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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에 등장한 근대식 호텔의 흥망사… ‘손탁호텔’

2012년 4월 10일 641

[책소개] 이순우, <손탁호텔>, 하늘재, 2012 경성 시내에 서양인에 의한 근대식 숙박시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00년대 이후의 일이다. 팔레호텔, 임페리얼호텔, 스테이션호텔, 손탁호텔 등이 모두 1901∼1902년을 전후해 개업했다. 앞서 의료선교사이자 주한 미국공사를 지낸 호레이스 알렌의 1884년 일기엔 이렇게 적혀 있다. “나는 새로 지은 조선호텔에 투숙했는데 조선보빙사를 태우고 온 미국해군기함 트랜톤호의 장병들을 접객하기 위하여 마련된 호텔이었다.”하지만 이 호텔이 접대용 객관(客館)이었는지 아니면 온전한 의미의 호텔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와 헐버트가 발행했던 월간 영문소식지 ‘더 코리안 리포지토리’ 1896년 7월호에도 다음과 같은 문안의 부동산 임대광고가 등장한다. “두 채의 말끔한 상업용 벽돌건물이 서울 유럽인 거주지의 공사관거리 맞은편에 건립되어 이제 막 사용할 찰나에 있습니다. 각각의 건물은 1층에 네 개의 큰 창고방과 2층에 두 개의 훌륭한 거실과 연회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공사를 마치고 외국인의 입주를 기다립니다.”근대개화기에 조선을 찾아온 숱한 여행가, 외교관, 선교사, 특파원, 탐험가, 기업가 등이 한결같이 조선에서의 불편함과 어려움을 호소하는 대상은 주로 숙박시설이었을 것이다. 사실 구한말, 근대 호텔이 처음 등장한 곳은 인천 지역이다. 1880년대 이래 일본인 호리 큐타로가 운영한 인천의 대불호텔, 중국인 이태(怡泰)가 운영한 스튜어트호텔, 오스트리아계 헝가리인 스타인벡이 주인이었던 꼬레호텔 등이 그것이다. 서울에 서양식 호텔이 등장한 것은 인천에 비해 20년이나 뒤진다. 그 가운데서도 서울 정동 29번지에 위치했던 손탁호텔은 근대개화기의 격동을 우리와 함께 치러낸 역사적 공간이다.흔히 ‘미스 손탁’으로

[기고] “역사전쟁”과 19대 국회의 과제

2012년 4월 10일 2245

역사전쟁과 19대 국회의 과제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 조세열 이명박 정부가 지난 4년간 저지른 잘못을 어떻게 다 일일이 거론할 수 있겠는가. 남북관계, 환경, 인권, 심지어 내세우던 경제까지 엉망이 아닌 분야를 찾기 힘들지만, 세월이 흘러가도 용서받지 못할 대죄 중의 하나가 역사훼손이 아닐까한다.  역대 독재정권 하에서도 정치권력의 역사변조가 지금과 같이 노골적이지는 않았다. 그들은 정통성이 없었던 만큼 속내야 어떻든 겉으로는 독립운동과 사월혁명의 정신을 존중하는 시늉이라도 했다. 그런데 지금의 집권세력은 정권 인수 단계에서부터 이데올로기 공세를 펴면서 거리낌 없이 역사 뒤집기에 나섰다. 이 정부 들어 과거사위원회 통폐합 추진으로부터 시작된 퇴행적 역사파괴는 건국절 제정 시도, 공영방송의 친일,독재 미화 다큐멘터리 방영, 이승만 박정희 백선엽 김백일 동상 건립, 박정희기념도서관 개관, 역사교과서 개악 등 민,관을 불문하고 전방위에 걸쳐 진행되었다. 그 총결산이라 할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식민지 시기와 산업화에 대한 편향적 자학적 관점의 극복’을 목표로 연말 개관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11월 14일, 교과부의 역사교과서 개악에 반발하여 연구소 등 422개 단체가 참여한 “역사정의실천연대” 발족식 모습 이러한 일련의 치밀한 역사변조는, 일본 극우세력의 한국판이라 할 수 있는 뉴라이트 세력이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고 조중동 등 수구언론과 어용관변 단체가 그 논리를 확산시키며, 정부가 이를 정책적으로 뒷받침하는 형태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이들이 비상식적인 역사전쟁을 도발한 배경에는 정권재창출이라는 현실적 목적 외에 나름의 이념적 위기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친일문제나 국가폭력 등 우리 근현대사의

민족문제연구소 제7회 ‘임창순 상’ 수상

2012년 4월 9일 781

민족문제연구소 제7회 ‘임창순 상’ 수상   자료집 내려받기 청명문화재단(이사장 강만길)은 제7회 ‘임창순 상’ 수상자로 민족문제연구소(이사장 김병상)를 선정하고 13일 오후 6시 프레지던트호텔 31층 모짤트홀에서 시상식을 가진다. 임창순 선생(1914∼1999)은 한학과 금석학 서예 등 고전 연구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었으며, 태동고전연구소를 설립하여 연구인력 양성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청명문화재단은 설립자 임창순 선생의 치열했던 학문세계와 실천적 삶을 기리기 위해 2006년 ‘임창순 상’을 제정했다. 2007년부터 매년 민족문화의 체계적 해명과 창의적 계발 또는 민족공동체의 민주적 평화적 발전에 학술과 실천면에서 공헌한 개인 혹은 단체를 선정 시상해왔으며 상금은 2천만 원이다. 역대 수상자는 이이화 한승헌 신영복 김수행 전무배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등이다. 올해 수상자인 민족문제연구소는 한국근현대사의 쟁점과 과제를 연구 해명하기 위해 1991년 설립되었으며, 연구자와 시민, 학술연구와 실천운동을 접목시킨 새로운 형태의 역사문화운동을 활발히 전개함으로써 주목을 받아왔다. 연구소는 국민적 지지 아래 2009년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친일청산운동 외에도 일제하강제동원진상규명, 한일교과서 바로잡기, 야스쿠니반대국제행동 등의 실천운동을 전개하고 동아시아의 시민사회 교류 증진에도 기여하고 있다. 한편 민족문제연구소는 상금 전액을 시민역사관 건립기금으로 내놓기로 결정했다.

‘新친일파’ 하태경,대일본 제국의회 의원이 되려는가?

2012년 4월 6일 1089

‘新친일파’ 하태경, 대일본 제국의회 의원이 되려는가?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이번 총선에서 부산 해운대기장을에 출마한 새누리당 하태경 후보는 최근 몇 년간 정상적인 한국인이라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망언을 일삼아 왔다. 하 후보는 2005년 3월 17일 서울대 자연대 동문 카페에 올린 ‘독도전략’이라는 글에서 “독도는 국제적으로 분쟁지역으로 공인되어 있기 때문에 전쟁 아니면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일본의 ‘다케시마(독도) 탈환’ 핵심 전략인 ‘독도의 분쟁지역화’를 전면적으로 대변하고 있어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망언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하태경 후보는 최남선·이광수에 대해 “그들은 친일파이지만 반민족행위자는 아니다”라고 강변하면서, “그들 나름대로 민족의 이익을 도모한다는 차원에서 현실주의적 노선을견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친일이지만 친 민족적’이라는 해괴한 주장이다. ▲19대 총선 해운대 기장을에 출마한 새누리당 하태경 후보 ⓒ뉴시스조선 문화의 일본화에 앞장선 최남선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는 최남선·이광수의 친일반민족행위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최남선은 일제 식민사학의 총본산인 조선사편수회의 위원으로 활동했을 뿐만 아니라 조선 총독의 자문기구인 중추원의 주임관 대우 참의를 역임했다. 일본의 고유신앙인 신도를 보급하고, “조선문화의 일본화야말로 당면한 문제 가운데 제일 중요한 것”이라고 하면서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말살하는 데 앞장선 장본인이다.최남선의 친일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만주의 친일 신문인 <만몽일보>와 <만선일보>의 편집고문을 맡아 일제의 만주침략과 재만조선인의 친일화에 적극 앞장섰다. 심지어 만주국 친일관료 양성기구인 만주건국대학 교수로 부임해 조선인 친일파 관리를 길러낸 만주 친일파의 대부이며, 동남지구특별공작위원회의 고문으로서 재만조선인 항일유격대를 ‘토벌·선무’하는 데 가담한 인물이다. 또 일제가 조선인에게도 징병제를 실시하자 재일본 조선인 유학생들을 학병으로 나가라는 연설하는 등 ‘출장

하태경, 차라리 일본 국회로 가라

2012년 4월 5일 1672

“하태경, 차라리 일본 국회로 가라” 독도망언을 내뱉고 친일파를 비호하는 새누리당 하태경 후보의 사퇴를 촉구한다 이른바 ‘쇄신과 변화를 추구한다’는 새누리당에서 공천을 받은 하태경 후보(부산 해운대기장을)가 최근 상대방 후보를 “북한의 지하 조직원 출신”이라고 주장하는 등 총선을 앞두고 색깔론 제기에 앞장서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의 비뚤어진 국가관과 역사인식이다. 1. 하태경 후보는 지난 2005년 3월 17일 서울대 자연대 동문 카페에 올린 ‘독도 전략’이라는 글에서 “국제적으로 독도는 분쟁지역으로 공인되어 있기 때문에 전쟁 아니면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독도문제에 대한 우리(정부)의 기본 입장을 전면 부정했다. ‘독도=국제분쟁지역’은 국제사법법원(ICJ)에서 대한민국의 주권 하에 있는 독도의 국제법적 지위를 일부라도 훼손하기 위한 일본의 오래된 전략이다. 하지만 독도는 ‘전쟁과 국제사법법원 제소는 독도문제 해결 방법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주권국가인 대한민국의 확고한 입장이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동의하는 기본적인 원칙이기도 하다. 2. 하태경 후보는 독도망언 외에도, “적어도 일제시대에 한국이 근대화되었다는 것은 이제 어떤 입장이 아니라 팩트”라고 주장하며 ‘식민지근대화론’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기까지 했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뉴라이트들이 주장하는 대표적인 논리로, 일제 식민통치기간을 “근대문명을 학습하고 실천함으로써 근대국민국가를 세울 수 있는 사회적 능력이 두텁게 축적되는 시기”라고 주장한다. 이런 논리로 일제강점기를 미화한다면 식민통치의 하수인인 친일파는 ‘반민족행위자’가 아니라, 근대국민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 근대문명을 학습한 ’문명선각자‘로 둔갑된다. 그런데도 하태경 후보는 “일제시대에 한국이 근대화하고

독립군 후손들에게 우리네 풍물가락을 전하다

2012년 4월 3일 934

 경남 사천시의 대표적 문화예술공동체 큰들문화예술센터(대표 ‘전민규’님은 연구소 회원이다)가 항일독립운동가를 키워냈던 조선족학교에 전문강사를 파견, 우리네 전통문화예술인 풍물을 전수하고 2일 귀국했다. 이에 관련 된 기사를 아래에 전재한다.     ▲ 큰들문화예술센터(이하 큰들, 대표 전민규)가 항일독립운동가를 키워냈던 조선족학교에 전문강사를 파견, 우리네 전통문화예술인 풍물을 전수했다. ⓒ 큰들 경남 사천시의 대표적 문화예술공동체 큰들문화예술센터(이하 큰들, 대표 전민규)가 항일독립운동가를 키워냈던 조선족학교에 전문강사를 파견, 우리네 전통문화예술인 풍물을 전수하고 2일 귀국한다.   중국 길림성 유하조선족완전중학교는 항일독립운동를 길러냈던 신흥무관학교의 전신 신흥강습소가 1912년 중국 길림성 유하현에 세운학교로 올해 100주년을 맞는다. 해방 전 34개, 90년대 26개에 달하던 길림성 유하현의 조선족학교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 풍물 전수는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을 맞아, 지난해 10월 기념사업회와 큰들 등이 신흥무관학교 옛터를 답사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신흥무관학교 100주년 기념사업회와 큰들, 완전중학교 세 단체 관계자들은 “2012년 10월 10일 완전중학교 건교 100주년 기념식에서 장구소리 북소리 신명나게 울려 보자”고 결의했다. 이후 ‘완전중학교 아이들에게 풍물가락을 가르쳐 그날 풍물공연을 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모아졌고, 3월 풍물전수가 계획됐다.     ▲ 김정경 씨의 풍물 강습 장면. 사진제공: 큰들 ⓒ 큰들   ▲ 상모돌리기를 배우고 있는 아이들과 풍물 강사 이규희(사진 가운데) 씨. ⓒ 큰들   ▲ 유하현조선족완전중학교학생들은 오는 10월께 개교 100주년을 맞아 풍물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사진은 지난 3월 찍은 단체사진. ⓒ 큰들 전민규 큰들 대표는 “일본에서 재일조선인학교가

[논평] 동아대의 ‘교양한국사 사태’에 대한 논평

2012년 3월 30일 1029

<논평> 동아대의 ‘교양한국사 사태’에 대한 논평 동아대 ‘교양한국사 사태’ 해결여부, 끝까지 지켜볼 것 1. 최근 동아대학교에서 2012년 교양교과목으로 개설하려던 <한국사> 강의가 특별한 이유 없이 폐지돼 논란이 되었다. <한국사>를 담당한 교수는 지난 2월 6일 교내 메일 및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글을 올려, 한국사 과목 미개설의 부당성 및 교권 침해, 사상 검열, 학문의 자유 침해 등을 주장하며 진상규명 조사를 요구하였다. 같은 달 13일 전국역사교사모임이 동아대의 부당한 처사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으며, 동아대 민교협도 <한국사> 폐지 사태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였다. 역사정의실천연대도 동아대 ‘교양 한국사 폐지’ 소식에 강한 우려를 나타내며, 지난 2월 17일 총장 면담을 신청하는 등 사태의 전모 파악에 노력하였다. 2. 우리의 총장 면담신청 요구에 대해 2월 22일 동아대 교양교육원은 <한국사 교과목 미개설에 대한 경위 및 입장>이라는 공문을 통해 교권침해, 개인교수 사상검열, 학문의 자유 침해, 외부세력의 개입 의혹이 “명백한 오류”라고 주장했다. 다만 “한국사 강의지침서 수정 의뢰시 사관문제를 언급한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음을 일부 인정”하며, 홍순권 교수의 금성출판사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집필이 한국사 폐지로 이어졌다는 문제제기에 대해서도 “서로에게 오해의 소지를 제공하게 된 점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3. 우리는 학교 측에서 회신한 여러 근거자료를 바탕으로 검토한 결과 “교권탄압과 사상검열이 있었다”는 결론을 내리고, 3월 12일 △동아대학교 총장이 홍순권 교수 등의 교권을 침해하고 학문 사상의 자유를 탄압한 행위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사과할

친일행위로 취득한 재산을 처분해 얻은 14억원, 후손은 국가에 반환해야

2012년 3월 29일 373

친일행위로 취득한 재산을 처분해 얻은 14억원, 후손은 국가에 반환해야 중앙지법, 국가에 승소 판결 서울중앙지법 민사18부(재판장 오연정 부장판사)는 최근 국가가 “친일 행위로 취득한 재산을 처분해 얻은 14억여원을 반환하라”며 친일파 고희경의 증손자 고모씨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반환소송(2011가합20626)에서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한일합병 전 이완용 내각에서 탁지부 대신, 법무대신을 역임한 고영희는 1910년 한일합병 직후 일제로부터 자작 지위를 받았고, 아들 희경은 1916년 이를 승계받아 이후 백작으로 승작되었고, 손자인 흥겸도 1934년 작위를 승계했다. 소송을 낸 고씨는 고흥겸의 아들이다.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된 고희경과 고흥겸이 국권 침탈이 시작된 1904년 러·일전쟁 개전 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기간 내에 취득한 부동산은 친일재산귀속법에 따라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피고 고씨는 문제가 된 경기 연천군 토지는 고희경이 고영희의 자작 지위를 계승해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되기 전인 1913년에 부동산을 사정받아 취득했으므로 친일행위의 대가가 아니라고 주장했다.하지만 재판부는 “고희경은 부동산을 사정받기 이전인 1904년께부터 방한한 이토 히로부미를 영접하고 예식원 예식과장, 궁내부 외사과장 등의 직위에 재직하면서 받은 소득으로 재산을 유지·형성한 것으로 보인다”며 “선대인 고영희가 그동안 해 온 일련의 일제 협력행위와 무관하게 취득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이라는 추정은 복멸(覆滅)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는 2008~2009년 고희경과 고흥겸을 친일반민족행위로 결정하고, 고희경이 1913년에 사정받아 취득한 연천군 일대 토지와 고흥겸이 1936년에 취득한 고양시 덕양구 토지가 국가에 귀속된다는 결정을 했다. 하지만 피고

EBS’역사채널e’를 통해 소개된 연구소 소장자료

2012년 3월 27일 4410

EBS “역사채널e”는 연구소가 소장하고 있는 일제시대 자료를 중심으로 제작한 영상을 방영하였다. “조선을 가지고 놀다” , “청춘만장” 이란 제목으로 제작된 2편의 영상을 소개한다. 영상에 소개 된 자료는 1911년 1월 1일 일본 일출신문 부록으로 발행한 “조선쌍육”과 ‘지원병 출정깃발’인 “장행기” , 태평양전쟁에 끌려갔던 학병의 수기인 “청춘만장” 등이다. 1. “조선을 가지고 놀다” (03.02)   ▲1911년 1월 1일 일본에서 일출신문 부록으로 발행한 “조선쌍육”     2. 청춘만장(03.16)   ▲김제군 월촌면 제남 부락연맹에서 지원병으로 차출되어 가는 청년들을 환송하기 위해 만들어 준 깃발인 ‘장행기’, 하지만 조선사람들은 젊은 사람이 죽으러 가는 깃발과 같다고 해서’ 청춘만장’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친일청산과 역사정의 실현은 늘 ‘당신’으로부터

2012년 3월 27일 865

  ▲ 2012년 1월 8일부터 3월 초까지 진행한 ‘그날의 당신을 찾습니다’. <오마이뉴스>·민족문제연구소 공동캠페인 ⓒ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민족문제연구소와 <오마이뉴스>가 공동으로 진행한 ‘그날의 당신을 찾습니다’ 캠페인이 지난 1월 8일부터 한 달여간 진행됐습니다. 이 행사는 2004년 ‘친일인명사전 편찬, 네티즌의 힘으로!’ 모금에 참여해 주신 분들께 늦게나마 감사 인사를 전하고자 기획됐습니다. 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 발간에 그치지 않고, 현재 벌어지는 역사 왜곡을 막아내고 역사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전함과 동시에 사전 발간에 동참해 주셨던 많은 시민들의 올바른 역사에 대한 지지와 열정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몇 분이나 찾을 수 있을까’라던 조바심은 연일 이어진 격려와 응원 덕에 희망으로 바뀌었습니다. 남겨주신 댓글을 읽으며 연구소 상근 일꾼들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작은 도리였다’는 겸손의 글, ‘잊고 있었는데 기억해줘 고맙다’는 감사의 글, ‘역사적인 과업에 동참했던 사실이 자랑스럽다’는 감격의 글, ‘역사정의 실현은 계속돼야 한다’는 다짐의 글을 보면서 이런 분들이 바로 연구소의 든든한 지원군이자 우리 사회를 함께 변화시켜갈 힘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3월 초까지 1140여 분이 이벤트 게시판에 이름과 주소를 남겨주셨습니다. 2월 3일, 1차로 779분께 ‘친일인명사전 편찬 18년’ 영상 다큐 DVD를 발송했습니다. 그리고 2월 25일 330분께, 3월 13일 31분께 마저 보내면서 발송작업을 마무리했습니다. “아기에게 정의가 살아있는 나라 선물하고 싶다”     ▲ ‘친일인명사전 편찬 18년’ 영상 다큐 DVD의 1차 발송을 위한 포장 작업. 연구소 전직원과 아르바이트생까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