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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언론 창] ‘뉴라이트’ 한국사교과서, 1083개교 중 기독대안학교 1곳만 채택
한국학력평가원 교과서 채택률은 0.09%…채택 학교는 ‘영성교육’하는 소규모 각종학교 ‘친일 뉴라이트’ 논란을 빚은 고교‘한국사’ 검정교과서가 일선 고교의 교사와 학부모에게서 선택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에 응한 7개 시도교육청 소속 1083개 고교 가운데 영성교육을 하는 경기지역 기독교계 대안학교 1곳(각종학교)만 채택한 것으로 밝혀졌다. 29일, 국회 교육위 강경숙 의원이 서울, 광주, 경기, 대전, 울산, 경북, 대구 등 7개 교육청으로부터 받은 ‘고교’한국사 1, 2 채택 현황’을 보면 전체 1083개 고교 가운데 경기지역 대안학교 1곳만 논란이 된 한국학력평가원의 ‘한국사’ 교과서를 채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정 합격 출판사는 모두 9개인데, 한국학력평가원 출원 교과서 채택률은 0.09%다. 앞으로 나머지 10개 시도교육청 소속 고교의 상황이 더 파악되면 해당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가 더 늘어날 수는 있다. 교육언론[창]이 경기교육청과 해당 학교 등에 확인한 결과, 한국학력평가원 교과서를 채택한 곳은 경기 양주시에 있는 인가 대안학교인 기독교계 A학교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학교는 영성교육을 맡는 교목부가 학교 기구 안에 존재하고 있다. 학교알리미에 따르면 이 학교 학생 수는 모두 47명이어서 무척 작은 규모인 것으로 나타났다. 강경숙 의원은 교육언론[창]에 “교과서 선택은 교사와 학부모가 학교운영위원회를 거치는 등 적절한 절차를 통해 선택하게 된다. 그 결과 한국학력평가원 교과서는 오로지 대안학교 한 곳에서만 선택된 것”이라면서 “이런 교과서를 교육부와 교육과정평가원이 부실하게 검정한 문제에 대해서는 국정감사가 끝났지만 계속해서 문제 제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과거 ‘김진홍 목사 세미나’
[기자회견] 주권·국익 포기! 윤석열 정권 대일 굴욕외교 규탄 기자회견 전문
☞ 다운로드: [기자회견문] 더불어민주당 역사와정의특별위원회, 정의기억연대, 민족문제연구소는 윤석열 정권의 대일 굴욕외교를 규탄하며, 정부가 초래한 대한민국의 주권과 국익 훼손에 심각한 유감을 표명한다. 우리 헌법은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을 천명하고 있다. 구한말 의병운동으로부터 시작한 독립운동이 3.1운동을 거치며 국민주권을 찾는 치열한 항전이 됐고, 그 독립정신은 곧 대한민국의 뿌리가 된 것이다. 헌법 수호의 의무가 있는 대통령은 이 자랑스러운 역사를 지키고, 바로 세워야 함이 당연하다. 윤석열 정권은 이 책무를 잊고, 계속되는 뉴라이트 인사 참사와 굴욕외교로 우리 국민이 가진 자긍심마저 짓밟고 있다. 지난해 3월 우리 정부는 이미 강제동원과 위안부 문제에 대해 ‘피해자 중심 접근 방식’을 폐기하겠다는 입장을 유엔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 9일에는 유엔 공식 석상에서 일본 대표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근거 없다’며 부인했음에도 한국 대표는 침묵한 사실이 드러났다. 각축전이 벌어지는 국제무대에서 우리 정부가 보여준 모습은 가히 참담할 정도다. 우리 외교부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이유로 들었다. 한일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서로 비난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다. 비난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위안부를 부정하는 일본 정부이다. 작년 9월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진실, 정의, 배상 및 재발방지 증진에 관한 특별보고관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구제가 미흡하며 ‘2015 한일합의’ 개정 권고를 할 당시에도 한국 정부는 ‘2015 한일합의’를 “양국 간 공식 합의로 인정”한다는 둥 망언을 일삼았다.
[오마이뉴스] ‘원조 친일파’ 저리가라… 거침없던 독립운동가 출신 친일파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허영호 불교계에도 비밀 항일결사가 있었다. 석가모니 앞에서 민족을 구원하겠노라 서약한 조직이었다. 만(卍)자를 당명으로 사용한 만당(卍黨)이 그들이다. 국가보훈부의 전신인 원호처 산하의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가 펴낸 <독립운동사 제8권: 문화투쟁사>는 이용조의 글인 ‘한국불교 항일투쟁 회고록-내가 아는 만자당(卍字黨) 사건’을 근거로 “이 단체는 1930년 5월경 김법린·이용조·김상호·조학부(조학유의 오기) 등이 불전(佛前)에서 맹세하고 결사”한 조직이라고 소개한다. 1995년에 <한국학보> 제80집에 실린 김광식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책임연구원의 논문 ‘조선불교청년총동맹과 만당’에도 인용된 위 회고록에 따르면, 순교정신으로 만당에 참여한 그들은 억압하에 놓인 한국불교뿐 아니라 한민족을 구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만당 선서문에는 “2천만 동포가 헐떡이는 소리를! 우리는 참을 수 없는 의분에서 감연히 일어선다”라는 대목이 있다. 만당은 조선불교청년총동맹을 조직하고 각지에 총동맹 지부를 설치했고, 이를 바탕으로 불교계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회고록은 “교정(敎政) 운영에도 상당한 잠재 세력을 갖게 되어 교무원은 이사를 위시하여 중요 간부들까지도 당의(黨議)로 누구를 내세우자 하면 그대로 성공되기까지 이르렀다”고 말한다. 비밀 조직이 없었으면 총동맹 조직 과정과 교단 인사 개입 등이 노출됐을 것이고 그랬다면 일제의 감시와 훼방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면에서 비밀결사는 유용했다. 당원 수가 근 80명에 다다른 만당의 영향력은 일본에까지 미쳤다. 만당 도쿄지부가 그 산물이다. 이로 인해, 1928년부터 다이쇼대학 불교학과에서 유학 중이던 독립운동가 허영호도 이 활동을 하게 됐다. 허영호는 이용조 회고록에서도 거명됐다. 친일로 전향한 독립운동가 허영호는 일제 경찰들을 곤혹스럽게 만든 항일운동의 주요 인물이다. 대한제국
민족사랑 2024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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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경향] 이승환, 일제 강제동원 피해 알리기 위해 3천만원 기부
가수 이승환이 일제의 강제동원 피해 알리기를 위해 3000만원을 기부했다. 시민단체 민족문제연구소는 21일 “이승환이 지난 19일 ‘스무 번째 차카게 살자!’의 수익금 가운데 3000만원을 기부했다”고 밝혔다. 이어 “기부금 증서를 전달하며 2015년 군함도, 2024년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과정에서 일본 정보의 역사 왜곡에 맞서 한국 정보의 외교 포기에 맞서 강제 동원 역사를 알리고 기록하기 위해 노력한 민족문제연구소 활동에 지지를 보내줬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익금은 강제동원 역사를 알리는 일에 쓰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승환은 지난 19일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스무 번째 콘서트 ‘차카게 살자’를 진행했다. 이승환이 직접 기획한 이 콘서트는 2001년 시작돼 20년간 진행됐다. 이승환은 수익금을 소아암 어린이를 위해 기부해왔는데 일제강점기 당시 자행된 강제동원 피해 알리기에도 나선 것이다. 특히 이승환은 올해를 마지막으로 자선 콘서트 진행을 마무리한다. 이승환은 이날 마지막 자선 콘서트에서 민족문제연구소 임재성 변호사에게 기부 증서를 전달하며 “우리를 잊지 않는 우리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에 3000만원을 기부한다”고 했다. 이선명 기자 <2024-10-22> 스포츠경향 ☞기사원문: 이승환, 일제 강제동원 피해 알리기 위해 3천만원 기부
[오마이뉴스] ‘조선인 잡는 조선인’ 대전현충원에 8명 안장
애국지사 곁에 누워 국가의 영예를 누리는 참담한 현실 1937년 일제는 본격적으로 중국 침략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일제의 근거지였던 만주 지역에서는 동북항일연군 등 일제에 맞선 독립군이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는데요. 일제의 가혹한 탄압 속에서도 열차나 헌병 부대를 습격하는 등 전투를 이어갔고요. 독립 의지를 알리고 보급을 해결하기 위해 선전 활동에 주력하는 등 최선을 다해 일제의 침략을 저지하고 있었습니다. 일제의 입장에서는 독립군이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는데요. 이들을 확실하게 ‘토벌’하여 후방을 안정시키고자 했습니다. 만주를 지배하던 일제는 이른바 ‘오족협화’ 이념을 내세우고 있었는데요. ‘조선족, 만주족, 한족, 몽골족, 야마토족 등 5개 민족이 협력하고 화합하여 서방 제국주의를 막아내고 아시아인의 번영을 이루자’는 정치 구호였습니다. 하지만 일제는 자기들의 침략 전쟁에 다른 민족까지 총알받이로 동원할 검은 속내를 숨기고 있었습니다. 1937년 6월에는 만주 내 러시아인들로 이루어진 ‘아사노(浅野)부대’, 1939년 신장 방면의 회교부대, 1941년 몽골인 기병대원들로 이루어진 ‘이소노(磯野)부대’와 퉁구스족 사냥꾼들로 이루어진 ‘오로촌(鄂倫春)부대’가 각각 창설됐습니다. 조선인이 조선인 잡는 ‘간도특설대’ 이런 흐름 속에서 1938년 9월 조선인들로 만들어진 부대 바로 ‘간도특설대’였습니다. 당시 간도성 성장을 맡고 있던 친일반민족행위자 이범익이 건의해 부대가 만들어지게 됐는데요. 안도현치안대, 훈춘국경감시대, 연길현청년훈련소, 봉천만군군관학교 및 기타 만주국군 부대에서 대원을 선발했고, 위관급 이상의 일본인 군관 7명, 조선인 위관 9명, 조선인 하사관 9명으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부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만주 전 지역에 대대적인 선전 홍보를 했는데요. 조선인 청년들의 자발적인 지원을 유도했습니다.
[오마이뉴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5.18 유공자와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독립·민주화운동 사적지 순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문구를 가슴에 새기며 살아온 사람들이 지난 18일~19일 독립·민주화운동 사적지를 순례했다. 5.18 민주화운동 공로자들과 친일 왜곡 역사를 바로 잡으려 평생을 바쳐온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 방학진 실장, 연구소 회원들과 시민이 주인공이다. 5.18 민주화운동 공로자회 서울지부가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과 일반 시민을 초청해 독립 운동의 산실인 안동을 순례지로 선택한 이유는 왜곡된 역사의 물줄기를 바로 잡으려는 의지를 새롭게 다잡기 위함이었다. 5.18 민주화운동 공로자회는 해마다 상, 하반기 두 차례 민주화운동 사적지 순례를 이어오고 있다. 임태경 5.18 민주화운동 공로자회 서울지부 사무국장은 “상반기는 5.18을 잊지 않기 위해 광주 망월동과 중심 순례를, 하반기 역시 광주 전남지역 민중항쟁 사적지를 중심으로 순례를 이어왔다. 이번에 독립운동의 산실이라 할 수 있는 경북 지역과 원주를 순례지로 결정해 안동의 임청각과 이육사문학관을 둘러보는 것은 독립·민주화 운동의 정신을 온전히 새겨보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첫 순례지 경북 독립운동의 기둥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 ‘임청각’은 경상북도 안동시 임청각길 63(법흥동)에 위치한다. 임청각은 1518년 낙향한 이명이 도연명의 ‘귀거래사’ 싯구를 빌려 이름을 지은 조선 시대 가장 규모가 큰 양반 99간 규모의 주택으로 500년 역사를 간직한 보물이다. 임청각은 사당, 별당형 정자 군자정, 본채인 안채,중채, 사랑채 행랑채로 이뤄진 조선 시대 대표적 주택이다. 1942년 일제 강점기 중앙선 철도 부설로 88칸 건물 중 부속 건물이 철거되어
[오마이뉴스] 부정축재 들통나 사라진 정치인의 문제적 과거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정래혁 한국의 반정부운동에서 1979년까지 나타난 특징 중 하나는 반민주정권에 대한 대항뿐 아니라 친일정권에 대한 대항의 성격도 띠었다는 점이다. 1979년까지의 역대 정권들은 친일파가 국가운영의 주축을 이루거나(이승만 정권), 친일파가 국가지도자인 상태에서 이들이 국정에 많이 참여하는 정권(장면·박정희)이었다. 그래서 이때까지의 반정부운동에서는 그런 성격이 나타나게 됐다. 미군정기나 이승만정권 때는 친일파들이 경찰의 주축을 이룬 데 비해, 장면 정권과 박정희 정권 때는 이들이 군부를 주도했다. 5·16 쿠데타 1년 뒤인 1962년 8월 17일 주한미국대사관이 국무부에 보고한 ‘한국 군부 내 파벌주의’라는 기밀전문은 친일파 군인들의 분포와 관련해 “공군은 일본파가 확실히 통제하고 있으며, 해병대는 함경-만주파가 지배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육군 내의 친일세력이 약해졌음을 전제한 뒤 친일파 정일권과 백선엽을 거명하면서 “육군 내의 전통적인 구 파벌들은 정일권의 개인적인 지도력하에 있는 함경-만주파의 장교들과 백선엽의 사적 지도력하에 조직된 평안도 출신이 다수인 장교들이 지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친일세력의 영향력은 박정희 정권이 전반기인 제3공화국에서 후반기인 제4공화국(유신체제)으로 넘어갈 때도 상당했다. 2016년에 <한국사학보> 제65호에 실린 허은 고려대 교수의 ‘냉전분단시대 대(對)유격대 국가의 등장’은 “1972년까지 국가체제의 재편을 주도한 이들이 만군 출신”이었다고 말한다. 만주국 군대에서 부역한 세력이 유신체제 등장에도 관여했던 것이다. 1980년 이후의 정권들도 친일청산을 훼방하고 대일 예속을 유지했다. 그러나 해방 이전에 친일파로 부역한 사람들이 국가지도자가 되거나 국정운영에 대거 참여하는 현상은 없었다. 좀더 활동할 수 있었던 친일파들이 1980년부터
[보도자료] 청일전쟁 130년 · 러일전쟁 120년 기획 학술토론회 〈위기의 동아시아, 어제와 오늘〉 개최
☞ 다운로드: [보도자료] l [자료집] 청일전쟁 130년 · 러일전쟁 120년 기획 〈위기의 동아시아, 어제와 오늘〉 학술토론회 열려 주최 : 민족문제연구소 · 서울특별시 강북구 주관 : 근현대사기념관 후원 : 식민지역사박물관 때 : 10월 24일(목) 10:00~17:00 곳 : 서울역사박물관 아주개홀 민족문제연구소는 동학농민혁명 · 청일전쟁 130년 / 러일전쟁 120년이 되는 해를 맞아 지난 8월 2일부터 기획전시 〈한반도 운명을 바꾼 그들의 전쟁〉을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10월 16일부터는 〈지도에 새긴 동학농민혁명과 청일전쟁〉을 근현대사기념관에서 열고 있다. 이어 10월 24일에는 서울역사박물관 아주개홀에서 올 한 해 기획사업을 결산하는 학술토론회를 가진다. 민족문제연구소와 강북구가 공동주최하고 근현대사기념관이 주관하는 〈위기의 동아시아, 어제와 오늘〉 학술토론회는 청일·러일 두 제국주의 전쟁을 조선의 시각으로 재조명하고, 세기를 넘어 재현되고 있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격돌이라는 현실 속에서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길을 가늠해 보는 의미 있는 논쟁의 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은 근대 동아시아 각국의 운명을 결정짓는 역사적 분기점이 되었음은 물론, 국제 역학관계의 변화까지 가져온 세계사의 중대 사건이었다. 한반도를 둘러싼 두 차례 전쟁의 결과, 조선은 식민지로 청국은 반식민지로 전락하는 단서가 열렸으며, 제정 러시아는 급격한 몰락의 길로 들어선 반면 일본은 제국주의 열강의 반열에 오르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둘러싸고 전개된 양대 전쟁은 전장이 되었던 한반도에 막대한 물적·인적 손실을 끼쳤으며, 조선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청국, 러시아라는 대국과의 정면
[MBC뉴스] [단독] 환수된 거물 친일파 땅, 다시 후손에 수의계약‥12건 첫 확인
앵커 10여 년 전, 친일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특별법이 통과됐고, 국가가 친일파들의 행적을 조사한 뒤 이들이 일제 때 축적한 땅을 환수했는데요. 그런데, 이 중 최소 12건이 수의 계약 형태로 친일파 후손들에게 다시 넘어간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정부의 친일 재산 매각 실태가 드러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나세웅 기자가 단독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일제 침탈기 통감 이토 히로부미와 을사오적 이완용, 그 옆으론 탁지부 대신 고영희가 서 있습니다. 지금의 기재부 장관급인 고영희는 한일병합에 가담한 공로로, 일제로부터 작위와 10만 엔, 현재 가치 25억여 원을 하사받았습니다. 아들 때엔 자작에서 백작으로 승급하는 등 4대에 걸쳐 일제에 협력하고 부를 축적했습니다. [조미은/성균관대 역사디자인연구소 이사장] “그냥 일제 강점기가 되고 나서 친일을 했다가 아니라, 나라를 잃는데, 적극적으로 이완용과 함께 일제의 입장에서 커다란 역할을 했고…” 지난 2005년 뒤늦게 친일재산 특별법이 통과되면서, 고영희 일가 땅 44만㎡가 차례로 국가에 환수됐습니다. 15년 전 환수된 충남 예산 땅. 부지에 있는 창고 세 동은 환수 대상에서 빠졌습니다. 일제 침탈 시기 얻은 재산이란 점을 입증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김 모 씨(91세)/마을 주민] “<여기에 고 씨 땅이 많아요?> 보이는 건 여기 다 기었어 (맞았어.) 여기, 저기, 저 뒤까지 다 그랬어. 땅만 몰수한 거지.” 현재 창고 세 동 가운데 두 동은 사실상 형태만 남아 있고, 한 동은 초목에 뒤덮여 방치돼 있습니다. 그런데,