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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이승만 동상 남아 있는 배재대… “자진 철거해야”
대전단체 및 졸업생 등 총장후보자 토론회 앞서 기자회견… “3.8민주의거 정신 훼손 말라” 4.19혁명의 불씨를 당겼던 ‘3.8민주의거’가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것에 맞춰, 대전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배재대학교 교정에 서 있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동상 철거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승만동상철거공동행동’과 ‘3.8민주의거기념사업회’, ‘대전충남4월혁명동지회’ 등은 7일 오후 대전 서구 배재대학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배재대학교는 하루 빨리 이승만 동상을 자진 철거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지난 10월 30일 국무회의에서는 우리 대전지역에서 있었던 대표적인 이승만 독재정권에 대한 반독재 투쟁인 ‘3.8 민주의거’를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다”며 “이는 우리 지역이 이승만 독재정권에 대하여 정면으로 맞서 싸운 4.19 혁명의 선봉이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3.8민주의거’는 1960년 자유당독재와 부정부패에 저항했던 대전지역 학생시위다. 3월 8일 대전고학생 1000여 명과 10일 대전상고 학생 600여 명 등 총 1600여 명의 학생들이 자유와 민주,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던 대전지역 대표적인 민주의거다. 그동안 대전시에서는 3.8 민주의거의 국가기념일 지정 위해 ‘범시민추진위원회’를 결성, 대전시민들의 서명을 받아 정부에 전달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고,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그 결실을 맺게 된 것. 그럼에도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동상이 배재대학교 교정에 서 있는 것은 대전시민을 모욕하는 행위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4.19 혁명에 의해 독재자라는 역사적 평가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당국자 일부의 독단적인 판단으로 대학교로서는 유일하게 배재대학교에 이승만 동상이 서 있다”며 “심지어 두 번이나 철거되었던 이승만
“강제동원 유골송환은 존엄 문제…남북일 협력 필요”
동북아재단서 국제심포지엄…”공동 조사·발굴·감식 이뤄져야”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대법원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의 배상청구권을 인정해 강제동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상황에서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 송환 실태와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대규모 학술 행사가 6일 열렸다. 동북아역사재단,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민족문제연구소가 이날 오후 서울 서대문구 재단 대회의실에서 공동 개최한 국제심포지엄에는 근대사 연구자와 유골 송환을 위해 노력한 일본 시민단체 관계자가 참가했다. 재단에 따르면 해외에서 사망한 조선인 군인과 군무원은 약 2만2천명에 달하지만, 해방 이후 한국 정부를 통해 들어온 유골은 2천여 위에 불과하다. 강제동원으로 한국을 떠났다가 목숨을 잃은 노동자와 외국에 남은 노동자 유골 수는 정확한 실태 파악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일본 정부가 2015년 4월 한국에 제공한 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일본 전역에 산재한 시설 339곳이 조선인 유골 2천798위를 보관 중이지만, 신원이 명확하게 확인된 유골은 167위에 지나지 않는다.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 송환은 2004년 한일 정상이 합의해 2008년부터 2년간 423위가 조국으로 돌아와 국립 망향의동산에 안치됐으나, 이후 큰 진척이 없는 상태다. 이와 관련해 민화협은 북측 민족화해협의회, 일본 시민단체와 함께 지난해 8월 조선인 유골 송환을 위한 남북일 공동추진위원회를 결성했다. 남북 민화협은 지난 3∼4일 금강산에서 만나 유골 송환 공동추진위원회를 강제동원 진상 규명을 위한 공동추진위원회로 확대하는 안을 논의하고,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내년에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를 다룰 공동토론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심포지엄에서는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 송환이 인권과 존엄의 문제이자 식민지배
강제동원 피해 유골문제 해결 논하는 심포지엄 열린다
6일 동북아역사재단서 개최…”일본 전역 활동가들 모여”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유골문제 실태를 짚고 봉환 등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국제심포지엄이 6일 오후 동북아역사재단(이하 재단)에서 열린다. 재단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이러한 내용의 심포지엄을 연다고 1일 밝혔다. 심포지엄에는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와 홋카이도, 오키나와, 야마구치, 오사카, 이와테 지역 시민단체 등에서 조선인 유골 실태조사와 봉환을 위해 노력하는 인사들이 참석한다. 재단은 “일본에서 조선인 유골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지역 거의 모든 관계자가 한자리에 모이기는 일본은 물론 국내에서도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1부 개회식에 이은 2부는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 유골문제의 역사적 경위와 현황’을 살펴보는 자리다. 남상구 재단 한일관계연구소장, 조시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의 하수광 사무국장·니시자와 기요시, 이와부치 노부테루 태평양전사관 관장이 발표에 나선다. 남 소장은 “유골문제는 식민지 피해가 지속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남북한과 일본이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라면서 “유골을 전부 봉환하지 못하더라도 사망 경위와 유골 실태를 유족에게 설명할 책임이 정부에 있다”고 밝힐 예정이다. 3부는 시민 활동가들이 조선인 유골 실태를 조사·발굴하고 봉환한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다. 다케우치 야스토(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 도노히라 요시히코(동아시아시민네트워크), 구시켄 다카마쓰(가마후야), 오바타 다이사쿠(물비상(水非常)을 역사에 새기는 모임), 우에다 게이시(전몰자 유골을 가족 품으로 연락회)가 발표한다. 4부에서는 종합토론을 통해 남북한과 일본이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시민단체(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 강제동원문제해결과대일과거청산을위한공동행동)와 종교 단체(통국사, 유골봉환종교인시민연락회의), 동북아역사재단, 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관계자들이 참석한다. airan@yna.co.kr <2018-11-01> 연합뉴스 ☞기사원문: 강제동원 피해
돈도 못받고 맞으면서 일했는데…’징용 강제성’ 없다는 日아베
아베 총리 “모집 응한 것…’징용공’ 대신 ‘한반도 출신 노동자’” “식민지 압제下 日정부 주도로 모집…강제동원 부인은 ‘본질 흐리기’”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일본 정부가 징용 피해자를 지칭하며 사용했던 ‘징용공’이라는 표현을 ‘한반도 출신 노동자’로 바꿔 부르며 징용의 ‘강제성’을 희석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강제노동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한국 대법원 판결의 본질을 호도하면서 ‘동원의 강제성’ 여부에 대한 새로운 논란을 끌어내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1일 국회에서 기존의 ‘징용공’이라는 단어 대신 ‘옛 한반도 출신 노동자’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이에 대해 “당시의 국가총동원령법의 국가징용령에는 모집과 관(官)알선, 징용이 있었는데, 이번 재판의 원고는 모집에 응했다고 표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는 전날 관련 부처들에 ‘옛 한반도 출신 노동자’라는 표현을 쓰라는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일본어로 ‘징용’을 의미하는 ‘조요'(徵用·ちょうよう)는 한국어 ‘징용’과 마찬가지로 국가가 국민을 ‘강제적’으로 동원해 일정한 일을 시키는 것(쇼가쿠칸<小學館> 사전)을 뜻한다 아베 총리의 발언은 대법원 판결의 원고 4명이 형식상 ‘징용’이 아닌 ‘모집’에 의해 일본에 건너왔다는 점을 강조하며 징용 피해자들이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노동을 했다고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피고인 일본 기업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이 일본 정부의 통제를 받은 가운데 모집을 했고, 당시가 군국주의 일제의 압제가 극에 치닫는 상황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강제 동원임을 부정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대법원 판결문을 보면 원고 이춘식 씨는 대전 시장의 추천을
[보도자료] 신일철주금소송 변호단 및 한·일사무국 기자간담회 안내(11.7)
[다운로드] [보도자료] 1. 오는 11월 7일 오전11시,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신일철주금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 대한 기자간담회를 갖습니다. 2. 지난 10월 30일 대법원은 피고 신일철주금 주식회사가 재상고한 사건에서 피고의 청구를 기각하고 원고승소를 확정했습니다. 이 판결은 1995년 일본에서 처음 소송이 시작된 지 23년, 2005년 한국 소송을 시작한지 13년 만의 뜻깊은 판결이었습니다. 또한 이번 판결은 이후 국내 각급 법원에 계류되어 있는 일제강제동원 관련 사건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3. 하지만 판결 후 일부 무분별하고 자극적인 보도가 이어지며 이번 판결의 의미가 곡해될까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이에 사건의 사무국인 민족문제연구소와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집협의회, 일본제철 징용공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일본)은 판결의 의미를 되짚어보고 앞으로의 전망과 대응방안 등을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4. 이번 간담회에는 ▲ 피해자단체의 공동대표 ▲ 사건 담당 변호사 ▲ 한일양국의 소송사무국 관계자 ▲국제법 전문가가 참석하여 발언할 예정입니다. 5. 일제강제동원 피해가 올바르게 회복될 수 있도록 귀사의 적극적인 취재와 보도를 부탁드립니다.
대법원 “日기업, 강제동원 피해자에 위자료 1억 지급해야”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청구권, 청구권협정 적용대상에 포함 안 돼” [법률저널=안혜성 기자]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대법원이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0일 피고 신일철주금 주식회사의 상고를 기각, 피고가 원고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1억 원씩의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한 원심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원고들은 1941년부터 1943년까지 일본의 제철소에 강제동원된 피해자들로 일본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으나 “구 일본제철의 채무를 신일철주금이 승계했다고 볼 수 없다”는 판결이 2003년 10월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확정됐고 원고들은 2005년 한국에서 다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 모두 “일본 판결 내용이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과 기타 사회질서에 비춰 허용할 수 없다고 할 수 없다. 일본의 확정판결은 우리나라에서도 인정된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대법원(대법원 2012. 5. 24. 선고 2009다22549 판결)은 “일본판결 이유는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어서 이러한 판결 이유가 담긴 일본판결을 그대로 승인하는 결과는 그 자체로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나는 것임이 분명하므로 우리나라에서 일본판결을 승인하여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판결을 뒤집었다. 사건을 재심리한 서울고등법원은 다음해 7월 원고들에게 각 1억 원의 위자료 지급을 명하는 판결을 내렸고 대법원이 이를 확정함에 따라 장장 13년 8개월 만에 피해자들의 승소로 결론지어졌다. 이번 소송의 쟁점은 ①동일한 내용의소송이 일본에서 패소 확정됐는데 한국에도 효력이 미치는지 ②피고 신일철주금이 구
대법원 2018.10.30. 선고 2013다61381 전원합의체 판결 [손해배상(기)] [공2018하,2317]
다운로드 ▶ [보도자료] ▶ [판결문: 대법원 2018.10.30. 선고 2013다61381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공보관실(02-3480-1451) 대법원(재판장 대법원장 김명수, 주심 대법관 김소영)은 2018. 10. 30.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신일철주금 주식회사)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신일철주금)의 상고를 기각하여, 피고가 원고들(피해자들)에게 1억 원씩의 위자료를 지급하여야 한다고 한 원심판결을 그대로 확정시켰음(대법원 2018. 10. 30. 선고 2013다61381 전원합의체 판결). 이 사건 핵심쟁점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하였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임. 이에 대하여 다수의견(7명)은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으로서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하였음. 이러한 다수의견에 대해서는, ‘이미 2012. 5. 24. 선고된 환송판결에서 대법원은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아니한다고 판단하였으므로, 그 환송판결의 기속력에 의하여 재상고심인 이 사건에서도 같은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는 취지의 대법관 이기택의 별개의견1과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도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는 포함되지만,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이 포기된 것에 불과하므로 원고들은 피고를 상대로 우리나라에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취지의 대법관 김소영, 대법관 이동원, 대법관 노정희의 별개의견2가 있고,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고,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만이 포기된 것이 아니라 청구권협정에 따라 원고들의 권리행사가 제한되는 것이다’라는 취지의 대법관 권순일, 대법관 조재연의 반대의견이 있으며, ‘다수의견의 입장이 조약 해석의 일반원칙에 비추어 타당하다’는
6월항쟁 이끈 함세웅 신부 출판기념회…”정의구현이 평생 신념”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기자 = 1987년 6월 항쟁 등 한국 민주화 운동에 앞장선 함세웅 신부의 출판기념회가 31일 열려 그와 함께 민주화 운동을 이끈 주인공들이 치열했던 당시를 함께 회고했다. 이날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함 신부의 대담집 ‘이 땅에 정의를’ 출판기념회에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와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천정배 민주평화당 의원, 이창복 6·15 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을 비롯해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와 인혁당·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첫 번째 축사를 맡은 백낙청 교수는 “함 신부님은 정의구현을 신념으로 살아오시면서 온갖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하셨다”며 “최근에도 옛날이나 다름없이 열심히 현장에서 활동하신다”고 전했다. 이어 축사를 한 이해동 목사는 “함 신부님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절대로 굽히지 않는 고집이 센 분”이라며 “함 신부님은 이 시대가 만들어낸 투사로, 그의 족적은 역사에서 절대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복 의장은 “그 누구도 가담하기를 주저했던 문제에도 함 신부님은 우뚝 서 주셨다”며 “이 땅의 정의를 살리기 위해, 썩은 정치를 물리치기 위해 모든 희생을 감수하며 살아오셨다”고 말했다. 기념회 마지막 순서로 마이크를 잡은 함 신부는 “순국선열들, 희생자들, 고통받으신 분들 모두 시대 변화를 위해서 남북평화 공존을 마음에 간직하며 아름다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며 “여러분 모두의 건승을 기원한다”고 답사했다. 함 신부의 대담집 ‘이 땅에 정의를’은 한인섭 서울대 법대 교수가 대담자로 나서 민주화 운동가로서 한국 현대사의 한복판에 섰던 함 신부의 삶을
아직 역사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기고] ‘촛불’ 2주년에 돌아보는 역사전쟁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상임이사 “이것이 나라냐?”고 분노하며 시민들이 촛불을 든 지 벌써 2년이 됐다. 그간 정권교체도 이루어졌고 평화정착과 통일에 대한 전망도 그 어느 때보다 밝아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 촛불민심이 요구한 ‘적폐청산’과 ‘국가재조’라는 혁명적 과제는 현실정치와 경제논리에 발목이 잡혀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잠시 자숙하는 시늉을 하던 수구세력은 자신감을 되찾은 듯 촛불항쟁의 정신을 외면하고 거침없이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들은 분단 70년이 넘어 찾아온 민족의 명운이 걸린 절호의 기회를 한갓 정치적 득실을 따져 사사건건 제동을 건다. 숱한 개혁 입법도 제대로 논의조차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두 차례 보수정권에서 고질화한 관료사회의 퇴행도 가벼이 여길 일이 아니다. 이제 일각에서 조직적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무고함을 강변하며 현 정권의 퇴진까지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는 통설이 실감나는 요즈음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지부진한 현 상황을 남의 탓만으로 돌리며 수수방관할 수만은 없다. 더 늦기 전에 문제의 근원을 찾아 효과적인 대처를 해야 할 것이다. 현 정권은 촛불민심의 선택과 위임을 받아 출범했다는 점에서 도덕적 권위를 지니는 동시에, 그 요구에 응답하고 가시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야 할 피할 수 없는 책무를 지니고 있다. 여기서 촛불을 든 시민들이 함께 외쳤던 주장이 무엇이었던가를 곱씹어 봐야 한다. 돌이켜보면 사실 거창한 명제가 아니었다. 촛불집회에서는 박근혜 하야–퇴진–탄핵-구속 촉구로 이어지는 각 단계별로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었지만, 이를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매장 추정지 발굴에 천안시 참여 여부에 ‘관심’
【천안·아산=뉴시스】이종익 기자 = 최근 충남 천안에서 1950년 전후 6·25 한국전쟁 당시 부역 혐의를 받고 체포돼 200여 명이 희생된 민간인학살 매장지로 추정되는 장소가 발견됐다는 주장과 관련해 천안시의 발굴 동참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천안역사문화연구회 등으로 구성된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천안지역 희생자 위령제 준비위원회’는 지난 28일 오전 매장지로 추정되는 직산 관아 일원에서 위령제를 진행했다. 이날 위령제 앞서 준비위원회 관계자를 비롯해 더불어민주당 이규희 국회의원(천안갑)과 육종영 천안시의원 등이 참가한 가운데 추정 장소에 대한 사전답사를 진행하며 유해 발굴에 관심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용길 준비위원회장은 29일 “11월 초 아산지역에서 발굴작업에 참여했던 충북대 발굴단의 현장답사 진행에 이어 천안시의회에 가칭 ‘천안시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자 위령 사업 지원 등에 관한 조례’ 제정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앞서 준비위원회는 지난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현 천안시 직산읍 인근에서 한국전쟁 당시 부역 혐의를 받고 체포돼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시신 200여 구에 달하는 매장 추정지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원회 2010년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천안지역은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중 보도연맹사건으로 신청된 사건은 없고, 부역 혐의 희생 사건으로 신청된 사건 7건이 있다. 이 중 당시 직산면사무소(직산관아)와 관련해 지서장의 지시로 “200여 명의 부역 혐의자들을 금광구덩이에 죽이고 묻고 했다는 참고인의 증언이 있다”는 것이 준비위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 같은 내용의 조례가 제정될 경우 보수와 진보 측의 찬반 의견 대립으로 난항도 우려된다. 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