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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민국 100년 특집, ‘친일과망각’ 스페셜판

2019년 4월 23일 1502

100년 전 오늘, 1919년 4월 11일은 대한민국이 탄생한 날입니다. 그날 오전 10시, 중국 상하이 김신부로에서 열린 임시의정원 회의에서는 이회영, 신채호, 여운형 등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29명이 12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의 끝에 임시 정부 수립을 선포했습니다. 임시 정부의 국호는 ‘대한민국’이었습니다. 한반도 역사 시대 5,000년래 처음으로, 왕국이나 제국이 아닌 ‘민국’이 탄생한 순간이었습니다. 임시정부의 탄생은 필연적으로, ‘민국’의 국토와 국권을 강탈한 일제의 극복과 그 잔재의 청산을 지향하는 것이었습니다. 역사의 순리대로였다면, ‘민국’의 탄생은 곧 이러한 과업으로 이어졌어야 합니다. 그러나 역사의 섭리는 비정하게도 이러한 순리를 비껴가고 말았습니다. 해방 이후 미군정에 의해 친일 관료와 경찰이 대거 등용됐고, ‘민국’은 이 땅에 발붙일 곳이 없어졌습니다. 친일 청산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부여받은 반민특위는 이승만의 비호를 받은 친일 경찰들에 의해 허망하게 무력화되고 말았습니다. 그로부터 70년이 지난 지금, 친일 청산이라는 시대적 과업이 과연 제대로 완수되었는가를 냉엄히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식 석상에서 “반민특위로 인해 국민이 무척 분열했다”라고 말한 제1 야당의 원내대표가 어떠한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아도 괜찮은 게 오늘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뉴스타파는 을 선보입니다. 지난 2015년 해방 70년 기획으로 제작해 큰 화제를 모았던 의 주요 내용을 추리고, 이듬해 방송한 가운데 친일파와 관련된 부분을 발췌해 합본으로 다시 제작한 스페셜판입니다. 이번 스페셜판이 민국 100년의 의미와 친일 청산의 굴곡진 역사를 되새겨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 정지성글

“나경원, 수렁에 빠졌다”

2019년 4월 20일 1509

반민특위 김상덕 위원장의 외아들 김정륙씨는 70년 전 봄을 생생히 기억한다. 이승만 대통령이 아버지에게 친일 경찰들을 다 풀어주라고 협박했다. 김씨는 연좌제로 오랜 고통을 겪었다. ■ 관련기사 – 약산 김원봉 욕보이는 빨갱이 프레임 – 4·19혁명 도화선 김주열 가족의 59년 – 여성 독립운동가 공적을 기리는 협동조합 – 김마리아 열사에게 ‘대한민국장’을 허하라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부회장 김정륙씨(85)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김상덕 위원장의 외아들이다. 반민특위는 1949년 6월 친일파 경찰의 습격을 받고 사실상 해체됐다. 그는 아버지가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던 1935년 중국 난징에서 태어났다. 반민특위 활동이 한창이던 1949년 김정륙씨는 중학교 3학년이었다. 그는 그해 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이승만 대통령이 집으로 찾아와 아버지와 마주앉았다. 이 대통령은 ‘살살 다루고 다 풀어줘라. 노덕술을 포함해 경찰을 다 풀어줘라’ 하고 명령하듯 말했다. 이어 ‘몇 달 안 남은 반민특위 시한이 끝나면 내각에 자리를 마련해줄 테니 들어와라’ 하고 회유했다. 아버지가 정중히 거절하자 이 대통령은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후회할 날이 올 것이다’라고 쏘아붙이고는 자리를 떴다.” 일주일 정도 지난 6월6일, 이승만 대통령이 언급한 ‘후회할 일’의 윤곽이 드러났다. 경찰 80여 명이 반민특위 청사를 습격했다. 경찰은 무력을 행사했고 사무실에 보관된 친일파 조사 서류를 모조리 강탈해 불태웠다. 반민특위 직원 22명은 부상을 입고 적십자병원에 입원했다. 국회 특별입법으로 출범한 반민특위에 친일 경찰이 들이닥치자, 국회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즉각 책임자 처벌과 반민특위 원상회복을 요구했다. 이 대통령은 국회 요구를 묵살하는 담화를 냈다. 외신기자들에게는 반민특위 습격과 특경대

“학생들도 이승만 동상에 침 뱉어”… “빨갱이들은 북으로”

2019년 4월 20일 2531

[현장] 4.19혁명기념일 맞아 대전단체들, 배재대 이승만 동상 철거 촉구 4.19혁명기념일을 맞아 대전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배재대학교에 서있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동상 철거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에 반대하는 보수단체들도 태극기를 들고 나타나 ‘맞불집회’를 열었다. 대전지역 53개 단체로 구성된 ‘이승만동상철거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은 19일 오전 대전 서구 도마동 배재대학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백만 민간인 학살 책임자 이승만의 동상을 즉각 철거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시작 전부터 긴장감이 감돌았다. 공동행동이 기자회견을 예고한 11시보다 앞선 10시 30분 보수단체 회원들은 이미 길 건너편에 자리를 잡고 맞불 집회를 시작했다. 이후 보수단체 회원들과 공동행동 회원들은 서로 목소리를 높이며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욕설이 오가며 충돌 위기까지 치달았으나 경찰과 다른 회원들의 만류로 직접적인 충돌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 과정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은 공동행동 측을 향해 욕설을 쏟아 부었다. 이들은 “이게 나라냐, 이 XX들아”, “양심도 없는 것들”, “너희 같은 쓰레기들은 북에 가져다 버려야 한다”는 등의 험한 말을 쏟아냈다. 이들은 한 손에는 태극기를 든 채 이승만 동상과는 관계없는 ‘박근혜 대통령은 억울하다’, ‘사기 재판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감옥에 갇혔다’, ‘문재인은 나라를 이 모양 만들었다’, ‘김경수는 내보내 주면서 왜 박근혜 대통령은 가줘 두느냐’는 등 정치적 발언을 쏟아 냈다. 오전 11시가 되자 공동행동 주최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이에 보수단체들은 스피커의 볼륨을 더 올려 구호를 외치는 등의 맞불집회를 이어갔다. 공동행동 발언자로 나선 박해룡 민족문제연구소

“학교 향나무, 이토 히로부미가 들여온 친일잔재”

2019년 4월 20일 3367

[인터뷰] 학교 친일잔재 청산 전수조사 나선 경상남도교육청 -대부분 가이즈카 향나무…이토 히로부미가 대구에 처음 심어-경남교육청에 심어진 향나무 뽑아내고 소나무로 교체-교체 강제할 순 없지만 교체 적극 권장할 계획 -친일 음악가 조두남, 창원에만 7개 학교 교가 제작-일장기 모양의 학교건물도 남아있어-일본 식민주의 사관 넘어 향나무 뽑는 실천부터 ■ 방송 : 경남CBS <시사포커스 경남> (창원 FM 106.9MHz, 진주 94.1MHz)■ 진행 : 김효영 기자 (경남CBS 보도국장)■ 대담 : 경남교육청 중등교육과 이일만 장학관 ◇김효영> 여러분이 다녔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요. 교가는 누가 만들었는지 기억을 하실지 모르겠습니다.그 가운데는 우리가 흔히 친일파로 분류하는 음악가가 만든 교가도 적지 않습니다.이처럼 교육기관 곳곳에 친일 잔재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그래서 박종훈 경남교육감의 지시로, 경남교육청에서는 전수조사가 실시가 되고 있습니다.친일잔재 청산을 위한 전수조사를 맡고 계신 경남교육청 중등교육과의 이일만 장학관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안녕하세요? ◇김효영> 특별히 전수조사까지 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을 기념해서 우리 교육청 차원에서 일제 잔재 청산과 우리 얼 살리기 교육사업을 전 교육기관을 대상으로 해서 한 번 실시를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으로 판단이 돼서 2년간에 걸쳐서 실시를 할 계획입니다. ◇김효영> 조금 전에 제가 교가를 예로 들었습니다만, 교가 말고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이일만 경남교육청 장학관> 오래된 역사를 가진 학교들에서는 가보면 교장실에 역대 교장들 사진이 걸려 있는

종로도서관 친일파 동상, 그냥 두고보면 안 되는 이유

2019년 4월 19일 2429

[도서관 그 사소한 역사 10] 종로도서관 ② 도서관 이용자와 도서관 사서가 함께 쓴 도서관 역사 여행기입니다. 대한제국부터 대한민국까지 이어지는 역사 속 도서관, 도서관 속 역사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편집자말] * ①편에서 이어집니다. 근대 문화시설인 도서관을 선구적으로 이끈 이범승의 노력을 폄하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범승의 공적과 별개로 일제가 경성도서관 운영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의도’에 대해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식민 시대 일제의 도서관 정책을 고려하면, 일제가 이범승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모양새로 도서관 건립과 운영을 지원했다고 보는 게 진상에 가깝지 않을까. 이용재 교수가 이범승의 경성도서관 건립 제안에 대해 평한 부분을 살펴보자. “조국의 왕통(王統)이 일제의 상징 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일제를 향하여 조선 땅에 ‘민중의 대학’을 설립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식민지 시대의 지식인으로서 할 수 있는 애국계몽사상의 실천 중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하겠다.” 도서관 건립을 통해 ‘애국계몽사상을 효과적으로 실천’하려 한 이범승이 일부러 일제의 비위를 맞추며 도서관을 ‘쟁취’했던 걸까. 경성도서관 이전과 이후 이범승의 행보가 애국계몽과 독립운동으로 이어져 있다면 이런 해석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범승은 그렇게 해석하기 어려운 삶을 이어간다. 이범승의 애국계몽활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범승은 1887년 8월 29일 만석 갑부 이기하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에서 고등학교와 교토제국대학 독법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남만주철도주식회사(만철)에서 2년 동안 일했다. 이범승은 경성도서관 운영 시절인 1924년 4월부터 반일운동 배척과 일선융화를 표방하며 만든 친일 협력단체 ‘동민회’ 이사와

【동관东莞】민족문제연구소 광동 지부, 동관에 문 열어

2019년 4월 18일 1483

민족문제연구소 광동 지부 개소식 민족문제연구소 광동지부 창립식이 지난 15일(월) 오후 5시 동관 东城国际호텔 3층 회의장에서 박호균 사무국장의 사회로 열렸다. 이날 참석한 문학평론가인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좌, 사진)은 “3.1혁명과 촛불혁명”은 인간혁명의 출발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가졌다. 이어 방학진 기획실장은 민족문제연구소의 소개와 앞으로의 방향 그리고 근현대사에 대한 간단한 강의가 있었다. 초대 지부장을 맡게 된 김유(우, 사진) 광동 지부장은 인사말에서 “묻어버린 역사는 다시 되풀이되어 언젠가는 비수를 들이댄다” 면서 역사바로세우기를 강조하였다. 민족문제연구소는 평생을 친일문제를 연구한 문학가이며 재야 사학자 임종국(林鐘國)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1991년에 설립된 비영리 사단법인으로서 친일문제 관련 학술 행사와 전시회, 친일파 기념사업 저지, 독립운동유적지 및 독립운동가 발굴,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유해 발굴 등 역사정의실현에 앞장서고 있다. 운영재원은 전국과 해외의 약 1만 3천여 후원회원들의 기부금과 연구소가 발간한 서적판매 대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설립 당시의 이름은 ‘반민족문제연구소’였으며, 1995년 현재의 이름인 민족문제연구소로 이름을 바꾸면서 인권변호사 이돈명이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제2대 이사장은 일제강점기 부민관 폭파의거의 주인공인 독립운동가 조문기 선생이, 제3대 이사장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설립한 김병상 몬시뇰 신부가 맡았으며 현재는 한국 민주화운동의 원로인 함세웅 신부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내일의 바람직한 역사를 열어가기 위한 첫 단계로 국민성금을 바탕으로 2009년 을 편찬한데 이어 국치일인 작년 8월 29일에는 역시 시민들의 성금으로 을 건립했다. 친일인명사전에는 모두 4389명의 친일인사들이 올라 있는데 이는 당시 조선 인구를

[팩트체크K] “이승만이 현상금 1위” 한국당 정미경 위원님께

2019년 4월 17일 5236

이승만이 현상금 1위? 30만 달러 액수 근거 부족 김원봉·김구 현상금 역시 공식 근거는 부족해 “이승만이 현상금 1위”라는 자유한국당 정미경 최고위원님께. 정 위원님께서 오늘 아침 한국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지난 주 목요일 전화를 한 통 받았다”면서 말씀하신 KBS 기자입니다. 그날 아침 회의에서 말씀하신 “이승만 대통령이 현상금 1위”라는 근거가 궁금했습니다. 널리 알려진 바처럼 김원봉에게 가장 많은 현상금이 걸린 것 아닌가 궁금했습니다. 팩트체크 취재의 기본은 관련 주장을 한 인물 또는 단체 등에게 주장이 나오게 된 근거를 먼저 확인하는 것입니다. 위원님은 질문에 “검색포털 등에서 관련 기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하셨죠. 바로 언론진흥재단에서 운영하는 언론기사 검색 사이트와 인터넷 포털 등에서 연관 단어들을 검색했습니다. 역시 대부분의 언론 기사와 인용된 전문가 인터뷰들은 김원봉 100만원, 김구 60만 원에 이어 이승만 30만 달러라고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위원님의 말씀을 맞다 틀리다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KBS 펙트체크팀은 기사가 아니라, 원문과 공식 자료를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들 중 일제의 공식적인 현상금 기록이나 원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김원봉이 ‘현상금 100만 원의 사나이’라는 것은 일종의 ‘신화’라는 점도 새로 알게 됐습니다. 이승만 현상금의 근거…<소년중국紙> “이승만 등 3인에 30만 상금” 마침 취재하던 문제도 있고 해서 이 문제는 잠시 미뤄뒀습니다. 오늘 위원님께서 다시 언급하시기 전까지 말입니다. 위원님께서 제가 드린 전화를 언급하시며 친절히 답해주신 점

[팟캐스트]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9편 “이승우” 창씨개명을 적극적으로 앞장 서 추진한 변호사

2019년 4월 16일 1025

[바로듣기] ☞ (4.16)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9편 “이승우” 창씨개명을 적극적으로 앞장 서 추진한 변호사 ☞ (4.09)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8편 “김우영” _내선융화의 상징, 조선인 부영사 되다 ☞ (4.02)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7편 “최린” 독립선언의 주역, 변절의 아이콘이 되다 ☞ (3.26) ‘내역사’ 시즌 3: 강제동원 3편 “피해자 변호인단에게 판결과정과 향후 활동계획을 듣는다 ☞ (3.21)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6편 “박중양” 3.1운동 진압을 위해 자제단을 이끈 거물급 친일파 ☞ (3.12)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5편 “김대우” – 황국신민서사를 제정 입안하여 황국신민화에 앞장선 인물 ☞ (3.06)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좌담회 2부 ☞ (3.05)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좌담회 1부 ☞ (2.27)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만세열전2부 ☞ (2.26) ‘내역사’ 시즌 3: 3.1혁명 100주년 특집 편성_만세열전1부 ☞ (2.19)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4편 “심우섭” 한 시대 형제의 다른 삶, 기회주의자 지식인의 원형 ☞ (2.12) ‘내역사’ 시즌 3: “일제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이후?_2편_한일청구권협정의 쟁점은? ☞ (2.05)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3편 “오현주” 독립운동가 김마리아를 밀고한 배신자, 반민특위 법정에 선다 ☞ (1.29)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2편 “노덕술” 고문으로 유명한 악덕 친일경찰, 대한민국 훈장을 받다 ☞ (1.22) ‘내역사’ 시즌 3: 친일파 1편 “이종형” 의열단 행세하며 독립군 때려잡은

고양시, 일제 강점기 아픔의 장소 30사단 내 ‘항일음악회’ 성료

2019년 4월 15일 1399

고양시 항일음악회 성황리 개최… 남북공동행사로 개최되길 희망해이재준 고양시장”강제 징집된 피해자들의 아픔을 되새기게 되어다. [내외통신]정석철 기자=고양시가 지난 13일,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이해 일제 강점기 아픔의 장소인 30사단 내(고양시 화전동 소재)에서 항일음악회를 열었다. 고양시가 주최하고 고양문화재단이 주관했으며, 민족문제연구소가 후원한 이번 행사는 30사단이 가진 역사적 아픔의 의미(일제강점기 일본군 주둔지 및 강제징집 피해자들의 집결소)를 되새기고, 잊혀져가는 광복군가 등의 항일음악 연주를 통해 새로운 희망과 평화의 불씨를 되살리자는 취지로 진행됐다. 이재준 시장은 이날 인사말을 통해 “100년 전 그날을 기억하고 그간의 발전 과정을 차분하게 성찰하는 동시에, 3.1운동 정신을 바탕으로 희망찬 미래 100년을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 가고자 한다”며, “역사의 아픔을 지닌 이곳에서 잊혀져 가는 광복군가와 독립운동가를 함께 부르며 강제 징집된 피해자들의 아픔을 되새기게 되어 뜻깊다”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약 2천5백여 명의 시민 및 군 장병들의 참여와 함께, 고양시 교향악단, 고양시립합창단 등의 공연을 시작으로 고양신한류예술단, 노관우 밴드, 30사단 군악대 등이 항일음악을 연주했다. 또한,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참여해 그 의미를 더했으며, 마지막으로 출연한 싱어송라이터 인기가수 신형원씨는 누구에게나 친숙한 개똥벌레를 시작으로 독립애국가, 더좋은날 등의 히트곡과 항일음악을 불렀고, 마지막 무대는 전 출연진이 함께 올라와 터를 부르며 많은 시민들의 가슴에 묵직한 울림을 줬다. 이재준 시장은 이날 인사말을 통해 “100년 전 그날을 기억하고 그간의 발전 과정을 차분하게 성찰하는 동시에, 3.1운동 정신을 바탕으로 희망찬 미래

[독립견문록] “백범은 수십만 독립운동가중 한 분…잊힌 영웅 아직도 많아”

2019년 4월 13일 1332

홍소연 임정기념관건립추진위 자료실장 인터뷰 38년간 독립운동 알리기 헌신`독립견문록` 3000㎞ 취재 동행 백범일지 영인본 만든 1994년원본 품고 다니던 감동 못잊어 재산 다 팔고 독립운동 떠났던이명서·명선 형제 기억됐으면 ◆ 3·1운동, 임시정부 100주년 / 독립견문록, 임정을 순례하다 ◆ 툭 치면 와르르 쏟아졌다. 중국 상하이에서 충칭까지 향하는 길, 한 장의 사진에서 독립운동가 생애가 재현됐고 한 권의 책 표지에서 100년 전 기억이 육화됐다. `독립견문록, 임정을 순례하다`의 마지막 편을 송고한 뒤 만남을 청하자 “독립운동사의 교통순경일 뿐, 그럴 자격도 능력도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진심을 다하는 막후(幕後)의 배후자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설득해 오래 사양하던 그를 탁자에 앉혔다.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이면을 쫓아 38년간 외길을 걸은 홍소연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 자료실장(61)을 지난 5일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 서울 경교장(京橋莊)에서 만났다. ―첫 출근 날 풍경부터 기억해 볼까요. ▷1982년 가을, 친구 집에 놀러가니 친구 시아버님이 “뭐하는 친군가” 하고 물으셨어요. 그분이 백범 제자 안윤기 선생이었습니다. 얼떨결에 출근했죠. 을지로3가 상지빌딩 3층, 좁은 방에 철제 책상 3개뿐이었어요. 안 선생님이 떠나시면서 맡게 됐습니다. 그 일이 평생 업(業)이 됐네요. ―벅차오르는 한순간은. ▷글쎄…. `백범일지` 영인본을 만든 1994년 기억이 생생해요. `백범일지` 원본(原本)을 품고 인쇄소를 한 달간 오갔어요. 흑백으로 하자는 어른들을 겨우 설득해 컬러로 했죠. 가슴이 두근거려 혼났어요. 시대의 분신(分身)이었으니까요. 아, 그땐 `백범일지`가 보물로 지정되기 전이었습니다(`백범일지`는 1997년 보물 제1245호로 지정됐다). ―보급판 `백범일지`도 만드셨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