조선·동아의 행태는 단순한 부역이 아니라 전쟁범죄로 규정해야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전시가 ‘민족지’임을 자부하는 두 신문의 죄적을 실증적으로 고발함으로써 그 진면목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 주최: 민족문제연구소 □ 주관: 식민지역사박물관 □ 후원: 뉴스타파 · 민주언론시민연합 □ 자료협조: 국사편찬위원회 ·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 연계특강: ‘지금, 언론개혁을 말한다’ 총 6강 (민족문제연구소 유툽에서 만나세요~!)

[당진신문] 당진 남산공원과 문화원에 버젓이 세워진 친일파 공적비

2020년 8월 23일 1879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인태식, 홍난유 비석 방치 논란 친일 인물 알고도 쉬쉬한 문화원…친일잔재 청산에 소극적인 당진시 “제대로 된 전수조사로 독립운동가들이 예우받는 사회 만들어야” [당진신문=지나영 기자] 당진 남산공원에는 당진 출신의 관료·정치인 출신 인태식 씨의 공적비가, 그리고 당진문화원에는 1903년부터 1905년까지 당진군수로 재직한 홍난유 씨의 선정비가 세워져 있다. 두 사람은 모두 친일인명사전 명단에 수록된 친일 인물이다. 시민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화공간에 세워진 두 인물의 비석에는 그들의 공만 적혀 있을 뿐, 친일 행적에 대한 설명은 없다. 특히 인태식 씨는 대표적인 친일파로 분류되면서 익히 알려져 있었지만, 홍난유 씨는 당진시에서 파악조차 못했다. 친일 인물에 대한 전수조사를 지자체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다.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기획실장은 “작년 당진문화원에서 동학농민 관련 특강이 있어 방문했다가, 문화원을 둘러보던 중에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홍난유 씨의 비석을 발견했다”며 “특강이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홍난유 씨가 친일 인물이라고 말했더니, 이미 문화원 관계자는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당진시는 홍난유 씨가 친일 인물이라는 내용을 알고 있음에도 지금까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며 “친일 잔재 청산에 지자체와 관계자들이 적극적이지 않다”고 꼬집었다. 친일 인물 알고도 쉬쉬한 당진문화원 당진문화원 홈페이지에는 홍난유 씨의 이력 및 활동사항의 마지막에 “전남광주군수를 역임하면서 일제의 앞잡이 역할을 하여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에 수록되었다”고 언급되어 있다. 당진문화원 관계자는 “2년 전에 기존 남산 스포츠센터 인근에 있던 홍난유 씨의

[KBS] 안익태의 ‘애국가’와 ‘만주국’ 그리고 1942년 9월 베를린의 저녁

2020년 8월 22일 1406

1942년 9월 18일 저녁 7시 무렵 나치가 통치하고 있던 독일 베를린. 일본이 세운 만주국 건국 10주년을 축하하는 성대한 음악회가 열립니다. 여기서 ‘에키타이 안(Ekitai Ahn)’은 본인이 작곡하고 ‘에하라 고이치’가 작사한 대편성 오케스트라와 혼성 합창단을 위한 교향 환상곡 <만주국(Mandschoukuo)>을 직접 지휘합니다. ‘에키타이 안’은 애국가 작곡가로 알려진 안익태. 일본식 발음을 알파벳으로 표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만주국>의 합창 부분을 작사한 에하라 고이치는 베를린 주재 만주국 영사관의 참사관이었습니다. 주독 일본 첩보기관의 총책으로 활동한 정황이 담긴 기록도 남아있는데, 안익태는 바로 이 에하라 고이치와 함께 거주하며 <만주국>을 만든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날 음악의 합창 부분은 일본어로 불렸습니다. 가사 일부를 보면 만주국과 일본, 그리고 독일과 이탈리아까지 찬양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일본과 굳건히 연결되었네. 이 신성한 목표 속에 하나의 심장과도 같이, 영원한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라네, 독일이여, 또한 이탈리아여. 힘을 냅시다.” ■ <한국환상곡>과 <만주국>, 안익태와 에키타이 안 유럽에서 활동한 안익태가 처음부터 ‘에키타이 안(Ekitai Ahn)’이라고 본인 이름을 표기하지는 않았습니다. 1930년대 후반 자료에는 그의 이름이 ‘익태 안(Eak Tai Ahn)’이라는 표기로 남아있습니다. 발음으로 볼 때 일본식 발음표기로 바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안익태의 음악 역시 1930년대 후반과 1940년대는 다릅니다. 안익태는 우리가 아는 애국가의 곡조를 1935년에 작곡했고, 애국가 선율이 포함된 <코리아 판타지>라는 곡을 만들어 1938년 초연합니다. 이 당시 안익태가 인터뷰했거나 직접 기고한 글을 보면 독립, 동포, 민족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