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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희생자, 야스쿠니 합사는 부당”

2014년 8월 22일 314

‘日 우경화 대응 회의‘ 참석 이시하라 교수 군에 내쫓겨 죽은 오키나와 주민들 일왕 위해 목숨 바친 것으로 둔갑 합사 철회하고 진실 바로잡아야   ▲ 이시하라 마사이에 일본 오키나와 국제대 교수(서울=연합뉴스) 이시하라 마사이에(石原昌家·73) 일본 오키나와국제대 교수. 이시하라 마사이에 교수는 21일 “한국과 오키나와의 역사 문제는 구조적으로 같음에도 일본 정부는 여전히 위안부 문제나 민간인 학살 등 자신들이 전쟁 중 저지른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라면서 양국 민간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서울 국회도서관서 열리는 ‘일본의 우경화와 야스쿠니 문제 대응을 위한 국제회의’ 참석차 전날 한국을 찾았다. “일본군에 내쫓겨 억울하게 죽은 오키나와 주민들이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것은 부당합니다. 무단 합사를 철회시키고 진실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21일 동북아역사재단·민족문제연구소 등이 서울국회도서관에서 함께 연 ‘일본의 우경화와 야스쿠니 문제 대응을 위한 국제회의‘에 참석한 이시하라 마사이에(73·사진) 일본 오키나와국제대 교수는 아베 신조 정권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규탄해야 하는 이유를 이같이 밝혔다. 이시하라 교수는 전쟁 동원과 희생자들의 무단 합사 등 한국과 비슷한 아픔을 가진 오키나와 역사를 소개했다. 그는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 희생주민에게 잘못을 인정하는 ‘보상‘ 대신 전사한 일본군을 도와주는 ‘원호법(전상병자전몰자유족등원호법)’을 적용해 지원했다“며 “일본군 때문에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마치 일본군을 위해 희생한 것처럼 속임수를 쓴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시하라 교수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이처럼 오키나와 희생주민 5만4,000여명을 전투 참가자에 준해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신사에 합사했다. 희생자들이 일왕을

“일본, 야스쿠니 참배 중단해야” 한중일 국제회의

2014년 8월 21일 471

(서울=연합뉴스) 윤보람 기자 =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의 우경화와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중·일 민간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동북아역사재단과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유기홍 의원실은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동아시아 평화와 야스쿠니 신사‘란 주제로 국제회의를 열어 그동안 야스쿠니 문제를 해결하고자 각지에서 벌인 활동의 성과를 점검하고 대응방향을 논의했다. ‘동아시아 평화의 관점에서 바라본 일본 우경화와 야스쿠니 신사‘란 주제로 열린 1부 행사에서 우치다 마사토시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일본위원회 공동대표는 “아베 정권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역대 일본 정부의 공식 견해에 반하는 것이며, 도쿄재판을 부정하고 전후 세계 평화질서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중국 지린(吉林)성 당안관(기록보관성)의 짜오위지에 씨는 “지린(吉林)성 당안관에 보관된 10만권 분량의 일본 중국침략 기록을 연구한 바에 따르면 야스쿠니 신사는 정치·군·전쟁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고 침략 확장을 숭배하는 군국주의와 얽혀 있다“고 지적했다.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한국위원회 공동대표인 이석태 변호사는 “야스쿠니 이데올로기에 따른 일본의 급격한 우경화는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한다“며 “이를 막기 위한 동아시아 시민사회의 상호 교류와 연대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야스쿠니반대 운동의 성과와 과제, 그리고 전망‘이란 주제로 진행된 2부 행사에서는 이시하라 마사이에 오키나와국제대학 명예교수, 기무라 요고 아베수상야스쿠니참배위헌소송 변호단장, 김영환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한국위원회 사무국장 등이 각지의 활동 성과와 현안 등을 보고했다. 이날 회의 마지막 순서로는 야스쿠니 신사에 무단으로 합사된 징용 피해자의 유족들이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이들은 아베 정권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규탄하고 무단 합사를 철회하라고

동아시아 평화와 야스쿠니 신사 국제회의 열려

2014년 8월 21일 379

일본 우경화와 야스쿠니 문제 대응을 위한 국제회의 21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동아시아 평화와 야스쿠니 신사 국제회의가 열렸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야스쿠니 신사의 문제점에 대해 논의하고 야스쿠니신사의 무단 합사 철회, 일본 각료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중단 요구서를 발표 했다.  이번 행사는 유기홍 의원, 김학준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이해학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한국위원회 공동대표의 개회인사로 시작됐다.  이후 설훈 국회의원, 김영진 전 농림부장관, 카오친 쑤메이 대만입법의원이 축사를 전했다.  이어서 일본 각료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중단과 야스쿠니신사의 무단 합사 철회 요구 성명 발표로 개회식을 마쳤다.  다음 순서인 국제 심포지엄 1부에서는 ‘동아시아 평화의 관점에서 바라본 일본 우경화와 야스쿠니 신사‘ 라는 주제로 ▲일본의 시점 : 우치다 마사토시(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일본위원회 공동대표) ▲중국의 시점 : 짜오위지에(중국 길림성 당안관) ▲한국의 시점 : 이석태(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한국위원회 공동대표)가 각국에서 바라본 야스쿠니신사에 대한 의견을 발표했다.  2부 국제 심포지엄에서는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오키나와 이시하라 마사이에 오키나와국제대학 명예교수, 야구치 오바타 다이사쿠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야마구치사무국, 도쿄 즈시 미노루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도쿄사무국 사무국장, 한국 김영환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한국위원회 사무국장이 야스쿠니 반대운동의 성과와 과제 그리고 전망에 대해 논의했다.  왕팡 중국 길림성 당안관은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실록 인증‘ 을 특별보고 하기도 했다.  한편 이 행사는 국회 유기홍의원실,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한국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이 공동 주최하고 민족문제연구소,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가 공동 주관했다. <2014-8-21> CNN21 ☞기사원문: 동아시아 평화와 야스쿠니 신사 국제회의 열려

친일파 묻은 현충원… 생존 친일파 안장 예약됐다는데

2014년 8월 21일 341

[기획보도] 친일파 묻힌 대전현충원 (중) 현충원에 묻힐 친일파 백선엽·김창규·박원석 씨 친일불구 사후 안장 예정 “이들 숭배하라는 말인가”   국립대전현충원과 ‘친일파’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미 안장된 친일파에 대한 ‘이장 문제’도 큰 논쟁이지만 현재 생존해 있는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국립묘지 안장이 예정돼 있어 이들의 사망과 동시에 이 논란은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20일 대전현충원, 민족문제연구소, 학계 등에 따르면 명확한 수는 아직까지 파악할 수 없지만 친일파의 현충원 안장은 현행법상 제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통설이다. 현재로서 현충원 안장 가능성이 높다고 거론되는 인사들은 백선엽(전 연합참모본부 의장) 씨와 김창규(전 공군참모총장) 씨, 박원석(전 공군참모총장) 씨 등 군경력자 3명이다. 민족문제연구소 측은 이 밖에도 각 계층의 생존 친일 경력자가 적지 않아 ‘얼마든지 추가 인사가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들 중 가장 격렬한 논쟁을 부르고 있는 이는 단연 백선엽 씨. 그는 한국전쟁 중 최초로 평양에 입성한 지휘관이자 다부동 전투 등 굵직한 싸움을 승전으로 이끈 소위 ‘전쟁영웅’이다. 1960년까지 이어진 군 경력에 이어 교통부 장관(1969~1971), 국영기업체 사장 등 공직을 거친 유명인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간도특설대(조선인이 다수 포함된 팔로군 및 동북항일연군에 대항하기 위한 만주국군 부대)에 복무하는 등 전형적인 친일행적을 보였다.  그 역시 최근 저서인 ‘조국이 없으면 나도 없다’를 비롯해 각종 저서에서 간도특설대 근무를 인정하고 있는 상황. 이에 따라 2009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자진상규명위원회’에서도 ‘항일무장 세력에 대한

[보도자료] “동아시아 평화와 야스쿠니 신사” 국제회의 개최

2014년 8월 20일 250

☞ [보도자료]“동아시아 평화와 야스쿠니 신사” 국제회의 개최 1. 8월 21일(목) 11시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국회 유기홍 의원실,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한국위원회와 동북아역사재단 공동으로 “동아시아 평화와 야스쿠니 신사” 국제회의를 개최한다. 한국과 일본, 오키나와, 중국에서 야스쿠니 신사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정치인, 시민단체 관계자와 함께 마련한 이번 국제회의에서는 각지에서 진행되어 온 운동의 성과와 현안을 점검하고 대안과 공동행동의 전망을 모색하고자 한다. 2. 회의는 1부 “동아시아 평화의 관점에서 바라본 일본 우경화와 야스쿠니 신사”, 2부 “야스쿠니반대 운동의 성과와 과제, 그리고 전망”으로 구성되었다. 1부에서는 우치다 마사토시(內田雅敏)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일본위원회 공동대표, 짜오위지에 중국 길림성 당안관, 이석태(李錫兌)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한국위원회 공동대표가 각각 일본,중국,한국의 입장에서 야스쿠니 문제를 언급할 예정이다. 2부에서는 이시하라 마사이에(石原昌家) 오키나와국제대학 명예교수, 기무라 요고(木村庸五) 아베총리야스쿠니참배위헌소송 변호단장, 오바타 다이사쿠(小畑太作) 목사(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야마구치사무국), 즈시 미노루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도쿄사무국장과 김영환(金英丸)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한국위원회 사무국장 등이 각지의 활동 상황과 현안을 보고할 예정이다. 3.일정 시간: 2014년 8월 21일(목) 장소: 국회도서관 소회의실(1층) 시간 내     용 10:30-11:30 참가자 접수(10:30~11:00) (개회식) 개회식(11:00~11:30) 사회 : 김민규(동북아역사재단 홍보교육실장)   – 개회 인사   : 유기홍(국회의원)    김학준(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이해학(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한국위원회 공동대표)   – 축사   : 설훈(국회의원,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    김영진(전 농림부장관, 한일의원연맹 상임대표)    카오친 쑤메이(高金素梅, 대만입법의원,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타이완위원회 공동대표) *영상 메시지   – 성명서 발표   일본 각료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중단과 야스쿠니신사의 무단 합사 철회

애국묘소도 모자라는데 친일파까지 품은 대전현충원

2014년 8월 20일 341

친일파 묻힌 대전현충원 유재흥·김창룡 등 논란에 현충원 “군·경찰경력 충족 묘지안장 막을 근거 없다”   (상) 현충원에 묻힌 친일파   “내가 죽거든 국립묘지에 묻지 말고, 생사를 같이 한 임정 요인들이 누워 있는 효창원 묘역에 묻어 달라.”-‘마지막 임시정부 요인’인 백강 조경한 선생의 유언 중…. 현충원은 ‘국가와 민족을 위한 목숨을 건 희생’의 상징이다. 본래 의미대로면 이곳에는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친 순국선혈과 애국지사들이 안장돼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충원은 ‘친일파의 안식처’란 오명을 쓴 지 오래. 친일 전력자이지만 이런저런 경력과 공적을 정부로부터 인정받아 현충원에 묻힌 ‘친일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69번째 광복절이 지나도록 바뀌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에 본보는 우리 지역에 위치한 국립대전현충원에 묻힌 친일파 등을 중심으로 모두 3회에 걸쳐 이 문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서울 동작동에 있는 국립현충원과 마찬가지로 대전 갑동의 국립대전현충원 역시 친일파의 흔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긴 마찬가지다. 19일 민족문제연구소, 국립대전현충원 등에 따르면 2009년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 중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 이들은 군인과 경찰 출신을 포함해 보훈청으로부터 애국훈장을 받은 인사 등 28명이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2009년 공동으로 펴낸 ‘친일인명사전’은 친일반민족행위자 4776명의 친일 행적 등을 담았고, 지금까지 친일파 논란에 있어 주요 기준점이 되고 있다. 이 사전에 등재됐지만 대전현충원 안장자 중 가장 논란이 되는 인물은 제19대 국방부 장관을 지낸 유재흥과 일본군 헌병 출신인 김창룡이다. 2011년 11월 대전현충원에 묻힌

두 ‘박통’, 진정성 없는 눈물도 빼닮았다

2014년 8월 18일 322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59> 제3공화국의 탄생, 여섯 번째 마당.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른바 진보 세력 안에서도 부박한 담론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역사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 절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를 이어간다.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은 한국 현대사 연구를 상징하는 인물로 꼽힌다. 매달 서 이사장을 찾아가 한국 현대사에 관한 생각을 듣고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일곱 번째 이야기 주제는 제3공화국의 탄생이다. <편집자>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이야기 마당 1∼3] 한국전쟁[이야기 마당 4∼8] 친일파[이야기 마당 9∼15] 학살[이야기 마당 16∼31] 해방·분단 [이야기 마당 32∼41] 4월혁명 [5.16쿠데타, 첫 번째 마당] 박정희 쿠데타 연재는 왜 그 신문에서 사라졌나 [5.16쿠데타, 두 번째 마당] 오랜 꿈 이룬 ‘박통’…대한민국은 짓밟혔다 [5.16쿠데타, 세 번째 마당] 박정희는 왜 한국인의 ‘노예근성’을 주목했나 [5.16쿠데타, 네 번째 마당] 청와대·참모총장의 위험한 선택…헌법은 죽었다 [5.16쿠데타, 다섯 번째 마당] 박정희 ‘은밀한 과거’, 미국이 개의치 않은 이유 [5.16쿠데타, 여섯 번째 마당] 정치 깡패 이정재는 진정 죽어 마땅했나 [5.16쿠데타, 일곱 번째 마당] 나라 구한 박정희? 장준하는 왜 그리 판단했나 [5.16쿠데타, 여덟 번째 마당] 청와대 ‘부정 선거’ 앞잡이, 정보부…어쩌다? [5.16쿠데타, 아홉 번째 마당] ‘전 재산 헌납’ 삼성 약속은 왜 물거품이 됐나 [5.16쿠데타, 열 번째 마당] 박정희 거듭

“역사는 ‘학문의 어머니’… 공교육서도 뒷전 안타까움”

2014년 8월 18일 282

ㆍ‘10대와 통하는 독립운동가 이야기’ 펴낸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안중근 의사가 ‘안과 의사’냐고 묻는 학생도 있답니다. 모든 학문의 어머니인 역사를 알아야 내일을 열어갈 수 있습니다.”   최근 <10대와 통하는 독립운동가 이야기>(철수와영희)를 펴낸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71·사진)은 14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이 평화헌법을 내팽개치고 군국주의로 회귀하려는 이때야말로 독립운동의 정신과 역사를 되새겨야 한다”며 “우리의 미래인 청소년들이 역사를 너무 등한시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역사를 외면하는 데는 공교육도 일조하고 있습니다. 입시가 우선이다 보니 역사 교육은 뒷전일 수밖에 없죠. 더군다나 아이들은 TV나 영화 속 허구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진실을 가르쳐야 합니다.”      ▲ “친일세력은 역사의 죄인인데 보수정권 들어 개국공신 왜곡 아베정권 도발 경각심 가져야”   그가 말하는 진실이란 구체적으로 뭘까. 김 전 관장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들어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이 사학계의 핵심 멤버가 되면서 친일파를 건국의 일등공신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며 “우리 역사에서 친일세력은 죄인에 불과하다. 주인공은 엄연히 독립운동가들”이라고 했다.   “내년이 광복 70주년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지금 한·일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동북아 정세는 소용돌이 치고 있습니다. 특히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결정해 노골적으로 군사대국화의 야욕을 드러내는 아베 정권의 도발에 우리 국민은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김 전 관장은 이를 위해 역사 용어부터 올바르게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요즘 ‘일제시대’를 ‘일제강점기’로 고쳐 쓰는데 일제의 침탈 야욕을

강제동원 피해자들 “아픈 과거 똑똑히 기억해야지”

2014년 8월 15일 390

광복 벌써 69주년인데… 피해자들 대부분 여전히 고통 속에 ▲사진=이미지비트 제공   “내가 군에 입대해서 3년 복무를 마치고 제대하려니까 ‘전쟁이 났는데 무슨 제대냐‘는 거야. 그래서 제대를 못 하고 바로 동남아로 파견됐지”   김종민(96) 씨는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네가 전쟁터로 가지 않는다면 가족들을 모두 만주로 보내 노역을 시키겠다‘는 일본의 협박에 동원명령을 속절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동남아의 전쟁터에 도착한 김 씨는 가족은 생각조차 나지 않을 만큼 비참한 현실과 맞서 싸워야만 했다.   “섬에 도착했는데 얼마 안 있어 미군이 보급로를 차단했어. 식량 보급이 안 되니까 소나 말 같은 가축도 다 잡아먹고 나중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초근목피‘, 말 그대로 풀뿌리 이런 것들을 캐 먹으면서 전쟁을 했지. 열대지방이니 열병도 무서웠어. 앓으면 1주일 내로 죽어. 다 죽어 나왔어. 이 병에 걸리면 오줌이 새카맣게 나와”   하루 3번씩 300대의 전투기를 동원해 폭격을 퍼붓는 통에 하루하루가 그야말로 살얼음판이었다. 김 씨는 폭격 때문에 땅속에 파묻혀 2시간을 갇혀있다가 구사일생으로 구조된 적도 있었다. 그때의 후유증으로 치아와 척추가 다 망가졌다.   김 씨는 자신을 전쟁터로 끌고 온 일본이 이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일본이 전쟁에서 이겨야만, 자신도 살아서 집으로 갈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일본이 밉고 그런 게 그때 당시에 어디 있어. 그저 살아야 하니까, 살아서 (고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