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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3·1운동 참여는 했지만 ‘변절’한 독립유공자들

2005년 3월 8일 1104

      김경현(경남근현대사연구회 연구원) / [김경현 칼럼]그들의 예우를 박탈해야 지금 독립유공자로 추서된 인물 가운데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독립운동가는 주로 3·1운동 관련자들이 많다. 하지만 나중에 일제의 녹봉을 받는 식민통치기구의 관공리가 되거나 일제의 협력자가 되고 만 경우도 허다하였다. 더구나 이들은 해방 이후에도 대개 독립유공자로 예우 받거나 국민을 대표하는 사회지도층 인사가 되었다. 진주의 독립운동가로 널리 알려진 인물 중에 몇몇의 행적을 살펴보자. 이강우는 진주에서 3·1운동으로 복역한 인물이지만 출옥 후 일제 관공리로 변신하여 진주고등보통학교에서 서기로 근무하다가 일제 말에는 진주부 내무과 소속의 갱생원에서 지도원을 지냈다. 해방 후 이강우는 자신을 신임했던 일본인 부윤과 그의 가족을 보호하며 직접 일본으로 탈출시켜주는 의리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는 해방 직후 진주부청 내에서 직장자치위원회를 조직할 때 소속 직원들로부터 ‘진정한 애국자’로 추대되었으며 나중에는 제헌국회의원까지 지냈다. 역시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사천 다솔사의 대처승 최범술도 불교계의 독립운동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북지 황군위문단의 위문사’로 1개월씩이나 참여해 중국을 침략중인 일본군을 위로하는 위문행사를 벌이고 돌아오는 친일행위를 저질렀다. 변절한 독립운동가 많다 해방 후에는 그도 역시 사천에서 제헌국회의원을 지냈고, 1950년대 초에는 진주에서 교육사업을 벌여 중고등학교를 설립하고 진주시 강남동에 소재한 해인대학(현재 마산에 있는 경남대학교의 전신)의 학장까지 지냈다. 마찬가지로 진주에서 사립학교 교원을 지내다가 3·1운동에 뛰어들어 징역 1년을 언도받고 복역한 한규상도 나중에는 일제 관공리가 됐다. 그는 일본왕의 ‘은사 감형’으로

김민수 교수, 6년만에 강단 다시 서다

2005년 3월 8일 686

        조호진 기자   ▲ 김민수 교수가 6년 6개월만에 다시 들어간 자신의 연구실에 앉아 강의 준비를 하고 있다. ⓒ2005 권우성 ▲ 김민수 교수가 8일 오후 2시부터 복직후 첫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2005 권우성 [2신 : 8일 오후 1시50분]6년 6개월만에 열린 김민수 교수의 연구실 ⓒ2005 권우성“저항이 없는 메시지는 존재하지 않는다.”6년 6개월동안 문이 닫혀있던 김민수 교수의 연구실 52동 413호 책상 앞에 붙어있는 문구다. 김 교수가 강단을 떠날 때부터 A4용지에 적어 놓았던 글귀다. 오늘 오전 11시, 김 교수 연구실의 문이 열리는 순간 6년여전의 기억을 되살리는 각종 흔적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연구실 문에는 빛바랜 경고문이 부착되어 있었다. 김 교수가 강단을 떠나던 때인 42대 총학생회(현재는 47대 총학생회)가 붙인 경고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김민수 교수의 연구실이 강제로 철거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기대하고 있으며, 만약에 연구실이 강제로 철거된다면 강력대응할 것이다.”김 교수의 연구실에는 또 각종 전공 원서 및 수백권의 책자들이 빼곡히 쌓여있고, 벽에는 ‘자화상 1 – 김민수 교수를 위하여’라는 제목의 독문과 고원 교수의 시가 붙어있다. 김 교수의 책상 위에는 98년 2학기 디자인학부 전공 강의 시간표가 부착되어 있다. 김 교수 연구실의 시간은 98년 이후 멈춰버린 것이다. 김 교수는 1시50분 현재 6년 6개월만에 열리는 첫 수업을 하기 위해 강의실로 향하고 있다. ⓒ2005 권우성 [1신 : 8일 오전 11시]김민수 교수,

신성한 훈민정음에 사쿠라를 달지 마라!

2010년 11월 17일 518

[서평] ≪사쿠라훈민정음≫, 이윤옥, 인물과사상사 김영조 회원 ▲≪사쿠라훈민정음≫ 책표지 ⓒ인물과사상사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서정쇄신은 ‘여러 방면에서 정치 폐단을 고쳐 새롭게 함’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정치의 계절이 오면 이 말은 여러 곳에서 더욱 날개 돋친 듯 쓰인다. 정확한 어휘로 기사를 작성하고 내보내야 하는 신문 같은 매체에서도 서정쇄신이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것을 보면 서정쇄신이 우리 겨레를 개조시키려 한 일제강점기 미나미 지로 총독의 ‘조선통치 5대 목표’였음을 모르고 있는 듯하다.” 위 글은 ≪사쿠라훈민정음≫ 책에서 인용한 글귀다. 올해는 나라를 빼앗겼던 국치 100돌이고 나라를 되찾은 지 벌써 65년이 된 해인데 아직도 우리의 일본말찌꺼기 청산은 요원하기만 하다. 고대 야마토시절 자신들에게 고급문화를 가르쳐줬던 은혜의 나라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어 통치하려고 일제가 썼던 <서정쇄신>을 우리는 자존심도 버린 채 쓰고 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정치인들이 더욱 많이 쓴다. 이런 잘못을 통렬히 꾸짖는 책이 나와 화제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어연수원에서  오랫동안  일본어 교육에 전념하던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이윤옥 소장이 “인물과사상사(대표 강준우)”를 통해 낸 ≪사쿠라훈민정음≫이 바로 그 책이다. 책에는 또 “참배”도 좋지 않은 일본말이라며 쓰지 말라고 주장한다. 참배를 일본국어대사전 《다이지센》에 찾아보면 “さん―ぱい【參拜】 社寺, 特に神社にお參りしておがむこと. 「伊勢神宮に―する」 →삼빠이: 신사나 절 등에 참배하는 것. 이세신궁에 참배하다.”라고 풀이했다. 곧 이 참배라는 말은 전쟁영웅으로 미화하고 있는 야스쿠니 신들에게도 하는 것인데 아무 생각 없이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계신 국립현충원에 갈 때도 쓰고 있다고 개탄한다. 이런

보훈처 야스쿠니 출장 논란

2010년 11월 16일 260

보훈처 야스쿠니 출장 논란(포커스신문, 10.11.16)

한승조 교수의 일제 찬양 망언과 광태를 강력 규탄한다

2005년 3월 4일 1395

  이 무슨 망발인가. 3·1절이 불과 며칠 지났다고 일제의 식민지배를 찬양하고 친일청산을 극렬 반대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그것도 대학의 정치학 교수를 지낸 자가 일본의 극우 월간지에 쓴 글이라니 놀랍다기보다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한승조 교수는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지배는 오히려 매우 다행스런 일로, 원망하기보다는 오히려 축복해야 하며 일본인에게 감사해야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일본지배는 결과적으로 한국이라는 나라의 조기성장과 발전을 촉진시키는 자극제의 역할”을 했으며, “한·일 양국의 인종적 혹은 문화적인 루트가 같고 한국의 민족문화가 일제 식민 통치기간을 통해 보다 성장, 발전, 강화”됐다고 주장했다.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떠들었던 ‘식민사관’‘제국의 논리’가 광복 60년을 맞이해 다시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그것도 일본 우익이 아닌 한국인 교수에 의해. 그는 또 “전쟁 중에 군인들이 여성을 성적인 위안물로서 이용하는 것은 일본만의 것이 아니며 일본이 한국여성을 전쟁 중에 그렇게 이용한 것도 전쟁 중의 일시적인 것이자 예외의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10만 명이상의 처녀들을 성노예로 끌고 간 사실을 그럴 수 있는 것으로 본다고? 반인륜적이고 반지성적인 도를 넘는 행태가 할 말을 잃게 한다. 나아가 그는 민족사 60년의 숙원인 친일청산을 한낱 정치적 음모로 비하하고 있다. 게다가 친일청산을 주장하면 빨갱이며 좌익정권을 성립시키는 기도라고 주장했다. 제국주의의 침략과 전쟁을 찬양하고 극단적 가부장제와 맹목적 반공주의와 파시즘의 논리로 무장한 그는 학자라기보다 21세기에 되살아난 친일파시스트에 다름 아니다. 그는 과거 유신체제를 적극

윤경로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장, 한성대 새 총장에 임명

-0001년 11월 30일 1101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장인 윤경로 한성대 역사문화학부 교수가 전임 한완상 총장 후임으로 3월 1일자로 한성대학교 제5대 총장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윤경로 신임 한성대학교 총장은 서울 경동고, 고려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성대 교수협의회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장과 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윤 위원장은 2003년 6월 국사편찬위원장으로 취임한 이만열 전 위원장에 이어 2대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장직을 수행하고 있으며, 올 광복절에 맞춰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될 주요 친일파 명단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

정무위, 보훈처 ‘야스쿠니 출장’ 논란

2010년 11월 16일 441

정무위, 보훈처 ‘야스쿠니 출장’ 논란(10.11.15)

김양 보훈처장, 日야스쿠니 신사 참관 강행 논란

2010년 11월 16일 308

김양 보훈처장, 日야스쿠니 신사 참관 강행 논란(뉴스한국, 10.11.15)

세상은 바쁘게 변하고 있으나 친일 청산은 제자리 걸음

2005년 2월 28일 965

        전반민특위조사관 정철용   일제강점기에 더럽혀진 망국의 친일역사가 아직도 청산되지 못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을사늑약 100년 광복 60년 한일협정 40년을 맞이합니다.을사늑약 이후 100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세계각국은 물론 우리나라도 정치, 경제, 문화, 사회, 환경 각 분야에서 놀라운 발전과 변화를 이루고 있으나 유독 친일청산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음은 매우 부끄러운 일입니다.1965년 굴육적인 한일국교가 체결되자 이에 분노한 민족역사학자 고임종국선생께서 친일문학론(親日文學論)을 출간하여 친일문제연구의 씨앗을 뿌렸고 그의 뜻을 이어받은 민족 문제연구소 임직원이 궁핍한 재정적인 어려움, 독재정권의 핍박, 감시 속에서 또한 우리국민들조차 무관심했던 역사의 뒤안길에서 이를 감내하고 노력한 결과 이제는 우리 민족역사의 연구, 조사, 개발의 중심처로 온국민의 믿음을 받고 있음은 자타가 공인한 바로 찬사와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1949년 1월, 친일분자, 민족반역자의 처벌, 친일청산을 목적으로 발족한 반민특위가 온국민의 열화같은 성원속에서 활발히 업무를 추진중인 1949년 6월 6일 친일반역자 도당을 옹호하고 정권야욕에 혈안이 된 독재자의 지시에 따른 무력경찰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민족정기의 꽃도 피우지 못하고 그 열매도 거두지 못하고 와해된지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친일청산이 매듭을 짓지 못하고 정치적 흥정거리로 전락되고 있음을 통탄합니다.본인은 기회있을 때마다 친일청산은 정치적 논리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신문, 방송을 통하여 호소했으나 정치권은 마이동풍이었습니다. 2004년 11월 본인은 천안공원묘지에 안치되어 있는 고 임종국선생 25주년 추도식에 참석하여 녹음된 고인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제까지 친일청산도 못하고 무엇을 하였느냐고

‘일제강점기 인명록Ⅰ-진주지역 관공리․유력자’펴내

2005년 2월 28일 1973

      민족문제연구소  ‘제2의 반민특위를 일으키고자 이 책을 썼다.’ ‘민족정기 바로잡는 촉발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해방 60주년을 맞아 친일파 청산과 일제강점기 강제동원피해 등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과거사 청산의 횃불이 될만한 책이 출간되었다. 삼일절을 맞아 3월 1일에 출간된 [일제강점기 인명록Ⅰ-진주지역 관공리·유력자]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편찬사업의 일환으로 펴내게 되었다. 이번 인명록 출판은 진주를 시작으로 전국으로 퍼져나갈 계획이다.필자 김경현(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씨는 ‘지역에서 떠도는 소문을 철저히 문헌을 통해 확인했다’며 ‘자료를 수집하는데 한계를 느낄 때마다 조국광복에 헌신한 독립운동가의 심정으로 스스로를 다그쳤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진주지역과 관련해 3천4백 여명의 행적이 실린 이 책은 곧 발간을 목표로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사초로 활용할 수 있는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 기대되고 있다. 인명록은 당대의 신문자료나 문헌자료에 등장하는 수많은 친일의 장본인과 그 군상을 쉽게 추적할 수 있게끔 사전식으로 집필되어 있다. 4×6배판, 양장본, 726쪽(정가 48,000원 / 회원가(국민모금 참여자 포함) 40,000원 이 책은 진주를 중심으로 일본제국주의에 부역한 친일행위자를 파악함에 있어 그 대상자를 확인하는데 필요한 인물들의 명단과 그들의 행적을 수록한 것이다. 책에 수록된 이들은 모두 친일파나 친일부역자라고 규정할 수는 없지만 일제 침략기에 복무했던 다양한 역할들을 제시함으로써 협력행위 전반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인명록에는 진주에서 한때 관공리를 지냈거나 면협의회·읍회·부회·도회·상공회의소·경방단 등 친일관변단체에서 사회활동을 했다면 진주에서 태어나지 않았어도 조건 없이 수록되어 있다. 또 본적지가 진주로 확인된 자들도 비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