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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박정희 정권은 왜 국민을 “돈의 노예”로 타락시켰나

2015년 12월 15일 1151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35> 유신 쿠데타, 스물여덟 번째 마당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른바 진보 세력 안에서도 부박한 담론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역사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 절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를 이어간다.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은 한국 현대사 연구를 상징하는 인물로 꼽힌다. 매달 서 이사장을 찾아가 한국 현대사에 관한 생각을 듣고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열한 번째 이야기 주제는 유신 쿠데타다. [현대사 이야기 연재 이전 주제 바로 가기] [유신 쿠데타, 첫 번째 마당] 여당도 당황케 한 청와대의 ‘공화국 죽이기’ 작전 [유신 쿠데타, 두 번째 마당] 궁정동의 은밀한 ‘사업’과 박정희, 그 특별한 관계 [유신 쿠데타, 세 번째 마당] 박정희와 김일성, 1인 독재 위해 뒷거래? [유신 쿠데타, 네 번째 마당] ‘멸공’ 박정희, 김일성과 대화하려 쿠데타? [유신 쿠데타, 다섯 번째 마당] 온 국민이 춤춘 그때, 청와대는 딴마음 품었다 [유신 쿠데타, 여섯 번째 마당] 북한보다 야당이 더 못됐다? 박정희의 위험한 선동 [유신 쿠데타, 일곱 번째 마당] “쿠바가 백악관 습격했다면”…분노한 박정희[유신 쿠데타, 여덟 번째 마당] <타임>은 왜 박정희 주장을 ‘상상’ 취급했나[유신 쿠데타, 아홉 번째 마당] 美·日이 박정희 쿠데타 초안에 퇴짜 놓은 이유 [유신 쿠데타, 열 번째 마당] 박정희, 경제 살리려 쿠데타? 치명적인 오해

제10회 임종국상 시상식(2016.11.11)

2016년 11월 11일 2524

다운로드: [보도자료]   [자료집] – 학술부문 김상숙 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관, 사회부문 조영선 변호사 수상 때: 2016년 11월 11일 금요일 오후 7시 곳: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 ■ 선정경위 제10회 임종국상 수상자 후보 공모에는 학술‧문화 부문 여섯 사회‧언론 부문 다섯 등 11건이 올라왔다. 지난 10월 4일 열린 예비심사에서 두 부문에 각 3배수의 수상후보를 일차 선정하였으며, 이어 10월 11일 열린 본심에서 열띤 토론을 거쳐 최종 수상자를 확정하게 되었다. 심사위원회는 수상후보자의 최근 3년간 저작물과 활동사항 뿐 아니라, 기타 경력이나 관련 자료 등도 널리 참고해 적격자를 선정하고자 노력했다. 수상자 선정에서 가장 우선시한 기준은 금기의 영역에 대한 탐구와 도전정신이었다. 그것은 1966년 『친일문학론』을 발표한 이후 평생 주류 사회의 외면을 받으면서도, 진실을 향한 고독한 투쟁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임종국 선생이 우리에게 남긴 삶의 지표이기 때문이다. 역대 심사과정에서도 그러하였듯 이번에도 수상자 결정이 쉽지 않았다. 본심에 오른 후보자 모두 업적과 활동에서 우열을 논하기 어려웠으며 수상의 자격이 충분하였지만, 최종적으로 학술부문에 김상숙 씨를 사회 부문에 조영선 씨를 선정하기로 의견일치를 보았다. 학술부문 수상자인 김상숙 씨는, 진보운동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대구·경북지역을 근거지로 여성·노동·역사 등 여러 부문에서 오랜 기간 사회운동을 펼쳐온 활동가이자 연구자이다. 특히 2007년부터 4년간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조사관으로 참여하여 한국전쟁 전후 대구·경북지역의 민간인희생사건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최근의 노작인 수상저서 『10월항쟁-1946년 10월 대구, 봉인된 시간 속으로』는 그동안

[논평] 정부는 국정교과서 ‘복면집필진’을 즉각 공개하라

2015년 12월 14일 416

정부는 국정교과서 ‘복면집필진’을 즉각 공개하라 1. 지난 10일 고등학교에서 한국사를 가르친 경력이 채 1년도 안 되는 상업교사가 국정교과서 집필진으로 선정되어 파문을 일으킨 데 이어, 이번에는 학계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전문가가 신원조회에서 문제가 되어 집필진에서 배제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2. 한규철 경성대 명예교수는 스승인 김정배 국사편찬위원회(국편) 위원장으로부터 국정교과서 집필진 참여 제안을 받고, “은사인 김 위원장의 청을 거절할 수 없었고, 전공인 고대사를 제대로 기록해보고 싶은 뜻이 있어 이를 수락했다”고 한다. 한 교수는 2012년부터 3년간 제17대 국편 위원으로 활동했으므로, 국편에서 책임 편찬하는 국정교과서 집필에 어떤 하자가 있을 리 없다. 게다가 한 교수는 부산경남사학회장, 한국고대사학회장, 동북아역사재단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는 학계에서 손꼽히는 발해사연구권위자이기도 하다. 3. 그러나 한 교수는, 국정교과서 책임 편찬기관의 수장이 추천하였으며 게다가 학계로부터 권위를 인정받는 고대사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집필진에서 탈락하였다. 구체적인 결격사유는 듣지 못했지만, 김정배 위원장이 “시국선언에 서명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전두환 정권 때에 호헌 철폐 반대 서명을 했던 게 탈락사유인 셈이다. 1987년 ‘호헌철폐’ 서명은 전두환정권의 독재에 저항하여 직선제를 쟁취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는 데 밑거름이 되었던 지식인들의 양심선언이었다. 이후 대한민국은 비로소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가 되었고, 정권의 단일한 역사관은 강요하던 국정 역사교과서 역시 다양성을 인정하는 검정교과서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다. 만약 정말 호헌 철폐 반대 서명이 문제가 된 게 맞는다면 박근혜

“국편에서 시국선언 했는지 물어왔다”

2015년 12월 14일 718

집필 참여 동의했으나 국편이 사상 검증해 탈락시켰다고 주장하는 고대사 전공 교수 인터뷰 [한겨레21] 집필 참여 동의했으나 국편이 사상 검증해 탈락시켰다고 주장하는 고대사 전공 교수 인터뷰 *이번주 발행된 <한겨레21> 1091호 지면용 기사에는 한규철 명예교수를 익명으로 처리했지만, 인터넷 기사에는 실명으로 바꿔 공개합니다. 지난 12월12일 한국고대사학회에서 한 교수가 발표한 글에 기사의 내용이 일부 반영돼 있고, <한겨레>에서 12월14일치 신문에서 실명으로 보도했기 때문입니다. 뉴시스 ‘국정 역사 교과서’ 제작을 총괄하는 국사편찬위원회(국편)에서 집필진 참여에 동의한 대학교수를 상대로 사실상 ‘사상 검증’을 한 뒤 위촉 대상에서 탈락시켰다는 주장이 나왔다. 과거 시국선언 참여 이력을 확인한 뒤 집필진에서 제외했다는 것이다. 최근까지 국편 위원을 지냈고 대학에서 정년퇴임을 한 한규철(65) 경성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아직까지 사상 검증을 하는 게 (이 정권은) 덜됐구나 하는 생각에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다음은 <한겨레21>이 12월11일 한 교수와 전화 통화한 내용이다. “1987 호헌 철폐 반대 서명했다” 국정 역사 교과서 집필진 참여를 언제, 어떻게 제안받았나. 김정배 국편 위원장이 내 은사다(고려대 한국사학과). 김 위원장이 집필진에 참여해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길래, 좀 망설이다가 하겠다고 구두로 답했다. 참여를 제안받은 건 (김정배 위원장 부임 이후) 국편 위원들 회의 때였다. 이후 따로 연락이 없었나. 국편에서 나한테 전화를 걸어왔다. 국편이 국정 역사 교과서 집필진 수를 발표하기(11월23일) 며칠 전이었다. (과거에) 시국선언을 했는지 나한테 물어봤다. 전두환 정권 때인 1987년 호헌 철폐

“친독재 이은상, 친일 김동진 동상을 세운다니…”

2015년 12월 14일 1130

■방송 : 경남CBS<시사포커스 경남> (손성경PD, 김성혜 실습작가, 106.9MHz) ■진행 : 김효영 기자 (경남CBS 보도팀장) ■대담 : 송순호 의원 (창원시의회 의원) ◇김효영 : 어제 창원시의회에서 창원시가 추진하고 있는 친일·친독재 문화예술인 재조명 사업을 두고 공방이 일었습니다. 시정질문을 했던 송순호 의원 만나보겠습니다. 송 의원님 안녕하십니까? ◆송순호 :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김효영 : 어제 안상수 시장을 상대로 어떤 질문들을 하셨습니까? ◆송순호 : 먼저 재경마산향우회에서 주최를 하고, MBC에서 주관을 했다고 하는 시민 대동제. ◇김효영 : 시민 대동제? ◆송순호 : 네. 내용은 이은상, 김동진 두 작가들이 두 손을 맞잡은 동상을 마산지역에 설치를 하겠다는 계획을 세워서 진행한 사업이고, 명분은 물론 시민화합을 내세웠던 거죠. 이것과 관련해서 창원시에서 예산을 지원했는데 이 예산지원이 적절했는지 그리고 친일과 친독재 논란이 되고있는 인물의 동상을 세운다고 한다면 창원심의기구와 관련해서 협조를 할건지에 대해 물었죠. ◇김효영 : 하나씩 짚어보죠. 시민대동제는 재경마산향우회가 주최였습니까? ◆송순호 : 주최는 재경향우회가 했다고 하고요. 9월 중순쯤 재경마산향우회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이해서 마산지역에서 조두남, 이은상 논란 때문에 이념적 갈등이 있고 시민분열이 있었는데 광복 70주년을 맞이해서 모든 것을 용서하고 화해하고 화합하는 쪽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취지를 가지고 창원시에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창원시는 시민들의 정서나 예전의 마산에서 이은상이나 조두남 문제 때문에 한 5, 6년 정도의 심각한 논란과 갈등이 있었거든요. ◇김효영 : 그렇죠. ◆송순호 : 이렇게 일단락 된 문제를

[논평] 국정교과서 집필진을 전원 공개하고 역사쿠데타를 멈춰라!

2015년 12월 11일 1316

12월 10일 국정교과서 집필과 관련해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이 날 오후 그동안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국편)가 그렇게 감추려고 하던 국정교과서 집필진 가운데 한 명이 자신의 정체를 커밍아웃한 것이다. 그리고 불과 몇 시간 만에 국편은 ‘국정교과서 편찬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본인이 사퇴의사를 밝혔다’는 이유로 이 사람을 집필진에서 빼기로 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밤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에 벌어진 일이었다. 일과시간이 끝난 지 한참 지난 한밤중에 집필자를 전격적으로 사퇴시키다니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이다. 자진사퇴의 이유가 ‘이름이 공개되어서’라는 대목에서는 어처구니가 없기조차 하다.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전광석화처럼 집필진에서 내쫓긴 이 사람은 원래 역사를 가르치던 교사가 아니라 고등학교에서 상업을 가르치던 교사였다. 자원해서 한국사를 가르친 것은 불과 아홉 달밖에 되지 않았다고 하니 역사교사로서는 초보라고 할 수 있다. 국편에서 집필자를 공모할 때 내세운 기준에 따르면 “교육경력 5년 이상의 중등학교 교원”이 집필자가 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교육경력은 역사교과서 집필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역사 수업 경력 5년 이상의 역사교사를 뜻하는 것이 분명하다. 국편은 자격도 되지 않는 사람을 집필자로 선정한 셈이다. 12월 10일의 소동은 교육부장관이 말한 ‘최고의 필진’ 가운데 아직도 복면을 벗지 않은 나머지 집필진의 수준도 대동소이할 것이라는 추측을 갖게 한다. 유수한 한국사 전공 학자와 교사 가운데 국가가 나서서 끌어 모은 집필진의 실체라는 게 이 정도 수준이라니 참으로 초라하기 짝이 없다. 국편이

국정 교과서 집필진, 언론에 공개되자 돌연 사퇴

2015년 12월 11일 674

‘복면 집필’, ‘비전문 집필’ 논란 거세질 듯 상업 관련 교과를 가르치던 서울의 한 사립학교 교사가 국정교과서 집필진에 포함 된 것이 확인됐다. 이같은 사실이 드러난 후 해당 교사가 돌연 사퇴를 해 국정교과서 집필진 비공개 및 비전문성 논란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교육희망>이 10일 보도한 데 따르면 서울 시내 사립학교인 대경상업고 김 모 교사는 자신이 국정교과서 집필진이라는 사실을 시인했다. 김 교사는 지난 8일 이 학교 교원들에게 보낸 A4 용지 3장 분량의 집단 메시지에서 “(집필 관련) 1월부터 13개월간 역사교과서를 함께 쓰게 됐다. 저 말고도 46명과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 모르겠다. (집필진이) 모이면 (국편이) 얼마나 비밀을 강조하는지 질릴 정도”라는 취지의 글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김 교사는 이 메시지 말미에 ‘さよなら'(사요나라, 일본 식 작별 인사)라고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희망>은 “이 메시지를 직접 읽은 한 교사는 ‘친일·독재 미화 의심을 받는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진으로 뽑힌 사람이 공개 메시지에 일본말로 끝나는 인사말을 적어놔서 기가 막히고 화가 났다’고 전했다”고 보도했다. 김 교사는 교직 생활 10년 차로 9년 동안 이 학교에서 상업 관련 교과를 가르쳐왔다. 올해 처음으로 1학년 4개 반의 한국사 교과도 함께 맡았다고 한다. 이 학교 공식 홈페이지도 ‘교직원 소개’ 란에서 김 교사의 담당 교과를 상업으로 분류해 놓았다. 김 교사가 서울의 한 대학원에서 역사 관련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기고] ‘독립공원’ 이름을 바꿔야한다.

2015년 12월 10일 2207

[한국NGO신문] 김정권 = 이 글은 필자가 서울시의회 초청으로 의회의사당에서 했던 광복60주년기념 특강 ‘독립문과 독립공원의 진실’의 내용을 요약, 보완한 것이다. 당시 상고역사는 물론 근대사마저도 진실과 얼마나 동떨어지게 거짓말로 꾸민 역사를 가르치고 있었는지를 확실하게 알고 나서 고쳐나가야 한다고 외쳤었다. 이제 꼭 10년이 지나 광복70주년이 되었는데도 고쳐지지 않고 그대로 있다. 그것은 진실을 덮으려는 세력이 집권층에 스며들어 겹겹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NGO신문을 통하여 고발한다. 매국집단 독립협회가 되살아나고 있다. 필자는 광복60주년을 맞이하여 조국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선열의 넋을 기리려고 서대문형무소를 찾았다. 거기에는 조선총독부가 붙여준 ‘독립’이라는 단어가 여기저기에서 눈에 띄었고, 친일파 두목으로 매국노의 상징이 된 이완용이 친필로 쓴 ‘독립문’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청일전쟁 일본승전기념 개선문”이 서있었다. 일인이 돈을 주면서 ‘조선에서도 청일전쟁승전기념탑을 세웠으면 좋겠다’고 하자 독립협회가 모금을 하고 보태어 청나라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 자리에 세우고 “독립문”이라 명명했다는 것이다. ▲ 독립문 민족NGO편집장 당시 일본에서는 대륙의 제국 청나라를 이겼다는 승전분위기로 들끓었으며, 참전용사가 있는 마을마다 탑을 세우는 등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친미파에서 친러파로 갔다가 이제 친일파로 돌아선 이완용이와 친일파에서 친미파로 갔다가 이중첩자가 되어 고국으로 돌아온 역적 서재필이 만나서 실세운동단체로 만든 것이 독립협회였다. 결국 그 독립협회는 신세계의 신기루 속에서 매국노 역할을 충실히 하였으므로 소위 일본식 “일한합병”이라는 공을 세우고, 3일 후에 9월1일자 독립협회의 회장단 모두가 총독부로부터 엄청난 돈과 함께

박정희 측, 대선 지면 야당 후보 쏴 죽이려 했다

2015년 12월 10일 677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34> 유신 쿠데타, 스물일곱 번째 마당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른바 진보 세력 안에서도 부박한 담론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역사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 절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를 이어간다.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은 한국 현대사 연구를 상징하는 인물로 꼽힌다. 매달 서 이사장을 찾아가 한국 현대사에 관한 생각을 듣고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열한 번째 이야기 주제는 유신 쿠데타다. [현대사 이야기 연재 이전 주제 바로 가기] [유신 쿠데타, 첫 번째 마당] 여당도 당황케 한 청와대의 ‘공화국 죽이기’ 작전 [유신 쿠데타, 두 번째 마당] 궁정동의 은밀한 ‘사업’과 박정희, 그 특별한 관계 [유신 쿠데타, 세 번째 마당] 박정희와 김일성, 1인 독재 위해 뒷거래? [유신 쿠데타, 네 번째 마당] ‘멸공’ 박정희, 김일성과 대화하려 쿠데타? [유신 쿠데타, 다섯 번째 마당] 온 국민이 춤춘 그때, 청와대는 딴마음 품었다 [유신 쿠데타, 여섯 번째 마당] 북한보다 야당이 더 못됐다? 박정희의 위험한 선동 [유신 쿠데타, 일곱 번째 마당] “쿠바가 백악관 습격했다면”…분노한 박정희[유신 쿠데타, 여덟 번째 마당] <타임>은 왜 박정희 주장을 ‘상상’ 취급했나[유신 쿠데타, 아홉 번째 마당] 美·日이 박정희 쿠데타 초안에 퇴짜 놓은 이유 [유신 쿠데타, 열 번째 마당] 박정희, 경제 살리려 쿠데타? 치명적인 오해

민족문제硏, ‘부민관 폭파의거’ 재연극 교육자료로 제작·배포

2015년 12월 10일 646

▲ 지난 7월24일 서울시의회 본회의장에서 부민관 폭파의거 재연극 ‘정의의 폭탄’이 상연된 모습.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 News1 광복 전 마지막 의거인 ‘부민관 폭파의거’를 재연한 연극이 교육자료로 만들어져 서울시내 중·고등학교에 배포됐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부민관 폭파의거’ 70주년 기념 재연극 ‘정의의 폭탄’을 담은 영상과 관련 교육자료를 서울 시내 중·고등학교 210여 곳에 배포했다고 10일 밝혔다. 부민관 폭파의거는 1945년 7월24일 친일단체인 대의당이 내선일체와 황민화를 앞세워 태평양 전쟁에 젊은이들의 참여를 선동하기 위해 개최한 ‘아세아민족분격대회’를 막기 위해 조문기, 유만수, 강윤국 등 독립투사들이 친일파와 일본 고위관료들에게 폭탄을 투척한 사건이다. 일본이 패망하기 전 마지막 의열투쟁이다. 연구소는 지난 7월24일 70년 전 경성 부민관이 있던 자리인 서울시의회 본회의장에서 부민관 폭파의거 70주년 기념식과 재연극 상연을 진행한 데 이어 이번 교육자료 제작과 배포 사업을 진행했다. 교육자료는 ‘정의의 폭탄’ 상연 모습 중 주요 장면을 약 20분 분량으로 편집한 영상이 담긴 CD와 교사용 계기수업 자료집으로 구성됐다. 해당 자료집에는 의거 주인공들을 소개한 글과 서울시내 관련 역사의 현장을 학생들이 직접 가볼 수 있도록 정리한 답사 자료, 실제 주인공 조문기씨의 회고록이 실렸다. 학생들이 직접 연극을 따라해 보며 공부할 수 있도록 연극 대본도 포함했다. 연구소 측은 “학생들이 일제에 강력히 저항했던 독립운동의 현장을 느끼고 독립운동 정신을 깨달을 수 있도록 이번 교육자료를 제작하고 배포했다”며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좋은 역사교육 자료로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