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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경기신문] 물둘레

2014년 3월 31일 451

한국외대 설립자 동상 건립 놓고 학내 ‘반발’

2014년 3월 31일 518

외대법인, 개교 60주년 기념 김흥배 박사 동상 추진   일부 동문·학생, “공적 불구 친일 행적…재고해야“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한국외국어대가 개교 60주년을 맞아 학교 설립자 동원(東園) 김흥배(1914~1987) 박사의 동상을 학내에 세우기로 하자 일부 동문과 학생들이 그의 친일 행적을 지적하며 반발하고 있다.   30일 외대에 따르면 이 학교 총동문회는 최근 동문들에게 다음 달 18일 개교 60주년 기념행사 초청장을 보내며 행사 중 하나로 ‘설립자 동상 제막식‘을 소개했다. 김 박사는 해방 후 ㈜한국화재해상보험, ㈜동일방직공업, ㈜한국신탁 등은 물론 1954년 한국외대를 설립해 근대적 기업 경제와 교육 기반 형성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그러나 ‘애국외대 청년동문회‘는 김 박사가 1938년 서울 마포구에 군납 물품을 만드는 노다(野田) 피복공장을 세워 광복 때까지 사장을 맡았고, 태평양전쟁 기간엔 지원 단체인 경성부총력연맹 이사를 지냈다는 사실을 문제 삼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2008년 친일인명사전 제작 당시 수록 예정자에 이름을 올렸으나, “조사가 더 필요하다“는 이유로 최종 목록에서는 빠졌다.   청년동문회 관계자는 “설립자라는 이유로 친일 행적이 있는 인물의 동상을 세우는 것은 정의와 진리의 전당인 대학에서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 22∼23일 전북 남원에서 열린 동문 워크숍에서 이 문제를 논의했으며, 조만간 성명을 내고 학교 측에 면담을 요청할 계획이다.   한국외대 총학생회 업무를 수행하는 비상대책위원회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아무리 공적이 많다고 해도 친일 행적을

군산 동국사, 일제 침탈 특별 기획전 개최

2014년 3월 31일 1203

     최근 일본 아베총리의 신사참배와 일본 정부 각료들의 일본 종군 위안부 부정 발언이 지속되는 가운데 일제의 조선 침탈을 고발하는 특별기획전이 개막됐다.  국내유일의 일본식 사찰인 군산 동국사(주지 종걸스님)는 3월 10일 ‘씁쓸한 기억, 신사(神社)와 무단통치-조선명당엔 신사가 있었다’ 란 주제의 특별기획전을 개최했다.  3.1절 95주년을 맞아 세 번째로 기획되는 이번 특별기획전은 동국사 종걸스님의 보유하고 있는 5천여 점의 일제강점기 침탈 자료 중 엄선된 200여점이 전시 되고 있다.  오는 6월 30일까지 열리는 이번 기회전은 한반도 전국에 걸친 명당터와 관공서, 학교, 기업체 등에 설치된 일본 신사의 사진과 조선을 무단 통치하기 위한 군산, 경찰 관련 유물들도 함께 전시되고 있다.       ▲ 군인들이 입대전 서울 남산의 조선 신궁을 참배하고 있는 모습 일제 강점기 전국에 설치된 1062곳의 신사중 서울 남산의 조선 신궁(현 안중근의사 기념관), 금강산 신사. 군산 신사 등 주요 신사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특히 종군 위안부의 존재를 알려주는 일본군에 지급된 ‘사쿠(돌격1호)’라는 피임기구와 성병치료 연고, 방독면, 독립운동가 들의 탄압에 사용된 일본 경찰의 권총과 도검등과 함께 지방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친필 편지 등이 함께 전시되고 있다.  전시 기간 동안에는 1920년대 경성시가지의 생생한 모습을 보여주는 동영상도 상영되고 있다.       ▲ 군산 신사의 입구인 도리이와 신사로 오르는 계단 종걸스님은 “일본 아베통리의 신사참배와 일본 각료들의 망언에 분개해서 일제의

남북여성단체 “위안부 문제는 민족 공동과제”

2014년 3월 31일 447

<한국일보> 2014-03-30 기사원문: ☞ 남북여성단체 “위안부 문제는 민족 공동과제” ※관련기사 ◎아시아경제: 南北민간단체, 위안부 문제 日당국 사죄와 배상 연대키로 ◎데일리NK: 南北단체, 위안부 문제 공동대응 결의…”배상 활동 전개” ◎뉴시스:[전문] 남북 여성단체 위안부 문제 공동 결의문

“사형판결 안중근의사 항소안한 이유는 어머니 뜻” 104년전 영어신문 보도

2014년 3월 28일 761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안중근의사가 일제의 부당한 법정에서 사형판결을 받고도 항소를 안한 것은 어머니의 뜻을 따른 것이었다고 104년전 싱가포르 신문이 보도한 사실이 밝혀졌다. 28일 뉴시스가 입수한 싱가포르 영어신문 스트레이츠 타임스(The Straits Times)는 1910년 3월 7일 8면에 특별한 사연을 전했다. ‘사형수 저격자(condemned Assassin)’라는 타이틀과 ‘어머니, 조상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말라 꾸중’이라는 부제가 달린 기사에서 안중근의사는 “몇가지 점에서 판결이 불만족스럽지만 항소를 할 경우 겁쟁이로 비쳐지는 것이 우려된다”며 “충분히 숙고한 후에 결정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신문은 “미즈노 변호사가 ‘조상의 명예로운 이름을 더럽혀서는 안된다고 했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전달하자 안의사는 어머니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고 전했다. 2014.03.28. <사진=싱가포르 의회도서관 DB> robin@newsis.com 2014-03-28 싱가포르 스트레이츠 타임스 1910년 3월7일 보도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안중근의사가 일제의 부당한 법정에서 사형판결을 받고도 항소를 안 한 것은 어머니의 뜻을 따른 것이었다고 104년 전 싱가포르 신문이 보도한 사실이 밝혀졌다. 28일 뉴시스가 입수한 싱가포르 영어신문 스트레이츠 타임스(The Straits Times)는 1910년 3월 7일 8면에 특별한 사연을 전했다. ‘사형수 저격자(condemned Assassin)’라는 타이틀의 기사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어머니, 조상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말라 꾸중’이라는 작은 제목이었다. 기사는 “이토 백작을 저격 살해한 안(중근)의 법정대리인 미즈노 변호사가 2월 15일 안중근을 면회, 항소를 할 것인지 물었다”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이에 안중근의사는 “몇 가지 점에서 판결이 불만족스럽지만 항소를 할 경우 겁쟁이로 비쳐지는 것이 우려된다”며 “충분히

안중근 의사 유해, 못 찾는 이유 있다

2014년 3월 28일 2370

body,table,td,input,select,textarea{font-family : verdana,굴림;font-size :9pt;line-height : 140%;}img{border : 0;}A:link {text-decoration:none; color:black;}A:visited {text-decoration:none; color:black;}A:hover { text-decoration:none; color:#3E8FFC;}P{margin-top:2px;margin-bottom:2px;}지난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서른두 살의 젋은 나이에 조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노래하며 순국한 지 꼭 104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이날 오전 11시 서울 남산 안중근의사기념관 강당에서 ‘안중근뼈대찾기사업회’에서 펴낸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아라>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아라 안 의사의 순국 104주기에 맞춰 출간된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아라>(저자 안태근·김월배, 스토리하우스)는 아직까지 미완의 숙제로 남아있는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문제를 집중 조명한 책이다. 그간 우리 정부뿐만 아니라 북한 정부가 시도한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사업에 대한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이 더욱 의미 있는 것은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매장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구체적인 지역을 지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  안중근뼈대찾기사업회에서 안중근 의사 순국 104주기를 맞아 펴낸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아라> ⓒ 김경준 관련사진보기 이번에 책을 펴낸 안중근뼈대찾기사업회의 회장 직을 맡고 있는 안태근 교수(한국외대)는 책을 쓴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입을 열었다. “20년 동안의 추적 끝에,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이 되는 지난 2010년 3월 26일, <안중근 순국 백 년, 안 의사의 유해를 찾아라>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방영해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는데((그는 작년 정년퇴직 전까지 EBS 한국교육방송공사에서 PD 생활을 하였다-기자 주), 그 작품의 가장 큰 의의는 방송사상 최초로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매장되어있을 것으로

[인천일보] 인천TOON

2014년 3월 28일 361

 

“동학, 드라마·영화화…다양한 예술장르로 대중화해야”

2014년 3월 28일 452

‘왜 이들은 목숨을 걸고 봉기했나’ 화두 삼아 / 서울 남산에 ‘전봉준 장군 동상’ 세우고 싶어   ▲ 역사학자 이이화 씨가 ‘전북일보 리더스아카데미 강좌’에 연사로 초대돼 동학혁명 관련 특강을 하고 있는 모습. 동학농민혁명 2주갑은 그 자체가 역동적인 역사였다. 일제강점기는 물론, 혁명 1주갑이었던 1954년 당시까지도 동학농민혁명의 역사는 별 울림을 주지 못했다. 우리 역사상 최대 민중항쟁이었던 그 역사가 전면에 부상한 것은 고작 100주년에 즈음해서였다. 물론, 그 이전에도 몇몇 연구자들에 의해 역사의 베일을 벗기려는 노력이 있었고, 80년대 민주화운동의 흐름을 타고 학계의 재조명 작업이 내부적으로 진행됐지만, 대중적 관심을 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직도 많은 과제를 앞에 두고 있지만, 오늘의 모습으로 동학농민혁명이 우리 앞에 서기까지 연구자들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의 ‘역사찾기’를 기억해야 할 것 같다. 본 기획에서 혁명의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 묻혀있던 자료를 찾아내고, 현장을 누빈 연구자와 활동가를 만난다. 이들에게 동학농민혁명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며, 그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역사학자 이이화(77)는 ‘녹두장군’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전봉준 장군처럼 키가 작고, 목소리가 크고, 고분고분하지 않은 기질과 비슷해서다.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찾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많은 활동을 한 것이 바탕이 됐음은 물론이다. 그는 30대 때부터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관심과 연구활동을 바탕으로 1989년 역사문제연구소 부설로‘동학농민혁명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만들고,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초대 이사장을 맡는 등 책과 현장을 넘나들었다. 재단 이사장에서 물러난 후 관련 공식 직함은 없지만, 2주갑은 그를 현장으로 다시 불러냈다.

일본인 교사 “안중근, 히로부미 저격은 옳았다”

2014년 3월 28일 640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은 옳았습니다.” 일본 사회교과서부교재 편집위원 스즈키 히토시(60)씨는 27일 전북 전주시 근영중학교 교단에서 한국 학생에게 자신의 역사관을 소신 있게 전했다. 스즈키씨가 한국을 찾아 자신의 소신을 밝혀 온 지 올해로 10년째. 스즈키씨는 일본인으로서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역사관을 지키며 한·일 양국 간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한·일 양국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는 상황 속에서 그의 행동은 큰 의미가 있다.   <img width="551" height="423" style="width: 543px; height: 283px;" alt=" ⓒ연합뉴스 일본 사회교과서부교재 편집위원 스즈키 히토시 씨” src=”http://www.sisainlive.com/news/photo/201403/19806_38881_3426.jpg” border=”1″>   ⓒ연합뉴스 일본 사회교과서부교재 편집위원 스즈키 히토시 씨 이날 열린 ‘제10차 한일역사 공동수업’에서도 스즈키씨는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핵심인물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를 정당한 행동을 한 훌륭한 분이라고 말했다. 또 남산에 있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과 중국 하얼빈 안중근 의사 기념관도 소개했다. 그는 “한국 사람이 생각하기에는 의외겠지만 일본에도 안중근 의사를 존경하고 추모하는 일본인이 많다”면서 “안중근 의사는 동양의 평화를 위해 제국주의를 저격한 평화론자다”고 소신을 밝혔다. 스즈키씨가 공동수업에서 안중근 의사 외에도 천문학자 나일성과 일본인 작곡가 사카에씨의 우정을 소개하면서 한·일 양국 간의 민간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가 요코하마중학교에 재직할 때부터 지금까지 10년째 공을 들인 공동수업은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을 재조명하고 역사의 아픔 속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한일 우정 등 한일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는

안중근 의사 유묵 경매서 유찰… “국가서 매입해 소장해야” 주장도

2014년 3월 28일 487

안중근 의사가 직접 쓴 글씨가 경매에 나왔으나 결국 주인을 찾지 못했다. 미술품 경매회사 서울옥션은 지난 27일(목) 경매에 출품된 안중근 의사의 유묵이 유찰됐다고 밝혔다. 한자로 ‘敬天(경천)’이라고 적혀있는 이 유묵은 안중근 의사가 1910년 3월 여순감옥에서 쓴 것이다. 하늘의 이치에 따라 국가와 국민이 스스로의 본분에 맞게 도리를 지키고 양심을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안중근 의사는 유묵은 7억원을 시작으로 경매에 부쳐졌다. 서울옥션 측은 약 7억 5천만원에 낙찰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경매 응찰자가 나오지 않으면서 결국 유찰로 마감됐다. 안중근 의사의 글씨가 유찰됐다는 소식에 네티즌들도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있다. 값을 매길 수 없는 귀중한 작품이라는 반응과 함께 “정부에서 안중근 의사의 유묵을 매입해 박물관에서 전시를 해야한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의사의 유묵 20여 점은 안중근 개인사 및 독립운동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라를 평가를 받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등록돼 있다. 1972년에 ‘극락'(보물 569-19호), ‘국가안위노심초사'(보물 569-22호) 등이 보물로 지정됐으며, 2000년 이후에는 ‘위국헌신군인본분'(보물 569-23호), ‘언충신행독경만방가행'(보물 569-25호) 등이 추가 지정됐다. 현재 안중근 의사의 유묵 중 다수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관리 중이다. 한편 이날 경매에 나온 박정희 전 대통령의 휘호 ‘자조, 자립, 자위’는 5000만원에, 박 전 대통령이 당시 국무총리에게 보냈던 편지는 650만원에 낙찰됐다.      ▲ 안중근 의사의 유묵 ‘敬天(경천)’ (사진=서울옥션) ※유니온프레스<2014-03-28> 기사원문: ☞ 안중근 의사 유묵 경매서 유찰… “국가서 매입해 소장해야” 주장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