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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민족사랑 2018년 01월호

2018년 1월 24일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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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ㆍ3 전국화 위한 ‘4370신문’ 발간

2018년 1월 25일 1635

<2018-01-23> 한국일보 ☞기사원문: 제주 4ㆍ3 전국화 위한 ‘4370신문’ 발간 ※관련기사 ☞일간제주: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 ‘4370신문’ 창간호 발행 ☞헤드라인제주: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 ‘4370신문’ 창간호 발행  

스타트업 적폐청산 9화 “우리시대의 적폐와 진정한 과거청산”

2018년 1월 24일 992

김미화와 함께하는 스타트업 적폐청산 9화 “우리시대의 적폐와 진정한 과거청산“ -진행: 김미화 -출연: 김효순 포럼 진실과 정의 대표, 이석태 포럼 진실과 정의 대표 , 홍순권 포럼 진실과 정의 대표 본 프로그램은 포럼 진실과 정의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의 모임 ·한겨레21 ·한겨레TV와 함께 합니다. -프로듀서 : 이경주, 종합편집: 문석진, 타이틀 : 이정온 -카메라 : 정동화 이규호 김도성 조성욱, 메이크업 : 강도겸 -기술 : 박성영, 연출 : 이규호, 제작: 한겨레TV <2017-11-27> 한겨레TV ☞영상출처: 김미화와 함께하는 스타트업 적폐청산 9화[적폐청산] (11.27) ※관련기사 ☞한겨레TV: 김미화와 함께하는 스타트업 적폐청산 8화[인권침해] (11.22) ☞한겨레TV: 김미화와 함께하는 스타트업 적폐청산 7화[과거청산] (11.13) ☞한겨레TV: 김미화와 함께하는 스타트업 적폐청산 6화[언론] (11.6) ☞한겨레TV: 김미화와 함께하는 스타트업 적폐청산 5화[교육] (10.31) ☞한겨레TV: 김미화와 함께하는 스타트업 적폐청산 4화[경제] (10.24) ☞한겨레TV: 김미화와 함께하는 스타트업 적폐청산 3화[군] (10.17) ☞한겨레TV: 김미화와 함께하는 스타트업 적폐청산 2화[경찰] (10.10) ☞한겨레TV: 김미화와 함께하는 스타트업 적폐청산 1화[검찰과국정원] (2017.09.26)

[팟캐스트] 역적 시즌2. 3회 임청각 이야기

2018년 1월 19일 1666

[바로듣기] ☞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3회 2부 “임청각 이야기”_이항증선생과 함께(석주 이상룡선생 증손자)] ☞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3회 1부 “내우외환 위기속 흥선대원군(2편)”] ☞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2회 2부 반민특위 김상덕위원장 아들 김정륙선생과 함께] ☞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2회 1부 “내우외환 위기속의 흥선대원군(1)”] ☞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1회 2부 “효창원 역사적폐청산 과제_차영조 선생님”] ☞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1회 1부 “백년의 역사여행을 시작하며”] ☞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프롤로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2] 팟캐스트 ‘역적'(역사적폐 청산) ☞팟빵: ‘역적’ 시즌2 – 3회 2부 “임청각 이야기”_이항증선생과 함께(석주 이상룡선생 증손자)” ☞팟빵: ‘역적’ 시즌2 – 3화 1부 1부 “내우외환 위기속 흥선대원군(2편)” ※제작 등: PD 김세호, MC노, 김광진(前)국회의원,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 방학진 기획실장, 방은희 교육팀장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2 ‘역적’ “우리 역사의 뿌리가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훼손되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싸운 상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역사적폐의 주범들의 실체와 이들이 저지른 역사범죄의 동기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기고 / 친일 적폐 청산 위한 식민지역사박물관의 조속한 건립을 기대하며

2018년 1월 17일 1540

우리 조국 대한민국은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래서 2017년은 광복 72주년이 된다. 그런데 아직도 친일 청산이 잘되지 않아 통일된 완전한 자주독립국가를 이룩하지 못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친일파들은 민중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재산을 탈취하고, 항일투사들을 잡아들이고 살해하는 일에 앞장섰다. 또한 학도병 강제 징병과 징용, 위안부 강제 모집의 선동대가 되는 온갖 악행을 도맡아 저질렀다. 그리하여 1948년, 이들을 처벌하기 위해 ‘반민족행위처벌법’이 제정되고 반민특위가 만들어졌다. 반민특위는 구체적인 죄목으로 친일파들에 대한 단죄에 나섰다. 그러나 이승만정권의 방해로 인하여 반민특위는 해산되고 친일파는 단 한 명도 단죄되지 않았다. 이렇게 버젓이 살아남은 친일파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치하에서도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며 더욱 승승장구했다. 결국 나라 권력의 대부분이 친일파의 것이 되고 말았다. 그들의 후광을 입은 후손들 역시 정치, 경제, 사회, 학술 등 모든 분야에서 현재까지 권력을 잡고 떵떵거리며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돌이켜 보면, 친일은 독재와 억압, 불의와 부정의 토대가 되었다. 그리하여 이 땅에 70년 넘게 채워진 질곡의 사슬을 풀고 민주와 정의, 화합과 평등이 넘치는 살맛나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이제부터라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 청산 노력에 많은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족문제연구소는 1949년 친일파에 의해 와해된 반민특위의 정신과 친일연구의 선구자인 고 임종국(林鍾國, 1929-1989)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친일과 항일 연구를 잘 한 결과 ‘친일인명사전’과

조용하고 검소하게…’인권운동 대부’ 이돈명 변호사 7주기

2018년 1월 14일 1586

고인, 민청학련 등 굵직한 시국사건 변호…남양주 묘소에 동료·가족모여 추모 민주화운동 동료들 “겸손한 고인 뜻에 맞아”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영화 ‘1987’ 흥행으로 과거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이들이 재조명을 받는 가운데 우리나라 ‘인권운동의 대부’로 불린 고(故) 이돈명 변호사의 7주기가 최근 특별한 행사 없이 조용히 치러졌다. 14일 이 변호사의 민주화운동 동료들에 따르면 고인의 7주기인 지난 11일 경기도 남양주 별내면 천주교 성당묘지의 묘소에는 가족과 동료들이 찾아 차분하게 추모의 시간을 보냈다. 영화 1987에서 배우 설경구가 연기한 김정남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과 문국주 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상임이사, 박중기 민족민주열사·희생자 추모단체연대회의(추모연대) 명예의장 등은 묘소에 모여 고인의 생전 뜻을 기렸다. 이들은 모두 이 변호사와 함께 민주화운동에 헌신했으며, 지금은 모두 진보진영 시민사회 원로로 꼽힌다.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에서 이 변호사와 함께 활동한 문 전 상임이사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이 변호사께서 생전 워낙 겸손한 분이었기 때문에 조용하게 (고인을) 기리는 편이 고인의 뜻에 맞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평생 대중교통을 이용할 정도로 검소하고 소박했던 것으로도 잘 알려졌다. 이 변호사 별세 이후 그가 위원장을 맡았던 천주교인권위원회는 매년 추모 미사를 집전했으나 2016년 5주기 미사가 마지막이었다. 올해 추모 미사에는 가족만 참석했다고 한다. 이 변호사는 1974년 4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의 변론을 맡으면서 인권 변호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인혁당 사건과 김지하 반공법 위반 사건, 청계피복노조 사건, 크리스천아카데미 사건, 광주 민주화운동 등

영화 ‘1987’에 숨어 있는 이야기

2018년 1월 14일 4340

[김종철 칼럼] 명예도 이름도 없는 민주 교도관들 지난해 12월27일 개봉한 영화 ‘1987’이 1월12일이면 관객 5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권 시기에 기획되어 은밀하게 제작되고 있던 이 작품은 박근혜가 대통령직에서 쫓겨나지 않았더라면 빛을 보지도 못한 채 창고에 갇히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1987’은 촛불혁명 덕분에 밝은 세상에서 많은 이들, 특히 20~30대의 사랑까지 받는 ‘국민영화’로 솟아오를 수가 있었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격동적인 민주·민족·민중운동이 펼쳐진 1980년대는 촛불혁명의 뿌리라고 볼 수 있다. 그 시기에 가장 두드러진 사건은 1980년 5월의 광주민중항쟁과 1987년의 6월항쟁이었다. 영화 ‘1987’은 6월항쟁의 기폭제가 된 그해 정초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6월의 이한열 최루탄 피격사건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두 사건은 지난 30여년 동안 나라 안팎에 그 진상이 널리 알려졌는데, 정작 이 영화는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지는 않는다. 가공(加工) 또는 허구(虛構)가 도처에 널려 있다. 그 대표적인 보기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은폐·조작의 진상을 재야민주화운동권에 전달한 영등포교도소 교도관 한병용의 이름과 더불어 그가 겪은 고초의 내막을 들 수 있다. 내가 명확히 알고 있는 사실은 1987년 봄 영등포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이부영(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위원· 민통련 사무처장)이 작성한 비밀편지(박종철 사건 은폐·조작의 실상)를 그의 친구인 김정남(나중에 김영삼 정부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에게 간접적으로 전달한 교도관은 한재동이었다. 한재동은 1970년대에 서대문구치소에서 함께 근무한 바 있는 전직 교도관 전병용에게 ‘비둘기’를 전했고, 전병용이 김정남에게 그 문건을 건넨 것이었다.

“조선인들의 우토로, 영원히 기억하자” 우토로 역사관 위한 시민모임 발족

2018년 1월 14일 1190

방송인 김미화 씨 등 각계인사들 ‘우토로 지킴이’로 나서…“우토로의 인간 존엄과 평화, 오랫동안 기억할 것” ‘마지막 일제징용 마을’로 기억되는 일본 우토로에 역사관을 만들자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 방영된 이후, 국민적 관심을 받게된 우토로 마을은 일제 식민지 정책과 전쟁 수행의 피해자였던 조선인 노동자들의 집단 합숙소이자 60여년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다. 토지 소유권자들의 분쟁 탓에 강제철거 위기까지 겪었던 이 곳은 가까스로 한국 정부의 지원과 민간 모금 등으로 안정을 찾긴 했지만, 우토로 동포들의 흔적 또는 추억이 점차 지워져가고 있다. 특히 최근 일본 정부의 마을 정비 사업이 진행되면서 우토로를 기억할 수 있는 역사관 설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우토로 역사관을 위한 시민모임’이 12일 서울시NPO지원센터에서 결성식을 갖고, 그 시작을 알렸다. 시민모임의 주축이 된 57명의 ‘우토로 지킴이’에는 방송인 김미화 씨를 비롯 이장희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함세웅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진관 불교인권위원회 공동대표 등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함께했다. 공동대표는 류종열 흥사단 이사장, 박연철 전 우토로국제대책회의 상임대표, 정진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부이사장이 맡았다. 이들은 이날 결성선언문을 통해 “지금 우토로는 조선사람이 사는 낯익은 마을 풍경이 사라지고, 장구소리와 김치냄새가 사라져가고 있다. 마을을 일구고 지킨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면서 “그러나 우리는 우토로가 외쳐온 인간 존엄과 평화를 향한 간절한 소망을 기억하고 있고, 오랫동안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또 “그들이 그토록

[팟캐스트] 역적 시즌2. 2화 반민특위

2018년 1월 11일 1234

[바로듣기] ☞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2화 2부 반민특위 김상덕위원장 아들 김정륙선생과 함께] ☞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2화 1부 “내우외환 위기속의 흥선대원군(1)”] ☞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1화 2부 “효창원 역사적폐청산 과제_차영조 선생님”] ☞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1화 1부 “백년의 역사여행을 시작하며”] ☞ [팟캐스트 ‘역적’ 시즌 2. 프롤로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2] 팟캐스트 ‘역적'(역사적폐 청산) ☞팟빵: ‘역적’ 시즌2 – 2화 2부 “반민특위와 김정륙 선생 이야기” ☞팟빵: ‘역적’ 시즌2 – 2화 1부 “흥선대원군의 적폐청산” ※제작 등: PD 김세호, MC노, 김광진(前)국회의원,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 방학진 기획실장, 방은희 교육팀장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2 ‘역적’ “우리 역사의 뿌리가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훼손되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싸운 상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역사적폐의 주범들의 실체와 이들이 저지른 역사범죄의 동기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이승만 담화문으로 돌아본 ‘친일파 청산 좌절의 역사’

2018년 1월 11일 6394

[역사 속 오늘] 1949년 1월 10일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반민특위 무력화 시도 담화문 발표 친일파 청산에 대한 노골적인 훼방의 기록 “ 우리가 건국 초창 ( 初創 ) 에 앉아서 앞으로 세울 사업에 더욱 노력하여야 할 것이요 , 지난날에 구애되어 앞날에 장애되는 것보다 과거의 결절 ( 缺節 ) 을 청사함으로써 국민의 정신을 쇄신하고 … ” -1949 년 1 월 10 일 이승만 대국민 담화 요약하자면, 과거에 연연하지 말라는 얘기였다. 오늘로부터 정확히 69년 전인, 1949년 1월 10일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친일파 청산을 위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할 즈음의 담화였다. 오랜 망명생활로 인해 국내 정치기반이 취약했던 이승만은 친일파를 기반으로 권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에 친일파 청산에 앞장섰던 반민특위의 활동을 방해하고 무력화하려 애썼다. 결국 반민특위는 친일파들과 이승만 정권에 의해 해산되었고, 대한민국의 친일파 청산은 실패했다. 이승만 정권의 친일파 청산에 대한 노골적인 훼방은 이승만이 발표한 다섯 차례의 대국민담화와 조작된 사건의 기록에 빼곡히 남아 있다. 그 논리들은 현재의 ‘적폐청산’을 반대하는 논리와 비슷하다. 다만 더 노골적이었다. 친일파 청산 움직임의 시작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된 뒤 국민들을 중심으로 친일파 청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하지만 해방 초기에는 미 군정이 친일파 청산을 반대했다. 이 때문에 1948년 대한민국 독립 정부가 성립된 뒤에야 재논의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승만 정부는 친일파 청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