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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잊지 말자고? 불꺼진 역사관…충격
일제시대 당시 우리나라에 대한 일본의 수탈과 침략에 관한 사료들을 전시하고 있는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의 민족문제연구소 시민역사관. 광복 67주년을 전후해 불거진 한일간 독도 갈등 등으로 인해 일제식민지 침탈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음에도 불구하고 역사관은 관람객 하나 없이 ‘덩그러니’ 고요한 모습이었다.김승은(41·여) 민족문제연구소 자료팀장은 어두컴컴한 역사관에 전등을 켜며 취재진을 맞았다. 김 팀장은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 지금은 관람객이 있을 경우에만 불을 켜고 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 귀중한 일제시대 사료들, 창고에 그대로 ‘방치’ 민족문제연구소 시민역사관은 ‘3.1 독립선언서’ 원본 등 일제시대 귀중한 유물과 서적 6만여점을 소장하고 있지만 이곳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은 높지 않아보였다. 식민지 시대의 실상과 친일 행적에 대한 세세한 자료를 수십년간 모아 전시하고 있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없다면 ‘교실 안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을 교육하는 장’으로서의 역사관의 의미가 무색해질 수 밖에 없기에 민족문제연구소의 아쉬움은 더욱 컸다.더욱 안타까운 것은 귀중한 6만여점의 자료들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역사관에 전시된 것 외에도 수만점의 유물들이 역사관 지하실과 빈방 한켠에 보관돼 있다. 귀중한 사료들을 보관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열악한 환경인 것이다. 서늘한 기온이 유지돼야 하는 유물보관실은 에어컨마저 고장나 후텁지근했고, 대부분의 고서가 비닐봉투 안에 넣어져 책장 안에 꽂혀있는 상황이었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지하실에도 유물들이 종이박스에 넣어져 쌓여있거나 바닥에 그냥 놓여있었다. 사람 한명 지나다니기에도 좁아 수만여점의 유물들이 어디 있는지도 찾기 어려워 보였다. 김 팀장은 “대개 박물관에서는
광복절,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하는건 어떤가요?
광복절인 오는 8월 15일(수) 청계광장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과 동아시아의 화해와 상생을 기원하는 정신대해원상생대동한마당이 열린다. 8월 8일부터 시작되는 해방 67주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세계 연대행동 <마침내 해방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정의를>의 대미를 장식하게 될 이번 행사는 15일(수) 정오에 1035차 수요집회를 시작으로 일본대사관 앞에서 청계광장까지의 행진과 청계광장에서의 해원상생대동한마당으로 이어진다. 행진 중에는 광화문 이순신장군 동상 앞에서 한일협정재협상국민행동,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 역사정의실천연대, 한일시민선언실천협의회주최로 한미일 군사동맹 저지와 2012 대선예비후보들에게 보내는 공개질의서 발표 기자회견이 진행된다. 오후 1시부터는 서울시 교육청 후원으로 한국작가회의가 주관하는 <전국어린이글짓기> 행사가 진행된다. 이어 오후 4시부터는 돌아가신 170여 위안부 할머니들의 위패가 모셔진 무대를 배경으로 동해안 별신굿의 부정굿과 전통 무악, 류진규(춘천 마임축제 예술감독)의 현대적인 마임과 퍼포먼스, 미연재천의 재즈연주 등이 함께 어우러지는 굿판이 벌어진다. 오후 8시경에는 초망자굿의 형식을 빌어 <평화콘서트>가 진행된다. 노정렬의 사회로 진행되는 평화콘서트에는 강허달림, 손병휘, 우창수, 노래를 찾는 사람들, 안치환 등의 대중가수와 성악가 임정현 등이 출연한다. 특히 일본인인 곱창전골의 사또 유키에도 행사의 취지에 공감하여 출연한다. 행사의 마지막은 김선우 시인의 시 <열 네살 무자>를 일인극으로 형상화한 작품이 연행되며 평화를 기원하는 뱃노래굿과 공연 참가자 전원이 함께하는 주제 공연과 이애주 서울대 교수의 춤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이번 행사는 (사)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나눔의 집, (사)민족미학연구소, (사)민족문제연구소, (사)백산안희제기념사업회, (사)한국민예총, 전교조, 민교협 등이 함께 주관하며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
신중현 ‘미인’ 금지곡 된 이유는..유신의 아픈 추억
▶ [현장]‘유신의 추억’은 과거 아닌 현재와 미래 문제 (민중의 소리, 8.8) ▶ 민족문제연구소, 유신 선포 40년 특별전 (뉴시스, 8.7)
과거사 참회 없는 대통령 후보…딱하다
과거사 참회 없는 대통령 후보 박한용 연구실장 최근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예비후보의 발언이 온갖 논쟁을 낳고 있다. 7월15일 신문방송편집인협회 토론에서 “5·16은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며 “5·16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초석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또 “전 국민의 50퍼센트 이상이 5·16이 구국의 혁명이라고 지지하고 있으며, 유신헌법을 제정할 때에도 유권자의 80퍼센트 이상이 지지했다”고 말해 쿠데타와 유신독재를 사실상 정당화했다. 박근혜 후보는 독재와 인권유린으로 얼룩진 박정희 시대를 대한민국의 영광의 시기로 보고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18년 6개월, 6738일. 1961년 5월16일부터 1979년 10월26일까지 박정희가 집권한 기간이다. 집권 6738일 가운데 군정이 945일이었고, 긴급조치 제9호는 그 기간이 무려 1669일 9시간으로 4년 6개월에 달했다. 박정희 18년 집권기 가운데 절반 정도가 사실상 계엄상태였다. 박근혜, 5.18참배 독재만 문제였을까. 박 정권은 1961년부터 1965년까지 한일회담을 진행하면서 일본 기업으로부터 6600만 달러의 뒷돈을 받았다. 온 국민의 반대 속에서 한일회담을 강행하면서 뒷돈을 받아먹었으니 어찌 매국회담이 아니겠는가. 1971년 대통령선거 때는 야당의 김대중 후보를 꺾고자 그해 국가 예산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600억원 이상을 선거비로 쏟아 부었다. 1973년에는 ‘기생관광도 일종의 애국’(당시 문화공보부 총무과장 발언)이라며 외화벌이를 명목으로 국가 차원에서 매춘산업을 장려해 망신살이 뻗쳤다. 또 미국의 칼덱스사와 걸프사로부터 각각 400만 달러와 300만 달러의 정치헌금을 받고 한국의 석유산업을 이들에게 넘겨주었다. ‘조국근대화의 기수’라던 생산직 노동자들의 1978년 월 노동시간은 260시간 주당 65시간이나 되었다. 일요일을
[강좌] 유신40년 기획강좌 “끝나지 않은 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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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막말’ 벗길수록 구린내 나는 박근혜의 역사인식
[기고] ‘5.16 막말’ 벗길수록 구린내 나는 박근혜의 역사인식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양지웅 기자 5.16과 관련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경선 후보의 발언이 도마위에 올랐다. 이거 야단났다. 박근혜 후보의 막무가내 역사인식이 폭주하고 있다. 박근혜씨는 일련의 대통령 예비후보 토론이나 공사석에서 도저히 일국의 대통령 후보라고 보기 힘든 막말을 하고 있다. 박근혜씨는 몇 년 전 아버지 박정희는 두 번의 구국의 결단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한번은 일제 강점기 교사직을 그만 두고 만주군관학교에 들어간 일, 또 하나는 5·16을 일으킨 것이라고 했다. 요새 들어 막말을 더 보탰다. 1972년 유신헌법 개정을 80퍼센트 이상이 지지했으며(이게 부정선거임은 당시 일선 공무원들이 증언하고 있음에도), 5·16이 구국의 혁명이었다는 것을 전 국민의 50퍼센트 이상이 지지한다고 했다. 일본군 앞잡이, 헌법 유린도 모두 구국의 결단? 요컨대 일제 강점기에 “개나 말처럼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 하겠다”고 혈서를 쓰고 일본군 앞잡이가 된 친일반민족행위도, 정치군인들이 작당해 총칼로 헌법을 유린한 5·16쿠데타도,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부정선거로 통과시켜 전제군주보다 막강한 권력을 누린 유신체제마저 이제는 구국의 결단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본의 아니게 피해를 끼쳤다’거나 ‘어쩔 수 없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조차 팽개치고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과실은 벗길수록 향기롭고 깨끗한 속살이 드러난다. 헌데 박근혜 씨의 역사인식은 벗길수록 구린 냄새가 난다. 한심한 일이다. 대통령 후보자는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는다고 자신의 생각이 옳은 것은 아니다. 대통령은 국헌을 준수하고 국민을
‘부민관 폭파의거’ 주역 후손들 67년 만에…
‘부민관 폭파 의거’ 주역 3인 후손들 67년 만에 만나다 “대일본제국의 영도하에 아시아 민족들은 서구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해방운동을 적극 전개해야 합니다.” 친일 거두 박춘금의 목소리가 울렸다. ‘짝짝짝…’ 조선총독과 군사령관 등 참석한 일본 관리의 박수소리가 이어졌다.광복을 20여일 앞둔 1945년 7월24일 경성부민관(현 서울시의회 본관)에서는 박춘금 주도로 친일 어용행사인 아시아민족해방 강연회가 한창이었다. 오후 9시10분쯤 ‘쾅’하는 굉음과 함께 건물 곳곳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대한애국청년당(애청) 조문기(1927∼2008), 유만수(1924∼1975), 강윤국(1926∼2009) 선생이 미리 설치해 둔 폭약을 터트린 것. 행사는 아수라장이 됐다. 일제강점기 한국 독립운동 최후의 의거로 불리는 ‘부민관 폭파 의거’ 주역인 3인의 독립지사 2·3대 후손이 처음 한자리에 모였다. 조 선생 등은 의거 후 일본 헌병의 추적을 피해 지리산, 계룡산으로 들어갔다. 당시 목숨을 함께했던 동지의 후손들이 67년이 흐른 뒤에야 자리를 함께했다는 사실이 굴곡진 한국 현대사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지난 21일 제67회 부민관 폭파 의거 기념식이 열린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에서는 이채로운 장면이 연출됐다. 의거를 한 3인의 독립지사 후손들이 한자리에서 만난 것. 첫 대면이었지만 선친 또는 조부가 간직했던 올곧은 뜻을 가슴에 새긴 탓인지 분위기는 밝고 따뜻했다. 기념식을 마친 뒤 유족들은 “꼭 만나보고 싶었다. 자주 만나자”며 서로 손을 맞잡았다. 조 선생의 외동딸 조정화(52)씨는 “아버지 생전에는 부민관 의거에 큰 관심이 없었다”며 “많은 사람이 아버지와 동료의 뜻있는 행동을 기억해 주니 고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유 선생의
새누리당 규탄, 한일군사협정 폐기 촉구 기자회견문
<한일군사협정 관련 답변 및 면담 거부 새누리당 규탄, 협정 폐기 촉구 기자회견> 새누리당은 한일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폐기에 앞장서라!” – 일시 : 2012년 7월 23일(월) 오후 1시 – 장소 :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 각계 사회단체들은 새누리당의 황우여 대표에게 한일군사협정 관련 당의 입장을 묻는 질의와 함께 사회단체의 의견과 요구를 전달하기 위한 면담을 요청하였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새누리당은 ‘현재 논의중이고 당장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면서 사실상 답변과 면담을 거부하였습니다. 국민의 뜻을 겸허히 귀담아 들어야 할 여당이 ‘논의중인 사안’이라는 이유로 면담 요청조차 거부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이에 우리는 23일(월) 오후 1시, 새누리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여 정부의 한일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밀실 추진의 책임을 묻고 민의에 따라 한일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폐기에 앞장설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한일군사협정 관련 답변 및 면담 거부 새누리당 규탄, 협정 폐기 촉구 기자회견> 새누리당은 정부의 한일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밀실 추진 책임 묻고, 민의에 따라 한일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 폐기에 앞장서라! 지난 6월 26일 27차 국무회의에서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이 비공개 날치기 처리된 이래, 국민적 비판이 빗발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비공개 날치기 처리가 외교부 국장과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의 책임이라고 규정, 사태를 무마하려 하고 있으며, 국회 보고를 마치고 협정을 재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협정 추진과 날치기 처리의 주역인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국무회의 처리 절차를 사전 보고받지 못했다면서 책임회피를 시도하고,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대북 정보 습득을 위해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