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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2014.11.26] 을사늑약 특집 친일파 열전 이완용 3편

2014년 11월 28일 524

▲ 라디오 백년전쟁 – 을사늑약 특집 친일파 열전 이완용 3편 ☞ [팟빵]: http://www.podbbang.com/ch/6647?e=21549971 ☞ [다운]: http://down-cocendn.x-cdn.com/data1/guitarkirk/141126nrh1.mp3

광주 서구 친일파 이름 딴 ‘백일’ 지명 지우기 나서

2014년 11월 27일 490

1992년 광주 서구 화정 4동에 문을 연 ‘백일초등학교’는 최근 교명을 바꾸기로 하고 학부모와 졸업생들을 상대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 이 초등학교가 22년 동안 써 왔던 이름을 바꾸기로 한 것은 ‘백일’이 친일파의 이름에서 나온 지명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백일초가 있는 이곳의 행정동 명칭은 ‘화정4동’ 이지만 주민들은 ‘백일지구’라는 이름으로 불러왔다.‘백일(白一’) 이라는 지명이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모르지만 최근 이 지명이 친일파 김백일(金白一, 1917∼1951)장군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광주 서구가 국방부에 확인한 결과 김 장군은 1948년 7월부터 1949년 8월까지 1년 1개월 동안 당시 광주 상무지구에 있던 육군보병학교의 전신인 제병협동본부 초대본부장(교장)을 지냈다. 김 장군은 당시 현재의 광주 서구 중앙공원에 사격장을 만들었는데 이 사격장은 김 장군의 이름을 따 ‘백일 사격장’으로 불려왔다. 사격장이 들어선 야산도 주민들은 ‘백일산’으로 불렀다. 김 장군은 이후 육군 3사단장을 거쳐 한국전쟁 당시 육군1군장을 맡았다가 부대 복귀도중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문제는 김 장군의 일제시대 행적이다. 그는 일본이 만주국에 세운 봉촌군관학교를 제5기로 졸업하고 1937년부터 간도특설대에서 장교로 복무했다. 간도특설대는 일제가 독립군 등을 토벌할 목적으로 세운 부대였다. 이런 이력으로 그는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올랐고 2009년 대통령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4인의 명단에도 포함됐다. 하지만 광주시 등이 이런 사실을 간과한 채 이곳을 택지로 개발하면서 ‘백일택지개발지구’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이 이름이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현재 초등학교와 어린이공원 등에 ‘백일’이라는 이름이

[멍석]이순신 동상과 영정

2014년 11월 27일 439

복식과 무구(武具), 제작자의 친일 행적 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국회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될 예정이다. 이미 국립중앙박물관, 해군사관학교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으로부터는 “유물(또는 예술)로서 가치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라는 이유로 이관을 거절당했다. 전국에 설치된 이순신상은 얼마나 될까? 수없이 많은 이순신상 중에 국내 최초로 세워진 것은 창원시 진해구 북원로터리에 있다. 조각가 윤효중이 1952년 만든 이순신 동상이다. 그리고 1953년 통영 남망산공원, 1955년 부산 용두산공원에 연이어 조각가 김경승이 제작한 이순신상이 세워졌다. 이 많은 이순신상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김세중이 제작해 1968년 광화문 앞에 세워진 것이다. 여수 오동도, 사천 노산공원, 아산 신정호, 통영 망일봉공원에 있는 동상도 잘 알려져 있다. 문제는 전국에 있는 동상이나 영정 얼굴 중 같은 것은 하나도 없으며, 유명한 동상이나 영정은 대부분 친일 작가들에 의해 제작됐다는 사실이다. 장군의 영정은 일제강점기에 대부분 없어졌고, 1932년과 1933년 청전 이상범이 그린 영정이 각각 아산 현충사와 한산도 제승당에 봉안되었다. 이순신 얼굴로 기억되는 것은 월전 장우성이 1953년 그린 것으로 아산 현충사에 있는 그림의 인상이다. 세로 193cm, 가로 113cm에 달하는 이 대형 영정은 지난 1973년 10월 문화공보부에 의해 표준영정으로 지정되었다. 월전은 모두 세 종류의 이순신을 그렸다. 이 그림들 이미지가 모두 차이가 있어 동일 인물이 그린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기도 했다. 월전의 작품 이전에는, 이당 김은호의 그림이 유명했다. 1949년 혹은

“친일인사의 이름, 동네이름으로 부적합”

2014년 11월 26일 327

☞<인터뷰 바로듣기>   – 한국전 당시 흥남철수로 유명한 장군이지만 – 악명 높았던 일제 간도특설대의 창설요원 – 간도특설대는 조선인이 조선인 잡는 부대 – 정부가 발표한 1000여명 친일파중 한명이고 – 동상 있는 거제도에서도 반대여론 높아 – 보훈처의 현충시설 지정, 합당하지 않아 – 백일초등학교는 이름 변경 추진중 ■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4년 11월 26일 (수) 오후 7시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 ◇ 정관용> 친일인사의 이름을 딴 도로명 주소 논란인데요. 광주광역시 서구에 백일로라는 지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일제강점기 친일인사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그러네요. 이 백일로 안에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까지 있다고 그래요. 그래서 이 도로명 당장 바꿔야한다, 지금 광주시민단체가 문제제기를 하고 있습니다. 관련 소식 들어보겠습니다. 친일인사의 이름을 딴 도로명 주소 논란 다뤄보겠습니다. 도움 말씀 주실 분은 민족문제연구소의 방학진 사무국장이세요. 방 국장님, 안녕하세요. ◆ 방학진> 네, 안녕하세요. ◇ 정관용> 이게 광주 서구에 있는 백일로라는 곳이죠? ◆ 방학진> 네. ◇ 정관용> 이게 그런데 도로명 주소 개편되면서 새롭게 등장한 것이라면서요? ◆ 방학진> 네, 그렇습니다. ◇ 정관용> 과거에는 여기가 뭐라고 불렀었어요, 그럼? ◆ 방학진> 여기는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이었죠. ◇ 정관용> 그런데 백일로라고 붙였다? ◆ 방학진> 네,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 인근에 뭐 백일초등학교, 백일공원 이런

민족자본 맹아싹튼 광장시장에서 전태일 분신까지

2014년 11월 26일 1469

<새연재> 유영호의 서울 성곽 역사기행 (17) 동대문·동묘·광장시장·동대문운동장·국립중앙의료원 ▲ 동대문~장충동 답사구간 [자료-유영호] 동대문~장충동 구간 졸지에 가장 오래된 대문이 되어버린 <흥인지문(興仁之門)>, 속칭 동대문 이제부터 <종로구>에 건설된 성곽을 벗어나 <중구>에 건설된 성곽을 따라 <광희문>, <숭례문>등을 거쳐 처음 출발했던 <돈의문>까지 가기로 하자. 물론 종로구와 중구를 나누고 있는 경계는 청계천이기 때문에 청계천 이북에 있는 <동대문>은 여전히 종로구에 속해 있다. 하지만 사대문을 기준으로 보면 흥인지문과 돈의문 이남이 중구에 속하기 때문에 편의상 사대문을 기준으로 종로구와 중구를 나눈 것이다. 현재 사대문 가운데 동대문이 가장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건축된 형태로 보존된 유일한 대문이다. 동대문도 일제 강점기 교통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돈의문처럼 사라질 위기에 처했으나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한양으로 진입할 때 남대문과 동대문으로 각각 두 선봉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이 입성했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살아남게 된 것이다. 이렇게 살아남은 남대문과 동대문이 각각 국보1호와 보물1호의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2008년 2월 남대문이 화재로 문루 전체가 소실됨에 따라 졸지에 동대문이 가장 오래된 대문으로서의 지위를 물려받게 된 것이다. 동대문은 다른 대문과 마찬가지로 조선 태조 때 건설되어 여러 번 중수를 거쳤고, 마지막 중수를 한 것이 고종 때이다. ▲ 숭례문의 화재로 졸지에 사대문 가운데 가장 오래된 대문이 된 <숭인지문>. 2014년 10월 현재 대문 밖 옹성을 수리하고 있는 모습. [사진-유영호] 한편 동대문은 한양성 내사산가운데

서북청년회 재건은 이념적 광기가 지배하던 시대로의 퇴행이다

2014년 11월 26일 2063

 서북청년회 재건은 이념적 광기가 지배하던 시대로의 퇴행이다   이준식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1. 스스로 반공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을 밝히는 데 조금의 주저함도 없던 선우휘가 쓴 <테러리스트>라는 소설이 있다. 해방정국과 분단정부 수립과정에서 “빨갱이를 치는”일에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필요악의 에너지”를 분출시키던 한 우익청년단체의 회원들이 정작 분단정부 수립 이후에는 이승만정권에 버림받아 “영락없이 룸펜”으로 전락해 도시의 후미진 뒷골목에서 짐승처럼 멱살을 부여잡고 뒤엉키는 모습을 그린 결론이 인상적인 소설이다. 소설에 나오는 몰락한 우익청년단체란 서북청년회(약칭 서청)를 가리킨다. 서북청년회는 1946년 11월 말 출범한 이래 이승만정권이 1948년 12월 모든 청년단체를 통합해 대한청년단이라는 어용단체를 꾸릴 때까지 2년 남짓 존재했다. 활동기간은 짧았지만 당시 가장 악명 높은 테러집단이 서북청년회였다. 서북청년회는 북한에서 월남한 사람들 가운데 특히 혈기왕성한 청년층이 ‘반공’을 표방하면서 만든 청년단체였다. 그러나 말이 청년단체이지 하는 짓은 정치깡패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들을 비호하던 미군정과 이승만정권조차 나중에는 진저리를 칠 정도의 비인간적 테러집단이 바로 서북청년회였다. 서북청년회 활동의 기본은 ‘빨갱이사냥’이라는 이름 아래 벌인 폭행, 암살, 그리고 집단학살이었다. 서북청년회의 백색테러는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다. 단순히 좌익에게만 테러를 가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보기에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면 누구에게라도 좌익의 혐의를 씌워 테러를 자행했다. 그리고 테러의 끝은 암살과 집단학살이었다. 1948년에 일어난 김구 암살의 배후로 지목된 것이 바로 서북청년회였다. 실제로 김구 암살범 안두희는 서북청년회 종로지부 총무부장 출신이었다. 서북청년회의 암살 명단에 오른 것은 정치지도자만이 아니었다. ‘좌익편’이라는 이유로

“광주 ‘백일로’ 유래는 친일파 장교 김백일”

2014년 11월 25일 511

‘백일로’ 지명, 친일인사 김백일 유래… 육군, 친일파를 안중근과 동일시 ▲ 3·1운동 이후 가장 큰 규모의 항일운동인 광주학생독립운동의 기념관 소재지가 친일인사의 이름을 차용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24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아래 시민모임)’은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이 위치한 광주 서구 백일로(화정4동)를 포함해 백일초등학교, 백일 어린이공원, 백일산 등이 간도특설대 장교 김백일의 이름을 딴 것”이라며 그 동안 조사한 자료를 공개했다. ⓒ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의 소재지인 광주 서구 ‘백일로’의 유래가 친일인사의 이름인 것으로 알려져 문제가 되고 있다. 24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아래 시민모임)’은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이 위치한 광주 서구 백일로(화정4동)를 포함해 백일초등학교, 백일 어린이공원, 백일산 등이 간도특설대 장교 김백일의 이름을 딴 것”이라며 그 동안 조사한 자료를 공개했다. 특히 이명박 정부 시절 김백일이 친일인사로 분류됐음에도 여전히 군과 국가보훈처는 그를 우상화하고 있어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간도특설대는 1938년 항일 독립군 토벌을 위해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에 창설된 특수부대로 1945년 일제 패망까지 백선엽, 김백일 등 150여 명의 조선인이 이곳에 복무했다. ▲ ‘거제 역사 바로세우기를 위한 김백일 동상 철거 시민대책위’가 2013년 10월 24일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 안에 있는 김백일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동상철거를 요구하고 있다. 사진은 동상 머리 부분에 일장기를 두르는 모습. ⓒ 거제타임즈 시민모임이 수집한 자료와 국방부 답변 등에 따르면 광주 서구 화정동의 ‘백일’이란 지명은 1950년대 이 지역에 만들어진 백일사격장을 유래로

법관은 왜 법률기술자가 되었나

2014년 11월 25일 368

ll“(조선총독부 시절) 조선인 판사가 항일운동 재판을 했다하여 우리 민족을 탄압한 것은 아니다. (유신시절) 당시에는 위헌이 아닌 긴급조치에 따라 재판한 법관이 불법행위를 했다고 볼 수 없다. ll 2010년 10월 해괴한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김종필 부장판사가 장본인이다. 김 판사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판사 유영(柳瑛·1892~1950)의 손자가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유영은 1920년부터 조선총독부 판사로 재직하면서 독립운동가 수십 명에게 유죄를 선고한 까닭에 정부기관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됐다. 유영은 의열단 사건 관련자에게 실형을 선고하는 등 조선총독부 판사로 재직하는 22년 동안 독립운동가 77명(사건 7건)에게 유죄판결을 했다. 유영이 유죄를 선고한 피고인 가운데 25명은 대한민국 수립후 독립유공자로 선정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판사는 검사가 공소제기한 적용 법령과 공소 사실을 기초로 유무죄 여부와 형량을 결정하는 역할만을 한다”며 “판사가 항일운동에 관련된 사안에 대한 재판을 했다는 것만으로는 무고한 우리 민족 구성원을 탄압하는 데 적극 앞장섰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렇듯 조선총독부 판사의 반민족행위를 적극 옹호했던 김 판사는 올해 초 청와대 법무비서관에 발탁됐다. 박근혜 정권의 속성을 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후배법관의 양심을 걷어찬 대법관들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하며 법치주의를 수호해야 한다. 이게 일반상식이다. 그를 위해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 주는 한편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되면 차관급 예우를 해준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법원에는 영혼 없는 법률기술자로 전락한 법관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광주 ‘백일로’ 유래는 친일파 장교 김백일”

2014년 11월 25일 773

‘백일로’ 지명, 친일인사 김백일 유래… 육군, 친일파를 안중근과 동일시 ▲ 3·1운동 이후 가장 큰 규모의 항일운동인 광주학생독립운동의 기념관 소재지가 친일인사의 이름을 차용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24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아래 시민모임)’은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이 위치한 광주 서구 백일로(화정4동)를 포함해 백일초등학교, 백일 어린이공원, 백일산 등이 간도특설대 장교 김백일의 이름을 딴 것”이라며 그 동안 조사한 자료를 공개했다. ⓒ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의 소재지인 광주 서구 ‘백일로’의 유래가 친일인사의 이름인 것으로 알려져 문제가 되고 있다. 24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아래 시민모임)’은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이 위치한 광주 서구 백일로(화정4동)를 포함해 백일초등학교, 백일 어린이공원, 백일산 등이 간도특설대 장교 김백일의 이름을 딴 것”이라며 그 동안 조사한 자료를 공개했다. 특히 이명박 정부 시절 김백일이 친일인사로 분류됐음에도 여전히 군과 국가보훈처는 그를 우상화하고 있어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간도특설대는 1938년 항일 독립군 토벌을 위해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에 창설된 특수부대로 1945년 일제 패망까지 백선엽, 김백일 등 150여 명의 조선인이 이곳에 복무했다. ▲ ‘거제 역사 바로세우기를 위한 김백일 동상 철거 시민대책위’가 2013년 10월 24일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 안에 있는 김백일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동상철거를 요구하고 있다. 사진은 동상 머리 부분에 일장기를 두르는 모습. ⓒ 거제타임즈 시민모임이 수집한 자료와 국방부 답변 등에 따르면 광주 서구 화정동의 ‘백일’이란 지명은 1950년대 이 지역에 만들어진 백일사격장을 유래로

광주 서구 ‘백일’은 친일 흔적? ‘발칵’

2014년 11월 25일 616

▲ 광주 서구 화정4동 백일지구가 일제 강점기 독립군 토벌대로 활동한 김백일 장군(맨 위)의 이름에서 유례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친일인사의 이름인 것도 모른 채 ‘백일’ 은 도로명, 초등학교 등 각종 행정·시설명으로 쓰여왔다.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위에서 두 번째)이 이전한 곳의 주소도 백일로. 친일인사 이름 위에 항일시설물이 세워진 꼴이다. 지금이라도 곳곳에 퍼져있는 친일 흔적을 청산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일제때 독립군 토벌 김백일 장군 기념 ‘백일사격장’서 유래 -초등학교·도로명·어린이공원·상가명 등 곳곳에 ‘백일’ 박혀 -학생독립운동회관도 ‘백일로’ “친일파 이름 위 항일시설물” 광주 서구 화정 4동 백일지구의 ‘백일’이 일제 강점기 독립군 토벌대의 주축인물이었던 친일인사의 이름에서 유례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초등학교, 어린이공원, 도로명, 일반 상점 이름에까지 ‘백일’이란 명칭이 쓰이고 있고,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이 이전한 주소도 ‘백일로’여서 파장이 예상된다. 24일 광주시에 따르면, 화정 4동 백일지구는 90~92년에 택지개발이 이뤄졌다. 백일지구의 ‘백일’은 택지개발 전 이곳에 위치해 있던 백일사격장에서 따온 것이다. 이 때부터 ‘백일’은 이 지역에서 가장 흔한 단어가 됐다. ▶백일초 교가 가사에도 등장 1992년 개교한 백일초등학교가 대표적이다. 백일초 교가 가서에도 ‘백일’은 등장한다. 백일초등학교 앞에 있는 어린이공원도 ‘백일 어린이 공원’이고, 인근 아파트 단지 상가에 있는 세탁소나 학원 등에도 ‘백일’이 들어가 있다. 주민들은 광주시청소년수련관 인근에 있는 산을 ‘백일산’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 일대 도로명 주소도 백일로. 동구 황금동 시대를 마감하고 화정동으로 이전한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의 신청사 부지가 있는 곳 주소도 백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