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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장준하의 구국장정육천리’ 를 자전거로 돌다

2013년 7월 11일 671

이규봉 운영위원장이 6월 23일부터 7월 9일까지 17일간, 장준하 선생이 일제학도병으로 중국에 끌려갔다 중경 임시정부로 가기 위해 탈출한 경로를 따라 그 구국의 일념을 기리는 육천리 자전거 기행을 다녀왔다. 이규봉 위원장이 보내온 구국장정 육천리 답사 여정과 소회에 대한 글을 싣는다. – 편집자   <장준하의 구국장정육천리>를 자전거로 돌다 – 정부는 장준하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라 –   2013년 3월 26일. <장준하 선생 사인 진상조사공동위원회>는 장준하 선생의 유골을 감식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정빈 서울대 명예교수의 정밀감식팀은 “장준하 선생이 머리를 가격당해 목이 손상돼서 즉사 했고, 이후 누군가 벼랑 밑으로 내던졌거나 추락해 엉덩이뼈가 손상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비록 민간 발표이나 이로써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에 있는 약사봉에서 실족해 죽었다는 정부의 공식보도를 38년 만에 부정하는 것으로, 누가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진상을 규명해야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장준하 선생의 죽음이 정치적 타살로 인정된다면, 이 사건은 일제강점기 시절 조국의 광복을 찾기 위해 한 몸을 다 바친 광복군 대위가 해방 후에 자신의 나라를 빼앗은 일본의 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조선인 출신 일본군 중위에게 오히려 죽임을 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어찌 비분강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독립투사 중에 독립투사이며 나라와 민족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정통 보수주의자가 해방 정국에 기회주의자인 친일파에 의해 죽임을 당하다니.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빼앗은 당시 대통령에게는 군부정권 시절임에도 거침없이 독설을 퍼붓는 장준하 선생이 눈엣가시였으리라. 장준하 선생의

일 전범기업, 강제징용피해자에 배상하라

2013년 7월 11일 1342

   지난 해 5월 “한일청구권협정을 이유로 개인청구권까지 소멸했다고 볼 수 없다”는 대법원의 결정이 있은 뒤, 파기환송심(서울고법 민사19부)에서 처음으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피해자에 대한 전범기업의 손해배상 판결이 내려졌다.  그간 일본과 국내의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재판부는 1965년 박정희 정권 때 체결한 한일협정에 근거하여 일관되게 원고 패소로 판결해 왔다. 이번 판결은 일본 전범기업들의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 구체적인 책임을 인정하고 배상액을 명시한 첫 사례로, 향후 잇달아 제기될 유사한 소송의 선례가 된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미가 크다.  우리 연구소는 2003년부터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공동대표 이희자, 장완익)의 사무국을 맡아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특별법 제정을 주도하였으며, 일본과 한국에서 진행한 다수의 강제동원피해자 손해배상소송을 지원해 왔다. 현재 연구소 김민철 책임연구원이 집행위원장을, 김진영 연구원이 간사를 맡고 있다.  강제동원피해자 배상의 전기가 될 이번 판결을 널리 알리기 위해 다양한 언론보도를 소개한다. – 편집자   “日 기업, 강제징용 피해자에 배상” 첫 판결   법원 “피해자에게 1억씩 줘라”피해자 4명 日법원 패소 후국내 소송제기 8년만에 승소다른 소송에도 영향줄 듯   일제강점기 일본에 끌려가 노역에 시달린 조선인 피해자들에게 전범기업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첫 판결이 나왔다. 피해자들이 일본 법원에 소송을 냈다가 패소한 이후 한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지 8년 만의 첫 승소 판결이다. 이번 판결은 현재 진행 중인 다른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법원 “강제징용은 비인도적 불법행위” 서울고법 민사19부(부장판사 윤성근)는 10일 여운택(90)씨

‘막장’ 심의위, “‘백년전쟁’ 제작자 의견진술 필요 없다”

2013년 7월 11일 1335

박한용 실장, 위임장 받고 출석했지만 기회 못 얻어   방통심의위가 RTV에서 방영된 <백년전쟁>을 심의하면서 해당 역사다큐를 제작한 민족문제연구소 측의 의견진술을 거부해 논란이 예상된다.     ▲ 역사다큐 ‘백년전쟁’ 포스터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산하 방송심의소위(위원장 권혁부)는 10일 RTV에서 방영된 역사다큐 <백년전쟁>에 대한 의견진술을 앞두고 있었다. 지난달 27일 방통심의위 전체회의에서 RTV와 관련해 방송심의소위에서 의견진술 기회를 주기로 의결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날 방송심의소위에는 RTV 한영석 사무국장과 <백년전쟁>을 제작한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실장이 출석해 있었다. 하지만 정부여당 추천 권혁부 소위원장과 엄광석 심의위원이 “의견을 들을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실장의 의견진술을 거부했다. 결국, 이날 방송심의소위에서 야당 추천 심의위원들은 이에 반발해 퇴장했고 RTV 측 역시 의견진술을 취소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정부여당 추천 심의위, “제작한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 필요가 없다” 이날 의견진술에 앞서 권혁부 소위원장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이 방송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서 왔냐?”고 말문을 열었다.  권혁부 소위원장은 “심의를 통한 결론이 어떤 지배력을 갖느냐가 (의견진술을 들을지 여부를 판단하는)핵심”이라며 “외주제작사의 경우는 심의 결과에 따라 불이익도 올 수 있고 저작권을 가지고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의견진술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러나 민족문제연구소에는 (심의 결과가)어떤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소명 기회를 줄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곧바로 엄광석 심의위원은 “이번 경우에는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제작한 것을 사서 RTV에서 방영한 것이기 때문에 판단은 방송사에 있는 것이다.

[성명]강제동원피해자의 신일본제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 파기환송심 판결을 환영한다

2013년 7월 10일 867

  강제동원피해자의 신일본제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 파기환송심 판결을 환영한다   오늘 오후 2시 서울고등법원에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피해자들에 대한 신일본제철 주식회사(현 신일철주금 주식회사, 이하 신일본제철)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다. 2012년 5월 24일 대법원의 역사적인 판결 이후 다시 한번 일제강점기에 청년들을 강제동원하여 노동을 강요한 전범기업의 책임을 확인한 것으로 오랜 기간 일제 강제동원피해자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노력해 온 우리들은 매우 기쁜 마음으로 이를 환영한다. 신일본제철을 대상으로 1995년 9월 ‘가마이시 소송’을 제기한 날로부터 오늘의 판결에 이르기까지 18년의 세월이 흘렀다. 원고들이 소송에서 이길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끝까지 싸운 이유는 젊은 시절에 당한 피해가 크며 그 피해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불의가 지속되고 인권이 외면당했기 때문이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피해자들의 호소가 받아들여졌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 재판은 단순히 부도덕한 기업과 개인의 분쟁을 다루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작년 5월 24일 판결에서 대법원은 1965년의 한일청구권협정은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다룬 협정이 아니며, 또한 반인도적 범죄행위를 비롯한 불법행위로 인해 발생한 개인의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음을 대한한국의 헌법정신에 근거하여 명확히 밝혔다. 이 재판을 통해서 당시 일본제철(오사카, 가마이시, 야하타제철소)에 강제동원되어 열악한 환경에서 신체의 자유와 인격권, 생존권 등을 훼손당한 역사의 상처를 이제서야 다소라도 치유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2015년이면 피해자들이 강제노동하던 공장에서 벗어난 지 70여년이 된다. 피해자들의

광주 중외공원 ‘친일파’ 안용백 동상 철거키로

2013년 7월 5일 1094

3·1운동 탑과 나란히 있는 친일파 동상 (광주=연합뉴스) 장아름 기자 = 3·1운동 기념탑과 내선일체 정책을 찬양하고 창씨개명에 앞장섰던 친일파의 동상이 나란히 설치돼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28일 오후 광주 북구 운암동 중외공원에 설치된 안용백(1901~1977년) 선생 동상은 주변에 3·1운동 기념탑과 안중근 의사 동상 등과 함께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3·1절을 앞두고 친일파 동상 철거 또는 공적과 친일행적을 함께 기록한 안내판 세우기 등에 대한 시민 의견을 묻는 서명운동을 계획하고 있다. 2013. 2. 28 <<지방기사 참조>> areum@yna.co.kr  (광주=연합뉴스) 전승현 기자 = 광주 중외공원에 3·1운동 기념탑과 나란히 있는 ‘친일파’ 안용백(1901~1977년)의 동상이 철거된다.광주시립미술관의 한 관계자는 4일 “친일논란이 제기됐던 안용백 선생의 동상을 철거하기로 했다”며 “이르면 금주 안에 철거할 것”이라고 말했다.지난 1982년 2월 중외공원(당시 광주어린이대공원)에 설치된 ‘안용백 동상’은 주변에 3·1운동 기념탑과 안중근 의사 동상 등과 함께 있다.동상 주변에는 “경성제국대학 윤리과를 졸업하고 일찍이 조선철학회를 조직하였고 경남 하동군수를 지내고 조국광복이 되던 해에는 경남 중고등학교 초대 교장직을 위시로 문교부 고등교육국장, 전남교육위원회 교육감 등을 역임하면서 후학을 길러내는 데 일생을 바쳤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또한 그가 어린이 교육을 위해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실례했습니다’라는 말을 생활화하자는 ‘미고안실 운동’을 전개했다는 내용도 적혀 있다. 3·1운동 탑과 나란히 있는 친일파 동상 (광주=연합뉴스) 장아름 기자 = 3·1운동 기념탑과 내선일체 정책을 찬양하고 창씨개명에 앞장섰던 친일파의 동상이 나란히 설치돼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문제 알지만, 시청률 때문에?’…채널A ‘멘붕’ 해명

2013년 7월 5일 934

  지난 3월26일 방송된 채널A <박종진의 쾌도난마> ‘막말방송’ 채널A <쾌도난마>, “개선의 여지가 없다” 지난 3월26일 방송된 채널A <박종진의 쾌도난마> 종합편성채널 채널A <박종진의 쾌도난마>가 ‘막말방송’으로 중징계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심의에 나선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들은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질타했고, 채널A 측은 문제를 인정하면서도 ‘시청률도 무시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차차 개선을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시청률 때문에 ‘막말방송’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자인하는 ‘해명 아닌 해명’을 내놓은 셈이다. 방송통신심위위원회 방송심의소위원회(소위원장 권혁부)는 3일 회의를 열어 지난 5월21일과 3월26일 방송된 채널A <박종진의 쾌도난마> 등에 대해 심의를 벌였다. 시사평론가 이봉규씨가 출연해 역사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을 ‘역사왜곡 5적’ 중 하나로 규정하면서 ‘꽃뱀’, ‘사기꾼’ 등의 표현을 쓰는 한편 객관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일방적 주장을 방송한 부분과, ‘여성정치인 5대 얼짱’ 순위를 매긴 방송이 안건에 올라온 것이다.  ‘문제 알지만, 시청률 때문에?’…채널A ‘멘붕’ 해명 먼저 심의가 이뤄진 ‘백년전쟁’ 관련 방송에 대해 위원들은 ‘방송 품위’와 ‘객관성’ 문제를 지적했다. 권혁부 위원은 “이 프로그램은 비유가 너무 비약적이고 방송품위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권 위원은 이봉규씨가 방송에서 <백년전쟁>의 제작진을 ‘꽃뱀’에 비유하거나, ‘북한에 보내서 살게 해야 한다’는 식으로 발언한 것에 대해서도 “이런 식의 표현을 써서 비판하는 건 매우 부적절하고 방송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장낙인 위원은 “확인되지도 않은 내용을 가지고 언급하고 있다”며 “바로잡아줄 수 있는 노력을 해야 제대로 된 방송이 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입학비리 의혹 영훈학원의 속살, 이건 몰랐을 거다

2013년 6월 27일 735

친일파가 설립한 사학법인… MB 정부 당시 전성기 구가설립 50년을 맞이하는 영훈학원이 최대 위기를 맞았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손자가 사회적 배려대상으로, 그것도 학교 측이 성적을 조작해 입학시켰다는 의혹에서 시작된 ‘영훈 사태’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교감의 자살 사건에 이어 김하주 이사장의 검찰 소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영훈학원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국제중 설립 취소와 임시이사 파견까지 예상된다. 그동안 영훈학원은 수차례 논란의 중심에 서 왔다. 친일파 논쟁을 불러일으킨 설립 배경부터 폐교 위기가 나오고 있는 지금까지 영훈학원의 속살을 들여다보자. 대한민국 1호 국제중 설립자는 친일파 ▲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영훈학원 설립자 김영훈 ⓒ 민족문제연구소 관련사진보기 지난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와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위원장 윤경로)는 10여 년간의 조사 연구 끝에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할 친일 인물 4776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여기에는 박제순·이완용 등 을사오적과 언론·종교·예술 등 분야별로 활동한 대표적 친일 인사들까지 포함됐다.  이중 관료로 분류된 친일 인사들의 명단에는 일제 강점기 당진군수와 예산군수 등을 역임한 김영훈이 포함돼 있는데, 그가 바로 영훈학원의 설립자다. 그는 광복 후 이승만 정권에서 서울시 초대 교육감을 지냈고, 1965년 자신의 이름을 딴 영훈학원을 설립한 뒤 1985년 작고할 때까지 영훈초·중·고교 교장을 번갈아 맡은 ‘종신 교장’이었다.  현재 이사장인 김하주씨는 그의 아들이다. 1981년에 취임한 이후 32년째 이사장을 맡고 있다. 지금도 영훈학원 교내에는 친일파 논란의 당사자인 김영훈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러나 이 학교 졸업생들은 설립자가 친일 논란의 중심인물이라는 말을 학교에서 들은 바가 없다고 한다. 친일 논란의 한가운데

“박정희 신드롬, 박근혜가 지울 수도 있다”

2013년 6월 21일 1124

[강단 떠나는 두 역사학자 ③]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 <1>   한국 사회에서 현대사는 오랫동안 금기로 여겨졌다. 권력자들은 사람들이 현대사의 진실을 아는 걸 원치 않았다. 또한 두려워했다. 그래서 진실을 파헤치려는 움직임을 힘으로 눌렀다.그런 탄압을 딛고 진실의 문을 연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아직 충분치는 않지만 적잖은 현대사의 실체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그런 이들 중 두 사람이 2013년 1학기를 마지막으로 강단을 떠난다. 서울대 국사학과 동문인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와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다. 서 교수는 한국 현대사 연구를 상징하는 인물로 꼽히며, 진보적 역사 단체인 역사문제연구소를 오랫동안 이끌었다. 안 교수는 30년 넘게 한국사를 탐구했을 뿐만 아니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국가정보원 과거 사건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서 활동한 과거사 진상 규명 작업 전문가다.<프레시안>은 안 교수와 서 교수를 11일과 13일 차례로 만났다. 올해 들어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역사 관련 사안들에 대한 견해와 퇴임 이후 계획을 들었다. 두 사람의 인터뷰를 각각 2차례씩, 모두 4차례에 걸쳐 게재한다.아래는 서 교수 인터뷰 앞부분이다. <편집자> 강단 떠나는 두 역사학자[안병욱 ①] “일베-뉴라이트-<조선>은 이어져 있다”[안병욱 ②] “남로당식 사관? <조선>, 흉기 들고 난동”프레시안 : 대선 후 어느새 반년이 흘렀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도 100일이 넘었다.서중석 : 1997년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의 그림자가 너무나도 크게 우리 사회에 드리웠다. 박정희 신드롬은 정치인 박근혜가 인기를 누리는 데도 절대적이라고 할 만큼 큰 힘으로 작용했다.박정희 신드롬이 지워지고

“일베-뉴라이트-은 이어져 있다”

2013년 6월 21일 805

[강단 떠나는 두 역사학자 ①]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 <1>  한국 사회에서 현대사는 오랫동안 금기로 여겨졌다. 권력자들은 사람들이 현대사의 진실을 아는 걸 원치 않았다. 또한 두려워했다. 그래서 진실을 파헤치려는 움직임을 힘으로 눌렀다.그런 탄압을 딛고 진실의 문을 연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아직 충분치는 않지만 적잖은 현대사의 실체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그런 이들 중 두 사람이 2013년 1학기를 마지막으로 강단을 떠난다. 서울대 국사학과 동문인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와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다. 안 교수는 30년 넘게 한국사를 탐구했을 뿐만 아니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국가정보원 과거 사건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서 활동한 과거사 진상 규명 작업 전문가다. 서 교수는 한국 현대사 연구를 상징하는 인물로 꼽히며, 진보적 역사 단체인 역사문제연구소를 오랫동안 이끌었다. <프레시안>은 안 교수와 서 교수를 11일과 13일 차례로 만났다. 올해 들어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역사 관련 사안들에 대한 견해와 퇴임 이후 계획을 들었다. 두 사람의 인터뷰를 각각 2차례씩, 모두 4차례에 걸쳐 게재한다.아래는 안 교수 인터뷰 앞부분이다. <편집자>프레시안 :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올해, 역사 문제와 관련해 많은 일이 있었다. 이승만·박정희를 다룬 <백년전쟁> 논란, 한국현대사학회와 역사 교과서 논란, 종합편성채널(종편)들의 5.18 왜곡 방송,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논란, 전두환 추징금 문제까지 굵직한 사안들이 이어졌다.안병욱 : 그 문제들이 한 축으로 연결돼 있다고 생각한다.(해방 후) 초기에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을 때 이승만·박정희 등이 나와서 독재를 했다. 권력자들이 법을 벗어나서 사적으로 폭력을 행했고, 그것이 국가 전체적으로 공권력의 행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