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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경술국치 104주년…잊혀져가는 치욕의 역사

2014년 8월 30일 483

<앵커>104년 전 오늘(29일)은 일본이 우리 국권을 침탈한 경술국치일입니다. 광복절과 달리, 달력에 표시조차 안 돼 있습니다. 관련된 유적은 방치돼 있습니다. 물론 수치스러운 역사이지만, 다시는 그런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이 날을 오히려 더 기억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뉴스 인 뉴스, 박아름 기자입니다. <기자>서울 남산에 자리한 이곳은 104년 전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일본 통감 데라우치가 조약을 맺은 곳입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주권을 빼앗긴 경술국치의 현장인데, 지금은 아무 건물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흔적이 유일하게 하나 남아 있다고 하는데, 어떤 상태인지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사람들이 쉬어가는 디딤돌로 보이는데, 알고 보면 경술국치 당시 이곳에 세워져 있던 일본 공사의 동상 기반석입니다. 보시다시피 아무런 표지판도 없고 설명도 없어서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이순우/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하야시라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일본 공사로 근무했던 사람이거든요. 을사늑약 당시에 조약 당사자라는 의미도 있고요.] 건물터에는 경술국치 100주년을 맞아 지난 2010년 민간단체가 세운 비석만 하나 놓여 있습니다. 정부나 시 차원의 관리가 전혀 안 되니, 역사적 장소라는 걸 알기 어렵습니다. [김인영/전북 전주: 그냥 쉬는 공간 아니에요? (역사적 배경이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드나요?) 여기가요? 아뇨, 모르겠는데요.] 광복과 달리 ‘국치‘에 대한 역사는 거의 잊혔습니다.민간연구소에서 식민 시대 유물이나 친일 행적 자료를 모으고 있지만 전시할 공간은 없습니다. 중국은 일제 침략을 받았던 7월 7일을 대대적으로 기립니다.

‘친일인명사전’ 갖춘 공공도서관 겨우 15%

2014년 8월 30일 502

  ▲지난해 11월8일 서울 효창동 효창공원 안 백범 김구 묘역에서 열린 발간 국민보고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책에 수록된 친일 부역자의 이름 등을 확인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전국 778개 공공도서관 중 118곳에 불과 한권당 30만원…2억 예산이면 비치 가능 “내년 광복 70주년 맞아 보급 확대해야”   예산 부족으로 공공도서관 10곳 중 8~9곳에는 친일 인사를 총정리한 ‘친일인명사전’이 비치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국회 교육문화관광체육위원회 소속인 조정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올해 8월 말 기준으로 전국 778개 공공도서관 가운데 친일인명사전이 있는 곳은 15.2%인 118곳에 불과하다. 지역별로는 대전이 22개 도서관 중 6곳에 구비돼 가장 높은 비치율 (27.3%)을 나타냈다. 전남(25.9%), 경남(24.5%), 부산(24.1%) 등도 비교적 비치율이 높았다. 그러나 세종시에는 한 권도 비치되지 않았고 전북(3.9%), 제주(5.3%), 경북(6.6%) 등도 비치율 매우 낮았다. 지역의 대표적인 도서관인 광주중앙도서관, 경기도립중앙도서관, 전남도립도서관에도 친일인명사전이 단 한 권도 없었다.   친일인명사전은 2009년 11월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파 청산’을 내걸고 발간한 서적으로 그동안 우리 사회의 역사 문제 인식에 큰 영향을 끼쳐온 것으로 평가받아왔다.   공공도서관이 친일인명사전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는 건 예산 부족 탓이다. 공공도서관은 해당 지자체가 마련해준 도서구매 산으로 필요한 책들을 구매하는데, 친일인명사전의 가격은 한 권당 30만원으로 비교적 비싸기 때문이다.   조정식 의원은 “전국 공공도서관이 친일인명사전 한 질씩 사는 데 드는 예산은 2억원에

‘대전 평화의 소녀상’ 건립 추진위원회 발족

2014년 8월 28일 392

2015년 3월 1일 제막 목표로 성금 모금 등 추진 ▲  대전지역 43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대전 평화의 소녀상‘ 건립 추진위원회가 28일 발족했다. 대전시민의 한반도 평화의지를 모아 ‘대전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가 발족했다.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대전본부와 민족문제연구소대전지부, 세상을바꾸는대전민중의힘 등 대전지역 43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대전 평화의 소녀상 건립 시민추진위원회(아래 추진위)’는 28일 오전 대전시의회 대회의실에서 결성 기자회견을 열었다. 추진위는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배의 고통을 잊지 않고 기억하면서 일본의 재무장을 반대하고 한반도 평화실현을 원하는 대전시민의 뜻을 모아내어 그 상징적 의미의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들은 2015년 3월 1일에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을 갖는다는 목표를 세우고 사업비(약 8000만 원)와 부지 마련을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현재 부지는 서대전시민공원이나 관사촌 등이 거론되고 있으나, 대전시와 협의를 거쳐 확정할 계획이다. 추진위는 또 이러한 대전시민의 뜻을 모아내기 위해 ‘한미일 군사동맹과 일본 군국주의 부활이 한반도 평화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주제로 오는 9월 30일 김종대 디펜스 플러스21 편집장을 초청하여 강연회를 열고, 언론 홍보와 대시민 캠페인, 시민모금 운동, 문화예술제, 대전지역 위안부 피해자 역사기록 백서 발간 사업 등을 펼쳐나갈 예정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내일은 없다“ 이들은 이날 결성 선언문을 통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내일은 없다는 것은 역사가 우리에게 준 교훈“이라며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배는 우리민족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과 희생을 안겨줬다, 특히 일본의 침략전쟁의 야만성과 고통의 상징인

[사설] 정략적 ‘한국사 국정화’ 작업, 이쯤에서 접자

2014년 8월 28일 339

?   교육부가 26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의견을 듣는다는 명목으로 토론회를 열었다. 교육부로서는 국정화 논의에 시동을 걸기 위해 애써 마련한 자리였겠지만 결론적으로 ‘본전’도 못 뽑은 토론회가 되고 말았다. 참석자 대부분이 ‘국정화는 시대 역행’이라고 입을 모았기 때문이다. 이날 발제 및 토론자로 참여한 13명의 전문가 가운데 ‘국정화 찬성’ 쪽으로 기운 이는 세 명뿐이었다고 한다. 그나마도 여러 가지 조건을 내건 제한적 동조에 가까웠다.   교육계의 기류는 더 싸늘하다. 최근 전국역사교사모임과 역사교육연구소가 전국 초·중·고 역사교사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7%가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 전환 시도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이 정도의 비율이라면 국정화 추진은 이제 그만 포기할 때가 됐다.   국정화의 문제점을 꼽자면 열 손가락도 모자란다. 하지만 이날 토론회에서 ‘분단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옹호론이 나왔다니 그 점만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현재 국정 역사 교과서를 사용하는 나라는 러시아, 베트남과 북한 정도다. 국정화를 주장하는 이들은 우리가 북한보다 성공한 가장 큰 이유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들고 있다. 우리 국민이 내 나라를 소중히 여기는 것도 우리가 북한보다 더 자유롭고 민주적이며 풍요롭기 때문일 것이다.   국정 교과서로 배우는 학교 수업은 그저 주입식, 암기식 교육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역사 고유의 성찰 기능은 사라진다. 다양한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비판적 사고 능력도 키워지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전체주의를 혐오하면서도 역사 교과서 발행 체제만은

노래 ‘독도는 우리땅’이 왜색음계라고?

2014년 8월 27일 774

오늘 광주서 ‘친일·항일음악회’ 음악 통해 국치역사 기억 취지 ‘요나누키’는 7음계 가운데 ‘파’와 ‘시’가 빠진 일본식 5음 음계로, 이른바 ‘뽕짝 리듬’(두 박자 리듬)을 말한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 고유의 음악적 요소들이 사라지고 ‘왜색 장단’이 파고들었다. 초등학교 입학해 맨 처음 배운 노래인 ‘학교종’이나 ‘퐁당퐁당’ 등도 일본식 음계와 장단을 따른 노래다. 애국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독도는 우리땅’이나 ‘서울에서 평양까지’도 마찬가지다. ‘국치 104주년 기억 친일·항일음악회’가 28일 저녁 7시 광주시 남구 노대동 물빛호수공원에서 열린다. 국치일은 부끄럽게도 일본에 주권을 빼앗긴 날(1910년 8월29일)이다.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가 클래식 연주자들의 모임인 ‘꿈꾸는 예술(광장음악회)’의 도움을 받아 이번 음악회를 마련했다. 김순흥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광주대 교수)은 “수많은 일제 흔적 가운데 우리 주변의 생활에서 아주 가깝게, 그리고 날마다 맞닥뜨리는 음악을 통해 국치 104년의 역사를 기억하고 반성하고자 하는 취지의 행사”라고 말했다. 음악회의 제목은 ‘박수를 칠 수 없는 노래, 앙코르를 할 수 없는 연주’이다. 일제 강점기 불렸던 친일 노래, 친일 음악가의 가곡, 친일 문인의 시로 작곡된 가곡들을 들려준다. ‘혈서지원, ‘애수의 소야곡’, ‘목포는 항구다’, ‘희망의 아침’, ‘국화 옆에서’, ‘선구자’, ‘희망의 나라’ 등이다. 현제명, 홍난파, 김성태, 조두남, 안익태, 박시춘, 남인수, 반야월, 백년설, 손목인 등 41명은 친일인명사전에 올라 있는 음악인들이다. 김순흥 교수는 “우리가 자주 부르는 ‘선구자’는 독립운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일제에 항거했던 음악가들이 지은 노래와 항일 문인들의 시로

“박정희 혈서는 날조” 주장 강용석·정미홍씨, 민족문제연 “허위사실 유포·명예훼손” 고소

2014년 8월 27일 4428

ㆍ각 3000 만원씩 손배 소송도 민족문제연구소가 ‘박정희 혈서(血書) 사건’을 날조라고 주장한 강용석 전 국회의원(왼쪽 사진)과 정미홍 더코칭그룹 대표(오른쪽)를 경찰에 고소했다. 연구소는 “2012년부터 최근까지 박 전 대통령의 혈서와 관련된 허위사실을 퍼뜨리며 연구소를 비방한 혐의(명예훼손 등)로 강 전 의원과 정 대표, 누리꾼 9명을 25일 서울 동대문경찰서에 고소했다”고 26일 밝혔다. 앞서 연구소는 지난달 1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강 전 의원과 정 대표, 누리꾼 1명을 대상으로 각 3000만원씩의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했다. 연구소는 1939년 ‘만주신문’ 사료를 발굴해 “박 전 대통령이 일제시대 만주국 군관으로 지원하며 충성을 맹세하는 혈서를 썼다”고 2009년 밝혔다. 하지만 강 전 의원은 2012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 회의에서 “1980년대 중반 갑자기 박 전 대통령이 친일파란 얘기가 등장하고 혈서를 썼다는 날조 스토리가 등장하는데, 이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세운 민족문제연구소가 퍼뜨린 것이다. 이 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을 만들어 대한민국의 웬만한 우파를 친일파로 몰아버렸다”고 말했다. 정 대표와 다른 누리꾼들은 강 전 의원의 주장과 유사한 내용의 글을 인터넷과 SNS에서 직접 작성하거나 퍼나른 혐의를 받고 있다. 연구소는 “박 전 대통령의 혈서는 역사적 사실인데, 피고소인들은 연구소를 이념적으로 공격하기 위해 허위사실을 유포했다. 허위 글들이 인터넷과 SNS에서 퍼지는 것을 묵과할 수 없어 고소와 함께 소송을 제기했다”고 말했다. 조세열 사무총장은 “민족문제연구소는 연구자들이 창립발기인으로 모여 조직한 학술단체로 박원순 시장과 아무 관계가 없다. 객관성과 정확성이 생명인 연구단체를 확인되지 않은 정보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본전도 못 찾은 교육부 토론회

2014년 8월 27일 1004

ㆍ“정권 맘대로 못 바꾸게 검정제 유지”… 대부분 국정화 반대 목소리 교육부가 26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및 발행체제’에 대한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 개최한 토론회는 민심의 싸늘한 주소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교육부로서는 국정화 논의에 불을 지피기 위한 의도로 개최한 토론회였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시대역행’이라는 반응이 압도적이었다. 국정화 추진의 ‘총대’를 멘 교육부로서는 ‘본전’도 못 뽑은 토론회가 됐다는 평가다. 이날 경기 과천 국사편찬위원회(국편)에서 열린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 개선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는 처음부터 교육부의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분위기가 흘렀다. 대부분의 패널들은 현 교과서 검정제의 보완·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했지만, 해결 방안이 국정화라는 것에 동의하는 의견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부분의 패널은 “검정제가 문제가 있다고 국정화를 도입하는 것은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는 것”이라고 했다. ▲교육부 주최로 26일 경기 과천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열린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 개선 토론회’에서 민족문제연구소와 전국교직원노조 등 역사정의실천연대 회원들이 교과서 검정체제 전환에 반대하는 푯말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 김정근 기자 국편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위원장을 지낸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이익주 교수는 “국정화를 할 경우 역사교과서 내용이 (정권의 입장에서) 정책적으로 강조되고 이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예로 1974년 국정교과서가 10월 유신의 발생 배경을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대처하고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달성하고자’라고 설명한 대목을 들었다. 이 교수는 “역사교육이 한 정권의 입장을 대변할 경우 5년마다 내용이 바뀔 텐데, 결과적으로 한국사 전체의 침체로 귀결될 것”이라고

기억투쟁의 현장, ‘세월호 기억저장소’ 문 연다

2014년 8월 27일 607

“저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잊히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잊히고, 우리가 잊히는 것입니다. 가장 큰 위로는 ‘잊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잊지 않겠다고 위로해 주십시오. 한 달 뒤에도 잊지 않겠습니다. 1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말씀해 주십시오.” – 유경근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 대변인 기억은 잊으려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특히 세월호 참사와 관련 ‘잊지 않겠다‘는 약속은 기억을 지우려는 권력에 대항할 때만 지켜질 수 있다.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보다 더 큰 슬픔은 기억 속에서 잊히는 것일 테니까.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행동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한 ‘기억투쟁‘의 결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하루라도 빨리 잊히기를 학수고대하는 권력에 맞서 역사는 기록된 만큼 바뀐다는 믿음 속에 ‘세월호의 기억‘이 ‘세월호의 기록‘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단원고 인근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664번지 삼두상가 203호에 터를 잡은 ‘세월호 1호 기억저장소‘가 최근 단장을 끝내고 8월 중으로 문을 연다. 망각에 맞서는 기억의 장소 기억저장소는 처음부터 끝까지 시민들의 성금, 전문가의 재능기부, 지원봉사로 만들어졌다. 여기에 아름다운재단이 보증금과 월세를 지원하고, 건축가들이 재능기부를 해 내부 공사를 마쳤다. ▲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664 삼두상가 203호에 마련된 ‘세월호 1호 기억저장소’가 공간 이지미 작업을 끝내고 이달 중 문을 연다. 기억저장소는 시민들의 성금, 전문가의 재능기부, 지원봉사로 만들어졌다. ▲  세월호 1호 기억저장소 벽면에 만든 원통에는 세월호 희생자 추모 메시지와 물품

[책소개]『20세기 한국사 시리즈』

2014년 8월 26일 585

body,table,td,input,select,textarea{font-family : verdana,굴림;font-size :9pt;line-height : 140%;}img{border : 0;}A:link {text-decoration:none; color:black;}A:visited {text-decoration:none; color:black;}A:hover { text-decoration:none; color:#3E8FFC;}P{margin-top:2px;margin-bottom:2px;} “20세기는 민주주의와 물질적 번영이라는 이성의 얼굴과 함께 전쟁, 국가폭력, 자연환경 파괴라는 광기의 얼굴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이 ‘극단의 시대’에 한국 사회는 식민지화, 분단, 전쟁, 독재의 비극 속에서도 경제성장과 민주화라는 위업을 이루어냈다. 다만 그 경제성장은 무한경쟁을 동반한 인간성 상실의 과정이기도 했으며, 민주화는 시민의 실질적 참여 없이 정치갈등이 반복되면서 그 빛이 바래고 있다. 과연 오늘날 한국의 자화상을 ‘한강의 기적’에서 찾을 것인가, 아니면 세월호의 참상에서 찾을 터인가? 이 두 가지 모습 모두가 우리 자신의 부인할 수 없는 실체이며, 그 두 가지는 사실상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하나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20세기 한국사> 시리즈는 한국 사회가 겪은 지난 한 세기의 명암을 가감 없이 실사구시의 관점에서 밝히는 데 일차적인 목적을 두었다. 이 시리즈가 왜곡된 역사적 사실을 바로잡아 있는 그대로 전달함으로써, 독자 스스로 20세기 한국사를 해석하는 데 도움을 주고, 이를 통해 비판적이며 균형적인 역사의식을 가진 시민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기를 기대한다.”   “개항기 이후 오늘날까지의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대중역사서” 지난 20여 년 동안 축적된 근현대사 연구성과를 망라한 획기적인 기획 사실과 정확성을 바탕으로 20세기의 진실을 기록하다   20세기는 한국 역사의 최대 격동기였다. 개항 이후 일제의 폭압을 경험했고, 해방과 더불어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의 비극을 맞았다. 식민지 경험과 전쟁의

김희선 여성독립운동기념회의 위원장 “유관순 열사보다 치열했던 여성독립운동가 많아요”

2014년 8월 26일 289

1만3500 대 220. 2013년 국가보훈처에 등록된 독립유공자의 남녀 숫자다. 남성이 98% 이상, 여성은 2% 미만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 광복운동은 오롯이 남성들의 몫이었을까. 서대문형무소 역사박물관에서는 8월 한 달 동안 매주 토요일 여성 독립운동가와 관련한 세미나가 열린다. 이 행사를 주관하는 이는 국회에서 최초의 여성 정무위원장을 역임한 김희선 전 의원이다. 김 전 의원은 지난 3월 여성독립운동기념회의를 발족하고 위원장으로서 여성 독립운동가 발굴과 재조명, 그리고 기념사업 관련 일로 바쁘다. 올해는 유독 가슴 아픈 일들로 광복절조차 쓸쓸하게 치러지는데, 김희선 여성독립운동기념회의 위원장을 만나 여성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이야기와 한국 정치인들에 대한 쓴소리를 들었다. 여성독립운동기념회의는 어떤 계기로 만들었나요. “국회의원을 그만두고 문익환 목사 기념사업회 일도 하고,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전 국사편찬위원장),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등과 어울려 공부 모임을 해왔어요. 그런데 어느날 이덕일 소장이 일제 식민지 시절 독립운동의 상당수가 가족 단위로 이루어졌는데, 우리가 기억하는 여성 독립운동가는 왜 유관순 한 분뿐이며, 다른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얼마나 묻혀 있는지 아느냐고 물어보더군요. 그리고 국가보훈처에 등록된 독립유공자들의 남녀 비율이 98대 2라는 것도 알려줬습니다. 그분이 권하는 책을 읽고 자료를 보는데 분노와 송구스러움이 겹쳐 온몸이 뜨거워졌습니다. 당장 제주도에 계신 이효재 선생(전 이화여대 교수)을 찾아가 여성 독립운동가를 발굴하는 일을 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너무 늦었지만 정말 중요한 일’이라며 격려해주셨어요. 기념사업회의 취지를 설명하자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최윤정·최선경·홍소연·손희영 실행위원들이 3월 창립대회를 준비해 치렀고, 모두 생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