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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아이고~ 재미없다” 우금티 영령들의 목소리 들리네

2014년 10월 31일 361

공주역사트레킹 2편 ▲ 우금티 우금티에 쓰러져 있는 조형물들. 피눈물을 흘리며 쓰러져 간 동학농민군들의 모습과 겹쳐져, 좀 서글퍼 보인다. 올해 여름에 촬영한 사진. ⓒ 곽동운 공주역사트레킹 1편 : “내가 설명하려고 했는데…” 토박이한테 당하다 ? 수직이든 수평이든, 장염 걸린 사람에게는 힘들다 공산성 탐방을 마친 트레킹 팀은 중동성당을 지나 본격적인 도보여행에 나섰다. 옛 공주 읍내는 분지형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시가지를 두고 둥글게 산들이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 지형을 기반으로 도보 여행길을 개척했기에 해변가나 강변을 걷는 길보다는 좀 험하다. 본격적인 등산보다는 덜해도 급경사가 있는 구간이 몇몇 있다는 것이다. 등산이 수직적인 개념이라면, 트레킹은 수평적인 개념이다. 하지만 트레킹도 지형을 타고 가야하기에 일정 부분에서는 수직적으로 올라가야 할 때가 있다. 반대로 등산도 봄소풍 가듯 평평한 길을 걸을 때도 많다. 개념 정의에서는 수직과 수평으로 나누어지지만 지형이라는 구체적인 물리적 공간에서는 중첩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필자가 베이스 캠프로 삼고 있는 관악산 둘레길의 경우,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등산로였다. 그런데 걷기 열풍을 타고 ‘둘레길’로 변신을 하게 됐다. 하지만 이런 지형적, 개념적 정의들도 컨디션이 좋을 때나 귀에 들어올 것이다. 장염 때문에 배앓이를 하는 사람에게 수직이든 수평이든 힘든 것은 매한가지 일 테니까. 그랬다. 본격적인 트레킹에 나서게 되니 공주토박이 분보다는 장염에 걸린 분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장염 특성상 아무것도 먹을 수 없지

후지코시 강제동원 피해자 “죽기 전 진심어린 사과 원해”

2014년 10월 31일 1073

일제 강제동원피해소송에서 또 하나의 이정표가 세워졌다. 대법원이 2012년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배소에서 청구권을 인정한데이어, 10월 31일 서울중앙지법은 “후지코시는 강제동원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에게 각 1억원을 배상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이번 소송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사무국을 맡고 있는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상임대표 이희자)가 주도하였으며 장완익 변호사(연구소 이사)가 변론을 맡았다. – ‘편집자’ ▲’재판을 마치고’ (서울=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일제강점기 때 강제동원된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일본의 군수기업 후지코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선고기일인 30일 오후 피해자 할머니들이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 밖으로 나서고 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은 “피해자 1인당 8천만원∼1억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서울=연합뉴스) 서혜림 기자 = “죽기 전에 진심 어린 사과와 배상을 받기를 바랍니다. 그걸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기업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30일 오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사무실에서 열린 ‘일본 후지코시 상대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 선고 결과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이복실(82) 할머니는 언성을 높여 이렇게 말했다. 그 는 “1천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강제 노동에 동원됐는데 (보상금을) 다 줬다, 다 끝났다고 하는 게 기업이냐”며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싸워왔다”고 강조했다. 이복실 할머니는 이날 서울중앙지법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된 후지코시 상대 손해배상 소송의 원고들 중 한 명이다.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대 강제 동원돼 노역에 시달렸던 피해자와 유족 31명이 제기한 소송이었다. 재판부는 후지코시가 이들에게 각각 8천만∼1억원을 배상해야

일본에 그렇게 당하고도 동남아에 밀린 한국, 왜?

2014년 10월 31일 615

body,table,td,input,select,textarea{font-family : verdana,굴림;font-size :9pt;line-height : 140%;}img{border : 0;}A:link {text-decoration:none; color:black;}A:visited {text-decoration:none; color:black;}A:hover { text-decoration:none; color:#3E8FFC;}P{margin-top:2px;margin-bottom:2px;}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71> 한일협정, 아홉 번째 마당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른바 진보 세력 안에서도 부박한 담론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역사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 절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를 이어간다.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은 한국 현대사 연구를 상징하는 인물로 꼽힌다. 매달 서 이사장을 찾아가 한국 현대사에 관한 생각을 듣고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여덟 번째 이야기 주제는 한일협정이다. ‘편집자’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이야기 마당 1∼3] 한국전쟁[이야기 마당 4∼8] 친일파[이야기 마당 9∼15] 학살[이야기 마당 16∼31] 해방·분단 [이야기 마당 32∼41] 4월혁명 [이야기 마당 42∼53] 5.16쿠데타 [이야기 마당 54∼62] 제3공화국 [한일협정, 첫 번째 마당] 박정희 아니었으면 일본 자금도 못 들여왔다? [한일협정, 두 번째 마당] 아베 외조부 “돈으로 박정희를 만족시키면 된다” [한일협정, 세 번째 마당] “일본을 형님으로 모시겠소”, 고개 숙인 박정희 [한일협정, 네 번째 마당] 짓밟힌 한국, 일본·미국 짬짜미에 또 당했다 [한일협정, 다섯 번째 마당] 이대생들은 왜 ‘미장원·화장 자제’를 결의했나 [한일협정, 여섯 번째 마당] 조선·동아는 어쩌다 괘씸죄로 청와대에 찍혔나 [한일협정, 일곱 번째 마당] 또 망언한 일본…한국 정부는 왜 덮는 데 급급했나 [한일협정, 여덟 번째 마당] 반공 목사들이 박정희에게 정면으로 반기 든 사연

“억울하게 학살된 조선인들 恨 풀어줘야죠”

2014년 10월 31일 414

관동대지진 학살 특별법 추진하는 김종수 목사 ▶“억울하게 학살된 조선인들 恨 풀어줘야죠” 기사의 사진‘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추진위원회’ 공동대표 김종수 목사가 30일 자신이 사역하는 충남 천안 병천리 아힘나평화학교에서 기자와 만나 특별법안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천안=허란 인턴기자 “1923년 일본 관동 지역에서 적어도 6600명의 조선인이 이유도 없이 죽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어요. 누군가는 저들의 한을 풀어줘야 하는데 말이죠. 목회자로서, 교육자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이유입니다.” 30일 충남 천안 병천리 아힘나평화학교에서 만난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추진위원회(관동 학살법 추진위)’ 공동대표 김종수(52) 목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김 목사는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자는 특별법안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제안한 사람이다. 관동대학살은 1923년 9월 일본 관동 지방에서 대지진이 발생할 당시 일본 정부가 독물 투입 등 일본인에게 테러를 자행했다는 누명을 재일 조선인들에게 씌워 수천명을 무참히 살해한 사건이다. 김 목사는 2006년부터 이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일하고 있다. 2007년 7월 도쿄에서 사건 당시 발행된 신문과 조선인 학살 장면을 기록한 사진 등을 서울로 가져와 국회의원회관에서 전시회를 개최했다. 이후 서울대 역사학과 출신인 새정치민주연합 유기홍 의원을 끈질기게 설득해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가 처음부터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김 목사는 천안의 작은 대안학교인 아힘나평화학교의 대표교사로 아이들을

“전략적 봉쇄차원 소송… 오만하다”

2014년 10월 30일 482

[인터뷰] 양권모 경향신문 논설위원 및 디지털뉴스팀 박근혜 대통령을 명예훼손 했으니 엄벌에 처하도록 해달라는 보수단체 또는 보수논객의 고발이 잇따르고 있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느냐는 의문에서부터 국민과 세월호 가족을 몰아붙인 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비판까지 고발대상이 됐다. 고발 대상자엔 야당 국회의원을 비롯해 언론사 대표, 기자, 논설위원, 학자, 평론가(방송인) 등 여론을 움직이는 이들이 망라됐다. 서북청년단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고발당한 이도 있다. 고소고발은 박 대통령이 지난달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부터 검찰 수사와 함께 봇물처럼 쏟아졌다. 의문의 7시간 동안 ‘정윤회’와 밀회 가능성을 언급한 산케이신문의 전 서울지국장은 검찰에 불구속기소돼 재판을 앞두고 있다. 보수단체·논객의 고발과 검찰수사와 기소로 이어지는 현상이 예사롭지 않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가장 많은 고발장을 대검찰청에 접수하고 있는 보수 칼럼니스트 심상근씨는 자신의 이런 고발행위에 대해 고발당사자들이 반박을 한 것에 대해서도 고발장을 접수했다. 피고발인의 목소리를 실은 미디어오늘 역시 고발대상에 포함됐다. 고발당한 이들이 이런 세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들어봤다.<편집자주> [관련기사] ① “‘아버지 닮았단 말이 모욕? 박정희가 혐오스럽나” ② 허지웅, 서북청년단 건으로 고발돼 “사실관계조차 틀렸다” ③  조국 “내가 살인교사범? 웃음밖에 안 나와” ④ 한겨레 “조선일보 칼럼과 비교한 것일 뿐” 경향신문 측은 보수칼럼니스트 심상근씨의 고발에 대해 ‘전략적 봉쇄’를 통한 일종의 압박이라고 비판했다. 심씨는 경향신문에 대해 두건의 고발장을 접수했다. 양권모 논설위원은 지난달

고종황제의 명을 받아 의병전쟁을 선포하다

2014년 10월 30일 1099

[박도 실록소설 ‘들꽃’ (8)] # 제2장 13도 창의 군사장 허위 ③ <들꽃> 해제 제목 ‘들꽃’은 일제강점기에 황량한 만주벌판에서 나라를 되찾고자 일제 침략자들과 싸운 항일 독립전사들을 말한다. 이 작품은 필자가 이역에서 불꽃처럼 없이 산화한 독립전사들의 전투지와 순국한 곳을 찾아가는 여정(旅程)으로, 그분들의 희생비를 찾아가 한 아름 들꽃을 바치고 돌아온 이야기다. – 작가의 말 ▲ 돼지감자꽃으로, 예쁜 꽃과는 달리 그 뿌리에는 돼지코처럼 못생긴 감자가 달려 있다. 그래서 ‘뚱단지’라는 별명이 붙었나 보다. ⓒ 박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1905년 고종 황제(광무황제)는 을사늑약을 끝내 재가하지 않았다. 고종 황제는 이 늑약에 대해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했고, 국제사회에 호소해 이 조약이 무효임을 알리고자 1907년 6월, 네덜란드 헤이그의 만국평화회의에 3인의 밀사를 파견했다. 전 의정부 참찬 이상설, 전 평리원 예심판사 이준, 전 주러시아공사관 이위종 3인이었다. 이들 세 밀사가 헤이그에 도착했으나 일제의 방해로 회의에 참석할 수 없었다. 조선 정부(대한제국)가 믿었던 러시아마저도 일본 측에 고종 황제의 밀사 파견을 밀고하고, 만국평화회의 의장인 넬리도프에게 전문을 보내 밀사들의 참가신청을 거절케 했다. 국제관계는 그제나 이제나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는’ 냉혹한 힘의 논리와 자국의 이해득실에 따라 그때그때 적과 동지 관계로 흘러갔다. 일본은 헤이그 밀사사건을 빌미로 고종 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이른 바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체결케 했다. 이 한일신협약은 조선의 마지막 숨통을 조이기 위해 법령제정권· 관리임명권· 행정권 및 일본 관리의 임명

“해방은 우리 스스로의 피와 땀으로 쟁취한 것”

2014년 10월 30일 626

한국독립유공자협회, 청산리·봉오동·대전자령대첩 제94주년 승전 기념식 열어 94년전 한국독립군이 청산리, 봉오동, 대전자령에서 일본군을 대파한 것을 기리는 ‘제94주년 승리전승기념식’이 27일 오전 백번김구기념관에서 한국독립유공자협회 주관으로 열렸다. (사)한국유공자협회 임우철 회장은 기념사에서 “독립군 정신의 부활을 위해 결연히 일어서려 한다”며, “이 기념식을 통해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조국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헌신의 정신을 복받을 수 있도록 주어진 역사적 소원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청소년 대표로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인천가림고 박장식 군과 인천 미추홀외고 김동기·장한륜 군은 성명서 발표를 통해 “일본이 전범국가로서 저질렀던 악행에 대해 사과는 커녕 그 악행들을 정당화하고 미화하는 인면수심적인 행동에 대해 분노해야 한다”며, 역사의 수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신(新)독립군으로서의 다짐을 굳세게 다지면서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기념식에 이어 민족문제연구소 이준식 연구위원은 ‘만주지역 무장투쟁과 3대 대첩의 역사적 의미’를 주제로 특별강연을 이었다. 이 연구위원은 “항일독립운동의 역사는 멀리 의병전쟁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며, “독립전쟁은 항일독립운동의 최고 최후의 형태로서 역사적 의미를 가지며,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독립운동 투사를 길러낸 것도 독립전쟁의 중요한 성과”라고 설명했다. 또 한국독립운동의 특징으로 “시작부터 끝까지 무장독립투쟁으로 일관했다는 점과, 독립운동 선열들은 우리 민족 뿐만아니라 인류평등, 세계평화, 민족간 평등에 이바지한다는 이상으로 투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945년 8월15일의 해방은 일부 인사들이 주장하듯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강대국의 시혜에 의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피와 땀으로 쟁취한 것”이라고 독립운동의 의미를 덧붙였다. 이 연구위원은 “만주에 독립군기지를 세우겠다는 구상은

[2014.10.29] 한국현대사의 악몽 시월유신 2편

2014년 10월 30일 313

☞ 방송 [바로듣기] ※라디오백년전쟁: [2014.10.29] 한국현대사의 악몽 시월유신 2편 ☞[팟빵]http://www.podbbang.com/ch/6647?e=21526481

할아버지 두 번 죽인 이인호, 더는 안 된다

2014년 10월 29일 539

[주장] 친일파 조부는 두둔하고 김구는 능멸… 이인호 KBS 이사장, 사퇴해야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제일 먼저 배운 것이 ‘나라 사랑’이었다. 그리고 그 나라 사랑의 대표적 인물로 학교와 사회가 가르쳐 준 사람은 ‘백범 김구’ 선생님이었다. 매 학기 방학이면 빠지지 않는 권장 도서도 <백범 일지>였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출마한 유력 후보 대부분은 존경하는 인물로 이순신 장군과 함께 백범 선생을 빠지지 않고 꼽았다. 그런 나라 사랑의 핵심 인물인 백범 선생이 지금, 이 나라에서 만신창이로 전락했다. 세월호 망언으로 논란을 빚은 정미홍씨가 제일 먼저 포문을 열었다. 지난 6월 정씨는 한 언론사 초청 강연에서 “지금 김구 선생이 최고의 애국자라고 되어 있지만 그분은 김일성에 부역한 사람이고, 좌파 역사학자들이 영웅으로 만들어 놓은 사람”이라고 망언했다. 나는 이 제보를 처음 받고 믿지 못했다. 대한민국에서 백범 선생에게 이런 망언을 공개리에 할 사람이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 “김구 건국공로자로 볼 수 없다” 지난 22일 국정감사장에서 나온 이인호 KBS이사장의 김구 선생에 대한 역사발언이 커다란 후폭풍을 낳고 있다. ⓒ 채널A화면갈무리  김일성 부역자 김구? 도 넘은 망언 정미홍씨 강연 음성 파일을 직접 들어본 결과, 제보는 사실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정미홍씨는 강연 중 “김구는 시골 출신으로 조선의 독립운동만 하다가 시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무조건 ‘분단은 안 돼!’, 이래 가지고 이쪽(남쪽)에서 선거를 한다고 하니까 그냥 무단으로 김일성을 만나러 갔어요.

KBS 이인호와 MBC 안광한, 갈 데까지 가보라!

2014년 10월 29일 504

[미디어오늘 972호 사설] 역사란 정말 무섭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올라있는 사람들 중에는 먹고 살기 위해, 혹은 죽지 못해 친일부역을 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 친일부역 인사들은 일제가 망하지 않고, 조선에 대한 식민 지배가 영원히 계속될 것으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일제의 ‘개돼지’ 노릇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일제 35년이란 세월은 질곡에 시달려 온 힘없는 민초들의 입장에서는 지긋지긋하게 길고도 긴 시간이었겠지만, 한 사람의 삶을 온전히 ‘기억하고, 기록하고 심판하는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짧은 시간일 수 있다. 독재 정치도 마찬가지다. 어떤 독재도 오래 가지 못한다. 그래서 지식인이나 요직에 있었던 사람일수록 역사와 기록을 더욱 무서워할 수 밖에 없다. 지금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두 공영방송의 수뇌부는 역사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매우 안타깝고 가련하다. 특히 역사학을 공부했다는 이인호 KBS 이사장은 측은하기 짝이 없다. 그녀가 KBS 이사와 이사장직에 오른 진짜 이유와 목적은 갈수록 더 분명하게 드러나겠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는 “갈 데까지 갔다.” 이인호 이사장이 한 발언 중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 우리 헌법과 헌법정신을 송두리째 부인한 것은 결코 ‘용서받지 못할 범죄행위’다. 우리 헌법 전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상해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을 명시한 이 전문은 종신 대통령이 되기 위해 여러차례 헌법을 뜯어고친 독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