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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친일파(親日派)도 울산의 인물?

2014년 6월 30일 601

【울산=뉴시스】조현철 기자 = 울산시가 울산 정명(定名) 600년 기념사업으로 추진 중인 ‘울산의 인물‘ 사전 발간사업이 부실 논란에 휩싸였다. 버젓이 친일파(親日派) 이름이 올라있는 등 인물선정에서부터 내용 오류까지 총체적인 문제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30일 울산발전연구원 울산학센터 용역 공청회 자료를 보면 인물선정위원회(위원 10명)에서 뽑은 예비 후보자는 1편에 실릴 울산출생자 386명과 2편에 실릴 타지 출생자 201명을 합쳐 총 587명이다. ◇’친일파‘ 다수 포함 파장 특히 이 가운데 노덕술·손영목·박관수·송태관 등 친일행각을 벌인 인사들이 다수 포함돼 있어 파장이 일고 있다. 울산 장생포 산(産)인 노덕술(1899~1968)은 일제 강점기 대표적인 악질 친일 경찰로 알려져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4인 명단에도 실렸다. 손영목은 울산군수를 지냈지만 이렇다 할 업적이 없으며 1928년 일본이 준 훈장(대례기념장)을 받았다. 송태관은 민속학자 송석하의 부친으로, 이토 히로부미의 재정 담당자와 인연을 맺었다. 토호세력이었을 뿐 울산을 위해 한 일이 없다는 게 관계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울산에 공도 없는 친일파가 들어간 이유는 근현대 자료조사를 맡은 조사위원의 자료(울산의 근현대 인물을 총망라한 기초자료)가 여러 번의 회의를 거치면서 선정기준에 의해 걸러지지 않은 탓이다. 울산의 인물 선정기준엔 울산에서 출생하거나 활동한 인물 중 지역사회, 국가와 민족의 발전에 기여한 사람, 활동사실의 진위여부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인물 등으로 명시돼 있으나 이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 ◇독립운동가 박상진·소설가 오영수 내용 ‘오류‘ 독립운동가 박상진, 소설가

뉴욕타임스 “문의 친일파 논란, 박정희 딸 박근혜에게도 문제”

2014년 6월 27일 352

미국의 유력 일간신문인 뉴욕타임스가 문창극 총리 지명자의 자진 사퇴로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에 이어 또 한번의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고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특히 이 보도에서 뉴욕타임스는 문창극 총리 지명자를 둘러싸고 불거진 ‘친일파’ 논란은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인 독재자 박정희가 한때 일본제국군 장교였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에게도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2012년 박 대통령의 대선 유세기간 동안, 그녀를 비판한 사람들은 그러한 가족사를 언급하며 그녀를 신뢰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고도 전했다. 아울러 신문은 한국에서 국무총리는 대체로 의전적인 자리이지만 실패하는 지명을 연속적으로 한다는 것은 박근혜 정부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분열된 나라에서 박 대통령이 여론을 통과할 수 있는 후보자를 고를 능력이 있는지 의구심을 품게 한다고 보도했다.  다음은 뉴욕타임스의 해당 보도 전문과 미국에 본사를 둔 전문번역 시민네트워크 ‘뉴스프로’의 번역본이다.     Nominee for South Korean Premier Exits Over Colonization Remarks By CHOE SANG-HUN June 24, 2014 SEOUL, South Korea ? President Park Geun-hye, whose approval ratings have fallen since an April ferry disaster that left hundreds dead, suffered a new political blow on Tuesday as her second consecutive nominee for prime minister stepped aside, amid an uproar over his suggestion that Korea’s colonization by Japan had been “God’s will.” “Since I was appointed as prime minister, this country has plunged

한완상 “6.25때 국민들 안심시키는 방송해놓고 달아났던 이승만 떠올리게 한 세월호 참사”

2014년 6월 27일 388

대학총장, 부총리, 장관 등 다채로운 경력, ‘햇볕정책’ 최초 제안도   압축적 경제성장 과정에서 생겨난 가치혼란과 무질서, 부패 여전 2014년 한국 1950년대 수준으로 하루아침에 후퇴해버려방법 가리지 않고 목적만  달성하면 최고라는 생각 여전 <위클리서울>은 2007년부터 남북관계, 생태와 환경, 교육, 노동과 인권, 국가보안법 등의 문제와 관련 각계 인사들과 연속 인터뷰를 진행해왔다. 그동안 송두율 교수,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김상봉 교수, 김수행 교수,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강기갑 전 통진당 대표, 노회찬·심상정 의원, 정세현·이종석·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홍윤기 교수, 박원순 서울시장, 이상돈 교수, 손호철 교수, 배우 최종원·문성근·권해효 씨, 가수 안치환 씨, 지율스님, 강정구 교수, 우석훈 교수, 박재동 화백, 이진경 교수, 유시민 의원, 문재인 의원, 김태동 교수, 신율 교수, 김명곤 전 문광부 장관, 홍세화 전 진보신당 대표, 서중석 교수, 최재천 교수, 한홍구 교수, 정지영 감독, 윤구병 변산공동체 대표, 표창원 교수, 함세웅 신부, 이용길 노동당 대표, 박범신 작가, 진중권 교수, 박노자 교수, 강수돌 교수, 권영길 전 민노당 대표, 안병욱 교수, 정태인 새사연 원장, 조희연 교수, 철학자 강신주, 신경림 시인, 박태균 교수, 한승헌 변호사, 백기완 선생,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한강 작가 등 340여 명의 사회 각계 인사들과 인터뷰를 진행해왔다. 이번호에는 한완상 전 통일부총리와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진보적 자유주의자, 평화순례자로 불리는 한완상 전 부총리. 그동안 그는 모든 극단주의를 배격하고, 극우와 극좌 양 극단의 정치사상을 배제하며

‘부민관 폭파’ 조문기 선생은 모교에 동상

2014년 6월 27일 387

다시 기리는 독립운동가 화성주민·애국지사 후손 등 모여 성금모아…다음달 매송초 교정에 ‘부민관 폭파 의거’의 주역인 독립운동가 조문기(1927~2008) 선생을 기리는 동상이 다음달 24일 조 선생의 모교인 경기도 화성시 매송초등학교 교정에 세워진다. 조 선생은 광복 직전인 1945년 7월24일 대의당 당수 박춘금 등 친일파 수장들과 조선총독부 고위 관료들이 총집결한 가운데 경성 부민관(현 서울시의회 건물)에서 열린 ‘아시아민족 분격대회’에 폭탄을 터뜨렸다. 일제 강점기 마지막 의열 투쟁으로 기록된 부민관 폭파 의거는 가혹한 전시 체제 하에서도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가 굳건히 살아 있음을 만천하에 알린 사건이었다. 조 선생은 대한애국청년당을 결성해 독립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광복 이후에도 민족사 정립에 평생을 바친 조 선생은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재임 중이던 2008년 별세했다. 그러나 조 선생의 생가가 있는 화성시 매송면 야목리 등지에는 정작 조 선생을 기릴 기념비조차 없었다. 지난해 2월 채인석 화성시장을 비롯해 화성지역 주민들과 민족문제연구소, 광복회 화성지회,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모여 ‘조문기 지사 흉상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했고, 동상 제작에 필요한 5800여만원의 성금 모금에 나섰다. 이후 1년여 만에 화성시가 2500여만원, 국가보훈처가 1500여만원을 지원하고, 50여명의 시민들이 적게는 2만원에서 많게는 100만원씩 모두 1000여만원의 성금을 모은 끝에 동상 제작을 마쳤다. 동상은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을 제작한 작가 김운성·김서경 부부가 만들었고, 제막식은 부민관 폭파 의거일인 다음달 24일 열린다.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사무국장은 “최근 독립운동가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화성지역 주민과 자치단체, 시민단체 등이

불교, 고구려 백제 신라에 어떤 영향 끼쳤나

2014년 6월 26일 682

불교사회연구소(소장 법안스님)는 7월2일 오후 2시 ‘고대 불교와 국가’를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개최한다. 이번 세미나는 최연식 교수(동국대)의 사회로 총 3개 주제를 논의한다. 1부에서는 ‘한국 고대의 불교와 정치’를 주제로 조경철 박사(연세대)가 고구려·백제·신라의 불교수용과 국난 타개, 고구려와 백제의 불교 주도권 경쟁, 백제와 신라의 정통성 확립과 신화의 재편, 백제 불신(佛神)의 도읍 창건, 신라의 황룡사 창건 등을 발표한다. 토론은 조우연 박사(인하대 한국학연구소)가 맡았다. 2부에서는 남무희 박사(국민대)가 ‘고대 불교와 왕권–신라 중고시대와 중대를 중심으로’를 주제로 신라 중고 왕실과 승려들의 관계, 중대 왕권과 승려들의 관계, 불교의례와 왕권 강화에 대해 발표한다. 박미선 박사(대림대)가 토론에 나선다. 3부에서는 박광연 박사(동국대)가 ‘신라시대 불교와 왕권’을 주제로 불교의 국왕관, 중고기 왕권 강화 수단으로서의 불교, 전륜성왕과 석가족, 중대 정법치국론과 속산왕 인식의 등장, 하대 속산왕에서 전륜성왕으로 약화된 왕권 회복을 위한 노력, 불교적 국왕관의 변화와 그 의미를 고찰한다. 토론은 김병곤 박사(동국대 교양교육원)가 맡았다. 2011년부터 한국 호국불교를 재조명하는 연구 사업을 진행해온 불교사회연구소는 ‘호국불교’라는 용어의 개념과 범주 성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한국불교사에서 호국불교 전통의 재조명’, ‘조선시대 의승군 연구’, ‘일제강점기 불교계의 항일운동’, ‘고려시대의 호국불교’, ‘조선후기 승군 제도와 승역 연구’ 등을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개최해왔다. 이번 세미나를 시작으로 불교사회연구소는 우리 역사 속에서의‘호국불교’의 내용과 의미를 재평가하고, 올바른 용어 정립을 위해 2014년부터 ‘불교와 국가’를 주제로 각 시대별·국가별 불교와 국가와의 관계를 조망하는 연구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강지연

여전히 남는 문창극 가계 관련 ‘의문들’

2014년 6월 25일 1482

ㆍ오락가락 하는 조부 독립운동 경력 관련 말들, 국가보훈처의 심사잣대는? ㆍ“청와대, 문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뭐냐” 검증시스템 도마에 문창극 국무총리 지명자가 결국 사퇴했다. 그는 사퇴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도움이 되고자 했으나, 지금은 사퇴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해서”라고 했다. <주간경향>은 지난 주 문창극 지명자의 가계를 추적하는 기사를 썼다. 그리고 6월 23일, 문창극 전 지명자가 국가보훈처를 통해 조부와 부친에 관한 자료 일부를 공개했다. 문 전 지명자는 6월 24일 사퇴기자회견에서 “저널리즘의 기본은 사실보도가 아니라 진실보도”라고 밝혔다. 문 전 국무총리 지명자의 주장에 동의한다. 진실은 규명되어야 한다. 6월 23일 공개된 자료를 통해 새롭게 밝혀진 내용을 보도하는 것이 독자에 대한 의무라고 판단, 주초에 벌어진 논란을 포함해 기사내용을 업데이트했다. <편집자 주> 논란이 되었지만 알려진 것은 거의 없었다. 문창극 가계의 미스터리다. KBS 9시 뉴스가 공개한 문창극 발언은 거대한 논란을 촉발했다. 6월 18일, 생존항일광복지사와 광복군 후손들이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장에 섰다. 문창극을 비롯한 친일인사들의 임명을 반대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광복운동가 후손 일동’ 명의의 플래카드를 들었다. 플래카드에는 ‘다카기 마사오 딸의 맨 얼굴인가?’라고 적혀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창씨개명 사실을 거론하며 ‘돌직구’를 날린 것이다. ▲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명 14일만인 24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자진시퇴의사를 밝히고 인사하고 있다. 문창극 후보자는 자신이 일제시대 독립활동으로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은 독립유공자의 후손임을 강조했다. | 김창길

문창극 애국지사 자손 보도, 민족문제연구소 “확정할 자료 없어”…문창극 아버지 생전 한 말은 무엇?

2014년 6월 24일 482

문창극 애국지사 자손 보도, 민족문제연구소 “확정할 자료 없어”…문창극 아버지 생전 한 말은 무엇? 민족문제연구소는 23일 애국지사 문남규 선생이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할아버지로 밝혀졌다는 보도에 대해 “애국지사 문남규 선생과 문창극 후보의 조부가 동일인이라고 확정할 수 있는 자료는 아무 것도 없다”고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 유은호 책임연구원은 “현재 발굴된 사료로는 문남규 선생의 출생지를 알 수 없다. 다만 대한독립단 주00 휘하 소대 대원으로 1920년(민국2년) 평안북도 삭주에서 일본군과 전투 중 전사했고 이 같은 내용이 1921년 4월9일자 독립신문에 실려있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다”면서 “국가보훈처 발표와 달리 독립신문 기사의 문맥을 볼 때 선생은 1921년이 아니라 1920년에 전사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독립신문의 기사는 당시 여건상 사건 발생 후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 실리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고 주장했다. 유 책임연구원은 또 “국가보훈처의 공훈록이나 공적조서에도 문남규 선생의 출생지나 본적이 미상으로 되어 있는데 갑자기 원적지가 ‘삭주’라고 주장하는 보훈처의 의도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다. 만약 삭주 전투를 근거로 삼았다면 ‘만주 독립군의 국내진공’이라는 당시 독립전쟁의 일반적인 양상을 무시한 비상식적 해석”이라 지적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공식 견해는 “문남규 선생은 1920년 삭주에서 전사한 것으로 판단되며 그 외 출생지 등 인적 사항은 특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 조세열 사무총장은 “설령 문창극 후보자의 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라고 해도 그의 잘못된 가치관과 역사관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는 일”이라며, “그의 발언은 독립운동을 부정한 것으로, 선대가

“전몰자 유골발굴 때 한국인도 찾아달라” 日에 촉구

2014년 6월 24일 479

▲ 2차 대전 때 일본군에 강제 동원됐다가 전사한 남대현 씨의 여동생 남영주(75·가운데) 씨가 23일 오후 일본 도쿄도(東京都) 지요다(千代田)구 참의원 의원회관에서 ‘오빠의 유해를 찾아 선산의 부모님 곁에 모시고 싶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유족 일본방문…후생성, 한반도 출신자 유해 700위 보관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2차 대전 때 일본군에 강제 동원돼 외국에서 사망한 피해자의 유족이 일본 정부가 한국인 유해 발굴에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촉구했다. 23일 남영주(75·여) 씨 등 유족 4명은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민족문제연구소 측과 함께 도쿄도(東京都) 지요다(千代田)구 참의원 의원회관을 방문해 일본 후생노동성 관계자와 면담하고 유해발굴 사업에 관한 요청서를 전달했다. 이들은 일본 정부의 유해 발굴 사업에 한국 유족을 정식으로 참여시키고, 발굴된 모든 유해의 DNA 검사를 시행해 신원 정보를 파악한 뒤 유골을 보존하라고 요구했다. 또 유해를 찾고 싶어하는 한국 유족의 DNA 정보를 수집해 유해 조사에 활용하고 당사자의 사망지역이 판명되면 유족의 DNA와 대조하는 작업을 시행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일본 정부가 유해를 일본인 유족에게 돌려주려고 실시하는 DNA 조사 관련 절차를 한국 유족에게도 마찬가지로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측 방문단은 마셜제도의 콰잘렌 환초(環礁)에 있는 전몰자 묘지가 해안 침식 때문에 유실될 우려가 있는 것과 관련해 이곳에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있는 한국인 피해자 유족 6명의 DNA 정보를 일본 정부가 우선 활용해 유해를 찾을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도 제기했다. 후생노동성 측은 유골 수습

[보도자료] 문창극 조부 대한독립단 대원설 확증 없어

2014년 6월 23일 4984

▶ 다운로드: 보도자료(hwp) <보도자료> 문창극 조부 대한독립단 대원설 확증 없어 국가보훈처의 무책임한 문창극 총리후보 지원 조선일보 등 일부 언론은 23일 국가보훈처 관계자가 “대한독립단 대원으로 활동한 애국지사 문남규 선생이 문창극 후보자의 조부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보훈처 관계자가 “문창극 후보는 총리 후보가 된 이후 보훈처에 조부의 독립운동 사실을 문의해 왔다”며 “한자 이름이 동일하고, 원적지가 같은 점, 문 후보자의 부친 증언 등을 미뤄 문 후보자의 조부를 애국지사 문남규 선생으로 판단했다”고 그 근거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보도에 의하면 문창극 후보자의 아버지인 문기석(1989년 사망) 씨는 1931년 호주 상속을 받았으며, 생전에 “7세(1921년)때 (독립운동을 했던) 아버지가 숨졌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민족문제연구소는 이같은 보도 직후 국가보훈처의 발표에 의문을 표시하면서 “애국지사 문남규 선생과 문창극 후보의 조부가 동일인이라고 확정할 수 있는 자료는 아무 것도 없다”고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 유은호 책임연구원은 “현재 발굴된 사료로는 문남규 선생의 출생지를 알 수 없다. 다만 대한독립단 주00 휘하 소대 대원으로 1920년(민국2년) 평안북도 삭주에서 일본군과 전투 중 전사했고 이 같은 내용이 1921년 4월9일자 독립신문에 실려있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하고, “국가보훈처 발표와 달리 독립신문 기사의 문맥을 볼 때 선생은 1921년이 아니라 1920년에 전사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1921년 독립신문의 기사는 대한독립단 약력으로 그간의 전공을 정리 소개한 것이며, 당시 여건상 만주나 국내의 항일운동은 사건 발생 후 상당한 시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