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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역사’ 시즌 5 3화: 『압록강은 휴전선 너머 흐른다』 강주원 박사와 함께
[바로듣기] ☞ (4.21) ‘내역사’ 시즌 5: 3화: 『압록강은 휴전선 너머 흐른다』강주원 박사와 함께 ☞ (4.14) ‘내역사’ 시즌 5: 2화: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푸순의 기적’ 김효순 전 한겨레 기자와 함께 ☞ (4.07) ‘내역사’ 시즌 5: 1화: 『한국 첩보 현대사』”고지훈 연구원과 함께” ☞ (3.31) ‘내역사’ 시즌 5: 프롤로그: 민족문제연구소 상근활동가들과 함께 ☞관련기사: 남북 만남, 휴전선을 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책소개] 문화인류학자가 제안하는 남북교류의 새로운 해법 『압록강은 휴전선 너머 흐른다』 강주원 박사 압록강과 휴전선을 넘나드는 다양한 길 위에서의 끊임없는 남북 만남, 생생한 현장감이 넘치는 문화인류학적 시각으로 보면 남북 관계가 달리 보인다. 고정된 인식과 왜곡된 시선을 뛰어넘어 남북 교류의 새 해법을 찾는다! 2000년 이후 압록강과 두만강 현지를 수십 차례 드나들며 조사 연구한 저자는 이 책 『압록강은 휴전선 너머 흐른다』를 통해 정부 의존적이고 휴전선 중심적인 사고 방식을 벗어날 것을 제안한다. 저자는 중국과 북한의 국경 도시 단둥, 그리고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에서 남한, 북한, 중국, 북한화교 들의 활발한 무역과 교류 활동을 기록하여 휴전선 안에 갇혀 있는 우리에게 휴전선 너머에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소개한다. 저자_강주원 박사 서울대 인류학과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2012)를 받았다. 2000년부터 중국 단둥과 중·조 국경지역(두만강·압록강)을 찾아가고 있다. 그곳에 살고 있는 북한사람·북한화교·조선족·한국사람과 관계맺음을 하며 국경에 기대어 사는 이들의 삶을 기록하고 있다. 북한과 한국 사회를 낯설게 보고 만나는 노력을 하고 한반도의
[경향신문] “역사를 모르면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민족사 바로 세우고 ‘실천한 역사학자’
역사 지킴이 이이화 출판인은 자기 민족의 역사를 담아내는 책을 기획해야 한다는 신념 같은 것이 나에게 있다. 나는 1976년 출판사를 시작하면서부터 나름 우리 국가사회가 당면하는 문제를 ‘역사’라는 문제의식으로 풀어내는 책을 만들어왔다. 1979년에 시작해 1989년 전 6권으로 끝나는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우리 현대사에 대한 나의 문제의식의 일단이었다. 1986년에 시작해서 1994년 한꺼번에 펴내는 전 27권의 <한국사>는 한 출판인의 민족사에 대한 나름의 헌정이었다. 170여명의 연구자가 참여하는 한길사의 <한국사>는 근·현대사를 대폭 강화하는 것이었다. 나는 우리가 펴낸 <한국사>에 ‘관찬’이 아닌 ‘민찬한국사’라는 별칭을 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사>는 학술적인 형식과 내용으로 서술됨으로써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는 적당하지 않았다. 나는 ‘국민독본’ 같은 한국사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한국사> 출간 직후부터 했다. 1980년대의 치열한 민족·민주운동이 세계화시대를 맞으면서 ‘한국사’가 더 필요할 터였다. 나는 그 무렵 대형기획 ‘한길그레이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동서고금, 인류의 위대한 지적·정신적 유산을 집대성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지금도 지속되는 한길그레이트북스를 통해 인류 보편의 지혜와 사상을 우리 사회가 새롭게 만나자는 것이었다. 나는 동시에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었다. 나는 독자들의 대단한 호응을 불러일으키던 ‘로마인 이야기 현상’에 대응하는 ‘한국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누가 이를 해낼 수 있을지 궁리했다. 대학에 적을 두고 있는 교수나 연구자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논문’이 되어서는 안된다! 오늘 우리 삶에 살아 있는 역사의 육성을 들려주는 저술가라야 한다. 어디에 귀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역사가’라야 해낼
[오마이뉴스] 친일파 풀어준 이유가 수면부족과 신경쇠약?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친일청산을 웃음거리로 만든 박흥식 석방 해방 75년이 된 지금까지도 미완의 과제인 친일청산. 이를 한 편의 웃음거리로 만든 상징적 사건이 있었다. 친일청산 대상 1호로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된 화신 재벌 박흥식이 1949년 4월 21일 풀려난 일이 그것이다. 고도의 상징성을 띠는 이 사건과 더불어 친일청산은 힘을 잃고 약해졌다. 그 뒤 도리어 공격을 받기까지 했다. ‘빨갱이’들의 음모로 매도되고 사회 퇴행의 원인인 양 치부됐다. 박흥식 석방은 친일청산이 어떤 운명에 처하게 될지를 예고하는 한 편의 그림이었다. 1903년 8월 6일 평안남도 용강에서 태어나 친일파 재벌로 성장한 박흥식이 얼마나 많은 반민족행위를 저질렀는지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이 그에게 얼마나 많은 지면을 할애했는가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세로 길이가 26센티미터이고 글씨가 빽빽한 이 사전에서 웬만한 친일파들은 길어봤자 반 페이지, 유명한 친일파들은 두세 페이지 정도를 차지한다. 그에 비해, 박흥식은 4페이지 하고도 6분의 1 페이지를 차지한다. 사연이 무척 많은 친일파인 것이다. ‘친일청산 대상 1호’ 박흥식의 반민족행위 진남포상업학교를 중퇴한 뒤 3·1운동 직전인 1919년 2월 16세 나이로 진남포에서 미곡상을 차린 박흥식은 재벌이란 표현이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사업을 대대적으로 확장시켰다. ‘박흥식’ 하면 떠오르는 서울 종로 화신백화점 외에도 다종다양한 회사들을 거느렸다. 박흥식은 직물업·제지업·인쇄업·유통업·부동산업과 비행기 제조업까지 경영했다. 거기다가 학교도 설립해 교육사업을 병행했다. 1, 2년마다 한 번씩은 회사를 신설하거나 합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사업을 벌였다. 한국인의 기업
[오마이뉴스] 4·19민주묘지 뒤덮은 친일파의 흔적
친일파 김경승의 4월혁명기념탑, 3·15 부정선거 동참한 이은상의 기념탑문이라니… 헌법 전문(서문) 첫 구절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문구다. 헌법이 3·1운동의 민족주의 이념과 4·19혁명의 민주주의 이념에 얼마나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지를 반영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의 국립4·19민주묘지에 가보면, 4·19의 가치에 대한 우리 사회의 성의가 아직은 부족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목도하게 된다. 4·19를 부정하는 것들이 4·19 영령들을 억누르는 모습을 이곳에서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4·19 묘지의 핵심 공간들은 묘지와 유영봉안소 그리고 4월학생혁명기념탑이다. 아래 사진에서 동그라미 친 부분이다. 그중에서 기념탑은 묘지 중앙에 있다. 이 기념탑 앞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살펴보면, 4·19에 대한 우리 사회의 성의가 어느 정도인지 반성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친일파 김경승이 세운 4월혁명기념탑 기념탑 앞에 놓인 것은 사월학생혁명기념탑문(文)이라는 비석이다. 4·19 묘지를 방문하면 여기서 참배를 하게 된다. 이 비석은 1963년 9월 20일 박정희 군사정권인 국가재건최고회의 산하의 재건국민운동본부가 세웠다. 재건국민운동본부 내의 4월학생혁명기념탑건립위원회가 실무를 담당했다. 5·16 쿠데타 다음달인 1961년 6월 발족한 재건국민운동본부는 ‘국가 재건’이란 구실 하에 군사 쿠데타를 합리화하는 국민운동을 벌인 단체다. 이 단체의 조직과 직능을 정할 목적으로 그해 6월 12일 제정된 ‘재건국민운동에 관한 법률’에서 그 실상을 확인할 수 있다. 위 법률 제2조는 “본법에서 재건을 위한 국민운동이라 함은 전 국민이 청신한 기풍을
민족사랑 2020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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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역사’ 시즌 5 2화: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푸순의 기적’ 김효순 전 한겨레 기자와 함께
[바로듣기] ☞ (4.14) ‘내역사’ 시즌 5: 2화: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푸순의 기적’ 김효순 전 한겨레 기자와 함께 ☞ (4.07) ‘내역사’ 시즌 5: 1화: 『한국 첩보 현대사』”고지훈 연구원과 함께” ☞ (3.31) ‘내역사’ 시즌 5: 프롤로그: 민족문제연구소 상근활동가들과 함께 ☞관련기사: [책과 삶] 중국의 일본 전범 개조정책 ‘푸순의 기적’ 일본이 패망한 1945년 8월 중국의 동북 3성(옛 만주)과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에 체포돼 시베리아의 수용소를 전전하다가, 1950년 7월 중국에 인도돼 푸순전범관리소에 수감된 이들이 있었다. 뼛속까지 황국신민 정신과 군국주의 교육에 물들었던 이들은 신중국의 전범 개조정책을 온몸으로 체험했다. 침략 정책의 충실한 입안자와 집행자였던 이들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중국의 일관된 정책과 처우에 감복해 엄청난 고뇌를 거쳐 서서히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게 된다. 일본으로 귀환해서는 자신이 저지른 죄행을 반성하고 침략전쟁의 진실을 증언하며 반전평화운동에 앞장섰다. 이들은 푸순전범관리소에 있지 않았다면 전장에서 저질렀던 행위를 기억에서 지운 채 입을 닫고 살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도대체 60여 년 전 푸순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푸순의 기적’이란 무엇인가? 저자_김효순1974년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왔다. ‘동양통신’ ‘경향신문’을 거쳐 ‘한겨레’ 창간에 간여해 도쿄 특파원, 편집국장, 편집인을 지냈다. 2007년부터 취재 현장에서 대기자로 활동하다가 퇴직했고, ‘포럼 진실과 정의’ 공동대표 등을 맡고 있다. 한일 관계, 동아시아의 평화, 화해, 시민운동 등을 테마로 글을 쓰고 있으며, 역사에 버림받은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많다.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오마이뉴스] “촉석루 아래 암벽에 친일파 이지용 이름이 새겨져 있다”
진주시 “안내판, 위험해서 안돼” … 민족문제연구소 “멀리 떨어진 곳이라도 세워야” 진주성(사적 제118호) 촉석루 아래 암벽에 새겨져 있는 이지용(李址鎔, 1870~1928)이 친일반민족행위자인 ‘을사오적’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안내판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지회장 강호광)는 문화재청과 진주시 진주성관리사무소에 거듭해서 안내판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문화재청은 “해당 지자체가 결정하면 된다”고, 진주성관리사무소는 “위험해서 안 된다”는 입장이다. 촉석루 아래 암벽에는 일제강점기까지 여러 이름이 새겨져 있다. 여러 이름 가운데 특히 문제가 되는 사람이 ‘이은용(李垠鎔)’, ‘이지용’이다. ‘이은용’과 ‘이지용’은 같은 사람이다. 이은용이 본래 이름인데, 세자 책봉된 ‘영친왕’의 이름인 ‘이은(李垠)’과 같은 이름을 쓸 수 없어 ‘이지용’으로 바꾸었던 것이다. 이지용(이은용)은 구한말 경남도 관찰사를 지냈다. 대한제국시기에 그는 황해도관찰사, 의정부 찬정, 외부대신서리, 내부대신 등을 지냈고, 이완용과 같이 ‘을사오적’이다. 그는 1911년 일왕으로부터 은사공채 10만원을 받았고, 일제강점기에는 ‘백작’ 작위를 받았으며, 중추원 고문과 조선귀족회 이사 등을 지낸 대표적 친일파다. 촉석루 아래 암벽에 ‘이은용’과 ‘이지용’ 사이에 있는 글자는 윤명근(남해현령, 1886~1889)과 황재돈(경남도 관찰부주사, 1899~1901)이다. 이곳 암벽에 새겨져 있는 인물에 대해 그 내역을 모르는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것으로 오해한다. 이에 지역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지용(이은용)의 친일행적을 담은 안내판을 세워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진주에는 이곳 이외에도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암벽이 있다. 대표적으로 남강 옆에 있는 뒤벼리 절벽이다. 이곳에는 친일파 ‘이재각’, ‘이재현’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재각은 일제강점기 때 대한적십자사
[연합뉴스] 고흥 옥하공원 ‘친일인사’ 김정태 흉상 철거된다
(고흥=연합뉴스) 형민우 기자 = 전남 고흥군 옥하공원에 있는 친일인사 김정태(1869∼1935)의 흉상이 철거된다. 14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고흥군청에 친일파 흉상 철거 요청 민원이 접수됐다. 민원은 국유재산 관리청인 국가보훈처로 이첩됐고, 국가보훈청은 김정태의 후손에게 흉상을 자진 철거할 것을 통보했다. 후손들이 흉상을 철거하지 않자 국가보훈처는 행정대집행을 통보했고, 후손들은 결국 이에 동의했다. 국가보훈처는 28일 오전 김정태의 흉상을 철거하기로 했다. 철거한 흉상은 후손들이 별도의 공간에 보관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보훈처는 흉상을 받치고 있던 기둥도 모두 철거할 계획이다.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김정태는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에 중추원 참의와 군수 등을 지냈다. 영광군수와 광주군수, 순천군수를 역임했으며, 관직에서 물러난 뒤 고흥지역 육영사업을 위해 재단법인 육영사를 설립했다. 1912년 한일병합기념장을 받았으며, 1915년에는 다이쇼 천황 즉위 기념 대례기념장을 받았다. minu21@yna.co.kr <2020-04-14> 연합뉴스 ☞기사원문: 고흥 옥하공원 ‘친일인사’ 김정태 흉상 철거된다 ※관련기사 ☞뉴스1: ‘친일인사’ 김정태 흉상, 고흥 옥하공원서 철거
[오마이뉴스] 총선 후보자 546명 “현충원 친일파 묘 이장해야”
[광복회 설문조사] 민주당 84.1%, 통합당 46.6% 찬성… 황교안·나경원·홍준표는 무응답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지역구 후보자 1109명 중 절반 가량의 후보자가 현충원 내 친일파 묘의 이장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광복회가 이번 4.15총선을 맞아 전국 지역에 출마한 국회의원 후보자 1109명 모두를 대상으로 ‘친일 행위의 국립현충원 안장 불가 및 이장, 단죄비 설치를 위한 법률(국립묘지법, 상훈법) 개정에 대한 찬반 의견’을 물은 결과다. 지난 3월 31일부터 4월 7일까지 진행된 설문조사에 답한 후보자는 절반이 조금 넘는 568명(총 응답률 51.2%)으로, 이중 546명이 친일파 묘의 이장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반대는 9명, 모름은 13명이었다. 후보자 중 541명은 설문에 응답하지 않았다. 찬성률은 전체 후보자수 기준으로는 49.2%이지만, 응답 후보자수 기준으로는 96.1%에 달한다. 거대 양당의 경우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의 84.1%, 미래통합당 후보들은 46.6%가 찬성했다(전체 후보자수 기준). 광복회는 설문조사에서 “현행 ‘국립묘지법’은 사회를 위해 희생·공헌한 사람이 사망한 후 그를 안장하고 그 충의와 위훈의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국가가 국립묘지를 설치하고, 이를 적절히 관리·운영하도록 정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2009년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 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결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중 11인(김백일·김석범·김홍준·백낙준·백홍석·송석하·신응균·신태영·신현준·이응준·이종찬)은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다”고 밝혔다. 이어 “현행 국립묘지법을 개정하여 친일반민족행위자의 국립묘지 안장을 금지하고 이미 국립묘지에 안장된 경우라도 이장을 강제할 수 있는 근거를 둠으로써 국립묘지의 영예성을 높일 것을 제안한다”라고 설문 취지를 설명했다. 현충원 국가공인 친일파 11인에 대한 기록은
[뉴스1] “위안부 피해자 위한 평화재단 설립 21대 국회 나서달라”
온라인 수요집회 “피해자 중심주의 근거해 문제 해결하길” 정의기억연대가 1435차 온라인 수요집회를 열고 새로 뽑히는 국회의원들이 여성인권평화재단을 설립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법안을 속히 통과시켜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 회복을 위해 앞장설 것을 촉구했다. 국회의원 총선거날인 15일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온라인으로 열린 수요 집회에서 정의기억연대는 “우리가 30년 동안 거리에서 외치고 많은 국민이 함께했던 간절함을 담아서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법안이 통과되고 시행되는 국회가 되길 바란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의기억연대는 “새로운 국회의원은 할머니들이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진정한 피해자 중심주의에 근거한 해결이 어떤 것인지 아는 사람들이 되길 바란다”며 “여기 모인 우리는 그들이 진정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활동하도록 똑똑히 지켜볼 것이며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에 더욱 큰 목소리로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성인권평화재단은 일본군 ‘위안부’ 관련 사업과 연구를 지속하고 예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기관으로 20대 국회에서는 관련 법안이 통과되지 않고 있다. 한경희 사무총장은 “여성인권평화재단의 설립 근거 기반을 갖출 수 있는 뜻 있는 국회의원들을 20대 국회에서 (기대했는데) 논의조차 못했다”며 “우리가 30년동안 외치고 많은 국민들이 함께했던 간절함을 담아 법안이 통과되고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 회복에 한발짝 나갈 수 있는 국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 총장은 이날 인도네시아 위안부 피해자인 자헤랑 할머니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자혜랑 할머니는 12살에 직물공장 공장장한테 끌려가 일본 군대 위안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