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요기사
저희 아버님은 애국자였습니다
합천여고에서 교편을 잡고 계시는 어느 선생님께서 친일진상규명법 제정에 적극 반대하고 있는 김용균 의원의 반론이 실린 합천신문을 연구소로 보내왔다. 일방적으로 김용균 의원의 주장만을 게재한 신문도 문제지만 지역에서는 김용균 의원에 대한 반대 움직임이 거의 없는 낙천,낙선운동의 ‘무풍지대’임을 안타까워 하는 내용이었다. 합천신문 내용을 옮겨보았다. 『김용균』의원, 총선 연대에 反論제기 2004-02-12 16:22 ◆평생을 국가민족을 위해 몸바친 분을 친일행위로 조작하는 사람들 저의가 의심 ◆부친(故김명수국회의원)의 친일의혹 제기한 ‘오마이뉴스”수사 요청하겠다 ◆『2004 총선 시민연대』의 공천반대 사유, 적절치 못해 인정할 수 없다 한나라당 합천-산청지구당 위원장인 김용균국회의원은 “총선 시민연대”의 낙천운동 1차 대상자 66명중에 자신이 포함된 것에 대해 지난 5일 전화 인터뷰와 팩스로 반론문을 발표했다. 김용균의원은 공천반대 사유중 ◆국보위 재직에 대하여 『당시 군법무관으로서 정부의 인사명령에 의하여 국보위에서 근무한 것이다. 직업군인으로서 국가의 명령에 따르는 것은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무원이 대한민국정부의 명령에 따라 근무한 사실이 불법이고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국보위 근무후 복귀하여 국회전문위원과 국회 행정차장, 체육청소년부 차관, 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을 역임하면서 공직자로서의 도덕성과 실력을 철저히 검증받은 바 있고 지난 16대 총선에서 국민의 심판과 검증을 거쳐 당선된 것이다. 따라서 공무원이 인사명령에 따른 것이 비난의 대상이 되고 낙천의 기준이 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의원총회 발언과 관련해서는 『총선시민연대는 판사의 출신지역을 거론하면서 지역감정을 자극하였다고 하나, 그 당시 법률지원단장으로서 선거사범 재판에 있어
"독립문 편액은 매국노 이완용 글씨"
“독립문 편액은 매국노 이완용 글씨” [발굴] ‘독립문’은 정말 독립의 상징이었을까?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이순우(takehome) 기자 지난 1999년에 출간된 윤덕한의 <이완용 평전>이라는 책이 있다. 말만 들어도 두드러기가 날 것 같은 ‘친일매국노’ 이완용을 굳이 정면으로 다룬 것부터가 그러하고, 기존의 상식과는 제법 다른 시각에서 그를 바라본 서술 방식이 나름의 반향을 일으킨 책이었다고 기억한다.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조금은 당혹스럽게 받아들일 만한 사실 하나를 지적했다. 독립문 상단 앞뒤에 한자와 한글로 ‘독립문’이라고 새겨진 글씨가 이완용이 쓴 것이 백 퍼센트 확실하다는 것이다. ▲ 독립문의 앞뒤로 달려있는 편액은 과연 누가 쓴 것일까? 상당히 언짢은 일이겠지만, ‘매국노’ 이완용의 글씨라는 주장은 사실인 것 같다. ⓒ2004 이순우 무엇보다도 그 글씨체가 굵고 힘있는 이완용의 전형적인 필체이며, 그는 당대 제일의 명필로서 이미 궁중의 여러 전각 현판을 쓴 경력이 있다는 것이 그 근거였다. 또한 이완용은 그 당시 독립협회의 발기인 가운데 보조금도 가장 많이 냈고, 위원장으로서 독립문 건립 사업을 주도했다는 것도 다른 이유였다.그런데 참으로 언짢은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이 주장은 사실인 것 같다. 약간 후대의 기록이긴 하나 <동아일보> 1924년 7월 15일자에는 ‘내동리 명물’이라는 연재물이 수록되어 있고, 때마침 독립관과 독립문을 다룬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분명히 들어 있다.“교북동 큰길가에 독립문이 있습니다. 모양으로만 보면 불란서 파리에 있는 개선문과 비슷합니다. 이 문은 독립협회가 일어났을 때 서재필이란 이가
항일운동단체-고대 ‘인촌로’ 명칭 갈등
친일인사 호 쓸수 없어” vs “명예훼손…소송검토”(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항일운동가 단체들이 고려대 사거리~보문역 1.2㎞ 구간 길인 인촌로 명칭 폐지 운동에 나서면서 고려대와 갈등을 빚고 있다. 20일 성북구 등에 따르면 운암 김성숙선생 기념사업회 등 항일운동가 단체들은 지난 11일 ‘일본에 충성한 김성수 인촌로 지정 취소하라’ 등 규탄 문구가 적힌 현수막 24장을 고려대와 보문역 주변 등 인촌로 일대에 걸었다. 이들 단체는 앞서 개운사 진입로인 ‘개운사길’을 성북구가 도로명주소법 시행 과정에서 ‘인촌길’로 바꾸자 “항일 불교운동의 성지에 친일 인사의 호를 딴 진입로는 용납할 수 없다”고 반발해 명칭 환원 방침을 이끌어냈다. 이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일대를 가로지르는 큰길인 인촌로까지 이름을 바꿔야 한다며 행정안전부에 민원을 냈다. 행안부는 인촌로 관리 주체가 성북구라며 사안을 성북구에 넘겼다.그간 ‘인촌로’ 문제에 아무 반응이 없던 고려대는 현수막이 걸리고서부터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다. 고려대는 지난 17일 16개 항일운동가 단체 앞으로 공문을 보내 “해당 현수막은 본교 설립자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한다”며 “19일 오후 6시까지 현수막을 자진 철거해 달라”고 요청했다.고려대 관계자는 “현수막 가운데 `친일파 김성수가 고려대 설립자인지 밝히라’ 등 문구는 학교 명예를 훼손할 소지가 있다. 철거하지 않으면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낼지 등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다만 인촌로 명칭 변경 문제는 성북구 소관이므로 학교 측에서 이에 대해 할 말은 없다”고 덧붙였다. 학교 측은 성북구와 동대문구에도 현수막 철거 협조 요청을 했다. 성북구는 고려대로부터
거제시민단체 “김백일 흥남철수 주역 아니다” 주장
【거제=뉴시스】최운용 기자 = 한국전쟁 당시 흥남철수작전의 실제 주역이 김백일 장군이 아니라 현봉학(1922~2007) 박사라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예상된다.경남 거제지역 9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시민단체연대협의회는 15일 오후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흥남철수작전의 실제 주역은 현봉학 박사”라며 “친일파 김백일 동상을 즉각 철거할 것”을 촉구했다.시민연대는 “현 박사는 당시 알몬드 10군 사령관의 민사부 고문으로 일하면서 알몬드 사령관과 인간관계를 통해 피난민을 승선시킬 수 있었다”며 “세계 위키백과 사전에도 ’10만명의 피난민을 살려낸 한국판 쉰들러’로 표현돼 있다”고 설명했다.당시 현 박사의 역할은 흥남철수작전 과정의 전반이 수록된 미 군정 군사기록에도 나타나 있다고 시민연대는 소개했다. 시민연대는 “김백일은 당시 흥남철수작전의 한국 측 지휘관으로만 있었을 뿐”이라며 “기념사업회 측이 주장하는 것처럼 동상을 세워 추앙할만한 역할은 없었다”고 주장했다.이에 시민연대는 “이처럼 흥남철수작전의 실제 주역은 역사적 사실과 자료로 입증되고 있다”며 “한시라도 빨리 친일파 김백일의 동상을 자진 철거할 것”을 촉구했다.그러면서 시민연대는 “이번 동상건립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국가보훈처와 국방부도 인물에 대한 면밀한 검토없이 편협된 판단으로 일조한 것에 대해 대오각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 측은 지난달 26일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서 흥남철수작전의 주역이라며 김백일 장군의 동상을 건립했으나 김 장군이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면서 시민단체는 물론 시의원과 일반시민도 1인 시위에 나서는 등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거제시는 시민 의견수렴 뒤 지난 2일 기념사업회 측에 김 장군의 동상에 대해 철거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낸 바 있다.
서울대여, 친일의 그림자를 거둬라!
▲작년 11월 25일 집회 모습 ©민족문제연구소 서울대 미대 초대 교수진들의 친일행적을 논문에 언급해 재임용에서 탈락한 김민수 전 미대 교수(연구소 회원)의 복직과 친일 미술인 장발과 친일음악인 현제명(서울대 음대 초대 학장)의 동상 철거를 요구하는 집회를 서울대 학위수여식이 열리는 2월 26일(목) 낮 12시부터 3시간 동안 벌였다. 이번 집회는 연구소 관악동작지부와 남서지부가 주축이 되어 진행했으며, 이들은 작년 말부터 모두 6차례에 걸쳐 학교 정문 앞에서 김민수 교수 복직을 요구하는 집회를 가진 바 있다. 회원들은 김민수 교수의 복직을 약속해 놓고 약속 이행을 않고 있는 정운찬 현 총장의 행태에 대해서도 규탄하며, 장발과 현제명의 친일행적을 담은 유인물도 배포했다. ▲서울대 졸업식 날인 2월 26일(목), 장 발 동상 앞에서 철거 요구를 하고 있는 연구소 회원들 ©민족문제연구소
"친일파 제대로 알아야죠"
“친일파 제대로 알아야죠” ‘친일파자료실’ 운영자 이호상씨 온라인에서 ‘친일파자료실'(http://user.chollian.net/~choker)을 운영하면서 친일청산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이호상씨(28).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으로 ‘친일인명사전’ 제작에도 누구보다 앞장서서 서명하고 기금을 낸 그는 현재 인천대학교 정보통신공학과 대학원생이다. 그가 친일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7년 우연히 〈교과서와 친일문학〉이라는 서적을 읽고서다. “지난해 제대한 후 인터넷을 처음 접했어요. 제 홈페이지를 가지고 싶었는데 주제를 뭘로 할까 고민하다가 친일파라는 주제어로 일단 검색을 했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개인 홈페이지는 전무하다시피 한 거예요. 충격을 받았어요. 스스로도 조금씩 공부해가면서 친일파 자료를 제 홈페이지에 올렸어요.” 홈페이지 단골 방문자는 숙제를 하려는 중-고교생이라고 한다. 이들은 홈페이지의 친일파 자료를 검색하고, 궁금한 점을 이씨에게 질문하기도 한다. 이씨는 “한때 ‘내가 애들 숙제나 해주려고 홈페이지를 만들었나’하는 회의도 느꼈지만 이내 결코 ‘우습게 볼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야말로 보람된 일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50년 전 친일파를 제대로 응징하지 못해 오늘날 그 후유증이 심각한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2차대전 이후 프랑스는 나치부역자를 확실히 처단한 반면 우리는 그러지 못했잖아요. 반민특위가 그 일을 하려 했으나 무산됐고,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친일파를 다시 요직에 기용하는 바람에 친일파 청산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그 결과 교과서에 친일파의 작품이 실리고, 전국에 친일파 동상이 버젓이 세워져 있는 거죠. 정치인 등 일부 지도층이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반성하기보다 오히려 정당화하는데 급급한 이유도 근본적으로는 우리가
역사단체들, KBS에 ‘단단히’ 뿔났다
KBS의 이승만, 백선엽 미화 다큐에 대해 역사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는 “역사의 흐름을 되돌리려는 것”이라며 매우 우려하고 있으나, 정작 KBS 내부에서는 ‘수신료 인상’에 부정적 영향이 미칠 것을 염려해 ‘친일 독재 방송 저지 투쟁’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다수인 것으로 전해졌다. KBS가 독재자 이승만에 이어 친일파 백선엽 장군 미화 다큐까지 추진하고 나서자 항일 독립운동 단체, 4.19 혁명 단체, 6.25 민간인 희생자 유족 단체들은 언론단체와 함께 9일 ‘친일·독재 찬양 방송 저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한 상황이다. 이들은 KBS의 행태에 대해 “근현대사를 송두리째 왜곡하고 분탕질을 쳐서라도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친일, 독재, 수구세력의 준동에 동조하는 것”이라고 규정하며 “이러고도 어떻게 국민들에게 수신료를 올려달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분개하고 있다. KBS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KBS 내부 게시판인 코비스(KOBIS)에는 ‘친일 독재 비호 방송 저지 투쟁’을 진행 중인 KBS 새 노조에 대해 “(수신료 인상을) 목전에 두고 집중이 분산되고 있다”며 비판하는 의견들이 다수 올라와 있다. KBS 직원 A씨는 “(수신료 인상의) 결과를 목전에 두고 집중이 분산되고 있다. (수신료 인상 달성이) 불과 며칠 남지 않은 상태에서 혹시 수신료 인상을 배아파하는 불순세력이 (있느냐)”며 “친일이고 독재이고 잘 모르겠지만, 지금의 우선순위는 수신료 현실화”라고 밝혔다. 8일 게시된 이 글에 대한 ‘반대’ 숫자는 9일 현재 37에 불과한 반면, ‘찬성’ 숫자는 반대의 두배 이상인 81에 이른다. 직원 B씨도 “수신료 인상안을 이번 임시국회에서는 반드시
中 광복군 지휘소 터 나이트클럽 전락
(상하이=연합뉴스) 김대호 특파원 = 항일 독립투쟁에 앞장섰던 광복군의 중국내 유적들이 관리소홀로 기념 표지석도 하나 없이 방치된 채 나이트클럽, 자전거 주차장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9일 상하이총영사관에 따르면 중국 안후이(安徽)성 푸양(阜陽)시 런민중루(人民中路) 226호의 한국광복군 제3지대 지휘소 부지에 맨해튼 나이트클럽이 들어서 성업하고 있다.2층의 대형 돔 형태인 나이트클럽 건물은 또 내부 홀 주변 공간에 룸살롱도 개설돼 있다.광복군 지휘소는 한국 독립 이후 한동안 원래 모습을 유지했으나 1950년대 인민극장으로 변모한 후 수년 전부터 나이틀클럽과 룸살롱으로 개조됐다. 광복군 3지대는 김학규 광복군 고급참모 겸 제2특무대장이 안후이성과 산둥(山東), 장수(江蘇), 허난(河南) 등에 거주하던 한국 교민 자제들을 대상으로 모병활동을 벌여 설립됐다. 김학규 특무대장은 광복군 모집위원회를 구성, 일본군 후방까지 침투해 한국인 사병들과 연락하며 민족독립을 위해 광복군으로 들어올 것을 설득하는 임무도 수행했다.광복군 3지대는 1944년 병력수가 100여명에 달했고 나중에 205명까지 확대됐다.푸양시에서 1시간 거리인 린췐(臨泉)시의 광복군 훈련반은 린췐제1중학교의 부지로 편입돼 자전거 주차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훈련반은 현재의 신병 훈련소와 같은 곳이다. 린췐 광복군 훈련반은 1기 졸업생 50명 전원을 전선에 파병했고 2기 졸업생은 광복군 모병처에 남아 신입대원 훈련을 담당했으며 3기 졸업생은 충칭(重慶)의 임시정부와 광복군 총사령부에 배치됐다.한국 독립운동의 성지인 광복군 유적들이 이처럼 방치된 것은 정부의 관심 부족 때문으로 지적되고 있다.정부는 광복 후 임시정부 청사 복원과 관리에 치중, 광복군 유적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쏟지 못했다. 또 광복군 유적들이 중국 각지에 흩어져 있어 관리하기가 쉽지
반성, 그리고 용서, 친일은 청산될 수 있는가
▲2월 24일(화) 밤10시 50분 ~ 11시 30분(40분간)제 22회 (2월 24일)반성, 그리고 용서, 친일은 청산될 수 있는가 1.기획의도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을 함께 치르고 문화 개방을 통해 한 걸음 가까워진 듯 하지만 여전히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세대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일본에 대한 한국인들의 거부감과 반일감정은 가슴 깊숙이 내재되어 있다. 이러한 반일 감정은 지난 36년 간의 식민지로 인한, 반세기가 지난 오늘도 아물지 않은 상처 때문이다. 최근 송병준 후손의 땅찾기 소송과 홍난파기념관 건립, 그리고 친일인명사전 편찬 등으로 그동안 등한시 해왔던 친일청산에 대한 논란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는데…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친일청산을 통한 명확한 진상규명을 통해 청산을 하려는 과정에서 우리는 어떠한 것들이 필요하고 요구되는 것인지, 반성과 용서, 이를 통한 화해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인지 살펴보려고 한다.2 주요내용1) 친일의 기준지난 1월 19일. 옛 반민특위가 있었던 명동의 한 은행 앞에 국가에서 해내지 못한 <친일인명사전> 편찬 모금 5억원 달성을 축하하기 위해 150여명의 네티즌이 모였다. 친일청산에 대한 관심을 높여가고 있는 이러한 분위기 속에 옛 군수시절 친일 했던 이항녕 박사의 자신의 과거 고백을 들어보고, 인명사전편찬 운동을 펴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과 방학진 사무국장을 통해 가장 민감하게 대두되고 있는 친일의 기준에 대해 정확히 짚어본다.** 옛 군수시절 친일행적을 고백한 이항녕씨**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 / 방학진 사무국장2) 물타기 수법을 둘러싼 논쟁박정희를 비롯하여 홍난파에 이르기까지 친일행적이
공식마감이후 쏟아진 모금 뒷얘기
공식 마감 이후 쏟아진 <친일사전> 모금 뒷얘기 오프라인까지 확산…삼일절 ‘팔도독립군 총 거병의 날’ 행사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방학진(vacationji) 기자 ▲ 2004년 2월 5일 민가협 주최 목요집회에서도 성금 모금이 이뤄졌다 ⓒ2004 민족문제연구소 지난달 8일부터 19일까지 이뤄진 네티즌들의 친일인명사전 편찬 기금 모금은 ‘과거사 청산과 역사 바로 세우기’가 구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가능하다는 희망을 보여주었다. 역사정의실현의 열기는 더 나아가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으로까지 번져 나가고 있다. 19일 5억 달성 기자회견과 촛불모임이 있은 후 적지 않은 질문이 연구소로 쏟아졌다. 질문은 크게 두 가지였다. 가장 많은 질문은 ‘모금을 중단하는 것이냐’를 묻는 것이었다. 19일 정오 현재 7억 1359만원 모금 지난 1월 8일 부터 시작된 친일인명사전 편찬비용 모금은 모금 개시 11일만인 1월 19일 5억원 모금을 달성했다. 이는 당초 8월 15일 광복절까지로 예상했던 것을 훨씬 앞당겨 달성한 것이다.<오마이뉴스>는 당초 모금액 5억원이 달성됨에 따라 공식적인 모금은 일단락 짓고 모금 창구를 민족문제연구소로 넘겼다. 그러나 이후에도 모금 열기는 식지 않아 그로부터 5억원 모금이 달성된지 한 달 뒤인 2월 19일 현재 7억원을 넘었다. 구체적인 액수는 19일 정오 현재 총 모금액은 총 713,599,696원 (31,075건)으로, 국민은행분은 332,436,788원(13,018건), 농협분은 185,715,907원(8,402건) 이다. 이밖에 신용카드 등으로 접수된 금액은 195,447,001원(9,655건)이다. 이 질문에 대해 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 편찬, 네티즌의 힘으로> 캠페인에서 <친일인명사전 편찬, 국민의 힘으로>라고 구호를 바꿔, 이번에 확인된 성금 모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