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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공지] 2013 민족문제연구소 정기총회

2013년 3월 5일 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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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국수주의자들 위안부 할머니들에 ‘막말 노래’ 보내

2013년 3월 4일 369

日 국수주의자들의 ‘막말 노래’ 테러 (광주=연합뉴스) 최종호 기자 = 3·1절을 앞둔 지난달 28일 일본 국수주의자들로 이루어진 록밴드로 추정되는 이들이 일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을 모욕하는 노래 CD와 노래 가사가 적힌 종이를 할머니들이 거주하는 ‘나눔의 집’에 보냈다. 사진은 이들이 유튜브에 올린 이 노래 동영상. 2013.3.2 zorba@yna.co.kr (광주=연합뉴스) 최종호 기자 = 록밴드로 보이는 일본 국수주의자들이 3·1절을 앞두고 일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을 모욕하는 노래 CD를 할머니들이 거주하는 ‘나눔의 집’에 보낸 것으로 확인돼 충격을 주고 있다. 2일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에 따르면 ‘조선놈들을 쳐죽여라’라고 쓰인 노래 CD 1장과 이 노래 가사를 한국말로 번역한 A4 종이 1장이 들어있는 소포가 3·1절 전날인 지난달 28일 오후 나눔의 집에 도착했다. 발신인 난에는 ‘東京部 千代田區'(도쿄도 지유다구)·’櫻亂舞流'(벚꽃 난무류)라고 적혀 있었으며 벚꽃 난무류는 일본 국수주의자들로 이루어진 록밴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노래 가사에서 시종일관 한국을 비하하는 가운데 ‘매춘부 할망구들을 죽여라’라며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나눔의 집 안신권 사무국장은 “소포를 뜯어보고 너무 충격을 받았다”며 “할머니들께는 아직 말씀도 드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노래 가사에는 ‘지진 틈타 도둑질하는 놈들 뭐하러 왔어’, ‘다케시마에서 나가라. 동해표기를 없애라’, ‘돈으로 사는 히트 차트 토할 거 같애’ 등 재일동포와 독도, 한류 아이돌 그룹을 겨냥한 망언도 담겨 있다. 이들은 이 노래를 3분 56초짜리 뮤직비디오로 만들어 지난 1월26일 유튜브에

육사의 뿌리에 ‘임시정부’는 없다

2013년 3월 1일 832

ㆍ“남조선경비사 모체”라 소개… 역사인식·정통성 논란 일어 육군사관학교가 미군정 때 세워진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를 자신들의 모체라고 주장하는 것은 대한제국이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무시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육사가 대한제국 수립 다음해인 1898년 세워진 대한제국 무관학교나 임시정부 수립에 기여한 신흥무관학교의 전통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육사 홈페이지에서 나오는 연혁을 보면 “1946년 5월1일 육사의 모체라 할 수 있는 남조선경비사관학교가 제1기생 88명으로 개교했다”고 나와 있다. 남조선경비사관학교는 미군정이 일본군 출신에게 영어를 가르칠 목적으로 세웠던 군사영어학교를 1946년 4월30일 폐교하면서 설립한 학교다. 황원섭 신흥무관학교100주년기념사업회 공동대표는 “육사가 학생 대부분이 일본군 출신인 군사영어학교를 모체라 하는 것은 일본군의 후예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헌법에 한국 정부는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해 수립됐다고 돼 있다”며 “한국군도 임시정부 군사조직의 후예로 보는 것이 맞다”고 덧붙였다.   임시정부의 대표적 군사조직인 광복군은 신흥무관학교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1919년 임시정부가 수립될 때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주축인 서간도의 군정서와 한민회가 임시정부 군사조직으로 편입됐기 때문이다. 또 신흥무관학교 초대 교장인 이상룡 선생이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내는 등 이 학교 출신들이 임시정부의 주요 요직에서 활약했다. 육사 내부에서도 논란이 있다. 이기윤 육사 교수는 <별,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 60년>이라는 저서에서 “육사의 뿌리를 대한제국 무관학교에서 찾아야 한다”며 “육군사관학교의 역사는 60년이 아닌 110년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3군(육해공군) 사관학교의 독립전쟁사에 대한 교육도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통합당 김광진 의원실이 3군 사관학교 커리큘럼을 분석한 것을 보면 교과 과정에 국사 교육은 3학점뿐이다. 또 3군 사관학교 교수들의 논문

신흥무관학교 학생·교사 44명 명부 더 찾았다

2013년 3월 1일 1983

ㆍ독립군 지도자 3500여명 배출한 ‘대표적 항일기관’ㆍ민족문제연구소, 1차 명단 공개 “실체 재조명 기대” 1910년대 중국 지린성에 있던 대표적 항일독립군 양성기관인 신흥무관학교의 입학생·졸업생·교사 등 관련 인사 44명이 추가로 밝혀졌다. 학계는 신흥무관학교 관련 인사와 졸업생이 수천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해 왔으나, 현재까지 정확하게 명단이 정리된 인사는 300여명에 불과하다. 민족문제연구소는 28일 공개한 ‘신흥무관학교 인명록 편찬사업 1차년도 기초조사보고서’에서 신흥무관학교 관련 인사 44명을 추가 발굴했다고 밝혔다. 연구소 이용창 박사는 “조사작업 첫해에만 44명을 발굴했기 때문에 조사가 끝날 때까지 수백명의 인사를 더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박사는 “신흥무관학교 관련 인사들의 명단뿐 아니라 학교 설립 지원이나 자금 지원, 청년 모집 활동 등 이들의 구체적인 활동 내역까지 알 수 있게 돼 신흥무관학교의 실체를 재조명하는 연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947년 10월19일 해방 후 한국으로 돌아 온 신흥학우단이 신흥대학(현 경희대학교)을 설립한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신흥무관학교100주년기념사업회 제공 신흥무관학교 인명록 편찬사업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의 지원을 받아 4개년 계획으로 지난해부터 시작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신흥무관학교 초대 교장인 이상룡 선생 등 관련 인사의 회고록과 당시 신문, 일제 경찰 자료, 일제 비밀문건 등을 분석해 새로운 인사들의 명단과 활동 내역을 찾아냈다. 새로 밝혀진 44명 중 30명은 이미 서훈을 받은 독립유공자이지만 나머지 14명은 새로운 인물이다. 이 박사는 “나머지 14명도 추가 조사를 거쳐 독립유공자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신흥무관학교는 1911년 6월 이회영·이시영 선생 6형제가 만주 지린성 류허현에

‘삼일절’과 ‘3·1운동’의 개명을 추진하자

2013년 2월 28일 2531

  삼일절’과 ‘3·1운동’의 개명을 추진하자   신동진 (사)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사무차장, 연구소 경기동북지부 회원   먼저 간단한 질문 하나. 미국의 독립기념일 7월4일은 어떤 역사적 사건이 있었던 날일까? 1.독립선언서 채택 2.독립전쟁 승전 3.미합중국 제헌의회 수립 4.미합중국 정부 수립 정답은 1번이다. 그런데 왜 2,3,4번이 아니고 1번일까? 그것은 마치 성경에 천지창조의 시작이‘태초의 말씀’으로 시작되는 것과 같이 식민지 독립의 시작은 바로 독립 혼(spirit)을 심은 선언(말씀)으로부터 시작했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잠시 1919년 한반도 어딘가에서 만세 시위를 하며 일제의 총칼에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해보자. 그 분들은 ‘공화국 만세’,1) ‘독립 만세’를 외쳤다. 우리 민족이 언제 ‘만세’를 외칠 수 있었던가. 중국의 속국으로 ‘천세’를 외치다가, 1897년 대한제국이 수립된 뒤라야 겨우 ‘만세’ 사용이 가능했고, 그 또한 황제를 향한 축원에나 쓸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 민족은 이 ‘만세’를 ‘공화국’과 ‘독립’에 갖다 붙이는 놀라운 창조적 재해석을 했다. 더구나 그 ‘만세’의 주역들은 ‘공화국’에서 ‘독립’된 국민으로 단 한 순간도 살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만큼 큰 믿음은 없다. 그들은 간절한 염원을 담아 죽음 앞에서도 ‘공화국 만세’, ‘독립 만세’를 외쳤다. 그 ‘만세’는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축원이었겠는가? 바로 우리. 그 분들의 후손을 위한, 대대손손의 행복을 위한 헌신의 축원 말고 무엇이었겠는가? 이것이 내게는 한없이 자랑스러운 우리 민주공화국 역사의 서막이다. 우리 헌법에 기록된 바와

친일 행적 이범익 공적비 옆에 단죄비 ‘동거’

2013년 2월 26일 714

공적·과오 동시 알려…”역사 교육자료로 활용”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일제강점기 친일 행적을 보인 전 강원도지사 이범익(1883∼?)의 공적을 칭송하는 글과 잘못을 비판하는 글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된다.  24일 민족문제연구소와 정선문화연대 등에 따르면 강원도 정선아라리촌에 조성된 10여개의 비석군(群) 가운데 친일행적으로 논란이 됐던 이범익의 공적비 옆에 그의 친일 행적을 알리는 단죄비가 이번 3·1절에 세워진다.  1932년 당시 정선군수 김택림이 세운 공적비는 1929∼1935년 강원도지사를 지낸 이범익을 칭송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앞면에는 ‘강원도지사 이범익 각하 영세불망비(江原道知事 李範益 閣下 永世不忘碑)’, 뒷면에는 ‘우리 이후(李侯·이범익 지칭)시여 이 고을에 어찌 이리도 늦었는고…백성 위해 노고하며 사랑으로 돌보기를 다하셨네…많은 사람 칭찬하니 두터운 은혜 영원히 칭송하네…’등이 새겨져 있다.  당시 정선군 동면에서 생산한 금을 서울로 옮기려고 닦은 신작로 등 기간시설 완공행사에 강원도지사 이범익이 정선을 찾았고, 이를 기념해 비석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이범익이 ‘간도특설대’를 창설하는 등 대표적 친일 인물이란 점.  일본 이름이 기요하라 노리에키(淸原範益)인 그는 춘천·김해 등의 군수를 지낸 뒤 조선총독부 사무관을 거쳐 황해도 내무부장과 동양척식회사 감사직 등을 지냈다. 1937년 간도(間島) 지역의 고위 공무원으로 임명돼 간도특설대 창설을 제안, 항일세력 토벌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간도특설대는 1930년대 후반 조선인 항일세력을 가장 강력하게 탄압한 조직 중 하나로, 이들이 살해한 항일운동가와 민간인 등이 172명에 달한다고 연구소는 전했다.  단죄비 설립 움직임은 2011년부터 있었지만 정선군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지연돼왔다.  단죄비는 “세월이 흘러 이

일본, ‘다케시마의 날’ 행사 강행…현장서 충돌

2013년 2월 25일 402

일본현지에서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규탄하는 김점구 독도수호대 대표(민족문제연구소 회원) 일본 경찰연행   <앵커> 일본이 이른바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예정대로 강행했습니다. 이 행사에는 일본 정부의 차관급 인사와 국회의원들도 참석했습니다. 서경채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일본 시마네현이 주최하는 이른바 ‘다케시마의 날’ 기념 행사가 현민회관에서 열렸습니다. 지난 2006년부터 시작된 이 행사에는 일본 정부 당국자로는 처음으로 차관급인 시마지리 내각부 정무관이 참석했습니다. 현역 일본 국회의원도 10여 명 참석했습니다. 국가 행사로의 승격을 유보하겠다던 일본 정부가 노골적으로 지원 의도를 드러낸 겁니다. 이 행사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인 김점구 독도수호대 대표는 일본 경찰에 연행됐습니다. 또 다른 시민단체도 행사장 앞에서 규탄 결의대회를 열 예정입니다. 일본 우익들도 시마네현 우리 민단 사무실 앞에서 시위를 예고한 상태입니다. 민단 측은 일본 우익들의 위협이 잇따르자 오늘(22일) 하루 문을 닫기로 했습니다. 도쿄 한국대사관 앞에서도 오늘 하루 일본 우익들의 시위가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의 새 정권 출범을 불과 사흘 앞두고 열리는 다케시마의 날 행사로  한-일 관계의 긴장감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SBS>2013-2-22 [기사원문보기] 일본, ‘다케시마의 날’ 행사 강행…현장서 충돌 body,table,td,input,select,textarea{font-family : verdana,굴림;font-size :9pt;line-height : 140%;}img{border : 0;}A:link {text-decoration:none; color:black;}A:visited {text-decoration:none; color:black;}A:hover { text-decoration:none; color:#3E8FFC;}P{margin-top:2px;margin-bottom:2px;}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함세웅 이사장 인터뷰

2013년 2월 15일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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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강제동원 피해자, 日군수업체 상대 손배소송

2013년 2월 14일 629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기자 = 태평양전쟁 말기에 일본 군수업체 현지 공장에 강제동원된 피해자들이 회사 측을 상대로 한국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는 김모(84)씨 등 피해자 13명과 사망한 피해자 유족 18명이 일본 군수업체 후지코시(不二越)를 상대로 총 17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고 14일 밝혔다. 1928년 설립된 후지코시는 1940년대 두 차례에 걸쳐 13~15세 소녀들을 대규모 강제동원해 가혹한 환경에서 노역을 시킨 업체다. 원고들은 대부분 초등학교에 다니던 중 일본인 교사 등의 권유로 근로정신대 모집에 응해 후지코시 도야마 공장에서 일한 사람들이다. 원고 측은 “일본 전범기업이 한국 국민의 행복추구권, 생존권, 신체의 자유, 인격권 등을 침해하면서 강제노동을 시킨 행위는 민법상 불법행위”라며 “피해자들이 당시 어린 소녀였기 때문에 불법의 정도는 더욱 중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피고는 피해자들이 강제노동으로 입은 고통과 귀국 후 사회적 편견으로 얻은 고통에 대해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일본 최고재판소는 후지코시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 23명이 2003년 일본 정부와 회사 측을 상대로 낸 미지급 임금 청구소송에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한국민 개인의 청구권은 포기됐다”며 원고 패소 판결한 바 있다. 반면 대법원은 작년 5월 강제동원 피해자 8명이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및 임금지급 청구소송의 상고심에서 “한일 청구권 협정 해석을 통해 개인 청구권이 소멸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날 소송을 낸

이러니까 일본이 자발적이라고… 창씨개명 종용 친일 카페 논란

2013년 2월 13일 1060

[쿠키 사회] 회원가입의 조건으로 창씨개명을 종용하는 친일 인터넷카페가 여론의 공분을 사고 있다. 창씨개명은 일제강점기 한반도에서 시행된 민족말살 정책 중 하나다.11일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회원으로 승인을 얻기 위해 자발적으로 창씨개명을 해야 하는 친일 인터넷 카페에 대한 비난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이미 한 차례 카페를 폐쇄한 듯 ‘한국공식안티카페2’라는 이름으로 개설된 이 카페에는 모든 회원들의 닉네임이 일본식 이름으로 지어져 있다.카페에는 “친일인 사람은 창씨개명을 해 주세요. 친일이 아니면 창씨개명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스스로 한국을 싫어한다는 의사는 확실하게 표해야 합니다. 친북(북한)과 친중(중국), 친러(러시아)는 사회주의자가 많아 조센징(조선인)과 동급으로 취급합니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 한때 인디언식 이름 짓기와 더불어 화제를 모은 일본식 이름 짓기 사이트도 이 글에 덧붙었다.이 카페는 뚜렷한 친일 성향을 보인다. 운영진 게시판이 ‘총독 말씀’이나 ‘3등 신민에게 알림’으로, 일반 회원 게시판이 ‘일본 찬양’이나 ‘한국 비판’으로 명명된 점은 친일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다수의 글이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찬양인 점도 이 같은 성격을 보여 준다. 여론은 들끓었다. 그동안 우리나라 포털 사이트에 개설된 친일 인터넷카페가 우리 네티즌들의 공분을 자아낸 사례는 무수하게 발견됐으나 이번 경우 자발적 창씨개명을 종용한 점에서 더 큰 비난 여론이 불거졌다.네티즌들은 “역사에 대한 부정을 넘어 굴욕의 역사를 자발적으로 재현한 점은 정도가 심하다”거나 “이런 행동이 넷우익(일본 보수성향 네티즌)의 주장에 힘을 실어 주는 것”이라며 격노했다. 한 네티즌은 “조국을 싫어하고 일본식 이름을 지으라면서 정작 게시글을 한글로 작성했다”고 비꼬아 주목을 끌었다.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