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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하늘을 가릴쏘냐? : 친일 매국노 처단 이야기
<이한수의 공감 팩션> 영화 『암살』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안중근, 윤봉길 의사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여 일제의 대륙 침략 음모를 전 세계에 알린 분입니다.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공원 의거로 중국은 조선을 대일 항쟁의 동맹국으로 존중하게 됩니다. 안중근 의사는 러시아 연해주의 한인 독립운동의 상징이며 윤봉길 의사는 상해 임시정부 김구 선생의 지휘를 받아 일제 장성들을 척살하였습니다. 그래도 이 분들은 많이 알려진 분들입니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많은 독립투사들이 잊혀지고 말았습니다. ‘김구’ 선생이 조직한 ‘한인애국단’ 못지않게 혁혁한 전공을 세운 김원봉의 ‘의열단’이라든지 이회영의 ‘흑색공포단’은 많이 생소할 겁니다. 이 분들의 희생으로 독립 투쟁은 대륙에 뿌리를 내리고 나중에는 거대한 군사 조직으로 성장을 하게 됩니다. 이 군사 조직이 국내 진공을 앞두고 있었던 만큼 일제의 패망을 앞당긴 전승의 공을 인정받아 마땅합니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은 잊혀지고 김구 선생마저도 역사 왜곡의 무덤에 묻힐 지경이 되었습니다. 조국 광복이 1945년이 아니라 1948년이라고 망발을 하는 저들에 의해 말입니다. 영화 『암살』에 의해 잊혀져가는 의열단과 ‘김원봉’이 구사일생으로 되살아난 건 천운이라 해야 할까요. 왜 이런 통탄할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김원봉’은 3.1운동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군사훈련을 받고 의열단을 조직해 조국 해방 투쟁에 몸을 바친 분입니다. 광복 이후에 좌우합작운동을 벌이다 ‘여운형’ 동지가 암살을 당하자 월북하였습니다. 북한에서 요직을 맡아
[성명] 20대 국회는 대국민 사기극을 벌이고 있는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청문회를 개원 즉시 개최하라!
[성명] 20대 국회는 대국민 사기극을 벌이고 있는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청문회를 개원 즉시 개최하라! 1. 작년 11월 3일 박근혜정부는 국민의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한국사교과서 국정화를 확정 고시하였다. 그러나 고시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정화 반대 53%· 찬성 36%로 나타난 것처럼, 국민 대다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한 국민들 인식은 이번 4?13 총선에서 박근혜대통령과 새누리당의 독선과 오만으로 점철된 국정운영에 대한 냉엄한 심판으로 이어졌다. 국정화의 주역이었던 황우여 전 교육부장관이 6선 고지에서 낙선하였으며, ‘새누리당 역사교과서개선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김을동 의원 역시 여당 텃밭에서 패배하였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헌법정신을 부정하고 무차별적인 색깔공세로 국정화를 주도한 인사들에 대해 국민들이 투표로 심판한 것이다. 2. 그러나 총선참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부는 국정화를 계속 추진할 뜻을 강력히 피력하였다. 총선직후 야당이 국정화 폐기를 ‘공조 1호’로 발표하자, 교육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서는 차질 없이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맞섰다(4.18.). 그리고 이준식 교육부 장관은 “현행 법령상 (교과서 편찬은) 교육부 고시로 추진하게 돼 있다”며 “국정 역사교과서 편찬 작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4.25.). 박근혜 대통령 역시 청와대에서 열린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지금과 같은 교과서로 배우면 정통성이 오히려 북한에 있기 때문에 북한을 위한, 북한에 의한 통일이 될 수밖에 없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근거로, 야권에서 국정화 중단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원래 계획대로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였다(4.26.). 3. 민주주의의 근간인 주권재민(主權在民)을 거스르는 뻔뻔스러운 작태라
바로 잡습니다.
△ 25일자 19면 팔면경 `아버지와 아들` 중 박헌영의 아들이 “민족문제연구소 2대 소장을 역임했다”는 사실이 아니기에 바로잡습니다. <2016-01-27> 경북매일 ☞기사원문: 바로 잡습니다 ※관련기사 ☞경북매일: 아버지와 아들 1940년대는 소련 공산주의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한반도에도 `사회주의 실천가`들이 설쳤는데, `남한 담당 총책`이 박헌영(朴憲永)이었다. 그는 점쟁이나 벽돌공으로 위장해 노동현장을 다니면서 `남조선 노동당`을 조직했다. 1941년 그는 청주에서 한 처녀의 몸에서 아들 박병삼을 얻었다. 그 후 6·25가 터지고, 인천상륙작전 후 박헌영은 10살 된 아들과 같이 지리산에 숨어 들었다. 그는 얼마후 월북하면서 아들을 한 스님에게 맡겼고, 아들은 절간으로 흘러다니며 불경공부를 했다. 성년이 될 때까지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그는 친구의 이름으로 해군 특수부대에 지원 입대해 3년 복무를 마친 후 스님이 됐고, 현재 조계종 원로 의원으로 있으며, `민족문제연구소` 2대 소장을 역임했다. 그는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증오했지만, “원수는 갚지 말고, 은혜는 반드시 갚아라”란 좌우명을 써붙이고 아버지를 용서했다. 박헌영은 1956년 `미제국주의와 내통한 간첩죄`를 쓰고 처형됐다. 정진석 추기경은 평생 아버지의 얼굴을 못 봤다. 아버지 정원모는 아들이 태어날 무렵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고, 본래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지만, 사회주의에 빠져들어 헤어나오지 못했다. 해방이 될 무렵 그는 서울에 오지 않고 북으로 가버렸다. 당시 아들 정진석은 서울공대 화공과 학생이었는데,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동경에 건너간 후 소식이 없다”고만 했다. 아버지는 북으로 가 공업성 부상(상공부 차관)을 지냈다는
손으로 하늘을 가릴쏘냐? : 친일 매국노 처단 이야기
<이한수의 공감 팩션> 영화 『암살』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안중근, 윤봉길 의사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여 일제의 대륙 침략 음모를 전 세계에 알린 분입니다.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공원 의거로 중국은 조선을 대일 항쟁의 동맹국으로 존중하게 됩니다. 안중근 의사는 러시아 연해주의 한인 독립운동의 상징이며 윤봉길 의사는 상해 임시정부 김구 선생의 지휘를 받아 일제 장성들을 척살하였습니다. 그래도 이 분들은 많이 알려진 분들입니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많은 독립투사들이 잊혀지고 말았습니다. ‘김구’ 선생이 조직한 ‘한인애국단’ 못지않게 혁혁한 전공을 세운 김원봉의 ‘의열단’이라든지 이회영의 ‘흑색공포단’은 많이 생소할 겁니다. 이 분들의 희생으로 독립 투쟁은 대륙에 뿌리를 내리고 나중에는 거대한 군사 조직으로 성장을 하게 됩니다. 이 군사 조직이 국내 진공을 앞두고 있었던 만큼 일제의 패망을 앞당긴 전승의 공을 인정받아 마땅합니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은 잊혀지고 김구 선생마저도 역사 왜곡의 무덤에 묻힐 지경이 되었습니다. 조국 광복이 1945년이 아니라 1948년이라고 망발을 하는 저들에 의해 말입니다. 영화 『암살』에 의해 잊혀져가는 의열단과 ‘김원봉’이 구사일생으로 되살아난 건 천운이라 해야 할까요. 왜 이런 통탄할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김원봉’은 3.1운동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군사훈련을 받고 의열단을 조직해 조국 해방 투쟁에 몸을 바친 분입니다. 광복 이후에 좌우합작운동을 벌이다 ‘여운형’ 동지가 암살을 당하자 월북하였습니다. 북한에서 요직을 맡아
국정 교과서 ‘기준’마저 숨긴 채 집필 강행
ㆍ교육부 “국편·편찬심의위 의견 듣고 공개 시점 결정” ㆍ편찬기준 공개가 관례…“검증 거부하면서 뭘 담을지” 교육당국이 국정 역사교과서 편찬 기준 공개 없이 이미 교과서 집필을 강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집필진 비공개에 이어 수차례 공개를 공언했던 편찬 기준까지 공개하지 않고 교과서 집필에 들어간 것이어서, ‘깜깜이 집필’ 비판과 함께 교과서 내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영 교육부 차관은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을 통해 “국정 역사교과서 편찬 기준이 이달 중순 확정됐으며 집필진이 집필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 차관은 “역사교과서 편찬 기준을 언제 공개할지에 대해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며 “국사편찬위원회와 편찬심의위원회 등의 의견을 듣고 공개 시점을 결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편찬 기준이 이미 확정돼 집필이 시작됐음에도 공개를 계속 미루고 있는 셈이다. 교육부는 집필진에 대해서는 아예 비공개 방침을 정한 상태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날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집필진에게 안정적인 집필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교과서가 완성되는 오는 11월까지 집필진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역사교과서 국정화 여부를 교육부 장관 권한으로 정하겠다고 밝힌 뒤 국정화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고시를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교육부는 집필진 공개 여부를 수차례 번복해 왔다. 지난해 10월18일 당시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진행하겠다”며 집필진 공개를 약속했었다. 하지만 9일 뒤인 27일에는 대표 집필진만 공개하겠다고 말을 바꿨고, 12일 뒤인 11월8일에는 대표 집필자였던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의 불명예 사퇴를
나라 팔아 먹었을 때도 이상한 엄마들이 나섰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국민 정서를 거스르는 수구 시민단체가 적극적인 활동에 나서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이런 단체들이 생긴 건 아니다. 일제시대 친일 단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들의 원조 격이라 할 만하다.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여성에게 어머니·노동자·창부의 역할을 요구했다. 자식을 전쟁터에 보내는 것을 반대하는 조선 어머니는 전쟁의 큰 장애물이었다. 일본 제국주의는 조선 여성들에게 ‘군국의 어머니가 되자’는 선전전을 전개했다. 자식을 나라에 바치는 것이 영광이라는 작품이 쏟아졌다. <원술의 출정>(이광수), <군국의 어머니>(박태원), <일본의 어머니>(김상덕), <여인전기>(채만식) 등. 당대 여성 문인이나 교육자들의 홍보도 활발했다. 모윤숙·노천명 등 여성 문인들이 강연에 나섰고, 언론에 기고했다. 소설가 최정희는 전시 동원을 미화하는 소설 <환상의 병사> <여명> 등을 냈다. 무엇보다 일본 제국주의의 시각을 대변하는 여성 관변 단체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일제 때 관이 못하는 일을 주로 ‘애국’ ‘부인’ 등이 붙은 친일 단체가 대신하게 했다. 일본을 이해하자거나 여성을 정신대에 보내자는 일에 친일 여성 단체들이 적극적으로 나섰다’라고 말했다. ▲ 친일화가 김은호가 그려 일본 총독에게 바친 ‘애국금차봉납도’(왼쪽). 위는 1940년 경성가정의숙(현 중앙여고) 교직원 사진. 제자를 정신대에 보낸 교장 황신덕(앞줄 오른쪽 두 번째)은 광복 후 이승만 정부의 관선 대변인을 맡았다. 1906년 설립된 ‘애국부인회’는 조선의 최대 여성 단체로, 1942년에는 가입 회원만 46만명에 이르렀다. 주로 군인 영접, 위문금 모집, 발모 헌납, 폐품 회수, 저금 장려 등에 앞장섰다. 정신
[기고] 영화 역사의 현장 기행
역사바로세우기 뜻 가슴에 새겨…의열단·조선의용대 발자취 따라 지난 7~12일 (사)석정 윤세주(1901~1942) 열사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밀양지역 고등학교 14명, 14~19일 의열단 약산 김원봉(1898~1958) 장군 장학회 주관으로 전국 대학생영화감독·도예가·전통음악가 등 여러분들과 중국을 다녀왔다. <암살> 영화로 더욱 관심이 더해진 의열단과 조선의용대가 일제의 감시를 피해 중국 땅에서 조국 광복을 위해 일생을 바친 역사의 현장을 2차에 걸쳐 다녀왔다. 밀양전자고등학교 최필숙 선생님과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홍보실장님이 현장 곳곳에서 상세한 설명을 해주셨다. 북경~석가장~호가장~황북평촌~한단~섭현~십자령~장자령~흑룡동~마전~운두저촌~오지산~남장촌~중원촌~석문촌~진기로예열사능원~북경시내 이원대 이육사 순국지 참배~만리장성~자금성~왕부정거리~팔보산 애국열사능원의 정율성·정설송 열사 참배로 이어지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밀양 출신으로 의열단 단장과 임시정부 군무부장을 역임하신 약산, 그의 고향 후배 동지인 석정과 이름 없이 중국 땅에서 일제와 싸우다 돌아가신 선열들의 희생정신을 직접 느껴보는 시간이었다. 진기로예열사능원은 산서성·하북성·산동성·하남성의 접경지대에 위치한 팔로군 유격전적지에서 항일투쟁을 하다 숨진 열사들의 유해를 모신 곳으로 우리나라의 국립묘지 급이다. 이곳에 1942년 5월 ‘반소탕전’ 당시 태항산에서 전사한 조선의용대 윤세주와 진광화(원명 김창화·평양출신)의 묘가 있다. 석정은 1982년 건국공로훈장을 받았으며 천안 독립기념관 어록비공원에 탄생 110주년을 맞아 2011년 6월24일 어록비가 세워져 있다. 시진핑이 한국에 와서 김구와 정율성(1914∼1976)을 한중우호 인물로 이야기했다. 정율성은 1914년 전라남도 광주 출신으로 1933년 중국으로 건너가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제2기로 졸업하고 조선의용군으로 활동하다 음악성을 인정받아 중국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하였다. 겨울철에는 길이 험하여 갈 수 없는 십자령(1200m)에도 무사히 갈 수 있어 더욱더 뜻있는 기행이었다. 태항산(太行山)은 아름다우면서 험준한 산맥으로 이루어져있는데 이런 험한 태항산에서
[서명] 18대 대선선거무효소송 재판 지연 대법관 탄핵소추안 발의 청원
[서명 바로가기] 더민주당과 정의당, 국민의당18대 대선선거무효소송 재판 지연 대법관 탄핵소추안 발의 청원 발의 2016년 01월 15일/ 마감: 2016년 06월 15일 서명목표 1,000,000명 대한민국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입니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주권자인 국민입니다. 18대 대선 이후인 2013년 1월 4일 국민 2천 명이 대법원에 “제18대 대통령선거 무효의 소”(사건번호 2013수18 )를 제기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18대 대선 당시 국정원, 경찰청, 군 사이버사령부, 보훈처, 안행부, 선관위 등 국기기관을 총동원한 관권부정선거를 자행하였음을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국정원 심리전단, 군 사이버사령부 등의 대선개입은 이미 사실로 드러나 법원에서 유죄 판결까지 받았습니다. 새누리당의 불법선거사무소인 ‘십알단’을 운영한 윤정훈 목사도 유죄 판결을 받은 바 있습니다. 선거관리위원회의 개표조작과 개표부정도 무수한 공문서와 개표 영상 등으로 상당 부분 사실로 밝혀진 상태입니다. 18대 대선이 ‘부정선거’가 아니라면 대법원이 재판으로 가리면 될 일입니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공직선거법 225조 규정상 180일 이내에 다른 건에 우선하여 신속히 결정하게 돼 있는 이 선거쟁송을 3년 넘게 한 차례의 심리조차 열지 않고 여태 뭉개는 중입니다. 대법원 행정처에 알아보았더니 전례가 없습니다. 명백한 법령 위반이고 직무유기입니다. 대법원은 부정선거 당선범 박근혜의 임기를 보장하고자 국민의 정당한 주권과 참정권을 짓밟았습니다. 헌법 65조는 법관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국회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발의하면 됩니다. 2016년 1월 현재 재적의원이 293명이므로 97명 이상의 의원이
대한독립의 별, 김마리아
※[뉴스타파][타파스] – 잊혀진 이름, 여성독립운동가 1편: 독립을 향한 날갯짓, 권기옥 ※[뉴스타파][타파스] – 잊혀진 이름, 여성독립운동가 2편 : 가려진 독립운동, 박자혜 ※[뉴스타파][타파스] – 잊혀진 이름, 여성독립운동가 3편 : 대한민국 임시정부, 그리고 정정화 ※[뉴스타파][타파스] – 잊혀진 이름, 여성독립운동가 4편 : 항일의 불꽃, 박차정 [타파스] 잊혀진 이름, 여성독립운동가 5편 :대한독립의 별, 김마리아 (2016.01.22) 1937년, 중일전쟁이 시작된다. 일제는 ‘국가 총동원법’을 공포하며 조선을 대륙 침략의 기지로 삼고 ‘내선 일체’, ‘황국신민화’를 통한 대대적인 민족말살 정책을 펼쳤다. 이 때 조선의 많은 자산가와 지식인들이 일제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하며 친일과 변절의 길을 택했다. 독립과 여성해방운동을 이끌던 여성지도자들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이제야 기다리고 기다리던 징병제라는 커다란 감격이 왔다. 반도 여성들도 아름다운 웃음으로 내 아들과 남편을 전장으로 보내자 – 김활란 (1899-1970) 다른 학교 학생들은 정신대에 지원을 하고 있는데 우리 학교에 그런 용기 있는 학생이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은 슬픈 일이다. – 황신덕 (1889-1983) 지금은 우리 1500만 여성이 당당한 황국 여성으로서 천황 폐하께 충성을 다할 천재일우의 시기입니다. – 박인덕 (1896-1980) 그러나 이러한 변절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독립을 위한 길을 굽히지 않고 걸었던 사람이 있었다. 김마리아. 그녀는 동경 유학 시절, 독립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해 2.8 독립선언서를 몸에 감추고 국내로 잠입했다. 국내로 온 후에는 모교의 학생들과 함께 만세 시위를 이끌었고, 이로 인해 일제 경찰에 끌려가 모진
[훅!뉴스] 박정희 탄신 TF를 아시나요? 수상한 기념사업
[바로듣기] 신격화에 예산 1900억원 들여…박정희 세금먹는 하마? -박정희 공원, 알고보니 5.16 모의장소 -투입된 300억, 중구 복지예산의 1/3 -박정희 도서관, 책도 없고 문 걸어 잠궈 -전역 장소, 1박 장소 등 모조리 성역화 -구미시에는 ‘박정희 조례’에 ‘탄신TF’까지 -박 대통령 효심 이용한 과잉 정치 마케팅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 채널 : 표준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권민철 CBS 기자 ◇김현정> 김현정의 뉴스쇼 금요일 코너. 기자가 훅 파고든 뉴스의 진실 ‘훅!뉴스’ 시간, 오늘도 권민철 기자 나와 있습니다. 권기자 어서 오세요. ◆ 권민철> 안녕하세요? ◇ 김현정> 오늘 어떤 주제 가지고 왔나요? ◆ 권민철> 엊그제 제가 서울 중구 신당동을 다녀왔는데요… 어떤 곳인지, 현장음 들어볼까요? ▷ 안내인 : 그러니까 1958부터 1961년 8월 장충동 국가재건위로 가기 전까지 3년을 여기서 사셨는데 여기가 61년 5.16 혁명 회의를 이곳에서 하셨다고 해요. ▶ 기자 : 바로 이방에서? ▷ 안내인 : 네. 여기 나와 있잖아요. ◇ 김현정> 박정희 전 대통령 이야기인가 보군요? ◆ 권민철>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 쿠데타를 모의한 바로 그 곳. ‘박정희 가옥’입니다. 주택가 한복판에 있는데요. 서울 중구청이 이집 옆에 있는 4개의 빌딩과 700평짜리 주차장을 전부 터서 930평짜리 부지를 만든 뒤에 지하는 주차장, 지상은 이른바 ‘박정희 공원’을 조성 하려고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