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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보도자료] 강제동원문제 국제회의 『한일 과거청산 운동의 기억과 전망』

2023년 10월 12일 453

[보도자료] [다운로드] ㅣ [자료집 다운로드] 강제동원문제 국제회의 『한일 과거청산 운동의 기억과 전망』 1.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2. 2018년 대법원판결을 끌어내는 등 강제동원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해 온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이하 보추협, 사무국:민족문제연구소)가 올해로 창립 22주년을 맞아 ‘한일 과거청산 운동의 기억과 전망’을 주제로 국제회의를 엽니다. 3. 국제회의에서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오랫동안 함께 노력해 온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 학자, 법률가, 언론인 등이 참여하여 한일 과거청산 운동의 ‘성과와 과제’, ‘현안과 쟁점’, ‘한일 과거청산과 나’ 등의 주제를 다룰 예정입니다. 4. 이번 국제회의에는 한국과 일본에서 일본제철, 미쓰비시 히로시마 소송대리인 장완익, 임재성 변호사,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야노 히데키 사무국장, 강제동원진상규명네트워크 나카타 미쓰노부 사무국장, 전몰자 유골을 가족의 품으로 우에다 케이시 사무국장,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즈시 미노루 공동대표, 한겨레 길윤형 국제부장, 후지코시근로정신대 소송 지원단 나카가와 미유키 사무국장, 민족문제연구소 김승은 학예실장 등이 발표자와 토론자로 참여하여 강제동원 대법원판결, 야스쿠니신사 무단합사 문제, 강제동원 피해자 유골반환 등 지난 20여 년 동안 보추협과 민족문제연구소를 중심으로 한일시민연대를 통해 노력해 온 한일 과거청산 운동의 성과와 과제를 돌아보고 전망을 토론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5. 귀 언론사의 적극적인 관심과 취재를 부탁드립니다.

[YTN라디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44편 : 후손들의합창_국민군가(백정기 손자_백재승)

2023년 10월 12일 387

민족문제연구소는 2017년 『항일음악 330곡집』을 발간한 이후 <항일음악회> 개최 등 항일음악 보급을 통한 독립정신 선양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YTN 라디오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자문을 받아 2020년 11월 ‘국치추념가’를 시작으로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를 방송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 43편 : 후손들의합창_국민군가(백정기 손자_백재승) ☞ 43편 : 도산_한반도가 (안창호 후손_필립안커디) ☞ 42편 : 우당절명시_이종찬 광복회(이회영 손자) ☞ 41편 : 대조선국민군가_박상민(박용만 후손) ☞ 간호특별기획 10편 : 김근화 (6.25 참전 간호장교) ☞ 간호특별기획 9편 : 정순자 (518 간호사) ☞ 간호특별기획 8편 : 독립운동가 최혜순_외손녀 김정 ☞ 40편 : 대한인_황기환(장철우 목사) ☞ 39편 : 대한소년기개_부석현(부두전 손자) ☞ 38편 : 대한제국 애국가_신지영(신팔균 손자) ☞ 간호특별기획 7편 : 독립운동가 정종명_박경목 서대문형문소역사관장 ☞ 간호특별기획 6편 : 독립운동가_김순애 ☞ 간호특별기획 5편 : 파독간호사 정옥련 ☞ 간호특별기획 4편 : 파독간호사 김병연 ☞ 간호특별기획 3편 : 이정숙 지사(연구자 강영심) ☞ 간호특별기획 2편 : 임수명 지사_신지영(신팔균, 임수명 손자) ☞ 간호특별기획 1편 : 박자혜 여사_이덕남(단재 신채호, 박자혜 여사 며느리) ☞ 37편 : 효창 아리랑_김영심(김상옥 손녀) ☞ 36편 : 긴날이 맞도록_이덕남(단재 신채호, 박자혜 여사 며느리) ☞ 35편 : 해방의 노래_장영달(여운형 기념사업회 이사장) ☞ 34편 : 여명의 노래_조정화(조문기 외동딸) ☞ 33편 : 김구 나의 소원_김용만(김구 증손자) ☞ 32편 : 이육사의

[오마이뉴스] 범상치 않은 친일파, 한글을 모독한 대표적 문인

2023년 10월 10일 687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김용제 세종대왕은 <훈민정음> 서문에서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라고 말했다. 이 나랏말쌈은 중국뿐 아니라 일본과도 당연히 달랐지만, 일본제국주의는 한국인들에게 일본어를 강요했다. 그들의 용어로 하면 ‘국어 상용화’ 정책을 강제한 것이다. 일제가 한국의 말과 글을 억압한 1차적 의도는 징병제에 있었다. 한국인을 일본 군인으로 만들려면 한국어부터 없애야 한다는 게 그들의 판단이었다. 2019년에 <일본문화학보> 제83집에 수록된 송숙정 중원대 연구교수의 논문 ‘일본이 식민지에서 자행한 국어 상용화 정책에 관한 일고찰’에 조선총독부의 1942년 자료인 <극비 조선인 징집에 관한 조사>가 인용됐다. 이 자료에 따르면, 징병제 실시 계획이 발표된 1942년에 한국인 징병 적령자 21만 4229명 중에서 일본어를 해득할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24%인 5만 1959명이었다. 외국 지배자의 입장에서 볼 때, 징세 대상자는 언어가 달라도 무방하지만 징병 대상자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지휘관의 명령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병사들 간에도 전우애가 형성되기 어렵다. 이런 상태로는 한국 청년들을 일본 군인으로 개조하기 힘들다는 게 일본의 판단이었다. 1942년에 국어 상용화 정책이 조선에서 실시된 데는 그런 판단이 크게 작용했다. 친일파들은 그 정책을 위해서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일본어 상용화 정책은 총독부 단독으로는 관철되기 힘들었다. 한국어 사용자들을 일어 사용자로 만드는 일이었으므로, 두 언어에 모두 능한 친일파들이 앞장서야 정책이 수월하게 성사될 수 있었다. 이 일에 앞장선 대표적 친일파가 김용제다. 지금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가 얼마나 많은

[법률신문] 정부, 친일파 이해승 후손 홍은동 땅 국고환수 소송 패소 확정

2023년 10월 6일 515

(법률신문, 2023.10.06) 기사원문 보기 ☞[판결] 정부, 친일파 이해승 후손 홍은동 땅 국고환수 소송 패소 확정 [판결] 정부, 친일파 이해승 후손 홍은동 땅 국고환수 소송 패소 확정 정부가 친일파 이해승의 후손이 소유한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임야를 국고로 환수하기 위해 소송을 냈지만 패소가 확정됐다. 대법원 민사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9월 21일 국가가 이해승의 손자 이우영 그랜드힐튼호텔 회장을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소송(2022다258774)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철종의 아버지 전계대원군의 5대손인 이해승은 국권침탈 때 기여한 공으로 1910년 일제로부터 후작작위를 받았다. 1912년 ‘종전 한일 관계에 공적이 있다’는 이유로 한국병합 기념장을 받았고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귀족 지위와 특권을 누렸다. 이해승은 1917년 홍은동 임야 2만7905㎡를 취득했다. 이 땅은 1957년 손자인 이우영 회장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 그러나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던 이 땅은 1966년 경매에 부쳐져 제일은행이 낙찰받았다. 이 회장은 이듬해 이 땅을 도로 사들였다. 이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이해승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정하자 정부는 홍은동 임야를 환수하기 위해 소유권이전등기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중략… ※관련동영상 ☞KBS뉴스: ‘일제 후작’ 이해승 후손 땅 환수 실패…정부 최종 패소 [오늘 이슈] ☞JTBC뉴스: 1998년까지 되찾은 땅만 ‘여의도 면적 3배’…’거물 친일파’ 이해승은 누구?

[팟캐스트] 역발상 시즌2_조선혁명선언 100년 3부_의열단은 어떻게 조선혁명선언을 계승하고 실천했나?

2023년 10월 10일 320

☞ (10.03) ‘역발상’ 시즌 2: 조선혁명선언 100년 3부_의열단은 어떻게 조선혁명선언을 계승하고 실천했나? 100년 전 1923년 1월 ‘조선혁명선언’이 중국 상해에서 의열단 이름으로 나왔다. 출연_김영범(대구대 명예교수) 오늘의 이야기 1.혁명적 폭력 사상의 전승 2.의열단의 혁명운동과 혁명당적 행보 3.민족혁명당의 조선혁명론 재정립 4.조선민족혁명단 혁명노선에서의 유의미한 변화들 5.조선혁명선언의 역사적 의의와 현재적 의미 ※지난 방송 ☞ (09.26) ‘역발상’ 시즌 2: 조선혁명선언 100년 2부_조선혁명선언 전문 읽기 ☞ (09.19) ‘역발상’ 시즌 2: 조선혁명선언 100년 1부_조선혁명선언에 담긴 혁명사상 ☞ (09.05) ‘역발상’ 시즌 2: 간토대학살 100년 2부 “학살 이후 식민지 조선에서는 어떤일들이?” ☞ (08.31) ‘역발상’ 시즌 2: 소설 ‘범도’의 작가 방현석과 함께_특별편성2부 ☞ (08.30) ‘역발상’ 시즌 2: 소설 ‘범도’의 작가 방현석과 함께_특별편성1부 ☞ (08.29) ‘역발상’ 시즌 2: 간토대학살 100년_1부 “은폐된 학살_누가 어떻게 얼마나 학살하였나?” ☞ (07.11) ‘역발상’ 시즌 2: 항일음악 이야기(4) “중일전쟁 이후 청년들의 공연활동과 항일음악” ☞ (07.04) ‘역발상’ 시즌 2: 항일음악 이야기(3) “항일음악 속 우리민요와 일제 잔재” ☞ (06.27) ‘역발상’ 시즌 2: 항일음악 이야기(2) “신흥무관학교의 항일노래” ☞ (06.20) ‘역발상’ 시즌 2: 항일음악 이야기(1) “항일음악 종소리 프로젝트” ☞ (06.13) ‘역발상’ 시즌 2: 친일파와 반민특위_나는 이렇게 본다 2부 ☞ (06.06) ‘역발상’ 시즌 2: 친일파와 반민특위_나는 이렇게 본다 1부 ☞ (05.30) ‘역발상’ 시즌 2: 이승만의 역사적 평가는 끝났다_씻을 수 없은 이승만의 죄과들 ☞ (05.23) ‘역발상’ 시즌 2: 이승만 띄우기에 나선 보훈처_기념사업에 약 460억원 추산 ☞ (05.16) ‘역발상’ 시즌

[추석특집대담]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청산안된 일제잔재 친일정권의 역사전쟁

2023년 10월 4일 1127

  ■ 추석특집대담 :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청산안된 일제잔재 친일정권의 역사전쟁 ■ 진행 : 이경은 전국비상시국집행위원 ■ #대한제국보다일제가더낫다? #윤석열은미일합작품 #역사를왜곡하려는자 #홍범도장군님이하늘에서웃으신다 ☞ 전국비상시국회의 공식홈 

[오마이뉴스] 김일성 곁으로 간 열성 친일파… 뉴라이트가 덥썩 물다

2023년 10월 10일 501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장헌근 해방 직후의 급격한 인구이동에서 나타난 특징 중 하나는 친일파들의 대거 남하다. 일본제국주의에 부역한 반민족행위자들이 38도선 이북에서 이남으로 남하하는 현상이 있었다. 미군정이 남한 진보진영을 견제할 목적으로 이북 출신 극우세력을 끌어들이고 후원했기 때문에, 남쪽을 향하는 친일파들의 발걸음은 한층 가벼웠다. 그런데 이런 흐름에 역행하는 사례들도 있었다. 북에서 내려오는 친일파들의 틈을 비집고 북으로 올라가는 소수의 친일파다. 1946년 7월에 월북한 무용가 최승희는 이남에서 친일 행적이 논란이 되자, 이를 피해 북으로 달아난 사례다. <친일인명사전> 제3권 최승희 편은 그가 중국에서 1946년 5월 귀국한 일을 설명한 직후 “일제강점기 행적 등이 문제가 되어 정착하지 못하고 7월 20일 남편 안막, 큰오빠 최승일과 함께 월북했다”고 기술한다. 그 뒤 김일성의 지원 하에 최승희무용연구소를 열고 활발하게 활동했다. 최승희처럼 친일파인데도 월북해 북한 사회의 중심적 인물로 활약한 인물들은 더 있다. 조선총독부 자문기관인 중추원의 참의를 지낸 장헌근도 그런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일제의 녹봉 받아먹던 장헌근의 36년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보고서> 제4-15권과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서 친일파로 규정된 장헌근은 임오군란 1년 전인 1881년 6월 28일 출생했다. 태어난 곳은 서울이다. 그의 프로필에서 눈에 띄는 것은 10대 시절부터 경력이 꽤 다채롭다는 점이다. 이곳저곳에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한 것이 이목을 끈다.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16세 때인 1897년에 일본 야마구치현에서 양잠을 배우고, 이듬해 사가현에서 직물 실습을 배웠다.

[팟캐스트] 역발상 시즌2_조선혁명선언 100년 2부_조선혁명선언 전문 읽기

2023년 9월 26일 798

☞ (09.26) ‘역발상’ 시즌 2: 조선혁명선언 100년 2부_조선혁명선언 전문 읽기 2부에서는 조선혁명선언 전문을 낭독합니다. 낭독_MC노 조선혁명선언 강도 일본이 우리의 국호(國號)를 없이하며, 우리의 정권을 빼앗으며, 우리의 생존적 필요조건을 박탈하였다. 경제의 생명인 산림, 천택(川澤), 철도, 광산, 어장 … 내지 소(小)공업 원료까지 다 빼앗아 일절의 생산기능을 칼로 베이며 도끼로 끊고, 토지세, 가옥세, 인구세, 가축세, 백일(百一)세, 지방세, 주초(酒草)세, 비료세, 종자세, 영업세, 청결세, 소득세 … 기타 각종 잡세가 날로 증가하여 혈액을 있는 대로 다 빨아가고, 웬만한 상업가들은 일본의 제조품을 조선인에게 매개하는 중간인이 되어 차차 자본 집중의 원칙하에서 멸망할 뿐이오, 대다수 인민 곧 일반농민들은 피땀을 흘리어 토지를 갈아, 그 종년(終年) 소득으로 일신과 처자의 호구거리도 남기지 못하고, 우리를 잡아 먹으려는 일본 강도에게 진공하여 그 살을 찌워주는 영세의 우마(牛馬)가 될 뿐이오, 내종(乃終)에는 그 우마의 생활도 못하게 일본 이민의 수입(輸入)이 연년(年年) 고도의 속율(速率)로 증가하여 ‘딸깍발이’등쌀에 우리 민족은 발 디딜 땅이 없어 산으로 물로 서간도로 북간도로 시베리아의 황야로 몰리어 가 아귀(餓鬼)부터 류귀(流鬼)가 될 뿐이며… 이하 생략……. ※지난 방송 ☞ (09.19) ‘역발상’ 시즌 2: 조선혁명선언 100년 1부_조선혁명선언에 담긴 혁명사상 ☞ (09.05) ‘역발상’ 시즌 2: 간토대학살 100년 2부 “학살 이후 식민지 조선에서는 어떤일들이?” ☞ (08.31) ‘역발상’ 시즌 2: 소설 ‘범도’의 작가 방현석과 함께_특별편성2부 ☞ (08.30) ‘역발상’ 시즌 2: 소설 ‘범도’의 작가 방현석과 함께_특별편성1부 ☞ (08.29) ‘역발상’ 시즌

[오마이뉴스] 친일경찰 성공기… 윤 정권에서 부활한 그의 후예들

2023년 9월 26일 897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전봉덕 해방 이후 80년 가까이 되도록 친일 청산이 성사되지 못했다. 이를 훼방하는 세력이 항상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윤석열 정권이 그 바통을 쥐고 있다. 친일파 백선엽을 띄우고 독립투사 홍범도를 폄하하는 윤석열 정권의 모습에서 그 세력의 노골적인 몸부림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 노골성을 선구적으로 보여준 인물이 있다. 친일파 아무개보다는 헌병사령관이나 법사학자(法史學者)로 더 많이 기억되는 전봉덕이다. 일제강점기의 친일행위보다는 해방 이후의 친일청산 훼방에서 훨씬 혁혁한 기록을 세운 인물이다. 친일 경찰, 일제 패망 후에는 ‘친일 청산’ 훼방 전봉덕은 백선엽의 고향인 평안남도 강서군의 동쪽인 평양에서 태어났다. 출생 연도는 백선엽보다 10년 빠르다. 1910년 12월 12일이다. 22세 때인 1932년에 경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만주 펑톈(봉천)보통학교 교원이 된 그는 1934년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들어갔다. 그런 다음, 1937년 경성제대 법문학부에 입학해 3년 뒤 졸업했다. 그의 인생이 친일의 궤적으로 접어들고 있음을 표상하는 상징적인 두 사건이 대학 졸업 1년 전에 있었다. <친일인명사전> 제3권 전봉덕 편은 “재학 중이던 1939년 10월 일본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같은 해 11월 사법과에 합격했다”고 설명한다. 행정고시와 사법시험을 1개월 간격으로 통과했던 것이다. 그는 두 개의 ‘고문’ 시험에 합격한 상태에서 30세 때인 1940년 3월 경성제대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내무국에서 수습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 뒤인 1941년 2월, 평안북도경찰부 보안과장으로 기용됐다. 1993년에 발간된 <친일파 99인> 제2권에 수록된 김무용 구로역사연구소 연구원의 기고문 ‘전봉덕:

[일요신문] [인터뷰] ‘지청천 외손자’ 이준식 “홍범도 흉상 이전, 모든 독립투사 모욕”

2023년 9월 22일 1659

(일요신문, 2023.09.22) 기사원문 보기 ☞ [인터뷰] ‘지청천 외손자’ 이준식 “홍범도 흉상 이전, 모든 독립투사 모욕” “일부 극우 예비역 장성들, 독립군과 단절 시도…반공은 육사·국군의 최종 지향점 아냐” [일요신문]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9월 15일 육군사관학교로부터 명예졸업증서를 받았던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졸업장을 반납하며 항의 뜻을 나타냈다. 윤기섭 선생 외손자 정철승 변호사, 지청천 장군 외손자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 이상룡 선생 증손자 이항증 국무령이상룡기념사업회 상임이사 등이 참여했다. 일요신문은 9월 21일 이준식 전 관장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 전 관장은 통일부 공보관,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상임위원, 근현대사기념관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흉상 이전 방침을 언제 처음 들었나. “8월 24일 연락을 받았다.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이었다. 저녁 7시쯤이었다. 당시 집사람과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사무총장은 내일(8월 25일) 육사에서 다섯 분(홍범도 지청천 이회영 이범석 김좌진)의 흉상을 철거하려고 한다고 했다. 소식을 듣고 한동안 멍하게 있었다. 상황 파악이 잘 안 됐다. 그다음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독립운동가들에게 이렇게 모욕을 줄 수 있는가. 참담했다. 그날 잠도 잘 못 잤다. 외할아버지(지청천)에 대한 모욕을 떠나 독립운동을 한 모든 이들에 대한 모욕이다.” ―바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소식을 들은 날 급하게 주변 사람들과 의견을 나눴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다음 날(8월 25일)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했다. 김좌진 장군의 후손인 김을동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