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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YTN라디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43편 : 도산_한반도가(안창호 후손_필립안커디)

2023년 9월 7일 419

민족문제연구소는 2017년 『항일음악 330곡집』을 발간한 이후 <항일음악회> 개최 등 항일음악 보급을 통한 독립정신 선양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YTN 라디오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자문을 받아 2020년 11월 ‘국치추념가’를 시작으로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를 방송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 43편 : 도산_한반도가 (안창호 후손_필립안커디) ☞ 42편 : 우당절명시_이종찬 광복회(이회영 손자) ☞ 41편 : 대조선국민군가_박상민(박용만 후손) ☞ 간호특별기획 10편 : 김근화 (6.25 참전 간호장교) ☞ 간호특별기획 9편 : 정순자 (518 간호사) ☞ 간호특별기획 8편 : 독립운동가 최혜순_외손녀 김정 ☞ 40편 : 대한인_황기환(장철우 목사) ☞ 39편 : 대한소년기개_부석현(부두전 손자) ☞ 38편 : 대한제국 애국가_신지영(신팔균 손자) ☞ 간호특별기획 7편 : 독립운동가 정종명_박경목 서대문형문소역사관장 ☞ 간호특별기획 6편 : 독립운동가_김순애 ☞ 간호특별기획 5편 : 파독간호사 정옥련 ☞ 간호특별기획 4편 : 파독간호사 김병연 ☞ 간호특별기획 3편 : 이정숙 지사(연구자 강영심) ☞ 간호특별기획 2편 : 임수명 지사_신지영(신팔균, 임수명 손자) ☞ 간호특별기획 1편 : 박자혜 여사_이덕남(단재 신채호, 박자혜 여사 며느리) ☞ 37편 : 효창 아리랑_김영심(김상옥 손녀) ☞ 36편 : 긴날이 맞도록_이덕남(단재 신채호, 박자혜 여사 며느리) ☞ 35편 : 해방의 노래_장영달(여운형 기념사업회 이사장) ☞ 34편 : 여명의 노래_조정화(조문기 외동딸) ☞ 33편 : 김구 나의 소원_김용만(김구 증손자) ☞ 32편 : 이육사의 꽃_이옥비(이육사 딸) ☞ 31편 :

[KBS] 홍범도 장군의 생전 영상 최초 공개! 2010.10.24

2023년 9월 7일 1628

홍범도 장군의 실제 모습이 담긴 영상부터 봉오동 전투의 준비 과정과 승리로 이끈 전술! 그리고 두 아들과 아내를 잃은 슬픔 속에서도 오직 대한 독립을 위해 목숨을 내놓았던 그의 인간적인 모습까지 봉오동·청산리 승전 100년 민족영웅 ‘홍범도’

[민중의소리] “민단은 간토학살 외면하고 ‘순난자’라 표현, 윤미향 참석 추도식과 달라”

2023년 9월 6일 398

간토학살 100주기 추도사업추진위 “간토학살 희생자 추모에 색깔론이 웬말인가” 윤미향 의원이 지난 1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것을 두고 국내에서 때 아닌 색깔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윤 의원이 참여한 추도식이 ‘반국가단체’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주최로 열렸기 때문에 ‘친북 행사’라는 것이다. 특히 윤 의원이 총련 주최 행사에는 가면서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은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주최로 열린 추념식에 가지 않았다는 것을 두고도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보수언론의 종북몰이식 보도를 시작으로 여권과 보수시민단체가 이를 더 확산시키고 있다. 이에 대해 윤 의원과 함께 추도식에 참여한 ‘간토학살 100주기 추도사업추진위원회’는 6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마치 1923년 일본 간토(관동) 땅에서 조선인을 향해 덧씌워진 유언비어가 재현되는 모습”이라고 성토했다. 추진위는 지난해 7월 한국의 역사단체와 재일동포 인권단체, 평화운동 단체 등 50여 개 시민사회단체로 결성된 뒤, 국내에서 간토학살 특별법 제정 촉구와 간토학살 100주기 추도문화제 개최 등 활동을 벌여왔다. 이어 지난 1일 간토학살 100주기를 맞이해 윤 의원과 함께 일본에서 열린 간토학살 추도행사에 참여하고, 일본 시민들과 함께 간토학살의 국가책임 인정을 촉구하는 연대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런데 국내로 돌아오자 이들에게 화살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추진위는 “100년 전 간토학살이 시작된 같은 날 같은 저녁, 동아일보 기자의 악의적인 보도를 시작으로 국내 보수언론들이 잇따라 윤미향 의원에게 언론 테러를 가하고 한국 측 추진위 인사를 반정부세력으로 몰고가는 기사를

[경향신문] 간토학살추모 추진위 “정부·여당은 색깔론 그만두고 진상규명 나서라”

2023년 9월 6일 450

[내려받기] ☞ 일본 간토학살 100주기 추도행사 참여와 경과 ☞ [성명] 윤석열 정부는 간토학살 100년 희생자 추모 이념몰이 중단하고 당장 진상규명에 나서라! 추모에 색깔론을 씌우지 말라”며 정부·여당의 ‘이념몰이’ 중단을 요구했다. 간토학살100주기추도사업추진위원회는 이날 오후 1시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이들은 “이념공세가 아닌 진상규명에 나서야 한다” “마녀사냥 선동을 멈추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추진위는 “보수언론이 잇따라 윤미향 무소속 의원에게 언론 테러를 하고 한국 측 추진위원회 인사마저 반국가·반정부 세력으로 몰아갔다. 정부 부처와 대통령실까지 나서 반국가행위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다”며 “100년 전 간토에서 조선인을 향해 덧씌워진 유언비어가 재현되는 모습”이라고 했다. 이어 “한반도는 지리적으로 단절돼 있지만 일본에서는 남북 간 담장이 없기에 민단과 총련의 동포들이 다양한 행사장에서 만날 수밖에 없다”며 “이러한 현실을 무시하고 추도 집회에 참석한 것을 빌미로 반국가단체와 교류했다고 몰아가는 것은 그동안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해온 일본 시민사회와 동포들의 노력에 색깔론을 들이대는 것이자 조선인 피해자를 추도하고 일본의 책임을 묻는다는 대의와 본질을 외면하는 일”이라고 했다. 김종수 간토학살100주기추도사업추진위 집행위원장은 “지난 수십 년간 일본 시민사회와 재일 동포들은 매년 간토학살을 기억하고 알리기 위한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한 번도 간토학살 사건에 대한 일본의 국가책임을 추궁하지도, 학살 피해자를 위한 추도사를 발표한 일도 없다”며 “100년 동안 침묵하고 있던 대한민국 정부와 종북몰이를 선동하는 보수언론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채희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보수단체가 위반했다고

[경향신문] [기고] 독립운동 폄훼보다 더한 역사부정은 없다

2023년 9월 6일 421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는 지난달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2주년을 기념해 국가보훈부의 후원을 받아 카자흐스탄 국립 고려극장 단원들을 초청했다. 고려극장 단원들은 지난달 16일과 18일 국회 대강당과 홍범도 장군이 안장된 대전에서 고려인 강제이주를 주제로 한 연극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다. 그로부터 꼭 일주일 뒤 홍 장군을 비롯해 육군사관학교(육사)에 설치된 독립전쟁 영웅 흉상이 철거된다는 ‘가짜뉴스’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조만간 국민들은 홍범도·지청천·이회영·이범석·김좌진 등 독립전쟁 영웅들의 흉상 철거를 속절없이 지켜봐야 할 처지가 되었다. 고국 방문 공연을 마치고 카자흐스탄으로 돌아간 고려극장 단원들은 물론 수십만 고려인들은 지금 어떤 심정일까. 그들의 가슴 설렜던 고국 방문은 불과 일주일 만에 가슴에 박힌 ‘대못’이 되고 말았다. 윤석열 정부는 올해 6월 전 세계 750만 재외동포들을 위해 재외동포청을 설립했다고 자랑하면서도 정작 고려인 사회의 구심점이자 자부심인 홍 장군에 대한 온갖 모욕과 중상모략을 서슴지 않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이런 자기분열적 행태는 재외동포들이 고국에 등을 돌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8월29일 경술국치일을 앞두고 난데없이 자행된 흉상 철거 소식은 연초부터 벌어진 윤석열 정부의 수많은 역사 퇴행의 종합판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독립운동을 폄훼하는 일보다 더한 역사부정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친일파를 되살린 이승만이나 친일 군인 출신 박정희조차도 감히 독립운동가를 함부로 하지 못했다. 오히려 박정희 정권은 굴욕적인 한일협정 체결 직후 국민적 저항을 무마하기 위해 광복회 설립을 지원했고, 형식적으로나마 독립운동가에 대한 보훈정책 마련에 착수했다.

[한겨레] 임시정부 뜻 떠받든 ‘홍범도-러 연대’, 냉전 논리로 흠집내나

2023년 9월 4일 938

[기고] 홍범도 독립운동 왜곡 논란 최근 독립운동가 홍범도(1868년 10월~1943년 10월) 장군의 행적과 흉상 이전 문제가 큰 논란이 됐다. 때마침 올해 10월은 홍범도 장군이 이역만리 카자흐스탄 땅 크즐오르다에서 서거한 지 80주기가 되는 달이다. 중앙아시아에 묻혀 있던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국내로 봉환된 지도 2년이 넘었다. 따라서 그의 독립운동과 나라 사랑, 그 정신과 가치, 실현하고자 했던 이상 등을 기억하고 추모하며, 불멸의 자취를 반추하고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실은 오히려 정반대인 듯하다. 지난 8월29일과 31일 국방부와 육군사관학교는 홍범도 장군 흉상을 육사 밖으로 이전한다고 발표했다. 여러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적과 이념을 무리하게 재단하며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여기에 국무총리는 해군 잠수함 ‘홍범도함’의 이름도 바꿔야 한다는 발언까지 했다. 과연 우리 사회는 이런 방식으로 독립전쟁 영웅을 대하고 기려야 할까. 홍범도는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기 직전인 1890년대 말부터 1920년대 초반까지 의병과 독립군 부대를 이끌고 20여년 동안 줄기차게 일제와 싸웠던 대표적 무장투쟁가다. 그처럼 오랫동안 조국과 민족의 독립을 위해 국내는 물론 만주와 러시아령 연해주 등지를 넘나들며 초지일관 항일투쟁을 벌인 인물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기에 대한민국은 물론 북한, 중국 옌볜(옛 북간도), 그리고 현재 중앙아시아의 한인들까지 모두 그를 추앙하고 있다. 그가 항일무장투쟁을 벌인 주요 무대였던 북한 함경도 지방과 중국 옌볜, 러시아 연해주에서는 그의 활동과 관련한 많은 이야기가 민담과 민요, 문학작품으로 형상화해 전해

[KBS] 100년 전 학생들이 겪은 간토학살…“기록 없다” 발뺌 언제까지?

2023년 9월 2일 353

(KBS뉴스,  2023.9.02) 기사원문보기 ☞ 100년 전 학생들이 겪은 간토학살…“기록 없다” 발뺌 언제까지? [특파원 리포트]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간토_대학살) : 간토 대학살(關東大虐殺) 혹은 관동 대학살은 1923년 일본 도쿄 등을 포함한 간토 지방에서 발생한 간토 대지진으로 당시 혼란을 조선 민간인에게 전가하여 무차별 대량한 학살한 사건이다.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關東大地震朝鮮人虐殺事件) 또는 ‘1923년 조선인 대학살’이라고도 불린다. 희생자 수는 약 6,000명[1] 혹은 6,600명[2]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후 추가 자료가 발굴되면서, 희생자가 약 2만 3,058명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3][4 <기사 발췌> KBS가 100년 전 많은 조선인이 희생된 간토 학살, 그 참상의 기록을 새롭게 발굴했습니다. 간토대지진은 도쿄를 비롯해 일본 수도권을 초토화 시켰습니다. 극심한 혼란 속 유언비어가 난무했습니다.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조선인들이 방화한다’ 같은 어이없는 내용이었음에도 조선인들은 일본인 자경단 등으로부터 무차별 공격을 받았습니다. ■유언비어 속 조선인 무차별 공격 “메구로(※도쿄에 있는 한 행정구역 지명) 방면에서 여자아이가 파랗게 질린 채 보자기를 메고 도망쳐 왔다. 듣고 보니 ‘조선인 3,000명이 메구로 화약고를 덮친다는 것이다. (중략) 모두 물을 끼얹은 듯 고요했다. 칼을 든 사람, 창을 든 사람, 막대기를 든 사람이 무리를 지어 경비하고 있다. 꼭 갑옷을 입지는 않았지만, 옛날 무사 같았다. 조선인 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오지 않았다. 조선인 소란으로 밤을 새웠다.” – <진재기 3-갑(甲)> 중에서- “저녁에 조선인들이 방화하거나 우물에 독을 넣거나 한다고 전해 들어 지역민들은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해

[오마이뉴스] 윤석열 국방부, 홍범도 흉상 철거로 친일을 선언하다

2023년 9월 2일 425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실장 ‘겨레강좌’에서 주장올바른 근현대사 역사인식이 중요 8월 겨레강좌가 지난 30일 저녁 6시 뉴스타파 리영희홀에서 진행되었다. 이날 강사는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실장이었다. 방학진 실장은 ‘윤석열 국방부의 친일선언’이라는 주제하에 열띤 강의를 진행하였으며, 특히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홍범도장군 흉상 이전과 관련된 주제를 강의하여 더욱 큰 호응을 받았다. 방학진 실장은 “흉상 이전과 관련된 근현대사 역사 인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의 강의 내용 일부를 수록한다. 2010년 육군사관학교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다. 미군정 당시 설립된 군사영어학교와 관련된 언급이었다. 사설 및 유사 군사단체와 광복군, 일본군, 만주군 등에서 경력을 쌓은 수많은 자원들이 있었지만 제각기 다른 군사적 배경과 경력을 가진 이들을 한 자리에 모아 통일된 교육을 실시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이러한 어려움에 처한 당시의 군 당국은 미국식 군사제도와 교리를 도입하기로 결정한 후 우선적으로 언어적 장벽을 극복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미 군정청과의 원활한 협조에 필요한 통역관을 양성하는 일이 시급했으며…”(이하 생략) 당시 군사영어학교의 초대 교장은 리스 미군 소령이었으며 부교장은 원용덕으로서 친일 군인이었다. 현재의 육사는 미 군정기인 1945년 12월 미군이 세운 군사영어학교에서 기인한다.당시 미군은 남한 통치에 필요한 언어의 통역관이 필요했다. 미 군정은 정상적인 정치집단이 아닌 군인들이 통치하는 곳이기에 당연히 군사 영어학교를 만들어 장교를 양성했던 것이다. 이후 이곳은 지금의 육군사관학교가 된다. 군사영어학교는 애초 태생부터 친일군인들을 중용하였고,

[노컷뉴스] [기고]육사와 국방부 앞세운 친일극우세력의 역사 쿠데타

2023년 8월 31일 404

(노컷뉴스,  2023.8.31) 기사원문보기 ☞ [기고]육사와 국방부 앞세운 친일극우세력의 역사 쿠데타 육군, 해군·공군과 달리 한동안 독립운동을 뿌리로 인정않아 ‘흉상’으로 ‘반성’했던 육군, 尹정부 들어 독립운동사 지우기 궁극적으로 대통령이 동의…’뉴라이트’ 친일극우세력 인식 반영 홍범도는 시작…김구 등 독립운동가 차례차례 ‘적’ 규정될 것 육사·국방부 앞세운 ‘역사 쿠데타’, 국민이 막아내야 지난주 목요일 저녁 육군사관학교(육사)가 교내에 세운 독립운동가 다섯 분의 흉상을 철거하려고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어이가 없어서 그날 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리고 날이 밝자마자 국회 소통관에 가서 흉상 철거 시도 규탄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독립전쟁 영웅 흉상을 철거하고 대신에 친일군인 흉상을 세우려는 게 맞는다면 그건 대한민국 정부가 아니라 일본 정부의 총독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로부터 며칠 지난 뒤 상황을 보면 내 말이 틀린 게 아니라는 확신이 든다. 여론이 나빠지자 대통령실과 국방부는 소련공산당 입당 경력이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만 철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발 물러서는 시늉을 했지만 문제의 본질이 바뀐 것은 아니다. 육사 교내에 흉상이 세워질 만한 독립운동가조차도 마음만 먹으면 모욕하는 게 가능하다는 사실을 대통령실과 국방부가 확인해주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군은 한동안 독립운동을 자신의 뿌리로 인정하지 않았다. 특히 육군이 그랬다. 친일군인들이 정부 수립 이후 육군의 주도권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제1대부터 제10대에 이르기까지 역대 육군 참모총장이 모두 일본군 아니면 만주군 장교 출신이었다. 그런 가운데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해군과 공군이 자신의

[오마이뉴스] 윤석열 정권이 생각하는 홍범도의 ‘죄목’ 살펴보니

2023년 8월 31일 1320

[김종성의 히,스토리] 홍범도와 자유시 참변 ☞(오마이뉴스, 2023.8.30) 기사 원문보기 무장 독립투사 다섯 분의 흉상을 육사 경내에서 치우겠다고 나선 윤석열 정권의 공세가 홍범도 쪽으로 집중되고 있다. 국민들의 격한 반발로 인해 5인 전체를 폄하하기가 쉽지 않아서인지, 소련과 연계된 홍범도의 ‘결격 사유’를 부각시키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 28일 국방부가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윤 정권이 생각하는 홍범도의 ‘죄목’은 이렇다. “장군께서 1921년 소련 자유시로 이동한 이후 보이신 행적과 관련해서는 독립운동 업적과는 다른 평가가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 “홍범도 장군이 소련공산당 군정의회를 중심으로 하는 독립군 통합을 지지했고, 소련공산당의 자유시 참변 재판에 재판위원으로 활동한 사실, 자유시 참변 발생 후 이르쿠츠크로 이동하여 소련 적군 5군단 소속 조선여단 1대대장으로 임명 등의 역사적 사실이 있음.” “1921년 6월 러시아공산당 극동공화국 군대가 자유시에 있던 독립군을 몰살시켰던 자유시 참변과 연관되어 있다는 의혹이 있음.” 국방부는 ‘자유시 참변’을 소련공산당과 연관 지어 설명했지만, 이는 부정확하다. 1921년 6월 28일 자유를 의미하는 스보보드니에서 발생한 자유시 참변 당시, 현지에서 공권력을 행사한 주체는 소비에트공산당이 아니었다. 1920년 4월 6일 수립된 극동공화국(원동공화국·치타공화국)이 주권을 행사하는 곳이었다. 극동공화국은 소련과 긴밀한 관련이 있었지만, 소비에트의 일원은 아니었다. 법적으로 별개였다. 소비에트에 합병된 것은 1922년 11월이다. 2005년 <대동문화연구> 제52집에 수록된 홍웅호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의 논문 ‘극동공화국 건설에 나타난 소련의 동아시아정책의 한 단면’은 “소비에트공화국과 긴밀한 연관성을 지니면서도 일정한 독자성을 지닌 독특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