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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신흥무관학교의 숨겨진 영웅, ‘원병상’을 아십니까
“내래 신흥무관학교 출신이야!” 영화 속 그 인물… 교관 활약했던 ‘원병상 회고록’ 발간 “내래 신흥무관학교 출신이야!” 영화 〈암살〉에서 배우 조진웅이 분한 ‘속사포’의 대사이다. 이 영화가 관람 연인원 1300만 명 가까운 대기록을 세우면서 뜻하지 않게 신흥무관학교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조진웅은 이 배역을 맡은 인연으로 이후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의 홍보대사가 되었다. 1910년 8월 29일 강제병합으로 나라를 빼앗기자 뜻있는 이들은 가산을 처분한 뒤 일가를 이끌고 만주로 망명했다. 국외에서 독립군기지를 건설해 국권을 회복하겠다는 결단이었다. 국망 이후 국외 최초의 독립군기지인 신흥무관학교는 이회영·이시영 6형제, 이상룡, 김대락, 김동삼 등 기라성 같은 민족지도자들이 힘을 합쳐 이룩한 독립운동의 요람이었다. 독립지사들의 심신 훈련소, 신흥무관학교 신흥무관학교는 1911년 6월 10일 서간도 류허현 삼원포에서 신흥강습소란 이름으로 첫걸음을 떼었으며, 점차 규모를 확대해 갔다. 이동녕·윤기섭·김창환·남상복·이장녕·이세영·여준 등 명망 있는 독립지사들이 교장과 교관으로 복무하며 생도들의 정신무장과 군사훈련을 지도했다. 신흥무관학교는 3·1운동 직후 애국 청장년들이 대거 망명해 입교하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이때 일본군 중위로 복무하다 탈출한 지청천과 김경천, 중국 윈난 육군강무학교를 수석 졸업한 이범석 등이 신흥무관학교로 찾아와 교관으로 합류했다. 신흥무관학교는 일제의 탄압과 연이은 사고로 1920년 가을 폐교하기 전까지, 약 3500여 명에 이르는 독립전사를 배출했다. 학교는 비록 문을 닫았으나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은 봉오동·청산리·대전자령 전투 등 독립전쟁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며, 의열단·한국광복군 등 항일무장투쟁의 핵심으로 불멸의 업적을 이루었다. 그리하여 상당수 구성원들이 항일투쟁의 도상에서 이름도 명예도 남김없이 장렬한
[한겨레] 나는 프락치가 됐고, 그들은 부역자가 됐다 [본헌터⑰]
[역사 논픽션 : 본헌터⑰] 잊혀진 아산의 거물 고향의 대학살 비극을 닮은, 끝내 재기하지 못한 어느 정치인의 이야기 *편집자 주: ‘본헌터’는 70여년 전 국가와 개인 사이에 벌어진 집단살해사건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이야기다. 아무데나 버려져 묻힌 이들과, 이들의 행방을 추적하며 사라진 기억을 찾아나선 이들이 주인공이다. 매주 2회, 월요일과 수요일 인터넷 한겨레에 올린다. 극단 신세계가 글을 읽어준다. “내 이름은 서용길 ······················· (중간생략) 나는 보선을 꺾고 서른 여섯에 제헌의회 국회의원이라는 영광을 얻었으나, 이후 필설로 다할 수 없는 형극의 길을 걷고 무너졌다. 비운의 정치인이자 잊힌 거물이 되었다. ························(중간생략) 나는 무소속 소장파 의원으로서 치열하게 정치 활동을 했다. 그 중 하나는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특별검찰관으로 ························(중간생략)반민특위는 1차로 적극적 친일 기업인 흥식을 검거했다. 이때 알았어야 했다. 승만과 친일세력은 이를 방해할 뿐 아니라 때려잡을 것임을. ························(중간생략) 1949년 6월6일 나는 을지로의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한 서울시경찰국 산하 중부경찰서 경찰관들에 의해 무장해제됐다. 6월26일엔 ‘외군(외국군) 철퇴 요청에 관한 긴급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이 문제가 되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됐다. 그리고 이른바 ‘국회 프락치 사건’에 엮인다. 연희전문 때부터 교회 유년부 주일학교 부장을 하며 기독교 신앙을 키워온 내가 남로당 프락치라니. 외국 군대 철수 주장은 북한의 지령이 아니라 민족독립의 원칙으로서 주장한 거였다. 프락치 사건으로 소장파 의원들이 궤멸되고 반민특위는 와해된다. ··············(중간생략) “ (한겨레, 2023.8.21) 원문링크 ☞ 나는 프락치가 됐고, 그들은 부역자가 됐다 [본헌터⑰]
[오마이뉴스] 친일파가 극찬한 친일파… 그는 아직 현충원에 있다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김창룡 윤석열 정부는 이승만과 함께 친일파 군인 백선엽을 띄우고 있다. 대전현충원에 안장돼 있는 백선엽은 지난 7월 5일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백선엽 동상 제막식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서게 됐다. 동상이 된 그는 360도 회전하면서 대한민국 전체를 두루 살피고 있다. 다음날인 7월 6일에는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언론 인터뷰에서 ‘백선엽이 친일파가 아니라는 데 직을 걸겠다’고 맹세했다. 7월 24일에는 윤석열 정부가 백선엽의 국립묘지 안장 기록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 문구를 삭제했다. 윤석열 정부가 백선엽을 칭송하는 것처럼, 백선엽도 또 다른 친일파를 높이 평가한 일이 있다. 360도 회전 동상을 세워주는 일까지는 하지 못했지만, 글을 통해서나마 꽤 높게 평가해 준 인물이다. 항일조직 소탕에 두각 드러낸 김창룡 백선엽은 1956년 1월 30일 서울 용산구에서 발생한 김창룡 육군특무부대장 피살 사건의 군사재판장이었다. 백선엽은 2012년 자서전인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에서 “내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은 김창룡 장군 피살과 그 재판”이라고 한 뒤 김창룡의 업무 능력을 경이적으로 평가했다. “김창룡 장군은 당시 누구나 그 이름을 들어서 알고 있는 방첩 분야의 최고 베테랑 군인이었다. 아울러 그는 이승만 대통령이 가장 총애하는 군인 중의 하나였다. 그의 권력은 아주 강했다. 최고위 장성들 또한 그의 예리한 수사력의 안광을 벗어날 수 없는 경우가 흔했다. 방첩 분야뿐 아니라 일반 정보 계통에서도 그는 막강한 실력을 발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백선엽이 높이
[MBC뉴스] [PD수첩] 독도를 노리는 일본, 기시다의 승부수
☞기사 원문보기: [PD수첩] 독도를 노리는 일본, 기시다의 승부수 – “가장 큰 문제가 지금 (일본의) 국립 영토·주권 전시관인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독도 왜곡 전시장 아닙니까”_서경덕 성신여대 교수 ‘영토‧주권 전시관’은 일본의 국립 전시관으로, 독도 관련 왜곡 내용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사회 전반적으로 독도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주입하고 있는 상황. …(중략)…기사 일부 발췌… 지난 3월, 일본 공영방송 NHK는 한일 정상회담 만찬에서 기시다 총리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독도 문제를 언급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총리가 우리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독도 문제를 꺼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외교부는 이 보도에 대해 적극적으로 부인했지만, 일본 내에서는 이미 NHK의 보도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일본 언론에서는 정부 고위 관료의 말을 인용해 윤석열 정부에게 독도 문제를 더 적극적으로 제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앞서, 일본은 2005년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여 독도 도발을 본격화했다. 2019년, 중국과 연합 훈련 중이던 러시아 군용기가 독도 영공을 침범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일본은 자체 영공이 침범되었다며 자위대 전투기를 출격시켰다. 이 사건은 일본의 국방백서에 ‘다케시마 영공침범’으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에는 내각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각의를 통해 자국의 국가 안보전략을 담은 문서를 개정하면서 독도를 일본의 고유 영토로 규정했다. 일본이 우리의 고유 영토인 독도를 집요하게 탐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동해 해양생태계의 오아시스라고 불리는 독도는 경제적으로 상당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독도 인근 해역에는 우리나라 국민이 30년
[오마이뉴스] 일본에서 며칠 사이 한국인 수천 명이 죽은 사건
관동대학살 100주년, 주목 받는 세 개 전시회 9월 1일은 관동 조선인 대학살 백주기가 되는 날이다. 백년 전 이날 11시 58분 44초. 가나가와현(神奈川県)에서 가까운 사가미만(相模湾)을 진원지로 하는 대지진이 일어났다. 지진은 도쿄와 요코하마를 포함 관동 6개현을 덮쳤다. 사망자가 9만 9331명, 부상자가 10만 3733명에 이를 정도로 큰 피해가 발생했다. 이때 애꿎은 조선인이 큰 화를 입었다. 유언비어에 흥분한 일부 자경단의 만행으로 알려져 있고 일본 정부도 그렇게 상황을 설명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다. 지진으로 인해 인명 피해도 컸지만 재산 손실도 엄청났다. 완전히 부서진 집이 12만 8266호, 불탄 집이 44만 7123호나 돼 이재민의 수는 수백 만 명에 이를 정도였다. 이들의 아픔과 절망감은 말할 수 없이 컸다. 히로히토 밑에서 내각을 책임지던 야마모토 곤베에 내각은 심각한 위기 의식을 느꼈다. 배고픔과 부상에 신음하는 민중이 자칫 반정부 투쟁으로 나설까 봐 두려웠다. 1918년의 쌀 폭동도 떠오르면서 이재민 구호 대책이 아닌 체제 수호 방법에 골몰한 끝에 민중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로 했다. 날조된 ‘조선인 습격설’을 명분으로 계엄령을 발동한 것이다. 계엄군은 조선인을 진압하라는 임무를 받고 출동했다. 경찰은 메가폰을 들고 조선인에 대한 유언비어를 직접 퍼트리고 다니며 자경단 결성을 독려했다. 군대가 중핵이 되고 경찰과 자경단이 합세한 연합 대오가 만들어져 조선인은 갑자기 재해의 원흉처럼 내몰렸고 공격 목표가 되었다.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이재민이 된 처지에서 조선인은 학살까지 당해 수천
[MBC시선집중] 임헌영 “윤석열, 김구와 이승만 같은 편? 마음대로 착각. 참 편리하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尹 자유 강조, 인류보편사 자유 개념과 다른 윤석열식 개념 -강제동원 제3자 대위변제, 역사에 오점 남긴 범죄 -대위변제 꺼낸 배경은 강자독식. 약한 사람 잘못이라는 것 -건국절? 광복의 뜻 자체가 나라를 되찾았다는 것 -이승만 기념관, 잘 세워도 언젠가는 부서질 것 -이승만도 임정을 정부수립으로 인정. 동상은 세우면서 왜 말 안 듣나? -이승만, 건국의 대통령 아닌 탄핵의 대통령 -보훈부, 친일옹호부-친일면죄부 같은 역할 -친일청산 벗어나자? 일본이 과거사 청산할 때만 가능한 이야기 ■ 방송 : MBC 라디오 표준FM 95.9MHz <김종배의 시선집중>(07:05~08:30) ■ 진행 : 김종배 시사평론가 ■ 대담 :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 진행자 > 오늘은 광복절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짚을 점이 많은 광복절인 것 같은데요. 그래서 이분을 모시고 3부를 터서 특별 인터뷰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모신 분은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입니다. 어서 오세요. 소장님. ◎ 임헌영 > 예, 반갑습니다. ◎ 진행자 > 건강 괜찮으시죠? ◎ 임헌영 > 네, 좋습니다. ◎ 진행자 > 어려운 걸음해주셔서 감사드리고요. ◎ 임헌영 > 김 선생도 요새 고생이 많으십니다. ◎ 진행자 > 무슨 말씀을요. 지난해 광복절 기념사에서 핵심 키워드가 자유였거든요. 그래서 오늘 나올 광복절 기념사 어떤 메시지가 담길지가 궁금한데, 소장님께서는 어떤 메시지가 담겨야 된다고 생각하세요? ◎ 임헌영 > 통상 역대 대통령들이 1년에 경축사를 몇 번 하는데 3.1절이나 광복절이나 이렇게 하는데, 광복절에
[책소개] 『신흥무관학교 교관 원병상 회고록』
바로가기 >>>☞ [도서구매] 〈책소개〉 일제강점기 최대의 독립운동 기지인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한 뒤 모교의 교관으로서 후배들을 양성했던 원병상의 회고록이다.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와 민족문제연구소가 오랜 준비 끝에 읽기 까다로운 국한문 자필 원고를 현대문으로 바꾸고 꼼꼼히 주석을 달아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원병상은 신흥무관학교에 대해 자세한 기록을 남긴 것으로 처음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신흥무관학교에 대한 지식의 대부분이 그가 남긴 2편의 수기에 근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신흥무관학교의 산 증인이었던 그가 만년에 이르러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회고록을 남겼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회고록 원본도 유실되고 소중한 기록이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질 뻔했으나, 천만다행으로 후손에게 나누어 준 복사본 중 한 부만이 겨우 전해져 지금에서야 빛을 보게 되었다. 회고록은 원병상의 삶 전체를 담고 있다. 나라를 잃고 서간도로 이주한 망명길에서부터 늦깎이 군인으로 6·25전쟁에 참전한 경험에 이르기까지, 파란만장한 생애의 대소사가 망라되어 있다. 특히 서간도로 망명하게 된 배경에서부터 머나먼 이역에서 힘겹게 정착해나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어, 만주의 독립운동가와 동포들이 겪었던 간난신고를 온전히 알게 해주는 생활사 자료로서 가치가 크다. 그밖에 해방 공간에서 지켜본 만주의 공산화 과정과 탄압을 피해 귀환하는 길에 겪었던 수난 등 희귀한 증언도 실려 있다. 해방 후 남한 사회의 혼란상, 50대의 뒤늦은 군 입대와 직접 체험한 동족상잔의 비극 등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어 질곡의 한국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소중한 역사자료로 평가할 만하다. 책에는
[오마이뉴스] 이승만에게 천황이 되라 권했던 이승만의 ‘광팬’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윤치영 1948년 8월 초의 최대 이슈는 이승만 정부의 초대 내각 구성이었다. 그해 7월 20일 국회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승만은 지금의 서울 대학로 인근인 이화장에 조각본부를 설치하고 내각 구성 작업을 진행했다. 7월 27일, 이승만이 총리로 임명한 이북 출신 이윤영이 국회 인준 투표에서 탈락했다. 이 때문에 난관에 빠진 조각 작업은 8월 2일에 독립운동가 이범석이 총리 인준을 받으면서 급물살을 탔다. 이날부터 사흘간 각부 장관들이 연달아 임명된 결과로 8월 4일에 초대 내각이 완성됐다. 정부 수립 11일 전의 일이다. 이 내각에는 독립운동가 출신이 다수 포함됐다. 국방부 장관을 겸한 이범석 총리, 농림부 장관 조봉암, 사회부 장관 전진한, 무임소 장관 이청천 등이 입각했다. 이를 근거로 이승만 정권의 반민족적 성격을 부정하는 주장들이 있다. 국민의힘 추천으로 진실화해위원 후보자가 됐다가 지난 2월 24일 국회 표결에서 탈락한 이제봉 울산대 교수는 작년 6월 5일과 7일에 올린 유튜브 동영상에서 “대한민국은 친일파가 세운 것이고 북한은 항일투쟁가가 세웠다는 이야기들은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오랜 해외 체류로 인해 국내 기반이 거의 없었던 이승만은 친일세력인 한민당의 지원으로 대통령이 됐다. 그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한민당을 견제하고 이들을 밀어냈지만, 이들이 가장 열망하는 과제를 이루어 주었다. 1949년에 경찰력을 동원해 국회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공격하고 친일 청산을 와해시켜 주었다. 반민특위 습격 사건은 그가 누구의 편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도 그가 독립운동가들을 기용한 것은
[통일뉴스] 이준 열사 유해봉환 60주기 “돌아오지 못한 특사의 귀환”
근현대사기념관, ‘돌아오지 못한 헤이그 특사’ 특별전 서울 수유리 4.19민주묘역을 지나 북한산 자락에 접어드는 곳에 근현대사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인근에 근현대 애국지사들의 묘역들이 많아 이곳에 기념관이 자리잡았을 터이다. 강북구가 2016년 설립한 기념관 외부에는 근현대사를 빛낸 인물들의 흉상이 줄지어 있고, 그 첫 자리가 바로 이준 열사다. 이어 손병희 여운형 등으로 이어진다. 근현대사기념관에서 특별한 전시가 8일부터 열리고 있다. 이준 열사 유해봉환 60주기 추모 특별전 “돌아오지 못한 헤이그 특사”가 그것이다. 이준 열사의 성체(聖體)는 1907년 고종 황제의 특사로서 헤이그에서 순국한 지 56년이 지나 1963년 9월 30일 환국(還國)했고, 10월 4일 수유리에 안장됐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이다. 8월 8일부터 11월 30일까지 진행되는 특별전은 “법무대신을 고소한 호법신護法神 검사”, “일제 침탈에 맞선 국권수호운동”,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 “돌아오지 못한 특사의 귀환” 등으로 구성돼 있다. 서울 강북구와 민족문제연구소 주최, 근현대사기념관 주관, 리준만국평화재단 후원으로 진행되고 전시된 자료들은 대부분 이양재 리준만국평화재단 이사장 소장본이다. 주최측은 “대한제국 1세대 검사이자 국채보상운동을 이끈 애국계몽운동가 이준 열사는 1907년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로 파견되었습니다. 일제의 방해와 열강의 외면으로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열사는 이에 굴하지 않고 국제사회의 여론에 호소하는 외교활동을 전개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순국하고 말았습니다. 국권 회복을 위해 일제에 맞서 싸우다 끝내 돌아오지 못한 열사의 정신을 되새기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8일 오후 2시 개막식에서 함세웅 신부는
[오마이뉴스] 8.15 앞둔 한일시민사회 “전쟁 파국 아닌 평화의 길로”
한일 최대 규모의 종교시민사회 연대체 한일화해와평화플랫폼 8.15공동성명 발표 “우리는 대립과 분단으로 인한 전쟁의 위협이 세계로 확산되는 가운데, 시민들의 목소리를 모아 연대하며 화해와 평화를 위한 길을 계속해서 걸어갈 것이다.” 한국과 일본 종교·시민사회 단체로 구성된 한일화해와평화플랫폼(아래 한일플랫폼)은 2023년 8.15를 앞두고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10일 오후에 열린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한일 관계의 파탄, 핵오염수 위협, 세계의 군사적 긴장 고조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밝히면서 핵·전쟁 위기를 극복하고, 한일 간의 오래 과제를 해결하며, 평화롭고 지속가능한 세계를 만들 것을 촉구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김경민 사무총장(한국YMCA전국연맹)은 “2020년 발족한 한일플랫폼의 세 번째 8.15기자회견”이라며, 이번 기자회견의 주요 의제는 일본의 평화헌법, 입관난민법, 한반도 평화, 역사정의, 간도대지진과 조선인차별,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임을 알렸다. 기자회견 주제 발언에 앞서 김종생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한일플랫폼은 동북아 평화 실현의 소망을 가지고 발족한 단체이며, 한·일의 종교·시민사회는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새로운 평화 질서를 만드는 일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나갈 것”이라고 소개했다. 세계와 동아시아 평화의 열쇠 일본의 평화헌법 주제 발언은 일본측 종교·시민사회 단체 활동가들의 영상으로 시작됐다. 일본 기시다 정부의 평화헌법 개악 반대 발언을 맡은 다카다 켄 공동대표(전쟁을 시키지 않겠다 9조 깨부수지마! 총동원행동)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동북아 전쟁위기가 고조되고 각국은 군비확장과 군사동맹을 강화한다”라며 “일본의 기시다 정권 또한 미국, 한국 등과 군사동맹을 통해 군사훈련을 일상화하고 전수방위는커녕 선제공격이 가능한 적기지 공격능력을 보유해 전 국토의 군사기지를 강화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