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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교학사 교과서 채택 부성고 전 교장, 부산교육감 출마

2014년 5월 9일 1691

출마설 부인하던 신현철 전 교장 “구국의 일념으로” ▲  신현철 전 부성고 교장이 8일 오전 부산시교육청 기자실을 찾아 교육감 선거 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정민규 관련사진보기 숱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역사 왜곡 논란을 불러일으킨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채택을 강행한 바 있는 부산 부성고등학교의 신현철 전 교장이 부산교육감 출마를 선언했다. 그동안 소문으로만 나돌던 교육감 출마설을 부인해왔던 그였지만 8일 오전 부산교육청 기자실을 홀로 찾은 그는 자신을 진정한 보수 교육감 후보라고 소개했다.  신 전 교장은 이날 기자들에게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종북·좌파 척결과 보수개혁을 위하여 지난 교학사 역사교과서 전국 유일 채택시 좌파들의 어떤 외압도 무릅쓰고 고수하였듯이 구국의 일념으로 부산교육감 출마를 결행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어진 입장 발표에서 그는 다른 보수 성향 후보들을 ‘무늬만 보수’라고 평가했다. 신 전 교장은 “현재 나온 분들은 보수가 아니다”며 “(뒤늦은 출마선언도) 교학사 교과서를 홀로 지켰듯이 보수 개혁을 위하는 모습을 시민들이 알아줄 것”이라고 자신했다.  동시에 그는 일부 역사 교과서가 좌편향 됐다는 주장을 펴며 교과서 수정과 교체에도 나서겠다는 뜻을 전했다. 신 전 교장은 “대한민국에 확실한 국가관 교육을 시키려면 전국에 읽히는 잘못된 좌편향 교과서를 수정하거나 바꾸어야 하기에, 애국하는 마음으로 부산에서부터 출발해서 전국적으로 확산해나갈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또 그는 선거를 통한 교육감 선출이 현실에 맞지 않다는 의견을 내비치며 대통령 임명제를 검토해봐야 한다는 입장도 곁들였다. 신 전 교장은 학교를 위한

[2014.05.07] 4.19 피의 화요일 4.26 승리의 화요일

2014년 5월 8일 353

라디오백년전쟁: [[05.07] 4.19 피의 화요일 4.26 승리의 화요일] ☞[팟빵]: http://www.podbbang.com/ch/6647?e=21395587 ☞[다운]: http://file.ssenhosting.com/data1/guitarkirk/140507bnz.mp3

제자들의 의로운 죽음, 선생도 나라도 바꿨다

2014년 5월 3일 1442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른바 진보 세력 안에서도 부박한 담론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역사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 절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를 이어간다.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은 한국 현대사 연구를 상징하는 인물로 꼽힌다. 매달 서 이사장을 찾아가 한국 현대사에 관한 생각을 듣고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다섯 번째 이야기 주제는 4월혁명이다. <편집자>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이야기 마당 1∼31] 한국전쟁 / 친일파 / 학살 / 해방·분단 [4월혁명, 첫 번째 마당] ‘혁명가’ 박정희는 숭배, 독재자 쫓아낸 건 찬밥? [4월혁명, 두 번째 마당] “대통령은 부정 선거 몰랐다? 신문도 안 봤나” [4월혁명, 세 번째 마당] “대통령은 부정 선거 할 이유 없었다? 모르는 소리“ [4월혁명, 네 번째 마당] 민주당 간부는 왜 깡패에게 맞아 죽어야 했나 [4월혁명, 다섯 번째 마당] ‘대통령 죽여라’…학생 시신 속 쪽지의 비밀 [4월혁명, 여섯 번째 마당] 국민 죽이고 ‘야당 탓’ 대통령, 미국도 안 지켜줬다 [4월혁명, 일곱 번째 마당] ‘참변은 너희 탓’ 떠넘긴 대통령, 결국 쫓겨났다 [4월혁명, 여덟 번째 마당] ‘일본과 일전불사’ 대통령, 속셈은 따로 있었다 프레시안 : 4월혁명에서 교수단 시위(1960년 4월 25일)는 이승만 하야 국면으로 넘어가는 분수령으로 꼽힌다. 이 시위마저 없었으면 지식인들은 정말 할 말이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언론중재위 백년전쟁 관련 허위보도 정정 결정

2014년 5월 2일 1689

언론중재위 백년전쟁 관련 허위보도 정정 결정 문화일보, “‘백년전쟁’ 국보법위반 혐의, 사실 아니다” 정정보도 문화일보가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라 오늘(5월 2일)자 사회면(14면)에, 지난 4월 10일 자에 실린 <‘백년전쟁’ 국보법 위반 혐의 조사>(12면) 제목의 기사에 대한 정정보도를 게재했다. 문화일보는 서울중앙지검이 역사다큐 ‘백년전쟁’에 대한 사자(死者)명예훼손 고소 사건 수사를 형사부에서 공안부로 이첩했다는 사실을 다루면서 “조사과정에서 이적표현물 배포 등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드러난 것으로 알려졌다”고 기술하는 등 왜곡보도로 기사에서 언급된 임헌영 소장과 김지영 감독은 물론 우리 연구소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한 바 있다. 이에 임 소장과 김 감독은 4월 21일 문화일보와 인터넷 문화일보를 상대로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를 청구했다. 언론중재위는 4월 29일 신청인의 주장을 전부 수용하여 정정 조정 결정을 내렸으며, 이에 따라 문화일보는 위 기사에 대해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기에 바로잡습니다”, “임 소장은 검찰 조사를 받은 사실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라는 내용의 정정보도를 오늘 게재한 것이다. 또 홈페이지 <뉴스>섹션 ‘사회’ 섹션 초기 화면에도 24시간 동안 위와 같은 내용을 게시하기로 했다. 우리 연구소는 이번 사태에 대해 다시 한 번 유감을 표명하며, 앞으로도 악의적 내용을 보도하는 언론사에 대해 강력 대응해 나갈 것임을 밝혀둔다.        ↑↑  <2014.05.02>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에 따른 정정 보도        ↑↑  <2014.04.10> 문화일보 오보 기사   

한국 정부 ‘친일적’ 편들기

2014년 5월 2일 2054

일본의 역사교과서에 대한 반발…… 국내는.. 한국 정부 ‘친일적’ 편들기 ‘식민지배로 근대화’ 보수파 의식 한국의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 문제를 둘러싸고, 박근혜 정권의 역사인식에 대한 모순이 표면화 되고 있다. 작년 검정에서 새롭게 통과한 후, 그 기술 내용이 ‘친일적’이라고 비판 받는 교과서를 정부나 여당인 새누리당이 옹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인식문제로 일본에 대한 비판을 계속하면서도, 국내에서는 일본의 식민지배로 한반도가 근대화되었다는 역사관에 입각한 보수진영. 일본의 교과서 검정에 대한 반발을 강화하는 박근혜 정권에 있어서, 또 하나의 ‘교과서 문제’ 역시 국민의 구심력을 강화시키는 수단인 듯 하다. 한국 남부, 부산시 중심부에 있는 사립 부성고등학교. 3월에 입학한 신입생들의 역사 수업 풍경은 얼핏 다른 학교와 다르지 않다. 다른 것은, 전국의 공립/사립학교 약 2322학교에서 유일하게 ‘교학사’가 출판한 한국사교과서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 교과서 검정을 처음으로 통과한 교학사판 역사교과서는 뉴라이트라고 불리는 보수파 역사학자들이 집필. 기존의 7종 교과서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일본통치시대나 전후의 이승만, 박정희 등에 대한 평가이다. 종래의 7종은 한일합병이나 식민지배를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침략과 수탈의 역사’로 가르치고, 전후 이승만 박정희 양정권에 대해서도 남북분단을 고착시킨 점이나 군사독재에 대한 민주화 탄압 등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반면 교학사판 교과서는, 일본 통치시대에 한반도의 경제발전이나 규율준수에 대한 기반이 형성되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에 기초하고, 박정희 정권 시대의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고도경제성장의 성과만을 소개하고 있다. 교학사판 교과서에 대한 정부나 보수파의 편들기는 노골적이다.

샌프란시스코조약 발효일 야스쿠니 참배한 日각료(종합)

2014년 5월 2일 452

야스쿠니 신사 참배한 일본 행정개혁상 (도쿄 교도=연합뉴스)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일본 행정개혁담당상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일인 28일 오후 도쿄의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했다. 참배 후 취재에 응하는 이나다 행정개혁담당상. 2014.4.29 <<국제뉴스부 기사 참고>> sewonlee@yna.co.kr   ‘도쿄재판 결과 수용’ 조약정신 위배 비판 제기될 듯 아베 총리는 메이지 신궁 참배 (도쿄=연합뉴스) 김용수 이세원 특파원 =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일본 행정개혁담당상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일인 28일 오후 도쿄의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나다 행정개혁담당상은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자민당 의원 모임 ‘전통과 창조의 모임’ 소속 의원 약 10명과 함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그는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에게 감사, 경의, 추도의 뜻을 표현하는 것은 주권국가의 국민이라면 자신의 판단에 따라 행할 일이라고 생각해 참배했다”면서 “매년 주권을 회복한 날 참배했으며 계속 참배하고 싶다”고 말했다. 1952년 4월 28일 발효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2차 대전의 종결을 위해 일본이 연합국과 맺은 조약이며 이 조약의 발효로 일본은 연합국 총사령부의 지령과 권고를 받는 통치를 끝내고 주권을 회복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패전국인 일본이 태평양 전쟁의 전범을 단죄한 극동군사재판(도쿄재판)의 결과를 수용하는 것을 전제로 국제 사회에 복귀하기 위해 체결됐다. 그렇기 때문에 이 조약의 발효일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행위는 조약의 정신에 반한다는 지적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등 태평양 전쟁의 A급 전범 14명이 합사돼 있어 일본 각료나 국회의원이

[시론] 소시민이 공직자 ‘책임’을 거론해야 하나 / 이만열

2014년 5월 1일 547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안타까운 것이 하나둘이 아니다. 선장과 선원이 자기 도생(圖生)을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을 희생시킨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정부가 운영하는 시설과 기구들은 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는지, 지지부진한 초기 대응은 어떤 변명으로도 곧이들리지 않는다. 막대한 예산으로 군대를 유지하는 것이나 숱한 방재시설과 기구를 설치한 것도 한순간의 위난에 대처하기 위함인데 그게 작동하지 않았으니, 국가시스템이 붕괴되고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모두 책임을 망각한 데서 나온 결과다. 그런 속에서도 22살의 선원 박지영과 단원고 강아무개 교감은 우리 사회의 상실된 책임의식을 일깨워준다. 어린 승객들에게 퇴선명령을 내리면서 “선원들은 맨 마지막이다. 너희들 다 구하고 난 나중에 나갈게”라는 말을 남기고 산화한 그녀는 진정 영웅이었다. “200명의 생사를 알 수 없는데 혼자 살기에 힘이 벅차다. 내게 모든 책임을 지게 해 달라”며 자신의 유해를 침몰지역에 뿌려달라고 한 그는, 온갖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교육계에 ‘책임지는 스승상’을 보여주었다. 두 분이 있었기에 타이타닉호 선장 에드워드 스미스 같은 영웅이 없어 부끄러워하는 대한민국이 겨우 체면을 세웠다. 한나라·새누리 정권에서 책임지는 모습을 본 지는 오래됐다. ‘천안함 폭침’이 있었을 때 40여명의 꽃다운 젊은이들이 희생되었는데도 책임진 상관이 있었는가. ‘폭침’이 북한에 의한 것이라는 결론이라면 국방상 중대한 구멍이 뚫린 것이고, 이는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하는 안보 문제다. 그럼에도 군사상 책임을 묻지 못했다. 아니 묻지 않았다. 폭침 이외의 어떤 주장도 용납될 수

“사법부, 죄인이라고 낙인찍은 피고인들 투쟁 덕에 재판권 독립 얻어내”

2014년 5월 1일 383

지난 반세기는 누가 봐도 굴곡진 현대사였다. 시국사건은 하루가 멀다 하고 터졌다. 때마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앞장서다 징역살이도 마다하지 않은 수많은 ‘시대의 등불’이 있었다. 언론계에 작고한 리영희 선생이 있었다면, 법조계엔 한승헌(81) 변호사가 있었다.  한 변호사의 삶은 영화 ‘변호인’의 주인공 ‘송변’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아니 수십년간 송변보다 더 굵직한 시국사건을 맡으며 갖은 고초를 당했다는 점에서 송변에 비할 바가 아니다. 시국사건이 유난히 많았던 70~80년대. 김대중 전 대통령, 김지하 시인, 황석영 작가 등은 모두 그에게 빚을 졌다. 이 과정에서 한 변호사는 두 번의 옥고를 치르고 변호사 자격을 8년간 박탈당하기도 했다. 삶은 바위를 안고 산을 오르내리기를 반복했던 시지프의 고행과 같았다.  한 변호사는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하고 군 복무를 마친 뒤, 검사 생활(법무부, 서울지검 등)을 거쳐 변호사로 전신했다. 1965년 소설 ‘분지’ 사건을 시작으로 독재정권 아래서 탄압받는 양심수, 시국사범의 변호와 민주화, 인권운동에 힘을 기울였다. 그동안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사장, 방송위원회 위원, 언론중재위원회 위원,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 위원, 헌법재판소 자문위원, 감사원장,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대통령 통일고문,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위원장 등의 직분을 맡았다. 최근엔 법조인생 55주년을 기념해 ‘피고인이 된 변호사’, ‘권력과 필화’, ‘한일현대사와 평화,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한국의 법치주의를 검증한다’ 등 네 권의 기념선집을 완간했다. 이 선집의 의미는 크다. 비록 과거를 기술한 내용들이지만, 이를 통해 현재의 대한민국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다. ‘무릇 역사학이란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동학농민혁명 행보 재조명

2014년 5월 1일 481

    ▲ 지난 26일 정읍시립중앙도서관에서 얼학회가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학술발표회를 열었다. 정읍시를 중심으로 활동중인 순수 민간 학술모임인 얼학회가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학술발표회를 열었다. 지난 26일 정읍시립중앙도서관에서 개최된 발표회에서 특별 초빙된 박대길 박사는 ‘동학농민혁명과 고부봉기’란 주제 강연을 통해 갑오동학농민혁명은 고부봉기를 시작으로 무장기포, 백산봉기, 황토현 전투 등으로 점점 확대해 가는 과정을 거쳤다고 역설했다. 정읍시 동학농민혁명선양 담당이기도 한 박 박사는 “고부봉기는 전주영을 함락하고 경사직향(京司直向-서울로진격)할 사(事)의 결의를 담은 사발통문거사계획과 작성을 시작으로 고부관아를 점령한 후 만석보를 헐고 백산에 축성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쳤다”며 일반 민란과는 확연하게 다른 행보를 보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고창 무장 포고문과 관련 “지난 1894년 3월20일에 발표된 것으로 전해지는 포고문 수록 8개의 사료 중 3월 20일이란 날짜와 발표장소가 무장이라는 기록이 없다”며 “특히 발표주체가 전봉준,손화중,김개남 이라는 기록은 없을 뿐 더러 동학농민혁명의 3대 지도자 중 한명인 김개남은 그 시기에 무장을 방문한 적이 없어 포고문이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이어진 회원 발표에서 이도형 전)정읍시북부노인복지관장은 ‘사회복지사의 눈으로 본 동학농민혁명’이란 주제를 통해 “동학의 핵심교리인 인내천 사상은 사회복지의 중심가치인 인간존중의 사상과 동일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 당시 동학농민군의 군율에 곤경에 처한 자는 구제해준다, 배고픈 자에게는 음식을 먹인다, 가난한 자는 진휼한다, 병든 자에게는 약을 준다 등의 강령이 사회복지실천 활동으로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또 집강소 설치 및

‘일본과 일전불사’ 대통령, 속셈은 따로 있었다

2014년 5월 1일 475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른바 진보 세력 안에서도 부박한 담론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역사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 절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를 이어간다.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은 한국 현대사 연구를 상징하는 인물로 꼽힌다. 매달 서 이사장을 찾아가 한국 현대사에 관한 생각을 듣고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다섯 번째 이야기 주제는 4월혁명이다. <편집자>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이야기 마당 1∼31] 한국전쟁 / 친일파 / 학살 / 해방·분단 [4월혁명, 첫 번째 마당] ‘혁명가’ 박정희는 숭배, 독재자 쫓아낸 건 찬밥? [4월혁명, 두 번째 마당] “대통령은 부정 선거 몰랐다? 신문도 안 봤나” [4월혁명, 세 번째 마당] “대통령은 부정 선거 할 이유 없었다? 모르는 소리“ [4월혁명, 네 번째 마당] 민주당 간부는 왜 깡패에게 맞아 죽어야 했나 [4월혁명, 다섯 번째 마당] ‘대통령 죽여라’…학생 시신 속 쪽지의 비밀 [4월혁명, 여섯 번째 마당] 국민 죽이고 ‘야당 탓’ 대통령, 미국도 안 지켜줬다 [4월혁명, 일곱 번째 마당] ‘참변은 너희 탓’ 떠넘긴 대통령, 결국 쫓겨났다 프레시안 : 일각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이 대미 자주 외교를 펴 미국과 자주 갈등을 빚었다’며 이승만 하야도 이와 연결해 바라본다. 이승만을 불편하게 여긴 미국이 4월혁명에 개입해 제거 공작을 했다는 식의 주장이다. 서중석 : ‘이승만은 어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