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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빼앗긴 뒤 독립운동가들은 이런 자장가를 불렀다오
※ [구매 – 바로가기] 항일음악 330곡집 글: 임종금(lim1498) l 편집: 최은경(nuri78 [서평] 8월 29일은 경술국치일, 항일단체 노래 총정리한 <항일음악 330곡집> 눈길 1910년 8월 29일 기어이 한반도와 우리 민족은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게 됐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기어이’는 2가지 뜻을 가진다고 한다. 하나는 ‘마지막에 이르러서’, 다음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라는 뜻이다. 일제의 침략으로 국권이 빼앗겨 가고 있지만 그래도 설마설마 나라마저 없애겠냐 싶던 이들에게 ‘기어이’는 첫 번째 의미일 것이고, 어떻게 해서라도 일제에 빌붙어 공을 세우고 싶었던 이들에게 ‘기어이’는 두 번째 의미일 것이다. 경술국치 107주년을 맞이해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야 할 책이 한 권 나왔다. 바로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항일음악 330곡집>(노동은 편저, 민연주식회사)이다. 무려 728쪽, 가격은 7만 5000원이다. 자장가에도 광복 의지 담아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사는 우리 역사 중 가장 중요한 대목 중 하나다. 그런데 독립운동 단체가 너무나 다양하고 많았기 때문에 오히려 설명하기 힘든 것이 우리 독립운동사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그 엄청난 노력과 희생을 느끼게 해 줄 수 있을까?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보게 됐다. 700쪽이 훨씬 넘는 어지간한 아령 무게만한 책은, 그 질감만으로도 ‘정말 엄청나게 했구나’라는 느낌이 절로 들게 한다. 책은 단순하다. 곡마다 노래의 악보 한 쪽, 노래 설명 한 쪽으로 구성됐다. 다만 노래가 330곡이나 되다 보니 700쪽이 훨씬 넘는 것이다. ‘노래 모은 것이 뭐 중요하냐’고
대구에서 ‘순종 동상 철거’ 목소리 터져 나온 이유
순종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 열려 “순종 동상 설치, 다크 투어리즘으로 반역사적 행위 변명” 1909년 1월 12일, 조선의 마지막 임금 순종이 대구 달성공원을 방문한다. 순종은 이토 히로부미에 이끌려 마산, 청도 등지를 순회한 후 서울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이날 순종은 달성공원 안에 있는 신사에 들러 참배했고, 기생들의 공연을 구경했다. 2017년 5월 11일, 대구 달성공원 정문 앞 도로 가운데에 순종 동상이 제막되었다. 대구 중구청(구청장 윤순영)은 동상 아래 표지석에 ‘암울했던 시대 상황에도 굴하지 않은 민족 정신을 담아내고자’ 이곳에 순종 동상을 세운다고 설명했다. 이토에 이끌려 전국 민심 달래기 순회를 한 ‘허수아비 임금’ 순종 2017년 7월 10일, 『대구의 길을 걷다』를 펴낸 추연창 씨는 저서를 통해 “명색이 황제이면서도 목숨을 걸고 일본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는 의병들에게 ‘귀순하지 않으면 법에 따라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던 순종을 위해 그가 다닌 길을 정비하고 동상을 세우느라 국민 세금 70억 원이 낭비되고 있다”면서 “동상 바로 옆에 있는 대구 독립운동의 본산 조양회관과 서상일 등 대구의 독립지사들을 기리는 사업은 별로 없다. 이런 식이면 대구 대표 친일파 박중양과 을사오적 대표 이완용이 ‘누가 독립운동 하라더냐?’ 하고 비웃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술국치 107년 되는 2017년 8월 29일, 순종 동상 앞에서 ‘순종 동상 철거를 요구하는, 문화가 있는 대구 시민(단체) 기자 회견’이 열렸다. 민족문제연구소 대구지부(지부장 오홍석)가 제안한 이 행사에는 노무현재단 대구경북위원회,
[팟캐스트 역적 여름특집 3] 북 콘서트 ‘항일음악 330곡집’
[팟캐스트 역적 여름특집 3] 북 콘서트 ‘항일음악 330곡집’ 1부 – ① [팟캐스트 역적 여름특집 3] 북 콘서트 ‘항일음악 330곡집’ 1부 – ②
민족사랑 2017년 08월호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 특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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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국정교과서 부역자에 대한 인적 청산,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보도자료] [다운로드] 국정교과서 부역자에 대한 인적 청산,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1. 최근 교육부의 김연석 과장이 인천의 한 중학교 교장으로 발령이 났다가 철회된 것을 두고 일부 보수 언론을 비롯해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두 야당이 ‘전 정부의 정책을 맡았던 실무 공무원에게 인사 불이익을 주었다’고 호들갑을 떠는 코미디를 연출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4월 한국교원대학교 사무국장 발령을 받았다가 학교 구성원들의 강력한 항의를 받자 이준식 전 교육부 장관이 학술원으로 전보 조치한 박성민 부단장까지 거론하며 두 사람을 정권교체의 피해자로 둔갑시키는 파렴치한 작태를 보이고 있다. 두 야당과 보수 언론은 두 사람을 국가공무원법상 ‘성실 의무’와 ‘복종의 의무’ 규정에 따라 주어진 업무를 성실히 수행한 ‘실무 공무원’으로 정의하며, 이들에 대한 발령 취소나 전보가 선량한 공무원들에 대한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한다. 자유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공무원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라는 망발도 서슴지 않는다. 2. 우리 헌법 7조는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라고 하여, 공무원의 법적 지위·책임·신분과 정치적 중립성 등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다. 공무원은 그 임용주체가 국민이고, 그 직무가 공공성을 띠기 때문에 특정인이나 특정의 당파·계급·종교·지역 등 부분이익만을 대표하여서는 아니 되고, 국민전체의 이익을 위하여 봉사해야 한다. 국민은 국가권력을 이들에게 신탁(信託)한 주권자이기 때문에, 공무원은 국민의 공복(公僕)이어야 하는 것이다. 3. 한국갤럽이 작년 12월 2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국정 역사교과서
[팟캐스트 역적 여름특집 2] 도쿄 야스쿠니 반대 촛불행동에 가다
[팟캐스트 역적 여름특집 2] 도쿄 야스쿠니 반대 촛불행동에 가다
‘청와대 불상’ 경주 가나?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길게 줄을 선 사람들. 대통령이 일하는 곳, 청와대를 보러 온 관람객들입니다. <인터뷰> 홍영수(경기도 고양시) : “주말에는 6개월 치가 다 예약이 마감돼 있었고,(이것도 방학이라서) 평일 날은 좀 어려웠어요. 간신히 했어요.” 1시간 반가량 청와대 곳곳을 둘러보는 관람 코스. 제한된 장소에선 기념사진도 찍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청와대 후원엔 관람객들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문화재가 한 점 있습니다. 바로 통일신라시대 불상입니다. <인터뷰> 신상빈(경기도 용인시) : “못 봤어요. 아예 못 봤어요. 코스에 없나 본데.” <인터뷰> 홍순(인천시 서구) : “저희는 가족들이 놀러 다니면서 이런 불상도 많이 보는데 여기서는 못 본 것 같아요. 확실히.” 이 불상은 최근 한 시민단체가 원래 위치로 되돌려 달라는 진성서를 청와대에 내면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인터뷰> 혜문(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 “(불상이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겁니까?) 아닙니다.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통일신라 불상이 왜, 언제부터, 청와대 안에 있게 된 걸까? 청와대 직원들조차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보안구역에 있다는 불상. 직접 본 사람이 극히 드물기 때문에 더더욱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는데요. 청와대 불상에 얽힌 길고도 복잡한 사연을 들여다봤습니다. 청와대 후원 숲 속, 보호각 아래 다소곳이 앉아 있는 석조 불상.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에 만들어진 석조여래좌상입니다. 불상의 높이는 1.16m. 석굴암 본존상의 축소판으로 불릴 정도로 빼어난 예술성을 보여주는 보물급 문화재로 꼽힙니다. <인터뷰> 박임관(경주학연구원 원장) : “양어깨가 딱
‘친일파’ 지옥도…헛된 꿈을 꾼 마름들
[친일, 불편한 진실 ①] 일제 민족분열정책이 키운 ‘차별 지배’ 참상 광복 72주년을 맞이한 한국 사회에서 ‘친일’은 여전히 뜨거운 논쟁거리입니다. 지금까지도 과거사 청산의 뚜렷한 열매를 얻지 못한 데 따른 비극이겠죠. 친일의 온전한 얼굴이 드러나지 않은 탓에 우리네 과거사 인식 역시 비좁은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진단이 나옵니다. 모든 해법은 문제를 직시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CBS노컷뉴스가 친일에 관한 불편한 진실을 전합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친일파’ 지옥도…헛된 꿈을 꾼 마름들 ② 피튀기는 조선인들 뒤에 숨은 ‘일제 민낯’ ③ ‘미완의 청산’이 낳고 기른 ‘헬조선’ <끝>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난 친일파는 헛된 꿈을 키웠다. 일제가 조선을 통치하는 데 협력한 그들은 왜 ‘마름’의 길을 택했을까.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자국민이 자국민을 관리하게끔 하는 것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전형적인 통치술로 볼 수 있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아무래도 (통치의 효율성 면에서) 비용이 싸게 드니까, 적절하게 선만 안 넘으면 허용해 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사회가 민주화 되면 그런 것들도 줄어들게 돼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 그것(하급 관리자)도 권력이니까 강화될 것이다. 예를 들어 지주가 가장 살기 좋았던 때가 일제시대라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조선 후기에도 양반으로서 지주들이 권력을 지녔는데, 일제는 그런 식으로 지주를 굉장히 잘 대접했다는 것이다. 당시 지주를 대변하던 마름들 역시 실제적 권력을 행사했다. 이를 크게 보면, 일제시대에는 일종의 민족분열정책이 잘 활용되면서 계급적인 지배가
[책소개] 항일음악 330곡집
[책을 내면서] [서문] [주문하기] [히스토리뱅크몰]에서 주문하기 목원대학교 교수·음악대학장, 중앙대학교 교수·국악대학장, 한국음악학회 회장,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부위원장, 한국음악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하였다. 2016년 12월 2일 지병으로 타계하였다. 한국 근현대 음악 관련 30여 권의 단행본과 400여 편의 논문을 남겼으며 항일음악과 친일음악 분야에서 독보적인 연구 업적을 쌓았다. 1996년 단재학술상을 수상했으며, 2004년 ‘한국의 미래를 열어갈 100인’으로 선정되었고, 2005년 정율성국제음악제 조직위원장을 역임했다. 주요 논문으로 「음악기학」·「가정성과 직관성」·「만주음악연구」·「제국의 음악가 현제명」 등을 발표했고, 『한국근대음악사』, 『경기음악』(京畿音樂)1·2, 『지영희평전』등의 저서를 펴냈다. ♦ 330곡의 연대별수록 곡 수 ⓵ 1860∼1900년대 : 83곡 ⓶ 1910년대 : 68곡 ⓷ 1920년대 : 72곡 ⓸ 1930년대 : 63곡 ⓹ 1940년대 : 44곡 1. 『항일음악 330곡집』 발간의 의의 항일의 현장에는 국내외 어느 곳이든 항일음악이 있었고, 우리 민족은 항일노래를 함께 부르며 굳건하게 단결했다. 항일음악은 일제침략에 맞서 국권을 회복하고 독립을 이루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모든 노래를 가리키며, 시기적으로는 일제의 한반도 침탈 야욕이 노골화한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부터 1945년 해방까지의 음악이다. 항일음악의 장르는 가요뿐만 아니라 가곡 동요 가극(한유한의 「아리랑」등) 무용(유희 등) 등에 걸쳐 있으며, 군가 혁명가 투쟁가 애국가 계몽가 망향가 추도가 등 여러 형태로 보급됐다. 『항일음악 330곡집』은 일제침략기 국내와 만주 및 중국 관내, 러시아의 원동, 하와이와 미국 본토, 멕시코 지역 등의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노래(악보)를 집대성하고, 연대별로 구분한 최초의 항일노래집이라는데 그 의의가 있다. 또, 국내외에서 부른 항일가 100여
[팟캐스트 역적 여름특집] 박주민의원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
[팟캐스트 역적 여름특집] 박주민의원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 박한용 실장과 박주민 의원이 만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