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기사
제주 학교현장 일제 잔재 지우기 추진한다
(제주=연합뉴스) 전지혜 기자 = 제주도내 학교 곳곳에 남아있는 일제 잔재를 지우기 위한 노력이 본격 추진된다. 2일 제주도교육청에 따르면 1945년 이전에 개교한 도내 학교는 초등학교 45개교, 중학교 2개교, 고등학교 3개교 등 총 50개교다. 이들 학교에 일본인 교장은 총 19개교에 84명이 있었다. 이들 학교 중 교명에 ‘제일’, ‘중앙’ 또는 ‘동서남북’ 방위가 들어간 학교는 제주북초, 구좌중앙초, 제주동초, 제주제일중 등 4개교다. 이밖에도 1945년 후에 세워진 학교 가운데 이처럼 제일·중앙 또는 동·서·남·북 방위명이 들어간 학교가 여럿 있다. 또한 일본향나무를 교목으로 지정한 학교는 초등학교 12개교, 중학교 5개교, 고등학교 4개교 등 21개교다. 또한 학교 내에 보유하고 있는 일본향나무는 초등학교 1천318그루, 중학교 300그루, 고등학교 535그루, 특수학교 4그루 등 총 2천157그루다. 일본인 작곡가가 만든 교가를 쓰는 학교는 없었다. 도교육청은 이처럼 학교현장에 남아있는 일제 잔재를 없애기 위해 ‘미래 100년 학교문화 바로 세우기’ 계획을 수립했다. 도교육청은 홈페이지에 ‘학교 속 일제잔재 청산 참여마당’ 코너를 설치해 학생, 교사, 학부모, 시민 의견을 수렴한다. 도의회, 학계, 시민단체, 유관기관, 교육단체 관계자와 교육계 원로 등으로 교육현장 친일잔재 조사 및 청산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운영한다. 또한 각 학교별 교내 유·무형의 일제 잔재를 조사해 교육공동체 의견 수렴과 협의를 통해 청산 및 교육적 활용 방안을 마련하도록 한다. 제주도의회에서는 식민잔재 청산의 근거가 될 조례 제정이 추진되고 있다. 제주도의회 의원연구모임인 제주교육발전연구회(대표 김창식 교육의원)는
춘천문학공원 친일 행적 문인 3명 시비(詩碑) 철거한다
서정주·최남선·조연현 등 표지석과 함께 땅에 묻기로 강원 춘천시 서면 의암호변에 자리잡고 있는 춘천문학공원(사진) 내에 있는 서정주, 최남선, 조연현 등 친일 행적 문인 3명의 시비(詩碑)가 사라진다. 춘천시는 3일 일제강점기에 창씨 개명한 이름으로 친일 관련 글을 다수 발표한 서정주와 조연현(함안 출생)의 시비를 철거하기로 했다고 1일 밝혔다. 또 1935년부터 일본 신도 보급에 참여하고, 1936년 6월부터 1938년 3월까지 3년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최남선의 시비도 철거할 계획이다. 춘천시는 친일 행적 문인들의 시비 3개를 별도로 제작한 표지석과 함께 땅에 묻기로 했다. 표지석에는 ‘이곳, 춘천문학공원에 불손하게 들어앉은 일제강점기 친일 문인들의 흔적을 이곳에 묻는다. 슬픈 역사도 버릴 수 없는 우리의 것이나 민족의 아픔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까닭이다’라는 문구를 새길 예정이다. 춘천시는 나중에 후손들이 춘천문학공원 일대를 재정비하거나 발굴할 때 친일 행적 문인들의 시비가 왜 땅속에 있는 것인지 알 수 있도록 표지석을 제작해 함께 묻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춘천문인협회는 최근 춘천시에 공문을 보내 친일 인명사전에 등록된 작가들의 시비를 철거해 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 이재경 춘천시 문화예술계장은 “친일 행적 문인들의 시비를 철거해 달라는 민원이 들어와 논의를 거친 끝에 철거하기로 했다”며 “일단 철거작업을 마친 후 춘천문학공원 내 잡풀을 제거하고, 단계적으로 노후한 다른 문인들의 시비도 정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춘천문학공원엔 춘천을 대표하는 작가 김유정 선생의 문학비를 비롯해 문인 80여명의
강제징용 피해자, 일본 전범기업 국내 압류자산 ‘현금화’ 착수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압류된 일본 전범기업의 국내 자산을 현금화하는 절차에 착수했다. 일본제철(구 신일철주금) 및 후지코시 강제동원 피해자 대리인단은 1일 “일본제철과 후지코시로부터 압류한 자산의 매각명령신청을 접수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10월 이후 일본제철, 미쓰비시중공업, 후지코시 등 일본 전범기업들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을 하라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잇따라 내려진 데 따른 것이다. 대리인단은 이날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과 울산지방법원에 각각 ‘일본제철이 소유하고 있는 주식회사 피엔알의 주식 19만4794주(9억7400만원 상당)’와 ‘후지코시가 소유하고 있는 주식회사 대성나찌유압공업의 주식 7만6500주(7억6500만원 상당)’에 대해 매각명령신청을 냈다. 이 주식들은 대법원 판결로 올해 압류됐다. 대리인단은 대법원 확정 판결에도 자발적인 채무이행을 하지 않은 미쓰비시중공업에 대해서도 한국 내 재산을 확인하기 위해 지난달 24일 서울중앙지법에 재산명시신청을 접수했다고 밝혔다. 법원이 신청을 받아들이면 미쓰비시중공업에 대해 특정일까지 재산목록을 제출하라는 재산명시명령을 내리게 된다. 대리인단은 “미쓰비시 중공업의 상표권과 특허권 등이 이미 압류된 사실이 있으나, 지적재산권 이외의 재산을 확인하기 위해 재산명시신청을 했다”고 설명했다. 대리인단의 김세은·임재성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는 “90세를 전후로 한 생존 피해자들의 연세를 고려할 때, 현금화를 늦출 수 있는 마지노선에 다다르고 있다”며 “그럼에도 강제동원 가해기업을 비롯한 그 어떤 주체로부터 관련한 의사표시를 받지 못했다. 한국 대법원 확정판결로부터 반 년이 지난 지금 더 이상 현금화 절차를 늦출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다만 대리인단은 전범기업들과 여전히 포괄적인 협의 의사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대리인단은 “오늘(1일) 매각명령신청 이후 현금화 대상이 되는
[보도자료] 일본제철과 후지코시의 한국 내 자산매각 등에 대한 소송 대리인 및 지원단 공식입장
[다운로드] [보도자료] ■ 전시 세부 구성○ 1부 빈 상여에 실어 보낸 한恨의 세월– 2011년 5월 8일 한일시민사회가 함께 치른 강제동원 희생자 합동장례식 때 사용했던 “전통 상여” 특별 전시– 2011년 5월 8일 “일제하 강제동원 희생자 합동추모제-빼앗긴 어버이를 그리며” 기록영상 상영 ○ 2부 끌려간 사람들, 남겨진 이야기– 강제동원 희생자 유족 20명의 증언 소개– 강제동원은 피해당사자의 삶뿐만 아니라 가족을 해체시키고, 자식들의 삶조차 파탄에 이르게 한 비극적인 경험이었음을 유족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함 ○ 3부 죽은 자의 명부, 돌아오지 못한 유골– 강제동원 피해유족들은 부모형제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알기 위해 명부와 유해를 찾아 헤매고 있는 현실을 보여줌– 일본과 국내에 보관중인 다양한 명부 속에 남겨진 피해자들의 기록을 통해 유족들이 발견한 강제동원 피해의 실상을 전달함– 유해라도 찾기를 간절히 바라는 유족들의 바람과 정반대로 야스쿠니신사에 무단으로 합사된 사실과 이에 재판투쟁에 나선 경위를 살펴봄 ○ 4부 강제동원의 현장을 기억하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점령지와 강제동원 지역 지도 게시– 강제동원 희생자 유족 20명의 동원지 소개 ○ 5부 살아남은 자의 끝나지 않은 투쟁– 강제동원 피해생존자와 유족들의 재판 투쟁을 소개함– 헛되지 않은 10년간의 투쟁:군인․군속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소송– 강제노동과 원자폭탄의 피해를 입은 이들의 기나긴 싸움:히로시마 미쓰비시중공업 손해배상 청구소송– 한일협정의 장벽을 넘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신일본제철주식회사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어린 나이에 군수공장으로 강제동원된 근로정신대 피해자들:후지코시 근로정신대 손해배상 청구소송–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 미쓰비시 등 전범기업 상대 집단소송 ‘시작’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중공업 등 전범기업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이 같은 집단 소송은 계속해서 이어질 전망이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는 29일 오전 일본 전범기업 9곳에 피해자 54명의 손해배상 1차 소송을 광주지방법원에 제기했다. 특히 피고 기업에 미쓰비시중공업도 포함됐다. 앞서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던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지난해 11월 대법원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받은 바 있다. 이번 1차 소송의 기업별 원고는 미쓰비시광업(현 미쓰비시머티리얼)이 19명으로 가장 많다. 이어 미쓰비시중공업 12명, 스미토모석탄광업(현 스미세키홀딩스) 8명, 미쓰이광산(현 니혼코크스공업) 7명 순이다. 신일철주금(현 일본제철), 일본광업(현 JX금속)에 각각 3명과 2명이 소를 제기하며, 후지코시강재·니시마쓰건설·히타치조선 상대 원고는 1명씩이다. 앞서 시민모임은 지난달 25일부터 지난 5일까지 광주시청 1층 민원실에 강제동원 피해 접수 창구를 마련해 소송인단을 모집했다. 모집 결과 피해 사례 접수는 총 537건이었으며, 소송 참여 방법 등을 묻는 전화·방문 상담도 1000여건이 넘었다. 시민모임과 민변은 모집된 사례 중 당시 가해기업과 현존기업의 지위 승계와 구체적 피해사례 증명 여부 등이 확인된 피해자 54명을 소송원고로 확정했다. 이들은 향후 2차, 3차로 추가 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다. 한편 시민모임 등은 이날 오전 광주 동구 광주지방변호사회 회관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기업들이 대법원 판결 이행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제에 인간으로서 존엄을 빼앗긴 피해자와 유족들은 정당한 권리 행사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 대다수가 소송에 참여하지 못하고
[팟캐스트]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11편 “박인덕” 여성계몽운동가로 화려한 활동 그러나 황국식민의 여성으로 급격한 변신
[바로듣기] ☞ (4.30)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11편 “박인덕” 여성계몽운동가로 화려한 활동 그러나 황국식민의 여성으로 급격한 변신 ☞ (4.23)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10편 “문명기” 애국기 헌납운동을 일으킨 맹목적 친일파 ☞ (4.16)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9편 “이승우” 창씨개명을 적극적으로 앞장 서 추진한 변호사 ☞ (4.09)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8편 “김우영” _내선융화의 상징, 조선인 부영사 되다 ☞ (4.02)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7편 “최린” 독립선언의 주역, 변절의 아이콘이 되다 ☞ (3.26) ‘내역사’ 시즌 3: 강제동원 3편 “피해자 변호인단에게 판결과정과 향후 활동계획을 듣는다 ☞ (3.21)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6편 “박중양” 3.1운동 진압을 위해 자제단을 이끈 거물급 친일파 ☞ (3.12)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5편 “김대우” – 황국신민서사를 제정 입안하여 황국신민화에 앞장선 인물 ☞ (3.06)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좌담회 2부 ☞ (3.05)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좌담회 1부 ☞ (2.27)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만세열전2부 ☞ (2.26)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만세열전1부 ☞ (2.19)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4편 “심우섭” 한 시대 형제의 다른 삶, 기회주의자 지식인의 원형 ☞ (2.12) ‘내역사’ 시즌 3: “일제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이후?_2편_한일청구권협정의 쟁점은? ☞ (2.05)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3편 “오현주” 독립운동가 김마리아를 밀고한 배신자, 반민특위
100년 전 파리로 간 식민지 청년의 돌아오지 못한 여정
앙투안 리가 말하는 아버지 이용제 1920년 일제 감시 피해 프랑스행가보지도 않은 대만 국적으로66년간 고단한 ‘이방인의 삶’ 견뎌 귀향 꿈꾸며 간직해온 낡은 유품들이봉창 의사 등 독립진영 성명서‘기미독립선언서’ 새 판본도 눈길 “한국이 둘로 나뉘어 있는 한…남한 여권도 북한 여권도 싫다”독립 뒤엔 남북 분단이 발길 막아 뒤늦게 아버지 고국 알게 된 아들“이곳엔 흔치 않은 노란 은행나무유난히 좋아한 이유 알 것 같네요” “봉 쑤와르, 마담. 위, 마되무와젤. 위, 마되무와젤.” 거듭 되뇌어도 낯선 말이었다. 긴 항해로 멀미가 몰려왔다. 청년은 드넓은 바다로 눈길을 돌렸다. 그의 고향엔 추위가 몰아닥칠 11월이지만 인도양은 6월 초여름처럼 후텁지근했다. 조선의 구습과 일본의 압제가 지배하는 조선 땅을 벗어나, 이국의 대양 위에 있다는 사실에 22살 이용제는 잠시나마 가슴이 뛰었다. 3·1운동이 일어난 기미년(1919년) 이듬해의 일이다. 이 항해가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임을 청년은 미처 알지 못했다. 지난 18일 프랑스 파리 외곽의 도시 부르라렌에서 만난 앙투안(73)은 이용제가 99년 전 불어를 꾹꾹 눌러쓴 수첩을 보여주며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의 첫 불어 실력입니다.” 은발에 은빛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앙투안은 평범한 프랑스인처럼 보이지만 이씨다. 1920년 프랑스에 도착한 이용제는 1936년 현지인인 마들렌 쾨클랭과 결혼해 앙투안을 비롯한 3남3녀를 낳았다. 성장하는 동안 앙투안은 아버지의 삶에 대해 잘 몰랐다. “아버지는 자신을 키워준 그의 작은할아버지나 시베리아에서 벌목 일을 했던 자신의 아버지에 관해 얘기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순서가
중국 혁명성지, 연안에서 만난 조선인
[원광대 ‘한중관계 브리핑’] 정율성의 연안송을 듣다 김주용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교수 1919년 11월 중국 길림시 중국인 반(潘)씨 성을 가진 집에서 단장 김원봉을 비롯한 13명의 투사들이 의열단을 조직하였다. 그후 의열단은 여러 차례 변모하면서 1932년 남경에 조선혁명정치군사학교를 설립하였다. 그 다음해, 이곳에 자신을 단단한 독립투사로 만들기 위한 청년이 입학하였다. 바로 정율성이다. 중국의 국민가요 <연안송>을 만들었으며, 정식 군가인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한 그는 지금도 한중 간 음악으로 소통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교량 역할을 하고 있다. 정율성, 연안으로 가다 1937년 7월 7일 일제가 베이징 근교 노구교를 공격하면서 중일 전쟁은 본격화됐다. 항일의 전세가 전 중국으로 퍼져 나갔으며, 정율성은 이즈음 연안행을 결정한다. 정율성이 연안행을 택했던 것은 두 가지였다. 먼저 음악적 요소이다. 본명인 정부은을 ‘율성(律成)’으로 바꿨다. 말 그대로 음율을 이룩하리라, 강한 의지가 반영된 이름은 평생 그를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하지만 그는 ‘조국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음악이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것을 일찍 깨달았다. 조국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던 정율성의 연안행은 이러한 이유로 이뤄졌다. 뿐만 아니라 그의 친매부였던 박건웅은 개인적 차원의 한중연합이 아닌 상설기관을 통한 통일적 계획 속에 항일전쟁 수행을 역설했는데 이것이 정율성의 연안행에도 영향을 미쳤다. 1937년 9월 하순 상하이의 전쟁 형세가 위급하자 정율성은 난징으로 갔다. 김성숙의 부인 두군혜(杜君惠)는 정율성에게 혁명음악가로 알려진 이공박을 소개시켜 주었다. 이공박은 정율성의 음악적 재질과 독립운동에 대한 열정을
[팟캐스트]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10편 “문명기” 애국기 헌납운동을 일으킨 맹목적 친일파
[바로듣기] ☞ (4.23)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10편 “문명기” 애국기 헌납운동을 일으킨 맹목적 친일파 ☞ (4.16)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9편 “이승우” 창씨개명을 적극적으로 앞장 서 추진한 변호사 ☞ (4.09)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8편 “김우영” _내선융화의 상징, 조선인 부영사 되다 ☞ (4.02)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7편 “최린” 독립선언의 주역, 변절의 아이콘이 되다 ☞ (3.26) ‘내역사’ 시즌 3: 강제동원 3편 “피해자 변호인단에게 판결과정과 향후 활동계획을 듣는다 ☞ (3.21)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6편 “박중양” 3.1운동 진압을 위해 자제단을 이끈 거물급 친일파 ☞ (3.12)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5편 “김대우” – 황국신민서사를 제정 입안하여 황국신민화에 앞장선 인물 ☞ (3.06)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좌담회 2부 ☞ (3.05)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좌담회 1부 ☞ (2.27)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만세열전2부 ☞ (2.26)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만세열전1부 ☞ (2.19)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4편 “심우섭” 한 시대 형제의 다른 삶, 기회주의자 지식인의 원형 ☞ (2.12) ‘내역사’ 시즌 3: “일제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이후?_2편_한일청구권협정의 쟁점은? ☞ (2.05)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3편 “오현주” 독립운동가 김마리아를 밀고한 배신자, 반민특위 법정에 선다 ☞ (1.29)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2편 “노덕술” 고문으로 유명한 악덕 친일경찰, 대한민국 훈장을
민족사랑 2019년 04월호
[바로보기] * 각 목차를 클릭하시면 해당페이지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