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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육사 출신 예비역 장군의 일갈 “백선엽은 가짜 영웅”
한설 예비역 준장, 페이스북 통해 백선엽 강도 높게 비판 ☞(오마이뉴스, 2023.8.30) 기사 원문보기: 육사 출신 예비역 장군의 일갈 “백선엽은 가짜 영웅” 육군사관학교(육사) 출신의 한 예비역 장군이 육사의 독립투사 흉상 이전 방침을 지적하면서 백선엽 장군 동상을 육사에 세우려는 움직임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육군역사연구소장을 지낸 한설 예비역 육군 준장(육사 40기)은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한국전쟁을 알기나 하고서 백선엽 운운하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육사가 독립투사 흉상을 철거하고 백선엽 동상을 세운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 무슨 해괴한 소리가 있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고 성토했다. 한 장군은 “많은 사람들이 한국전쟁의 전쟁영웅 동상을 왜 육사에 세우지 않는가 하는 질문을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다들 백선엽을 이야기한다”며 “백선엽은 가짜 영웅이면서, 진짜 영웅들을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매장해 버린 장본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백선엽을 왜 한국전쟁의 영웅이라고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백선엽은 한국전쟁 초기 제1사단의 붕괴에 직접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사단장이었다. 부대를 버려두고 농부옷으로 갈아입고 사라졌다 3일 만에 나타난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전쟁 초기 단계에서 부대가 철수하고 무너지는 상황에서 백 장군이 자신이 지휘해야 할 1사단을 버리고 혼자 도망쳤다는 것이다. 백 장군의 최대 전공으로 꼽는 다부동 전투에 대해서도 한 장군은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다부동 전투로 낙동강 방어선을 지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원래 다부동 전투는 실패한 전투”라면서 “백선엽의 제1사단이 방어를 잘못해서 북한군이
[팟캐스트] 역발상 시즌2_소설 ‘범도’의 작가 방현석과 함께_특별편성1, 2부
☞ (08.31) ‘역발상’ 시즌 2: 소설 ‘범도’의 작가 방현석과 함께_특별편성2부 ☞ (08.30) ‘역발상’ 시즌 2: 소설 ‘범도’의 작가 방현석과 함께_특별편성1부 홍범도의 삶과 항일독립전쟁을 다룬 신간 ‘범도’를 방현석 작가를 직접 모시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방현석 작가는 울산에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를 나왔습니다. 대학시절에는 시와 소설을 공부하면서 학생운동을 하기도 했고, 1980년대 중반에는 인천의 공장에 다니기도 하였습니다. 1988년에 발표한 데뷔작 <내딛는 첫발은>은 그 당시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후로 소설집 《새벽출정》과 《내일을 여는 집》, 《랍스터를 먹는 시간》을 발표했고, 이 작품들로 신동엽문학상과 황순원문학상, 오영수문학상 등을 받습니다 방송에서 방현석 작가는 말했다 저는 만주와 러시아, 중앙아시아를 답사하고 홍범도의 삶을 추적하며 <범도>를 집필한 지난 13년 동안 단 한 번도 홍범도가 자신을 위해 무엇인가를 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봉오동 전투에서는 총사령관 자리를 최진동에게 양보하고 1군사령관으로 내려가 싸웠고, 죽기 열흘 전에는 잔치를 열어 옛 동지들을 배불리 먹이고 위로했습니다. 그는 단 한 번도 배불리 먹지 못하고 누구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한 부하들에게 극장 수위로 모은 돈을 모두 털어주고 이역만리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서 홀연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아내는 일본군의 고문으로 죽었습니다. 그와 함께 싸웠던 큰아들 양순은 일본군과 교전 중에 전사했고, 작은아들 용환도 항일전선에서 숨졌습니다. 재산 한 푼 남기지 않았고, 핏줄 하나 남기지 못했습니다. 그는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지만 우리는 그들이 남긴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단 한 순간도 항전을 포기하지
[오마이뉴스] “육사 정신이 제대로 박혀 있었으면 결코 할 수 없는 일”
(오마이뉴스, 2023.8.30) 기사원문보기 ☞ “육사 정신이 제대로 박혀 있었으면 결코 할 수 없는 일” [이게 이슈] 육군본부 정훈감 지낸 표명렬 예비역 준장 인터뷰 육군사관학교(육사)가 봉오동·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항일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이전하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 육군본부 정훈감을 지낸 표명렬 예비역 육군 준장은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치우는 건 육사의 정신이 제대로 박혀 있었으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1938년생인 표명렬 예비역 장군은 육사 18기(1958년)로 중위 복무 중이던 1965년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표 장군은 ‘공보정훈’ 관련 보직을 연이어 맡으며 육군의 ‘정신 무장’에 대한 고민을 지속해 왔다. 표 장군은 정훈감 재직 시 독립군과 광복군 인사들을 육사로 초청해 생도들의 사열을 받게 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예편한 후에는 우리 군을 인권 존중의 ‘민주군대’, 평화통일을 뒷받침하는 ‘통일군대’로 개혁할 것을 주장하며 천주교인권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등에서 활동했다. 이라크 파병이 추진될 당시 이에 반대하며 대한민국재향군인회를 나와 평화재향군인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독립군과 광복군 출신 인사들을 대한민국 ‘육사’로 초청했던 예비역 장군은 이번 홍범도 흉상 논란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30일 오후 표명렬 장군을 인터뷰했다. –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일생 동안 대한민국 군대 개혁에 관심을 두고 살아온 표명렬입니다. 저는 지난 1965년 당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위관 장교였습니다. 이때 미군과 합동작전을 펼치는 과정에서 큰 깨달음을 얻어, 지금껏 정훈 관련
[기자회견문] 국방부發 역사쿠테타 당장 멈추고 국민 앞에 사죄하라!
[기자회견문] 국방부發 역사쿠테타 당장 멈추고 국민 앞에 사죄하라! 윤석열 정부 국방부는 독립전쟁 영웅에게 공산주의 망령을 뒤집어 씌워 역사에서 지워내려 하고 있습니다.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항일독립전쟁 영웅 다섯 분의 흉상 철거 계획을 전면 백지화하고 독립운동가의 명예를 훼손하고 反헌법적 행위를 지시한 자는 반드시 책임져야 할 것입니다. 다섯 분의 흉상은 그냥 세운 것이 아닙니다. 대한독립군과 광복군이 국군의 뿌리고 자랑스러운 독립전쟁의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번 철거 시도는 독립군과 광복군을 국군의 뿌리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이기에 국민이 저항하는 것입니다. 국방부에게 묻겠습니다. 한국군의 전사(前史)에서 독립군과 광복군의 역사를 지워버리면, 국군의 정통성은 어디서 찾는다는 말입니까? 국군 창설 이후의 역사만 기리겠다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도 부정하는 것입니까? 광복을 세계 2차대전 이후 전후 처리 과정에서 생긴 부산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광복은 결코 밖에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 선조들이 나라를 빼앗긴 날부터 독립을 되찾는 날까지 죽음을 무릅쓰고 싸워 이겨낸 결과입니다. 우리에게는 빛나는 ‘독립전쟁’의 역사가 있었고 봉오동전투·청산리대첩이라는 자랑스러운 승리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조국 독립만을 외치며 목숨 바친 홍범도 장군, 김좌진 장군 그리고 수많은 무명용사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흉상 철거 문제를 두고 진보, 보수 가리지 않고 국민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국민적 상식에 반하는 처사이기 때문입니다.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고귀한 희생을 다하신 독립전쟁 영웅의 명예를 더럽히고 공산주의자로
[KBS] [뉴스 더하기] “달력에도 없는데 어찌 압니까?”…‘8월 29일’ 무슨 날이길래
(KBS, 2023.8.29) 기사원문보기 ☞ [뉴스 더하기] “달력에도 없는데 어찌 압니까?”…‘8월 29일’ 무슨 날이길래 – 일부 발췌 8월 29일, 오늘이 어떤 날인지 알고 계신가요? 바로 113년 전 오늘, 경술년, 그러니까 1910년 8월 22일, 당시 대한제국 총리대신이었던 이완용. 일본 측과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했고, 일주일 뒤인 1910년 8월 29일에 공포됐는데요. 경술년에 일어난 국가적 치욕이라는 의미로 ‘경술국치일’이라고 하죠. ‘경술국치일’, 광복 직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이날을 건국기념일과 함께 5대 기념일로 정하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선 뒤 ‘국치일’은 국가기념일로 계승되지 않았고 언젠가부터 달력에서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픈 역사, 치욕의 역사는 잊어도 되는 걸까요?
[팟캐스트] 역발상 시즌2_간토대학살 100년_1부 “은폐된 학살_누가 어떻게 얼마나 학살하였나?”
☞ (08.29) ‘역발상’ 시즌 2: 간토대학살 100년_1부 “은폐된 학살_누가 어떻게 얼마나 학살하였나?” 오늘의 이야기 주제: 간토대학살 100년 *출연: 김강산 (-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한국근대사 전공. 1923한일재일시민연대, 사회적협동조합 기억과평화, 만인만색연구자네트워크 소속) 지진이 일어났는데 도대체 왜 조선인들이 학살당하는가 하는 점. 직접적인 원인이 두 가지가 있음. 바로 유언비어와 계엄령 사람들이 왜 유언비어를 믿게 되었는가? 당시 내무대신이었던 미즈노 렌타로, 1919년 3.1운동 이후 조선에 부임한 인물이기도 한데, 이 때 미즈노 렌타로가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뭐라고 했냐면 “생각지도 못하게 조선인 소요(폭동)가 발생했기 때문에” 부득이 계엄령을 선포한다고 함. 이렇게 계엄령의 원인을 조선인들의 폭동으로 특정해 놓았기 때문에 이후 계엄령에 근거하여 출병하는 군대나 그에 준해서 현장에서 치안을 유지하는 경찰, 그리고 일반 민중들이 “조선인은 국가의 적”이라고 판단하게 됨. 다시 말하면 당시의 계엄령은 지진 이후에 구호라던가 복구라던가 그런 재난 이후의 통상적인 대처로 선포된 게 아니라는 점. 그래서 계엄령은 조선인 학살의 강력한 동기가 되었고, 아주 잔인한 방식의 학살이 가능하게 했음 ※지난 방송 ☞ (07.11) ‘역발상’ 시즌 2: 항일음악 이야기(4) “중일전쟁 이후 청년들의 공연활동과 항일음악” ☞ (07.04) ‘역발상’ 시즌 2: 항일음악 이야기(3) “항일음악 속 우리민요와 일제 잔재” ☞ (06.27) ‘역발상’ 시즌 2: 항일음악 이야기(2) “신흥무관학교의 항일노래” ☞ (06.20) ‘역발상’ 시즌 2: 항일음악 이야기(1) “항일음악 종소리 프로젝트” ☞ (06.13) ‘역발상’ 시즌 2: 친일파와 반민특위_나는 이렇게 본다 2부 ☞ (06.06) ‘역발상’ 시즌 2: 친일파와
[한겨레:온][성명서] 113주년 경술국치일을 맞으며
[성명서] 113주년 경술국치일을 맞으며 8월 29일은 경술국치일입니다. 1910년 오늘, 일제에 의한 강제합병으로 역사상 처음으로 외세에 국권을 상실한 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기억해야 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최근 일련의 사건들로 윤석렬 정부의 역사 인식과 국민의 생명안전에 대한 책임 인식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 번째, 정부는 2018년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아 일본 전범 기업의 진심어린 사과와 배상을 청구하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 피고 기업 판결금 지급이 사실상 어렵다”면서 지난 3월 제3자 변제방식이라는 피해보상안을 제시했고, 미쓰비시 등 전범 기업의 돈이 아닌 우리 행정안전부 산하 재단에서 조성한 배상금을 지급하려 했고, 이에 거부하는 피해자들에게는 법원에 공탁까지 하면서 수령을 강제하려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지난 8월15일 78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윤석렬 대통령은 일본을 향한 제대로 된 반성과 사죄 촉구는커녕 일본군 위안부나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언반구 언급도 없이 “일본은 이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라면서 “한일 양국은 안보와 경제의 협력 파트너로서 미래지향적으로 협력하고 교류해 나가면서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함께 기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세 번째는 최근 불거진 육군사관학교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독립운동가 흉상 철거 논란입니다. 이는 국군의 뿌리를 독립군으로 보지 않는 것은 물론 자랑스러운 항일의 역사를 폄훼하거나 왜곡하려는 의도로 보이는 반헌법적 행위입니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자신의 전 재산과 목숨을 바친 독립투쟁의 역사를
[기자회견] 대법원 직무유기 규탄 기자회견 – 강제동원 소송 신속히 판결하라!
[기자회견문] 대법원 직무유기 규탄 기자회견 – 강제동원 소송 신속히 판결하라! 대법원은 피해자들 어서 죽기만 기다리나! 현재 대법원에는 2018년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과 관련해, 미쓰비시중공업 상표권 2건(양금덕 채권), 피고 일본제철이 소유한 피엔알(PNR) 주식(이춘식 채권)에 대한 특별현금화명령 재항고 사건이 각각 계류돼, 최종 판결만 남겨두고 있다. 해당 사건의 경우 이미 2018년 대법원에서 최종 원고 승소 판결로 결론지어졌다. 하지만, 소송이 제기된 것으로부터 11년(양금덕 2012년 소 제기), 18년(이춘식 2005년 소 제기)에 이르도록 아직 최종 매듭을 못 짓고 있는 상태다. 현재 대법원에 계류돼 있는 특별현금화명령 재항고 사건의 경우, 채무자가 고의로 법원의 배상 명령을 거부하고 있는 상태에서, 불가피하게 강제집행을 통해서라도 피해자의 채권을 확보하자는 것이 이 사건의 처음이자 끝이다. 즉, 법원으로부터 이미 확정된 채권을 사법권을 통해 실현시키기 위한 단순한 절차에 불과한 것으로서, 쟁점이 될 것조차 없는 사건이다. 이런 점에서 일본정부 및 피고 일본 기업들의 파렴치한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대법원의 배상 명령을 이행하기는커녕, 압류명령에 이어 특별현금화명령에 이르기까지 온갖 수단을 통해 불복 절차를 제기함으로써, 피해자들의 권리실현을 집요하게 방해해 왔기 때문이다. 그들의 목적은 하나다. 판결을 지연시키는 것 뿐이다. 사실 일본 기업 자산 강제매각은 피고 일본 기업이 자초한 일이다. 배상 명령 이행을 거부하는 것도 부족해, 대화 제안마저 거듭 뿌리친다면, 이런 상태에서 피해자들이 취할수 있는 방법이 강제집행이 아니면 무엇이 있는가? 채무자가 불가피한 사정에
[경향신문] “극우 유튜버나 할 얘기를 정부가”···국방부 ‘흉상 이전’ 논란에 학계·시민사회도 반발
(경향신문, 2023.8.28) 기사원문보기 ☞ “극우 유튜버나 할 얘기를 정부가”···국방부 ‘흉상 이전’ 논란에 학계·시민사회도 반발 발췌. —— 정부가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홍범도 장군 등 독립운동가 5인의 흉상 이전을 검토하는 것을 두고 학계와 시민사회에서 “수준 낮은 색깔론”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가가 이미 공로를 인정한 독립운동가를 이제와서 난데없이 ‘공산당 출신’이라고 갈라치고 깎아내리는 것은 지극히 편향되고 그릇된 역사 인식이라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시대착오적 반공 이념 과잉이 급기야 좌우를 불문하고 역사적 업적을 공인한 독립운동가마저 조악한 이념적 잣대로 재단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중략… 시민·연구단체도 “역사 왜곡”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독재정권에서도 홍범도 장군을 색깔론으로 폄훼했던 적은 없었다”면서 “극우 유튜버나 주장할 만한 얘기를 정부가 하고 있다”고 했다. 임인숙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 법률팀장은 “정권이 바뀐 것 외에는 바뀐 게 없는데 이미 공로가 인정된 독립운동가를 두고 이러는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지금 정부는 대한민국 정부인가, 조선총독부인가”라고 했다. 강은 기자 / 전지현 기자 ※관련기사 ☞한겨레: 윤 대통령의 ‘역사 쿠데타’…“극우 유튜버 수준의 분서갱유” ☞파이낸셜뉴스: ‘독립운동가 흉상 철거’ 논란 속 홍범도 장군 묘역 추모 발길
[오마이뉴스] 조선인 학살의 현장, 100년 지나 찾아간 감독
(오마이뉴스, 2023.8.28) 기사원문보기 ☞ 조선인 학살의 현장, 100년 지나 찾아간 감독 안해룡 사진전 ‘도쿄, 조선인 대학살의 거리’ 展, 갤러리 류가헌에서 오는 9월 3일까지 발췌. —— <파친코>의 이민진 작가는 최근 방영된 KBS <다큐인사이트> ‘파친코’ 특집 다큐에서 재일조선인들의 차별받고 불공정한 삶의 조건들이야말로 <파친코>라는 제목을 낳은 1등 공신이라 밝혔다. 결국 천대받고 멸시받는 ‘파친코’ 장을 운영할 수밖에 없도록 내몰렸던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극대화된 사건이 바로 100년 전 간토대지진(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일 것이다. 이민진 작가의 인터뷰를 접하며 자연스레 <파친코> 7화를 다시 찾아 봤다. 지난해 전 세계 시청자들을 감동시킨 애플TV의 화제작 <파친코>의 7화 에피소드는 제주출신 주인공 한수(이민호)의 과거를 간토대지진 및 조선인 학살 사건과 탁월하게 연결시킨다. …중략… “위령비로 간토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을 기억하려 했지만 허전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추모의 기록, 추모의 공간이 유리 상자 안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그러다 만난 조선인 학살 지도. 생생한 증언과 기록이 관련 자료를 명기하고 지도에 표시되어 있었다. 머리 속 상상 이상으로 가해의 묘사는 절절하고 처참했다. 일본이라는 국가 권력이 자행한 잔혹한 조선인 학살의 역사는 도쿄의 거리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 안해룡 감독 안해룡 감독은 도쿄의 거리가 너무나 친숙하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이빙벨>로 이름을 알리기 전 안 감독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재일 위안부 재판’을 조명한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2009)를 만들었고, 이후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