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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59.3%, ‘친일파와 식민잔재 청산’ 가장 중요

2004년 2월 15일 884

(서울=연합뉴스) 이 율 기자 =국내 20대 청년의 59.3%는 한일관계의  바람직한 정립을 위해 가장 중요한 한국사회의 과제는 `친일파와 식민문화 잔재  청산’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서울 YMCA(회장 강태철)가 2.8 독립선언 85주년을 맞아 지난달 28일부터 3일까지 국내 20대 청년 351명을 상대로 역사의식과 한일관계 현안에 대한 인식을 점검하는 설문조사를 실시, 5일 발표한 결과 밝혀졌다. 조사결과 이들 청년의 95.2%는 현재 한일관계가 제대로 정립돼 있지 않다고  여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COREA라고 쓰여진 빨간 손수건을 들어보이는 붉은 악마들     ©www.fcchoungju.com * 아래는 서울YMCA 누리집(홈페이지)에서 가져 온 자료입니다. 청년들, 일본을 ‘우리에게 중요하지만 경계해야 할 나라’로 인식 한일관계에 대한 청년 역사의식 설문조사 결과 첨부파일 : 한일역사의식설문보도자료_최종97.hwp○ 일본을 ‘우리에게 중요한 나라’(69.8%)이지만 ‘경계해야 할 나라’(65.6%)로 인식 – ‘본 받을 나라’ ‘호감이 가는 나라’라는 응답은 각각 41.3%와 37.3%○ ‘한일관계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 95.2%로 압도적/‘그렇다’는 의견은 4.8%에 불과 – 요인은 ‘구체적 대안제시와 실천 부족’(30.2%) -> ‘日정부의 역사왜곡과 침략사 미화’(27.9%) -> ‘원칙없이 미봉책에 급급한 대일정책’(23.6%) 순○ 한일관계 현안//독도분쟁(95.5%) -> 신사참배(89.5%) -> 4차 문화개방(84.9%) -> 교과서 왜곡(82.9%) 순으로 인지도 높아– 강제동원 진상규명법 추진(61.3%) -> 유사법제(60.1%)는 ‘모른다’ 응답 60% 이상 ○ 대일 우선 해결과제//침략사왜곡 재발방지 약속(73.5%) -> 한일 국민교류 확대(47%) -> 일본의 평화헌법 준수(42.7%) -> 태평양 전쟁 피해자 보상(28.2%) 순○

한일관계, 판도라의 상자 열릴 것인가

2004년 2월 15일 787

2월 13일 오후 1시 30분, 일제강점하 피해자 200여명은 서울행정법원에서 ‘한일협정외교문서정보공개거부처분취소소송’의 판결을 초조한 마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년이면 일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지 60주년을 맞는 해이건만 이들은 그 동안 왜 강제 노역한 임금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지, 강제로 끌려간 이후 생사조차 모른 채 가족이 버려져야 했는지, 꽃다운 어린 나이에 근로정신대나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되어 모진 고통의 세월을 보내고서 공식적인 사죄 한마디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지, 원폭피해의 그늘 속에서 숨죽여 살아야 했는지, 사할린 동토에서 귀환조차 못한 채 술과 시름의 세월을 보내야 했는지, 그리고 희생자의 유골조차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구천을 헤매고 있는지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해 기다린 것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는 이날 판결에서 피고인 외교통상부장관에게 한일협정 외교문서 가운데 개인청구권과 관련한 문건 5건에 대해 공개하라는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외교통상부 관계자들은 이날 법정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상당히 당혹해 했을 것이다. 이번 판결은 ‘공공기관의정보공개에관한법률’과 ‘외교문서보존및공개에관한규칙’이라는 2중의 장벽을 넘는 획기적인 판결이며, 한국과 일본을 통틀어 전무후무한 결론을 내렸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지 않은 판결이다. 정보공개소송과 관련해서는 그 동안 비교적 관대한 판결들이 많았다. 그런데 외교적인 마찰을 가져올 수 있는 문건에 대해서는 그 동안 일본에서도 관련 소송이 전무하며(필자가 본 소송을 제소하기 이전에 판례를 검토하기 위해 일본인 변호사에게 문의한 결과), 더군다나 국내에서 정보공개법이 만들어 진 이후 처음 있는 소송이었다. 그 동안 당연시 해 왔던

신흥무관학교 100주년 기념식,문화공연 안내

2011년 6월 2일 594

    – 3,500여 항일 독립투사를 양성한- 신흥무관학교 100주년 기념식, 기념공연 개최 □ 오는 6월 10일(금) 3,500여 항일 독립투사를 양성한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식과 기념공연 “내가 대한민국이다”를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야외 특설무대에서 개최한다. □ 신흥무관학교는 1911년 6월 10일 서간도 유하현 삼원포 추가가 마을의 한 허름한 옥수수 창고에서 “신흥강습소”라는 이름으로 개교하게 되었다. 그 이후 3,500여명의 항일 독립투사를 양성하여 일제의 압제 속에서도 민족정기를 드높이고 항일독립운동의 근거지이며 대한민국 국군의 시초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 신흥무관학교 100주년 기념식은 6월 10일(금) 오후 4시에 신흥무관학교 100주년 기념사업회(공동대표 김삼웅_전 독립기념관장, 서중석_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윤경로_전 한성대학교 총장, 전기호_경희대학교 명예교수, 허남성_한국위기관리연구소 소장, 한용원_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 회원과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등 정관계 인사와 시민, 학생들이 참여할 예정이다. □ 그리고 6월10일(금) 오후 7시에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야외 특설무대에서 KBS의 김희수 아나운서와 고민정 아나운서의 사회로 기념공연이 개최될 예정이다. 이 기념공연의 무대는 장사익, 크라잉넛, 솔트레인, 노래를찾는사람들, 역사어린이합창단 등이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꾸밀 예정이고, 특히 신흥무관학교가 대한민국 국군의 시초라는 의미에서 국방부 의장대와 국방부 군악대가 특별 무대를 꾸밀 예정이다. □ 신흥무관학교 100주년 기념공연은 시민들과 함께 신흥무관학교의 뜻을 기리자는 의미로 무료로 진행되며 자세한 내용은 공연기획팀(070-4168-7652) 혹은 서대문형무소 역사관(02-360-8590)으로 문의하면 된다. ※ 문의는 공연기획팀 070-4168-1652, veritas4u@paran.com 담당 : 이은석. <관련기사> ▶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 기념식 열려  (KBS, 06.10) ▶ 항일독립군 양성지 신흥무관학교, 설립

MBC [PD수첩] ‘친일파는 살아있다 2탄’ 방영

2004년 2월 15일 2304

▲2004년 2월 17일(화) 오후 11시 5분 방영     ©문화방송 ▣ 친일파는 살아있다 2 48년 반민특위 이후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특별법’이 다시 등장했다. 그러나 이 법안은 이리저리 내쳐지다가, 누더기가 되어 3개월째 국회를 표류하고 있다. 16대 국회 임기가 끝이 보이는 이 시점에 법안이 처리되지 못하면 다시 쓰레기가 되고 만다. 「PD수첩」에서는 우리나라의 청산되지 못한 엇나간 역사인 친일파에 대해 알아보며, 무엇이 ‘친일청산’을 가로막고 있는지 살펴본다. ▶ 국회는 ‘친일 청산’ 의지 있나지난 2월 초, 기대를 걸었던 국회 법사위에서 다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특별법’을 과거사 특별위원회로 재회부 시켰다. 그나마 법사위에서 계속 수정을 요구해 거의 누더기가 된 법안이었다. 일부 언론이나 시민단체들은 ‘친일청산’ 이 독립운동 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 같다는 자조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취재진이 만난 법사위 소위위원장인 김용균 의원은 법적으로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법의 파급효과가 국민생활에 심대한 손실을 가져오고 있다고 밝힌다. 또한 너무 광범위하게 해당이 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통계를 내면 2천만 이상이 해당된다며 반려이유를 설명하면서, 법안을 대폭 축소시키지 않으면 사회에 심각한 분열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시민단체들은 일부 의원들의 이야기는 기우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 법안 자체가 좁히고 좁힌 가운데서 만들어진 법안이기 때문에 더 이상 축소시킨다면 반민족적인 행위를 했다라고 누구나 쉽게 인정할 수 있는 사람들과 그 행위들과 자료들이 객관적으로 남아있는 사람들 대상으로 조사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취재진은 난항을 거듭하고

임헌영 소장, [최동호의 세상읽기] 출연

2004년 2월 14일 644

2월 15일(일) 오전 7시-8시    ◇ 매일 매일 쏟아지는 새로운 뉴스와 화제들~!!   그 가운데 가장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는 HOT 이슈의 인물을 선정, 인터뷰함으로써 사회 현상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다.   ◇ 다변화되고 다양한 사회~!!   사회 각층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인물, 혹은 우리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을 만나 ‘의미’있고 ‘재미’있는 대화를 나눠보는 ‘토크’ 프로그램으로, 그들의 현황을 알 수 있는 현장으로 찾아가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눈다.   ◇ 솔직하고 담백하게~! 그리고 대담하고 재미있게~!!   사회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인물들, 시청자들이 궁금해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알려줄 사람들과 Face to Face로 진지하게 초대 손님의 구석구석을 살피고, 꼬집고, 보듬어 안는 토크 프로그램을 지향한다.   ◇ 매회 새로운 느낌의 인터뷰~!!   출연자의 개성에 맞게 변용 가능한 다양한 코너들을 마련해 적절하게 활용, 매번 신선한 느낌이 들 수 있도록 한다.또한 기존의 정형화된 틀을 벗어난, 자유롭고 편안한 인터뷰를 통해 시청자들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편안한 재미를 제공한다. http://www.itv.co.kr/main/index_life_choi.html

‘친일파’ 김백일 장군 동상, 거제에 건립

2011년 5월 30일 399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친일파 동상이 세워져 논란이 일고 있다. 김백일(金白一, 본명 김찬규,1917∼1951) 장군 동상으로, 지난해 강원도 속초에서 세우려다가 시민사회단체의 반대로 무산되었는데, 경남 거제에 세워진 것이다. 사)흥남철수작전기념사업회(회장 황덕호)와 함북6·25전적기념사업회는 지난 27일 거제포로수용소에서 ‘흥남철수작전 유공자 추모제’를 열고, 이날 흥남철수작전기념탑 옆에서 고 김백일 장군 동상 제막식을 가졌다.흥남철수작전은 1950년 12월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개입으로 포위되자 함경남도 흥남항에서 군인 10만5000명과 피난민 9만1000여명, 차량·화물을 193척의 함대에 싣고 거제 장승포항으로 철수한 작전이다. 고 김백일 장군은  흥남철수작전 당시 미군을 설득해 피란민을 함대에 승선할 수 있게 한 인물로 알려지고 있다. 고(故) 김백일 장군은 일제강점기인 1939년 7월 봉천군관학교를 졸업한 뒤 만주군 중대장으로 활동하면서 항일무장세력 진압을 지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민족문제연구소는 그를 친일인명사전에 등재했다.그는 광복 후 미군정 국방경비대에 참여했고, 6·25 뒤 1군단장을 맡았으며,1951년 3월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해 육군 중장에 추서됐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제막식 때 황덕호 회장은 “미군에게 피난민을 구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건의한 김백일 장군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거제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세워진 친일파 김백일 장군 동상 <출처-오마이뉴스> 시민단체연대협의회 “친일파 동상이 웬말이냐?” 김백일 장군 동상이 건립됐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 거제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발끈하고 나섰다. 30일 거제시민단체연대협의회 진휘재 집행위원장은 “동상 건립 소식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먼저 성명을 발표하고, 동상을 철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거제경실련·YMCA·YWCA·참교육학부모회·농민회·여성회·좋은벗·생협·책읽기시민연대로 구성된 거제시민단체연대협의회는 이날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친일파 동상이 웬말이냐?”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이들은

거제시민연대,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친일파 동상이 웬말이냐?

2011년 5월 30일 207

친일파 김백일 장군의 동상 제막에 대한 시민연대 성명서   오늘 흥남철수작전을 지휘했던 고 김백일(본명 : 김찬규) 장군의 동상이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내에 세워졌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었던 10만 여명에 달하는 피난민의 입장에서는 생명의 은인이라 할 고인에 대해 동상제막이 아니라 더 한 것도 세워서 기념하고 싶은 심정이라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는 바이다. 하지만 김백일은 일제강점기 때 만주군 중대장으로 활동하면서 항일독립군 진압을 지휘했던 인물로서, 일본군에 충성하여 백선엽, 최남근과 함께 조선인 항일조직 전문 토벌부대인 간도특설대 창설의 주역으로서, 수많은 동족을 학살했고 그 공로로 훈장을 받아 진급까지 했으며, 또한 일제로부터 서훈까지 받았던 행적이 역사적으로 명백히 드러나,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도 이미 등재되어 논란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친일파이다. 이러한 인물에 대해 시민들의 합의나 의견수렴도 없이 거제의 대표관광지인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동상을 건립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이러한 반민족 친일행위자에 대하여 동상까지 건립하여 미화시킴은 아주장터 만세운동 등 지역의 항일역사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고, 또한 일제강점기 목숨 바쳐 독립운동을 했던 항일영령들 전체를 모욕하는 것이다. 김백일의 동상제막 시도는 이미 작년 4월에 강원도 속초시가 기념사업회 측과 함께 동상건립을 시도하다 시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었으며, 당시의 시민반대 이유도 민족정서에 반하며 공과를 떠나 민족의 가슴에 총구를 들이댄 반민족 행위는 어떠한 공(功)으로도 치유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거제시가 어떤 이유에서 친일파의 동상건립을 거제시의 얼굴인

방송 토론 ‘친일청산, 그 방법과 방향은?’

2004년 2월 13일 1114

▲2004년 2월 14일(토) 저녁 7시 20분[EBS 여론광장 제 37회]방송일 : 2004년 2월 14일(토) 저녁 7시 20분부 제 : 친일청산, 그 방법과 방향은? ■기획의도 국회 법사위가 반려했던 친일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지난 9일 법사위에 재송부되어 법안통과의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친일행위를 규명한 내용중 일부가 너무 광범위하고 모호해 국민 대다수가 친일행위로 몰릴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재회부된 법안은 법사위가 제시한 수정의견을 대부분 수용해 재송부된 것이다. 친일청산 문제는 지난 해 말 국회가 친일인명사전 편찬 전액을 삭감함에 따라 친일청산에 주력한 단체들이 반발하고 나서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오마이뉴스는 ‘친일인명사전 발간 모금행사’를 실시해 단기간에 목표액인 5억원을 모아 친일행위 진상규명에 대한 국민들의 여망을 보여주었고 민족정기 선양회와 4월 혁명회는 기자회견을 갖고 일제 친일파 자손들의 정계 은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EBS 여론광장에서는 친일청산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논의해본다. 아울러 친일청산의 방법을 모색해보고 올바른 방향은 무엇인지, 독도 망언 등으로 반일 감정이 높아진 상황에서 역사바로세우기는 어떻게 해야 하는것인지 모색해본다. 여러분의 의견을 시청자 게시판에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 친일청산 찬성측 패널은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과 윤경로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장 그리고 방청석 찬성 발언자는 김점구 독도수호대 사무국장이 각각 출연합니다. http://www.ebs.co.kr/HOMEPAGE/?progcd=0000223

이해 못할 `친일파 이해론`

2004년 2월 10일 2165

▲이승하 시인(중앙대 문창과 교수)‘일제 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 규명에 관한 특별법안’이 아직도 처리되지 못하고 국회에 계류중이다. 이 법안은 일제에 부역한 사람들의 행적과 죄상을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대통령 아래 진상규명위원회를 두어 5년 동안 진상 규명 활동과 아울러 조사 보고서 작성, 사료 편찬 등을 할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출간된 복거일씨의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는 지금까지의 친일파 단죄 주장에 일침을 가하는 새로운 시각의 친일파 이해론(옹호론과는 다른)이다. 복씨는 친일 행위라는 개념에는 법적 측면과 함께 도덕적 측면이 있어 그 둘을 엄격하게 구별해야 하는데, 도덕적 기준은 시대 상황에 따라 상당히 모호해진다고 한다. 또한, “공식적이었고, 실질적이었고, 혹독했고, 길었던” 일본의 식민통치 아래서 총독부의 강요에 큰 대가를 치르고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고 말한다. “지금 별다른 문제 없이 친일 행위로 규정할 수 있는 것들은 언뜻 보기보다 훨씬 적다. 그런 행위들로 이내 꼽힐 수 있는 것들은 아마도 독립운동을 한 조선인들에 대한 고문과 여자들을 속이거나 납치해서 ‘종군 위안부’들로 만든 행위 정도일 것이다”는 파격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우리 시대의 냉철한 논객인 복씨의 이런 주장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몇 가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일제시대의 그 모든 친일파가 광복후 취한 행동에 문제가 없었느냐 하는 점이다. 누구의 입에서도 민족 앞에 사죄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