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기사
‘박통’의 특별한 선배는 왜 간첩으로 죽어야 했나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52> 5.16쿠데타, 열한 번째 마당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른바 진보 세력 안에서도 부박한 담론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역사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 절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를 이어간다.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은 한국 현대사 연구를 상징하는 인물로 꼽힌다. 매달 서 이사장을 찾아가 한국 현대사에 관한 생각을 듣고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여섯 번째 이야기 주제는 5.16쿠데타다. <편집자>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이야기 마당 1∼3] 한국전쟁 [이야기 마당 4∼8] 친일파 [이야기 마당 9∼15] 학살 [이야기 마당 16∼31] 해방·분단 [이야기 마당 32∼41] 4월혁명 [5.16쿠데타, 첫 번째 마당] 박정희 쿠데타 연재는 왜 그 신문에서 사라졌나 [5.16쿠데타, 두 번째 마당] 오랜 꿈 이룬 ‘박통’…대한민국은 짓밟혔다 [5.16쿠데타, 세 번째 마당] 박정희는 왜 한국인의 ‘노예근성’을 주목했나 [5.16쿠데타, 네 번째 마당] 청와대·참모총장의 위험한 선택…헌법은 죽었다 [5.16쿠데타, 다섯 번째 마당] 박정희 ‘은밀한 과거’, 미국이 개의치 않은 이유 [5.16쿠데타, 여섯 번째 마당] 정치 깡패 이정재는 진정 죽어 마땅했나 [5.16쿠데타, 일곱 번째 마당] 나라 구한 박정희? 장준하는 왜 그리 판단했나 [5.16쿠데타, 여덟 번째 마당] 청와대 ‘부정 선거’ 앞잡이, 정보부…어쩌다? [5.16쿠데타, 아홉 번째 마당] ‘전 재산 헌납’ 삼성 약속은 왜 물거품이 됐나 [5.16쿠데타, 열 번째 마당] 박정희
日전범 “중국인 부녀자 성폭행하고 일반인 고문살해”
사사키 노스케 中 ‘일본전범 자백서‘ 제4탄 공개…”위안소에 중국인 부녀 있었다“ (베이징=연합뉴스) 이준삼 특파원 = 일본군이 중국 침략전쟁 당시 부녀자 수십 명을 성폭행하고 일반인을 ‘간첩‘ 혐의로 붙잡아 고문한 뒤 살해했다는 내용의 ‘전범 자백서‘가 6일 공개됐다. 지난 3일부터 ‘일본 전범 자백서 45편 연속 공개‘ 활동에 나선 중국 중앙당안국(기록보관소)은 6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전범 사사키 노스케(佐佐眞之助)의 자백서를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사사키는 1932년 관동군 제10사단 보병 제63연대 제3대대장으로 중국에서 복무하기 시작해 1945년 관동군 제3방면군 제39사단장이 됐다. 이 자백서는 1945년 8월 소련군에 체포된 그가 1954년∼1956년 작성한 것이다. 사사키는 이 자백서에서 자신의 지휘하는 부대가 1932년 10월 ‘간첩 혐의‘로 약 30명의 중국인을 체포해 고문한 뒤 21명을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살해된 사람 중 15명은 항일군인이었고 6명은 일반인이었다. 그는 또 “1940년 10월 휘하 대대가 저장(浙江)성 지역에서 독가스를 사용해 국민당 군에 막대한 손해를 입혔고 10월 충칭군 전사, 포로, 중상자 등 600여 명을 살해했다“고 적었다. 사사키는 또 1941∼1945년 휘하 부대들이 다수 항일군인과 항일단체 활동가를 간첩 혐의로 체포해 50여 명을 살해했고 포로 5명을 ‘총검술 교육‘에 이용해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특히 1945년 3월 후베이성 샹판(襄樊)작전 중 충칭군 병사 3천500명과 중국인 200명을 살해하고 중국인 부녀 약 50명을 성폭행했다고 진술했다. 사사키는 “후베이성 당양(當陽)에 일본인이 운영하는 위안소에
日전범 “독가스 살포후 도주 중국인 학살”
日전범 “독가스 살포후 도주 중국인 학살“ 중국 ‘일본전범 자백서‘ 제3탄 공개 (베이징=연합뉴스) 홍제성 특파원 = 일본군이 중국 침략전쟁 당시 중국인들에게 독가스를 살포한 뒤 도망가던 주민들을 무참히 학살했다는 내용의 일본 전범의 자백서가 5일 중국 당국에 의해 공개됐다. 중국 중앙당안국은 이날 이같은 내용이 담긴 3번째 일본 전범의 중국 침략 죄행 서면자백서를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가미사카 가츠(上坂勝) 일본군 소장은 1954년 7월에 쓴 자백서에서 “1942년 중국 허베이(河北)성에서 작전을 하던 중 제1대대에 중국 팔로군 전사와 마을 주민 800여명 이상을 살해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그는 “적통(赤筒) 및 녹통(綠筒)으로 불리는 독가스를 사용한 뒤 무차별 사살한 대상은 팔로군 전사 뿐만이 아니었다“면서 “길을 잃고 도망가는 주민들도 총살됐다“고 진술했다. 이어 “시골마을에서도 소탕작전을 벌였는데 지하굴에 숨어있던 주민들을 향해 독가스를 주입했다“면서 “일부는 질식해 숨졌고 고통을 느끼고 도망 나오는 주민들을 쏘아죽이고 찔러죽이고 베어죽이는 등 잔혹한 행위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허베이(河北)성 침략전쟁 중에 중국인들이 입은 피해는 살해된 사람만 1천100명이며 10여채의 가옥이 파괴되고 450동의 가옥이 약탈됐다“고 밝혔다. 그는 “1939년 1월에는 산시(山西)성에서 병사들에게 전쟁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살인이 가장 빠른 방법이며 포로를 사용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제1중대장에게 9명의 포로를 찔러죽이라고 명령했고 포로들을 중대별로 교환해 ‘교육교재‘로 활용했다“고도 했다. 이밖에 그는 1945년에는 “포로를 데리고 다니기가 어렵다“며 모든 포로를 다 죽이라고
일본군, 포로를 ‘총검술 교재’로 활용했다
일본군, 포로를 ‘총검술 교재‘로 활용했다 전범 후지타 시게루 중국 ‘일본전범 범죄자백서‘ 제2탄 공개 (베이징=연합뉴스) 이준삼 특파원 =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포로를 “전투력을 키운다“는 명목하에 ‘총검술 교재‘로 활용했다는 ‘고백‘이 나왔다. 이는 종전을 전후해 1945년 8월 북한 함흥지역에서 포로로 붙잡힌 일제 전범 후지타 시게루(藤田茂)가 1954년 8월 작성한 ‘범죄 자백서‘를 통해 확인됐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국빈방한한 3일 전범 스즈키 케이쿠의 자백서를 시작으로 ‘전범 자백서 45편 공개‘ 활동에 나선 중국정부는 4일 ‘제2탄‘을 공개했다. 중국 중앙당안국이 이날 홈페이지에 올린 후지타의 자백서에 따르면, 그는 1938년 8월 육군기병 제28연대 연대장(사령관)으로 중국에서 복무하기 시작한 이래 많은 살인행위를 지휘했다. 그는 1938년 8월 산시(山西)성에서 주민 6명을 체포해 고문·구타 등의 방법으로 살해한 것을 시작으로 1945년 3월27일 약 50가구가 있는 덩(鄧)현 지역에서 노인, 부녀, 어린이 등 주민을 한 곳에 모아놓고 살해했다. 특히 1939년에는 군인들에게 “살인은 군인이 전쟁에 익숙해지고 용기를 키울 수 있는 빠른 방법“이라고 교육한 뒤 포로 8명을 살해할 것을 명령하고 포로 17명을 1, 2중대 ‘총검술 교재‘로 제공해 살해토록 지시했다. 후지타 시게루의 자백서 원본 1945년 6월 지난(濟南)지역에서도 진지구축에 동원해오던 600명 이상의 포로를 ‘총검술 교재‘로 희생시켰다고 자백했다. 중국 포털사이트 바이두(百度) 백과사전에 따르면 후지타는 1956년 6월 중국 최고인민법원 선양(瀋陽)특별군사법정에서 진행된 공판에서 18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판결결과가 나오자
日전범 “조선부녀자 등 20명 유괴, 군위안부 삼았다”
전범 스즈키 케이쿠 “중국인 5천500명 살해“…중국, 시진핑 방한일 전격 공개 “일본 전범 자백서 45편, 하루 한편씩 인터넷 공개“ (베이징=연합뉴스) 이준삼 특파원 = 중국 당국이 “조선과 중국의 부녀자들을 유괴해 군 위안부로 삼았다“는 내용이 담긴 일본 전범의 ‘전쟁범죄 서면자백서‘를 3일 인터넷을 통해 공개했다. 중국 정부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국빈 방한일에 맞춰 이 같은 기록문서를 공개한 것은 일본의 침략전쟁 범죄의 잔인성을 부각해 일본 우경화에 대한 한중 공조 필요성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중앙당안국(기록보관소)이 인터넷에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스즈키 케이쿠라는 일본 전범은 ‘자백서‘에서 1934년 6월 중국인 농민 두 명을 살해한 것을 시작으로 1945년 7월까지 지시?명령을 통해 5천 명이 넘는 중국인을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스즈키는 “내 기억으로는 5천470명의 중국인을 살해했고 1만8천229채의 주택을 파괴했다. 아마도 실제 숫자는 더욱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의 진술 중에는 1941년 안후이(安徽)성 차오(巢)현에 위안소를 설치하고 20명의 중국 부녀자와 조선 부녀자를 유괴해 위안부로 삼았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스즈키는 또 1942년 일본군 점령 지역에 모두 위안소를 설치할 것을 명령하고 60명의 부녀를 유인해 위안부로 만들었다고 진술했다. 이는 일본군이 한반도와 중국에서 군 위안부를 사실상 강제 동원했음을 뒷받침하는 내용이어서 자료 신뢰성이 확인될 경우 적잖은 파장이 일 것으로 전망된다. 스즈키 케이쿠의 ‘자백서’ 이밖에 이 전범의 ‘자백서‘에는 전쟁 중
1979년, 유신·재벌 맞선 ‘불온한’ 문화 비정규전이 시작됐다
▲ 지난 3월26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에서 열린 헌정 문집 <산포도 사랑, 용태 형> 출판기념회에는 ‘김용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참여한 80여명의 문화예술인을 비롯해 여러 지인들이 모처럼 한데 모여 민중문화운동 세대의 잔치판이 됐다. 앞줄 왼쪽부터 부인 박영애씨와 김용태 선생, 황석영 작가, 박현수 교수, 최열 환경재단 대표, 이부영 전 의원, 이재오 의원, 원경 스님, 김정헌 서울문화재단 이사장, 신경림 시인, 임재경 선생, 김학민 이한열기념사업회 이사장, 강연균 전 민예총 공동의장, 문재인 의원 등이다. 사진 정성하 사진가 제공 연재 회고록 ‘길을 찾아서’의 16번째 이야기 ‘용태 형과 문화운동시대’의 주인공은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장 김용태(그림·박재동) 선생이다. 하지만 필자는 그가 아니다. 올해 들어 투병 중에도 회고록 구술을 해오던 그는 지난 5월4일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대신 그와 더불어 한 시대를 헤쳐온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이 기꺼이 그가 못다 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자 나섰다. 지난해 12월 80여명의 문화예술인들이 그의 투병을 응원하고자 ‘김용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용사모)을 만들었다. 그 가운데 47명은 지난 3월 헌정 문집 <산포도 사랑, 용태형>을 펴냈고, 화가 43명은 ‘함께 가는 길’ 전시회를 열어 후원했다. ‘용태 형과 문화운동시대’는 이들 가운데 20여명이 필자로 참여해 1970~90년대에 걸쳐 민주화운동의 큰 축으로 자리한 민중문화운동사의 주요 마디를 되짚어줄 예정이다. 또 그 마디마디를 술과 차비를 챙겨주며 ‘접착제’처럼 이어준 ‘인간 용태 형’의 일화도 들려준다. 첫번째 필자로 이부영 전 국회의원이 2회에
경기지역 공공도서관 2곳 중 1곳 친일인명사전 없어
중·고교는 더 심해…각각 69%, 85% 비치 안 해 (수원=연합뉴스) 최찬흥 기자 = 경기도 내 공공도서관 2곳 가운데 1곳은 친일인명사전을 비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7일 도의회 이재준(새정치민주연합·고양2) 의원에 따르면 도내 31개 시·군이 운영하는 공공도서관 210곳 중 50%인 105곳에만 친일인명사전이 보급된 것으로 집계됐다. 또 451개 고등학교 도서관의 경우 31%인 140개, 604개 중학교 도서관은 15%인 89개가 친일인명사전을 비치한 데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은 일제 식민통치와 전쟁에 협력한 인물 4천389명의 주요 친일 행각과 해방 이후 행적 등을 담고 있다. 매국행위에 가담하거나 독립운동을 탄압한 반민족 행위자, 군수나 검사, 소위 등 일정 직위 이상 부일 협력자 등을 수록했다. 대중적 영향력이 큰 교육이나 언론, 종교계 종사자와 지식인 등은 더 엄중한 기준을 적용했다. 이 의원은 “친일인명사전의 보급률 저조는 구호만으로 하는 우리의 역사교육과 친일청산 의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슬픈 자화상“이라며 “공공도서관과 학교도서관은 시민의 기본 소양을 높이고 평생학습을 지원하는 것이 설립 목표인 만큼 친일인명사전 보급에 적극적으로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2014-7-7> 연합뉴스 ☞기사원문: 경기지역 공공도서관 2곳 중 1곳 친일인명사전 없어 ※관련기사 ☞뉴스1: 경기도내 도서관, ‘친일인명사전‘ 보급률 저조 ☞아시아경제: 경기도 도서관 ‘친일인명사전‘ 5곳중 1곳만 비치
[책소개] 식민지 자본주의와 조선인의 삶
▲ 이준식 지음/ 역사비평사/308쪽/ 1만5천원 일제강점기 사회와 문화 한국은 근대로의 이행과정에 있어 농촌과 도시의 삶에 변화가 일어나고, 새로운 사상과 계층이 등장하고, 새로운 매체와 문화가 나타났지만 식민지라는 조건 때문에 비틀어질 수밖에 없었다.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있는 저자는 대학생이나 시민을 대상으로 근대사를 강의하다가 예상외로 사람들이 일제강점기에 대해 잘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이 책을 쓰게 됐다. 그래서 저자는 ‘식민지’에 초점을 맞추어 이 책을 쓰고, 이를 통해 ‘식민지 근대’를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저자는 책머리에서 “일제 식민지 지배의 본질과 실상이 어떠했으며 일제강점기에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잘 모르니 일제강점기가 21세기 한국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 여기는 사람도 있다”며 “식민지라는 조건 때문에 비틀어진 역사는 물론 이 비틀어진 역사가 이후 한국사회에도 어떤 그림자를 드리우게 되는지를 이해하는 데 작은 실마리를 제시하고 싶다”고 이 책의 출간의도를 밝혔다. 일제강점기 민족해방운동사를 전공하고 지금은 일제강점기 동아시아의 영화사와 이주사, 한국의 과거사 청산 등에 관심을 갖고 있는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폭풍처럼 들이닥친 근대자본주의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를 살펴보고, 그 시대의 문화와 삶을 들여다보며 식민지를 산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2014-07-05> 영남일보 ☞기사원문: 식민지 자본주의와 조선인의 삶
역사학자 이이화 “친일 역사관 총리였다면 아베와 무슨 대화 했겠나”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지명된 지 14일 만에 사퇴했다. 교회에서 한 강의에서 친일, 반민족적인 역사관이 논란이 된 끝에 결국 여론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교회에서 한 강의를 단편적으로 소개해 여론몰이 마녀사냥을 했다”는 말도 나오지만 국민들의 70%는 청문회도 하기 전에 문 후보에게 부적합 판정을 내렸다. 총리나 장관의 역사관, 특히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어떻게 보느냐는 한 나라의 정체성과 관련해 결코 소홀히 넘길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은 신문에 기고를 하는 등 유난히 부정적 견해를 보였다. 국사 교과서 문제에 120주년을 맞은 동학혁명의 재조명 운동 등 과거의 ‘역사’가 현재를 좌우하는 요즘이다. ‘역사가 도대체 뭐길래’라는 의문을 갖고 이이화 선생을 만났다. 팔순을 앞둔 나이에도 한 달에 10여 차례 강의를 다니고 계속 글을 쓰는 그는 “역사와 지도자의 역사관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수차례 강조했다. 결국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자진 사퇴했습니다. 그런데 신앙인으로서 교회에서 한 강의를 너무 확대 해석한 것은 아닐까요.“그의 자진사퇴는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신앙과 상관없이 그런 역사관을 가진 사람이 총리를 맡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일제 식민지 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조선 500년은 허송세월을 했고 우리 민족이 게을러서 식민지 지배를 자초했다는 것인데, 이건 일본의 정한론자들이 주장하는 이론, 즉 조선민족은 나태하고 분열적이고 타율적이며 미개하고 정체돼 있어서 독립국을 유지할 수 없으므로 일본이 근대화시켜야 한다는 논리와 같습니다. 또 영국과
박정희 거듭 구한 은인, 제대로 뒤통수 맞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른바 진보 세력 안에서도 부박한 담론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역사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 절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를 이어간다.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은 한국 현대사 연구를 상징하는 인물로 꼽힌다. 매달 서 이사장을 찾아가 한국 현대사에 관한 생각을 듣고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여섯 번째 이야기 주제는 5.16쿠데타다. <편집자>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이야기 마당 1∼3] 한국전쟁[이야기 마당 4∼8] 친일파[이야기 마당 9∼15] 학살[이야기 마당 16∼31] 해방·분단 [이야기 마당 32∼41] 4월혁명 [5.16쿠데타, 첫 번째 마당] 박정희 쿠데타 연재는 왜 그 신문에서 사라졌나 [5.16쿠데타, 두 번째 마당] 오랜 꿈 이룬 ‘박통’…대한민국은 짓밟혔다 [5.16쿠데타, 세 번째 마당] 박정희는 왜 한국인의 ‘노예근성’을 주목했나 [5.16쿠데타, 네 번째 마당] 청와대·참모총장의 위험한 선택…헌법은 죽었다 [5.16쿠데타, 다섯 번째 마당] 박정희 ‘은밀한 과거’, 미국이 개의치 않은 이유 [5.16쿠데타, 여섯 번째 마당] 정치 깡패 이정재는 진정 죽어 마땅했나 [5.16쿠데타, 일곱 번째 마당] 나라 구한 박정희? 장준하는 왜 그리 판단했나 [5.16쿠데타, 여덟 번째 마당] 청와대 ‘부정 선거’ 앞잡이, 정보부…어쩌다? [5.16쿠데타, 아홉 번째 마당] ‘전 재산 헌납’ 삼성 약속은 왜 물거품이 됐나 프레시안 : 5.16쿠데타 세력은 4월혁명 후 활발하게 전개되던 통일 운동,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진상 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