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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2016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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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과는 하등 상관없는 ‘박근혜 오동나무’
[박정희 기념사업 파헤치기①] 800억 새마을공원, 박정희 신격화의 끝판왕 이 글은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박정희 기념사업의 규모와 실체를 파헤치는 시리즈입니다. 지자체마다 앞다퉈 내세우는 박정희 기념사업이 얼마나 미화되고 있는지 역사적 사실을 통해 그 허구성을 증명하고자 합니다. ‘박근혜 오동나무’가 아니라 ‘박재옥 오동나무’로 해야 ▲ 박정희의 하숙집에 있는 ‘박근혜 오동나무’ ⓒ 인터넷제보 관련사진보기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상리에는 ‘청운각’이 있습니다. ‘청운각’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문경서부심상소학교 교사로 재직할 때 머물렀던 하숙집을 기념하기 위해 보존되고 있습니다. 또한 청운각에는 ‘박근혜 오동나무’라는 나무가 있습니다. 안내판에는 아래처럼 박근혜 오동나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하숙할 당시 이 물을 마시면서 마음을 다잡은 약샘으로 우물 벽에서 난 오동나무는 사람이 심은 것이 아니라 우물 중간쯤 되는 돌 틈에서 자연히 싹이 나서 자란 것이다. 오동나무는 봉황이 내려앉는다는 상서로운 나무로 박근혜 대통령과 연관 지어 국가 최고 권위자인 대통령을 상징하며 세인의 발길을 끌고 있다.” (청운각에 있는 박근혜 오동나무 안내문) 청운각에 있는 오동나무와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는 아버지 박정희가 하숙했다는 연관성 이외는 없습니다. “봉황이 내려앉아서 상서롭다”는 설명은 무슨 신화에서나 나올 법한 얘기이지, 현직 대통령과 연관된 이름은 아닙니다. ‘박정희가 하숙집에 있었기 때문에 딸의 이름을 나무에 붙였다’고 한다면 ‘박근혜’가 아닌 ‘박재옥’이라고 불러야 마땅합니다. 왜냐하면 박정희가 청운각에 머물던 당시에는 박근혜 대통령은 태어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박정희의 첫 번째 부인은 육영수가 아닌 김호남이었습니다. 박정희는 대구사범학교
태평양전쟁 강제징용 희생자 강인창씨 증언집 한일 양국서 출간
강씨가 주도한 日 오키나와 ‘한의 비’ 건립 10주년 추도식 맞춰 첫선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태평양전쟁 당시 강제로 끌려가 희생된 조선인들을 추모하는 ‘한(恨)의 비(碑)’가 10여년전 한일 양국에 순차적으로 세워졌다. 한의 비는 1999년 경북 영양군에 세워진데 이어 2006년에는 일본 오키나와 요미탄(讀谷) 마을에 건립됐다. 오키나와 건립 10주년을 맞아 이 비석의 건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징용 피해자인 고(故) 강인창씨의 증언집이 양국에서 출간된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강씨의 증언집 ‘전 조선인 군부 강인창 증언 한을 품고 – 할아버지의 유언’이 오키나와에서 한의 비 건립 10주년 추도식이 열리는 11일에 맞춰 일본에서 첫선을 보인다고 밝혔다. 편집이 마무리되는 대로 국내에서도 한국어판이 출간된다. 한의 비는 태평양전쟁 오키나와전(戰) 당시 강제징용돼 희생된 조선인의 넋을 기리고자 강씨와 일본 시민활동가 마메타 도시키씨 등 양국 시민사회가 힘을 합쳐 만든 위령비다. ▲ 오키나와에 세워진 ‘한의 비’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오키나와전에 징집된 강씨는 전쟁 후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경북 영양군 지회장직을 맡으며 1996년 일본군 ‘유수명부’를 조사했고, 경북에서 오키나와로 끌려간 조선인 3천여명의 기록을 찾아내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그는 1997년 오키나와에서 마메타씨가 개최한 태평양전 희생자 추모 행사에서 고통스러운 전쟁의 진상을 생생하게 증언했고, 그 충격은 한의 비 설립으로 이어졌다. 이번 증언집 발간은 일본 시민단체인 ‘오키나와 한의 비 모임’이 주도해 이뤄졌다. 아사토 에이코 모임 대표는 2010년 3월 허점숙 일본 메이오대 교수와 함께 강씨를 인터뷰한 내용을
뒷짐 지고 관조? 문학 아니다
▲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강조했다. “자기 생명이 있는 한, 몸담고 있는 시대와 사회를 위해서 포효해야 한다.” 류우종 기자 지난 2월 <한겨레21>은 물었다.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리고 짚었다. “농민은 병실에 누워 있고, 노동자는 붉은 띠 두르고 하늘에 오른다.”(제1098호) 이후 넉 달. 세상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잔인한 비언어의 시대에 문학의 가치와 교훈을 탐사하기 위해 시작한 ‘임헌영의 세계문학기행’이 지난 5월 16회로 마침표를 찍었다. [시작하는 글] 기획연재 <임헌영의 세계문학기행> 격변기 문호들을 찾아 떠나다 [연재] 1화 일본의 윤동주 일본의 톨스토이 [연재] 2화 춘원 이광수의 양부 일본의 괴벨스 [연재] 3화 위대하고 혼란스런 파리의 빅토르 위고 [연재] 4화 무시무시한 시절의 위고 [연재] 5화 늙어서 오히려 진보한 위고 [연재] 6화 민중의 눈으로 전쟁을 본 톨스토이 [연재] 7화 “나는 침묵할 수 없다!” 인도주의 상징 톨스토이 [연재] 8화 지복을 누린 괴테 바이마르 권세에 취하다 [연재] 9화 정치는 우리의 운명 스탕달 [연재] 10화 실러의 위대한 투쟁 [연재] 11화 ‘감옥의 벽’ 허물려 한 자유의 투사 횔덜린 [연재] 12화 ‘오리새끼’에서 ‘혁명가 친구’ 된 푸시킨 [연재] 13화 유언비어 용의자 1호 러시아의 푸시킨 [연재] 14화 천재 연애대장 바이런 [연재] 15화 양심의 이름으로, 헤세 [연재] 16화 이런 ‘반공주의자’ 펄 벅 일본의 도쿠토미 형제 문인이 정반대로 걸어간 길에서 시작한 연재는 용인할 만한 반공주의자 펄 벅에서 끝맺었다. 연재에서
경희대는 왜 신흥무관학교 흔적과 뿌리를 없앴을까
[토요판] 뉴스분석 왜? 창학 105주년 신흥무관학교 드러내 자랑할 수 없는 우리의 선배님, ‘속사포’ ▲ 경희대학교의 역사는 1911년 만주에 설립됐던 신흥무관학교에 직접적으로 닿아 있지만, 경희대학은 이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서울 회기동에 있는 경희대학교의 모습으로, 왼쪽 앞 건물은 1956년 완공된 석조전 본관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 딱 105년 전 6월10일 만주 서간도에서 신흥무관학교가 설립됐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민족지사들이 만든 이 학교 출신들은 항일독립투쟁의 주역이었다. 독립운동가들의 요람이자 민족교육의 산실이라는 이 신흥무관학교의 빛나는 전통과 맥을 이어받은 대학교가 있다. 그러나 이 대학은 자랑스런 역사를 내세우기는커녕 우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인연을 끊기에 바쁘다. 서울 경희대학교에 관한 얘기다. 독립투쟁을 그린 영화 <암살>은 지난해 7월 개봉돼 1200만명의 관객을 끌어모았다. 한국 영화 사상 흥행순위에서 역대 7위다. 감독(최동훈)이 설명한 이 영화의 모티브는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우당 이회영 형제들이다. 실제로 영화에는 신흥무관학교 출신의 ‘속사포’(배우 조진웅)가 생계형 독립군이라는 주요 배역으로 나왔다. 영화에서처럼 신흥무관학교는 숱한 독립투사를 배출한 항일독립운동의 요람이다. 신흥무관학교가 없었다면 항일독립운동사는 찬란한 빛을 발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독립군 양성을 목표로 했던 신흥무관학교는 1911년부터 1920년 폐교될 때까지 만주에 있었던 학교다. 창학으로 따지면 105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신흥무관학교는 오래전에 존재했던 하나의 역사가 아니라, 현재에도 엄연히 살아 있는 실체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맥을 이은 대학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바로 서울의 경희대학교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신흥무관학교는 역사에만 존재할 뿐 이미 ‘사라진’ 존재다.
“박정희 일본 충성 혈서 조작” 정미홍, 재판서 황당 주장 “역사적 해석은 차이날 수 있어”
▲ 정미홍 새누리당 서울시장 예비후보가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당내 시장후보 경선제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본 충성 혈서는 민족문제연구소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는 취지의 글을 공유했다가 명예훼손 등 혐의로 기소된 정미홍(58·여) 전 아나운서가 법정에서 혐의를 부인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단독 김종복 판사 심리로 7일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한 정씨는 “민족문제연구소를 비방할 목적이 없었다”며 검찰의 공소사실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정씨는 또 “역사적인 해석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여러 사람이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리트윗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에 따르면 정씨는 2013년 2월 자신의 트위터에 민족문제연구소를 비방하는 다른 사람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글을 ‘필독하시길’이라는 코멘트와 함께 리트윗한 혐의(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를 받고 있다. 정씨가 리트윗한 원문은 “‘조작의 마술사’인 민족문제연구소는 거의 모든 구성원이 극도의 종북이거나 간첩활동으로 구속된 전력이 있는 사람들로 구성됐다”는 내용이었다. 이와 함께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혈서가 민족문제연구소에 의해 조작됐다는 취지 게시물의 링크도 공유됐다. 지난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는 일제강점기인 1939년 3월 31일자 만주신문 등을 근거로 박 전 대통령이 만주국 군관학교에 지원하며 일본에 충성을 맹세하는 내용의 혈서를 썼다고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정씨를 고소했지만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리자 이에 불복해 항고했다. 이마저 받아들여지지 않자 법원에 판단을 구하는 재정신청을 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검찰에 기소 명령을 내렸다. 다음 공판은 다음달 5일 오전 10시50분 열린다. <2016-06-07>
서울 곳곳 일제 조선총독 글씨 새긴 머릿돌 남아있어
민족문제연구소 이순우 책임연구원 “보존하되 교육수단 활용해야”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한국은행, 서울시립미술관, 마포구 래미안 푸르지오 아파트. 별다른 연결 고리가 없어 보이는 이들 건축물의 공통점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 총독을 지낸 일본인의 글씨가 새겨진 머릿돌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순우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최근 작성한 ‘조선총독들이 남긴 오욕의 흔적들- 식민통치자들의 휘호가 새겨진 정초석(머릿돌)과 기념비’라는 글에서 우리 곁에 일제강점기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7일 전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래된 건축물과 조형물의 머릿돌·표시석에 적힌 글씨가 조선 총독 등이 썼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이 연구원은 사례를 수집해 현황 파악에 나섰다. 대표적인 것이 조선 총독의 휘호가 새겨진 한국은행 본점의 머릿돌(정초석)이다. 이 머릿돌에 새겨진 휘호는 안중근 의사에게 처단된 이토 히로부미가 쓴 것이다. ▲ 한국은행 본점 건물 이토 히로부미의 휘호가 새겨진 머릿돌. [이순우 책임연구원 제공] 1920년대 옛 경성역사를 신축할 당시 사이토 마코토 총독의 글씨를 받아 부착한 서울역 머릿돌도 글쓴이가 누구인지 알리는 부분은 뭉개졌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에는 1927년 경성법원청사를 신축하면서 사이토 총독의 글씨로 제작한 머릿돌이 또렷한 글씨체로 남아 있다. 제기동 선농단 터에 세워졌다가 인천시립박물관으로 옮겨진 잠령공양탑 비석의 앞면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고수(皐水)’라고 쓰여있는데 이는 사이토 총독의 호다. 연세대 캠퍼스에는 ‘흥아유신기념탑’이라는 조형물이 있다. 태평양전쟁을 찬양하는 의미를 담아 세운 것으로, 미나미 지로 총독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 연구원은
[뉴스타파] 방송불가…박정희-기시 친서
KBS 탐사보도팀이 취재한 <훈장 2부작> 이 넉 달째 방송날짜조차 잡지 못하면서 사실상 불방수순을 밟고 있는 가운데, KBS 간부들이 방송불가와 원고 삭제를 요구한 것은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기시 노부스케에게 보낸 친서였다. 친서는 1961년 8월과 1963년 8월에 박정희 의장이 기시에게 보낸 것이다. ▲ 박정희가 기시 노부스케에게 보낸 두 개의 친서 원본은 일본 국립국회도서관에 있는데, KBS 탐사보도팀이 일본 현지에서 확인했다.사진은 국사편찬위 사료실에 있는 사본이다. KBS 탐사보도팀이 취재한 <훈장 2부작> 이 넉 달째 방송날짜조차 잡지 못하면서 사실상 불방수순을 밟고 있는 가운데, KBS 간부들이 방송불가와 원고 삭제를 요구한 것은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기시 노부스케에게 보낸 친서였다. 친서는 1961년 8월과 1963년 8월에 박정희 의장이 기시에게 보낸 것이다. 현재 친서의 원본은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헌정자료실에 있고, 국내에는 사본 형태로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실에 남아있다. 기존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김상중`현무암 저, 2012) 저서에 해당 친서 내용의 일부가 소개됐지만, 언론사가 친서 전문을 촬영한 것은 KBS 탐사보도팀이 처음이다. KBS 탐사보도팀이 확인한 해당 친서는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당시 전 총리였던 기시 노부스케에게 한일수교협정의 협력을 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61년 8월과 1963년 8월, 두 차례에 걸쳐 보낸 친서를 통해 당시 박정희 당시 의장이 한일협정의 방향을 어디로 끌고가고자 했는지 분명히 드러난다. ▲ 학계전문가들은 해당 친서가 1965년 한일수교 과정과 그 내막을 엿볼 수 있는 자료라고
한국과 우간다의 연결고리, 새마을운동
ⓒ 계대욱 관련사진보기 ⓒ 계대욱 관련사진보기 ⓒ 계대욱 관련사진보기 ⓒ 계대욱 관련사진보기 ⓒ 계대욱 관련사진보기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고속도로를 달리다 청도 새마을 휴게소에 들립니다. ‘근면, 자조, 협동’을 상징하는 새마을운동 로고가 바람개비에 새겨져 있네요. 저 멀리 산허리에 나무를 베어내고 세운 ‘새마을운동 발상지 청도’라는 야외 간판도 보이네요. 청도 신도마을 주민들이 단합해 마을을 복구하는 모습이 박정희 대통령 눈에 띄었고, 그것이 새마을운동의 아이디어가 됐다는 설명을 봅니다. 그런데 과연 새마을운동은 성공한 농촌개혁운동일까요? 농촌의 나태함과 빈곤을 퇴치하는데 크게 기여했을까요? “새마을운동이 전개되던 1970년대, 농가의 평균 소득은 10배 증가했으나 부채는 21배 증가했다. 저곡가정책 등으로 인한 도농 불균형발전은 이촌향도 현상을 가속화했다. 잘 살기 운동인 새마을운동 기간 내내 수많은 농민들이 대대로 살아온 정든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http://minjok.info/archives/856) 그리고 역사학자 전우용 선생님께서는 며칠 전 트위터에 이렇게 말하기도 하셨죠. “일제하 ‘농촌진흥운동’과 ‘새마을운동’의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농촌이 가난한 건 농민들이 나태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널리 유포시킨 겁니다. 가난을 ‘당사자의 나태’ 탓으로 돌리는 건, 모든 귀족체제, 식민지체제, 독재체제의 공통점입니다.” 공교롭게도 박근혜 대통령이 아프리카 순방 중 새마을운동의 동반자라고 밝힌 우간다는 무세베니 대통령이 30여 년 넘게 독재하고 있는 국가지요. 새마을운동이 독재와 궁합이 맞는 건지요. 강제동원형 의식개조 운동이었다는 비판이 괜히 있는 건 아닌
“국립묘지가 범법자들의 안식처인가”
▲ 민족문제연구소대전지부와 평화재향군인회 등 대전지역 시민단체회원들이 6일 현충일을 맞아 국립 대전현충원에서 ‘국립묘지법 개정 및 반민족·반민주행위자 김창룡, 안현태 묘 이장 촉구대회’를 열었다. 사진은 제1장군묘역에 안장되어 있는 김창룡의 묘에서 ‘파묘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장면. ⓒ 오마이뉴스 장재완 관련사진보기 ▲ 민족문제연구소대전지부와 평화재향군인회 등 대전지역 시민단체회원들이 6일 현충일을 맞아 국립 대전현충원에서 ‘국립묘지법 개정 및 반민족·반민주행위자 김창룡, 안현태 묘 이장 촉구대회’를 열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관련사진보기 “일본밀정 출신 김창룡과 국가내란 반란범 안현태를 국립묘지에서 이장하라” “애국지사 눈 못 감는다. 친일 반민족행위자 묘를 파내라”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애국지사와 순국선열을 추모하는 현충일. 꼬리에 꼬리를 물며 자동차의 행렬이 가득 메운 국립 대전현충원 정문 앞에 피켓을 들고 소리를 외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친일군인이면서 애국지사를 탄압하고, 양민학살에 앞장섰던 김창룡의 묘를 국립묘지에서 이장하라고 주장하는 대전지역 시민단체 회원들이다. 민족문제연구대전지부와 평화재향군인회,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 세상을바꾸는대전민중의힘 등 대전지역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은 6일 오전 대전현충원 앞에서 ‘국립묘지법 개정 및 반민족·반민주행위자 김창룡, 안현태 묘 이장 촉구대회’를 열었다. 이들의 이러한 김창룡묘 이장촉구대회는 벌써 15년째를 맞고 있다. 국립묘지법을 개정하여 반민족 반국가 사범들의 묘를 국립묘지에서 이장하라고 촉구해 왔지만 여전히 법 개정은 되지 않고 있고, 반민족 행위자들은 애국지사 및 순국선열들과 함께 나란히 누워있다. 이날 대전현충원 정문에 모인 40여 명의 회원들은 현충일을 맞아 현충원을 찾은 시민들에게 ‘민족문제연구소대전지부’가 만든 책자를 나눠주며 국립묘지법 개정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발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