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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옥비녀 꽂은 20대 여성 희생자, 67년 만에 빛을 보다

2018년 2월 27일 1242

아산 설화산 민간인 학살 유해 발굴, 기자가 직접 동참해 보니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내려 놓았다.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B2 구역이다. 대나무 조각칼, 흙받이 등 개인 장비도 챙겼다. 천천히 호미질을 시작했다. 23일 오전 충남 아산시 배방읍 중리마을 뒷산 8부 능선. 이곳 폐금광터에서는 인근 마을에서 끌려온 주민들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어린 갓난아기까지 일가족이 끌려와 희생됐다는 증언도 많다. 1950년 인민군 점령 시기에 인민군에 협조했다는 게 처형 이유였다. 유해 발굴 구덩이는 가로 10m, 세로 15m 크기다. 유해발굴단은 이 면적을 다시 7개 구역으로 나눴다. 유해발굴과 기록을 꼼꼼히 하기 위해서다. 기자가 자리한 B2 지역은 가로세로 3m 남짓으로 협소했다. 여기서 세 명이 자리를 잡았다. 끝날이 평평한 호미를 이용해 흙을 조금씩 긁어서 걷어내는 일이 시작됐다. 모인 흙은 양동이에 담아 따로 모은다. 양동이 흙 속에 혹여 유해가 섞여 있는지를 재확인하기 위해서다. 호미질을 시작한 지 15분 정도 지났을 때였다. 앞 경사면 중간쯤에 푸른색 물체가 살짝 드러났다. “단장님! 단장님!” 기자가 박선주 유해발굴 단장을 급히 불렀다. 오전 10시께였다. “옥비녀 같아요. 부녀자들이 쪽진 머리에 꽂던….” 온전히 모습이 드러날 때까지 조심조심 흙을 헤집었다. 부러져 있었지만, 옥비녀가 분명했다. 호미를 내려놓고 대나무 조각칼로 주변 흙을 조심스레 긁어나갔다. 비녀가 있던 한 뼘 아래쯤에서 하얀 물체가 보였다. 치아였다. 유해가 손상되지 않도록 신경 썼다. 간간이 골짜기 찬 바람이

이순신, ‘친일 군인’ 박정희의 건물에 갇히다

2018년 2월 27일 1832

문화재청 ‘현충사 박정희 친필 현판 존치’ 판단 유감… 숙종 현판이 ‘복원 원칙’에 걸맞다 문화재청(청장 김종진)은 지난 21일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위원장 이재범 전 경기대 교수)의 검토 결과에 따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아산 현충사 사당 현판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문화재청이 밝힌 존치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박정희 전 대통령 친필 현판은 숙종 사액 현판을 철거하고 교체 설치한 것이 아니라 성역화 사업 당시 신 사당을 건립할 때 제작·설치하게 된 것’이며 둘째, ‘충무공파 후손들 간에도 서로 의견이 엇갈리고 있으며’ 셋째, ‘1967년 현충사 성역화사업 당시 만들어진 신 사당에 1932년 국민성금으로 건립된 구 사당에 걸려있는 숙종 사액 현판을 떼어내 옮겨 설치하는 것은 그 시대의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건물과 현판의 일체성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원형 복원 원칙’ 무시한 문화재청의 판단 문화재청이 밝힌 박정희 현판 존치 첫째 이유를 반박하기 위해서 우선 ‘광화문 제 모습 찾기’ 사업을 살펴보자. 광화문은 임진왜란(1592년)으로 소실됐다가, 고종 4년(1867년)에 다시 지어졌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청사가 신축되면서 1926년 해체돼 경복궁 동편인 지금의 국립민속박물관 정문으로 옮겨지면서 원형이 훼손·변형됐다.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으로 목조 부분이 불에 타 없어지고 석축만 남게 됐다. 그러다가 박정희의 특별지시로 1968년 12월 원래 자리로 옮겨 다시 지었다. 당시 박정희 정권과 언론들은 이를 두고 ‘복원’이라고 주장했지만 박정희가 새로 쓴 현판을 빼곤 목조였던 누각마저 모조리 콘크리트로 만들면서

독립운동현장 울산 동구 보성학교, 보훈처와 지자체 ‘방치’

2018년 2월 27일 2250

시민모임 “항일운동터전 보성학교 국가현충시설로 지정해야”   지난해 울산 동구청이 동구 바닷가(방어진) 일제의 수탈 역사인 일본인들이 거주하던 적산가옥(해방후 일본인들이 물러간 뒤 남겨놓고 간 집이나 건물)은 많은 예산을 들여 개발하려는 반면 인근에 있는 항일운동 본거지 보성학교는 방치해 비난이 일었다. (관련기사 : 항일학교는 방치하고 일본인 골목 복원한다는 울산 동구청) 이에 각계 주민들은 ‘항일운동터전 보성학교 복원을 위한 시민모임(아래 시민모임)’을 결성해 동구청(장)의 이런 행보를 “방어진 친일미화 역사사업”으로 규정하고 중단을 촉구하는 한편 보성학교 복원운동을 벌이고 있다. 시민모임은 3.1 독립만세운동 99주년을 맞아 “울산독립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항일운동터전 보성학교(터)를 국가현충시설로 지정할 것”을 국가보훈처와 울산자치단체에 촉구했다. 이들은 27일 오전 11시 30분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대통령은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하며 잊힌 영웅으로 남겨두지 않겠다고 천명했다”고 상기했다. 또한 “피우진 국가보훈처장도 취임사를 통해 변화와 혁신을 언급하며 불합리한 보훈제도의 개선을 약속한 바 있다”면서 “우리는 새 정부의 독립운동에 대한 보훈정책의 변화를 기대하며 일제강점기 울산의 항일운동 터전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보성학교(터)의 국가현충시설 지정을 요구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울산 동구 방어진 일제강점기 수탈 관문…이에 맞서 보성학교 세워 독립운동 울산은 일본과 육지거리가 가까운 곳으로 일제강점기 내내 주권침탈과 자원수탈의 관문이 됐다. 특히 동구 방어진은 일본인 수천 명이 이주 정착해 조선인의 어장을 침탈하고 막대한 부를 향유한 식민지 거점이었다. 시민모임에 따르면,

광주시민단체 “새마을장학금 지급 납득하기 어려워”

2018년 2월 27일 1265

‘새마을장학금 조례 폐지운동’ 착수 광주지역 시민단체가 광주시와 광주 지역 5개 자치구를 상대로 ‘새마을장학금 지원 조례 폐기’를 촉구하고 나선다. 또, 새마을회에 매년 관행적으로 수억원씩 지원되는 ‘혈세 특혜’도 철회할 것을 촉구 할 예정이다. 26일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 등 9개 시민단체는 “새마을장학금은 매년 막대한 시민혈세를 단지 새마을지도자 자녀들이라는 이유로 특정 단체에 지급되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시와 5개 자치구, 전남도 22개 시·군은 매년 30억원 이상의 예산을 1986년 제정된 ‘광주시 새마을장학금 지급 조례’에 근거해 지역새마을회에 지급해 오고 있다. 새마을회 측은 이 중 70% 가량을 회원 자녀 장학금, 조직 운영비, 자체 행사비로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시민단체는 “광주시와 5개 자치구, 전남도 22개 시·군이 새마을회에 운영비와 사업비를 지원하는 것도 모자라 매년 장학금까지 지급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새마을 특혜 장학금 시민회의’를 구성해 대표적인 특권 반칙 조례인 새마을장학금 조례 폐지 운동에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새마을 특혜 장학금 시민회의’는 오는 27일 오후 2시 광주시의회 브리핑룸에서 지난 2014~2017년까지 4년간 지급된 새마을장학금 내역과 지급 실태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nam@ <2018-02-26> 뉴스1 ☞기사원문: 광주시민단체 “새마을장학금 지급 납득하기 어려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학살’ 영상 처음 나왔다

2018년 2월 27일 1403

1944년 윈난성에서 미군이 촬영 벌거벗은 시신 무더기 쌓여 있어 “조선인 30명 학살”기록 뒷받침 학살 부정한 일본 주장 정면 반박 19초 영상에 처참한 현장 담겨 미군 문서 “일본군이 총살”명시 발굴 교수 “극단적 인권말살 사례” 일본군이 패전 직전 조선인 ‘위안부’ 피해 여성들을 집단 학살한 사실을 보여주는 영상과 문서가 처음으로 나왔다. 서울시와 서울대 인권센터는 27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한·중·일 ‘일본군 ‘위안부’ 국제 콘퍼런스’에서 조선인 위안부 피해자 학살 현장을 담은 영상을 최초로 공개했다. 영상은 서울시와 서울대 인권센터 정진성 교수 연구팀이 2016~2017년 두 차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을 찾아 자료 조사와 발굴 작업을 거쳐 공개한 것이다. 일본군이 위안부 피해자를 학살했다는 기록은 당시 중국 국민당 기관지 <소탕보>(1944년 9월18일) 등 일부 매체 기사에 남아 있지만 영상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그동안 위안부 강제연행과 학살을 부정해온 일본 정부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자료인 것이다. 영상에선 매장을 하러 온 것으로 보이는 한 중국 군인이 벌거벗은 주검들을 둘러보다가 한 주검에서 양말을 벗기는 장면이 나온다. 화면 한쪽엔 계속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연구진은 “공개본에선 흐리게 처리했지만 원래 영상에선 머리가 없거나 신체 일부만 남아 있는 주검도 있어 당시의 잔인했던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고 했다.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 현장을 보는 듯한 이 영상은 1944년 9월15일 중국 윈난성 텅충에서 연합군 164통신대 사진중대 볼드윈 병사가 찍은 것이다. 19초 길이 영상에서 중간

[팟캐스트] 역적 시즌2 – 8회

2018년 2월 23일 1203

[바로듣기] ☞ [팟캐스트 ‘역적’시즌2. 8회 2부 “친일 후손의 반성_이윤선생과 함께”] ☞ [팟캐스트 ‘역적’시즌2. 8회 1부 “갑신정변_겨울에 온 제비”] ☞ [팟캐스트 ‘역적’시즌2. 7회 2부 “친일군인 김창룡 묘 이장과 국립묘지법 개정 –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와 함께”] ☞ [팟캐스트 ‘역적’시즌2. 7회 1부 “개화와 보수의 빅매치 1탄 임오군란”] ☞ [팟캐스트 ‘역적’시즌2. 6회 2부 “과거 민간인학살 진상규명_최홍이 선생과 함께”] ☞ [팟캐스트 ‘역적’시즌2. 6회 1부 “불평등으로 시작된 강화도조약 2편”] ☞ [팟캐스트 ‘역적’시즌2. 5회 2부 “박순찬 시사만화가와 함께”] ☞ [팟캐스트 ‘역적’시즌2. 5회 1부 “역전다방_의열단 1편”] ☞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4회 2부 – 김활란동상 옆 친일 알림팻말_이화 친일청산프로젝트 기획단과 함께 ] ☞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4회 1부 “불평등으로 시작된 강화도 조약 1편”] ☞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3회 2부 “임청각 이야기”_이항증선생과 함께(석주 이상룡선생 증손자)] ☞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3회 1부 “내우외환 위기속 흥선대원군(2편)”] ☞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2회 2부 반민특위 김상덕위원장 아들 김정륙선생과 함께] ☞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2회 1부 “내우외환 위기속의 흥선대원군(1)”] ☞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1회 2부 “효창원 역사적폐청산 과제_차영조 선생님”] ☞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1회 1부 “백년의 역사여행을 시작하며”] ☞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프롤로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2] 팟캐스트 ‘역적'(역사적폐 청산) ※제작 등: PD 김세호, MC노, 김광진(前)국회의원,

민족사랑 2018년 02월호

2018년 2월 22일 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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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일본 군부대 설치해달라”… 친일파 청원서 발견됐다

2018년 2월 21일 3105

[단독] 1915년 데라우치 총독에 요청… “병력 청원 기록물 일반에 알려진 건 처음”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에 일본군 사단을 설치해 줄 것을 요청하는 거물 친일파들의 연명 청원서가 발굴됐다. 그동안 일제강점기 말기에 친일파가 거액의 국방헌금을 내고 전투기 등을 헌납하거나, 징병·학병 지원을 독려하는 연설·기고문 등이 발굴된 사례가 다수 있었다. 하지만 자기 지역에 병력을 주둔시켜 줄 것을 청원하는 친일 기록물이 일반에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겸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객원교수는 “당시에 이런 청원이 많이 있었는데, 최근 연구를 통해 일반에 알려진 것은 처음”이라면서 “개인의 친일행위에 대한 연구는 많았지만, 구조적인 문제는 조사하지 못한 상황에서 1910년대의 청원서라는 데 의미가 크다”라고 역사적 가치를 평가했다. 해당 문건은 친일 문제에 관심 있는 한 인사가 제공한 것으로 대구·경북 지역의 친일파 4명이 데라우치 조선총독에게 보내는 사단 설치 청원서다. 한일강제병합 5년 후인 1915년 6월 11일에 작성됐다. 정재학, 서병조, 이일우, 이병학이 당시 대구에 진출한 일본인 지주·부호들과 나란히 연명하고 날인했다. 정재학, 서병조, 이병학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파다. 이일우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알려진 민족시인 이상화의 큰아버지인데, 친일 행위에 대한 논란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번 청원서가 그의 친일 행적에 또 하나의 근거로 작용될 것으로 보인다. “병영설치 은택 입으면 부지기부, 편의도모”… 적극적 유치 의사 청원서에는 “대구는 남선(조선의 남쪽)의 중간에 위치한 중요한 도시이고, 지금 사령부와 연대본부가 설치돼

[팟캐스트] 역적 시즌2 – 7회

2018년 2월 19일 1352

[바로듣기] ☞ [팟캐스트 ‘역적’시즌2. 7회 2부 “친일군인 김창룡 묘 이장과 국립묘지법 개정 –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와 함께”] ☞ [팟캐스트 ‘역적’시즌2. 7회 1부 “개화와 보수의 빅매치 1탄 임오군란”] ☞ [팟캐스트 ‘역적’시즌2. 6회 2부 “과거 민간인학살 진상규명_최홍이 선생과 함께”] ☞ [팟캐스트 ‘역적’시즌2. 6회 1부 “불평등으로 시작된 강화도조약 2편”] ☞ [팟캐스트 ‘역적’시즌2. 5회 2부 “박순찬 시사만화가와 함께”] ☞ [팟캐스트 ‘역적’시즌2. 5회 1부 “역전다방_의열단 1편”] ☞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4회 2부 – 김활란동상 옆 친일 알림팻말_이화 친일청산프로젝트 기획단과 함께 ] ☞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4회 1부 “불평등으로 시작된 강화도 조약 1편”] ☞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3회 2부 “임청각 이야기”_이항증선생과 함께(석주 이상룡선생 증손자)] ☞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3회 1부 “내우외환 위기속 흥선대원군(2편)”] ☞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2회 2부 반민특위 김상덕위원장 아들 김정륙선생과 함께] ☞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2회 1부 “내우외환 위기속의 흥선대원군(1)”] ☞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1회 2부 “효창원 역사적폐청산 과제_차영조 선생님”] ☞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1회 1부 “백년의 역사여행을 시작하며”] ☞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프롤로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2] 팟캐스트 ‘역적'(역사적폐 청산) ☞ 역적 시즌2 #7-2 “친일군인 김창룡 묘 이장과 국립묘지법 개정” ☞ 역적 시즌2 #7-1 개화와 보수의 빅매치 1탄 임오군란 ※제작 등: PD 김세호,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제5차 유해발굴조사(충남 아산시 배방읍, 2.22~3.1)

2018년 2월 19일 2938

[다운로드] [보도자료] [자료집]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0년이 넘었지만, 한국전쟁 당시 무고하게 희생된 민간인들에 대한 유해들은 전국 곳곳에 아직까지 방치되어 있다. 이에 한국전쟁유족회, 4.9통일평화재단,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 장준하특별법제정시민행동, 포럼진실과정의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 2014년 2월 18일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이하 공동조사단, 단장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을 출범시켰다. 공동조사단은 지난 2014년 2월 24일부터 3월 4일까지 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리 “진주지역 보도연맹사건 관련 민간인 학살 희생자”에 대한 1차 유해발굴조사를 통해 최소 39명의 유해와 탄두와 탄피, 버클 등 다수의 유품을 발굴한 바 있으며, 2015년 2월 23일부터 3월 2일까지 대전광역시 동구 낭월동 “대전형무소사건 관련 민간인 학살 희생자”에 대한 2차 유해발굴조사를 통해 최소 20구의 유해와 탄두, 탄피, 의안 등 다수의 유품을 발굴한 바 있다. 또한 2015년 11월 15일 충남 홍성군 광천읍 담산리 산 92번지에 대한 시굴조사를 통해 다수의 유해와 탄두를 발견함에 따라 2016년 2월 25일부터 29일, 3월 4일에서 8일에 걸쳐 3차 유해발굴조사를 벌여 최소 21명의 유해와 라이터 등 다수의 유품을 발굴하였다. 이어 2017년 2월 24일부터 3월 2일 간에는 경남 진주 명석면 용산리 제2학살지에 대한 4차 유해발굴조사를 통해 최소 38명의 유해와 안경, 탄두, 버클 등 30여 점의 유품을 발굴하였다. 공동조사단은 지난 네 차례의 유해발굴조사에 이어 오는 2월 22일부터 3월 1일까지 충남 아산시 배방읍 중3리 산86-1번지에서 제5차 유해발굴조사를 벌인다. 공동조사단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