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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이승만 前 대통령 유족측으로부터 고소당한 다큐영화 ‘백년전쟁’, 논란이 되는 이유는?

2013년 5월 6일 866

<3~4부>* 뉴스 브리핑 – 시사평론가 김성완* 인터뷰” 이승만 前 대통령 유족측으로 부터 고소당한 다큐영화 ‘백년전쟁’, 논란이 되는 이유는? “ –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연구실장   [방송듣기]   <TBS 여균동의 오늘>2013-5-2

야스쿠니 신사서 세배를?…’역사 불감증’ 심각

2013년 5월 6일 440

<앵커>일본은 역사를 뿌리째 흔들고 있고, 우리 청소년들은 역사 까막눈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지금의 교육체제로는 역사 자체를 기피하는 현상이 심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김종원 기자의 생생리포트입니다.     <기자>상식 수준의 간단한 질문들입니다.[대학생 : (서대문 형무소가 뭐하던 데인지 아세요?)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야스쿠니 신사가 뭐하던 데인지 아세요?) 아니요.][고등학생 : (3.1 운동이 왜 일어났는지 알아요?) 북한군이 쳐들어 와서.][고등학생 :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누구예요?) 김대중. 박정희랑 전두환 밖에 모르겠어.][(야스쿠니 신사가 뭔지 알아요?) 우리나라 사람이 일본 천황한테 숭배하는 것. 세배. 세 번 절하는 거?]지금 보신 이 황당한 답변들, 많은 시청자 분들은 물론 저희 취재진도 깜짝 놀랐습니다.이 인터뷰는 닷새에 걸쳐 서울 시내에서 진행이 됐고, 대상자는 10대 중고등학생, 20대 대학생 그리고 30대 초반 시민 모두 121명이었습니다.근현대사에 대한 아주 간단한 질문을 4~5개씩 여쭤봤는데, 이 질문에 모두 대답을 한 사람은 10명, 10%도 되지 않았고, 반면 모두 틀린 사람은 84명으로 무려 70%나 됐습니다.반면 60~70대 세대는 웬만한 문제에는 막힘이 없습니다.[김대현/70세 : (야스쿠니 신사?) 그 2차 대전 일본 전범자들.]학창시절 꾸준히 이어진 역사교육의 차이입니다.[그 때는 우리 독립운동사도 초등학교부터 시작해서 고등학교까지 계속 배웠죠.]요즘 학생들에게 역사는 귀찮은 암기 과목일 뿐입니다.[고등학생 : 저는 그냥 역사가 싫어서 역사 공부를 안 해요. 외우는 게 싫어요.]지난해 서울시 중학생들의 학업성취도 평가 성적표를 보면 역사가 속한 사회 과목은 국, 영, 수 세 과목에 비해 보통 이상 성적을 받은 학생은 더 적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가장 천박한 추모방법

2013년 5월 3일 648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가장 천박한 추모방법” | 기사입력 2013-05-01 04:34 | 최종수정 2013-05-01 04:53 야스쿠니 신사 참배 마친 일 국회의원들 (교도=연합뉴스) 23일 오전 8시 22분 도쿄 야스쿠니 신사에서 일본의 초당파 의원연맹인 ‘다함께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의원들이 참배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2013.4.23 zjin@yna.co.kr뉴기니서 태평양戰 유골 발굴 이와부치씨한국 강제동원 전사자만 4천690명…”정부가 유골발굴 나서야”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는 일본 정부가 전사자를 기리는 가장 천박한 방법입니다. 야스쿠니에 참배할 바에는 타국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유골들을 먼저 발굴해 귀환시켜야 합니다.”이와부치 노부테루(岩淵宣輝·72) 태평양전사관 대표는 최근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 등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데 대해 “전쟁 유족의 한 사람으로서 전사자의 유골을 찾는데 일생을 보낸 사람으로서 정말 분하다”며 “오는 7월 참의원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한 행동”이라고 1일 주장했다.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보추협) 초청으로 지난달 29일 한국을 방문한 그는 비영리단체 태평양전사관을 이끌며 1977년부터 인도네시아령 뉴기니에서 전사자 유골 발굴작업을 하고 있다.그가 36년간 발굴해 귀환시킨 유골만 1만2천구에 이른다. 유골 중에는 신원을 확인하지 못한 한국과 대만 출신 전사자들이 다수 포함됐다.이와부치 대표가 유골 발굴에 처음 나선 것은 1944년 파푸아뉴기니 국경 근처에서 연합군의 폭격으로 사망한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그는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는 열망에 시작한 일이 이렇게 긴 세월 이어질 줄 몰랐다”며 “자신의 발로 돌아올 수 없는 병사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산 자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야스쿠니 참배하는 아소

[심층취재] 한심한 교과서…표지에 일본인 사진

2013년 5월 3일 639

<앵커 멘트> 초등학교 1~2학년 학생들이 공통으로 배우는 국정 교과섭니다.  표지에 나온 해맑은 표정의 아이들 단란한 가족의 모습 참 보기 좋은데요. 그런데 이 사람들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입니다.  우리나라 초등학교 교과서 표지에 웬 일본 사람들이 등장했을까요? 황정환 기자가 심층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초등학교 교실에서 수업이 한창입니다. 그런데 교과서 표지에 나오는 아이들의 모습이 이국적입니다. 다른 교과서 표지의 활짝 웃는 가족 역시, 짙은 쌍꺼풀과 광대뼈 없는 얼굴이 우리나라 사람과 분명 차이납니다. 모두 일본인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윤여환(충남대 회화과 교수) : “남방계 특징을 잘 갖고 있는 대표적인 일본 사람들의 얼굴로 보입니다.” 일본 사람을 표지에 사용한 교과서는 이게 다가 아닙니다. 올해 이 출판사가 낸 초등학교 1~2학년용 국정교과서 8권 가운데 3권의 표지사진 인물이 일본인이고, 다른 한 권도 해외에서 공급된 것으로 국적불명입니다. 문제의 출판사는 5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국내 대표적인 교과서 전문업체, 사진 제공업체 홈페이지에 들어가 ‘일본사람’으로 검색하면 관련 사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데도, 출처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조용석(지학사/발행인/콘텐츠본부 실장) : “주제에 맞도록 사진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나름대로는 검증을 했는데, 검증 과정이 충분치 못했던 것 같습니다.” 올해부터 전국의 초등학교 1~2학년 학생 87만 명이 이 책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육부도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몰랐습니다. <인터뷰> 이현(교육부 교과서기획과 연구사) : “내용이나 주제에 적합한 사진을 넣었는데 그런 부분들이 당연히 한국 사람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역사교육

[성명서] 아베신조 내각각료와 국회의원 163명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규탄한다!

2013년 5월 1일 825

<AWC일본연 항의성명서>   아베 신조 내각 각료와 국회의원 163명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규탄한다! (1) 4월21일부터 야스쿠니 신사에서 진행되는 춘기예대제(春期例大祭)에 즈음하여 아베 신조 내각의 각료들이 잇달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했다. 4월20일에 신도  요시타카 총무상이, 다음 21일에는 아소 다로 부총리와 후루야 케이지 납치문제 담당상이 참배를 했고, 28일에는 이나다 도모미 행정개혁상도 참배를 해서 아베 내각의 각료 4명이 참배한 것이다. 또 아베 수상 자신도 신사에 바치는 공물인 ??(마사카키)를 봉납했다. 또한 23일에는 ‘다함께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에서 국회의원 168명이 집단적으로 참배했다. 이번 참배는 지금까지 국회의원 집단 참배에서 괴거 최고 수준으로 인원 수가 많았다. 그 중 132명이 자민당 의원이며, 25명이 일본 유신회 의원, 민주당 의원도 5명이 포함되어 있다. (2) 이에 한국 정부와 중국 정부가 반발하자 아베 수상을 비롯한 아배 내각 각료들은 그 속마음을 드러냈다. 아베 수상은 국회답변에서 ‘나라를 위해 귀한 목숨을 잃은 영령에 대해 존숭의 뜻을 표명하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협박에도 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럴 자유가 있다’고 각료들의 야스쿠니 참배를 정당화했다. 아베 수상은 한국과 중국 정부의 항의를 내정간섭이라고 비판하며, 협박에 굴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취한 것이다. (3) 야스쿠니 신사는 과거 일본 제국주의의 아시아 침략전쟁, 그리고 그 전쟁을 수행한 천황의 군대의 정신적 지주였다. 천황에게 충성을 다한 일본군 군인을 야스쿠니 신사에 신으로 받들어 모시고 영령이라 불렀다. 1945년, 일본제국주의가 아시아

교과서에 실린 작가 이름이 ‘우르르’…모두 친일파

2013년 4월 26일 2658

[서평] 임종국의 <친일문학론> 교주본 발간 즈음에 윤대석 명지대 국문과 교수 임종국 선생의 <친일문학론>을 처음 읽었을 때 느낀 분노와 부끄러움을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당시에도 그리 흔치 않던 세로쓰기로 된 <친일문학론>이 나열한 그 긴 작가의 목록과 그들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자극적인 언어는 고등학교 때까지 품어왔던 한국 근대문학에 대한 생각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그 목록이 중ㆍ고등학교 교과서의 작가 목록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그리고 그들 작품의 노골성 때문에 교과서적 지식에 대한 반감은 더욱 높아지게 되었는데, 아마 그것이 문학회 신입생 세미나 교재로 <친일문학론>을 선택한 선배들의 의도였을 터이다.광주항쟁의 실상과 비슷한 충격 임종국의 <친일문학론>최소한 나에게 그 책은 광주항쟁의 실상을 알게 되었을 때와 비슷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구국의 영도자’ 전두환, ‘보통사람’ 노태우가 살인마였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과, 위대한 시인ㆍ소설가들이 친일파였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은 동격이었고, 그것은 사고의 전도를 가져오기에 충분했다. 그러기에 ‘자화상(임종국 선생이 <사상계>를 통해 1960년 발표한 시-편집자주)‘을 서문으로 책 앞머리에 붙인 임종국과 마찬가지로 “나를 그토록 천치로 만들어 준 그 무렵의 일체를 증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 고 임종국 선생 ⓒ민족문제연구소동시대에 나온 김지하의 시 ‘오적’이 권력 엘리트들의 치부를 드러냈다면, <친일문학론>은 문학 엘리트들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는데, 1966년에 초판이 발간된 이 책은 너무 오랫동안 홀로 이러한 계몽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임종국의 ‘외로운 열정‘은 바다를 건너 오무라 마스오(번역), 사에구사 도시카쓰(연구)의 공명을 이끌어내기도 했으나, 이 땅의 연구자들에게는 철저하게 외면당했던 것이다.그러나 그러한 외면은 역설적으로 공감의 결과이기도 했다. <친일문학론>이 외면당하던 시기에 한국 근대문학

민족문제연구소 교주본 발간

2013년 4월 25일 393

  반세기만에 거듭난 ‘친일파’ 연구의 고전 민족문제연구소 <친일문학론> 교주본 발간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 인터넷 서점 바로가기 : <친일문학론> 임종국 저 이건제 교주, 민족문제연구소 편 굴욕적인 한일협정이 체결된 이듬해인 1966년 7월 출간되어 지식인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던졌으며, 1970-80년대 암울했던 독재정권 시기 옥중 필독서로 인기를 끌었던 임종국의 <친일문학론>이 한층 정교해진 내용으로 다시 선보였다. 초판이 발간된 지 거의 50여 년 만에 사실상의 개정판이 발간된 것이다.   <친일문학론>은 친일문제 연구의 단서를 연 기념비적 저작으로 문학은 물론 각 분야에 두루 영향을 끼친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수많은 저술과 논문들이 여기에서 시사점을 얻었으며 이를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2009년 11월 발간된 <친일인명사전>도 그 정신사적 원류를 <친일문학론>에서 찾고 있다. <친일문학론>이 없었다면 ‘친일’이라는 금기의 영역은 여전히 깨지지 않은 채 온전한 성역으로 남아있게 되었을 것이다.   이번에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교주본 <친일문학론>은 원저의 골간을 건드리지는 않았으나 전면적인 검증을 거쳐 오류를 바로잡고 읽기 쉽게 재구성한 점이 돋보인다.    첫째, 원저에 기술된 기초 사실이나 인용문을 철저히 원자료와 대조하여 오기와 오역, 착오 등을 바로잡았다. 둘째, 어려운 한자말이나 당시 용어를 알기 쉽게 풀이하고, 나아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사항을 각주(전체 각주 373개)로 처리하였다. 셋째, 한자어, 인명, 지명 등을 가능한 한 한글화하고 필요할 경우에만 한자를 병기하였다.  378명의 한자 표기 일본인명을 각종 근거를 찾아 일본어 발음으로 풀어낸 것도

[성명서] 일본 정부 관료와 정치인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력 규탄한다

2013년 4월 24일 1053

[성명서] 일본 정부 관료와 정치인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력 규탄한다 일본 여야 국회의원 168명이 23일 오전 야스쿠니신사를 집단 참배했다. 총리는 공물을 봉납하고 부총리 등 정부 각료 세 명도 참배했다. 과거 아시아 각국을 침략하고 식민지 지배에 혈안이 되었던 제국주의의 망령들이 이들에 의해 ‘애국’의 이름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다. 야스쿠니란 무엇인가. 과거 일본의 대외침략의 발진기지이자 천황제 파시즘의 심장부이며, 현재는 시대착오적인 일본 우익의 영혼이다. 요컨대 A급 전범을 애국자로 숭앙하고 천황을 앞세운 ‘살아있는 침략신사’이다. 이러한 야스쿠니 신사에 정부 각료와 정치인이 대거 집단참배를 했다는 것은,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을 전면 거부하는 것일 뿐 아니라 아시아 피해민중을 다시 모욕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현 일본 정부는 교과서를 뜯어고쳐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미화하고, 독도 등 타국 영토에 대해 시비를 걸어 내부의 불만을 대외로 돌리고 있다. 이를 빌미로 자국의 헌법마저 고쳐 전쟁할 수 있는 나라, 극우 군사대국으로 나아가려고 하고 있다. 실로 아시아에서 새로운 분쟁의 출발은 일본에서 시작되고 있다. 일본 정치인의 대규모 야스쿠니 신사참배는 과거 일본 제국주의로의 회귀이자 일본 민주주의에 대한 파괴행위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총체적 극우화! 이것이야말로 오늘 일본의 현주소이다. 이제 일본은 아시아 여러 국가와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을 포기했다. 과거 식민지배와 침략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앞세우며 구제불능의 국가로 가고 있다. 120년전 후쿠자와 유키치는 조선을 비난하며 ‘아시아의 나쁜 친구를 사절한다’고 한 적이 있다. 뒤이어

[논평] 친구가 되기를 거부하는 나라, 일본

2013년 4월 23일 352

<논평>  친구가 되기를 거부하는 나라, 일본   일본 여야 국회의원 168명이 23일 오전 야스쿠니신사를 집단 참배했다. 총리는 공물을 봉납했으며, 아소 부총리 등 정부 각료 세 명도 참배했다. 이는 이웃국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깡그리 무시하는 ‘참사’에 가까운 도발행위이다. 야스쿠니신사가 무엇인가. 침략자와 가해자들의 사당이자, 민족문화를 말살하고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도구로서 일제 침략 지배의 최대 상징이었다. 그런 야스쿠니신사에 정부 각료와 정치인이 대거 참배했다는 것은 과거 식민지배와 침략을 받은 나라들과 민중들을 모욕하는 행위이며,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에 대한 일말의 기대조차 완전히 무너뜨리는 행위이다. 이웃나라와 친구가 되기를 거부한 정치적 행위로서 함께 살아갈 의사가 없음을 스스로 선언한 망동이다. 그들의 졸렬한 행동과 역사인식에 분노를 넘어 도저히 구제불능한 국가라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측은한 마음마저 든다. 도대체 어디까지 가려 하는가. 일본 정계의 총체적인 반동화는 일본 국내의 민주주의를 약화시키고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최대의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총리는 교과서 문제에 근린조항을 무력화시키는 카드를 만지작거리면서 왜곡된 역사교육을 강화하려 하고, 영토 분쟁을 야기시켜 시민들의 불만을 밖으로 돌리게 하며, 종이호랑이에 불과한 평화헌법마저 개정해서 군사대국화를 합법화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가 국제적 갈등을 증폭시켜 스스로의 고립을 자초하는 행위임을 뻔히 알면서도 강행하는 것은 이웃과 공존할 의사가 없거나 상대를 멸시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는 일이다. 120여년 전 후쿠자와 유기치가 갑신정변이 실패로 끝난 이후 조선을 비난하며 ‘아시아의 나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