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huge collection of 3400+ free website templates, WP themes and more http://jartheme.com/ at the biggest community-driven free web design site.

주요기사

“대학 설립 업적 크다” vs “그래도 친일파는 안돼”

2014년 8월 15일 358

<앵커>광복절 관련 소식 몇 가지 더 전해드리겠습니다. 설립자의 동상 설치 문제가 논란이 되는 대학이 적지 않습니다. 대학 설립자라도 친일 경력이 있으면 동상을 세울 수 없다는 학생들의 반발 때문입니다.박아름 기자가 취재해봤습니다.<기자>한국외대 용인 글로벌캠퍼스 교정에 세워진 설립자 김흥배 박사의 동상입니다.개교 60주년을 맞아 넉 달 진통 끝에 지난 1일 기습적으로 설치됐습니다.친일 행적을 문제 삼은 학생들의 반대 때문입니다.학생회는 군복 공장을 운영하고 전쟁지원단체에 가담했던 설립자의 친일 행적을 근거로 철거를 요구했습니다.[김 범/한국외국어대학교 총학생회장 : 친일 잔재는 전혀 언급도 없이 이 동상을 세운다는 것. 그리고 이 동상이 대한민국 고등교육기관에 들어와서 친일 행적을 어떻게 보면 기릴 수 있는…]재단은 친일 행적 논란보다 대학을 세운 업적이 더 크다는 입장입니다.[학교 재단 관계자 : 돈을 벌어서 본인이 다른 목적으로 쓴 게 아니라 전 재산을 여기에 투자해서 학교를 세웠기 때문에…]대학마다 학교설립에 공이 있는 인물을 동상으로 만들어 기리고 있습니다.하지만 뒤늦게 친일 행각이 드러나면서 갈등을 겪고 있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지난해 이화여대에서는 김활란 초대 총장 동상 철거 운동이 벌어졌습니다.학도병 모집을 지원한 반민족 친일 행적 때문입니다.고려대 김성수, 연세대 백낙준, 서울대 현제명, 모두 친일파로 공인됐습니다.[방학진/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 : 동상 설립 당시에는 그 인물들에 대한 친일 행적 밝혀지지 않았던 측면이 있다고 한다면 요즘에 와서는 그 인물에 대한 친일 행적이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에 그 부분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이 더욱더 교육적이라고

[2014.08.14] 8.14 몽양 여운형선생이 1945년 8월 15일 가장 바빴던 이유

2014년 8월 15일 295

  라디오백년전쟁: [2014.08.14]  8.14 몽양 여운형선생이 1945년 8월 15일 가장 바빴던 이유   ☞[팟빵]: http://www.podbbang.com/ch/6647?e=21466150 ☞[다운]: http://down-cocendn.x-cdn.com/data1/guitarkirk/140813bnjj.mp3  

[단독] 역시 이순신家… ‘종손’들도 대대로 일본에 맞섰다

2014년 8월 15일 566

충무공 이순신 장군가의 ‘항일’ 역사에 잃어버린 퍼즐 한 조각이 더해졌다. 충무공의 13대 종손 이종옥 선생이 독립군 결사대로 활동하다가 옥고를 치렀던 사실이 14일 민족문제연구소의 발표로 확인됐다. 충무공 후손들이 독립운동에 헌신한 것은 학계에서 알려진 사실이지만 ‘종손’의 적극적인 항일 무장항쟁이 입증된 것은 처음이다. 충무공이 임진왜란에서 일본군을 격파한 지 300년이 지난 시점에 후손들이 다시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무장투쟁을 벌인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 이준식 연구위원은 “충무공 집안이 대대로 일본에 맞서 우리나라를 지켜왔다는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역사적 사실이 드러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1887년 9월 충남 아산에서 태어난 이종옥 선생은 항일 무장투쟁의 본거지인 신흥무관학교를 2년간 다닌 뒤 1914년 3회로 졸업했다. 신흥무관학교는 충무공의 12대손 이세영(1869∼1938) 선생이 교장을 지냈던 곳이었다. 이종옥 선생은 1914년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이 백두산 서편 고원에 건설한 독립운동 기지인 백서농장 간부를 지내며 항일 무장투쟁을 이어갔다.만주에서 항일 무장투쟁의 기초를 닦은 이 선생은 1919년 6월 독립군 50여명으로 조직된 ‘광복단 결사대’에 몸담아 경성으로 들어왔다. 1919년 6월 21일자 신한민보에 따르면 이 선생을 포함한 11명은 총기 등으로 무장한 채 친일 부호들을 대상으로 군자금을 모집하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수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일본 경찰의 지속적인 감시를 받던 이 선생은 1923년 12월 독립운동 시국사건에 또 한번 휘말렸다. 아산 온천리경찰서 고등계에 체포된 이 선생은 경성으로 압송돼 고초를 당했다. 이후 아산으로 돌아온 이 선생은 1930년 자택에 ‘덕의학교’를 세워

[단독] 이순신 장군 13대 종손도 항일무장투쟁 첫 확인

2014년 8월 15일 1690

▲ 민족문제연구소가 14일 공개한 1919년 6월 21일자 신한민보 기사.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13대 종손 백암 이종옥 선생이 독립군 결사대 활동을 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른 내용이 담겼다. 김지훈 기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13대 종손 백암(白巖) 이종옥(1887∼1941) 선생이 항일 무장투쟁을 벌인 사실이 처음 확인됐다. 독립군 양성 학교인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한 이 선생이 독립군 결사대 활동을 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른 사실을 기록한 당시 신문이 발견된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14일 이 선생의 행적을 다룬 신한민보(新韓民報)를 공개했다. 신한민보는 일제 강점기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발간된 교민단체 ‘대한인국민회’의 기관지다. 신흥무관학교는 일제 강점 초기 최대의 독립군 기지였다. 우당 이회영 선생 등이 1911년 중국 지린성 유하현에 설립했다. 신한민보는 1919년 6월 21일자 3면에 ‘만주에서 하와이에 도착한 암호로 전달된 통신에 의지하건대 길림성에 있는 우리 독립군 50여명의 결사대를 조직하고 한국 경성에 들어가 부자들로부터 수십만원을 구해 군비를 조달하다가 왜놈에게 빼앗기고 11명의 독립군이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이어 ‘이들은 안경식, 차병제, 손창준, 리기원, 리해삼, 리종옥, 주국영, 리우영, 박기제, 송동호, 조규수 선생이다. 리종옥씨는 수군통제사 충무공의 종손이고 조규수씨는 십수년간 조국과 원동(연해주) 각처에서 교육과 정치 방면으로 국가 민족에 희생적으로 노력해온 열렬한 애국지사’라고 보도했다. 당시는 국내 언론은 일제의 탄압에 극도로 위축된 상황이어서 독립운동 소식을 다루지 못했다. 덕수이씨 충무공파 종친회 측은 “족보 확인 결과 이 선생이 충무공의 13대 종손이 맞으며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 15일부터 ‘8.15 특별전시’

2014년 8월 14일 370

 제69주년 광복절을 맞아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엿볼 수 있는 특별전시 ‘8.15 그 감격과 환희의 기억 뒤편’이 열린다.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이 주관하는 이번 전시는 오는 15일 오후 3시 개막식을 시작으로 12월 15일까지 경기도 양평군 소재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 정관재에서 개최된다.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은 14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전시는 8.15 당시의 감격과 환희에 대한 현재의 기억과, 그 뒤편에 있었던 8.15 전후 우리 역사를 재조명함으로써 8.15의 참된 의미를 되새기고자 마련했다”고 취지를 밝혔다. 이번 전시는 일제시대 말기와 8.15 전후의 사진, 문서, 생활용품 등 총 60여 점의 자료를 3부로 나누어 전시한다. 제1부는 공출영수증, 징용고지서, 임시소집영장 등을 통해 일제 말의 전시총동원체제 하에서 우리 민족이 겪은 고난을 살펴보고 제2부는 여운형 선생이 조직한 조선건국동맹, 대한민국임시정부과 한국광복군, 조선독립동맹과 의용군 등의 사진을 통해 해방 직전 국내외 독립운동 진영의 활동을 되돌아본다. 제3부는 8.15 당시 환호하는 군중들의 사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전단, 통치권 이양 문서 등을 전시해 당시 역사의 전개과정을 살펴본다. (사)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회장 이부영)가 주최하고 경기도와 양평군이 후원하는 이번 전시는 ‘2014년 경기도 공시립 박물관.미술관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열리며,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자료를 협찬했다. 관람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가능하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문의처는 031) 772-2411, www.mongyang.go.kr.   <2014-08-14> 통일뉴스 ☞기사원문: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 15일부터 ‘8.15 특별전시‘  

[위안부 보고서 54]4. “정부가 한 게 뭐 있소, 일본 눈치나 봤지”

2014년 8월 14일 382

1991년 8월14일 피해자 첫 공개증언 뒤 23년…위안부 대책은 아직도 그날에 멈춰있습니다   ▲김복동 할머니가 천천히 담배를 피우면서 지나간 이야기를 하나둘씩 꺼냈다. 인터뷰 초반 “했던 얘기 또 물으면 짜증나지 않겠냐”며 인상을 쓰시던 할머니는 이내 흘러간 세월과 다가올 세월에 대해 이야기했다. 백소아 기자 sharp2046@ [아시아경제 김동선 기자, 김민영 기자, 김보경 기자, 주상돈 기자] “눈 감기 전에 한을 풀어달라.” 1991년 오늘(8월14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를 찾은 고(故) 김학순 할머니는 힘겹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놨다. 고통스런 과거사가 떠오르는 듯 중간중간 말을 잇지 못했던 김 할머니의 용기 있는 발언으로 그간 묻혀 있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수면 위로 떠올랐다. 김학순 할머니가 공개 증언에 나선 지 딱 23년이 지났지만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바라는 일본의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은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한 발 후퇴한 양상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6월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1993년 고노(河野)담화를 재검토한 보고서를 발표해 한국 국민과 할머니들의 공분을 샀다. 일본 정부의 이런 행태는 일정 부분 한국 정부의 책임도 있다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활동가들은 지적한다. 한일관계가 냉각되길 바라지 않는 한국 정부의 소극적 문제 제기가 해결은커녕 일본의 적반하장식 태도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그간 우리 정부의 활동을 짚어본다. ◆일본에 사과 요구할 때마다 발목잡는 한일청구권 협정 해방 이후 한국 정부는 최소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 밖이었다. 그러다

‘작은 외침 모여 큰 울림으로’…일제 만행 고발 만화전

2014년 8월 14일 451

【앵커멘트】 광복절을 앞두고 시사 만화가 33명이 일제의 만행과 일본의 군국주의 회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만화전‘을 열었습니다. 한 컷 만평에 담긴 ‘촌철살인‘의 작품들은 다음달 프랑스 국제시사만화전에서 세계인들에게 선보일 예정입니다. 유재명 기자입니다.   【리포트】 불길에 휩싸인 교회가 쓰러지고, 원혼들의 손에는 태극기가 들려 있습니다. 3.1 만세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한 마을의 남성 23명을 교회에 가두고 총살한 뒤 불을 지른 화성 ‘제암리 학살 사건‘. 일제의 무차별적인 폭력 탄압을 상징하는 작품들이 전시장 머리를 장식했습니다. 【인터뷰】이수민/경기도 화성시 (화면 분할)  “도저히 만행을 용서할 수가 없어요. 언제쯤 정신을 차릴지 모르겠고….” 20년 넘게 사과하라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요구를 왜곡하고 있는 일본. 할머니의 얼굴에 난 만행의 생채기는 아물지 못했건만…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 참배, 집단적 자위권 인정 등 노골화되는 일본의 우경화를 한컷 만평에 담아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전시회에는 박재동, 김용민 등 국내 대표 시사만화가 33명의 작품 50점이 선보입니다. 일본 아사히신문 주간도 2점을 출품했습니다. 【인터뷰】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 “아시아나 해외에서는 우리의 아픔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해외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만화라고 하는 매체를 통해서 우리의 아픔을 알리고….” 일제 만행 고발전은 오는 24일까지 동탄문화센터에서 진행된 뒤 오는 11월 말까지 화성지역을 순회하며 계속될 예정입니다. 【스탠딩】유재명  이번 전시 작품들은 다음달 말 프랑스에서 열리는 국제시사만화살롱에 출품돼 일제의 만행과 군국주의 부활 야욕을 다시한번 전세계에 고발할 계획입니다.  OBS뉴스 유재명입니다.   <2014-08-13> OBS뉴스

영화 상영·태극기 축제·패널 전시회… 광복절 행사 다채

2014년 8월 13일 349

제69주년 광복절을 경축하는 기념행사가 부산 곳곳에서 다채롭게 진행된다. 부산시는 오는 15일 오전 9시 부산 동래구 충렬사에서 호국영령에 대한 참배 의식을 시작으로 오전 10시께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광복절 경축식을 개최한다. 용두산공원 33차례 타종식 지자체별 주민 체육대회도 광복회원과 기관 관계자, 시민 등 1천4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인 이번 행사에선 광복절 기념영화가 무료 상영될 예정이다. 용두산공원에서는 이날 오전 11시부터 태극기 축제가 펼쳐진다. 길놀이와 풍물놀이, 태극춤과 태극기를 활용한 플래시몹, 태극공연 등 태극기와 관련된 다양한 전시 행사가 마련돼 있다. 낮 12시에는 시민 2천500여 명이 운집해 태극기 물결행사를 선보이는 동시에 33차례의 타종식이 거행된다. 앞서 지난 9일부터 오는 15일까지 부산시는 시내버스 3천400여 대와 택시 2천여 대를 대상으로 태극기달기 운동을 전개했다. 부산 중구청은 백산기념관 제2전시실에서 15일부터 오는 10월 31일까지 ‘그들, 일제의 심장을 쏘다‘ 패널 전시회를 개최한다. ㈔민족문제연구소의 후원으로 대한광복단의 결성과 활약상을 그림 삽화 패널 30여 점이 공개된다. 관람료는 무료다. 금정구청은 같은 날 오전 9시 만남의 광장 내 태극기 소공원에서 ‘독립유공자와 함께 하는 대형 태극기 게양식‘ 행사를 열 계획이다. 독립유공자들과 대형 태극기를 내걸고 묵념이 끝나면 만세삼창으로 광복절을 기념한다. 광복절 기념 주민 체육대회도 지자체별로 개최된다. 북구 화명생태공원 내 화명운동장에서는 주민 600여 명이 모여 ‘광복절 기념 구민 축구대회‘가 열린다. 대저2동 등 강서구 관내 6곳에서는 ‘8·15 경축 주민체육대회‘도 개최된다. 기장군 정관면 청년회원 1천여 명도

민문연 “이승만, 독립운동자금 횡령”.. 감춰진 행적 공개

2014년 8월 13일 5767

“뉴라이트–한국사학계 논쟁 끝낼 수 있는 결정적 근거”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하와이 한인기독학원 책임자이자 상해임시정부 대통령을 지낸 1910년대 후반부터 1920년대 초 행적을 나타낸 사료들이 12일 민족문제연구소를 통해 공개됐다. 그간 이 전 대통령의 독립운동과 친일 행적 등을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공개된 이번 사료에는 친일 미국인 여교사를 감싸고 독립운동을 위해 모금한 성금 일부를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이승만 전 대통령의 감춰진 이면이 다수 드러났다. 이 전 대통령은 1916년 미국 언론을 통해 자신의 학교에서 반일 교육을 하지 않는다고 공표했다. 실제로 그는 그런 수위를 넘어서 1919년에는 친일파 백인 여교사를 학교에 데려와 학생들을 가르치게 하고, 여교사에 반발한 학생들을 ‘가혹하게 처벌하라’고 지시하기 까지 했다. 이 같은 사실은 이 전 대통령이 학교 관계자들과 주고받은 청원서와 학생들이 교사들에게 보내는 청원서 등을 통해 드러났다. ▲ ⓒ 민족문제연구소 당시 성금을 통해 모은 2천여 달려 중 소약국 동맹회에 참석에 쓰이고 남은 돈은 약 1천1백달러였는데, 국민회 대의원들이 남은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자 그는 1918년 2월 6일자 국민보를 통해 “모금을 요청하는 서한은 안현경과 나의 개인 이름으로 서명되어 있다”며 공개적으로 거부했다. 결국 1918년 대의원들을 이승만이 폭동죄로 고발하면서 재판이 시작됐다. 그러나 오히려 모금운동이 “개인의 일이요 개인의 재정이었다”는 이승만 측의 주장과 달리 모금운동을 하면서 국민회 총의장 명의로 특별 연조를 청한 공함이 공개되면서 패소하고 성금을 반납해야 했다.

“일본 집단자위권 행사땐 우리가 가장 큰 피해 볼 것”

2014년 8월 12일 390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해 힘써온 서승 리쓰메이칸대학 특임교수(왼쪽부터),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이룰태림(성유보)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이사장이 8월5일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 좌담에서 세 사람은 “남북한 교류 증진과 동북아 시민연대가 동아시아에서 전쟁 가능성을 막는 방파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싱크탱크 광장] 청일전쟁 120주년에 맞는 ‘갑오년 8·15’ 좌담 다시 광복과 분단의 8·15가 다가온다. 올해 8·15는 ‘갑오년의 8·15’라는 점에서 어느 해보다 우리에게 과거와 미래를 성찰하도록 요구한다. 현재 국내외 정국이 바로 120년 전인 ‘1894년 갑오년’ 상황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당시 이 땅에는 보국안민과 척양척왜를 내세운 갑오농민혁명이 들불처럼 번져갔지만, 조선 조정은 청나라를 주둔시키고 일본을 끌어들여 자기 백성들의 목소리를 폭력으로 제압했다. 하지만 이 땅에 들어온 청나라와 일본은 곧 청일전쟁을 벌여 우리의 터전을 전쟁터로 만들었고, 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조선 침략을 더욱 노골화했다. 120년이 지난 오늘 한반도는 다시 소용돌이치고 있는 동북아시아 정세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꿈꾸는 일본과 중국의 대립, 미국의 패권적 군사전략, 남북한의 대결 양상 등이 동북아의 긴장을 한껏 높여가고 있는데, 그 충돌 위험이 고스란히 한반도에 쏠리는 양상인 것이다. 과연 이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 한겨레평화연구소가 평화·통일 시민단체인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이사장 이룰태림)와 함께 올해 8·15의 의미를 살펴보는 특별좌담을 마련했다. 오랫동안 친일청산 문제에 힘써온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과 한·일 평화세력의 연대를 주장해온 서승 리쓰메이칸대학 특임교수가 자리를 함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