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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학문의 어머니’… 공교육서도 뒷전 안타까움”
ㆍ‘10대와 통하는 독립운동가 이야기’ 펴낸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안중근 의사가 ‘안과 의사’냐고 묻는 학생도 있답니다. 모든 학문의 어머니인 역사를 알아야 내일을 열어갈 수 있습니다.” 최근 <10대와 통하는 독립운동가 이야기>(철수와영희)를 펴낸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71·사진)은 14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이 평화헌법을 내팽개치고 군국주의로 회귀하려는 이때야말로 독립운동의 정신과 역사를 되새겨야 한다”며 “우리의 미래인 청소년들이 역사를 너무 등한시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역사를 외면하는 데는 공교육도 일조하고 있습니다. 입시가 우선이다 보니 역사 교육은 뒷전일 수밖에 없죠. 더군다나 아이들은 TV나 영화 속 허구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진실을 가르쳐야 합니다.” ▲ “친일세력은 역사의 죄인인데 보수정권 들어 개국공신 왜곡 아베정권 도발 경각심 가져야” 그가 말하는 진실이란 구체적으로 뭘까. 김 전 관장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들어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이 사학계의 핵심 멤버가 되면서 친일파를 건국의 일등공신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며 “우리 역사에서 친일세력은 죄인에 불과하다. 주인공은 엄연히 독립운동가들”이라고 했다. “내년이 광복 70주년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지금 한·일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동북아 정세는 소용돌이 치고 있습니다. 특히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결정해 노골적으로 군사대국화의 야욕을 드러내는 아베 정권의 도발에 우리 국민은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김 전 관장은 이를 위해 역사 용어부터 올바르게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요즘 ‘일제시대’를 ‘일제강점기’로 고쳐 쓰는데 일제의 침탈 야욕을
강제동원 피해자들 “아픈 과거 똑똑히 기억해야지”
광복 벌써 69주년인데… 피해자들 대부분 여전히 고통 속에 ▲사진=이미지비트 제공 “내가 군에 입대해서 3년 복무를 마치고 제대하려니까 ‘전쟁이 났는데 무슨 제대냐‘는 거야. 그래서 제대를 못 하고 바로 동남아로 파견됐지” 김종민(96) 씨는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네가 전쟁터로 가지 않는다면 가족들을 모두 만주로 보내 노역을 시키겠다‘는 일본의 협박에 동원명령을 속절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동남아의 전쟁터에 도착한 김 씨는 가족은 생각조차 나지 않을 만큼 비참한 현실과 맞서 싸워야만 했다. “섬에 도착했는데 얼마 안 있어 미군이 보급로를 차단했어. 식량 보급이 안 되니까 소나 말 같은 가축도 다 잡아먹고 나중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초근목피‘, 말 그대로 풀뿌리 이런 것들을 캐 먹으면서 전쟁을 했지. 열대지방이니 열병도 무서웠어. 앓으면 1주일 내로 죽어. 다 죽어 나왔어. 이 병에 걸리면 오줌이 새카맣게 나와” 하루 3번씩 300대의 전투기를 동원해 폭격을 퍼붓는 통에 하루하루가 그야말로 살얼음판이었다. 김 씨는 폭격 때문에 땅속에 파묻혀 2시간을 갇혀있다가 구사일생으로 구조된 적도 있었다. 그때의 후유증으로 치아와 척추가 다 망가졌다. 김 씨는 자신을 전쟁터로 끌고 온 일본이 이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일본이 전쟁에서 이겨야만, 자신도 살아서 집으로 갈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일본이 밉고 그런 게 그때 당시에 어디 있어. 그저 살아야 하니까, 살아서 (고향으로)
“대학 설립 업적 크다” vs “그래도 친일파는 안돼”
<앵커>광복절 관련 소식 몇 가지 더 전해드리겠습니다. 설립자의 동상 설치 문제가 논란이 되는 대학이 적지 않습니다. 대학 설립자라도 친일 경력이 있으면 동상을 세울 수 없다는 학생들의 반발 때문입니다.박아름 기자가 취재해봤습니다.<기자>한국외대 용인 글로벌캠퍼스 교정에 세워진 설립자 김흥배 박사의 동상입니다.개교 60주년을 맞아 넉 달 진통 끝에 지난 1일 기습적으로 설치됐습니다.친일 행적을 문제 삼은 학생들의 반대 때문입니다.학생회는 군복 공장을 운영하고 전쟁지원단체에 가담했던 설립자의 친일 행적을 근거로 철거를 요구했습니다.[김 범/한국외국어대학교 총학생회장 : 친일 잔재는 전혀 언급도 없이 이 동상을 세운다는 것. 그리고 이 동상이 대한민국 고등교육기관에 들어와서 친일 행적을 어떻게 보면 기릴 수 있는…]재단은 친일 행적 논란보다 대학을 세운 업적이 더 크다는 입장입니다.[학교 재단 관계자 : 돈을 벌어서 본인이 다른 목적으로 쓴 게 아니라 전 재산을 여기에 투자해서 학교를 세웠기 때문에…]대학마다 학교설립에 공이 있는 인물을 동상으로 만들어 기리고 있습니다.하지만 뒤늦게 친일 행각이 드러나면서 갈등을 겪고 있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지난해 이화여대에서는 김활란 초대 총장 동상 철거 운동이 벌어졌습니다.학도병 모집을 지원한 반민족 친일 행적 때문입니다.고려대 김성수, 연세대 백낙준, 서울대 현제명, 모두 친일파로 공인됐습니다.[방학진/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 : 동상 설립 당시에는 그 인물들에 대한 친일 행적 밝혀지지 않았던 측면이 있다고 한다면 요즘에 와서는 그 인물에 대한 친일 행적이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에 그 부분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이 더욱더 교육적이라고
[2014.08.14] 8.14 몽양 여운형선생이 1945년 8월 15일 가장 바빴던 이유
라디오백년전쟁: [2014.08.14] 8.14 몽양 여운형선생이 1945년 8월 15일 가장 바빴던 이유 ☞[팟빵]: http://www.podbbang.com/ch/6647?e=21466150 ☞[다운]: http://down-cocendn.x-cdn.com/data1/guitarkirk/140813bnjj.mp3
[단독] 역시 이순신家… ‘종손’들도 대대로 일본에 맞섰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가의 ‘항일’ 역사에 잃어버린 퍼즐 한 조각이 더해졌다. 충무공의 13대 종손 이종옥 선생이 독립군 결사대로 활동하다가 옥고를 치렀던 사실이 14일 민족문제연구소의 발표로 확인됐다. 충무공 후손들이 독립운동에 헌신한 것은 학계에서 알려진 사실이지만 ‘종손’의 적극적인 항일 무장항쟁이 입증된 것은 처음이다. 충무공이 임진왜란에서 일본군을 격파한 지 300년이 지난 시점에 후손들이 다시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무장투쟁을 벌인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 이준식 연구위원은 “충무공 집안이 대대로 일본에 맞서 우리나라를 지켜왔다는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역사적 사실이 드러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1887년 9월 충남 아산에서 태어난 이종옥 선생은 항일 무장투쟁의 본거지인 신흥무관학교를 2년간 다닌 뒤 1914년 3회로 졸업했다. 신흥무관학교는 충무공의 12대손 이세영(1869∼1938) 선생이 교장을 지냈던 곳이었다. 이종옥 선생은 1914년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이 백두산 서편 고원에 건설한 독립운동 기지인 백서농장 간부를 지내며 항일 무장투쟁을 이어갔다.만주에서 항일 무장투쟁의 기초를 닦은 이 선생은 1919년 6월 독립군 50여명으로 조직된 ‘광복단 결사대’에 몸담아 경성으로 들어왔다. 1919년 6월 21일자 신한민보에 따르면 이 선생을 포함한 11명은 총기 등으로 무장한 채 친일 부호들을 대상으로 군자금을 모집하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수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일본 경찰의 지속적인 감시를 받던 이 선생은 1923년 12월 독립운동 시국사건에 또 한번 휘말렸다. 아산 온천리경찰서 고등계에 체포된 이 선생은 경성으로 압송돼 고초를 당했다. 이후 아산으로 돌아온 이 선생은 1930년 자택에 ‘덕의학교’를 세워
[단독] 이순신 장군 13대 종손도 항일무장투쟁 첫 확인
▲ 민족문제연구소가 14일 공개한 1919년 6월 21일자 신한민보 기사.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13대 종손 백암 이종옥 선생이 독립군 결사대 활동을 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른 내용이 담겼다. 김지훈 기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13대 종손 백암(白巖) 이종옥(1887∼1941) 선생이 항일 무장투쟁을 벌인 사실이 처음 확인됐다. 독립군 양성 학교인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한 이 선생이 독립군 결사대 활동을 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른 사실을 기록한 당시 신문이 발견된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14일 이 선생의 행적을 다룬 신한민보(新韓民報)를 공개했다. 신한민보는 일제 강점기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발간된 교민단체 ‘대한인국민회’의 기관지다. 신흥무관학교는 일제 강점 초기 최대의 독립군 기지였다. 우당 이회영 선생 등이 1911년 중국 지린성 유하현에 설립했다. 신한민보는 1919년 6월 21일자 3면에 ‘만주에서 하와이에 도착한 암호로 전달된 통신에 의지하건대 길림성에 있는 우리 독립군 50여명의 결사대를 조직하고 한국 경성에 들어가 부자들로부터 수십만원을 구해 군비를 조달하다가 왜놈에게 빼앗기고 11명의 독립군이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이어 ‘이들은 안경식, 차병제, 손창준, 리기원, 리해삼, 리종옥, 주국영, 리우영, 박기제, 송동호, 조규수 선생이다. 리종옥씨는 수군통제사 충무공의 종손이고 조규수씨는 십수년간 조국과 원동(연해주) 각처에서 교육과 정치 방면으로 국가 민족에 희생적으로 노력해온 열렬한 애국지사’라고 보도했다. 당시는 국내 언론은 일제의 탄압에 극도로 위축된 상황이어서 독립운동 소식을 다루지 못했다. 덕수이씨 충무공파 종친회 측은 “족보 확인 결과 이 선생이 충무공의 13대 종손이 맞으며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 15일부터 ‘8.15 특별전시’
제69주년 광복절을 맞아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엿볼 수 있는 특별전시 ‘8.15 그 감격과 환희의 기억 뒤편’이 열린다.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이 주관하는 이번 전시는 오는 15일 오후 3시 개막식을 시작으로 12월 15일까지 경기도 양평군 소재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 정관재에서 개최된다.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은 14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전시는 8.15 당시의 감격과 환희에 대한 현재의 기억과, 그 뒤편에 있었던 8.15 전후 우리 역사를 재조명함으로써 8.15의 참된 의미를 되새기고자 마련했다”고 취지를 밝혔다. 이번 전시는 일제시대 말기와 8.15 전후의 사진, 문서, 생활용품 등 총 60여 점의 자료를 3부로 나누어 전시한다. 제1부는 공출영수증, 징용고지서, 임시소집영장 등을 통해 일제 말의 전시총동원체제 하에서 우리 민족이 겪은 고난을 살펴보고 제2부는 여운형 선생이 조직한 조선건국동맹, 대한민국임시정부과 한국광복군, 조선독립동맹과 의용군 등의 사진을 통해 해방 직전 국내외 독립운동 진영의 활동을 되돌아본다. 제3부는 8.15 당시 환호하는 군중들의 사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전단, 통치권 이양 문서 등을 전시해 당시 역사의 전개과정을 살펴본다. (사)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회장 이부영)가 주최하고 경기도와 양평군이 후원하는 이번 전시는 ‘2014년 경기도 공시립 박물관.미술관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열리며,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자료를 협찬했다. 관람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가능하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문의처는 031) 772-2411, www.mongyang.go.kr. <2014-08-14> 통일뉴스 ☞기사원문: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 15일부터 ‘8.15 특별전시‘
[위안부 보고서 54]4. “정부가 한 게 뭐 있소, 일본 눈치나 봤지”
1991년 8월14일 피해자 첫 공개증언 뒤 23년…위안부 대책은 아직도 그날에 멈춰있습니다 ▲김복동 할머니가 천천히 담배를 피우면서 지나간 이야기를 하나둘씩 꺼냈다. 인터뷰 초반 “했던 얘기 또 물으면 짜증나지 않겠냐”며 인상을 쓰시던 할머니는 이내 흘러간 세월과 다가올 세월에 대해 이야기했다. 백소아 기자 sharp2046@ [아시아경제 김동선 기자, 김민영 기자, 김보경 기자, 주상돈 기자] “눈 감기 전에 한을 풀어달라.” 1991년 오늘(8월14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를 찾은 고(故) 김학순 할머니는 힘겹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놨다. 고통스런 과거사가 떠오르는 듯 중간중간 말을 잇지 못했던 김 할머니의 용기 있는 발언으로 그간 묻혀 있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수면 위로 떠올랐다. 김학순 할머니가 공개 증언에 나선 지 딱 23년이 지났지만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바라는 일본의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은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한 발 후퇴한 양상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6월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1993년 고노(河野)담화를 재검토한 보고서를 발표해 한국 국민과 할머니들의 공분을 샀다. 일본 정부의 이런 행태는 일정 부분 한국 정부의 책임도 있다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활동가들은 지적한다. 한일관계가 냉각되길 바라지 않는 한국 정부의 소극적 문제 제기가 해결은커녕 일본의 적반하장식 태도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그간 우리 정부의 활동을 짚어본다. ◆일본에 사과 요구할 때마다 발목잡는 한일청구권 협정 해방 이후 한국 정부는 최소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 밖이었다. 그러다
‘작은 외침 모여 큰 울림으로’…일제 만행 고발 만화전
【앵커멘트】 광복절을 앞두고 시사 만화가 33명이 일제의 만행과 일본의 군국주의 회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만화전‘을 열었습니다. 한 컷 만평에 담긴 ‘촌철살인‘의 작품들은 다음달 프랑스 국제시사만화전에서 세계인들에게 선보일 예정입니다. 유재명 기자입니다. 【리포트】 불길에 휩싸인 교회가 쓰러지고, 원혼들의 손에는 태극기가 들려 있습니다. 3.1 만세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한 마을의 남성 23명을 교회에 가두고 총살한 뒤 불을 지른 화성 ‘제암리 학살 사건‘. 일제의 무차별적인 폭력 탄압을 상징하는 작품들이 전시장 머리를 장식했습니다. 【인터뷰】이수민/경기도 화성시 (화면 분할) “도저히 만행을 용서할 수가 없어요. 언제쯤 정신을 차릴지 모르겠고….” 20년 넘게 사과하라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요구를 왜곡하고 있는 일본. 할머니의 얼굴에 난 만행의 생채기는 아물지 못했건만…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 참배, 집단적 자위권 인정 등 노골화되는 일본의 우경화를 한컷 만평에 담아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전시회에는 박재동, 김용민 등 국내 대표 시사만화가 33명의 작품 50점이 선보입니다. 일본 아사히신문 주간도 2점을 출품했습니다. 【인터뷰】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 “아시아나 해외에서는 우리의 아픔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해외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만화라고 하는 매체를 통해서 우리의 아픔을 알리고….” 일제 만행 고발전은 오는 24일까지 동탄문화센터에서 진행된 뒤 오는 11월 말까지 화성지역을 순회하며 계속될 예정입니다. 【스탠딩】유재명 이번 전시 작품들은 다음달 말 프랑스에서 열리는 국제시사만화살롱에 출품돼 일제의 만행과 군국주의 부활 야욕을 다시한번 전세계에 고발할 계획입니다. OBS뉴스 유재명입니다. <2014-08-13> OBS뉴스
영화 상영·태극기 축제·패널 전시회… 광복절 행사 다채
제69주년 광복절을 경축하는 기념행사가 부산 곳곳에서 다채롭게 진행된다. 부산시는 오는 15일 오전 9시 부산 동래구 충렬사에서 호국영령에 대한 참배 의식을 시작으로 오전 10시께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광복절 경축식을 개최한다. 용두산공원 33차례 타종식 지자체별 주민 체육대회도 광복회원과 기관 관계자, 시민 등 1천4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인 이번 행사에선 광복절 기념영화가 무료 상영될 예정이다. 용두산공원에서는 이날 오전 11시부터 태극기 축제가 펼쳐진다. 길놀이와 풍물놀이, 태극춤과 태극기를 활용한 플래시몹, 태극공연 등 태극기와 관련된 다양한 전시 행사가 마련돼 있다. 낮 12시에는 시민 2천500여 명이 운집해 태극기 물결행사를 선보이는 동시에 33차례의 타종식이 거행된다. 앞서 지난 9일부터 오는 15일까지 부산시는 시내버스 3천400여 대와 택시 2천여 대를 대상으로 태극기달기 운동을 전개했다. 부산 중구청은 백산기념관 제2전시실에서 15일부터 오는 10월 31일까지 ‘그들, 일제의 심장을 쏘다‘ 패널 전시회를 개최한다. ㈔민족문제연구소의 후원으로 대한광복단의 결성과 활약상을 그림 삽화 패널 30여 점이 공개된다. 관람료는 무료다. 금정구청은 같은 날 오전 9시 만남의 광장 내 태극기 소공원에서 ‘독립유공자와 함께 하는 대형 태극기 게양식‘ 행사를 열 계획이다. 독립유공자들과 대형 태극기를 내걸고 묵념이 끝나면 만세삼창으로 광복절을 기념한다. 광복절 기념 주민 체육대회도 지자체별로 개최된다. 북구 화명생태공원 내 화명운동장에서는 주민 600여 명이 모여 ‘광복절 기념 구민 축구대회‘가 열린다. 대저2동 등 강서구 관내 6곳에서는 ‘8·15 경축 주민체육대회‘도 개최된다. 기장군 정관면 청년회원 1천여 명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