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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세계일보] 끌고 갈 땐 ‘일본인’이라 하고… 보상 땐 ‘조선인’이라 제외 [잊힌 자들의 머나먼 귀로]

2019년 9월 18일 986

日의 파렴치한 이중적 태도 / 일제 패망 후 국적 바뀌었단 이유로 / 각종 보상·지원 정책서 철저히 배제 / 야스쿠니 합사 땐 다시 일본인 둔갑 / 죽어서도 끝나지 않은 비극 / 일본 내 조선인 유해 수습 않고 방치 / 해외서 발굴된 유골은 ‘무연고’ 처리 / 우리 정부 DNA 감정 요청마저 거절 / ‘끝없는 사죄’ 獨과 너무 달라 / 독일은 국내외 피해자 모두에 보상 / 기업체 강제노동도 재단 세워 구제 / “韓정부, 日에 구체적 제안 계속해야” ‘끌고 갈 때는 일본인, 보상·지원할 때는 한국인.’ 일본 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된 조선인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내세운 일관된 논리다. 식민지 조선인들은 일제의 국가총동원법에 의해 동원돼 가장 혹독한 현장에 투입됐지만, 일제 패망 후에는 국적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일본 정부가 시행한 각종 보상과 지원에서 배제됐다. 아베 신조 정부는 심지어 2016년부터 매년 200억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해 전몰자(전쟁 피해 사망자) 유골을 본국으로 들여오면서 조선인은 대상에서 제외했다. 일본인이 사망한 곳마다 그들의 침략전쟁에 희생된 조선인도 있다. 나라를 잃고 한때 ‘일본인’이 되었던 이들의 비극은 사후에도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일본 정부가 자국 내 조선인 유골을 방치하면서 지금도 가해자의 땅에 남은 이들도 많다. 수습된 유해는 일본 사찰에 모셔졌지만 홋카이도와 규슈 등에 있는 악명 높은 작업장 터에는 여전히 수많은 조선인이 땅속 깊이 잠들어 있다. 인간의 유해는 예를

[YTN] 문인 150여 명 ‘민족문학연구회’ 창립..일제잔재 청산 등 추진

2019년 8월 16일 2198

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문인 150여 명이 민족문학연구회를 출범했습니다. 민족문학연구회 창립준비위원회는 오늘 오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맹문재 시인 등 문인 8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민족문학연구회 창립식을 열었습니다. 민족문학연구회는 한국 근현대 민족문학과 일제강점기 항일과 친일문학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문학계의 일제잔재 청산과 친일문인 기념사업 철폐운동 등도 지속적으로 전개해나갈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민족문화연구회는 독립운동가 50명에 대한 헌시를 실은 ‘독립운동의 접두사’를 낸 데 이어 ‘독립운동가 기림 시선’을 계속 발간할 계획입니다. 이교준 [kyojoon@ytn.co.kr] <2019-08-15> YTN  ☞기사원문: 문인 150여 명 ‘민족문학연구회’ 창립…일제잔재 청산 등 추진 ※관련자료 [창립선언문] 민족문학연구회를 발족하며 2019년 8월 15일 제 74주년 광복절인 오늘 뜻을 함께하는 문학인들이 모여 민족문학연구회를 창립하고, 민족문학의 앞날을 세차게 열어갈 것을 내외에 천명한다. 100년 전 3·1혁명 때 우리 민족은 무도한 식민통치를 끝장내기 위해 신분과 계급, 지역과 종교, 남녀와 노유를 가리지 않고 한 몸이 되어 일제의 총칼에 맞서 싸웠다. 그리하여 자주독립을 향한 항일무장투쟁의 동력을 마련하는 한편으로, ‘제국’에서 ‘민국’으로 ‘신민’에서 ‘시민’으로 나아갈 길을 스스로 개척해냈다. 자유 평등 민주 평화라는 3·1정신은 좌우를 넘어 독립운동의 이념적 지표가 되었으며, 해방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추구해야 할 보편적 가치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우리가 지키고 가꿔야 할 3·1정신은 지금 안팎으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100년 전 우리 민족을 총칼로 짓밟았던 일제의 상속자들이, 과거사를 반성하기는커녕 이제 경제침략으로 검은

[뉴시스] “의열단, 해방 후 친일세력이 왜곡…독립운동 正史로 기록돼야”

2019년 9월 20일 1358

‘조선의열단 100년의 역사 인식’ 국내학술대회 열려“佛레지스탕스 4년 활동했지만 지금도 최고 대접”“우리는 아직도 친일 문인들 기리는 문학상 즐비”“의열단, 기록찾아 독립운동사서 정사로 기록해야” 【서울=뉴시스】김성진 기자 = 조선의열단 창단 100주년을 맞아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의열단원들을 재조명하고, 의열단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조선의열단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추진위)는 19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조선의열단 100년의 역사 인식’ 국내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관련 전문가와 시민 등 200여 명이 참석한 이번 학술대회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조선의열단원을 소개하고, 친일경찰의 고문과 탄압을 고증하는 한편 당시 독립운동 활동을 방해한 밀정의 폐해를 고발하기 위해 마련됐다. 기조강연을 맡은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발제문에서 “(의열단은) 일제강점기 가장 치열하게 왜적과 싸우고도 해방 후 남북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 채 그 행적이 왜곡되거나 주요 인물들이 숙청당했다”며 “의열단과 그 후계 단체들은 이제 100주년을 맞아 정명(正名)을 찾고 합당한 평가를 받아 역사에 정사(正史)로 자리매김돼야 한다”고 밝혔다. 김 전 관장은 ‘약산 김원봉 평전’, ‘의열단, 항일의 불꽃’ 등을 저술한 국내 의열단 연구 권위자다. 이어 김 전 관장은 의열단 활동을 프랑스 레지스탕스 운동에 견주며, “프랑스는 비록 짧은 4년 동안의 항독(抗獨) 레지스탕스 운동이지만, 전후 그들이 국가로부터 최고의 대접을 받고 곳곳마다 이들을 기리고 전시하는 수백 개의 기념관이 세워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프랑스는 해마다 이들과 유족, 연구자들에게 ‘레지스탕스상’을 수여한다”며 “우리는 아직도 친일문인을 기리는 문학상이 즐비한

[유튜브] 혹시 우리 학교 교가가? 서울지역 친일교가 명단 대공개!

2019년 9월 9일 5594

친일파가 작사,작곡한 교가를 사용하고 있는 학교, 얼마나 될까요? ‘그 인물’의 친일 행적까지! 지금 바로 공개합니다. 00:29 초등학교, 살펴본 인물: 김성태, 이흥렬 01:46 공립중학교, 살펴본 인물: 김동진 02:38 사립중학교 및 고등학교(공립 포함), 살펴본 인물: 김기수, 계정식, 현제명, 서정주, 김생려, 이광수, 주요한(최남선, 임동혁) ————————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사가 작사 혹은 작곡한 학교 명단(서울)– 2019년 2월 26일까지 조사된 자료임-– 작사 작곡자가 공개되지 않은 학교는 조사할 수 없었음.– 더 많은 학교가 있을 것으로 추정함. 초등학교: 18개교 (공립 13개교, 사립 5개교) 서울대학교사범대학 부설초등학교 김성태 작곡 서울재동초등학교 김성태 작곡 서울효제초등학교 김성태 작곡 동산초등학교 김성태 작곡 서울덕수초등학교 주요한 작사 서울봉래초등학교 이흥렬 작곡 서울서빙고초등학교 이흥렬 작곡 서울용산초등학교 이흥렬 작곡 서울종암초등학교 김성태 작곡 영훈초등학교 김성태 작곡 한신초등학교 이흥렬 작곡 서울공릉초등학교 이흥렬 작곡 충암초등학교 김성태 작곡 서울미동초등학교 이흥렬 작곡 서울북성초등학교 이흥렬 작곡 서울신석초등학교 주요한 작사 유석초등학교 김동진 작곡 서울영등포 초등학교 이흥렬 작곡 공립중학교: 10개교 강현중학교 이흥렬 작곡 경인중학교 이흥렬 작곡 구로중학교 이흥렬 작곡 당산중학교 김동진 작곡 숭인중학교 김동진 작곡 연신중학교 김동진 작곡 영등포중학교 이흥렬 작곡 전농중학교 김동진 작곡 창덕여자중학교 김성태 작곡 청운중학교 최남선 작사 김성태 작곡 사립중학교 및 사립고등학교, 국공립고등학교: 85개교. 강서고 김동진 작곡 건대부고 곽종원 작사, 김성태 작곡 경기상업고등학교 김동진 작곡 경성중고 이흥렬 작곡 경신중고 최남선 작사 경희고 김동진 작곡

[미디어오늘] ‘조선‧동아 거짓과 배신의 100년 청산 시민행동’ 발족

2019년 9월 10일 1693

언론시민단체 57개 참여… “언론개혁 완수할 것” 2020년 조선·동아일보가 창간 100년을 맞는 가운데 57개 언론시민단체가 ‘조선‧동아 거짓과 배신의 100년 청산 시민행동’(이하 ‘조선동아 청산 시민행동’)을 발족했다. 이들은 조선·동아일보의 친일‧반민족 보도를 널리 알리고 나아가 언론개혁을 완수하겠다고 밝혔다. 1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발족한 ‘조선동아 청산 시민행동’은 단체 활동 목표를 4가지로 밝혔다. △조선‧동아일보의 친일, 반민주, 반통일, 반민중 행태 폭로 △과거사 왜곡 보도 및 100년 행사에 반박하는 활동 △이와 관련 시민사회가 직접 활동할 콘텐츠와 프로그램 개발 △조선‧동아일보의 실체를 널리 공유하기 등이다. 시민행동에는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민주언론시민연합, 새언론포럼, 언론소비자주권행동, 자유언론실천재단, 전국언론노조,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한국인터넷기자협회 등 언론단체는 물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가톨릭농민회, 불교평화연대, 민족문제연구소, 민주노동자전국회의,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민중당 등 종교·사회 단체가 참여했다. 참여단체는 총 57개다. 집행위원장은 오정훈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이 맡았다. 이들은 발족 선언문에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과거 친일 행각을 우리가 다시 들춰내는 까닭은 한일 양국 간 경제 전쟁 시국에 반일감정을 자극하고 이에 편승해 증오를 확산하는 데에만 있지 않다”며 “이들 보도는 성노예와 강제징용이라는 반인권 범죄에 눈감고 진보와 보편 가치를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우리 ‘시민행동’은 과거 역사 왜곡을 알리는 데 그치지 않을 것”이라며 “조선·동아일보로 대표되는 언론 적폐를 청산하고 촛불 시민 명령인 언론개혁을 완수할 것을 준엄히 촉구한다”고 전했다. 이들은 구체적 행동 계획으로 ‘조선·동아 100년 어떻게 볼 것인가’를 주제로 강연회를 개최하고 8차 아베규탄 촛불문화제를 주관하기로 했다.

[오마이뉴스] 74년전 세상 떠난 ‘임정 파수꾼’… 그 아들의 따끔한 진단

2019년 9월 9일 1142

차리석 선생 74주기 추모식 현장… “참배할 때마다 ‘죄송하다’ 빌어야 했다” 9일 오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파수꾼’ 독립운동가 동암 차리석(1881~1945) 선생의 74주기 추모식이 서울 효창공원 내 임시정부 요인 묘역에서 열렸다. ‘임시정부의 파수꾼’ 동암 차리석 임시정부 국무위원과 비서장을 역임한 차리석 선생은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가 수립된 이래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할 때까지 임시정부 27년의 여정을 함께했다. 1932년 4월, 윤봉길 의거로 임시정부 요인들이 뿔뿔이 흩어져 피난 다니는 와중에도 정부가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했던, 그야말로 임시정부의 파수꾼이었다. 1948년 사회장 당시 “탁월한 사무 처리 기능이나 병중에서도 최후의 일각까지 맡으신 사명을 완수하신 강한 책임감은 한국독립운동에 피가 되고 살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는 백범 김구 선생과 성재 이시영 선생의 추모사는 선생의 위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선생은 해방을 맞아 환국을 준비하던 중이던 1945년 9월 9일, 과로로 병사하고 말았다. 환국한 백범은 가장 먼저 임시정부 요인들의 유해를 봉환하는 사업에 착수했고, 1948년 선생 역시 지금의 자리에 안장됐다. “사죄와 반성 않는 반민족세력, 여전히 국민 우롱” 일반적인 독립운동가들의 추모식과 달리 선생의 추모식은 담당 주무부처인 국가보훈처의 후원 없이 매년 간소하게 치러지고 있다. “주무시고 계신 선친을 깨우고 싶지 않다”라는 장남 차영조 효창원7위선열기념사업회장의 뜻 때문이다. 올해 74주기 추모식 역시 직계 후손인 차영조 회장과 ‘임시정부 국무령’ 석주 이상룡 선생의 증손자 이항증 선생, ‘국민부 참사’ 김진성 선생의

[성명] 통감부·조선총독부 유지遺址의 현상 보존을 촉구한다.

2019년 8월 28일 2281

[성명] 통감부·조선총독부 유지遺址의 현상 보존을 촉구한다 재건축 과정에서 통감부(조선총독부 구청사)의 유구가 드러나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인 서울애니메이션센터(예장동 8번지 일대) 신축 부지는, 조선시대 이래 유래가 깊을 뿐만 아니라 특히 제국주의 일본의 한국 침탈과 식민지배의 총본산이 자리했던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원형을 보전해야 할 역사의 현장이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주둔한 뒤로 이 일대는 왜성대倭城臺 왜장대倭將臺 등으로 불렸으며, 일제침략기 일본인들이 거주하게 되면서 왜성대정倭城臺町이란 행정 지명을 갖게 됐다. 해방이 되어서야 조선 순조 때 유본예가 지은 『한경지략漢京識略』에 근거해 예장禮場이라는 본래의 명칭을 되찾게 되었다. 본래 영문 군졸의 훈련장이었던 예장은 일제침략기 일본군의 전승식장이나 포병들의 사격 연습장으로 쓰였으며, 헤이그 특사 사건으로 고종의 퇴위를 강박할 때는 대포를 배치해 무력시위를 했던 곳이기도 하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뒤인 1907년 2월 통감부 건물이 들어섰으며, 경술국치 이후부터 1926년 일제가 경복궁을 가로막아 신청사를 세울 때까지 조선총독부 청사로 사용됐다. 악랄한 식민통치의 뇌수가 똬리 틀고 있었던, 우리 민족으로서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치욕의 현장인 것이다. 동시에 1921년 9월 12일 김익상 의사의 조선총독부 폭탄투척 사건이 일어났던 항쟁의 공간으로도 반드시 기억해야만 한다. 민족문제연구소는 2010년 8월 29일 국치 100년을 맞아 한일 시민사회의 뜻을 모아 ‘통감관저 터’라는 표석을 설치함으로써, 이곳이 역사의 현장임을 내외에 알린 바가 있다. 다행히 서울시도 미래세대가 오욕의 역사를 망각하지 않도록 남산 일대에 ‘국치의 길’을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MBC] 日 강제동원 ‘담담한’ 증언..세계인들 ‘눈물 댓글’

2019년 9월 6일 1682

[뉴스데스크] ◀ 앵커 ▶ “속옷만 입고 탄광 밑바닥에서 작업하던 시절을 생각 하면 참혹하고 가슴이 답답하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고 최장섭 할아버지의 증언이 담긴 이 영상은 정부가 강제 동원의 진실을 국제 사회에 알리기 위해 제작한 겁니다. 일본의 역사 왜곡에 맞서 최근 정부와 학계가 벌이고 있는 ‘역사 바로 알리기’ 작업을 박소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침략당한 땅의 백성이라는 이유로 최소한의 권리조차 박탈된 짐승과도 같은 생활” “마음이 아파서 눈물 나오지. 나 때문에 우리 대한민국이 손해가 아닌지 모르겠네 나 하나 때문에…” 강제동원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해외문화홍보원이 만든 동영상입니다. 강제동원의 불법성과 피해실태를 보여주고, 일본 정부의 경제 보복 조치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지도자들이 앞장서 과거사 사죄와 반성을 한 독일의 경우도 담았습니다. 영상 공개 약 1주일 만에 조회수 13만을 넘었고 “너무 슬프다.”, “피해자들을 잊지 않겠다”는 전세계인들의 댓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김태훈/해외문화홍보원장] “국제사회가 한일 관계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정당성을 제대로 인정받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학계도 나섰습니다. 역사연구기관들이 공동으로 위안부의 강제성과 한일청구권협정의 한계를 지적하고, 특히 징용자들이 자발적이었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과 달리 강제동원에 저항하는 조선인 항의 집회가 1940년부터 5년 동안 매일 일어나 참여인원이 13만 명에 달했다는 사실도 공개했습니다. [노영종/국가기록원 연구관] “점차 진압 경찰에 직접 맞서는 적극적인 무력항쟁의 형태로 이어졌고, 민족운동 성격의 노동쟁의로 발전하였다.” [조시현/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피해 실태와

[연합뉴스] 독립기념관, 북한지역 3·1운동 참가자 조사자료 발간

2019년 9월 5일 1138

함흥지방법원 이시카와 검사의 3·1운동 관련자 조사문서 번역아직 주목받지 못한 181명 추가 발굴…유공자 포상 추천 계획 (천안=연합뉴스) 이은중 기자 =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는 일제강점기 함경남·북도에서 3·1운동에 참가한 인물들을 재판에 넘기기 위해 작성한 문서를 번역해 ‘함흥지방법원 이시카와 검사의 3·1운동 관련자 조사자료'(이하 조사자료)를 발간했다고 5일 밝혔다. 이것은 일본인 검사가 3·1운동 참가자를 조사하고 기소 준비를 위해 작성한 희귀 자료다. 일제의 3·1운동에 대한 대응과 탄압 양상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사료로서 가치가 매우 높다고 독립기념관은 설명했다. 독립기념관은 민족문제연구소가 2010년 일본 도쿄에서 입수한 ‘대정 8년 보안법 사건’ 원본 문서를 공동으로 번역해 조사자료를 출간했다. 1권에는 일본어 원자료 번역문과 탈초문을 함께 실어 일반인의 이해를 도왔고, 2권에는 원자료를 대조 확인할 수 있도록 영인했다. 원본 문서를 작성한 이시카와 노부시게 검사는 1919년 함흥지방법원에서 근무하며 3·1운동 참가자들의 탄압과 처벌에 관여한 인물이다. 1908년 12월 통감부 검사에 임용돼 1919년 말 조선총독부 검사로 퇴임하기까지 의병운동과 3·1운동 탄압에 앞장섰다. 그가 작성한 문서에는 총 115개 사건이 수록돼 있으며 기본 형태는 사건 제목, 기소 내용, 적용 법률과 형량 등 세 가지 대목으로 구성돼 있다. 문서에는 3·1운동 참가자 950여명의 실명이 등장한다. 독립기념관은 이 인물들의 판결문 등 일제가 남긴 행형자료를 추가로 조사해 3·1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했음에도 아직 주목받지 못한 181명을 추가로 발굴했다. 독립기념관은 새롭게 확인된 인물들에 대해서는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으로 국가보훈처에 독립유공자 포상을

[내가역사의증인이다] 15 – 살아있는데 야스쿠니에 합사된 강제동원피해자

2019년 8월 29일 887

※관련영상 [내가역사의증인이다] 14. 2019년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내가역사의증인이다] 13. 여성 광복군, 독립운동가 故 지복영 선생 [내가역사의증인이다] 12.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이희자 “김학순 할머니 이야기” [내가역사의증인이다] 11. 일본제철 재판 원고 故 김규수 할아버지 [내가역사의증인이다] 10. 야하타 제철소 노무동원 故 주석봉 할아버지 [내가역사의증인이다] 9. 학도특별지원병 故 정기영 할아버지 [내가역사의증인이다] 8. 조선여자근로정신대 故 유찬이 할머니 [내가역사의증인이다] 7. 일본제철 강제동원 피해자 故 여운택 할아버지 [내가역사의증인이다] 6. 하이난도 강제동원 피해자 故 고복남 할아버지 [내가역사의증인이다] 5. 일본제철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 [내가역사의증인이다] 4. 일본군 ‘위안부’ 故 김화선 할머니 [내가역사의증인이다] 3. 포로감시원 강제동원 피해자 故 오행석 할아버지 [내가역사의증인이다] 2. 미쓰비시탄광 강제동원 피해자 故 임재훈 할아버지 [내가역사의증인이다] 1. 일본제철 강제동원 피해자 재판투쟁의 기록 민족문제연구소, 식민지역사박물관과 함께하는 역사의증인 프로젝트! 강제동원의 진실을 알리겠습니다.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기억하겠습니다. 강제동원 피해자와 함께 하겠습니다. 평화를 지키는 세계시민과 연대하겠습니다. 역사의 증인이 되겠습니다. #강제징용 #내가역사의증인이다 #역사의증인 #기억 #공감과연대 #withyou #youareawitness ☞ ‘역사의증인’ 메인페이지 http://www.minjok.or.kr/youtube.html ☞ ‘역사의증인’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useumoch ☞ ‘역사의증인’ 유튜브 https://bit.ly/2l5LOFj ☞ ‘역사의증인’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museumo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