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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이젠 됐다 할 때까지 사죄”…日기독교계 양심 오야마 목사 별세
향년 96세…일본 기독교인 이끌고 일제 만행 사죄 운동 펼쳐 (도쿄=연합뉴스) 박성진 특파원 = 일제 만행에 대해 사죄 운동을 벌여온 일본 기독교계의 양심인 오야마 레이지 목사가 16일 별세했다. 향년 96세. 1927년 도쿄에서 태어난 오야마 목사는 와세다 대학원과 도쿄신학숙을 졸업한 후 목회자 활동을 시작했다. 고인은 일제 만행과 관련해 아시아인에 대한 사죄 운동을 제창하고 그 자신 일한친선선교협력회 회장을 맡아 한국에 와서 사죄했다. 오야마 목사를 포함한 일한친선선교협력회 소속 일본인 원로 목사 15명은 2014년 10월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를 찾았다. 오야마 목사는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김복동 할머니 앞에서 “우리들 일본인은 당신들의 소중한 인생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며 “신이 당신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주기를 기도한다”고 사죄문을 읽었다. 그는 또 3·1운동과 제암리 학살사건 100주년을 맞아서는 일한친선선교협력회 회원으로 구성된 사죄단을 이끌고 2019년 2월 경기도 화성시 제암리 순국기념관을 찾았다. 일본은 3·1운동의 확산이 두려워 1919년 4월 15일 제암교회에 주민 23명을 가두고 잔혹하게 살해했다. 일본인 사죄단은 “일본의 과거 침탈을 깊이 사죄합니다. ‘이젠 됐어요’라고 말씀하실 때까지 계속 사죄하겠습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예배당 바닥에 엎드려 절하며 사죄했다. 오야마 목사는 “당시 일본은 3·1운동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주민들을 고문하고, 학살하고 교회를 불태웠다”라며 “일본 정부와 정치인들은 아무도 사죄하지 않고 있다. 바라는 점이 있다면 (우리처럼) 사죄하는 일본인이 있다는 걸 (한국인들이)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오야마 목사는 일본에서는
[팟캐스트] 역발상 시즌2_민중가요사 8부_”존재 방식이 달라진 민중가요”
☞ (05.16) ‘역발상’ 시즌 2: 민중가요사 8부_”존재 방식이 달라진 민중가요” 출연 : 이영미(대중문화 연구자) 정윤경(꽃다지 대표) 꽃다지 대표 정윤경은 1986년 명동성당청년연합회 산하 노래패 ‘신새벽’에서 음악활동을 시작하여 민중가요 노래패 ‘새벽’에서 노래와 기타·건반 연주 활동을 했다. 2001년에는 유인혁·고명원 씨와 함께 ‘유정고밴드’를 결성하여 활동했고 2003년 유정고밴드 해체 후 2004년부터 꽃다지 음악감독으로 합류하여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주요 이야기 1.민중가요의 독자적 생산-유통-수용의 구조의 변화 2.음반법 개정과 대중가요 시장 안의 민중가요 3.인터넷과 새로운 유통구조 4.꽃다지, 우리나라 등 5.집회시위장의 새로운 노래들 6.민중가요 여부를 나누는 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됐다 함께 듣는 노래들 1.연영석 <간절히> 2.정윤경 <시대> 3.유정고밴드 <또 친구에게> 4.손병휘 <추억은 힘> 5.송앤라이프 6.우리나라 <또다시 촛불> 7.꽃다지 <주문> 8.꽃다지 <당부>_라이브 ※지난 방송 ☞ (05.09) ‘역발상’ 시즌 2: 민중가요사 7부_”1990년대 중반 민중가요의 변화” ☞ (05.02) ‘역발상’ 시즌 2: 민중가요사 6부_”노동가요의 변화와 대학 민중가요의 경향” ☞ (04.25) ‘역발상’ 시즌 2: 민중가요사 5부_”민중가요 중심에 선 노동가요” ☞ (04.18) ‘역발상’ 시즌 2: 민중가요사 4부_”1987년 6월항쟁과 합법 공간에서의 노래운동” ☞ (04.11) ‘역발상’ 시즌 2: 민중가요사 3부_”노래운동과 민중가요의 전성기” ☞ (04.04) ‘역발상’ 시즌 2: 민중가요사 2부 “1980년 광주항쟁 전후 민중가요의 변화” ☞ (03.28) ‘역발상’ 시즌 2: 민중가요사 1부 “민중가요 전사(前史)_해방 후부터 1979년까지” ☞ (03.21) ‘역발상’ 시즌 2: 일제의 블랙리스트 ‘조선인요시찰인약명부’ 를 펴내다 ☞ (03.14) ‘역발상’ 시즌 2: 윤석열정부의 퇴행적
[성명] 한국인 원폭피해자에 대한 차별과 무시를 강요하는 원폭피해자 위령비 공동방문 요청을 거절하라!
윤석렬 대통령은 한국인 원폭피해자에 대한 차별과 무시를 강요하는 기시다 수상의 원폭피해자 위령비 공동방문 요청을 거절하라! G7에서 “핵무기 폐기를 위해 피폭 실상을 세계에 알리겠다”는 기시다 총리가 G7 직전인 5월 16일, ‘원자폭탄 투하에 의한 사몰자 수에 관한 새로운 조사를 실시하는 것에 대해서는 원폭 투하 후 77년이 경과하고 피폭자 수도 감소한 점 등으로 미루어 히로시마시 및 나가사키시가 1951년에 국제연합에 제출한 자료에서 사몰자 수와 비교하여 보다 정밀한 실태 파악을 위해 필요한 자료 수집이나 피폭자 본인에게 청취하기가 어려워졌다고 인식하고 있어 새로운 조사는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답변을 각의 결정했다. 원폭피해자의 인권을 위해 노력해 온 한일 시민들은 기시다(岸田) 총리가 이러한 중대 사항을 쉽게 각의 결정한 것에 큰 충격을 받고 있다. 이 답변은 쓰지 모토 기요미 참의원 의원이 지난해 11월 낸 질문 주의서에 기시다 총리가 “물어보신 『히로시마 원폭 희생자가 10여만』 및 『나가사키 원폭 희생자가 7만』에 대해서는 히로시마 시 및 나가사키 시가 1951년 국제연합에 제출한 자료에서 쇼와 20년 12월까지의 원자폭탄 투하로 인한 사망자에 대해 히로시마 시에서는 약 14만 명, 나가사키 시에서는 약 7만 명으로 되어 있는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양 시에 따르면 ‘일본인 이외의 외국인 희생자’는 모두 포함되어 있지만 ‘출신국별 내역’은 파악하고 있지 않다고 답을 한 것에 대해 쓰지모토 의원이 올해 5월에 다시 질문한 것에 대한 답변이다. ‘피해에 대한
[오마이뉴스] ‘관이 향기로운 족속’이 작정하고 뛰어든 친일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노천명 군국주의 정치단체 핵심으로 활동 대통령 소속 친일진상규명위원회가 발간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보고서> 제4-5권 노천명 편은 “1941년부터 조선문인협회 간사로 활동하면서 용산 호국신사 어(御)조영지 근로봉사 참여, 결전문화 대강연회에서의 시 낭독, 경성 방문 대동아문학자 대표 환송식 참여, 대동아전 일주년 기념 국민 시 낭독회에서의 시 낭독 등의 행위를 통해 총후(銃後) 문인의 문필보국에” 힘썼다고 서술한다. ….중략 제국주의에 부역한 일로 그가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 그의 삶에는 이것이 하등의 장애물도 되지 않았다. <친일인명사전> 노천명 편은 그의 46년 인생에 대한 설명을 이렇게 끝낸다. 1955년에는 서라벌예술대학에 강사로 출강했으며, 이화여대 출판부에 근무하면서 <이화 70년사>의 간행을 맡았다. 1957년 6월 16일 서울시 종로구 자택에서 사망했다. 2001년 이후 노천명문학상이 제정되어 매년 시·수필·평론 등 9개 부문에서 시상하고 있다. ㅡ 기사발췌 김종성 기자 <2023-05-14>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관이 향기로운 족속’이 작정하고 뛰어든 친일 ※관련기사 ☞오마이뉴스: 김종성의 히,스토리
[공동선언] 평화롭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한 한일 시민사회 각계인사 공동선언
[공동선언] [바로보기] 평화롭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향한 한일 시민사회 각계인사 공동선언 한일 양국 시민사회의 발전을 바라는 우리는 불행했던 과거를 딛고 서로 이해하며 보다 나은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가기 위해 연대해왔다. 우리는 양국 정부가 과거를 직시하며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협력하고, 한일 두 나라와 세계를 보다 평화롭고 안전하며 지속 가능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을 기대하고 요구해왔다. 그런데 최근, 대한민국(이하, 한국)의 윤석열 정부와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내각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련의 외교 활동은 한일 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는 것과는 동떨어져 있으며, 불행했던 과거를 딛고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가려는 한일 양국 시민들의 열망과도 배치된다. 두 나라와 세계를 보다 평화롭고 지속가능한 곳으로 만드는 것과도 거리가 멀다. 이에 한일 양국 시민들이 직접 한일 관계 현안에 관한 우리의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우리는 강제동원 피해배상에 관한 제3자 변제방식의 해법에 반대한다 조선인 노동자 강제동원은 일제 강점기에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행위다. 이 범죄행위에 대한 피해자들의 배상 청구는 일제 강점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 간 이루어진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사라졌다고 볼 수 없다.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는 한국 대법원의 확정판결에 따라 배상 청구권을 행사하려는 피해자들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되며, 그렇게 할 자격도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제3자 변제방식을 제안하며 ‘구상권 행사는 상정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는데, 이는 명백한 월권행위다. 생존 피해자들은 모두 “제3자가 채권자의 의사에 반하여 함부로 변제하여
[오마이뉴스] 대통령의 대일외교 폭주… 시간 없다, 대법원 빨리 결정하라
[소셜 코리아] 정부의 처참한 역사 인식 드러낸 강제동원 3자 배상안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기자말] 10대의 나이에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으로 강제동원된 청년 이춘식은 일본제철 가마이시(釜石) 제철소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리던 중에 징병으로 일본군에 끌려갔다가 고베(神戸)의 연합군 포로수용소에서 해방을 맞았다. 끌려간 모든 조선의 청년들이 해방을 맞아 서둘러 고향으로 돌아오기 위해 애쓰고 있을 때 그는 자신의 강제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기 위해 가마이시 제철소 노무과에 찾아가 월급을 요구했으나 받지 못하고 귀국했다. 고베에서 가마이시까지 1천㎞가 넘는 머나먼 길, 전쟁의 폐허로 교통수단도 마땅치 않은 그 길에서 청년 이춘식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식민지 조선의 청년 이춘식에게 그 길은 짓밟힌 자신의 인권과 존엄을 다시 찾기 위한 여정이었을 것이다. 해방이 되고 73년이 지난 2018년 10월 30일, 대한민국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가해 기업 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들의 역사적인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법정에서 판결을 직접 들은 이춘식 할아버지는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첫 질문에 “기쁨이 아니라 눈물이 나오고, 마음이 아프고 슬프다”는 의외의 답변을 했다. 할아버지는 가장 먼저 1997년 일본에서 처음 소송을 제기한 여운택, 신천수씨 그리고 2005년 한국에서 자신과 함께 소송에 합류한 김규수씨를 떠올렸다. “그 사람들하고 같이 있었으면 엄청 기쁠 텐데 나 혼자 나와서 눈물이 나오네.” 할아버지는 함께 소송투쟁을 시작했지만 먼저 세상을 떠난 동료들을 그리워하며 승소의 기쁨에 앞서는 슬픔의 눈물을 흘렸다. 기나긴 투쟁으로
[한겨레] 과거사에 “가슴 아프다”는 기시다…“대상 불명확한 표현”
일 역대 과거사 발언 수위 비교 아키히토 전 일왕 “통석의 염” 시대로 전문가 “세계대전 일본인 포함될 수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7일 한-일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향해 공식적 사죄나 반성 대신 개인적 안타까움을 표시한 것은 무라야마 담화(1995), 한-일 파트너십 선언(1998),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담화(2005)에 한참 못 미친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 사회가 우경화되고 한국 등에 ‘더 이상 사과할 수 없다’는 취지의 아베 담화(2015)가 나오면서, 지난 과거에 대해 명확한 사죄와 반성의 뜻을 밝힌 앞선 담화들을 무력화한 사정이 작용했다. 그 결과 기시다 총리의 발언 역시 일본의 명확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개인적 감정을 토로한 1990년대 초 아키히토 일왕의 ‘통석의 염’ 시대로 돌아가고 말았다. 기시다 총리는 7일 한-일 정상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등 과거사 문제를 두고 사견임을 전제로 “저는 당시 혹독한 환경 아래 다수의 분들께서 대단히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하신 데 대해 굉장히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제동원 피해자를 직접 입에 올리지도 않고, 총리로서가 아닌 개인적 의견을 말한 것이다. 이를 두고 한-일 관계 전문가인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기시다 총리의 발언이 누구를 대상으로 한 것인지 명확하지가 않다”며 “세계대전에서는 일본인들도 고생했기 때문에, 일본인을 포함한 발언으로도 생각될 수가 있다. 교묘하게 주어를 생략한 표현”이라고 짚었다. 과거 일본 총리나 총리 대변인
[MBC시선집중] 민족문제연구소 “기시다 ‘마음 아파’ 발언에 감사? 이런 평가하는 대통령실이 더 가슴 아프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 – 기시다 마음 아프다? 日, 군함도 등재 때도 비슷한 발언.. 기록하겠단 약속 안 지켜 – 기시다, 당시에도 발표 하루 만에 강제동원 부인.. 명확한 사죄 의사도 없어 – 尹, 인식 자체 대단히 착각.. 과거사가 미래 발목 잡는 장애물이라 보는 듯 – 진전된 표현? 불쌍하다는 뜻.. 가슴 아프면 사죄하고 배상하면 될 일 – 피해 생존자 배상안 수용? 피해자의 당연한 권리.. 비판 말아야 – 외교 협상 실패한 정부가 부당한 선택 강요.. 갈라치기 하는 일부 보도가 문제 – 시민단체가 회유? 대단히 무책임한 언론플레이.. 조력 요청 외엔 일체 접촉하지 않아 – 尹, 日 총리 앞에서 우리 대법원 판결 부정.. 외교 협상 끝났으니 판결대로 이행해야 ■ 방송 : MBC 라디오 표준FM 95.9MHz <김종배의 시선집중>(07:05~08:30) ■ 진행 : 김종배 시사평론가 ■ 대담 :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 ☏ 진행자 > 어제 한일 정상회담이 있었는데요. 지금부터 차례로 두 분을 연결해서 그 내용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관심사 하나는 과거사였고요. 하나는 후쿠시마 오염수 처리 문제였는데 먼저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서 이분 연결해서 평가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김영환 대외협력실장 전화 연결하겠습니다. 나와 계시죠? ☏ 김영환 > 네, 안녕하십니까? 민족문제연구소 김영환입니다. ☏ 진행자 > 일단 어제 한일 정상회담이 있었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좀 더 진전된 과거사 발언을 하는지가 관심사였는데 결과는 나왔는데요.
[오마이뉴스] 피고인들과 함께 현충원에 누운 판사, 이 모순을 해소하려면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민복기 ‘유신 독재’하면 단연 박정희이지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1968년 10월부터 1978년 12월까지 대법원장을 지낸 민복기가 바로 그다.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서울 삼청동 안가에서 당·정 연석회의를 열고 3선 개헌 각본을 설계한 때가 1968년 12월이고, 3선 개헌안이 국민투표를 통과한 날이 1969년 10월 17일이다. 이에 힘입어 1963년·1967년에 이어 1971년 대선에까지 출마한 박정희가 종신집권으로 가는 유신체제를 완성한 것이 1972년 하반기다. 이 체제가 종말을 맞은 게 1979년 10월이다. 민복기가 10년 2개월간 대법원장을 지낸 기간은 3선 개헌 및 유신체제 시절과 거의 일치한다. 국민적 저항을 무시하고 굴욕적인 1965년 한일협정을 강행한 박정희가 독재자로 변신하던 시기부터 민복기가 그 옆에 있었던 것이다. 민복기가 대법원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박 정권은 사법부를 시종이나 시녀처럼 다뤘다. 1971년에는 시국사건 피고인에게 무죄판결을 내린 재판부에 대해 검찰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는 무죄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로 해석됐고, 전국 판사 153명이 사표를 제출했다(사법파동). 당황한 박정희는 뇌물수수 사건에 대한 수사 중지를 지시했다. 1975년에 민복기는 대표적 공안조작 사건인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의 상고심 재판장을 맡았다. 민복기는 사형을 선고했고, 불과 18시간 만에 형이 집행됐다. 국제법학자협회는 이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했다. 그런 암흑의 시대에, 행정부에는 박정희가 있었고 사법부에는 민복기가 있었다. 박 정권이 아무리 막강하다 해도, 아무렇게나 사람을 가두고 죽이면 민심이 당장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 정권이 잡아들인 무고한
[이데일리] “머리숙여 사죄하라”…시민단체, 기시다 日 총리 방한 규탄집회
<2023-05-07> 이데일리 ☞기사원문: “머리숙여 사죄하라”…시민단체, 기시다 日 총리 방한 규탄집회 ※관련기사 ☞헤럴드경제: “과거사 사죄부터 하라” 시민단체, 한일정상회담 규탄 ☞경향신문: 기시다 방한에 쏠린 눈…시민단체 “굴종외교 그만, 사죄·반성 먼저” ☞한겨레: “과거사 사죄가 먼저” 기시다 방한에 대통령실 앞 반대 집회 <2023-05-08> MBC 시선집중 ☞MBC: [시선집중] 민족문제연구소 “기시다 ‘마음 아파’ 발언에 감사? 이런 평가하는 대통령실이 더 가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