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기사
이범익 단죄문 성금 모금 ‘시동’
친일 거물·간도특설대 창설 장본인광복회 도지부·본지 추진 속보= 지난달 정식 발족한 친일 거물 이범익 단죄문 설치 추진위원회(본지 4월 11일자 1면, 이하 위원회)가 본격적인 성금 모금에 들어갔다. 위원회(위원장 이종호 광복회 도지부장)는 친일 거물 이범익(李範益·1883∼?) 전 강원도지사의 단죄문을 설치하기 위한 성금모금 통장을 개설하는 한편 내주 실무진 모임을 갖고 시민들의 관심을 불러 모으는 모금 캠페인과 일정 등을 논의한다. 이종호 위원장은 “지난 15일 통장을 개설, 성금 모금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며 “춘천 시민들의 적극적인 관심을 통해 그림자에 가려진 역사 인물의 어두운 단면을 바로 비추고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울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범익은 1929∼1935년 강원도지사를 지냈으며 1937년 항일세력 토벌조직인 ‘간도특설대’를 창설한 장본인으로 친일사전에 올라있다.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간도특설대는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와 민간인 등 172명을 살해, 악명을 떨친 일제 특수부대다. 한편 광복회 도지부와 본지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이번 모금에 참여를 원하는 단체 및 개인은 광복회 강원도지부 농협계좌(301-0128-9624-21)로 성금을 보내면 된다. 문의 033-255-2419. 최경식 <강원도민일보>2013-5-21 [기사원문보기] 이범익 단죄문 성금 모금 ‘시동’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전시물·설명 ‘오류 범벅’
<한국일보>2013-5-31 [기사원문보기]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전시물·설명 ‘오류 범벅’ [관련기사] [토론회]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무엇이 문제인가
뉴라이트가 만든 역사교과서 검정 통과
‘자유민주주의’ 논란 부른 현대사학회가 집필타 교과서 좌편향 공격… ‘역사 흔들기’ 논란 뉴라이트 인사들이 이끄는 한국현대사학회가 집필한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교학사)가 검정심의 본심사를 통과했다. 뉴라이트 저자들이 2008년 ‘한국 근·현대사’라는 대안교과서를 내놓은 적은 있지만 이들이 쓴 교과서가 일선 학교에서 사용하는 검정과정에 합격한 것은 처음이다. 현대사학회가 31일 중·고교 한국사교과서 학술대회를 열면서 다른 출판사들의 역사교과서에 ‘좌편향’ 문제가 있다고 공격하고 나서 ‘역사교과서 흔들기’ 논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교육부 위탁을 받아 역사교과서 검정 작업을 하고 있는 국사편찬위원회는 지난 10일 고교 한국사교과서 검정심의에서 한국현대사학회 권희영 회장이 주집필자로 참여한 교학사 교과서를 비롯한 8종이 본심사를 통과했다고 공지했다. 본심사를 통과한 교과서들은 현재 검정심의위가 권고한 수정·보완 작업을 진행 중이며 8월30일 최종 합격 여부가 발표된다. 역사교과서가 국정에서 검정으로 바뀐 ‘2007년 교육과정 개정 체제’ 이후 수정·보완 단계에서 탈락한 역사교과서는 없다. 최종 합격된 교과서는 9월 중 각 학교에 전시돼 학교별 채택과정을 거친 뒤 내년 3월부터 사용된다. 한국현대사학회는 ‘2009 역사교육과정 개정’ 논의가 막바지에 이르렀던 2011년에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자고 건의했던 뉴라이트 계열 단체다. 당시 국사편찬위원회와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이를 공개논의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 논란이 커졌다. 한국현대사학회의 교과서위원장인 이명희 공주대 교수는 당시 교과부에 강제병합 후 일제에 의한 근대제도의 이식과 우리 민족의 수용을 역사교육과정에 명시할 것을 요구하는 제안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일제가 한국 근대화가 끼친 긍정적 역할도 인정하자고 주장해 파문이 일었다. 한국현대사학회와 아산정책연구원이 주관하는 ‘교과서
[책소개] 한국의 레지스탕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이 추적한 한국 근대 지식인의 고뇌와 투쟁 시대의 광기, 절망과 ‘맞짱’ 뜬 강심장의 레지스탕스들 야만의 시대와 맞선 근대 지식인의 비밀결사와 결전, 《한국의 레지스탕스》. 일본 제국주의의 야만과 광기, 절망에 맞서 투쟁한 항일 혁명가들의 고뇌와 투쟁 현장을 생생하게 들려주는 책이다. 저자 조한성은 특히 비밀결사에 매료됐다. 합법적인 저항운동은 소극적이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청년 안창호의 신민회부터 만년 여운형의 조선건국동맹까지, 민족해방과 새 조국 건설이라는 대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던진 7개 비밀결사단과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저자는 ‘레지스탕스’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했다. 일본 제국주의는 강했고 그들에 항거하는 비밀결사는 한계가 많았다. 위험한 도전이었기에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삶이었다. 그러나 기록으로 만난 그들은 비록 질식할 듯한 극도의 긴장감을 습관처럼 호흡하며 살았지만 살아 있는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명랑하고 치열했다. 폭탄 테러 작전에 서로 투입되겠다고 다투는 레지스탕스들의 모습에서 저자는 비장하고 엄숙한 결기와 짜릿한 흥분을 함께 읽었다고 고백한다. 시대의 모순과 인간적 한계를 정면 돌파하며 성장해가는 레지스탕스들을 통해 암울하고 참담한 역사로 기록돼온 한국 근대사를 전혀 새롭게 만나도록 안내한다. “의열단원들은 마치 특별한 신도처럼 생활했고 수영, 테니스, 그 밖의 운동을 통해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했다. 매일같이 저격 연습도 했다. 이 젊은이들은 독서도 했고, 쾌활함을 유지하고 자기들의 특별한 임무에 알맞은 심리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오락도 했다. 그들의 생활은 명랑함과 심각함이 기묘하게 혼합된 것이었다. 언제나 죽음을
역사학 논쟁에 대통령이 나서는 것은 구시대 잔재
[인터뷰]한상권 덕성여대 사학과 교수 한상권 덕성여대 사학과 교수는 지난해까지 학술단체협의회 상임의장을 지냈고, 지금도 역사정의실천연대 상임대표를 맡고 있을 만큼 사회참여에 적극적이다. 그러나 5.18민중항쟁을 앞두고 직접 만났을 때 한 교수는 예상과 좀 다른 이야기를 했다.“대체로 역사학자는 사회활동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언론에 자꾸 나오면 ‘저 친구는 공부 안하고 정치하려나’ 생각할 정도로. 연구 외 다른 일 많이 하면 선생님들에게 공부 안한다고 혼나고 그랬다.”그는 올해 60세로 정년퇴직을 5년 앞두고 있다. 연구 열심히 해서 좋은 논문 남기고 싶다는 한 교수는 바람과 달리 상아탑 안에 앉아있지를 못했다. 덕성여대 사학과 한상권 교수가 16일 오후 서울 도봉구 쌍문동 덕성여대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조각도 못한 채 전쟁 위기 맞았는데 ‘백년전쟁’ 이야기하고 있다니”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라는 이인수씨는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지난해 나온 다큐멘터리 ‘백년전쟁’ 관계자들을 고소했다. 앞서 지난 3월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원로인사 오찬에서 이인호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은 ‘백년전쟁’을 국가안보 차원으로 다뤄야 한다’고 말했고, 이어 청와대 모 수석이 국사편찬위원장 등 학계 인사 3명에게 ‘백년전쟁’을 언급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흥미로운 역사물이었던 ‘백년전쟁’은 보수와 진보의 전선(戰線)이 됐다.한상권 교수는 청와대와 보수진영의 대응을 강하게 성토했다.“(청와대 발언 나온) 그 시점은 박근혜 대통령이 아직 조각도 못할 때다. 북한 문제로 전쟁 나느냐 마느냐 하는, 국가 생존이 걸린 위기였다. 그 시점에 원로라는 이가 ‘백년전쟁을 국가 안보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도 그냥 ‘알겠다’고 그칠 것이지 수첩에 적었다. 청와대에서 역사단체장을
백년전쟁, 방통심의위 ‘정치심의’ 예고
보도교양특위도 6대 3…강한 제재 받을 듯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역사다큐 <백년전쟁>을 방영한 RTV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만, 이하 방통심의위)로부터 강한 제재를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보도교양특위원회(위원장 여상조)는 21일 회의를 열어 <백년전쟁> 방영이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9조(공정성)와 제14조(객관성), 제20조(명예훼손 금지)를 위반했는지 여부를 논의했다. 그 결과 “강한 제재를 해야 한다”는 의견과 “문제없다”는 의견이 6대 3으로 갈렸다. 또 다시 방통심의위에서 ‘정치심의’ 논란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백년전쟁>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일제강점기 행적을 그린 ‘두 얼굴의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의 경제 정책을 다룬 ‘프레이저 보고서’ 편으로 구성돼 있다. 해당 다큐는 2012년 말 공개 이후, 보수언론들의 공격을 받으면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민원인은 “종북 선동 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다큐멘터리로 진실을 왜곡해 시청자에게 혼란과 불안을 야기 시키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송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방통심의위에 RTV에 대한 심의를 요청했다. 이날 보도교양특위에서는 RTV에서 방영된 <백년전쟁>과 관련해 어떤 부분이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을 위반했는지에 대한 판단보다는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는 단체가 만든 것”이라며 민족문제연구소에 대한 지적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보도교양특위에서는 <백년전쟁> 방영이 어떤 부분에서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을 위반했는지에 대한 판단보다는 “나라의 근본을 부정했다”, “이승만 폄훼의도 다큐” 등 민족문제연구소를 겨냥한 발언이 주를 이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특위 위원들은 과징금 전 단계인 ‘관계자에 대한 징계’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방통심의위는 <방송통신위원회
무대응·무관심했던 진보 역사학계…”적극 나서야”
‘역사 훼손, 이대로 둘 것인가’ 긴급 토론회… 진보측에 적극적 태도 주문 ▲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에서 열린 ‘역사훼손, 이대로 둘 것인가’ 토론회에서 진보 역사단체 활동가들은 최근 5.18 민주화운동 폄훼와 다큐 ‘백년전쟁’에 대한 극우세력의 대응을 심각한 사태로 인식하고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 ⓒ 강민수 관련사진보기 “수구 세력의 역사왜곡 주장은 막가파식이다. 한국의 역사학계와 시민사회가 달성했던 민주화 정신은 물론 헌법정신도 무시하는 전면적인 역사 쿠데타다. 여기에 국가기관이 보이지 않게 비호, 방조하면서 조직적인 총공세가 이뤄지고 있다.”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은 최근에 불거진 5·18 민주화운동 등에 대한 역사왜곡을 ‘막가파식 역사 쿠데타’로 규정했다. 여기에 국가 기관의 비호로 군부 독재에 맞서 피 흘려 이뤄낸 민주화 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왜곡이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역사훼손, 이대로 둘 것인가’ 토론회에서다. 하지만 이러한 대응에 진보 역사 시민단체들의 대응이 안일하다고 지적했다. 박 실장은 “우리는 진보 역사 학계는 무대응·무관심·무책임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천박해서 대응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역으로 방임을 통한 긍정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조직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우리는 역사적 죄를 짓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극우세력의 역사훼손 어떻게… “청산 대상이 기억의 대상 됐다”인터넷 누리집 ‘일간베스트'(일베)의 이용자와 종합편성채널 <채널A>, <TV조선>이 5·18 민주화운동을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라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증폭됐다. 두 채널은 시청자에게 사과했지만 여전히 일베에서는 5·18 운동에 대한 폄훼가 이어지고
수원의 신여성 나혜석을 재조명한다
제2회 나혜석 학술대회 내달 1일 열려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EC%88%98%EC%9B%90%EC%8B%9C&nil_profile=newskwd&nil_id=v20130529104313469″ target=new>수원시와 나혜석 학회는 오는 6월1일 오후 1시30분 ‘나혜석과 그의 시대-그 주변 인물들’이란 주제로 제2회 학술대회를 개최한다.수원화성박물관에서 열리는 이번 학회에서는 나혜석(사진)과 그 주변인물들을 살펴보며 다양한 연구성과를 발표할 예정이어서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학술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나혜석 학회의 서정자 회장도 “철저히 연구한 논문들의 발표를 통해, 기존의 잘못된 소문이나 개인의견을 바로잡고 나혜석을 재조명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관심있는 시민 누구나 학술대회에 참석할 수 있다.학술대회에서는 다섯 주제로 나눠 발표된다. 박정애 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EC%88%99%EB%AA%85%EC%97%AC%EB%8C%80&nil_profile=newskwd&nil_id=v20130529104313469″ target=new>숙명여대 교수의 ‘소문과 진실: 나혜석과 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EC%9D%B4%EA%B4%91%EC%88%98&nil_profile=newskwd&nil_id=v20130529104313469″ target=new>이광수‘, 서정자 초당대 교수의 ‘김일엽과 나혜석의 사상적 관련양상’, 이용창 검색하기” href=”http://search.daum.net/search?w=tot&rtupcoll=NNS&q=%EB%AF%BC%EC%A1%B1%EB%AC%B8%EC%A0%9C%EC%97%B0%EA%B5%AC%EC%86%8C&nil_profile=newskwd&nil_id=v20130529104313469″ target=new>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의 ‘나혜석과 최린, 파리의 자유인들’에 대한 주제발표가 있을 예정이다.또한 전갑생 부산경남사학회 연구원이 ‘청구 김우영의 생애와 나혜석’에 대해 윤범모 가천대 교수의 ‘여성미술의 형성, 나혜석과 백남순의 경우’에 대해 발표한다.시 관계자는 “수원시가 인문학 도시로써 나혜석을 주요 인문학 콘텐츠 중 하나로 활발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며 “평소 나혜석에 대해 관심이 많은 시민들도 많이 참석해 나혜석의 삶과 활동을 재조명하는 시간을 가져보기 바란다”라고 말했다.한편 지난해 열린 제1회 학술대회에서는 일본에서 발굴된 나혜석의 친필 엽서와 편지 6통이 일반인에게 최초로 공개돼, 학계의 큰 주목을 받은 바 있다.(끝)출처 : 수원시청 보도자료 <연합뉴스>2013-5-29 [기사원문보기] 수원의 신여성 나혜석을 재조명한다
[토론회]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무엇이 문제인가
▲ 팩트TV(재방송중) : [토론회]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무엇이 문제인가 body,table,td,input,select,textarea{font-family : verdana,굴림;font-size :9pt;line-height : 140%;}img{border : 0;}A:link {text-decoration:none; color:black;}A:visited {text-decoration:none; color:black;}A:hover { text-decoration:none; color:#3E8FFC;}P{margin-top:2px;margin-bottom:2px;}
日 우익의 조선학교 탄압, 65년 지난 지금도…
과거사 부정으로 지탄을 받고 있는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최근 조선학교를 고교무상화 제도에서 배제하고자 관련법령을 개악했다. 오만방자한 망언을 일삼고 있는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시장 겸 일본유신회 공동대표도 조선학교에 대한 보조금 교부를 거부하는 등 재일한국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적대행위를 자행하고 있다. 재일한국인 인권운동가이자 한국근현대사 연구자인 후지나가 다케시(藤永 壯) 오사카산업대 교수가 일본 우익의 조선학교 탄압 배경과 실태를 조명한 글을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 기고했다. 후지나가 교수는 조선학교 무상화 교육실현 운동을 위해 기금을 모으고 재판을 지원하는 등 열정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자세한 내용은 홍길동 기금 http://www.osakahuminkikin.net/k/korea01.html참조).후지나가 교수는 우리 연구소가 편찬을 추진 중인 <재일조선인단체사전>의 오사카 지역 집필위원이기도 하다. – 엮은이 [기고] 제네바로 날아간 조선학교 어머니들의 두루미 후지나가 다케시 일본 오사카산업대 교수 1948년 4월의 교육투쟁4월 24일은 재일한국인의 뇌리에 깊게 새겨진 날짜다. 지금부터 65년 전, 즉 1948년 이날, 민족학교의 강제 폐쇄에 항의해 수천 명의 재일한국인이 효고(兵庫)현청(고베시)에 몰려가 현지사로부터 민족학교의 폐쇄를 철회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것이다.이 투쟁의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사정이 있다. 일제식민지시대, 재일한국인은 일본의 동화정책으로 말미암아 자민족의 언어나 문화를 배울 기회를 빼앗겼다. 이에 해방을 맞이하자 일본 각지에 ‘국어강습소’를 세우고 아이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쳤는데, 얼마 안 되어 체계적인 교육커리큘럼을 갖춘 민족학교로 발전해 갔다. 그러나 미소 대립이 격화되는 가운데 일본을 점령하고 있었던 GHQ(연합국군 최고사령관 총사령부)와 일본정부는 당시 최대의 민족단체였던 ‘재일본조선인연맹(조련)’ 산하의 민족학교가 공산주의 교육을 실시한다는 의구심을 갖고 탄압에 착수한 것이다.1948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