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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요청] 일제 강제동원 문제, 일본기업 배상 촉구 대법원 규탄 기자회견
[취재요청] [다운로드] 강제동원 피해자 가족, 일본 지원단체 등 대법원의 일본 기업 자산매각 신속 판결 요구 기자회견 양금덕 할머니, 이춘식 할아버지 등 2년 넘게 배상 못받아 기자회견 취지 현재 대법원에는 2018년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판결과 관련해 ▲미쓰비시중공업 상표권 2건(양금덕, 2022마5815) ▲일본제철이 보유한 피엔알(PNR) 주식(이춘식, 2023마5044) 등 일본 피고 기업 국내 자산에 대한 특별현금화명령 상고심 사건이 계류돼, 최종 판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집행 사건의 경우 신속한 절차 진행이 핵심입니다. 그러나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사건의 경우 2022.5.6. 대법원에 사건이 계류된 지 2년이 넘도록 대법원은 판결에 손을 놓고 있습니다. 이춘식 할아버지 사건(2023.1.6 대법원 접수)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2022.7.26. 외교부가 일본의 부당한 압력에 굴복해 “외교적 시간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대법원에 소위 ‘의견서’를 보내 판결에 개입한 이후, 현재 상태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더 이상 쟁점도 없습니다. 특히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제3자 변제 방식’의 해법을 피해자들이 반대하고 있는 이상, 사법부가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오히려 대법원이 판결을 미루고 있는 자체가 일본의 부당한 개입과 피고 기업들의 억지 주장에 힘을 보태고 있는 것입니다. 대법원이 2012년 5월 24일 기존 판결을 파기하고 피해자의 개인청구권을 인정함으로써 강제동원 배상 문제에 새로운 물꼬를 트는 역사적 전환점을 마련했습니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났지만 대법원은 자신이 내린 판단조차 스스로 몰각한 채 역할을 방기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법원의 신속한
[한겨레] “박정희 동상 세우면 국가 폭력을 반복하는 겁니다”
[짬] 김찬수 4·9인혁열사 계승사업회 이사장 “실장(반장) 친구가 학교 결석해도 ‘아픈가보다’ 싶었지. 고 라경일 열사 면회 가는지 몰랐어요.” 지난 16일 대구 중구 대안동 공간7549에서 만난 김찬수 4·9인혁열사 계승사업회 이사장이 1975년을 회고했다. 그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1975년 3월 대구 서구 내당동에 있는 달성고에 입학했다. 한 달쯤 지났을까. 1975년 4월9일치 신문 1면은 모두 같은 기사로 인쇄됐다고 한다. “민복기 대법관이 공산주의 사상으로 국가를 전복하려 한 8명에 대해 사형을 선고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조선일보, 동아일보 할 것 없이 아주 크게 났죠”라고 했다. 역사에 무지했지만 8명 사형은 어린 그에게 큰 충격으로 남아있었다. 이날 이후부터 그 실장 친구가 말없이 자주 학교에 결석을 했단다. 당시에는 영문을 몰랐다. 1975년 4월9일은 세칭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8명에 대해 사형 집행이 진행된 날이다. 그날 새벽 4시30분께, 당시 서울구치소 사형집행장에서 8명이 숨졌다. 서도원, 김용원, 여정남, 우홍선, 도예종, 하재완, 이수병, 송상진이다. 나머지는 무기징역 등 중형을 선고받았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고 라경일 열사는 2010년 복역 후유증으로 생을 마감했다. “결석을 자주 하니까 몸이 안 좋거나 집에 일이 있겠거니 싶었지. 10년쯤 지나 노동운동을 하다가 알게 됐어요. 같은 반에 있던 그 실장 친구가 고 라경일 열사 아들이라는 사실을요. 당시에는 입 밖에 이름 석 자 내뱉지도 못했거든요. 이제야 말할 수 있지. 담임 선생님한테만 말하고 몰래 아버지 면회 다녀온 그 심정이 어땠을까요?”
[중부시사신문] 안성문화원, 민족문제연구소 방문 안성독립항쟁사 재조명 논의
안성문화원은 민족문제연구소를 방문, 과소평가되고 있는 안성독립항쟁사 재조명 사업 추진에 관한 논의를 진행했다고 5월 21일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는 한국 근현대사의 쟁점과 과제를 연구·해명하고, 한일 과거사 청산으로 굴절된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 1991년 설립된 단체이다. 이번 논의는 윤종군 국회의원 당선인이 주선해 당선인과 안성문화원 국장·과장, 안성3.1운동기념관 실무자, 조세열 상임이사 등 연구소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연구소 회의실에서 5월 20일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안성문화원은 안성독립항쟁사의 역사적·교육적 가치와 의미를 설명하고 원활한 안성독립항쟁사 재조명 사업 추진을 위한 연구소와의 협력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특히 안성독립항쟁이 일제강점기 중 일제 침탈기구를 몰아내고 실력으로 해방을 이뤄낸 남한에서는 유일한 독립항쟁임을 강조하며 국가적 기념사업 추진 등 안성독립항쟁사에 걸맞은 사업 추진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윤종군 당선인도 안성독립항쟁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설명하며 3.1독립운동 전국3대실력항쟁지인 안성지역에 국가적 차원의 교육관 건립 등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상호 협력해 나갈 것을 제안했다. 또한 전국3대실력항쟁지 안성을 제외한 2곳이 북한에 있음을 설명하며 이를 활용한 납북한교류사업을 추진하면 안성지역이 한반도 평화의 중심으로 부상할 수 있음을 전달하고 연구소 측의 협력을 부탁했다. 안성문화원은 이번 논의를 시작으로 안성독립항쟁사 관련 1차 사료를 연구소 측에 전달, 안성독립항쟁사의 학술적 연구와 더불어 재조명 사업 추진 방향을 상호 모색해 나갈 방침이다. 또한 안성독립항쟁을 국가적 기념사업으로 승격시켜 안성 전지역에서 이뤄진 자랑스러운 안성독립항쟁이 안성을 대표하는 도시이미지가 될 수 있도록 사업을 추진해 나갈
[한겨레] 바보 취급 당하며 한국어 공부, 윤동주묘 찾아낸 일본 학자 오무라 마스오
“저 또한 군국소년이어서 곧잘 군가를 불렀습니다.” “패전한 날 소개지에서 공포의 대상이었던 선생님이 우시면서 ‘일본은 졌어. 너희들이 장성해서 원수를 갚아다오!’라고 하셔서 마음 깊이 감동을 했던….” “(1953년 대학 입학 무렵) 조선은 제 시야에 없었습니다. (…) 당시 조선어를 제대로 가르쳤던 대학은 (오사카외대와) 덴리대학뿐이었습니다.” 간사이 지역의 두 대학뿐이라는 사정은 1970년대 중반까지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런 기억을 훗날 풀어놓게 되는 1933년생 일본의 학자는 와세다대 정경학부 졸업 뒤 도쿄도립대 대학원에서 중국문학을 전공하며 량치차오를 접한다. 정치인 소설가 도카이 산시(명성황후 시해사건 가담자)의 책을 번역하던 중국 지식인. 중도에 책을 집어던졌다는 량치차오의 일화가 남긴 뒷맛은 하나의 국면이 된다. “조선은 원래 청국의 것인데, 도카이 산시가 조선을 일본의 것이라고 하니 그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 소설에서 제외되어 있는 조선 사람들은 당시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는 생각에서 조선문학에 관심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전후 일본 ‘조선문학 연구’의 선구자인 오무라 마스오(1933~2023)의 회고다. 1957년말 총련 청년학교를 찾아가 “바보 취급” 당하며 조선어를 배우기 시작하고, 1961년 발족한 ‘일본조선연구소’의 일원이 되며, 1970년 ‘조선문학의 모임’ 결성과 일본인들 최초의 조선문학 연구 잡지로 평가받는 ‘조선문학-소개와 연구’(1970~74) 발행을 주도한다. 시인 윤동주의 묘를 찾고 시집을 복원하는 데 지대하게 공헌했으나 모두 오무라를 수식하는 몇몇 사례에 불과하다. 찢겨진 한반도에선 자생 불가했던, 남·북·중국(연변)을 관통한 ‘등거리 조선문학 연구자’로의 족적이 올돌하기 때문이다. 그가 “가장 영향을 받은 작가”로
[오마이뉴스] “일제가 철제관에 봉인한 혁명가… 영혼은 가둘 수 없다”
17일 서대문형무소에서 권오설·권오상 기념사업회 창립총회…”6.10만세운동의 역사바로세우기” “작금에 이르러 친일적 졸개들이 다시 설치며 온갖 친일 작태를 부리는 때에 순국선열 권오설·권오상의 이름만으로도 그 무리에게 철퇴를 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항일혁명가로 6.10만세운동을 이끌었던 권오설 선생과 권오상 선생의 기념사업회가 출범하면서 발표한 창립선언문의 일부이다. 과거 업적만을 기리는 데 그치지 않고, 최근 정치권과 사회 일각에서 보여지는 친일·역사왜곡 행각에 경종을 울리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실존하는 두 인물로 현재적 가치를 부여하고 이들의 정신과 연대하겠다는 뜻이다. 권오설·권오상 기념사업회는 17일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강의실에서 창립총회를 열었다. 이날 총회는 이준식 기념사업회설립준비위 위원장, 이만열 김단야기념사업회 설립준비위원장,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함세웅 항일독립선양단체연합 이사장, 권영길 민주노동당 초대 대표, 황선건 6.10만세운동유족회 회장 등 각계 인사 67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권오설, 권오상 선생은 6.10만세운동의 주역 이들은 이날 설립취지문을 통해 “경상북도 안동군(안동시) 풍천면 가곡리 가일마을 출신의 권오설, 권오상 선생은 3.1 혁명과 광주학생독립운동과 함께 일제강점기 국내 3대 민족으로 꼽히는 6.10만세운동의 주역”이라며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일제의 모진 고문으로 민족해방의 날을 미처 보지 못하고 옥중 순국한, 그리고 해방 이후에는 분단 체제의 비극을 상징이라고 하듯이 21세기가 되기까지 70년의 긴 세월을 남북 모두에서 망각을 강요당한 비운의 혁명운동가이기도 하다.” 권오설 선생은 6.10만세운동의 총 지휘자였다. 당시 여러개의 대중시위 격문을 준비했고, 그중 ‘격고문’에서 “식민지에서는 민족해방이 곧 계급해방이며 정치해방이 곧 경제해방”이라고 규정했다. 일제강점기에는 민족 내부 모순보다
[오마이뉴스] 6선 의원이 된 친일파… ‘국회의장’은 될 수 없었다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장직상 국회의원 5, 6선이 되면 국회의장 후보 물망에 오른다. 미 군정기에 수도경찰청장을 맡아 독립운동 및 좌파 진영을 진압한 장택상(1893~1969) 국무총리의 형인 장직상(1883~1959)도 일제강점기판 6선 의원이었다. 일제강점기 중추원은 지금의 국회와 똑같지는 않지만 총독부 자문기관이라는 점에서 의회와 비슷했다. 대한제국 멸망 1개월 뒤인 1910년 9월 30일 공포된 ‘조선총독부 중추원 관제’ 제1조는 중추원을 “조선총독의 자순(諮詢)에 응하난 바”라고 규정했다. 의원과 동의어인 중추원 의관(議官)의 숫자가 1910년에는 55명, 1921년에는 65명이었다. 의관의 명칭은 1910년에는 찬의와 부찬의로 나뉘었고 1921년에는 참의로 통합됐다. 전국의 유력자 중에서 이 정도 숫자가 선정됐으므로 지금의 국회의원보다 위상이 높았다고 볼 수 있다. 경북 칠곡 출신인 장직상은 1930·1933·1936·1939·1942·1945년에 중추원 관선 참의가 됐다. 1910년 대한제국 멸망 당시에 경북 신령군수였고 뒤이어 비안군수·하양군수·선산군수를 역임한 그는 중추원 참의가 되기 전 도의원 3선 경력을 쌓았다. <친일인명사전> 제3권 장직상 편은 “1922년 5월 경상북도 도평의회원 보궐선거에서 당선했다”고 한 뒤 “1927년 4월 민선 경상북도 도평의회원에 세 번째로 당선했다”고 설명한다. 군수 경력과 도의원 3선 경력에 중추원 6선 경력이 있었지만, ‘국회의장’은 될 수 없었다. 일본인으로 부활하지 않는 한 불가능했다. 중추원 관제 제3조는 “중추원 의장은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으로 충(充)함이라”라고 규정했다. 정무총감이 당연직 의장이었기 때문에, 한국인에게 허용된 최고위직은 부의장이었다. 김윤식·이완용·박영효·박중양 등이 이 자리에 올랐다. 중추원 의장은 원천적으로 될 수 없었고 중추원 부의장은 되지 못했지만, 일제강점하에서
[한겨레] [포토] NHK도 취재…윤 정부 ‘라인 매각 굴종외교’ 규탄
민주노총과 한국진보연대,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일본 총무성의 ‘부당한 개입’으로 발생한 ‘라인 사태’에 대해 일본 정부를 규탄하고 윤석열 정부의 대일 굴종외교가 불러온 참사라고 비판했다. 시민단체들은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일본 정부가 역사, 영토에 이어 이제는 기업까지 강탈하려 한다고 규탄했다. 참가자들은 “2019년 일본은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한국에 반도체 소재 부품 장비를 수출규제했다”며 “이제, 한국 정보통신(IT)기업의 지식노동자들이 만든 인프라를 강탈하겠다는 일본정부를 강력히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정부의 한국 기업 강탈 시도는 제2의 수출규제와 다름없다”고 일본정부를 비판했다. 이어 “윤석열 정부는 일본의 기업 강탈 시도에 대해 “지분 매각은 없다”고 일본 정부를 옹호하고 ‘반일선동’ 운운하며 국민을 공격하고 있다”며 일본정부의 ‘라인야후’에 대한 ‘자본 관계 재검토’ 행정처분은 “윤석열 정부의 대일굴종외교가 불러온 결과”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일본의 공영방송인 NHK와 TBS, 교도통신 등 다수의 일본언론도 등장해 일본 내에서도 이번 라인 건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음을 보여줬다. 윤운식 선임기자yws@hani.co.kr <2024-05-14> 한겨레 ☞기사원문: [포토] NHK도 취재…윤 정부 ‘라인 매각 굴종외교’ 규탄 일본 정부 ‘라인’ 행정지도 규탄 발언 ※관련기사 ☞연합뉴스: 시민단체, 라인사태에 “한국기업 강탈 시도…국익 지켜야” ☞시사저널: 日 ‘라인 사태’에 뿔난 시민단체들…“尹정부 굴종외교가 불러온 결과”
[프레시안] 쇠사슬 끊으려는 프로메테우스, 우상을 파괴하다
[다시! 리영희] 리영희와 으악새 모임의 기억 리영희는 사회과학, 좁게는 언론과 국제정치 분야, 넓게는 인문사회과학을 식민사회과학에서 민족주체적 관점으로 방향 전환한 지성이었다. ‘식민사관’이란 역사학에만 국한하기 쉽지만 따지고 보면 모든 분야에서 비겁하게 식민의 눈으로 보기에 익숙해졌음을 부인할 수 있을까. 한국 정치학을 심하게 비하하여 식민정치학 혹은 구호물자 정치학이라 부르면 분노하겠지만 미국과 일본이 쳐놓은 반소련 반중국의 방역망 안에서 분단 고착과 반북 정서를 기조로 삼아왔음을 부인할 수 있을까? 이 방역망을 처음으로 넘어선 용자가 리영희 아니었던가. 분단 시대 민족지성사에서 이런 우상파괴의 선두에 섰던 두 갈리아의 수탉은 함석헌-리영희였다. 둘 다 평안북도 출신의 호랑이적인 지성의 포효 기질인데, 리영희보다 28년이나 먼저 태어난 함석헌은 냉전체제 아래서 외롭게 분단 시대가 조작해 낸 허깨비들을 짓부수고자 ‘생각하는 백성론’을 거론했다. 그는 이미 1971년에 민족사의 가장 화급한 과제로 “남북이 불가침조약을 맺는 일이다.”라고 밝히며, 불가침이란 곧 평화로운 삶인데 이를 가로막는 건 “정치업자 전쟁업자들의 집단”(<평화운동을 일으키자>)이 만든 남북 적대시라고 폭로했다. 그는 “외세가 아무리 남북에 싸우라고 부추겨도 우리가 스스로 안 싸우겠다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함석헌은 환상주의자일까? 그렇지 않음을 사회과학적으로 입증해 준 지성인이 리영희이다. 함석헌의 포효가 분단한국사에서 1950~60년대까지 강력하게 울렸다면 1970~90년대의 지성은 단연 리영희였다. 운 좋게 나는 평안도 출신의 이 두 호랑이를 가까이에서 사숙할 수 있었다. 유신 치하의 ‘으악새 모임‘ 리영희의 필화와 투옥을 비롯한 가시밭길 생애는 널리 알려져 있기에 구태여
[역발상 시즌3] 영화 주제가로 보는 대중가요의 역사 6부_”1970년대”
☞ (05.14) ‘역발상’ 시즌 3: 영화 주제가로 보는 대중가요의 역사 6부_”1970년대” 오늘의 이야기 : 영화 주제가로 보는 대중가요의 역사 5부_1960년대 하반기 초대손님 : 이영미(대중문화연구자) 이준희(옛가요 전문 연구자) <나는 열아홉 살이에요> 영화: 1974년 4월 국도극장에서 개봉한 <별들의 고향>. 이장호 연출, 안인숙·신성일·백일섭·윤일봉·하용수 등 출연. 원작은 1972년 9월부터 1973년 9월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된 최인호의 소설 주제가: 1974년 윤시내 노래. 이장희 작사·작곡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영화: <별들의 고향> 주제가: 1974년 이장희 노래. 이장희 작사·작곡 <어제 내린 비> 영화: 1975년 1월 국도극장에서 개봉. 이장호 연출, 안인숙·김희라·이영호·최불암 등 출연. 원작은 1973년 10월부터 1974년 3월까지 <중앙일보>에 연재된 최인호의 소설 <내 마음의 풍차> 주제가: 1975년 윤형주 노래. 최인호 작사, 정성조 작곡. <눈물로 쓴 편지> 영화: 1977년 9월 단성사에서 개봉한 <겨울 여자>. 김호선 연출, 장미희·신성일·김추련 등 출연. 원작은 1975년 1월부터 12월까지 <중앙일보>에 연재된 조해일의 소설 주제가: 1977년 김세화 노래. 조해일 작사, 정성조 작곡 <날이 갈수록> 영화: 1975년 5월 국도극장에서 개봉한 <바보들의 행진>. 하길종 연출, 윤문섭·이영옥·하재영·이기동 등 출연. 원작은 1973년 10월부터 1974년 5월까지 <일간스포츠>에 연재된 최인호의 소설 주제가: 1975년 송창식 노래. 김상배 작사·작곡 <고래 사냥> 영화: <바보들의 행진> 주제가: 1975년 송창식 노래. 최인호 작사, 송창식 작곡 <여고 졸업반> 영화: 1975년 8월 허리우드극장에서 개봉. 김응천 연출, 임예진·이정길·박원숙 등 출연. 원작은 1970년 12월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