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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여 “이달의 스승 선정 계속할 것”
“친일논란 반성하지만 교사 사기 위해”… 선정위원도 유지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친일 행적으로 논란이 된 ‘이달의 스승’ 선정에 대해 “사업을 폐지하지 않고 그대로 진행하겠다”고 24일 밝혔다. 황 부총리는 이날 서강대에서 열린 인문학 심포지엄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이달의 스승을 선정하는 이유가 교사들의 사기 진작에 있는 만큼 계속해서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1년 사업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12명에서 8명의 친일 행적이 뒤늦게 밝혀졌던 것 【서울신문 3월 23일자 9면〉 에 대해 “행정적 실수에 대해 깊이 반성해야 한다”면서도 “우리가 재판을 하듯이 따질 게 아니라 시행착오를 거쳐서라도 좋은 교사상을 정립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대로 검증을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 이달의 스승 선정위원회에 대해서는 “모시기 어려웠던 분들을 모셨던 만큼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며 선정위원회를 그대로 유지할 것임을 시사했다. 1호 선정자인 최규동 서울대 전 초대총장의 친일 행적이 불거지자 교육부가 재검증을 의뢰했던 민족문제연구소 측은 우려를 표했다. 이용창 편찬실장은 “밀실에서 검증 작업을 하기보다는 각계의 교류를 통해 공개적으로 검증 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2015-03-25> 서울신문 ☞기사원문: [어수선한 ‘캠퍼스의 봄’] 황우여 “이달의 스승 선정 계속할 것”
민족생활의학자 해관 장두석 선생 별세
(광주=연합뉴스) 형민우 기자 = 평생을 통일운동과 민족생활의학을 전파해 온 해관(海觀) 장두석 한민족생활문화연구회 이사장이 25일 새벽 지병이 악화해 별세했다. 향년 78세. 1938년 전남 화순에서 태어난 장두석 선생은 초등학교 2학년을 중퇴하고 집을 떠나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자연 치유를 경험했고 1975년 자연건강대학을 설립해 민중의학을 펼치기 시작했다. 조봉암의 진보당에서 활동을 하는 등 민주화와 통일, 노동, 환경, 농민운동을 하다 도피 생활과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수습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다 군사법원에서 12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1981년 4월 사면 석방됐다. 1989년에는 민족생활학교를 설립해 4만여 명의 수강생을 배출했고 독일, 중국, 일본, 캐나다 등에서 강연회를 열었다. 2000년에는 6.15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상임대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 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공동대표를 맡아 통일운동에 앞장섰다. 고향 화순에 양현당을 설립해 최근까지 민족생활의학을 전파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자연치유를 원하는 중증 환자들에게 햇빛, 산소, 물, 소금, 곡물·채소 등 5대 영양소와 단식으로 구성된 바른생활건강법을 제시했다. 배달문화선양회를 설립해 해마다 개천절 행사를 마련한 고인은 지난해 10월 2일 북한을 방문해 평양 단군릉에서 단군제 봉행 행사를 열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람을 살리는 단식'(1993), ‘민족생활의학'(1994), ‘사람을 살리는 생채식'(1997), ‘병은 없다'(2013), ‘바른생활건강수첩'(2015) 등이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동례(75) 여사와 아들 영철(57·광주시 사회복지 장애인취업지원센터장)씨가 있다. 빈소는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28일 발인해 국립 5·18민주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 062-220-3352) minu21@yna.co.kr <2015-03-25> 연합뉴스 ☞기사원문: 민족생활의학자 해관 장두석 선생 별세 ※관련기사 ☞통일뉴스: 민족생활의학 전도사 해관 장두석 타계
민주행동, 제2의 민주화운동 발기인 대회
[신문고뉴스]박훈규 기자 = 함세웅 신부와 김상근 목사 등 민주화운동 원로들이 주축이 된 ‘민주행동’이 24일 오후 6시 30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발기인대회를 열고 ‘제2의 민주화운동’을 위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민주행동은 지난 16일 ‘2.28범국민대회’를 제안하면서 “박근혜정권의 독재와 무능이 한국사회에 심각한 위협을 끼치고 있다”며 87년 체제를 넘어 남북의 화해와 민주, 복지국가 건설을 위한 범민주, 진보세력의 초당파적 참여를 통해 제2의 민주화운동을 일으켜 친일과 독재잔당의 청산, 국가권력 구조의 민주적 재편을 이루어내자고 강조했다. ▲ 지난달 28일 서울역광장에서 개최한 박근혜 정부 규탄 범국민대회 ? 박훈규 이어 “관권부정선거와 군사작전권 포기, 복지공약 파기는 탄핵 대상”이라며 “박근혜정권은 국민의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총체적 관권부정선거 진상규명 요구에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하고 내란음모 정치공작을 감행하는가 하면 검찰총장을 찍어내고 특별수사팀을 공중분해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질타했다. 더불어 “박 대통령이 권력을 장악한 이후 2년 동안 추천한 공직후보자의 상당수는 범죄자로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는 수준”이라면서 “이것만 봐도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기본적 능력과 인적 자원조차 갖추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나서 민생,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무도한 정권에 맞서 싸우자”면서 “발기인대회를 통해 국민적 지지를 모아나가고 20대부터 90대까지 국민항쟁의 주역이 돼서 제2의 민주화 운동을 시작하자”고 밝혔다. 민주행동은 또 지난 18일 ‘선거제도 개혁에 관한 시민단체 토론회’를 개최하고 민주주의의 기본 전제인 ‘다수결의 원칙’이 선거제도의 허점으로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대한민국 ‘정통성’ 채운다…1천억대 친일재산 환수
친일재산 환수 10년 만에 마무리 눈앞…승소율 97%·역사 부조리 해소 10년간 끌어왔던 친일재산 국고환수 사업이 마무리됐다. 이에 따라 1천억 대의 친일재산이 올해 안으로 국고로 환수될 예정이다. 2005년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 환수에 관한 특별법’을 근거로 정부 차원의 조사 활동을 거쳐 소송을 시작한 지 10년 만이다. 친일재산 환수 문제는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강제 해산 이후 제대로 매듭짓지 못했던 문제였다. 법무부는 1일 친일재산 환수 관련 소송 96건 중 94건이 대부분 국가 승소로 확정됐고, 나머지 2건은 1·2심 판결 뒤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라고 밝혔다. 승소율 97%의 매우 의미있는 성과이다. 이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요즘 국가가 돈이 없어서 증세를 해야하는 형국인데 국고가 늘어서 좋다.”, “광복 직후에 했어야 할 일이긴 하지만 지금에라도 이뤄져서 다행이다.”라는 의견이 있었다. 반면, “취지 자체는 좋은데, 배상을 해야 할 대상으로 선정된 사람들이 공평하게 선택된 것인지 유력자나 재력가는 배제된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그렇다면 친일재산환수사업의 대상이 된 친일재산 환수는 누구를 대상으로 한 것일까? 친일재산환수사업에서 친일재산이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국권 침탈이 시작된 러·일 전쟁 개전 시(1904.2)부터 광복 시까지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하거나 이를 상속받은 재산 또는 친일재산임을 알면서 유증·증여받은 재산을 의미한다. 여기서 ‘친일반민족행위자’란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제2조 1호의 규정에 의거한 자로, 다음과 같다. 친일재산의 국가 귀속은 위에서 규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러·일 전쟁 개전 시(1904.2)부터 광복 시까지 일제에
고교생들이 제작한 위안부 할머니 다큐영화
[지방시대] [앵커] 부산의 고등학생이 일본의 한 맺힌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부산에서 김선호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지난 15일 오후 부산 양정청소년수련관에서 이색 상영회가 열렸습니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지만 광복 70년이 지나도록 일본의 진심어린 사죄조차 받지 못한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스크린에 상영됐습니다. 10여분의 상영시간 동안 관객들은 숨죽이며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픈 과거와 현재를 마주했습니다. ‘우리 할머니다’는 제목의 이 영화는 부산의 고등학생 5명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이 학생들은 운영난으로 폐관 위기를 맞은 부산 민족과여성역사관에 기부금을 내다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직접 영화로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했습니다. <김재우 / 부산 동인고 (감독)>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이 먼저 올바르게 알고 정확한 지식을 알고자, 이런 것을 말하기 위해서 저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다큐멘터리를 보시고 내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생각을 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들은 지난해 더운 여름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민족문제연구소,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위안부 할머니를 직접 찾아다니며 영상을 찍었습니다. 국내외 각종 위안부 관련자료를 모아 영화제작에 활용했습니다. <김문숙 / 민족과여성 역사관 이사장> “이 학생들이 정말 짧지만은 잘 포착해서 할머니들의 고통이나 또 우리가 위안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되는가 이런 것을 생각하게 하는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작품은 올해 여름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에서 상영돼 보다 많은 관객을 만날 예정입니다. 연합뉴스 김선호입니다. 연합뉴스TV 제보:02-398-4409, yjebo@yna.co.kr <2015-03-23>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 뜻 재조명
‘見利思義見危授命(견리사의견위수명)’ “이로움을 보았을 때에는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당했을 때에는 목숨을 바치라” 이 문구는 안중근 의사가 남긴 20점의 유묵(遺墨) 중 하나다. 의사의 위인적인 풍모와 나라사랑에 대한 정신이 묻어나는 글귀로 잘 알려져 있다. 서울시 용산구(구청장 성장현)가 광복 70주년, 안중근의사 순국 105주년을 맞아 항일 독립운동과 세계 평화에 이바지한 안중근 의사를 추모하기 위해 ‘안중근의사 순국 105주년 추모식’ 지원에 나섰다. 현재 용산구 효창원 내에는 1946년, 백범 김구 선생 주도로 삼(三)의사의 묘 바로 옆에 조성된 안중근의사의 가묘가 모셔져 있다. 추모식은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안중근평화연구원, 민족문제연구소 주최로 21일 효창원 내 안중근의사 묘역에서 진행됐다. 안중근의사가 순국한 뤼순형무소 투옥 당시 일본인 간수마저 경외한 그의 기개와 관련한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일본 간수 지바 도시치는 “일본이 당신 나라의 독립을 방해한 것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이에 대해 안중근의사는 “그 말을 정중히 받아드리겠소. 일본인, 더구나 군인인 당신이 그 같은 말을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고 역사의 흐름 개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르오. 그러나 나의 이번 거사가 가까운 장래, 아니 먼 장래 일지도 모르지만 대한 동포들의 애국심을 고취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소이다.” 안중근의사는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에서 출생했다.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칠 것을 오늘 우리 모두 손가락을 끊어 맹세하자”라며 1909년 2월 7일, 결사
‘장인환·전명운의거 107주년’ (上)1908년 美신문 스티븐스저격 대서특필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1908년 3월23일 오전 9시30분 샌프란시스코 페리호 선착장 앞에서 세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대한제국 고문으로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더램 화이트 스티븐스(Durham White Stevens 56)를 전명운 의사(25)와 장인환 의사(33)가 저격했다. 두 의사의 의거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 매체에 타전됐다. 특히 샌프란시스코에서 발행되는 신문들은 깜짝 놀랄정도로 많은 분량의 속보를 이어갔다. 유력지 샌프란시스코 콜은 3월23일부터 25일까지 사흘 연속 대서특필이었다. 사진은 1면기사. 2015.03.20. <사진=샌프란시스코콜 DB> robin@newsis.com 2015-03-21 ‘샌프란시스코 콜’ 1면부터 3면 도배 현장 그래픽까지 소개 눈길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인 최초의 ‘의혈 투쟁’은 이렇게 시작됐다. 쓰러진 미국인은 더램 화이트 스티븐스(Durham White Stevens 56), 부상당한 동양인은 전명운(田明雲) 의사(25), 총을 쏜 동양인은 장인환(張仁煥) 의사(33)였다. 긴급 후송된 스티븐스는 치료를 받다가 이틀 후 총탄 제거 수술을 받다 숨졌다. 당시 대한제국 고문이었던 스티븐스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로부터 모종의 밀명을 받고 미국에 들어온 지 사흘만에 저격당한 사건은 커다란 파장 속에 국권 회복을 염원하는 한국인들의 피를 끓게 했고 이듬해 10월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처단으로 이어졌다. 장인환·전명운 두 의사의 의거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 매체에 타전됐다. 특히 샌프란시스코에서 발행되는 신문들은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은 분량의 속보를 이어갔다. 유력지 샌프란시스코 콜은 3월23일 월요일자부터 25일까지 사흘 연속 대서특필이었다. 저격 다음날인 3월24일자는 1면부터 3면까지 이 사건 기사로 도배할만큼 비상한 관심을 기울였다. 1856년 창간한
“이달의 스승 12명 중 8명 친일 의혹”… 깡통검증 교육부
교육부가 선정한 최규동 전 서울대 총장 등 ‘이달의 스승’ 12명 가운데 8명에 대해 친일 행적 의혹이 제기됐다. 이달의 스승 대상자 부실 검증에 대한 비판과 함께 선정 및 검증 과정의 정파성 논란이 불가피해 사업의 원래 취지가 퇴색될 수밖에 없게 됐다. 교육부는 소속 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와 민간 기관인 민족문제연구소에 이달의 스승으로 선정된 12명 전체에 대한 검증을 의뢰해 최 전 총장 등 8명에게서 크고 작은 친일 행적이 발견됐다는 결과를 통보받은 것으로 22일 확인됐다. 교육부 관계자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이들에게서 발견했다는 친일 행적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받은 결과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며 “이달의 스승 사업을 앞으로 어떻게 할지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최 전 총장에게서 2건의 친일 행적을 더 발견하는 등 모두 8명의 크고 작은 친일 행적을 찾아내 교육부에 통보했다. 국사편찬위원회의 검증 결과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친일 행적이 지나치다고 판단되는 인물은 교체하고, 매달 1명씩 새로 선정해 발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이달의 스승으로 선정된 이들에게서 발견된 행위 중에는 본인 의지와 관계없이 행해진 것들도 있고, 명의 도용 등의 가능성도 있어 이를 침소봉대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앞서 최 전 총장에 대한 친일 의혹이 제기되자 일부 단체는 “파편 같은 흔적들을 찾아내 선생의 민족교육에 대한 열정을 모조리 친일로 매도하는 행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며 강력히 반발했었다. 하지만 민간단체들은 선정위원 재구성
[뉴스펀딩] 4화. 유골은 말하고 있다
2009년 5월, 일본의 홋카이도(北海道) 사루후쓰촌(猿拂村) 아사지노(淺茅野) 공동묘지 옛터. 강제동원 희생자의 유골 발굴 현장에 부는 바람이 차갑습니다. 한국에서 온 지옥동 할아버지가 희생자의 유골이 서서히 드러나는 모습을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습니다. 닷새간의 발굴 작업을 마무리하던 때였습니다. 강제노동의 끝에 이역의 땅에서 이름도 없이 죽어간 유골의 주인공이 척추 뼈 한 마디를 세상에 내보이며 고국에서 온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온 것입니다. ㅣ 60여년 만에 세상에 드러난 희생자의 척추뼈 오호츠크 바다를 향해 뻗어 있는 아사지노 비행장은 일본 최북단의 땅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1942년부터 1944년까지 일본은 소련과의 전쟁에 대비하여 1200m와 1400m의 목판 활주로를 갖춘 비행장을 건설했습니다. “조선에서 끌려와비행장 만들었던 젊은이들” 이 비행장을 만든 사람들은 식민지 조선에서 끌려온 젊은이들이었습니다. 가혹한 강제노동과 굶주림, 전염병에 시달린 끝에 모두 89명의 조선인들이 이 곳에서 희생되었습니다. 고향을 떠나와 홋카이도에서 이름도 없이 죽어간 조선의 젊은이들은 해방이 된 뒤에도 아무도 찾지 않는 자작나무 숲 아래에서 60여년이 넘는 세월을 잠들어 있었습니다. 지옥동 할아버지도 10대 후반의 나이에 이 곳에 끌려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았습니다. 식민지 조선에서 강제로 끌려 온 청년이 여든을 넘긴 노인이 되어 강제노동의 땅 홋카이도에 다시 선 것입니다.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지옥동 할아버지는 징용으로 이 곳까지 왔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언제 돌아올지도 모른 채 부산에서 관부연락선을 타고 시모노세키(下?)에 닿았습니다. 그 곳에서 다시 일주일 동안 기차를 타고 일본열도를 횡단하여 혹한의
“안중근 의사, 지금 우리에게 ‘남북통일 헌신’ 당부했을 것”
ㆍ내일 ‘안 의사 순국 105주년 추모식’ 여는 함세웅 신부 “순국선열들께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안중근 의사 순국(3월26일) 105주년을 일주일 앞두고 함세웅 신부(사진)는 머리부터 조아렸다.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함 신부는 19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독립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으셨는데 우리는 남북분단을 막지 못했고, 지금은 서로 적대시하고 있다”며 “북한은 일제강점기 함께 독립전쟁을 치른 동포다. 형제국으로서 북한이 미국·일본과 수교를 맺고 국제사회 일원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광복과 분단 70년이 되는 해인 만큼, 국가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자각할 것을 함 신부는 주문했다. 그는 “반민족 친일 세력과 독재 잔당들은 국가안보가 아니라 정권안보를 위해 이념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며 “상식을 기초로 한 건강한 민족공동체를 지향한다면 개개인이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주체성을 지녀야 한다”고 말했다. 함 신부는 “남북 화해와 협력을 도모하면 사전에도 없는 ‘종북’이란 말로 훼손하고 있는 현실이 슬프다”고 했다. 이어 “북을 적대시하는 정책으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며 이젠 ‘실질적 행동’으로 남북화해에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방한했던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같은 언어를 쓴다는 것은 어머니가 같다는 증거로 이는 축복받은 민족이다. 어려운 형제를 돕는 것을 주저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안중근 의사 역시 우리에게 ‘남북통일을 위해 헌신하라’고 당부하실 겁니다.” 함 신부는 현 정권을 향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 등으로 생긴 슬픔과 분노는 국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