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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빨갱이 식별법’ 황당하군요
21세기 ‘빨갱이 식별법’ 황당하군요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2004년 민족문제연구소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진행한 ‘친일인명사전, 네티즌의 힘으로’ 모금을 통해 지난 2009년 11월 9일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했습니다. 국민들의 참여와 지지 없이는 이룰 수 없었던 일입니다. 이에 민족문제연구소와 <오마이뉴스>는 2004년 모금 8주년을 맞아 당시 모금에 참여해주셨던 그날의 ‘당신’을 찾고자 합니다. 앞으로 4회에 걸쳐 이와 관련된 기사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시민 여러분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와 성원으로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을 펴낸 지 2년 여가 지났습니다. 친일인명사전 편찬 대장정 18년! 묘하게도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 장교 출신의 독재자 박정희가 장기집권한 기간과 같습니다. 한 시대의 독소를 일부라도 제거하는 데 이렇게 오랜 세월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던 준엄한 현실이 우리를 숙연하게 만듭니다. 비록 우여곡절을 겪긴 하였으나 친일인명사전은 평범한 시민들의 양심과 정의가 만들어 낸 위대한 진실의 기록으로서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반복되는 걸까요. 사전이 발간된 지 불과 2년, 친일인명사전은 물론 우리 시민사회가 성취한 과거사청산의 성과를 송두리째 무산시키는 거대한 역사범죄가 정권 차원에서 다시 시도되고 있습니다. 2011년 한 해만 하더라도 실로 놀라운 역사조작이 우리 눈앞에서 버젓이 자행되었습니다. KBS는 6·25특집이란 명목으로, 일제강점기 항일독립군을 토벌하고 무고한 민간인들을 잔혹하게 학살하여 살인귀(殺人鬼)부대로 악명을 떨친 간도특설대의 장교 출신 백선엽을 ‘6·25 전쟁영웅’으로 추앙하는 특집 다큐멘터리를 방영했습니다. 그 직후 서울현충원 관계자는 백선엽을 사후에 서울현충원에 안장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민족반역자가 대한민국의 수호천사로 바뀌어 특별대우를 받게 된 것입니다. 독립운동가와 ‘토벌대’ 장교가 죽어서도 이웃하는, 웃지 못할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서글픈 자화상입니다. 간도특설대 창설요원으로 부대 해산 때까지 ‘맹활약’한 김백일 또한 6·25 때 10여 만 명의 피난민을 이송한 흥남철수작전의 주역으로 둔갑해 거제포로수용소 유적지에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정작 선행의 주역인 현봉학 박사를
[전시]사진가 이재갑 회원 “상처 위로 핀 풀꽃”
■ 전 시 개 요 ○ 전 시 명 : 이재갑 <상처 위로 핀 풀꽃>-강제징용된 조선인의 흔적을 중심으로○ 주 최 : 평화박물관 space99 ○ 기 간 : 2012. 1. 11(수)∼2012. 2. 10(금) 월요일 휴관 11:00-19:00○ 장 소 : space99 (서울 종로구 견지동 99-1)○ 전시부문 : 사진 한국을 대표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 이재갑의 개인전이 2011년 8월 대구 전시에 이어 2012년 1월 11일 서울에서 개막된다. <상처 위로 핀 풀꽃>은 1996년부터 지금까지 일본과 한국을 수차례 오가며 카메라에 담은 한국 속의 일본문화와 일본으로 강제 연행된 조선인의 흔적을 모아낸 사진전이다. ■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끈질기게 기록한 16년다큐멘터리 사진가 이재갑의 작업 중 한축은 역사 속의 희생자들의 흔적과 한(恨)에 대한 기록이다. 우리 근대사에서 한국전쟁과 더불어 아직까지도 그 아픔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라면 바로 일제 35년일 것이다. 작가가 16년전 한국 속에 남아있는 일제의 흔적과 그 속에서 영위되고 있는 우리 민족의 삶, 그 부조화에 주목하며 시작한 작업은 현해탄을 건너 후쿠오카, 오사카, 나가사키, 히로시마, 오키나와 등 일본전역을 아우르며 더 너른 층위로 확산되었다. ■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 사진가 이재갑의 사진기는 흐르는 시간의 자취와 변해가는 사물의 형태에 대한 관찰을 넘어 우리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가는 불과 한세기 전의 역사, 유령처럼 떠도는 식민지의 잔영을 다시 우리 앞에 불러낸다. 사라져가는 것들, 그것이 되새기고 싶지
일본서 더 잘나가는 ‘친일파 명단’, 참담하다
일본서 더 잘나가는 ‘친일파 명단’, 참담하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 2004년 민족문제연구소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진행한 ‘친일인명사전, 네티즌의 힘으로’ 모금을 통해 지난 2009년 11월 9일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했습니다. 국민들의 참여와 지지 없이는 이룰 수 없었던 일입니다. 이에 민족문제연구소와 <오마이뉴스>는 2004년 모금 8주년을 맞아 당시 모금에 참여해주셨던 그날의 ‘당신’을 찾고자 합니다. 앞으로 4회에 걸쳐 이와 관련된 기사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친일인명사전>의 연원을 이야기하자면 반드시 짚어야 할 역사적 사건이 둘 있습니다. 1949년 6월 6일 백주대낮에 친일경찰들에 의해 무장해제를 당하고 무릎을 꿇어야 했던 ‘반민특위 습격사건’과 바로 20일 뒤에 일어난 ‘백범 암살사건’이 그것입니다. 이 사건들은 친일세력이 민족주의세력을 국가운영에서 배제하고 일제시기의 기득권을 완전히 회복하게 되는 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이 땅에서 ‘친일청산’은 더 이상 민족적 과제가 아니라 ‘빨갱이의 농간’이요 ‘국론분열 행위’로 간주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친일청산을 외치는 일은 가시밭길을 넘어 목숨을 거는 위험천만한 체제도전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소설가 조정래 선생은 친일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고 임종국 선생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습니다. “임종국 선생은 그때 모든 사회진출이 차단되어 천안에서 밥을 굶듯이 심한 가난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해방 이후 모든 지식인이 친일파에 대한 연구나 언급을 철저하게 기피하고 있을 때 오직 혼자서 펜을 들었고, <친일문학론>이라는 책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보복은 가혹하고 잔혹했습니다. 친일파가 모든 분야에서 득세하는 세상에서 그분은 굶어 죽을 수밖에 없도록 철저하게 사회 진출을 차단 당했습니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그분의 비참한 모습은 친일파에게 도전한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모델 케이스이기도 했습니다. 그 공포에 질렸음인지 친일파를 문제 삼는 지식인은 그 후로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아사지경에 빠진 고난 속에서도 친일파 연구를 포기하기는커녕 오히려
[책소개]근대사의 상징적인 공간,‘정동’을 거닐다!
저자 이순우: 1962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나왔고 증권회사와 투자자문회사를 거쳐 지금은 문화재행정모니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그리고 다큐멘터리 방송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만들어낸 책으로는『제자리를 떠난 문화재에 관한 조사보고서, 하나』『제자리를 떠난 문화재에 대한 조사보고서, 둘』등이 있으며, 반출 문화재에 대한 기록발굴과 뒤틀린 근대 역사의 흔적들에 대한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현재 ‘우리문화재자료연구소’ 소장이다. 그가 꾸려가는 공간으로 다음카페 ‘일그러진 근대 역사의 흔적(http://cafe.daum.net/distorted)’이 있다. 2012년 새해, 서울의 역사문화 공간을 거닐다!서울, 정동, 공사관거리에서 만나는 우리 근대사와 문화!옛날과 오늘의 역사와 문화가 한데 어우러져 숨 쉬는 도시 서울, 그 속의 매력적인 공간을 탐방하는 책들이 출간된다. ‘근대 서울의 역사문화 공간’-그 첫 번째 길은 정동에서 시작된다.『정동과 각국공사관』은 우리 근대사 속 정동(貞洞) 지역을 중심으로 자리한 서구 열강 각국공사관의 내력을 중심으로 역사문화 공간의 변천과 시대사의 흐름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지명 유래와 역사를 비롯하여 ‘정동’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근대사의 상징적인 공간 근대개항기 이후 근대사의 굴곡이 가장 집약된 상징적인 공간을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단연 서울 정동의 몫이 될 것이다. 청일전쟁과 을미사변을 비롯한 일제의 무자비한 무력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아관파천이라는 비극적인 장면이 이곳에서 연출되었고, 이러한 난국을 타개하고자 대한제국의 선포를 통해 자주독립의 의지를 한껏 표출한 공간이 역시 정동이었기 때문이다. 일제가 이른바 을사보호조약의 체결을 겁박하고 나선 현장 또한 정동이었다.미관(美館), 영관(英館), 아관(俄館),
일제청산 제대로 했다면 한국교회는 …
▲친일인명사전 초대 편찬위원장 이만열 지도위원 ‘이만열 장로(숙명여대 명예교수)의 기독 청년들과 함께하는 역사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애초 30여 명으로 제한하려 했으나, “서서라도 강의를 꼭 듣고 싶다”며 의지를 불태운 수강 신청자들이 많아서 최종 마감 전 신청자까지 모두 받게 되었다. 첫 강의는 1월 5일 푸른역사 강의실에서 열렸는데, 가깝게는 광화문, 멀리는 파주에서 온 청년들까지 모두 60여 명이 강의 공간을 빼곡히 채웠다. 기독청년아카데미에서 이 장로의 강의는 처음이 아니다. 3년 전에 비슷한 강의를 열었지만, 이번처럼 큰 반응은 없었다. 수강 신청 초기부터 마치 강의 개설을 기다렸다는 듯이 등록이 폭주하고, 강의 문의가 쇄도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런 변화와 뜨거운 반응을 가져온 것일까? 강의 전 수강생들이 클럽에 올린 소개 글을 보면 그들의 간절한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여러 수강생은 “현재 한국교회의 모습 중 개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분, 대형 교회들의 부끄러운 모습들, 옳지 않은 사람들의 여러 행동을 보면서, 무엇부터 어디서부터 바뀌어야 하는지 그저 막막할 따름이다(한지영, 직장인)”, “과거를 청산하지 못하면 미래는 없을 거라 본다. 그동안 교회가 달려온 길을 되짚어 볼 때라고 생각한다(조광희, 신학생)”, “진리가 한쪽으로 치우쳐 선포되고 성도들이 그것을 그대로 믿는 현실, 세상과 전혀 구분되지 않고 오히려 세속의 가치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현실이 시급히 개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이하나, 주부)”며 강의에 대한 굵직한 기대를 밝혔다. 이처럼 직장인, 대학원생, 신학생, 목회자, 학자 등 하는 일은
7억 선뜻 내주신 ‘당신’… 만나고 싶습니다
“7억 선뜻 내주신 ‘당신’… 만나고 싶습니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 2004년 초, 시민운동사에 길이 남을 누리꾼 참여운동이 <오마이뉴스>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습니다. 해방이 되고도 60년간이나 미뤄져 왔던 친일파 청산을 더는 방관할 수 없다는 국민적 분노가 드디어 폭발한 것입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2003년 12월 말 국회는 친일인명사전 관련 기초조사 예산 5억 원을 전액 삭감한 정부예산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온갖 선심성 지역구 예산을 끼워 넣으면서도 용케 마음에 들지 않는 미세한 예산을 찾아내 도려낸 것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그 심의의 철저함에 경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언론들도 한 목소리로 정치권의 몰염치를 비난했습니다. 2004년 1월 7일 국회의 반역사적 망동을 신랄하게 비판한 <오마이뉴스> 정운현 편집국장의 ‘다 떨어진 헌 고무신짝을 부여잡고‘란 기사에 어느 누리꾼(현재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으로 활동 중인 김호룡 선생)이 격동의 심경을 담아 댓글을 달았습니다. “민족사의 과제를 국가가 정녕 외면한다면 이제 우리가 나서서 친일인명사전 발간 비용을 모읍시다.” 그렇게 거대한 저항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죽비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그해 1월 8일 <오마이뉴스>와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 편찬, 네티즌의 힘으로’ 공동캠페인 조인식을 가지고 모금운동에 착수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관계자들 중 어느 누구도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다만 캠페인을 통해 친일인명사전 발간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넓힐 수 있겠다는 기대는 하고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3·1절까지 1억 원, 8·15까지 5억 원을 모금한다는 목표를 정했지만, 이조차도 우리의 의지를 넘어서는 어려운 과제라는 느낌이 지배적이었다고 지금에 와서야 고백합니다.
천황 훈장 받은 ‘거물’ 친일파, 동상 세우자고?
지난해 12월 말, 전북 군산시는 근대인물 5명을 선정해 조각상을 세우겠다고 발표했다. 군산시가 선정한 근대인물 5명은 임병찬 장군, 이영춘 박사, 채금석 선생, 문학가 채만식, 이만수 경성고무 사장 등이다. 군산시는 2월 말에 구체적인 건립 계획을 결정해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그런데 이 인물들의 속을 들여다 보니 가히 충격적이다. 채만식의 경우 알려진 대로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된 인물이다. 또한, 이만수 경성고무 사장은 ‘거물급 친일파’로 분류될 만큼 친일행적이 뚜렷하게 드러난 인물이다. 군산시는 친일행적이 있는 이들을 5대 근대인물로 선정했고, 이들을 기념하는 인물 조각상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근대 문화경관사업을 통해 근대 문화도시로 거듭나겠다는 군산시가 역사적 정체성을 망각하고, 친일파의 인물상을 세우려는 반역사적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 경성고무 이만수 사장. 사진 옆에 대평만수(大平晩秀)로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창씨개명을 했음을 알 수 있다. ⓒ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이만수 군산시 근대인물 이만수, 문제가 많다 기자는 과거 이승만 정권 시절 사라졌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피의자 명단’에 이만수 경성고무 사장이 포함된 사실을 파악한 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행한 친일인명사전등재 여부를 확인해 봤다. 하지만 이만수 사장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돼 있지 않았다. 민족문제연구소에 그의 과거 행적과 추가 등재 가능성을 물었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지방과 해외 친일 인물은 행적에 대한 추가조사가 진행되고 있어 누락된 자가 많다”며 “이만수 경성고무 사장은 친일행적이 뚜렷하고, 중대성이 심각해 친일인명사전 개정판에 등재될 가능성이 100%에 가깝다”고 밝혔다. 또한 “지금 확인된 자료만으로도 충분히 친일인사로 분류되는데, 반민특위에 기소될 정도면 굉장한
식민지근대화론 ‘실증적’으로 비판하다
<개발 없는 개발>(은행나무 출판사)을 통해, 일제강점기 경제사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인 ‘수탈론’과 ‘개발론’의 평행적 대립을 극복하고, ‘개발 없는 개발’이라는 새로운 시각에서 일제 식민지배의 실상을 해명해 2006년 제2회 임종국상(학술부문)을 수상한 허수열 충남대 교수가 최근 식민지근대화론을 다시 한번 실증적으로 비판한 역작 <일제 초기 조선의 농업>(한길사)을 펴냈다. ▶2007년 이영훈 서울대 교수는 조정래 작가가 쓴 소설 <아리랑>에 묘사된 전북 김제·만경평야가 1904년 당시엔 바닷물이 수시로 들어오는 갯벌이었으며, 일본인들에 의해 농업이 가능한 지역으로 개발됐다는 주장을 폈다. 이에 대해 허수열 충남대 교수는 “당시 김제·만경평야는 갯벌이 아니고, 다양한 수로가 만들어져 있는 등 농업이 이뤄지고 있었다”며 “실증적 연구를 철저하게 펴지 못한 식민지근대화론의 오류”라고 주장한다. 한길사 제공 “그 끝이 하늘과 맞닿아 있는 넓디나 넓은 들녘은 (…) ‘징게 맹갱 외에밋들’이라고 불리는 김제·만경평야로 곧 호남평야의 일부였다. (…) 그 초록색 들판은 누구에게나 한없이 넉넉하고 푸짐하면서도 경건하고 겸손한 마음까지 품게 했다.” (조정래, <아리랑>) “<아리랑>이 시작되는 1904년으로 돌아가면 그 지평선까지는 광활한 갯벌과 소금기로 풀이 죽어 있는 갯논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조정래는 징게 맹갱 외에밋들의 광활함과 풍요로움을 구성지게 노래했다.” (이영훈, ‘김제 역사의 본류에 진입 못 하고 이방인으로 맴돈 조정래와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구별조차 못하는 엠비시(MBC)’, <시대정신> 2007년 가을호) 조정래 작가는 장편소설 <아리랑>을 통해 풍요로웠던 전북 김제·만경평야의 모습과 거기에서 벌어진 일본인들의 참혹한 수탈에
[책소개]과거사 청산 전문 잡지, 2호
<<역사와 책임> > 2호 발간 안내 1. 민족문제연구소와 포럼 진실과정의가 공동으로 ‘과거청산’ 문제를 전문으로 다루는 잡지 <역사와 책임> 2호가 발간되었습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2. 잡지 발간의 목적과 특징1) 과거청산과 관련해서 활동했던 국가기구의 성과와 한계를 기반으로 지속적인 진상규명과 과거청산운동을 계속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잡지 발행(과거청산의 지속과 사회화)2) 국내외 과거청산 관련 단체와 연구자, 활동가들이 참여해서 함께 간행위원회를 구성하여 만든 잡지(연대의 정신)3) 잡지는 ① 자료의 지속적인 발굴과 공개(동학, 친일, 강제동원 피해, 민간인 학살, 의문사 등) ② 피해회복을 위한 법적 노력(재판) 소개 ③ 관련 운동의 소개와 홍보(일본까지 포함) ④ 연구자 발굴과 참여 공간으로서 학술논문 등으로 구성 [2호 주요내용] 창간호 <특집>으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활동을 평가하는 글을 실었는데, 이번 호에서는 그 두 번째로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비롯한 3개 위원회의 활동을 평가하는 글을 실었다. 김성길 전 조사2과장은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성과와 한계, 남은 과제들을 서술하였다. 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권으로 이어진 4년 동안,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개별 사건의 진실규명에 있어 일정한 성과를 냈다. 그러나 명예회복 등 후속조치가 미흡했고, 재발 방지 대책 등에 대해서는 실효성 있는 결과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 안김정애 전 조사2과장은 국방부의 과거사 청산의 활동과 성과를 평가하였다. 법으로 설립한 기구가 아니라 국방부장관의 자문기구 형식으로 출발한 국방부과거사위원회는 전두환 정권 당시의 ‘녹화사업’ 등 8개 사건을 선정하여 조사하였다. 이들 조사의 성과로 허상수 제주4·3연구소 이사는,
[영상] 지금,그 순간의 역사 (한홍구,서해성)
연구소와 포럼 ‘진실과 정의’가 함께 주최한 역사왜곡 저지를 위한 연속대담회, 그 마지막 무대가 지난 20일에 열렸다. 두 시간여에 걸친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와 서해성 작가의 대담을 영상으로 담아보았다. 세번에 걸친 대담회를 빛내주신 여러 선생님들과 참석해 주신 많은 시민 및 회원여러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