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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근로정신대 피해자의 ㈜후지코시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3차 소송 판결

2017년 3월 16일 2045

[보도자료] [다운로드] 1. 2017년 3월 16일, 오전10시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근로정신대 피해자 이춘면(李春綿)의 ㈜후지코시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3차 소송 선고공판이 열렸습니다. 재판부는 원고가 피고 주식회사 후지코시에서 근무한 사실이 인정되고, 원고를 동원하여 피해를 입힌 잘못을 들어 원고 이춘면에게 손해배상금으로 1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2. 이 사건은 일제말기, 군수기업 후지코시사의 도야마 공장에 강제동원 되어 가혹한 노동을 강요당한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가 가해자인 주식회사 후지코시를 상대로 정신적 ․ 육체적 고통에 대한 배상을 청구한 소송입니다. 한국에서 주식회사 후지코시를 상대로 진행되고 있는 사건 중 세 번째 소송이고, 세 번째 1심 승소판결입니다. 이 사건의 원고와 같은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는 강제동원 당시 13세~15세의 어린 소녀들이었습니다. 동원시에도 국민학교 교원과 공무원이 거짓말로 피해자들을 유인하여 끌고 간 것으로 명백히 민법, 국제법상 불법행위입니다. 3. 일제강제동원 문제는 일본의 가해기업이 대한민국 국민을 강제로 동원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피해자들의 행복추구권, 생존권, 신체의 자유 등을 침해하며 노동을 강요한 반인도적 불법 행위에 관한 것입니다. 따라서 일본기업에 대한 피해자들의 제소는 단순히 피해자들의 민사적 피해를 해결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일 간의 불행한 과거사를 극복하고 올바른 관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입니다. 4. 2017년 3월 현재, 신일철주금(구 일본제철), 미쓰비시 중공업, 주식회사 후지코시 등을 상대로 국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민사소송은 11건이 넘고 있습니다. 하지만 90세 전후로 한계 수명에 달한 원고들은 법원의 최종적인 답변을 기다리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하고

[70주년 창간기획-문학평론가 임헌영의 필화 70년](23) 박계주의 장편소설 ‘여수’

2017년 3월 13일 2226

ㆍ혁명공약 역이용 부패·독재 비판한 정치소설…5·16 직후 신문연재 중단 “외유내강(外柔內剛)이란 말이 있다. 하지만 한국민족은 변질된 외유내강의 종족이라 하겠다. 즉, 외세에 대해서는 지극히 연약하면서도 자기 민족에 대해서는 영악하고 잔인한 민족인 것이다. (중략) 자유당 놈들은 썩을 대로 썩었건만 권력 연장과 이권 독점을 위해 얼마나 많은 야당 인사들을 괴롭히고 테러하고 나중에는 억울한 죄명까지 씌워 투옥케 했으며, 민주당 놈들과 신민당 놈들은 백성이야 도탄속에 빠져 있거나 말거나 자기들의 권력 다툼과 이권 운동에 눈이 뻘게 돌아가지 않았던가.” “이승만의 말이라면 똥도 떡이라고 핥아 먹을 이승만의 ‘개’들.”(박계주 <여수(旅愁)>) 신문 연재소설에서 이런 막말 정치비하의 만용은 거의 없다. 5·16쿠데타 직후 서슬 퍼런 시기니까 더욱 수상쩍다. 이용도 목사의 기독교적 휴머니즘 사상 신봉자였던 박계주(朴啓周, 1913~1966·사진)는 독재와 부패를 고발하려고 작심하고 장편소설 <여수>를 제2공화국 때 구상했다. 그러나 5·16쿠데타로 난감해지자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한다는 ‘혁명공약’을 역이용했다. 이승만·장면 정권을 싸잡아 ‘구악’으로 몰아붙이며 자신의 민족사적인 입장을 은근히 짜깁기해 넣은 것이다. 1961년 6월11일 동아일보에 연재를 시작한 <여수>는 결국 11월28일자에서 필화를 만나 강제 중단당하고 말았다. 분단 이후 정치적 쟁점으로 신문 연재소설이 중단되기는 처음이다. ■ ‘반탁 비판’으로 필화 “춘우는 문득 고하 송진우(古下 宋鎭禹)를 생각했다. 그는 신탁통치를 찬성했기 때문에 암살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 당시 송진우의 의견대로 5년간의 국제신탁통치를 받았던들 오년 뒤엔 국제기구인 유엔에 의해 오스트리아처럼 통일되었을 것이다. 국제신탁통치를 하게

[투데이담소]제32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 김순흥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편

2017년 3월 14일 1893

[투데이담소]제32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 김순흥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편 탄핵정국의 안개가 걷히고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 간듯 하다. 어찌하여 이지경에 이르게 되었는가? 문제의 본질은 일제 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맞다. 친일파 그리고 그 후손들이 대를이어 이땅에 너무도 깊이 뿌리를 내라고 있기 때문이다. 민족문제연구소! 이제는 낯선단체가 아니다. 우리가 왜 역사를 잊지말고 기억해야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지 이번 탄핵정국을 통해 다시한번 역사를 상기해야한다. 이땅은 지금 우리것이 아니다. 잠시 후손들에게 빌려 쓰고 있는것이다. 잊지 말아야한다. 투데이담소 김순흥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 편 이병섭 기자 wind5373@naver.com <2017-03-14> 투데이광주 ☞기사원문: [투데이담소]제32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 김순흥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편

[탄핵관련 민족문제연구소 논평] 국민의 힘으로 이뤄낸 민주주의의 승리

2017년 3월 10일 2286

[논평] 국민의 힘으로 이뤄낸 민주주의의 승리 헌법재판소의 재판관 전원일치 탄핵인용 결정은 헌법정신이나 국민 절대다수의 여망에 부응한 당연한 귀결이다. 일부 탄핵 사유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점은 유감스럽지만 이 또한 앞으로 검찰의 수사과정에서 밝혀지기를 기대하면서 재판부의 판결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우리는 이번 결정이 ‘유신시대의 부활’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그간 심각하게 훼손되어온 민주주의가 확고하게 제자리를 찾는 계기가 되길 소망한다. 황교안 대행체제는 탄핵정국하에서도 자중하지 않고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등 ‘박근혜표 정책’들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정치 경제 외교 안보 교육 등 전 분야에서 누란의 위기에 처해있다. 많은 이들은 한말을 방불케 하는 국가적 위기가 박근혜 정권의 소통부재와 무능에서 비롯하였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제 모든 공동체 구성원들은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모두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인 토론을 거쳐 바람직한 대한민국의 미래상을 설계하고 실천해나가야 할 것이다. 탄핵의 궁극적 목표는 한 개인을 권좌에서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 정책적으로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는 일이라 본다. 탄핵 결정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오늘의 결과를 이끌어낸 국민 여러분의 충정에 경의를 표하면서, 우리 민족문제연구소도 국민이 주인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 건설을 위해 국가를 대개혁하는 일에 한마음으로 힘을 보탤 것을 약속드린다. 2017. 3. 10. 민족문제연구소

[스토리펀딩] 3화 역사적인 ‘위안부’ 증언 세상에 나오다

2017년 3월 9일 2688

About you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파에 의해 와해된 반민특위 정신과 친일문제연구에 평생을 바친 故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이어 1991년 설립되었습니다. ‘인권, 평화, 미래를 생각하는 역사행동’ 슬로건 아래 한국 근현대사 쟁점·과제를 연구하고 과거청산운동으로 정의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Project story “해방 70년, 나는 싸우고 있다” “강제동원, 망각의 현장을 가다”에 이어 강제동원 문제를 알리기 위한 세 번째 펀딩입니다. 일제시대 한국인들이 어떻게 강제 동원되었고 어떤 노동을 강제 받았는지, 그리고 왜 이 문제가 끝나지 않고 있는지에 대해 공유하고자 합니다. Funding plan 강제동원 문제를 제대로 기록하고 기억할 공간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여러분의 후원금은 ‘기억의 전승, 연대의 허브’를 모토로 하여 민족문제연구소가 준비하고 있는 ‘식민지역사박물관’ 중에서 ‘강제동원관’을 설치하는 비용으로 사용하고자 합니다. Details “해방 70년, 나는 싸우고 있다”와 “강제동원, 망각의 현장을 가다” 등 두 차례 스토리펀딩을 진행했습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의 실상을 알렸고,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함께 싸워온 한국과 일본 시민들의 연대와 투쟁을 여러분들에게 소개했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관심을 보내주시고 소중한 마음을 모아주셨습니다. 먼저 정성을 보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지옥섬에서 어떻게 살았을까요? 이번 펀딩에서는 강제동원 피해자 한 분, 한 분의 삶에 다가가고자 합니다. ‘지옥섬’이라 불린 군함도로 끌려간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 왜 우리 청년들은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갔을까요? 그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목숨을 건 탈출을 하고, 왜 끝내 차디찬 바다에서 죽어가야만 했을까요? 일본군에

일제 강제동원 100년… ‘생지옥’과 대면하다

2017년 3월 7일 2059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알라딘, 예스24, 교보문고, 인터파크 [바로듣기]  [집중인터뷰]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Interviewee: 김민철 교수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일제 강제동원 100년… ‘생지옥’과 대면하다 해저탄광 ‘군함도’로 끌려온 조선 노동자들 50~60㎝ 막장서 누운채 석탄캐며 지옥 생활 진실은 가려진채 이곳은 세계유산으로 등재 ‘1945년 9월 조선 사람들이 탄 귀국선이 때마침 덮친 태풍의 거친 파도에 전복되어 많은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었다. 미쓰비시 조선소의 백만톤 도크의 대형 크레인 부근에 엄청난 수의 조선인 익사체가 떠올랐다.’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일본으로 끌려가 강제노동에 시달렸던 이들이 어렵사리 오른 귀국길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일본 정부가 끌고 갔으니 조선으로 돌려보낼 책임도 그들에게 있었지만, 일본 정부는 묵묵부답이었다. 마냥 기다릴 수 없었던 조선인들은 스스로 배를 빌려 조국으로 돌아오고자 했지만,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그들이 죽어간 바다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군함도’라 불리는 섬이 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기획한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은 원폭 피해자 2∼3세와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군함도 현장을 찾아 강제동원 노동자들의 노동환경과 강제동원 과정 등을 직접 취재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일본 나가사키 항에서 약 18㎞ 떨어진 곳에 위치한 군함도의 본래 이름은 ‘하시마’다. 야구장 2개 크기의 이 섬에는 1916년 미쓰비시가 세운 일본 최초의 철근콘크리트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멀리서 보면 건물들의 모습이 마치 군함처럼 보인다고 해서 ‘군함도’로도 불리는 이 섬에는 해저탄광이 있다. 미쓰비시는 이곳에서 조선과 중국에서 강제동원한 노동자들을 동원해 석탄을

[스토리펀딩] 2화 ‘지옥섬’ 군함도의 하루

2017년 3월 1일 5766

About you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파에 의해 와해된 반민특위 정신과 친일문제연구에 평생을 바친 故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이어 1991년 설립되었습니다. ‘인권, 평화, 미래를 생각하는 역사행동’ 슬로건 아래 한국 근현대사 쟁점·과제를 연구하고 과거청산운동으로 정의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Project story “해방 70년, 나는 싸우고 있다” “강제동원, 망각의 현장을 가다”에 이어 강제동원 문제를 알리기 위한 세 번째 펀딩입니다. 일제시대 한국인들이 어떻게 강제 동원되었고 어떤 노동을 강제 받았는지, 그리고 왜 이 문제가 끝나지 않고 있는지에 대해 공유하고자 합니다. Funding plan 강제동원 문제를 제대로 기록하고 기억할 공간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여러분의 후원금은 ‘기억의 전승, 연대의 허브’를 모토로 하여 민족문제연구소가 준비하고 있는 ‘식민지역사박물관’ 중에서 ‘강제동원관’을 설치하는 비용으로 사용하고자 합니다. Details “해방 70년, 나는 싸우고 있다”와 “강제동원, 망각의 현장을 가다” 등 두 차례 스토리펀딩을 진행했습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의 실상을 알렸고,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함께 싸워온 한국과 일본 시민들의 연대와 투쟁을 여러분들에게 소개했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관심을 보내주시고 소중한 마음을 모아주셨습니다. 먼저 정성을 보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지옥섬에서 어떻게 살았을까요? 이번 펀딩에서는 강제동원 피해자 한 분, 한 분의 삶에 다가가고자 합니다. ‘지옥섬’이라 불린 군함도로 끌려간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 왜 우리 청년들은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갔을까요? 그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목숨을 건 탈출을 하고, 왜 끝내 차디찬 바다에서 죽어가야만 했을까요? 일본군에

[단독] 블랙리스트 전문보니…단체명 ‘주체’ 뜻 있다고 지원배제

2017년 3월 6일 2199

2014년 5월 청와대 작성 ‘문제단체 조치내역 및 관리방안’ 단체 130곳·인사 96명 골라내…1만여명 블랙리스트 원형 대표 남편이 야당 비서관 등 황당 사유로 정부 보조금 싹둑 대표 남편이 야당 의원 비서관, 한겨레신문 창간주역이 대표, 단체명에 ‘주체’라는 뜻 포함, 영화 <26년> 제작, 이명박 정부 규탄 시국선언 참여, 문재인·안철수 지지…. 3일 <한겨레>가 단독입수한 2014년 5월말 청와대에서 작성된 ‘문제단체 조치내역 및 관리방안’ 보고서(아래 리스트 전체)를 보면, 이런 ‘황당한’ 이유를 들어 ‘문제단체’ 130곳과 ‘문제인사’ 96명을 골라냈다.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공익사업을 진행하던 단체들은 이후 정부 지원에서 배제됐고, 교수와 전문가들은 정부위원회 위원직 등에서 교체됐다. 단체 100여곳으로 시작한 이른바 ‘문예계 블랙리스트’는 차츰 확대돼 1만여명에 이를 정도가 됐다. 대선 이후 ‘자신을 찍지 않은 사람들도 품고 가겠다’고 틈만 나면 공언하던 박근혜 정부의 민낯이다. 야당 정치인과 인연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문제 단체로 지목됐다. ‘정치적 연좌제’였다. 복지네트워크협의회 유어웨이는 ‘단체 대표의 남편이 야당 의원의 비서관’이라는 이유로 명단에 올랐다. 중장년층의 사회공헌 활동과 장애 예술 지원사업 등을 하는 단체였다. 고용노동부는 만 60살 이상 퇴직 인력의 사회공헌 활동을 명목으로 이 단체에 장려 수당을 지급했지만, 이후 대폭 축소를 결정했다. 단체 대표나 그의 남편은 자신들이 이 명단에 올랐다는 사실을 3일 <한겨레> 취재 때까지 알지 못했다. 책읽는 사회문화재단은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멘토단에 참여한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가 이사장이라는 이유로 문제단체에 포함됐고,

강제동원 조선인의 생지옥 ‘군함도’…진실을 기록하고 과거를 기억한다

2017년 3월 1일 3956

ㆍ민족문제연구소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출간 “집에 돌아가자 얼굴을 아는 면서기와 순사 두 명이 있었다. ‘너 일본에 간다’라며 엽서만 한 종이를 나에게 건넸다. 일본어를 읽을 줄 모르는 나는 그것을 웅덩이에다 버렸다. 화난 순사가 내 팔을 잡자 할머니가 울며 순사 손을 물었다. 순사는 할머니를 뿌리치고 가까운 도로변에 세웠던 트럭에 나를 태웠다. 같은 마을의 남기석도 잡혀갔다. 열여섯 살 때였다.” 1943년 봄 경남 의령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끌려간 서정우는 그 길로 부산으로 이송됐다. 그는 각지에서 붙잡혀온 징용자들과 함께 굴비 엮듯 손을 묶인 채 관부연락선에 부려졌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징용자들은 다시 야간열차를 타고 나가사키역으로, 거기서 다시 나가사키항으로 이동했다. 얼마 후 배는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섬에 도착했다. 조선인들이 ‘지옥섬’이라 부른 하시마, 일명 ‘군함도’였다. 민족문제연구소가 3·1절을 앞두고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과 피해보상을 위해 싸워온 피해자, 유족, 한·일 시민의 목소리를 한 권에 응축한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생각정원)을 펴냈다. 책은 강제동원 관련 역사적 사실, 강제로 끌려간 피해자들의 증언과 사진 자료, 아직도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유족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았다. 민족문제연구소 소속 연구원 7명, 피해자 유족인 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 추진협의회 대표, 일본 시민운동가 8명, 한국 변호사 2명 등 18명이 필자로 참여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젊은 연구자와 활동가들이 강제동원 피해자 운동을 기록한 책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43년부터 1945년 사이에 500~800명의 조선인들이 하시마 탄광에서

심상정 “친일반민족행위자 훈장, 역사의 치욕”

2017년 3월 1일 1366

3.1절을 하루 앞두고 서대문형무소를 찾은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친일반민족행위자의 훈장을 박탈하고 ‘친일반민족역사관’을 설치해 역사를 바로 세우겠다고 밝혔다. 28일 오후 2시 서울 서대문형무소 정문 앞에서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친일파 서훈 취소 정책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심상정 대표는 “해방 후 70년이 더 지났지만, 아직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왜곡된 역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맑은 날씨였지만 강하게 부는 바람에 기자회견문이 자꾸 넘어가 회견은 세 차례나 중지됐다. 그 바람에 심상정 대표는 서대문형무소 정문 앞에서 ‘친일반민족 행위자가 매단 훈장은 치욕’, ‘역사 바로 세우기 노력’ 이란 말을 3번이나 반복했다. 심 대표는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이름만 발표됐지, 일부 재산환수를 제외하고 후속조치는 전무했다”라며 “친일반민족행위에 대한 기록이 역사 교과서에 반영되지도 않았고 ‘친일반민족 역사관’도 설립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어 “무엇보다 친일파에게 국가가 준 ‘훈장’도 박탈되지 않았다”며 “이는 정부의 명백하고 충격적인 직무유기다”라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심 대표에 따르면 친일반민족행위자 가운데 국가의 훈장을 받은 사람은 44명, 포장(훈장의 바로 밑단계)을 받은 건 78건이다. 뉴스타파는 훈장·포장이 각각 222명, 440건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심 대표는 “훈장은 그 나라 국민의 자랑”이라며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매달고 있는 훈장은 역사의 치욕이며 우리 스스로 역사를 부정하는 일이다”라고 지적하며 친일반민족행위자에 대한 훈장을 모두 박탈하겠다고 밝혔다. 또 심 대표는 가칭 ‘친일반민족역사관’을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심 대표는 중국이 난징대학살을 기억하고자 희생자 기념관을 세운 것을 예로 들며 “친일 행위 피해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